입맛과 글쓰기


 아이가 누런쌀로 지은 밥을 잘 안 먹거나 못 먹는 듯하다 해서 흰쌀로 지은 밥을 먹이기로 한다. 그러나 흰쌀밥 또한 잘 안 먹으려 든다. 애 아빠로서 아이한테 밥을 차려 줄 때에 영양소를 거의 헤아리지 않는다는 소리를 듣는다. 밤잠을 자는 결에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고 쌀을 씻으며 거듭 생각한다. 애 아빠는 틀림없이 밥 차리느라 바쁘지만 애 아빠 입맛에 맞추어 밥을 차릴 뿐 집식구 입맛은 거의 돌아보지 않아 왔다. 아이가 찌개에 들어 있는 감자랑 두부는 잘 안 먹으나 찐 감자하고 따로 접시에 내놓은 두부는 잘 먹는다. 김을 싸서 먹는 밥도 즐긴다. 그러면 나는 이런저런 모습을 살피며 영양소를 헤아리는 가운데 아이 밥상을 차려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곰곰이 생각을 기울인다. 오늘은 감자랑 무랑 호박이랑 고구마랑 알맞게 썰어 무침을 해 보아야겠다. 국은 말 그대로 국으로 끓이고 찌개로는 하지 말자. 국물만 많이 마실 국으로 끓이자. 노른자를 살린 달걀국을 끓여 볼까. 낮에 읍내 장마당에 가서는 능금 몇 알하고 다른 과일이 있으면 가방에 차곡차곡 담아서 돌아와야겠다. (4343.10.2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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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10-22 20:48   좋아요 0 | URL
요즘 아이들이 그렇게 밥을 잘 아먹느다고 하는군요.그나저나 아이에게 참 다정한 아빠세요^^

숲노래 2010-10-23 04:34   좋아요 0 | URL
부모가 잘해야 아이가 잘 따르는데, 부모가 좀더 따스하게 감싸지 못해 아이도 밥을 잘 안 먹지 않느냐 싶어요...
 

 골목동네는 새삼스럽거나 남다른 모습이 아닙니다. 늘 있는 모습이요 수수한 모습입니다. 그저 작달만한 모습이고 자그마한 모습이에요. 작은 사람들이 작게작게 어우러지는 삶터 그대로인 모습입니다. 

 - 2010.9.18. 인천 동구 송림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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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섯과 글쓰기


 우리 살림집 옆 멧기슭을 탄다. 엊그제에 이어 오늘 두 번째로 멧기슭을 걷는다. 아이한테 옮은 고뿔에다가 지난주부터 떨어지지 않는 몸살로 끙끙거리면서도 아침부터 신나게 밥해서 차리고 빨래해서 널고 아이랑 놀아 주며 그림책을 읽어 주다가 한 시 무렵인가 드디어 뻗는다. 아이는 한 시간 즈음 혼자 놀다가 아빠가 팔베개를 해 주며 다시 그림책을 읽히니 비로소 잠들어 준다. 아이는 한 시간 반쯤 더 낮잠을 자 준다. 아빠가 쉬를 하고 아이가 설마 쉬를 할까 싶어 기저귀를 바닥에 대어 주려는데 아이는 그사이에 쉬를 하고 만다. 1분만 쉬를 늦게 했으면 이불을 적시지 않았을 텐데. 그러나 아빠가 먼저 아이한테 기저귀를 깔아 주었으면 되었을 테지.

 아이는 잠에서 깬 다음 까까를 달라며 운다. 아침부터 밥을 한 술도 안 떴기에 밥을 먹으라 얘기한다. 아이는 그저 울기만 한다. 그러나 우리 집에 무슨 까까가 있나. 울고 싶으면 울라 하고 아이가 오줌으로 적신 옷가지 여러 벌을 빤다.

 빨래를 마치고 마당에 널어 놓는다. 아이 엄마를 불러 세 식구가 멧기슭을 타며 숲길을 걷기로 한다. 말은 숲길이지만 길 없는 숲이다. 나뭇가지를 헤치며 보송보송한 흙을 밟는 숲길마실이라고 할까. 몸에서 후끈후끈한 기운이 올라오며 머리가 어질어질하지만 아이를 품에 안고 비알진 숲길을 걷는다.

 숲길을 걷는 김에 멧느타리버섯을 다섯 송이쯤 딴다. 더 딸 수 있으나 나중에 먹을 때에 따기로 하고, 이듬날 먹을 만큼만 딴다. 올해에는 얼마 못 따는 셈이지만 이듬해에는 올해보다 더 딸 수 있겠지. 버섯 씨앗이 찬찬히 퍼지며 요 기스락에 버섯밭을 알뜰히 일구어 주기를 비손한다.

 마땅한 소리인데 작은 버섯까지 씨를 말리면 이듬해에 다시 버섯 구경을 하기 어렵다. 제법 커서 어른 손바닥만 하다 싶을 때에 따면 좋다고 느낀다. 버섯 나는 자리를 눈에 익히고서 나날이 얼마나 크는가를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멧느타리버슷임을 알고 나서 읍내 장날에 마실을 갔다가 마을사람들이 파는 멧느타리버섯을 보았다. 이 버섯은 얼마든지 사서 먹어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따로 비닐집이나 밭을 일구어 거둔 버섯이 아니니까. 척 보아도 알아볼 수 있다. 할매나 아지매가 산을 타며 딴 멧버섯은 값이 퍽 눅다. 마트에서 비닐팩에 담아 파는 버섯과 견주면 부피가 훨씬 많은데 값이 싸다. 아마 이 버섯은 아는 사람만 알아보며 사 먹지 않을까. 게다가 이 버섯은 아는 사람이라면 시골에서는 으레 몸소 산을 타며 따서 먹을 테고.

 먹으면 안 되는 버섯은 조금 뜯어 살살 물어 보면 쓴맛이 돌아 얼른 뱉게 된단다. 먹으면 되는 버섯은 아무 말썽이 없단다. 도감을 보아도 되지만, 스스로 몸으로 깨우칠 수 있단다. 좋은 글을 읽는 사람은 누가 ‘이 글이 참 좋답니다’ 하고 말해 줄 때에만 좋은 글임을 깨달을까. 따로 추천하거나 칭찬하는 사람이 없더라도 ‘이 글이 참 좋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가. 글 한 줄 쓰는 사람은 글쓴이 스스로 내가 얼마나 좋은 글을 쓰는지 깨닫는가. 내가 쓴 글이 어느 때에는 참으로 좋고, 어느 때에는 참으로 얄궂은가를 깨닫는가. (4343.10.2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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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0.10.20.
 : 잠자리밭 달리기


- 금왕읍(무극읍)에 먹을거리를 사러 가다. 가방에는 쓰레기 한 봉지를 담는다. 시골집 둘레로는 쓰레기를 거두러 오는 차가 없다. 도시라면 요일에 맞추어 쓰레기차가 오갈 뿐 아니라, 사람이 꽤 많이 사는 데에서는 날마다 쓰레기봉투를 거두러 다닌다. 그렇지만 시골마을에는 한 달에 한 번조차 쓰레기차가 다녀 가지 않는다. 시골집에서는 쓰레기를 그냥 태우거나 땅에 묻어야 한다. 우리 집이야 비닐농사를 짓지 않으니 농사비닐이 나올 까닭이 없지만, 농사짓는 이웃집들은 비닐 쓰레기가 어마어마하게 많다. 이 비닐을 읍이든 면이든 거두지 않기 때문에 고스란히 땅에 묻거나 태운다. ‘국산 곡식’을 사들인다는 농협이라고 비닐 쓰레기를 거둘까? 시골사람은 시골사람대로 농약 담은 병이랑 막걸리 담은 플라스틱이랑 땅에 심어 놓던 비닐을 고스란히 쓰레기로 내놓으니 모조리 땅으로 흘러들고야 만다. 정갈한 자연 터전이란 건사하기 어렵다. 우리 집에서 나오는 얼마 안 되는 작은 쓰레기는 작은 봉지에 담아 읍내에 나갈 때에 버스역 쓰레기통이나 농협 하나로마트 쓰레기통에 넣는다.

- 집을 벗어나 논둑길을 달린다. 볕 잘 드는 논둑길에는 잠자리가 아주 많이 앉아 있다. 내 자전거가 지나갈 때에 수십 수백 마리가 떼를 지어 차근차근 날갯짓을 한다. 입을 벌리고 달리다가는 잠자리가 입에 들어갈 수 있다. 얼굴이고 안경이고 몸이고 잠자리가 부딪는다. 자전거 빠르기를 늦춘다. 자전거가 너무 빨리 달리면 잠자리가 다칠 테니까.

- 자동차 씽씽 달리는 큰길로 나오니 잠자리는 거의 안 보인다. 다만, 드문드문 몇몇 잠자리가 보이는데 이 잠자리들은 머잖아 자동차한테 밟혀 죽거나 치여 죽겠지. 자전거로 달리는 길 가장자리에는 밟혀 죽거나 치여 죽은 잠자리 주검이 잔뜩 있다. 이제 나비는 거의 안 보인다. 나비들은 벌써 숨을 거두고 말았을까.

- 충주시 신니면에서 음성군 생극면과 금왕읍으로 갈리는 세 갈래에서 금왕읍 길로 접어들어 오르막을 달린다. 조금 달리니 새 길을 내는 공사가 한창이다. 왜 새 길을 내야 할까 궁금하다. 예전 길이 뭐 말썽이 있다고. 예전 길은 그대로 둔 채 새로 닦는 고속도로하고 잇는 길 하나만 내면 되는데. 이 길을 새로 닦은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일부러 산자락을 제법 파헤쳐서 안쪽으로 길을 냈고, 예전 길이 있던 자리에는 중앙분리대를 널찍하게 만들었다. 참 돈 쓸 데가 많은 대한민국이다.

- 읍내에 닿다. 마침 오늘은 무극 장날. 여느 날에는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하나로마트가 썰렁하다. 그나마 시골에서는 장날 때에만 하나로마트가 썰렁하다. 시골 작은 가게들은 온통 하나로마트한테 잡아먹혔다. 도시에서는 이마트이니 롯데마트이니 홈플러스이니 하지만, 시골에서는 작은 면에까지 하나씩 있는 하나로마트가 마을사람 살림을 무너뜨린다. 나는 이 하나로마트를 쓰레기 버리는 곳으로 삼으며 즐겨찾는다.

- 장마당이 펼쳐진 곳에서는 자전거를 끌며 걷다. 늘 들르는 묵집에서 묵 하나 사고 옆집에서 찐빵을 사려는데 벌써 다 팔리고 없단다. 한쪽 다리를 저는 아주머니가 길바닥에 펼쳐 놓은 능금 한 봉지를 사다. 포장마차 떡볶이집에서 떡볶이랑 순대를 2500원어치씩 사다. 음성읍 떡볶이집보다 값이 좀 세고 부피 또한 좀 적다.

- 아이 엄마가 사 오라 했던 닭튀김을 사다. 더 살 거리는 없기에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따뜻한 먹을거리가 식기 앞서 집에 닿으려고 신나게 오르막을 달린다. 읍내로 올 때에는 빈 가방에 내리막이기에 땀방울이 안 돋으나,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오르막이요 꽉 찬 가방이니 땀방울이 송글송글 돋는다.

- 공사하는 자리를 지나 대원휴게소 못 미친 굽은길 내리막을 달린다. 관광버스 한 대가 갑자기 자전거 쪽으로 달라붙는다. 굽은길 내리막을 달릴 때에 자전거 쪽으로 버스를 밀어붙이니 자전거는 옴쭉달싹 못할 뿐 아니라 도랑에 처박혀야 한다. 서둘러 브레이크를 잡는다. 가까스로 부딪히지 않고, 도랑에 처박히지도 않다. 2차선 길이 아닌 4차선 길이며 오가는 차가 드물어 관광버스는 안쪽 길로 달리면 된다. 그런데 굳이 자전거 옆으로 바짝 붙다가는 밀어붙인다. 버스기사는 차를 몰며 심심하기에 시골에서 자전거 달리는 사람을 노리개로 삼는가. 자칫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판이나, 죽이든 다치게 하든 얼른 내빼면 누가 일을 저질렀는지 알 턱이 없으니 완전범죄가 된다고 여겨 이런 짓인가. 이런 못된 짓거리 때문에 누가 치었는지 모르며 숨을 거두는 마을 할배가 얼마나 많았을까. 이런 못난 기사들 때문에 어린 나이에 숨을 거두는 마을 아이가 얼마나 많았으랴. 불쌍하다. 안쓰럽다. 가엾다. 안타깝다.

- 마을길로 접어들다. 다시 논둑길을 달린다. 집을 나서며 나를 배웅하던 잠자리떼가 나를 맞이해 준다. 잠자리들은 날갯짓 바지런히 하며 내 둘레를 오락가락한다. 내가 아주 천천히 달리면 내 머리에든 몸에든 살포시 내려앉겠지. 집에서 빨래를 마당에 널 때면 잠자리들이 빨래에든 내 손에든 내 옷에든 가만히 내려앉곤 한다. 이 잠자리들은 곧 추위가 닥치면 모두 숨을 거두겠구나. 잠자리한테는 마지막 햇살을 쪼이는 나날이요, 바라보고 마주하며 만나는 모든 목숨과 풀과 하늘과 흙과 물이 하나같이 애틋하리라 생각한다. 내가 잠자리라 하여도 논둑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사람 옷이나 머리나 손이나 자전거 손잡이에 얌전히 내려앉고 싶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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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집 들어서는 섬돌마다 칸칸이 놓인 꽃그릇에는 봄부터 겨울까지 온갖 꽃이나 푸성귀가 자랍니다. 배추가 다 자라서 뽑은 다음에는 마지막으로 늦가을 국화 한 포기 심으며 한 해 갈무리를 하실 테지요. 

- 2010.10.7. 인천 중구 송월동1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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