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여행
신현림 지음 / 사월의눈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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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90



오늘 하루를 기쁘게 노래하는 사진

― 사과여행

 신현림 사진·글

 사월의눈 펴냄, 2014.7.23.



  오늘 하루는 기쁨입니다. 왜 기쁨인가 하면, 기쁨이기 때문에 기쁨입니다. 달리 까닭을 붙일 수 없습니다. 기쁨이니 기쁨이고, 기쁨인 하루이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쁩니다. 오늘 하루가 기쁨인 줄 아는 사람은 길을 걸으면서 노래를 스스로 부릅니다. 유행노래나 대중노래가 아니라, 저절로 태어나는 가락에 맞추어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고 빙그레 웃습니다. 오늘 하루가 기쁨인 사람은 노래를 부르듯이 도마질을 해서 아침밥을 짓고, 한식구와 함께 기쁘게 밥을 먹은 뒤, 기쁘게 설거지를 하고, 기쁘게 걸레를 빨아서 기쁘게 방바닥을 훔치고, 기쁘게 집일을 건사할 뿐 아니라,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적에도 온통 기쁨물결입니다. 기쁘게 하루를 누리는 사람이 손에 사진기를 쥐면, 기쁨이 묻어나는 사진을 기쁘게 찍습니다.


  오늘 하루는 슬픔입니다. 왜 슬픔인가 하면, 슬픔이기 때문에 슬픔입니다. 달리 토를 달 수 없습니다. 슬픔이니 슬픔이고, 슬픔인 하루이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슬픕니다. 슬픈 탓에 노래를 안 부릅니다. 슬프기에 옆에서 누가 노래를 불러도 시큰둥할 뿐 아니라 듣기 싫습니다. 슬픈 사람은 억지스레 겨우 아침밥을 짓고, 한식구가 모여앉는 자리조차 거북합니다. 말 한 마디 없이 꾸역꾸역 밥을 입에 집어넣다가 지겹고 짜증스러운 일을 하느라 고된 아침과 저녁이 됩니다. 집에서 살림을 하든 회사에 가든 밭에서 남새를 돌보든, 슬픔에 사로잡힌 사람은 힘들고 지치며 한숨이 나옵니다. 슬퍼서 힘이 나지 않으니 사진기를 손에 쥐기도 귀찮고, 사진을 찍어야 할 일이 있으면 이맛살을 찡그려 이도 저도 아닌 사진을 찍습니다.



.. 제가 태어나 사과나무 숲을 처음 봤던 날이 기억나요. 그만 흠뻑 반했던 날이요 … 사과는 태양과 바람과 비의 음료수예요. 갈증을 풀고 생의 활기를 주는 사과의 실체는 물이자 사랑입니다 ..





  남이 나를 기쁘게 하지 않습니다. 남이 나를 슬프게 하지 않습니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모두 내가 그리는 모습이요, 기쁨이든 슬픔이든 스스로 불러들이는 마음입니다. 가난하거나 힘들어도 웃고 노래하는 사람이 있고, 배부르거나 돈이 많아도 고단하거나 슬픈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하루가 사랑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언제나 사랑스럽습니다. 오늘 하루를 사랑으로 느끼니, 이녁은 사진기를 손에 쥐면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묻어나는 사진을 찍습니다. 오늘 하루가 꿈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어떤 사진을 찍을까요? 꿈결 같은 이야기가 흐르는 사진을 찍을 테지요. 오늘 하루가 노래라고 느끼거나 웃음이라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노래가 흐르는 사진을 찍거나 웃음이 감도는 사진을 찍어요. 오늘 하루가 괴롭다고 느끼면, 사진을 찍을 적에도 괴로운 이야기가 흐릅니다. 마음결이 어떠한가에 따라 사진이 달라집니다. 스스로 내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내 사진이 달라집니다.


  사진을 찍을 때뿐 아니라 사진을 읽을 때에도 이와 같습니다. 기쁜 마음일 때에는 기쁘게 사진을 찍고, 기쁘게 사진을 읽습니다. 슬픈 마음일 때에는 슬프게 사진을 찍으며, 슬프게 사진을 읽습니다. 홀가분한 마음일 때에는 홀가분하게 사진을 찍으며, 홀가분하게 사진을 읽습니다.


  사진이론을 많이 익힌 사람은 사진이론에 맞추어 사진을 찍거나 읽습니다. 사진역사를 많이 살핀 사람은 사진역사에 맞추어 사진을 찍거나 읽습니다. 이론이나 역사를 따로 안 살피거나 거의 모르는 사람은 이론이나 역사에 맞추어 사진을 찍거나 읽는 일이 드뭅니다.


  어떤 사람은 ㄴ이라는 회사에서 만든 사진기가 가장 좋다고 여겨 이 회사 사진기만 씁니다. 어떤 사람은 ㅋ이나 ㅁ이나 ㄹ이라는 회사에서 만든 사진기가 가장 좋다고 느껴 이 회사 사진기만 씁니다. 그런데, 아주 많은 사람들은 어느 사진 한 장이 어떤 사진기로 찍었는지 거의 모르거나 아예 안 살핍니다. 사진을 찍은 사람 이름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회사 사진기로 얻은 사진인가?’는 사진읽기에서 대수롭지 않고 ‘누가 찍은 사진인가?’도 사진읽기에서 대수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 ‘인생은 어디서나 가슴에 사랑을 담는 여행이며, 그 사랑은 사진이 증거한다’라는 제 아포리즘으로 두 작업의 공통점을 말하고 싶어요. 다른 점은 사과밭이 지구의 상징이었다면, 이번에는 사과를 들고 지구를 여행하며 찍은 거죠 ..



  사진이론을 잘 배워야 사진을 잘 읽지 않습니다. 내 마음결이 어떠한가를 똑똑히 느낄 수 있어야 사진을 제대로 읽습니다. 사진실기를 알뜰히 배워야 사진을 잘 찍지 않습니다. 내 마음결이 어떠한가를 또렷이 깨닫고 알아차리면서 받아들일 수 있어야 사진을 제대로 찍습니다.


  사진 한 장에는 기쁨이 드러나든 슬픔이 드러나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진에 기쁜 이야기를 담을 수 있고, 슬픈 이야기나 아픈 이야기나 놀라운 이야기나 멋진 이야기를 담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이든 넉넉하게 담을 만합니다. 어떤 이야기이든 우리 삶을 밝히는 숨결이기에 반갑게 읽습니다.


  기쁜 이야기를 사진에 담기에 더 훌륭하지 않습니다. 슬픈 이야기를 사진에 담기에 덜 훌륭하지 않습니다. 다큐사진은 아프거나 슬픈 이야기만 담아야 하지 않습니다. 패션사진은 이쁘장하거나 놀라워 보이는 이야기만 담아야 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진을 찍든, 사진에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이야기를 담기에 사진찍기요, 이야기를 느껴서 나누기에 사진읽기입니다.



.. 길과 길에는 수많은 전설과 신화, 시와 사람의 이야기가 스며 있어요. 사과를 통해 그곳과 저는 깊이 이어지고 만납니다 … 그들의 사랑을 잊지 않고 싶어 사진 찍었어요 … 사과를 든 왼송르 쭉 뻗어 오른손에 쥔 사진기로 찍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 때가 있어요. 물론 춤출 때처럼 즐겁기도 하고요..




  신현림 님은 능금 한 알과 함께 나들이를 합니다. ‘사과’나 ‘부사’ 같은 이름도 있으나, 한국말은 ‘능금’이고, 먼 옛날 한국말은 ‘멋’입니다. 일본사람은 ‘링고’라는 말을 쓰며, 서양사람은 ‘애플’이라는 말을 씁니다. 어떤 말을 쓰든 다 좋습니다. 그저 나라가 다르고 겨레가 다르며 자리와 때가 다를 뿐입니다. 사과이든 능금이든 애플이든 링고이든 멋이든 뭐이든 다 똑같습니다. 《사과여행》에서 신현림 님은 이녁 마음을 나누는 숨결을 곁에 두면서 이야기를 짓습니다. 어디에서나 함께 있고, 어디에서나 함께 노래하며, 어디에서나 함께 꿈꾸는 숨결이 무엇인지 헤아리면서 이야기를 짓습니다.



.. 예술은 속도전에 실려 가는 현재를 브레이크 걸어 우리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 심각하게 질문해야 하고, 성찰해야 합니다. 그리고 미래를 위해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되어요 … 영원을 향해 갑니다 ..




  바람이 불어 능금나무 가지를 살짝 건드립니다. 동이 트고 해가 솟으면서 능금나무를 햇볕이 따사롭게 어루만집니다. 해가 기울고 달이 뜨고 별이 돋으면서 포근한 기운이 능금나무 잎사귀와 꽃망울을 살살 간질입니다. 종달새 두 마리가 살짝 내려앉아 노래합니다. 종달새 두 마리는 푸드득 날아가고, 이내 딱새와 박새와 참새가 사이좋게 날면서 능금나무 둘레를 맴돕니다. 직박구리가 날아와서 능금나무 잎사귀를 갉아먹는 애벌레를 콕 찍어 낚아챕니다. 뭇 새들 부리에서 살아남은 애벌레는 번데기가 되고 천천히 허물을 벗어 고운 날개를 팔랑이는 나비로 거듭납니다.


  능금 한 알은 사람도 먹고 벌레도 먹으며 새도 먹습니다. 때로는 다람쥐도 먹고 숲짐승도 먹으며, 흙바닥에 툭 떨어진 능금알을 지렁이나 풀벌레가 먹기도 합니다. 개미도 먹고 달팽이도 먹습니다.


  능금을 먹은 여러 목숨은 능금똥을 눕니다. 능금 냄새가 나는 똥을 누어 흙한테 돌려줍니다. 흙은 능금 냄새가 나는 똥을 받아들여서 한결 기름진 까무잡잡한 고운 흙으로 거듭나고, 이 흙은 다시 능금나무를 살립니다. 능금나무는 능금똥으로 더욱 기름진 흙한테서 기운을 받아들여 줄기를 올리고 새롭게 꽃을 피웁니다.


  삶이 흐르듯이 사람이 자라고 나무가 자랍니다. 잎이 돋고 꽃이 피며 열매가 맺습니다. 열매에는 씨앗이 깃들어 새로운 풀이나 나무로 깨어나고 싶습니다. 사람들 가슴에도 씨앗이 있어, 이 씨앗을 마음밭에 심으면 사랑이 태어나거나 꿈이 태어납니다. 사람이 마음밭에 심어서 태어나는 꿈과 사랑은 ‘시를 쓰고 싶은 꿈’일 수 있고, ‘사진으로 이야기를 나누려는 사랑’일 수 있습니다. 어떤 꿈이든 좋고, 어떤 사랑이든 아름답습니다.


  누군가는 시계를 보면서 때를 읽습니다. 누군가는 해를 보면서 때를 읽습니다. 누군가는 밥내음을 맡으면서 때를 읽습니다. 누군가는 아무것도 안 보고 아무 때도 안 헤아립니다.


  사진책 《사과여행》을 가만히 넘기면서 신현림 님이 손수 지어서 누리는 삶을 떠올립니다. 어떤 빛일까요. 어떤 그림일까요. 어떤 노래일까요. 어떤 웃음일까요. 아마 어느 날에는 기쁜 노래가 가득하고, 어느 날에는 슬프디슬픈 생채기가 불거질 테며, 어느 날에는 마냥 허전하면서 시무룩할 테지요. 홀가분하다가 들뜨거나 설레는 날이 있고, 아이와 손을 맞잡고 신나게 춤을 추는 날이 있을 테지요.


  사진기를 손에 쥐어 삶을 오롯이 사진 한 장으로 그릴 수 있는 사람은 늘 즐겁습니다. 사진기를 손에 쥐어 삶을 알뜰살뜰 사진 한 장으로 여밀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재미있습니다. 긴긴 겨울이 끝나면 얼어붙은 땅뙈기가 녹으면서 딸기풀이 자라고, 하얗게 딸기꽃이 피는 사월을 거쳐, 빨갛게 소담스러운 멧딸기 익는 오월이 됩니다. 사진책 《사과여행》에 흐르는 푸르고 하야면서 바알간 열매가 애틋합니다. 4348.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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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5-01-14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저도 보고 싶네요.
˝사과는 순례중이다˝라는 말은 곧 신현림 본인이 순례중이라는 뜻으로 읽혀요, 사과를 통해서요.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숲노래 2015-01-14 09:43   좋아요 0 | URL
대구에 있는 작은 출판사에서
소량인쇄로 살짝 태어난
예쁜 사진책인데
중앙매체에서는 소개를 하지 않아서
아마 이 책이 나온 줄 모르는 사람도 많으리라 느낍니다.

얼마 앞서 신현림 님은 `그림책`도 손수 내놓으셨는데
`순례하는 삶`을 누리는 이야기가
잔잔하게 흘러요

수이 2015-01-14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현림씨 사진 좋아해요. 저도 살짝 장바구니로 퐁당_^^

숲노래 2015-01-14 09:44   좋아요 0 | URL
작고 수수한 책에 깃든
작고 수수한 사진과 이야기로
마음에 따사로운 씨앗 한 톨 심으실 수 있기를 빌어요

[그장소] 2015-01-14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인은 이름에서.숲..이..느껴져서..좋아요.

숲노래 2015-01-15 03:48   좋아요 0 | URL
신현림 님은 숲을 사랑하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물찾기는 힘들어 웅진 세계그림책 78
다루이시 마코 그림, 카도노 에이코 글, 김난주 옮김 / 웅진주니어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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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71



어버이와 함께 지내고 싶은 아이

― 보물찾기는 힘들어

 카도노 에이코 글

 다루이시 마코 그림

 김난주 옮김

 웅진주니어 펴냄, 2005.3.14



  그림책 《보물찾기는 힘들어》(웅진주니어,2005)를 읽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어머니는 할머니 병문안을 간다고 합니다. 이때에 아이는 혼자 집을 보라고 합니다. 어머니 혼자 병원에 다녀오실 듯합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할머니한테 가면 할머니가 한결 기뻐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림책 줄거리를 보면 아이는 할머니한테 함께 가겠노라 말하지 않고, 어머니도 아이한테 할머니한테 함께 가자고 묻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할머니를 돌보러 가는 길이라서 어머니가 혼자 가시려는 듯싶습니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함께 간다면, 늙거나 힘들거나 아픈 할머니를 어머니가 어떻게 돌보는지 곁에서 지켜볼 수 있습니다. 이제 고작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심부름을 할 수 있습니다. 심부름을 못하더라도 말동무가 될 수 있고,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며, 할머니로서도 아이가 짓는 웃음을 볼 수 있어서 즐겁습니다.



.. “준호야, 할머니 병문안 다녀올 테니까 집 좀 보고 있어, 응.” “또야, 나 싫어.” 준호는 입이 툭 튀어나왔어요. “참, 보물찾기하면서 기다리고 있으면 되겠다. 엄마가 아주 좋은 거 숨겨 놓을게.” ..  (2쪽)




  아이는 대단한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아이는 늘 어버이와 함께 누리는 삶을 바랍니다. 함께 밥을 먹기를 바랍니다. 함께 잠들기를 바랍니다. 함께 놀기를 바랍니다. 함께 배우고, 함께 책을 읽으며, 함께 그림을 그리기를 바랍니다.


  어버이가 아이하고 함께 안 하고 자꾸 학교에만 맡겨 버릇하면, 아이는 천천히 집하고 멀어지지요. 어버이가 아이와 함께 삶을 누리지 않으면,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아무것도 물려받지 못해요.


  아이는 학교에서 지식을 배울 목숨이 아닙니다. 아이는 삶을 아름답게 밝히는 슬기를 배울 목숨입니다. 아이는 더 높은 학교를 다니다가, 돈을 더 잘 버는 회사에 들어갈 사람이 아닙니다. 아이는 사랑을 물려받아서 꿈을 키울 사람입니다.



.. 준호가 뒤돌아보자 집은 텅 비어 있고, 빗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어요. 준호는 계단을 올라가 살며시 2층의 방문을 열었어요. 방을 휘 돌아보니 이불장이 조금 열려 있고, 이불 사이에 가느다란 꼬리가 늘어져 있었어요 ..  (6쪽)





  카도노 에이코 님이 글을 쓰고, 다루이시 마코 님이 그림을 넣은 《보물찾기는 힘들어》를 가만히 읽습니다. 어머니는 아이가 혼자 집을 보도록 하되, 집에서 보물찾기를 하도록 이끕니다. 아마 다른 날에는 아이와 함께 마실을 갔을 테지요. 아이는 어머니 없이 혼자 집을 보면서 씩씩하게 놀기도 할 테지요. 둘은 서로 믿으리라 생각합니다. 둘은 서로 아끼고 사랑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집안에서 보물찾기를 하고, 혼자 씩씩하게 집을 본 아이한테 멋진 선물을 마련해서 돌아오는 어머니입니다.


  아무튼, 아이한테는 장난감도 멋진 선물이지만, 비가 오는 날 함께 손을 잡고 우산을 쓰면서 다니는 마실도 멋진 선물입니다. 비가 오는 날에 빗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할머니한테 찾아가는 일도 멋진 선물입니다. 비가 오는 날에 어머니가 예전에 겪은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어도 멋진 선물이 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머니와 아이가 함께 누리는 삶은 언제나 멋진 선물입니다.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와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아이와 함께 누리는 삶이란 늘 멋진 선물이지요.



.. “쳇, 이제 보물찾기 안 할 거야.” 준호는 골이 나서 방바닥에 벌렁 누웠어요. 그런데 서랍장 위, 모자 상자에 꼬리가 보였어요 ..  (26쪽)



  아이 눈빛을 읽습니다. 함께 놀고 싶어 하는 아이 눈빛을 읽습니다. 아이 눈망울을 읽습니다. 함께 노래하고 싶어 하는 아이 눈망울을 읽습니다. 아이 눈동자를 읽습니다. 함께 춤추면서 뛰놀고 싶어 하는 아이 눈동자를 읽습니다.


  노는 아이가 예쁘고, 노는 아이와 함께 놀 줄 아는 어른이 아름답습니다. 노는 아이가 사랑스럽고, 노는 아이와 함께 놀 줄 아는 어른이 믿음직합니다. 보물찾기도 재미있고, 숨바꼭질도 즐겁습니다. 윷놀이도 재미있고, 소꿉놀이도 즐겁습니다. 종이 한 장을 접어도 재미있고, 그림을 살살 그려도 즐겁습니다. 무엇이든 함께 하면 재미있으면서 즐겁습니다. 풀을 뜯어도, 설거지를 해도 언제나 재미있으면서 즐거운 하루입니다. 재봉틀이 있고 과자를 손수 구워서 주는 삶이 가만히 드러나는 그림책이 따사롭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어머니가 손수 깁고 짓는 옷과 가방을 받아서 쓰리라 생각합니다. 4348.1.1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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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숟가락 7
오자와 마리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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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49



언제나 이곳에서 함께

― 은빛 숟가락 7

 오자와 마리 글·그림

 노미영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 2014.12.8.



  해가 바뀌어 여덟 살로 접어든 큰아이가 문득 묻습니다. “아버지, 벼리 이제 여덟 살이야?” “응, 여덟 살이야.” 지난해 이맘때를 떠올립니다. 그러께 이맘때도 떠올립니다. 다섯 살에서 여섯 살로 접어들 무렵에는, ‘여섯 살’이 아니고 ‘다섯 살’이라고 박박 우겼습니다. 여섯 살에서 일곱 살로 접어들 무렵에는 박박 우기지는 않았으나, 살짝 못마땅하다는 느낌이면서도 이내 새로운 숫자를 받아들였습니다.


  여덟 살로 접어든 큰아이한테 숫자읽기나 한글읽기를 따로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큰아이가 궁금해 하면 비로소 살짝 알려줍니다. 요즈막에 시곗바늘에 퍽 눈길을 두기에 굵고 짧은 바늘과 가늘고 긴 바늘이 어떻게 다른가를 알려주고, 두 바늘이 지나가는 숫자판은 똑같지만, 똑같은 숫자판을 다르게 읽는다고 알려줍니다. 다만, 여느 어른들이 으레 말하듯이 “여섯 시 육 분”처럼 알려주지는 않고, “여섯하고 여섯이야.” 하고만 알려줍니다.


  어느덧 큰아이와 여덟 해째 맞이하며 누리는 나날을 돌아보니, 어버이는 참말 아이한테 꼬치꼬치 이것이다 저것이다 하고 가르칠 일이 없습니다. 어버이 스스로 내 삶을 슬기롭게 가꾸면 아이도 아이 나름대로 제 삶을 슬기롭게 가꿉니다. 어버이 스스로 내 삶을 엉성하게 팽개치면 아이도 아이 나름대로 아무렇게나 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어버이가 제 삶을 팽개치더라도, 아이는 어버이와 달라 아이 나름대로 기운을 내어 새로우면서 즐겁게 삶을 지으려 하기도 합니다.





- “오늘은 ‘형아 유치원’에서 뭐 해?” “그림책 가져왔어. ‘크리스마스 전날 밤’.” (13쪽)

- “나, 나는, 나 있잖아, 정말은 산타 할아버지가 어쩌면 있을지도 모른다고 가끔 생각했어!” “그럼, 오늘은 산타 할아버지께 편지를 쓰자.” (15∼16쪽)

- ‘세상에서는 크리스마스이브지만 나한테는 생일이기도 해서, 차마 내가 먼저 만나자고 할 수는 없어. 다만, 지금 뭐 하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것만이라도 좋으니까 알려줬으면 좋겠어.’ (18쪽)



  일거리가 많은 날에는 아이만 먼저 재운 뒤, 늦도록 일손을 붙잡습니다. 아이들은 저희끼리 먼저 잠들고 싶지 않아, 자꾸 아버지를 부릅니다. 어버이로서 아이를 바라보자니, 아이끼리 재우고 싶지 않기도 합니다. 일은 일이되 나중에 하자고 생각하면서, 먼저 오늘 이곳에서는 아이와 잠자리를 누리자고 생각합니다. 열이면 열 언제나 아이 쪽으로 움직입니다.


  두 아이 사이에 누워서 이불깃을 여미고 조잘조잘 떠들다가 노래를 부릅니다. 잠자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생각에 잠깁니다. 이렇게 아이들 사이에 안겨 노래를 부르는 삶이란 대단히 기쁘며 놀랍구나.


  테이프나 시디나 인터넷으로 노래를 틀면 한 시간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이쁘장하거나 듣기 좋다는 어린이노래라 하더라도 기곗소리를 한 시간 넘게 듣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아마 웬만한 기곗소리 노래물결은 사람 귀에 썩 내키지 않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내가 입으로 소리를 내어 아이와 함께 노래를 부르면, 한 시간이 아닌 서너 시간 노래를 불러도 따분하거나 힘들지 않습니다. 두 아이를 데리고 너덧 시간이나 대여섯 시간 기차나 버스를 타야 할 적에, 이 아이들이 기차나 버스에서 따분해 하거나 멀미가 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러니까 그저 즐겁게 먼먼 마실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참말 그치지 않고 노래를 부르곤 합니다. 작은아이는 자동차를 좋아해서 자동차 바퀴나 기차 바퀴 구르는 소리를 딱히 거슬려 하지 않지만, 큰아이는 이런 소리를 꽤 거슬려 합니다. “버스 소리 시끄러워”라든지 “기차 소리 시끄러워” 하고 말하는데, 큰아이가 이런 말을 하면 이런 소리를 한귀로 흘립니다. 못 들은 척해요. 이러면서 나즈막하게 노래를 부릅니다. 이런 소리가 나건 저런 소리가 시끄럽건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시끄러워 시끄러워 시끄러워 하고 자꾸 읊으면 우리한테는 ‘시끄러워’만 찾아오더군요. 조잘조잘 떠들거나 놀이를 하거나 노래를 부르면 우리한테는 이야기와 놀이와 노래가 찾아와요.





- “그나저나 두 사람은 언제나 맛있어 보이는 도시락을 먹더군요.” “이거요? 형이 만들어 주는 거예요.” (25쪽)

- “배고프지? 밥 먹을까? 오므라이스야.” “오므라이스?” “응. 리츠가 너만 할 때에 무척 좋아하던 음식이란다. 넌?” “좋아해요!” (121쪽)

- “하지만 말이다. 어른이 되는 건 기쁘지만, 곤란할 때에 아무것도 의논하지 않는 건 쓸쓸해.” “떳떳하지 못해서 얘기하지 못했어요.” “바보구나. 엄마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네 편이야.” (125∼126쪽)



  오자와 마리 님이 빚은 만화책 《은빛 숟가락》(삼양출판사,2014) 일곱째 권을 읽습니다. 일본에서는 열째 권이 진작에 나왔으니, 번역이 퍽 더딥니다. 일본말로 된 책을 ‘일본 아마존’에서 살까 하다가 그만두었는데, 일본에서 나온 여덟째 권 겉그림이나 아홉째 권 겉그림을 보면,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흐를는지 헤아릴 만합니다.


  그러니까, 만화책 《은빛 숟가락》에 나올 이야기는 앞이 모두 보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서로 어떻게 얽혀서 어떤 사랑을 길어올리는가 하는 대목이 또렷합니다.


  그러면, 앞으로 나올 이야기가 알 만하니, 이 만화책은 안 보아도 될 만할까요? 흔한 말로 ‘뻔한 줄거리’라 할 만하니, 이 만화책은 대수롭지 않을까요?


  《은빛 숟가락》을 천천히 두 차례 읽고 나서 가만히 생각합니다. 우리가 함께 짓는 사랑은 어느 하루도 뻔하지 않습니다. 어버이가 아이를 아끼는 마음이나, 아이가 어버이를 섬기는 마음은 뻔하지 않습니다. 어버이가 아이한테 밥을 지어서 먹이는 마음이나, 아이가 어버이와 함께 밥을 즐기고 싶은 마음은 뻔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뻔한 이야기는 있습니다. 이를테면, 정치와 경제와 스포츠와 문학과 예술은 뻔합니다. 교육과 학문과 철학과 종교는 뻔합니다. 전쟁무기를 건사하는 군부대 이야기라든지, 대통령이나 정치꾼이나 시장이나 군수 같은 사람이 기자를 불러모아 읊는 이야기는 모두 뻔합니다. 신문에 나오고 방송에 나오는 이야기는 참말 뻔합니다.





- ‘기쁜 듯이 돕는 루카와 내 어린 시절이 겹쳐졌다.’ (127쪽)

- ‘형제끼리 둘러앉은 식탁은 활기차고 북적였으며 즐거웠다. 돌아갈 때는 이미, 집을 뛰쳐나왔을 때의 기분 따위는 잊어버렸다.’ (155쪽)

- “나, 아빠랑 엄마가 매일 밤 심각하게 얘기하시기에 신경 쓰여서 몰래 엿들었더니 아빠가 진 빚 갚는 얘기였어. 진심으로 안 듣는 게 좋았다고 생각했지.” (156쪽)



  아이들 사이에 누워서 노래를 부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잠듭니다. 이제껏 여덟 해를 이렇게 삽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리라 생각합니다. 자다가 문득 잠에서 깰 때에는 아이들이 이불을 걷어찬 때입니다. 두 아이가 훨씬 어릴 적에는 기저귀를 갈거나 밤오줌을 누이려고 삼십 분마다 잠에서 깼습니다. 두 아이 모두 밤오줌을 잘 가려 주니 밤마다 한시름을 덜되, 요새는 이불깃 여미느라 부산합니다.


  아이들은 자다가 잠꼬대를 하더라도 바로 옆에 어버이가 있는 줄 알기에 다시 깊이 잠듭니다. 꿈에서 무슨 놀이를 하다가 놀라더라도 바로 옆에 어버이가 가슴을 토닥이면 다시 새근새근 꿈나라로 돌아갑니다.


  어제 낮에 큰아이를 씻길 적에 큰아이가 아버지한테 묻습니다. “아버지도 어릴 적에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씻겨 주었어? 몇 살 적에 씻겨 주었어?” 머지않아 큰아이는 혼자 씻을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왜냐하면, 큰아이는 이제 혼자 씻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버이 손길을 받지 않더라도 혼자 씻고 싶으니 늘 이러한 생각을 하고, 이러한 생각대로 몸이 무럭무럭 튼튼하게 자랍니다. 큰아이가 혼자 씻을 수 있을 때라면, 아마 큰아이가 도마질도 하고 다른 부엌일도 야무지게 거들 수 있을 때가 되리라 느낍니다. 큰아이가 혼자 두발자전거를 탈 무렵 혼자 씻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큰아이가 혼자 시골버스를 타고 읍내를 다녀올 수 있다면, 아마 그즈음 혼자 씻을는지 모릅니다.





- “무슨 사정인데요?” “그만둬.” “뭐?” “오빠를 낳아 준 사람을 나쁘게 말하지 마.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따위는 알고 싶지 않아. 오빠 부모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어. 왜냐면 나한테 오빠는 앞으로도 쭉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변함없이 오빠인걸.” (177∼178쪽)

-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은 식탁 풍경이었다. 형이 핏줄이 이어지든 이어지지 않았든, 그런 일이 있든 없든, 밥은 맛있고 딸기는 새콤달콤하고, 역시 가족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83쪽)



  언제나 이곳에서 함께 사는 곁님입니다. 두 어버이는 서로 곁님이고, 아이와 어버이도 서로 곁님입니다. 우리 집을 둘러싼 나무도 곁님이고, 작은 들풀과 들꽃도 곁님입니다. 우리 집 처마에서 겨울나기를 하는 참새와 딱새도 곁님이요, 구름과 냇물과 바람도 곁님입니다.


  밤이 깊으면서 별빛은 더욱 밝고, 밤이 깊으니 아이들 숨소리는 한결 고릅니다. 하루는 기쁘게 저문 뒤, 다시금 기쁘게 찾아옵니다. 날이 밝으면 온갖 작은 새들이 우리 집 마당에서 재잘거리듯이 큰아이가 먼저 깨고 작은아이가 곧바로 깰 테지요. 두 아이는 ‘오늘은 무엇을 하며 놀까?’ 하는 생각으로 하루를 열 테지요. 언제나 이곳에서 함께. 4347.1.1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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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여우 3
오치아이 사요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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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44



이녁은 무엇을 섬기는가요

― 은여우 3

 오치아이 사요리 글·그림

 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4.8.30.



  바람 부는 저녁에 달빛을 받으며 뒤꼍에 서는데, 어디에선가 날아와 나뭇가지에 걸린 비닐이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냅니다. 풀잎이 바람 따라 춤추는 소리가 아니라, 새가 겨울밤에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비닐이 나뭇가지에 걸려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쓸쓸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시골에서는 비닐노래가 골골샅샅을 울립니다. 밭자락마다 비닐을 깔면서 남새를 거두려 하기 때문입니다. 배추를 얻으려고, 양파를 얻으려고, 파를 얻으려고, 고추를 얻으려고, 토마토를 얻으려고, 이것을 얻고 저것을 얻으려고 온통 비닐입니다.


  시골지기 가운데 비닐을 걱정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퍽 드뭅니다. 땅에 파묻어도 좀처럼 안 썩는 비닐이 나뭇가지에 걸려 그악스러운 모습이 되어도 걱정하지 않고, 비닐쓰레기를 태우면 흙도 죽는데 이를 걱정하지 않으며, 해마다 비닐값으로 제법 많다 싶은 돈을 써야 하지만 이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자가용을 몰면서 기름을 걱정하지 않는 도시사람처럼, 온갖 곳에 비닐을 씌우면서 비닐을 걱정하지 않는 시골사람입니다.





- “이제 알겠지? 지금까지 벌어진 소동은 저 녀석들 소행이야. 어쩔 수 없지 이곳에는 보이는 인간이 없으니까.” (42쪽)

- “장난이 원인이 되어 다툼이 벌어지고, 자신을 귀신으로 오인해 무서워하고, 어쨌거나 신의 사자인데. 하루도 본인이 그런 입장이 되면 싫겠자?” (58쪽)



  땅을 섬기는 사람은 땅을 망가뜨리지 않습니다. 땅을 섬기기에 땅을 가꿉니다. 냇물을 섬기는 사람은 냇물을 망가뜨리지 않습니다. 냇물을 섬기기에 냇물을 가꿉니다. 숲을 섬기는 사람은 숲을 망가뜨리지 않습니다. 숲을 섬기기에 숲을 가꿉니다.


  오늘날에는 땅이 사라집니다. 사람은 누구나 흙으로 된 땅을 밟고 서야 사람답지만, 흙땅에 시멘트와 아스팔트와 대리석을 덮고 말아, 그만 땅이 사라지고 땅을 잊거나 잃습니다. 땅이 사라지니, 냇물도 사라져서, 대통령 한 사람과 공무원 여러 사람에다가 개발업자 이렁저렁 뭉쳐서 온 나라 물줄기를 망가뜨렸다고 할 텐데, 이들 말고도 이 나라 아주 많은 사람들이 땅을 안 밟고 산 탓에 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터라, 끔찍한 일이 벌어집니다.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수돗물이 아닌 냇물이나 우물물을 마시면서 산다면, 나라에서 냇물에 시멘트를 들이붓는 짓을 일삼을 적에 어떻게 할까요? 모두 들고 일어나서 막아야지요. 그렇지만, 막상 4대강사업을 막으려고 들고 일어난 사람은 얼마 안 됩니다. 먹고사느라 바빠 회사나 공장에 나가야 합니다. 냇물을 마시지 않기에, 냇물을 망가뜨린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얼마나 망가뜨리는 줄 깨닫지 못합니다.


  손수 땅을 일구어 밥을 얻지 않기 때문에, 밀양이든 청도이든 이 나라 골골샅샅 어디이든 송전탑을 때려박거나 핵발전소를 짓는 일이 잇달아도, 이러한 막짓을 막으려고 함께 일어서서 어깨동무를 하지 못해요. 땅이 무엇인지 모르니, 그저 남 일이 될 뿐입니다.





- “후우, 후쿠. 원숭이가 오지 않아도 그건 안타까워할 일이 아니란다. 사람으로 바뀌었을 뿐이야. 신을 대신해 이 땅에서 사는 자를 보호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 사람이 늘어나면 여러 가지 일들이 생기겠지만, 너희는 그저 웃고 있으면 돼. 즐거워야 승리의 신이 내려오는 법. 우리는 이기는 신원이니까. 너희가 웃지 않으면 아무도 이기게 해 줄 수가 없단다. 그러니까, 너희는 늘 즐겁게 지내거라! 게다가 절과 묘지도 함께 있고, 너희는 오래오래 살 테니까. 인간의 몫, 원숭이의 몫, 그리고 이 할아비의 몫까지, 이곳에서 쭉 앞으로의 세상을 지켜봐 다오.” (64∼65쪽)



  오치아이 사요리 님이 빚은 만화책 《은여우》(대원씨아이,2014) 셋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듯이 일본에서도 ‘다른 님’이나 ‘다른 숨결’을 섬기거나 아끼거나 생각하는 사람이 아주 크게 줄었습니다. 땅을 섬기거나 냇물을 섬기거나 숲을 섬기는 사람이 일본이든 한국이든 매우 적습니다. 아이들은 학교교육에 매달리면서 입시지옥으로 휩쓸리고, 어른들은 날마다 돈을 버느라 허덕입니다. 삶을 가꾸는 길에서 자꾸 멀어지고, 삶을 사랑하는 길하고는 자꾸 등돌립니다. 하늘에 하늘님이 있고 땅에 땅님이 있으며 숲에 숲님이 있는 줄 헤아리지 않아요. 내 마음속에 하느님이 있는 줄 알아차리지 않고, 내 이웃과 동무도 나와 똑같이 아름다운 숨결인 줄 알아보지 못합니다.




- “저는, 가장 소중한 것을 위해, 검도를 이용했어요. 그러니까, 이제 충분해요.” “딱히 상관없잖아! 검도가 두 번째라면, 첫 번째를 소중히 하고, 두 번째도 소중히 하면, 좋아하는 일은 전부 하면 되잖아! 까짓 거 욕심 한번 부려 봐!” (99∼100쪽)

- “너도 참 대단하다. 해마다 똑같으니까 그냥 컴퓨터로 출력하면 될 텐데.” “네? 그래도 돼요?” “으음. 확실히. 그러면 편하긴 하겠지만, 신주의 축사는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신께 소원을 말씀드리는 일이니까, 역시 정성껏 손으로 써야 신께 제대로 전달이 되겠지.” (142∼143쪽)



  꽃을 섬기는 사람은 꽃내음을 맡으면서 꽃넋이 됩니다. 풀을 섬기는 사람은 풀내음을 맡으면서 풀넋이 됩니다. 나무를 섬기는 사람은 나무내음을 맡으면서 나무넋이 됩니다.


  돈을 섬길 적에는 돈내음을 맡고, 책을 섬길 적에는 책내음을 맡습니다. 땅을 섬기기에 땅내음을 맡으며, 전쟁무기를 섬기기에 총내음이나 포탄내음을 맡습니다.


  어떤 내음을 맡으면서 어떤 넋이 될는지, 저마다 스스로 고릅니다. 어떤 내음을 맡으면서 어떤 길을 걸을는지, 저마다 스스로 찾습니다. 나를 아끼면서 이웃을 함께 아낄 수 있고, 나를 내팽개치면서 이웃도 괴롭힐 수 있습니다.




- “신이 있든 없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단지 너희가 사는 세계에서는 그렇게 믿을 뿐이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게 중요해. 믿는다면 있는 거고, 그럼 그걸로 충분하잖아. 다만 우리가 보이는 만큼, 너희는 다른 사람들보다 믿기가 더 수월할지도 모르지.” “그렇구나! 하지만 정말 신기해. 옛날에 하던 마츠리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그건 결국 모두가 이어왔기 때문이잖아.” (181쪽)



  예부터 바람이 불면 꽃잎이 날렸습니다. 예부터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가 춤을 추었습니다. 예부터 바람이 불면 새는 바람을 타고 높이 날았습니다. 예부터 바람이 불면 배는 돛을 펼쳐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예부터 바람이 불면 아이들은 연을 들고 들로 나와서 연을 날렸습니다.


  오늘 우리는 바람이 부는 날에 무엇을 할까요. 오늘 우리는 바람을 맞으면서 무엇을 생각할까요. 오늘 우리는 이 바람을 아이와 함께 어떻게 맞이하는가요. 대한 추위를 이레 즈음 앞두고 바람결이 달라집니다. 아직 봄은 더 있어야 찾아올 테지만, 한겨울 바람이 살포시 달라졌습니다. 4348.1.1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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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나눠 준 선물 하이타니 겐지로의 시골 이야기 3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김종도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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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80



계급사회를 부채질하는 학교교육

― 하늘이 나눠 준 선물

 하이타니 겐지로 글

 김종도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양철북 펴냄, 2005.5.9.



  배우고 가르치는 곳을 가리켜 ‘학교’라고 합니다. 그러니, 학교에서는 서로 배우고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학교는 배우고 가르치는 구실을 거의 안 합니다. 아이들 앞에 교과서를 놓은 뒤, 이 교과서에 나오는 지식을 시험문제로 바꾸어서 점수따기를 시킵니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삶을 배우거나 사랑을 배우거나 꿈을 배우지 않습니다. 오직 교과서에 나오는 지식을 시험문제로 바꾸어서 외웁니다.


  학교 바깥을 보면 학원이 아주 많습니다. 학교에서 교과서로 가르치는 지식을 시험문제로 더 잘 맞힐 수 있도록 이끄는 데가 학원입니다. 이러다 보니, 학교를 다니는 아이는 너나 할 것 없이 고달픕니다. 시험점수가 안 나오는 아이도 고달프고, 시험점수가 잘 나오는 아이도 고단합니다. 한쪽에서는 점수가 더 올라가지 못해서 고달프고, 한쪽에서는 점수가 더 떨어지지 않도록 하려고 고단합니다.


  이 같은 학교 얼거리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이러한 얼거리를 잘 아는 사람도 참 많은데, 막상 이 얼거리는 달라지거나 바뀌거나 바로잡히지 않습니다. 그저 이 얼거리가 그대로 흐릅니다. 시험점수에 따라 학교를 등급으로 매기고, 이 등급에 따라 사람한테 계급을 매깁니다.



.. “다카유키, 벼포기를 그렇게 쥐면 안 돼. 잘못하면 낫에 손가락을 벨 수도 있어.” 다케조 아줌마가 다급하게 말하며 낫질하는 요령을 가르쳐 주었다. 벼포기를 쥘 때 나는 엄지손가락이 밑을 보게 쥐었는데, 아줌마는 엄지손가락이 위를 보게 쥐라고 했다 … 나는 벼를 베면서 생각했다. 사람들은 밥을 먹을 때 농사를 짓느라 고생한 농부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아. 나는 지금껏 돈은 참 편리한 것라고 생각했어. 뭐든지 살 수 있으니까 ..  (14, 20쪽)



  학교교육은 계급사회를 부채질합니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삶과 사랑과 꿈을 안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삶과 사랑과 꿈을 가르친다면, 계급사회를 부채질할 수 없습니다. 삶과 사랑과 꿈은 계급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삶이요 사랑이요 꿈입니다. 삶을 가르치는데, 누가 높고 낮겠습니까. 사랑을 가르치니, 서로 어깨동무를 할 테지요. 꿈을 가르치면, 다 함께 즐겁게 놀고 일하는 마을로 나아갑니다.


  오직 교과서를 앞에 놓고 시험점수로 아이들을 등급으로 매기는 학교인 탓에, 이러한 학교를 다니는 아이는 어릴 적부터 신분과 계급과 등급 따위에 길듭니다. 낮은 등급이면 낮은 등급대로 아프고, 높은 등급이어도 높은 등급대로 아파요. 서로 돕거나 아끼는 길보다는, 내 한몸 버티는 일로도 벅찹니다.



.. 아빠는 도시에는 유혹이 많다고 했다. 후타한테 돈을 주면서 사흘만 이곳에 있으라고 하면, 후타는 너무 많이 먹어서 씨름 선수처럼 뚱뚱해져 버릴 거다 … 마을 사람들은 곧잘 우리더러 이런 쓸쓸한 곳에는 왜 왔냐고 하지만, 정작 쓸쓸해하는 마을 사람은 한 명도 못 봤다 … “늘 하는 말이지만, 먹거리는 모두 생명이야. 그런데 도시 사람들은 인간의 노동과 지혜까지도 죄다 돈으로 사 버린단다. 그러고는 값비싼 음식을 아무렇지 않게 남기지.” ..  (35, 52, 94쪽)



  하이타니 겐지로 님이 쓴 《하늘이 나눠 준 선물》(양철북,2005)을 읽습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어린이문학입니다.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입니다. 등급을 매기는 삶이 아니라, 사랑을 나누는 삶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얼크러지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래, 도시를 떠나자!’ 하고 씩씩하게 외칠 어른이나 아이는 몇이나 될까 궁금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렇구나, 도시에서 살아도 삶을 제대로 배워서 알아야겠구나!’ 하고 기쁘게 무릎을 칠 어른이나 아이는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러게 말이야, 날마다 먹는 밥이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나한테 오는지 여태 생각한 적이 없네!’ 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제부터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겠노라 다짐하는 어른이나 아이는 어디에 있을까 궁금합니다.



.. “요즘은 어디나 농약을 쓰기 때문에 우렁이나 미꾸라지를 볼 수 있는 곳은 이런 산 속의 연못밖에 없단다. 아빠 어릴 때는 논바닥이 우렁이나 미꾸라지 천지였는데, 이제는 너무 귀해.” … 나는 선뜻 대답했다. 물고기를 죽이는 건 싫고, 밭에서 채소를 뽑아 오는 건 아무렇지 않은 이유는 뭘까? 아빠 말처럼 모두 다 생명인데 ..  (87, 91쪽)



  아이한테 문제집이나 참고서를 사서 안기는 어버이는 아주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셈이라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문제집이나 참고서는 ‘참된 지식’을 하나도 안 다루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길에 즐겁게 익혀서 아름답게 헤아릴 ‘올바른 슬기’는 문제집이나 참고서에 한 줄로도 안 나오기 때문입니다.


  문제집이나 참고서는 시험점수를 더 잘 받으라고 만든 종이꾸러미입니다. 이런 종이꾸러미는 책조차 아닙니다. 학교교육이 더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계급사회로 나아가도록 부채질하는 종이꾸러미가 문제집이나 참고서입니다.


  어버이라 한다면, 문제집이나 참고서를 사 주지 말고, 텃밭을 지어야 합니다. 아이한테 텃밭 한쪽에 나무를 심을 수 있도록 땅뙈기를 마련해야 합니다. 마당이 있는 집을 장만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리 넓지 않아도, 두 발로 흙을 밟고 두 손으로 흙을 만지면서 풀과 꽃과 나무를 아끼는 마음을 아이가 손수 기르도록 이끌 때에 비로소 ‘어버이’가 됩니다.



.. “도시 사람들은 새빨갛게 익은 맛있는 딸기를 돈을 주고 살 뿐이야. 딸기를 모종 때부터 키우면서 딸기와 친하게 지낸 즐거운 기억은 돈으로 살 수 없어.” … “요즘 세상에는 먹을 게 어찌나 많은지, 마당에 감이 열려도 비파가 익어도 요즘 시골 아이들은 거들떠보지 않아요.” ..  (149∼150, 154쪽)



  아이는 아이답게 뛰놀 때에 아이입니다. 어른은 어른답게 일할 때에 어른입니다. 교과서를 앞에 놓고 시험점수를 잘 따는 아이는 아이가 아닙니다. 돈만 잘 벌어서 아이한테 이것저것 사다 줄 수 있는 어른은 어른이 아닙니다. 함께 삶을 짓는 아이와 어른이 되어야 하고, 함께 사랑과 꿈을 가꿀 수 있는 아이와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제대로 철이 들어 슬기롭게 삶을 노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 배우고 왜 가르칠까요? 오롯이 우뚝 서서 이웃과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도록 이끌려고 배우면서 가르칩니다. 사람이 되는 길로 나아가도록 하는 학교여야 합니다. 졸업장을 낳는 학교가 아니라, 신분과 계급을 만드는 학교가 아니라,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꿈을 노래하면서 이야기하는 학교가 되어야 합니다. 《하늘이 나눠 준 선물》은 참 예쁜 책입니다. 어른은 하늘이 나눠 준 선물이 무엇인지 알아채야 하고, 아이는 하늘이 나눠 준 선물을 받아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4348.1.1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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