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2.23.


《체공녀 강주룡》

 박서련 글, 한겨레출판, 2018.7.18.



‘2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란 《체공녀 강주룡》을 읽으며 갑갑했다. ‘강주룡 이야기’가 아닌 ‘소설’을 쓰느라 이래저래 꿰맞춘 줄거리이니, 숱한 ‘아침 연속극’을  보는 듯했다. 책끝에는 ‘추천글’이 ‘주례사비평’처럼 여러 쪽에 걸쳐 붙는다. ‘문학상 수상작’이란 ‘장사판’이로구나 싶다. 돋보일 만한 글감을 잡아채어 아무튼 쓰기만 하면 된다고 여기고, 막상 글감으로 삼은 ‘강주룡’이 살아온 나날은 어디에도 없다. 수수하게 살다가 조용히 스러진 순이 한 사람 자취를 찾아내기는 어려울 만하다. 아무래도 ‘소설’이 아니고는 삶자취를 그리기 힘들 수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더욱 ‘소설 아닌 삶글’로 바라보고 다가설 노릇 아닐까? 현진건·김유정·현덕·이원수 같은 분이 남긴 글꽃(문학)을 보면, 지난 어느 날 삶자취를 고스란히 느낄 만하다. 이분들은 ‘글감으로 삼은 이웃’하고 동떨어진 곳에서 글만 쓰지 않았다. 스스로 삶을 일구고 지핀 손때랑 땀방울을 고스란히 글로 얹었다. ‘강주룡 차림새’로 겨울을 나고, 손수 아궁이에 불을 때며 밥을 하고, 치마폭에 무거운 쇠붙이를 품고서 걸어 보았다면, 이런 글을 안 쓴다. 글은 머리가 아닌 온몸·온마음·온삶으로 눈물에 노래로 옮길 적에 비로소 싹튼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2.22.


《적》

 다비드 칼리 글·세르주 블로크 그림/안명 옮김, 문학동네, 2008.7.25.



겨울이 저문다. 처마 밑을 지나 마루까지 뻗던 햇살이 어느덧 처마 밑에서 끝나고, 새벽이 조금씩 일찍 열며 저녁이 차츰 늦도록 밝다. 겨울 막바지 추위가 흐른다. 올겨울은 얼마나 얼어붙었나 하고 돌아본다. 요 몇 해를 살피면 가볍게 지나가는구나 싶다. 후박나무 밑에 선다. 우듬지를 올려다본다. 후박나무는 밑동부터 우듬지로 뻗는 줄기 둘레에는 잎을 내지 않는다. 가지를 길고 넓게 뻗으며 바깥으로만 잎을 낸다. 나무 품에 안기듯 줄기 곁에 서면 아늑하다. 아무 바람을 느끼지 않는다. 후박나무는 이런 결이기에 바닷가에서 자라며 살림집 바람막이 노릇을 해주는구나. 옆집에서 함부로 태우는 비닐·플라스틱·농약병 쓰레기가 우리 집으로 자주 날아온다. 마을 앞에 비닐을 비롯해 쓰레기를 모으는 곳이 있는데, 그냥 태운다. 《적》을 새로 장만했다. 작은아이는 이 그림책에 흐르는 줄거리나 그림이나 이야기가 무척 마음에 든다고 한다. 누가 ‘놈’일까? 우두머리는 거드름을 피우는 손가락으로 밑사람을 부린다. 수수한 사람들(백성·민중)은 총알받이가 된다. 미워할 까닭이 없는 이웃하고 총부리를 맞대야 하는 들꽃사람을 죽음터로 내모는 우두머리야말로 ‘놈’이리라. 사람을 죽인 보람을 가슴에 붙이는 이들이 바로 ‘놈’이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2.21.


《남성복을 입은 여성들》

 빅토린 글, 스크로파, 2022.1.4.



오늘 〈책숲 11〉를 맡긴다. 지난 한 달 남짓 말밑찾기를 하는 데에 온힘을 쏟으면서 웬만한 다른 일은 슬그머니 넘겼다. 스스로 즐거이 다룰 일이 아니면 구태여 할 까닭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살짝 이바지하리라 여기며 그냥 하는 일이 많았다. 앞으로는 ‘그냥 해주는 일’은 확 줄이거나 끊자고 생각한다. 마음이 없는 이들은 그냥돕기(자원봉사)가 무슨 뜻인지 헤아릴 생각을 안 하더라. 《남성복을 입은 여성들》을 아직도 읽어야 한다면, 우리나라는 끔찍하게 뒤처졌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누가 읽을까? 순이만 읽는가, 돌이가 함께 읽는가? “돌이옷을 입은 순이”를 말하려면, “순이옷을 입은 돌이”를 함께 말할 뿐 아니라, “순이돌이를 가르지 않는 옷과 삶과 살림과 사랑”으로 이야기를 넓혀야지 싶다. ‘힘(가부장권력)’은 으레 ‘사내힘’이었으나, 오늘날에는 ‘가시내힘’도 있다. 아직도 이 나라는 숱한 순이가 억눌리는데, 굴레나 사슬을 풀면서 ‘힘순이’로 돌아서고 무리를 짓는 이도 나타난다. 삶·살림·사랑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돌이뿐 아니라 순이도 바보짓을 일삼는다. 윤미향은 아직도 국회의원 아닌가? 180이란 자리를 거머쥔 그들은 모두 ‘돌이’가 아니라 ‘순이’도 수두룩하다. 껍데기를 벗자.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2.20.


《쥐지 않고 쥐는 법》

 고상근·반지현 글, 샨티, 2022.1.31.



새벽바람dl 드세다. 새벽별을 보다가 구름이 휭휭 날아가는 소리를 듣는다. 바람이 등성이를 타고서 어마어마하게 춤추는 소리는 이따금 아침이나 낮에도 듣는데, 한밤이나 새벽에 가장 우렁차다. 겨울바람이 춤추는 소리는 서울에서는 못 들으리라. 길에 부릉이가 너무 많고, 가게도 끝이 없어 바람이 스스로 노래하면서 풀꽃나무 곁에서 일으키는 푸른노래를 들을 길이 막혔으니까. 겨우내 사다리가 왼쪽으로 넘어졌으나 오늘은 오른쪽으로 넘어진다. 바람결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쥐지 않고 쥐는 법》을 읽었다. 첫머리는 재미나게 여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갈수록 줄거리가 흐트러지는구나 싶더라. 겉모습에 얽매이는 길보다, 가만히 마음길을 바라보는 얼거리로 짜면 훨씬 나았으리라 생각한다. 우리(사람들)는 참빛이 아닌 겉빛에 휘둘리면서 스스로 지을 사랑을 잊는 오늘이기에, 이 두 갈래를 찬찬히 짚으면 넉넉하다. 한자말로 하자면 ‘진실·사실’일 텐데, 겉으로 보는 빛(사실)으로는 제대로 모를 뿐 아니라, 속기 쉽고 두려워서 떤다. 속으로 보는 빛(진실)이라면 스스로 알아차리고, 안 속으며 두려울 일이 없다. 돌림앓이란 겉빛으로 스스로 갇히며 두려워 죽음길로 나아가는 얼거리요, 우두머리가 사람을 홀리는 꿍셈이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2.19.


《카나카나 1》

 니시노모리 히로유키 글·그림/장지연 옮김, 학산문화사, 2022.1.25.



쉬엄쉬엄 가되, 늦추지도 당기지도 말자고 생각한다. 오늘 ‘넋·얼’ 말밑찾기를 매듭짓는다. 앞으로 더 손질하기는 하더라도 뼈대나 바탕은 찬찬히 짰다. 말밑찾기를 할 적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한다. 어릴 적에 이 낱말을 읊으면서 가르치던 할매할배를 떠올리고, 동무는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되새기고, 그무렵 여느 아저씨나 아줌마는 어떻게 다루었는가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천 해나 삼만 해 앞서 옛사람은 이 낱말을 어느 자리에 어떻게 쓰는 살림결이었을까 하고 헤아린다. 우리말뿐 아니라 바깥말도 매한가지이다. ‘글로 남은 자취’만으로는 말을 알 길이 없다. ‘마음에 새긴 자국’을 함께 읽어야 말빛을 제대로 안다. 《카나카나 1》를 읽었다. 어린이도 읽을 만하겠구나 싶어서 큰아이한테 건네어 보았다. 이 그림꽃책이 우리말로 나올 줄이야! 아니, 썩 안 늦게 나왔구나! 재미나고 뜻있으며 아름답다. 다만, 첫걸음뿐 아니라 두걸음이나 석걸음도 이러한 결을 고이 붙들기를 바랄 뿐이다. 조용히 기운을 찾는다. 가만히 봄맞이꽃을 살핀다. 올해에 우리 집 뒤꼍 나무를 어떻게 추스를는지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나무줄기를 쓰다듬는다. 겨울이 저무는 봄비가 내린 뒤에 차근차근 우리 집 나무를 돌아보려고 한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