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1.28.


《사서의 일》

 양지윤 글, 책과이음, 2021.2.10.



서울 손님이 찾아온다. 서울에서 일하며 지내는 삶이 이제 너무 괴로워서 그만 서울을 떠나려 한다며, 바다가 어울린다고 여겨 바다를 늘 바라볼 만한 곳을 헤아리면서 남해부터 완도 사이를 죽 다니시는 길이라 한다. 우리가 이 시골에서 집을 장만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시골사람이 서울사람(도시 귀촌인)한테 어떤 바가지를 씌우는지를 알려주고, 시골집을 빌릴 생각은 버리고 살 생각을 하라고 말한다. 빌려서 살 만하게 고쳤다가 집임자한테 쫓겨나는 사람이 수두룩한 곳이 시골이라고, 시골에서는 집값을 안 치고 땅값만 치니, 스스로 바라는 터전을 살피고, 무엇보다 냇물이나 샘물을 누리는 곳이 아니라면 굳이 시골로 갈 까닭이 없다고 귀띔한다. 이러고서 서울 손님은 두 아이하고 조잘조잘 온갖 삶노래를 주거니받거니 한다. 《사서의 일》을 읽었다. 책숲(도서관)이라는 곳에서 일한 나날을 조곤조곤 갈무리했다. 책숲지기하고 책집지기 목소리는 늘 반갑다. 다만 책결을 스스로 좁게 가두지 않기를 빈다. 책숲이든 책집이든 어른책만으로는 우리 앞길이 캄캄하다. 어린이책하고 푸름이책을 함께 사랑하면서 품는 눈빛을 가꾸어야지 싶다. 어린이랑 나란히 앉아 누릴 책이 밑바탕으로 서야 비로서 어른책을 곁에 조금 놓을 만하다고 본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1.27.


《내가 지구별에 온 날》

 나비연 글, 있는 그대로, 2020.11.11.



먼지구름·먼지하늘이 오늘 아침도 잇는다. 고흥이 이만큼이면 광주나 목포나 서울이나 부산은 아주 끔찍하리라. 우리 스스로 풀꽃나무·숲을 비롯해 풀벌레·새·곰·범·늑대·여우·개구리·뱀 모두를 잊어버리기에, 이 모든 숨결이 바스라지면서 먼지가 될는지 모른다. 뚝딱터(공장)에서 뿜어내는 매캐한 기운으로도 먼지구름이 생기지만, 우리 스스로 짓밟은 풀꽃나무하고 숲이 아프게 숨지면서 먼지로 사라져서 하늘을 맴돈다고 느낀다. 조용히 읍내로 나갔다가 호젓이 집으로 돌아온다. 다시 삼월이 오면 이 시골버스를 타는 푸름이가 늘 테지만, 겨울에는 그야말로 손님이 없다. 내가 안 타면 버스지기 혼자 돌아다니는 판이라고 느낀다. 《내가 지구별에 온 날》을 읽었다. 첫머리를 열며 펼친 푸른기운을 끝까지 이으면 한결 아름다웠을 텐데, 사이사이에 슬쩍슬쩍 헤맨 듯하다. 다른 눈치를 볼 일이 없이 오롯이 ‘푸른별’을 마음에 품고서 ‘푸른길’을 ‘푸른씨앗’으로 토닥이노라면 저절로 ‘푸른글’이 피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요 몇 해 사이에 읽은 노래꽃(동시) 가운데 가장 돋보인다. 푸른글을 쓰려는 이웃님이 있구나. 오늘은 며칠 만에 별을 본다. 한밤에 우리 집 마당 후박나무 곁에서 빙글빙글 돌며 별바라기를 한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1.26.


《the North American Indian》

 Edwrad S.Curtis, Taschen, 2016.



에드워드 커티스 님은 1868∼1952년을 살았고, 1907∼1930년에 텃사람(북중미 토박이)를 빛꽃으로 담았다고 한다. 이렇게 담아낸 빛꽃을 어마어마하게 갈무리해서 남겼고, 이 가운데 716자락을 간추려 《the North American Indian》이 새로 나온 적 있다. ‘에드워드 커티스’란 이름을 아는 사람은 드물되 ‘인디언 사진’이라면 거의 다 안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이이 빛꽃을 오래도록 훔쳐서 썼다. 어제그제에 이어 오늘까지 별을 못 본다. 비가 올 듯 말 듯하기도 했지만, 이보다는 먼지로 뒤덮은 하늘이라서 고흥에서조차 별을 못 본다. 나는 곁님하고 아이들이랑 멧새노래를 누리고, 풀벌레랑 어우러지고, 냇물을 마시고, 미리내를 날마다 보고, 싱그러운 바람으로 온몸을 간질이면서, 포근한 해님을 품으려고 두멧시골에서 산다. 이런 두멧시골에 나날이 부릉이(자동차)에 잿빛(시멘트)이 마구 쳐들어온다. 시골 읍내에 가면 군청을 도청보다 크게 지었을 뿐 아니라, 군청 앞에 잿빛집(아파트)이 빼곡하게 새로 들어찬다. 다른 시골도 비슷한 판이다. 서울을 더 못 키우니 시골을 잡아먹는데, 이렇게 들빛하고 숲빛이 잡아먹히는 나라에서는 숲사람·텃사람 숨결이나 마음이나 이야기도 차츰 잊히면서 스스로 사람됨을 잃어버릴까?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1.25.


《족제비》

 신시아 디펠리스 글/박중서 옮김, 찰리북, 2020.4.30.



비가 올 듯하더니 먼지잼으로 그친다. 먼지잼도 반갑다. 비도 즐겁다. 구름이 끼어도 산뜻하고, 바람이 불어도 시원하다. 겨울바람이 무어 시원하느냐고 핀잔하는 분이 있으나, 춥다고 여기니 춥고 시원하다고 맞아들이니 시원할 뿐인데. 쉬엄쉬엄 하루를 살며 아이들하고 함께 밥차림을 편다. 느긋이 살림을 꾸리면서 돌아보노라면, ‘아이한테 밥을 대단히 멋지게 차려줄’ 일이 아닌, 아이하고 함께 이모저모 만지고 다듬으면서 천천히 차려서 함께 누리고 치우면서 쉴 노릇이다. 《족제비》를 읽었다. 미국에서 무슨 보람(상)을 받았다고 한다. 앙갚음 아닌 사랑으로 나아가려는 길을 차분히 그렸으니 보람을 받을 만하다. 다만, 더 깊고 넓게 다룰 대목을 휙휙 지나쳤다. 이를테면, 아이가 숲에서 밤길을 지날 적에 보고 느끼는 이야기를 그저 ‘두려움’으로만 풀어내는데, 마을하고 아주 먼 곳에서 집짐승을 돌보고 숲짐승을 마주하는 아이들이 ‘밤숲 = 두려움’으로 여길까? 아리송하다. 별이 반짝이는 밤을, 밤새가 노래하는 밤을, 또 밤이 걷히고 밝는 새벽을, 새벽이 지난 아침을, 거의 못 그렸다고 느낀다. 줄거리는 알뜰하되 숲사람(북중미 인디언)이 품고 자라며 살아온 푸른길은 거의 못 그렸다고 느낀다. 글을 숲에서 썼다면 달랐겠지.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1.24.


《달님, 거기 있나요?》

 오치 노리코 글·메구 호소키 그림/유문조 옮김, 스콜라, 2017.5.31.



찌뿌둥하지만 우체국을 다녀온다. 부칠 책에 넉줄글을 적고 자루에 담고 등짐을 메고 시골버스를 탄다. 나는 책집으로 마실을 다니기를 즐기고, 아이들하고 숲하고 바다로 마실을 즐거이 다니며, 온하루가 새롭게 마음마실이라고 느낀다. 모든 마실은 “틈하고 틈을 잇는 길”이라고 여긴다. 책집은 책을 사이에 놓고서 우리가 새롭게 마주하는 길을 잇는 숨결을 느끼거나 헤아리거나 나누는 터전이리라. 《달님, 거기 있나요?》를 읽었다. 달님 아닌 별님을 다루면 제대로 빛나리라 생각한다. 이미 나온 그림책을 어찌하겠느냐만, ‘달’은 “돌지 않는다”고 해야 맞을 테지. 해도 푸른별도 뭇별도 “돌면서 빛나는 터”인데, 달만큼은 돌지도 빛나지도 않는다. 삶터에 퍼진 겉치레를 걷어내기까지는 오래 걸릴 만하다. 배움터를 오래 다니거나 책을 많이 읽더라도, 다들 ‘좋아하는 것’만 보거나 들으려 하지 않나? 좋고 싫고를 떠나 스스로 마음눈을 뜨면서 사랑눈을 틔우는 길을 가야 비로소 속으로 빛나는 삶을 지어 어느새 환하게 노래할 텐데. 스무 살 적에 누가 “좌파나 우파나 본질은 같아.” 하고 말해서 “그런가?” 하고 지나쳤지만, 곰곰이 생각했다. 말밑을 캐니 ‘왼·오른’은 한뿌리이다. 보이는 자리만 다를 뿐, 둘은 같더라.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