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2.28.


《행복의 가격》

 가쿠타 미쓰요 글/박성민 옮김, 시와서, 2020.8.15.



어제 묵은 일산 길손집은 불을 끄고 천으로 미닫이를 가리면 캄캄했다. 푹 잘 만하구나. 아침에 미닫이를 여니 부릉소리가 확 번진다. 책자리가 널찍해서 큰아이하고 나란히 앉아 아침일을 한다. 이윽고 짐을 추슬러 서울로 간다. 서울에서 깃들려던 마을책집은 사라지고 다른 가게로 바뀌었네. 땀빼며 헤매고서 다리를 쉬다가 길그림을 보니 다른 마을책집이 코앞이다. 〈길담서원〉이 〈문화공간 길담〉으로 세 해 앞서 바뀌었단다. 새 책집지기님이 새빛으로 이 골목을 밝히는구나. 물려줄 수 있고, 이어받을 수 있는 책집살림은 마을을 새록새록 북돋우는 밑힘이 될 테지. 책짐을 더 크게 추스르고서 걷는다. 경복궁 곁이라 그런지 ‘높으신 분’들 부릉이가 길을 막는다. 지킴이(경호요원)한테 다가가 “이봐요. 이렇게 큰짐을 들고 아이랑 걷는 사람을 막고 까만 차를 먼저 보내면 말이 됩니까? 사람이 먼저 아닙니까?” 하고 큰소리로 따지고서 시커멓고 큰 부릉이 앞으로 지나간다. 《행복의 가격》을 읽었다. ‘기쁨값’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쁨이나 웃음이나 노래나 춤이나 사랑이나 눈물에는 값을 못 매기니까. 기쁨에까지 값을 매기려는 우두머리나 벼슬아치라면 이 나라는 썩어문드러진 길로 갈 테지. 사람으로서 사랑을 생각하자.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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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2.27.


《지금, 시간이 떠나요》

 베티나 오브레히트 글·율리 푈크 그림/이보현 옮김, 다산기획, 2022.1.30.



어제 인천에서 묵고서 아침에 느긋이 일어난다. 시골집이 아닌 인천 길손집이니 아침을 깨우는 멧새가 없고, 햇살이 부드러우면서 깊이 퍼지지 않는다. 길손집은 큰길 안쪽 신포시장 곁에 있어 부릉소리는 없다. 짐을 추스른다. 싸리재 둘레에서는 일산택시를 잡기 어려우니 전철을 타고 송내까지 간다. 먼저 일산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간다. 큰아이는 오랜만에 일산마실을 한다. 외삼촌은 못 보지만 이모 이모부가 있는 곳으로 건너가서 어린 동생을 만난다. 바람이 되우 불지만, 추우면 추위를 누리고, 비가 오면 비를 누리고, 땡볕이면 땡볕을 누리면 되니 걱정거리가 없다. 숲노래 씨는 아이들이 온갖 날씨를 맛보도록 같이 놀면서 살았다. 《지금, 시간이 떠나요》를 읽었다. ‘오늘날’ 너무 바쁜 어른아이 모습을 가만히 담아낸 그림책이다. 참말로 ‘요새’는 ‘하루’를 느긋이 누리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끝없이 ‘개발·발전’을 바라보며 달린다. ‘자기개발’을 해야 할까 ‘나사랑’을 할 노릇일까? ‘빨리·높이·세게’를 내거는 올림픽·스포츠·연속극은 외려 우리를 낡고 닳으며 바보로 내몬다고 느낀다. ‘사랑으로·아름답게·착하게’라는 눈빛으로 오늘 이곳을 스스로 즐겁게 노래할 적에 비로소 삶이 깨어나고 죽음을 걷어내리라.


#DannGeheIchJetzt #BettinaObrecht #JulieVolk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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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2.26.


《서점은 내가 할게》

 강정아·이화숙 이야기, 빨간집, 2022.1.31.



어젯밤 몸이 많이 나았고, 새벽에는 제법 기운을 낼 만하다. 덜 나은 몸이지만 큰아이하고 서울마실을 나선다. 큰아이는 돌림앓이판이 불거지고서 처음 먼마실을 한다. 엊저녁에 인천 배다리 책집 할머니가 전화를 하신 김에 얼굴을 뵈러 가자고 생각한다. 새벽바람으로 나서서 서울에 닿아 〈서울책보고〉를 들른다. “늘 보던 사진이잖아요?” 하는 큰아이는 먼지하늘을 보고는 “아! 비가 와서 싹 씻으면 좋겠다!” 하고 외친다. 전철을 갈아타서 인천에 가려는데 새치기하는 아저씨가 있다. “아저씨, 여기 줄이 있어요. 저 뒤로 가셔요.” 하고 얘기하는데 들은 체도 안 하고 손전화에만 코를 박는다. 인천에 닿아 〈집현전〉하고 〈모갈1호〉를 거쳐서 〈아벨서점〉에 닿으니 먼지씻이 같은 비가 온다. 그래, 우리말에 ‘먼지잼’이 있지. 먼지를 재우는 가벼운 비가 반갑다. 책집 〈아벨서점〉 할머니는 열다섯 살 사름벼리 님이 새를 담은 그림을 보시면서 마음이 확 트인다고 얘기한다. 숲노래 씨도 아이들 그림을 보며 늘 눈하고 마음을 씻는다. 《서점은 내가 할게》는 부산 〈책과 아이들〉 지기로 일한 강정아 님 삶자국을 차곡차곡 담는다. 아이들은 노래하고 어른들은 살림꽃을 피운다면 온누리가 아름다이 사랑으로 피어나리라 생각한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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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2.25.


《두 눈을 감으면》

 샤를로트 벨리에르 글·이안 드 해스 그림/김미선 옮김, 키위북스, 2015.8.20.



사흘을 앓고서 몸이 나아간다. 앓는 내내 ‘앓다’라는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왜 앓는가? 앓으면 어떤 길로 새로 가는가? 앓거나 아프고 나서 ‘낫는다’고 말한다. ‘더 나은’ 사람이 된다고도 하겠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기도 하다고 느낀다. 아이들이 곁에서 집안일을 거들고 집살림을 맡으니 홀가분히 앓는다. 《두 눈을 감으면》을 곰곰이 읽고 되읽는다. 두 눈을 뜰 적에 무엇을 느끼거나 보면서 배우는가? 두 눈을 감을 적에 무엇을 느끼거나 보면서 익히는가? 눈을 뜨고 감는 사이에 스스로 얼마나 피어나는가? 우리나라 그림책하고 이웃나라 그림책은 바로 이 대목이 확 갈리지 싶다. 우리나라 그림책은 “두 눈을 뜨고 보는 둘레(현실세계)” 줄거리에서 멈추기 일쑤이다. 이웃나라 그림책은 “두 눈을 뜨고 보는 둘레에다가 두 눈을 감고 보는 마음빛을 아로새기곤 한다. 우리나라 그림책은 치고받으면서 다치거나 아픈 줄거리가 흘러넘친다. 우리말로 옮기는 이웃나라 그림책 가운데에도 이런 줄거리가 제법 있으며, 이런 이웃나라 그림책을 꽤 많이 옮긴다고 느낀다. 몸뚱이는 이곳(현실세계)에 있으니 이곳도 틀림없이 볼 노릇이되, 이곳만 보면 오히려 겉치레나 눈속임에 홀린다. 마음눈을 떠야 이곳을 제대로 본다.


#CharlotteBelliere #IanDeHaes #Imagine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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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2.24.


《아빠의 작업실》

 윤순정 글·그림, 이야기꽃, 2021.11.22.



갑자기 잇몸이 붓고 온몸에 힘이 빠졌다. 서울 잠실나루 곁 〈서울책보고〉에서 연 빛꽃잔치(사진전시)를 곧 내리기에 큰아이하고 구경하러 갈 참이었으나, 안 되겠구나 싶어 드러눕는다. 몸살이 오면 그저 앓는다. 하루건 이틀이건 호되게 앓고서 일어선다. 일을 많이 해서 고될 적에는 물을 넉넉히 마시고서 쉬지만, 몸살이 닥쳐 후들거릴 적에는 물조차 입에 대지 않는다. 누워서 끙끙거리고, 한참 끙끙거린 뒤에는 일어나서 밥을 차리고, 다시 눕고, 실컷 땀을 쏟고서 옷을 갈아입는다. 《아빠의 작업실》을 보고서 깜짝 놀랐다. 어릴 적에 보던 인천 골목골목을 차분히 옮겨놓았구나 싶더라. 그림님 스스로 어린 나날에 아버지 곁에서 늘 지켜보고 마음에 담던 모습이었기에 차곡차곡 여미었다고 느낀다. 그림감은 먼곳에서 찾을 까닭이 없다. 바로 스스로 살아온 길을 사랑이란 눈빛으로 옮기면 된다. 잘 팔릴 만한 그림감이나, 사람들이 많이 찾는 그림감이 아닌, 스스로 사랑하는 삶을 보낸 이야기를 가만히 담아내면 넉넉하다. “아빠 일터”를 담은 그림책이 퍽 잘 나왔다고 느껴 그림님 다른 그림책을 살펴보다가 이 그림책만 못 하네 싶어 아쉬웠다. 글책도 그림책도 ‘목소리’가 아닌 ‘삶’을 담을 노릇이다. 삶을 사랑하면 다 된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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