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0.21.


《산책의 숲》

 이순우 글, 도솔, 2004.5.20.



낮에는 후끈하지만 해가 지기 무섭게 서늘한 가을. 이 가을에는 여름보다 빨래가 한결 빨리 바짝 마른다. 나락도 열매도 햇볕에 아주 잘 마른다. 풀을 베어 놓아도 참 빨리 마른다. 무엇이든 바짝 마르니, 이 가을에 맨발로 풀밭을 거닐면 ‘바작바작’ 소리가 나며 싱그럽다. ‘바짝’ 마른다고 할 적에 이 낱말은 마른풀을 밟는 소리를 고스란히 따지 않았을까. 《산책의 숲》은 철·날·때를 따라 숲을 마주하면서 삶을 새롭게 읽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꼭 무엇을 하겠노라는 생각이 아닌, 숲을 숲결대로 찬찬히 마주하려는 눈빛이 될 적에 어느새 마음으로 스며드는 숲살이 이야기를 편다. 그렇겠지. 꼭 무엇을 해야 하지는 않는다. 꼭 무엇을 알아내야 하지도 않다. 꼭 무엇을 얻거나 누려야 하지도 않지. 나들이를 해보자. 짐은 내려놓고서 가뿐히 걷자. 마실을 하자. 서두르지도 늑장 부리지도 않으면서 둘레를 보자. 숲을 바라보자. 풀벌레가 노래를 하고, 딱정벌레가 짝을 지으며, 크고작은 새가 찾아들어 언제나 노래잔치인 숲을 보자. 이 숲에서 자라던 나무가 오늘 우리 곁에 책이란 모습으로 있다. 바람소리가 깃든 책으로. 지저귀는 하루가 흐르는 책으로. 가랑잎이 춤추는 몸짓인 책으로. 알을 낳고 고요히 쉬는 풀벌레 마음인 책으로.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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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0.19.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 라히리 글/이승수 옮김, 마음산책, 2015.9.15.



곁님이 큰아이하고 반죽을 한다. 반죽을 하면서 큰 솥에 물을 끓이고 푸성귀를 듬뿍 넣는다. 수제비를 솥 가득 끓인다. 반죽을 하면 할수록 반죽질이 익숙하고, 수제비를 뜯으면 뜯을수록 뜯음결이 나아진다. 가을볕은 뜨뜻하다. 열 시 무렵에 처마 밑에 누워서 볕바라기를 할라치면 어느새 땀이 솟는다. 땀이 나는 몸으로 마당에서 웃통을 벗고 해바라기춤을 즐긴다. 들마다 나락이 익고 나무마다 한가을 열매가 굵는 이 철은 엄청난 해가 흐른다. 여름에는 불볕이라면 가을에는 ‘알볕(알곡을 익히는 볕)’이라고 할까.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를 읽는다. 글쓴님은 영어를 내려놓고 이탈리아말로 글을 썼다고 한다. 글쓴님은 영어가 제 엄마말이 아니었단다. 엄마말 아닌 말이었기에 한결 수월히 내려놓았는지는 모를 노릇이지만, ‘작은 책’이라고 일컬은 ‘주머니 사전’은 우리가 지은 온갖 살림을 갖추린 꾸러미이다. 그러니 이 작은 꾸러미는 언제나 큼직큼직하겠지. 얇든 두툼하든 사전 하나에 흐르는 갖은 살림살이를 노래할 수 있다면, 글살림이며 말살림이 빛나겠지. 다만, 사전다운 사전이 먼저 있어야겠지. 살림빛을 담은 사전을, 사랑빛을 실은 사전을, 삶빛을 노래하는 사전을.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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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0.18.


《바 레몬하트 7》

 후루야 미츠토시 글·그림/정은서 옮김, AK 코믹스, 2012.3.30.



술을 마시는 사람은 술 한 모금이 반가울 수 있을 테고, 이 술을 마주하면서 이야기를 함께할 사람이 반가울 수 있다. 오늘 눈앞에서 술이 되어 곁에 있는 포도나무이며 보리밭이며 옥수수밭이며 들판이 새삼스러울 수도 있겠지. 알맞게 무르익도록 내리쪼아 준 햇볕을 느끼며 고마울 수 있고, 살며시 깃든 바람이며 빗물이 기쁠 수 있다. 《바 레몬하트》를 꾸러미로 장만해서 묵혀 놓다가 일곱걸음을 읽어 본다. 어느 술은 묵히기에 맛나다고 하듯, 어느 만화는 묵히기에 새롭다고 할 만하리라. 더 마시고 싶은 술이나, 날마다 찾아가고픈 어느 술집이라기보다, 늘 마음으로 마주하고픈 한 가지에, 언제나 마음으로 만나고 싶은 한 사람일 수 있으리라. 주머니에 따라 마실 수 있는 술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값을 더 치러야 마실 수 있기에 맛난 술이 아니라, 서로 따사로운 숨소리를 나누기에 멋있는 술이 되겠지. 술이 아닌 떡이나 밥이나 빵이어도, 커피나 맹물 한 모금이어도, 또 가을들을 적시는 가을비 한 줄기여도 이와 같으리라. 우리가 손에 쥐는 책은 어떠한가. 우리가 손수 짓는 글 한 줄은 어떠한가. 우리가 마음으로 길어올려 터뜨리는 말 한 마디는 어떠한가. 모두 매한가지이면서 한동아리이지 않을까.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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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0.17.


《싸워도 우리는 친구》

 이자벨 카리에 글·그림/김주영 옮김, 다림, 2016.3.18.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도 쌀을 씻을 생각을 안 한다. 오늘 하루 무엇을 스스로 배우며 익힐는지도 그리지 않는다. 날마다 들려주어도 날마다 잊어버리는 이 마음이란 무엇일까. 어제하고 똑같이 하루를 보내려는 몸짓이겠지. 스스로 짓는 재미난 살림을 아직 떠올리지 못하는 모습이겠지. 이럴 때일수록 나부터 한결 차분하게 마주하자고 생각한다. ‘해주기’에 길들지 않도록, ‘손수짓기’에 마음을 쓰도록, 더욱 찬찬히 바라볼 노릇이라고 여긴다. 그림책 《싸워도 우리는 친구》를 원주 마을책집 〈터득골북샵〉에서 만났다. 2016년에 진작 이 그림책이 나왔네? 그린님 이자벨 카리에 님 다른 그림책을 반가이 만난 적이 있는 터라 얼른 손이 갔다. 여러 벌 혼자서 읽었고, 책에 적힌 옮김말을 손질했다. 원주에서 고흥으로 잘 들고 돌아왔으며 아이들이 스스로 읽고 생각하도록 이끈다. ‘까맣게 피어나는 기운’이 무엇인지, 이 까만 기운은 누가 일으키는지, 또 이 까만 기운을 누가 걷어낼 수 있는지, 이 까만 기운 저켠에 무엇이 있는지, 아이들은 아마 스스로 알 테지. 스스로 알면서 잊을 수 있다. 어버이나 어른이란 자리라면, 바로 이 대목에서 넌지시 짚고 부드러이 달래면서 차곡차곡 알려주며 노래하는 길이리라.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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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0.16.


《전국 책방 여행기》

 석류 글, 동아시아, 2019.8.14.



마을책집이 나라 곳곳에 부쩍 늘며 ‘책집마실’을 다니는 발길이 꽤 늘어났지 싶다. 그러나 독립책방이란 이름을 쓰는 마을책집이 이렇게 부쩍 늘기 앞서도 나라 곳곳으로 책집마실을 다닌 사람이 꽤 많았다. 다만 예전에는 새책집을 찾아서 나라 곳곳을 도는 일은 드물었다. 출판사 영업부 일꾼이라면 여러 고장 여러 새책집을 돌 테지만, 예전에는 여러 고장 새책집은 어디를 가나 거의 같은 짜임새에 갖춤새였다. 그러면 예전 책집마실은 무엇일까? 바로 헌책집 마실. 헌책집은 서울에서도 다 다르고, 나라 곳곳은 더더욱 다르다. 요새는 마을책집에서 ‘지역 잡지’나 ‘지역 문예지’를 다루지만, 예전에는 이 몫을 오롯이 헌책집이 맡았다고 할 수 있다. 《전국 책방 여행기》를 읽는데 몇 군데 책집을 다루지 못했다. 아니 몇 군데 책집에 ‘인터뷰 따러’ 다닌 느낌이 너무 짙다. 굳이 ‘인터뷰 따기’는 안 해도 좋을 텐데. 느긋하게 책집마실을 다니면서 갖가지 책을 누리고, 다 다른 고장 다 다른 이웃하고 살뜰히 만나면 좋을 텐데. 굳이 ‘추천 책방 목록’을 엮지 않아도 된다. 스스로 즐겁게 다닌 책집에서 스스로 새롭게 배운 마을살림을 노래할 수 있으면 된다. 지식이 아닌 마을숲을 누리려는 사뿐걸음이 바로 책집마실일 테니.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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