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2.29.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

 이근화 글, 마음산책, 2020.8.20.



여태 곁님 몸을 풀어주며 살던 내가 아주 드물게 곁님을 불러 허벅지랑 종아리를 주물러 달라고, 아니 토닥여 달라고 말한다. “다리가 아주 딱딱하네. 불덩이 같아.” “…….” “좀 진작부터 만져 달라고 하지.” 사흘째 접어든 다리앓이는 이제 목소리로 뻗는다. 말소리를 내기 벅차고, 예전 목소리가 아니다. 아이들도 거들어 토닥이는 듯하지만, 아이들은 주무름질을 아직 모르니 손에 힘을 줄 적마다 뜨끔하다. 기어드는 목소리로 “다리에서 불꽃 튀는 모습 보이지 않아?” 하고 묻는다. 눈을 감고 누워 다리를 바라보면 벼락이 맞은듯 다리가 찌릿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살살 어루만지려 해도 뜨겁고 욱씬거린다. 속으로 다리한테 말한다. “며칠을 더 앓아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너무 오래 걸어다니지 않을게.” 다리가 대꾸한다. “그런 뜻으로 앓지 않아. 네가 궁금해했잖아.” “뭘?” “애벌레가 어떻게 고치에서 몸을 녹여 나비가 되는 줄 궁금해하지 않았니?” “아.” “애벌레는 몸을 녹이는 아픔을 안 봐. 오직 나비꿈만 그리지.”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를 읽으며 ‘작은이’란 자리, 목소리, 걸음, 삶을 돌아본다. 그런데 작은이는 누굴까? 풀벌레만큼 작게 볼 수 있을까? ‘작다’고 말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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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오늘 읽기 2020.12.28.


《선물》

 김은미 글·그림, 백화만발, 2020.1.10.



오늘은 다리가 더 욱씬거린다. 서울말은 ‘욱신거리다’이다만, ‘욱신’만으로는 이 찌릿거림을 나타낼 길이 없으니 ‘욱씬’이라고 쓴다. ‘지릿·찌릿’처럼 ‘욱신·욱씬’으로 쓸 만하다. 자리에서 뒹굴며 온갖 생각을 한다. “난 욱신거리지 않아. 욱씬거린다구!” 같은 말을 읊는 꼬라지로 보니, 죽을 만큼은 아니요, 낱말책을 쓰는 사람이 맞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왜 일어났다가 다시 눕고, 또 일어났다가 새로 눕는지를 모른다. 누워도 욱씬대고, 서도 욱씬대지만 오래 누우면 등허리가 결리거든. 곁님이 아이들더러 말한다. “얘들아, 너희 아버지는 아파도 아프다고 말을 안 해.” “그런가? 아버지가 아픈가?” “저 봐. 암말도 못하잖아. 너희 아버지는 아프면 아예 아무 말을 못해.” 그렇다. 가볍게 아플 적에는 그러려니 하고 지나친다. 묵직하게 아플 적에는 끄응하며 지나간다. 그야말로 아파서 주저앉을 때에 이르러야 아이고 소리를 내며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면서 드러눕는다. ‘시니어 그림책 3’이란 머리말이 붙은 《선물》을 읽는데 굳이 ‘어르신 그림책’으로 안 갈라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그림책이란 모름지기 누구나 읽는 책이니, 할머니가 사랑할 그림책은 어린이도 사랑할 만하도록 엮어야 비로소 빛나리라.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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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2.27.


《바라카몬 1》

 요시노 사츠키 글·그림/오경화 옮김, 대원씨아이, 2012.2.15.



털썩, 이런 소리가 난다. 몸에서. 힘들거나 벅찰 적에는 곁님이나 아이들한테 맡겨도 좋으련만, 굳이 더 용을 써서 혼자 하려다 보니 주저앉는다. 그런데 이런 몸으로 빨래를 하고 밥을 짓고 하노라니 다리가 더 욱씬거린다. 욱씬욱씬한 다리를 참기 어려운데 아프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저 허벅지랑 종아리에 힘이 안 들어간다. 앉지도 서지도 눕지도 걷지도 못할 만큼 찌릿찌릿하다. 찌릿거리며 눈물이 난다. 누워도 누웠다 할 수 없는 몸으로 뒤척이다가 숨을 고르다가 돌아본다. 지난 이레 동안 쉴새없이 걷고 자전거를 타고 바깥일을 봤다. 무엇보다 묵직한 책짐을 짊어지고서 하룻밤 만에 서울을 다녀온 일이 컸다. 그 책짐을 짊어진 채 오래 걷고,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를 잡으려고 달리기까지 했다. 다리는 나더러 “넌 어쩜 그렇게 안 쉬니? 너무하잖아?” 하면서 억지로 쉬게 해준다. 눕다가 앉다가 서며 《바라카몬 1》를 읽는다. 뒷자락부터 읽다가 첫걸음을 비로소 읽는데, 아이돌보기를 살짝 엉성하게 그리긴 했어도, 시골살이는 꽤 푼더분하게 담았다. 그린님이 나고자란 시골(섬)을 고스란히 옮겼으니 감칠맛이 나지. 그나저나 이 다리앓이는 며칠을 가려나. 읽다가 덮다가 집안일을 하다가 쉬다가 울다가 하루를 다 보낸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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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2.26.


《선생님, 탈핵이 뭐예요?》

 배성호 글·김규정 그림, 철수와영희, 2020.11.24.



이웃 할아버지가 찾아와서 뭔가 주섬주섬 보여주신다. 스물다섯 나이에 차에 치여 일찍 숨지고 만 할배 딸아이 이야기를 글로 쓰면 좋겠다면서 여러 가지를 챙겨 오셨다. 두멧시골에서 나고 자라 두멧시골 어린배움터 길잡이로 세 해를 일하다가 하늘꽃이 되었다지. 한창 배움꽃을 펴려 하던 무렵 그만 숨을 놓고 하늘꽃으로 가야 한 그분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선생님, 탈핵이 뭐예요?》를 읽었는데 마음이 안 가볍다. 어린이한테 탈핵을 들려주는 책이 반가우나, 글님이 안 짚거나 못 짚고 넘어간 대목이 여럿 보인다. ‘햇볕판(태양광)’이기에 새길이나 좋은길이 되지는 않는다. 오늘날 이 나라 햇볕판을 보라. 서울 아닌 시골 눈길로 보라. 나라 곳곳 아름숲이며 아름마을을 온통 햇볕판으로 덮어 버렸다. 가파른 멧자락까지 나무를 죄 밀고서 전봇대 같은 기둥을 때려박고 시멘트를 들이부어서 햇볕판을 세운다. 이런 삽질이 ‘친환경·대안·그린’이 될 턱이 없다. 마냥 햇볕판 노래만 부르면 벼슬꾼하고 손잡는 뒷돈이 춤추기 마련이다. ‘햇볕판을 어디에 어떻게’ 놓아야 하는지를, 햇볕판이며 전지는 목숨이 얼마나 가는지도 따져야 한다. 무엇보다 풀꽃나무가 해·바람·비·흙만으로 푸르고 튼튼하다는 대목을 읽어내야 하지 않을까?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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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2.25.


《The Night Before Christmas》

 Clement Moore 글·Roger Duvoisin 그림, Scallywag Press, 1954/2019.



어제까지 발다리를 안 쉬었다면, 오늘은 비로소 발다리를 푹 쉰다. 오늘 숱한 수수께끼 가운데 ‘마음으로 읽는 길’을 풀었다. 큰아이하고 함께 쓰는 글꾸러미에 이 얘기를 먼저 옮겼고, 다음으로 ‘말밑찾기’ 글꾸러미에 옮겼다. 간추려 본다면, ‘마음으로 읽는 길 = 이름으로 읽는 길’이다. 마음으로 만나서 서로 어우러지고 싶다면, 이름을 붙여서 불러야 한다. 이 이름이란, 남이 붙여 주는 이름이 아닌 스스로 붙이는 이름이다. 이른바 사투리이지. 사투리란, 스스로 삶·살림·사랑을 짓는 사람이 스스로 생각한 말(이름)이기에, 이 사투리에는 ‘마음을 읽는 빛’이 서린다. 모든 터전이 ‘전문 집단’한테 사로잡히며 풀꽃나무 이름을 ‘배움이름(학명)’에 가두려 하는데, 배움이름에 갇힐 적에는 마음이 흐르지 못한다. 고장마다 어떤 삶·살림·사랑으로 풀꽃나무랑 세간이랑 둘레 이름을 붙였는가를 마음으로 읽을 노릇이고, 우리 스스로 새롭게 이름을 붙일 줄 알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눈을 감고도, 아무리 멀리 떨어져도, 마음으로 서로 생각이 흐른다. 《The Night Before Christmas》를 고맙게 장만했다. 1954년에 처음 나온 이 그림책이 2019년에 다시 나왔더라. 마음으로 부르면 산타 할배도 산타 할매도 언제라도 찾아온단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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