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낱말책 #숲노래말꽃 #숲노래사전 #우리말꽃

2023.5.21.


숲노래 씨가 몇 해 앞서부터

문득 새로 지어서 쓰는 ‘아이곁’이란

투박한 우리말이 있다.


숲노래 씨는 대단하거나 놀라운 우리말이 아닌,

누구나 아무렇지 않고 스스럼이 없이

그저 스스로 늘 쉽게 지을 수 있는

말길을 틔우는 사전을 쓴다.


그래서 ‘육아’란 얄딱구리하고

일본스러운 한자말이 아닌,

‘아이사랑’을 드러낼 말을 쓰려고 한다.


그렇다.

우리는 ‘아이사랑’을 하면 된다.

‘나사랑’을 하면 된다.


‘아이사랑·나사랑’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은 바로 ‘아이곁’이다.

.

.

아이곁

아이를 돌본다면 ‘아이돌봄’이라 하면 된다. ‘아이돌봄’을 굳이 ‘아이(兒) + 기름(育)’이란 얼거리로 ‘육아’란 한자말을 써야 하지 않는다. 우리말은 “아이를 기른다 = 아이기름”으로, “아이를 돌본다 = 아이돌봄”으로 나타내면 된다. 즐겨 찾는다고 하기에 ‘즐겨찾기(즐겨 + 찾기)’이고, 새롭게 본다고 하기에 ‘새로보기(새로 + 보기)’이다. 책 하나를 돌려서 읽는다면 ‘돌려읽기(돌려 + 읽기)’이다. 책을 깊이 읽으니 ‘깊이읽기(깊이 + 읽기)’이다. 말짓기란 투박하고 수수하면서 쉽다. 아이 곁에서 아이하고 나란히 설 뿐 아니라, 아이를 어른하고 똑같은 ‘숨빛(생명)’으로 바라보려는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고 기쁘게 오늘을 지으려는 살림자락을 그저 투박하고 수수하고 쉽게 ‘아이곁(아이 + 곁)’으로 나타낸다.


+++


아이곁 (아이 + 곁) : 아이 곁에 있음. 또는 아이 곁에 있는 어른이나 어버이. 아이가 누릴 삶을 헤아리면서, 아이가 스스로 살림을 가꾸는 사람으로 자라나도록 곁에서 지켜보고 살펴보고 돌아보면서 차근차근 이끌거나 도우면서 함게 즐겁게 살아가려는 길을 나타내는 말. (= 아이사랑·아이돌봄··아이봄아이기름. ← 육아, 탁아, 양육, 육영, 훈육, 보육)


아이사랑 (아이 + 사랑) : 아이를 사랑함. 또는 아이를 사랑으로 마주하거나 맞이하거나 낳거나 함께하거나 보금자리를 일구는 길·하루·삶·숨결·눈빛·마음. 아이가 누릴 삶을 헤아리면서, 아이가 스스로 살림을 가꾸는 사람으로 자라나도록 곁에서 지켜보고 살펴보고 돌아보면서 차근차근 이끌거나 도우면서 함게 즐겁게 살아가려는 길을 나타내는 말. (= 아이곁·아이돌봄·아이봄·아이기름. ← 육아, 탁아, 양육, 육영, 훈육, 보육)


아기돌봄 (아기 + 돌보다 + ㅁ) : 아기를 돌보는 일. 아이가 누릴 삶을 헤아리면서, 아이가 스스로 살림을 가꾸는 사람으로 자라나도록 곁에서 지켜보고 살펴보고 돌아보면서 차근차근 이끌거나 도우면서 함께 즐겁게 살아가려는 길. (= 아기봄·아이곁·아이기름. ← 육아, 탁아, 양육, 육영, 훈육, 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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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요새 ‘놉’이란 말을 아는 분은 드물리라. 어린이나 젊은이라면 모를 테고, 책을 꽤 읽었으면 얼핏 스쳤을 수 있으나, 잊히는 낱말 가운데 하나이다. 요샛말로 한다면 ‘품팔이·날품팔이’쯤이요, 지난날 지난삶을 돌아본다면 ‘가난하고 땅이 없이 하루하루 품을 팔아야 겨우 입에 풀을 바를 수 있는 살림인 사람’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낱말책을 여미는 일을 하니 ‘놉’이라는 낱말은 알았되 딱히 쓸 일은 없었는데, 2011년에 전남 고흥 시골집에 깃들고 나서 ‘놉’이란 말을 마을 할배한테서 새삼스레 들었다. 마을 할배가 어릴 적하고 젊을 적에는 땅도 집도 없어서 이 집 저 집 빌붙으면서 ‘놉’을 오래도록 팔다가, “이제 이렇게 마을 귀퉁이에라도 집을 지어서 사오.” 하고 푸념이 섞였으나 숨을 다 돌린 듯이 말씀을 하시더라. 그렇다. 시골마을을 보면 귀퉁이나 기스락에는 언제나 가난집이게 마련이다. 시골에는 ‘이장’이 있고 ‘부녀회장’이 있다. ‘놉내기(놉을 팔거나 머슴으로 일한 사람)’ 가운데 ‘이장·부녀회장’으로 뽑혀서 일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예 없지는 않으나 아주 드물리라 본다. 시골 면장·읍장은 어떨까? 시골 군수는 어떨까? 시장이나 도지사 같은 사람은 어떨까? 까마득한 옛날일 수 있는, 1950∼60년대까지 놉내기로 살던 분들은 아직도 뒷전으로 밀린다. 그리고 놉내기를 따돌리면서 우쭐거리는 한줌 힘을 드날리던 분들이 고스란히 남은 시골마을은 차츰 늙어서 사라진다. 얼른 사라질 노릇이다. 이런 시골이라면 사라져야 마땅하다. 2023.4.5.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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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책과 어른과 꼬마 : 어린이는 스스로 빛나는 씨앗이고, 어른은 스스로 피어나는 씨앗이지 싶다. 푸르게 빛나는 씨앗도, 푸름이를 돌보는 씨앗도, 모두 즐겁게 삶을 사랑하는 말 한 마디를 마음에 심는 슬기로운 생각으로 오늘을 열면 좋겠다. 어느 책을 손에 쥐더라도 아름말을 길어올리면서 아름씨를 품는 눈길이 되고, 우리를 둘러싼 아름책을 하나둘 알아보면서 아름글을 새로짓는 마음으로 거듭나는 숨결이 되면 좋겠다. 우리 삶터·마을·나라·땅·숲을 비롯해 우리가 쓰는 말글까지 허벌나게 망가졌고 무너졌고 비틀거리고 눈물지으면서 아프다.


아무것이나 먹지 않으려는 마음이 되는 우리라면, 아무 말이나 쓰지 않으려는 마음이 될 우리여야 아름답겠지. 어느 것을 먹든 스스로 사랑이라는 마음이 될 우리라면, 어느 책을 읽든 스스로 사랑이라는 꽃씨를 심는 우리일 적에 즐겁겠지.


‘꾀·꾀다·꼬리·끝·꼴·꼴찌’로 잇닿는 말밑을 풀면서 ‘꽃·꼬마’로 매듭을 지었는데, 어린이를 따사로이 바라보면서 보살피려는 숨결을 담아 ‘꼬마’라는 낱말을 지었겠다고, 여리고 어리고 작은 목숨을 더 눈여겨보며 사랑하려는 숨빛을 얹어 상냥하면서 어질게 ‘꼬마’라는 이름을 붙였겠다고 느꼈다. 다만, 이렇게 말을 지은 오랜 눈빛을 잊은 어른이 너무나 확 줄어버리거나 사라졌을 뿐일 테고.


우리는 어떤 우리말을 쓰는 어른이자 사람일까? 우리는 “아무 우리말”이나 쓰는가, “생각하는 우리말”을 쓰는가, “사랑하는 우리말”을 쓰는가, “꿈씨앗을 심는 우리말”을 쓰는가, “힘잡이(권력자) 우리말”을 쓰는가, “낡은 일본말씨 우리말”을 쓰는가, “재패니쉬나 콩글리쉬 우리말”을 쓰는가? 2021.6.9.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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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책과 어린이와 나무 : 나는 예전에 큰고장(도시)에서 살 적에 “책을 안 챙기고 다니는 사람하고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하고 말했지만, 아이를 낳아 돌보고부터는 “어린이 마음으로 눈길을 헤아리지 않는 사람하고는 할 얘기가 없다”고 생각·말·삶을 바꾸었고, 시골에 보금자리를 옮기고부터는 “나무를 바라보지 않는 사람하고는 말을 섞을 생각이 없다”고 생각·삶·말을 바꾸면서 산다. 큰고장에 살면서 버스나 전철을 탈 적에 손전화만 들여다보거나 종이새뜸만 들춘다면 마음이 얼마나 메마를까. 아이를 낳아 돌보는데 홀가분히 웃고 떠들며 쉽고 상냥한 말씨로 노래하지 않는다면 마음이 얼마나 가난할까. 시골에 살든 서울에 살든 나무 곁에 서서 줄기를 부드러이 쓰다듬고는 뺨을 가볍게 대며 “사랑해” 하고 속삭일 줄 모른다면 넋이 얼마나 캄캄할까. 책은 삶을 갈무리한 열매요, 어린이는 사랑을 노래하는 씨앗이요, 숲(풀과 나무)은 살림을 짓는 집인걸. 2021.6.7.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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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베껴쓰다 : 저녁에 갑작스레 전화를 받는다. 지난 2019년에 나온 어느 ‘어린이 동시꾸러미’에 실린 어느 어린이 글이 어느 출판사에서 낸 책에 실린 글(어른이 쓴 동시)을 고스란히 베낀 줄 뒤늦게 알려져 말썽이 되었기에 ‘그 아이가 썼다는 글’을 지워야 한단다. “그렇군요. 그런데 아이는 그렇게 베껴쓸 수도 있는데, 부디 그 아이하고 그 아이를 맡았던 샘물님(교사)하고 새롭게 배우는 길이 되면 좋겠네요.” 하고 이야기했다. 나는 ‘베껴쓰기(필사)’를 안 좋아할 뿐 아니라 아예 안 한다. 베껴쓰기로는 하나도 못 배우니까. 하려면 ‘배워쓰기’를 해야 할 뿐이다. 배우려고 쓸 뿐, 베끼려고 쓰면 스스로 바보가 된다. 아이야, 알렴. 네가 쓸 수 있는 글이 얼마나 아름다운데 고작 다른 사람 글을 베껴서 네 이름을 붙이니? 다른 사람이 쓴 글이 아름답구나 싶으면, 그 아름다운 숨결을 배워서 네 나름대로 새롭게 쓰기를 바라. “맞춤길이나 띄어쓰기는 다 틀려도 좋아. 그저 네 숨결을 노래하면 돼. 우리는 잘나려고 글을 쓰지 않아. 우리는 핑계를 대거나 투덜거리려고 글을 쓰지 않아. 우리는 돈을 벌려고 글을 쓰지 않아. 우리는 이름을 팔려고 글을 쓰지 않아. 우리는 오직 스스로 사랑하면서 이 사랑이 즐겁게 흘러넘쳐서 온누리가 푸르게 우거지는 숲으로 나아가는 길에 한손을 거들려고 글을 써. 우리는 스스로 숲이 되고, 하늘이 되고, 바다가 되고,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고, 빗물이 되고, 풀꽃나무가 되고, 새가 되고, 별빛이 되고, 눈송이가 되다가, 어느새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오를 꽃씨가 되려고 글을 쓰지.” 이런 이야기를 어느 어린이, 이제는 푸름이가 되었을 그 아이한테 들려주고 싶다. 2021.5.31.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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