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넋 / 숲노래 책빛 2023.3.13.

책하루, 책과 사귀다 169 동업자 정신



  책마을을 망가뜨리는 길 가운데 하나는 ‘동업자 정신’입니다. 이른바 ‘암묵적 룰’이라 하면서 ‘좋게좋게 봐주자’고 하는 울타리(카르텔)가 있어요. 아끼려는 마음이 나쁠 까닭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책마을은 오래도록 ‘꼰대 술꾼’을 ‘어른으로 모시’면서 ‘술 따르는 젊은 아가씨 붙이기’를 일삼았어요. 예전에 나온 ‘창비시선’을 보면 책끝에 붙은 ‘풀이(해설)’에 글꾼(시인·소설가·평론가·기자)이 모여 질펀하게 술판을 벌인 뒷얘기가 참 자주 나오는데, 하나같이 엉큼하고 다랍습니다. 사람들은 ‘고은’ 하나만 알 테지만, 누가 고은한테 술을 사주고 함께 밤새워 술지랄을 떨었을까요? 요새는 예전처럼 술판은 안 할는지 모르나 ‘서로 치켜세우는 서평·추천’이라는 ‘동업자 정신’이 넘실거립니다. 아니, ‘좋게 서평·추천하기’는 무척 오래되었습니다. 어느덧 ‘서평단’을 대놓고 할 뿐 아니라 ‘서평단 클럽’까지 목돈을 들여 꾸립니다. ‘두레’가 아닌 ‘동업자 정신’입니다. 끼리질(문단 카르텔)을 쌓을수록 사람들은 책하고 등질 텐데, 가만 보면 ‘책다운 책하고 등지는 사람이 늘수록, 엉터리 장사책이 판치는 셈’이지 싶어요. 돈·이름·힘을 쳐다보고 바라면서, 살림·사람·숲을 짓밟는 책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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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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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68 빛날책



  이제 ‘케익’이란 이름인 먹을거리를 살짝 먹을 수 있습니다만, 싸움판(군대)에 끌려간 스물한 살 때까지 아예 못 먹었습니다. 싸움판에 끌려간 첫해 한겨울에 눈밭을 하염없이 걸으며 멧골을 끝없이 넘는데요, “이 눈은 케익이야. 난 이 눈케익을 즐겁게 먹으면서 마지막까지 걸어내고 말 테야.” 하고 생각했어요. 뜨거운물도 그릇에 담자마다 식어버려 이내 얼어붙던 강추위에 눈을 훑어먹고서 여덟 달 뒤에 비로소 말미(휴가)를 얻어 밖에 나왔어요. 동무한테 “나 케익 사 줘.” 하고 얘기했고, 커다란 ‘생크림케익’ 두 판을 혼자 먹어치웠습니다. 다만 그 뒤로 케익을 따로 먹지는 않아요. 제 몸에서 안 받거든요. 아마 아홉열 살 무렵일 텐데, 우리 아버지가 작은아들 태어난날이라며 거나한 채 케익을 사오셨고 어머니는 “에그, 그 아끼는 작은아들이 케익을 먹으면 배앓이를 하고 게우는데, 또 사왔네.” 하며 혀를 차셨어요. 이날도 어김없이 배앓이를 하고 게우며 눈물범벅이었어요. 저한테 ‘태어난날(생일)’은 눈물투성이입니다. 누가 난날을 기리자고 하면 “어느 하루만 아닌, 모든 날이 아침에 새로 눈뜨니 빛날(생일)이에요.” 하고 말해요. 하루를 기리는 빛날책도 좋을 테지만, 저는 ‘온날책’이 한결 마음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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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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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67 길에서



  어디를 가더라도 길에서 그야말로 한참 보냅니다. 전남 고흥에서 가장 가까운 순천 마을책집으로 가려 해도 길에서 두어 시간을 들이고, 서울라면 예닐곱 시간을, 부산·부천·인천·수원이라면 일고여덟 시간을, 대구라면 여덟아홉 시간을, 광주라면 너덧 시간을, 장흥·벌교라면 서너 시간을, 진주·전주라면 대여섯 시간을, 강릉·구미로 갈 적에는 열한 시간을, 영양으로 갈 적에는 열두어 시간을, 포항·음성·원주·청주로 갈 적에는 열 시간을, 넉넉히 길에서 씁니다. 큰고장에서 산다면 길에서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하루를 쏟지는 않으리라 봅니다만, 시골에서 살기에 여느 때에 느긋하게 풀꽃나무하고 해바람비를 맞이하고 누려요. 예전에는 길에서 책만 읽었으나, 아이들이 곁에 오고 나서는 아이들한테 주고 이웃님한테 건넬 노래꽃(동시)을 쓰고, 요새는 꽃글(동화)을 함께 씁니다. 뭐, 그렇지요. 고흥서 서울을 다녀오자면 길에서 열서너 시간을 보내는데, 이동안 낮잠도 누리고 책도 읽고 노래도 듣고 글도 쓰고 생각에 잠겨요. 여느 때에 하지 못한 손전화 쪽글도 이때에 몰아서 보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길을 오가며 들꽃 곁에 쪼그려앉거나 나무 곁에 서서 소근소근 말을 걸고, 두 팔을 하늘로 뻗어 바람을 주무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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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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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넋

책하루, 책과 사귀다 166 읽는 눈길



  살아온 숨결대로 읽고, 살아가려는 숨빛대로 읽습니다. 이제껏 살아온 걸음을 돌아보면서 읽고, 앞으로 살아갈 걸음을 헤아리면서 읽습니다. ‘꾼글(전문가 비평)’은 거의 ‘이웃나라 눈길(서양 이론)’에 맞추어 재거나 따집니다. 꾼글에는 “읽는 눈길”이 없다시피 합니다. 모든 사람은 삶이 다르고 살림이 새롭게 마련이지만, 꾼글에는 꾼 스스로 다르면서 새롭게 살아가거나 살림하는 마음이 흐르지 않더군요.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라면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 눈”으로 읽고 쓰고 말하면 됩니다. 아이는 없이 즐거이 살아가는 어른이라면 “아이 없이 즐거이 사는 어른 눈”으로 읽고 쓰고 말하면 돼요. 서울에서는 서울 눈길로, 시골에서는 시골 눈길로 읽을 노릇입니다. 인천은 인천 눈길로, 대전은 대전 눈길로 읽으면 넉넉해요. “내 마음대로 읽으면 안 되지 않나요?” 하고 걱정하는 분이 참 많습니다만, “저마다 사랑이라는 마음으로 즐겁게 읽을 길”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내 마음대로”가 아닌 “사랑이라는 내 마음으로” 읽습니다. “그냥 내 멋대로”가 아닌 “즐겁게 사랑하는 내 멋으로” 읽어요. 아이는 읽고, 어른은 어른으로서, 어버이는 어버이로서 읽습니다. 우리는 우리 눈빛을 밝힐 적에 스스로 눈부십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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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넋

책하루, 책과 사귀다 165 읽는 마음



  모든 사람은 다릅니다. 똑같은 사람뿐이라면 글을 쓰거나 말을 할 까닭이 없고, 책을 내거나 읽거나 옮길 까닭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르니, ‘똑같은 책을 나란히 읽더라’도 ‘모든 사람이 다 다르게 바라보고 느끼고 받아들입’니다. 모든 사람이 어느 책 하나를 똑같이 읽고 받아들이고 생각해야 할까요? 다 똑같이 ‘울컥(감동)’해야 한다고 여기면, 이는 짓밟기(폭력)라고 여깁니다. 푸름이(청소년)한테 똑같은 머리카락·옷차림을 시키는 짓은 하나도 어른스럽지 않습니다. 깡똥치마를 두르든 깡똥바지를 꿰든 긴치마나 긴바지를 입든 푸름이 스스로 고를 노릇입니다. 사람하고 사람으로서 겉모습이나 옷차림이 아닌 마음빛으로 마주하고 바라보면서 만날 노릇입니다. ‘읽는 눈길’은 누구나 틀림없이 다르지만 ‘읽는 마음’은 외려 똑같습니다. 왜 똑같을까요? ‘글쓴이(책쓴이)가 남기거나 들려주려는 사랑을 읽으려는 마음’이 똑같습니다. 다만, 글쓴이가 들려주는 사랑은 ‘누구나 다 다르게 읽’되 ‘사랑을 읽으려는 마음이 같다’는 소리입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르게 살아가다가 어느 날 문득 ‘똑같은 책’에 눈이 꽂혀서 즐겁게 읽은 뒤에 나눌 말이란 ‘똑같’을 수 없습니다. ‘읽는 삶’이 다르니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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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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