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노래] 에어컨


1986.7.25. 은행에 들어갔더니 서늘하다. 춥다. 아, 에어컨이라는 것을 틀었구나. 은행에 있는 분들은 모두 긴소매를 입었고, 나만 반소매에 반바지이다. 은행 볼일을 마칠 때까지 추워서 떨었다. 드디어 바깥으로 나오니 숨이 트인다. 크게 숨을 몰아쉰다. 에어컨 때문에 은행 심부름을 가고 싶지 않다.


1993.8.12. 동무들은 에어컨이 나오는 곳에 들어가더니 아주 좋아라 한다. “아, 이제 좀 시원하네!” 한다. 나는 에어컨을 쐬고 싶지 않아서 책을 편다. 책을 펴서 읽으며 에어컨을 잊기로 한다.


2008.8.31. “에어컨 없이 아기를 어떻게 키워?” “부채질을 해 주면 됩니다. 창문을 열고서 바람을 쐬면 한결 시원하고요.” “돈이 없어서 그래? 에어컨 사 줄까?” “아니요. 에어컨은 우리 몸에 안 좋은 줄 저부터 살갗으로 느끼기에 안 쓸 생각이에요. 바람이 싱그럽게 불면서 풀내음을 베풀어 주는 곳에서 살도록 돕는 돈을 주신다면 고맙게 받겠습니다.”


2010.9.12. 시골에서 다니는 시골버스에 손님이 하나뿐인데 에어컨을 틀어 놓으신다. 나 때문인가? 버스일꾼한테 “에어컨 꺼 주셔도 됩니다. 창문바람이 시원해요.” 하고 여쭈지만 에어컨을 그대로 켠 채 달린다.


2019.6.25. 들바람·숲바람·바닷바람이 얼마나 상큼하게 우리를 간질이며 땀을 떨구어 주는가 하는 길을 잊어버리게 내모는 것은 바로 ‘에어컨’. 에어컨 아닌 ‘바람’을 쐬면서 아픈 사람은 없다. 아니, 에어컨을 쐬니 아픈 사람이 불거진다. 바람을 쐬니 아픈 데를 고친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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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1998.6.5. 책을 들려주는 글이란, 언제나 우리 삶을 밝히는 노래이지 싶다.


2006.12.13. 우리가 책읽기에 눈을 뜬다면 글쓰기에도 저절로 눈을 뜬다. 우리가 마음읽기에 사랑을 쏟는다면 삶읽기에도 나란히 사랑을 쏟는다. 우리가 생각을 새롭게 읽는 숨결로 나아간다면, 돌 바람 물 해 별이 속삭이는 이야기를 듣고서, 이를 글로 옮길 수 있다.


2016.5.2. 참말로 ‘서평’이라면, 책을 이야기하는 글이라면, 주례사를 늘어놓지 않는다. 참말로 새 가시버시 앞길에 사랑이 흐르기를 바라는 말이라면, 말하는 이부터 스스로 눈물에 젖고 웃음이 흐르면서 춤추듯이 노래하는 말을 주례사로 편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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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2014.3.7. “어떻게 그렇게 날마다 글을 잔뜩 쓰시나요?” “날마다 새로운 하루인걸요. 저는 새벽 두 시쯤이면 하루를 열어요. 하루를 열 적에는 어제까지 무엇을 했는지 까맣게 잊지요. 언제나 오늘 할 일만 그리면서 눈을 떠요. 그러니 새로운 하루에 새롭게 피어나는 이야기를 오롯이 새로운 마음으로 써냅니다. 이런 하루를 마감하면 이튿날도 또다시 오롯이 처음인 새로운 하루이니 또 신나게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서 쓰고요. 책읽기도 마찬가지예요. 어제까지 얼마나 읽었는가를 모조리 지웁니다. 오늘 하루 새로 읽을 삶만 생각해요. 종이책이든 숲책이든 살림책이든 사랑책이든 어제까지 읽은 책은 어제란 자리에 내려놓고소, 오늘 읽으면서 오늘 하루를 살찌울 이야기를 기쁘게 받아들여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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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2007.4.5. 사진이란 삶을 사랑하는 빛. 이 빛살이 넘쳐흘러 가슴이 풍덩 잠기도록 출렁거리는 이야기꾸러미가 사진책.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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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치기

2019.6.2. 고흥읍에 나와서 볼일을 보고 고흥군립도서관 옆에서 책을 읽는다. 마침 아는 이웃님이 여덟 살 아이하고 지나가려다가 나를 알아본다. 아이가 학교에서 시킨 숙제 때문에 도서관에 왔다고, 학교에서 읽고 독후감을 쓰라 하는 책이 목록에는 있으나 막상 책꽂이에 없단다. 더군다나 도서관 일꾼이 ‘밥을 먹어야 하니 나가’ 달라 해서 도서관에서 나온단다. 말씀을 가만히 듣는데 어처구니없다. 열린도서관이요 나라돈을 받는 이곳에서 도서관지기는 서로 갈마들면서 자리를 지키지 않나? 도서관지기가 밥을 먹어야 하니 책을 찾아서 읽던 사람더러 밖에 나가서 도서관지기가 밥을 다 먹고 돌아올 때까지 자리를 비워야 하나? 이런 도서관 얼거리는 여태 어디에서도 들은 일이 없다. 그런데 더 어처구니없는 일은 여덟 살 어린이가 아직 읽기가 안 익숙한데 학교에서 담임이 ‘독후감 숙제’를 시켰단다. 책을 못 읽는 어린이더러 책을 읽고, 더구나 한글을 아직 못 쓰는 어린이더러 손수 느낌글을 써서 내라더라.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고흥초등학교 교사는 초시계를 손에 쥐고서 ‘20초 만에 다 읽기’를 시켜서 점수를 매긴단다. 초치기를 해서 읽기를 해내지 못하는 아이는 놀림을 받고 ‘왕따’까지 된단다. 이야, 참, 고흥이라는 고장, 고흥군립도서관이라는 곳, 고흥초등학교라는 데, 참 대단하다. 2019년 대한민국 모습이 맞나? 어린이한테 나긋나긋 차근차근 또박또박 책을 읽어 주어 소리가 익숙하도록 해야 할 학교가 아닌가? 영어를 처음 배울 어린이더러 영어책 못 읽는다고 닦달을 하나? 영어를 못 알아듣는다고 초시계를 들고서 들볶나?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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