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5.28. 아직 아니어서 이제



  아직 살아내지 못 하거나 해내지 못 하기에 “내가 그런 이름을 써도 되나?” 하고 망설일 만하다. 그러나 아직 살아내지 못 하기에, 이제부터 살아내면 된다. 아직 해내지 못 하니까, 이제부터 해보면 넉넉하다. 아직 모르니까 이제부터 차근차근 배운다. 아직 헤매니까 이제부터 천천히 익히면서 가다듬는다.


  아직 아니어서 이제 길을 나선다. 아직 어지러우니 이제 쉰다. 아직 어려우니 더 다가서서 들여다보고 살펴보고 헤아린다. 아직 엉성하니 손끝에 힘을 모두어 새롭게 추스른다. 아직 섣부르니까 고개를 숙인다. 이제 할 만하더라도 넙죽넙죽 절을 하면서 고맙다고 여쭌다. 아직 엉성한 줄 느끼니 언제나 다독이면서 새삼스레 받아들인다. 이제 길을 틔우기에 이웃과 동무를 불러서 나란히 나아간다.


  아직 아침이 아니다. 아직 밤이다. 아직 어두우니 고요히 숨을 돌리면서 이 밤에 꿈을 그린다. 아직 캄캄하기에 가만히 눈을 감고서 새하루를 어떻게 맞이할는지 돌아본다.


  아직 저녁이고 아직 낮이다. 아직 때가 있다.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하면서 스스로 일어선다. 아직 멀었으니 갈 곳이 까마득하다면, 이제부터 걸어갈 머나먼길을 노래하고 춤추면서 더욱 느긋이 누리려고 한다. 아기는 아직 어리다. 아이도 아직 어리다. 철들어 어른으로 거듭나더라도 아직 어린다. 어질거나 슬기로운 어른이더라도 아직도 배울 뿐 아니라, 앞으로도 기쁘게 익히는 걸음걸이가 반짝인다.


  누구나 오늘이 끝이 아니다. 누구라도 하루아침에 끝맺지 않는다. 너도 나도 오늘을 살아내고, 어제를 지내었고, 모레를 기다리면서, 이제 기지개를 켠다. 같이 가 보자. 함께 손을 잡자. 두런두런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이 길을 우리가 열자.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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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5.22. 새벽새



  새벽 두어 시 사이로 새소리가 갈마든다. 이즈음이면 밤새소리가 천천히 잦아들고 낮새소리가 하나둘 늘어난다. 새벽 너덧 시 무렵이면 거의 바뀌고, 대여섯 시를 건너가며 새날이 무르익는 줄 느낀다.


  먼먼 옛날부터 누구나 새를 곁에 품으면서 하루를 읽었다. 새가 노래하는 때에 따라서 바람결을 읽고 햇길도 읽었다. 이제 웬만한 사람들은 때바늘(시계)과 손전화를 곁에 두느라 새를 멀리하고 잊는다. 새바라기를 하는 분은 새만 볼까? 아니면 때와 철과 바람과 햇길을 나란히 바라볼까?


  시골이더라도 읍내만 나오면 서울스럽고 매캐하다. 시골이더라도 웬만한 마을집은 서울집을 흉내낸다. 오히려 서울 곳곳이 시골스러운 빛을 담아서 쉼터로 바뀌려 한다. 팍팍한 서울이기에 서울에 붙들려고 서울은 곳곳에 풀꽃나무를 둔다면. 짙푸르던 시골은 얼른 사람들을 서울로 몰아내고서 벼슬아치들이 뒷돈을 돌라먹으려고 이 숲터를 망가뜨린다.


  두멧시골에 살기 앞서까지는 설마 싶었으나, 고흥살이 열다섯 해를 돌아보자니 이 나라 시골은 “시늉만 귀촌 환영”일 뿐이고 “귀촌자 숫자”로 “군청에서 정부보조금을 타낼 혓바닥”을 놀리더라.


  너는 뭘 알아보니? 난 뭘 알아볼까?


  책을 새로 낸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은 열 해 걸려서 쓰고 손질해서 내놓았고, 《미래 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은 일곱 해 걸려서 쓰고 손질해서 내놓는다.


  새벽새는 새벽을 노래하는 새이다. 나는 새벽사람이다. 여덟 살에는 새벽 여섯 시부터 걸어서 어린배움터에 갔고, 열두 살부터는 새벽 다섯 시 삼십 분부터 걸어서 배움터에 갔다. 열네 살부터는 푸른배움터에 다섯 시 반에 닿도록 걸어갔다.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일한 스물한 살에는 새벽 네 시부터 하루를 열었고, 싸움터(군대)를 다녀온 스물네 살에는 새벽 두 시 반부터 새뜸나름이로 달렸다.


  아이를 하나 낳고 둘 낳으면서 하루를 새벽 한 시에 연다. 다만 아이들이 일어나는 여덟 시 무렵에 살짝 눈붙이고서 다시 일한다.


  새벽에 새벽새를 만난다. 아침에 아침새를 마주한다. 새벽노래를 따라서 새길을 나선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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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4285756
(우리말과 문해력)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9869162
(말밑 꾸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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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5.26. 봄소리 건너



  따뜻봄이 저문다. 곧 더운여름이다. 여름이니 덥게 마련이고, 땀흘리면서 몸을 북돋우고 살린다. 땀없는 여름이란 찌꺼기를 안 내보내느라 그만 속으로 곪는 굴레이게 마련이다.


  하늘을 열고 싹과 눈과 움을 틔우는 여름에는 모두 찬찬히 자란다. 볕을 받아들이기에 풀꽃나무가 싱그럽고 햇볕을 쬐기에 뭇숨결이 빛난다. 새벽이슬을 머금으니 곱게 반짝인다. 새벽을 지나 아침에 이슬을 모르는 채 하루를 보내니 어느새 속으로 곯는다.


  봄소리가 천천히 저문다. 여름소리가 이제 다가온다. 밤낮으로 뭇새가 노래를 베풀고, 나뭇잎은 바람을 반기면서 온하루를 춤으로 보내다가 저물녘이면 함께 꿈길로 간다.


  글책 건너에 바람책과 바다책이 있다. 그림책 너머에 하늘책과 잎책이 있다. 사진책 둘레로 벌레책과 나비책이 있다. 모든 이야기책은 하루책이고, 모든 낱말책은 오늘책이요 살림책이다.


  서울에도 시골에도 새가 날아앉아서 쉬어갈 수 있기를. 쉬어가는 모든 새가 노래할 틈이 있기를.


ㅍㄹㄴ


https://www.instagram.com/p/DKGFOhUTaG5/


손전화에 담은 그림을 옮기지 못 하는 바람에

인스타하고 이어놓는다.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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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5.23. 칼에 가둔 몸



  합천 어린씨랑 어른씨를 만나고서 이틀에 걸쳐서 이야기꽃을 폈다. 진주랑 순천을 거쳐서 고흥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순천버스나루에서 열린뒷간을 들어가는데, 똥을 누고서 그대로 내뺀 자국을 본다. 서울에서도 부산에서도 고흥에서도 이 나라 어디에서도 흔히 보는 모습이다. 돌이쉼칸(남자화장실)만 이럴까? 순이쉼칸(여자화장실)도 물을 안 내리는 분이 적잖다고 듣는데, 시골집처럼 퍼내는 뒷간을 쓰기에 물내림쉼칸을 이 꼴로 해놓는가 싶어 갸우뚱한다.


  이따금 생각에 잠긴다. 책을 안 읽으니 밑동(기본예절)이 없을까? 책을 읽어도 밑동이 없을까? 새롭게 배우고 익혀서 스스로 빛내려는 마음이 있다면, 밑동이 든든히 서는 나무를 담은 ‘나’이리라. 안 배우고 안 익히느라 그저 빛바랜 채 버릇대로 길든 삶이라면, 제 마음도 안 들여다보면서 스스로 망가지느라 ‘나’가 사라지면서 나뒹굴지 싶다.


  시외버스에서 책을 읽으려다가 내처 잤다. 시외버스를 한참 타야 하니 조금은 자고 조금은 기지개를 켜면 될 테지.


  칼은 도마를 놓고 밥을 지을 적에 쓸 일이다. 몸에 칼을 대면 스스로 죽겠다는 뜻이다. 몸에는 포근히 어루만지는 손길을 대어 살살 살려야지 싶다. 칼을 대어 바꾸거나 꾸미면 그만 몸에 갇힌다고 느낀다. ‘미운몸’이란 없기에 미운몸을 고칠 까닭이 없다. ‘예쁜몸’이란 없으니 예뻐 보이도록 꾸밀 까닭이 없다.


  나무 한 그루에 맺는 잎은 모두 다르게 생겼다. 새로 돋는 풀싹은 저마다 다르게 생긴 잎빛이다. 우리는 나무처럼 잎처럼 풀처럼 모두 다르게 빛나기에 푸른넋이자 파란숨이라고 본다. 몸을 가두지 말고 살리자. 몸에 칼이 아닌 눈빛을 놓자. 손에 칼이 아닌 호미랑 붓을 쥐자.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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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5.22. 진주관광홍보물



  진주시외버스나루에 ‘진주관광홍보물’ 놓는 자리가 있고, 만화책이 덩그러니 있다. 2003년에 나온 빳빳한 만화책이다. 누가 놓았을까. 텅빈 자리가 쓸쓸하니 만화책을 펴며 쉬어가자는 뜻이겠지. 고이 모시던 만화책을 살살 넘긴다. 알뜰히 건사하던 책이로구나.


  문득 생각한다. 진주에 알뜰한 헌책집이 여럿 있다. 진주시청에서 이 여러 헌책집에서 손길책을 날마다 두 자락씩 사서 이 칸에 놓는다면 참 멋스러우리라 본다. 오며가며 읽고, 미처 못 읽으면 그냥 버스와 함께 길을 떠나고, 다 읽은 책은 버스마다 있는 그물주머니에 담고.


  손길책이 시외버스를 따라서 돌고돈다면, 어느 날 다시 진주로 올 테지. 또는 어느 책을 고이 품고 싶은 책벌레 곁으로 깃들 수 있다. 헌책집이 있는 모든 고장에서 이렇게 날마다 두 자락씩 손길책을 놓으면서 여러 사람하고 긴긴 마실길을 떠나 보라고 슬쩍 마음 한 자락 써 볼 수 있기를.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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