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2021.11.10.

헌책집 언저리 : 나루책집



  마을책집으로 찾아가다 보면 그 마을에서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는 분들이 오히려 그곳 마을책집을 잘 모르시곤 했습니다. “거기에 책집이 있다고요? 그런데 그 책집이 그렇게 오래되었다고요?” 하고 되물으시지요. 책을 무척 좋아한다는 분조차 마을책집을 잘 모르셔서 놀랐습니다. 커다란 책집만 다니기에 모를는지 모르고, 헌책집으로 책마실을 다닌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않아서 모를는지 모릅니다. 진주 고속버스나루 곁에 〈소문난서점〉이 있습니다. 어느덧 고속버스나루 ‘곁’에서 ‘2층’으로 옮겼는데, 예전에는 고속버스를 내리면 바로 ‘곁’에서 헌책집이 방긋방긋 손을 흔든 얼거리입니다. 이제는 버스나루나 기차나루 곁에 찻집·술집·밥집만 줄잇지만, 지난날에는 버스나루하고 기차나루 곁에 으레 헌책집이 줄지었습니다. 버스나루하고 기차나루 곁에 새책집은 이따금 있고, 참말로 헌책집으로 골목이나 거리를 이루곤 했어요. 1995년 무렵에 가게를 닫은 여러 ‘기차나루 곁 헌책집지기’님이 곧잘 “옛날에는 손님 많았지. 옛날에는 기차가 요새처럼 잦았나? 몇 시간이고 기다리기 일쑤였거든? 그러면 이 둘레에서 그때까지 보내야 한단 말이야. 그러니 서울이고 나라 어느 곳이건 헌책집에서 책을 보면서들 기다렸지. 헌책집이니까 가볍게 찾아오고, 가볍게 이 책 저 책 만지작거리다가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사는데, 옛날 기차가 오죽 느렸어? 그러니 기차에서 심심하잖아. 옛날에는 기차 손님이 책을 참 많이 사갔어. 그리고 책을 참 많이 팔았지. 부산에서 서울로 오는 손님이 기차에서 책을 다 읽고서 서울에서 책을 팔아. 또 서울에서 대전에 가는 손님은 기차에서 책을 다 읽고서 대전에서 책을 팔지. 그런데 이제는 기차 손님이 책을 안 사더라고. 그러니 우리 가게도 곧 닫으려고.”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차나루나 버스나루 곁에 헌책집이 줄잇던 모습을 그려 보았고, 참말로 그럴 만했구나 싶더군요. 오늘날에는 서울하고 부산 사이를 2시간이 채 안 되어도 휙 달리는 기차가 있습니다. 이렇게 휙 달린다면, 기차에서 느긋이 책 몇 자락 읽으면서 마음을 달랠 일도 줄거나 사라지겠지요. ‘느리게 달리던 기차나 버스’여서 책을 읽은 지난날이라기보다, ‘느긋하게 삶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길을 책에서 찾던’ 지난날이라고 해야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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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진주 소문난서점.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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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2021.11.10.

헌책집 언저리 : 책집고양이



  이제는 개나 고양이가 곁벗(반려동물)으로 책집에 함께 있기도 하지만, 지난날에는 개나 고양이가 섣불리 함께 있기 힘들었습니다. 반기거나 좋아하는 사람 못지않게 꺼리거나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서울 용산 〈뿌리서점〉 지기님은 길짐승한테 밥을 줄 생각도, 책집에 곁짐승으로 들일 생각도 없었습니다. 이러던 2003년 어느 날 길고양이가 책집 구석에서 새끼를 낳아 젖을 물리는 모습을 보았다지요. 처음에는 얼른 내쫓으려 했지만, 젖을 물리는 어미 고양이, 또 젖을 빠는 새끼 고양이를 보고는 차마 내쫓지 못했답니다. 어찌해야 하나 망설이다가 종이꾸러미로 집을 마련해 주고, 새뜸(신문)을 깔아 줍니다. 길고양이가 아무 데에나 똥오줌을 누면 책이 다치고 책에 냄새가 밸까 몹시 걱정스러웠지만, 새끼가 다 커서 떠날 때까지 고이 건사해 주었습니다. 이런 뒤에는 책집 바깥에 길고양이 밥그릇을 마련해 놓았어요. 〈뿌리서점〉을 날마다 찾는 단골이 묻습니다. “어, 여보게 김 사장, 자네 고양이 싫어한다고 안 했나?” “내가 언제 싫어한다고 했나.” “허허, 말 바꾸는 것 보소.” “저런 젖먹이를 어떻게 내보내. 여기서 새끼를 낳았는데 다 클 때까지는 밥을 줘야지.” “허허, 이제 동물애호가가 다 되셨구만.” “동물애호가라니. 누구라도 젖먹이 새끼를 보면 그냥 두고 밥을 줘야지.” 이때부터 여러 해 동안 길고양이가 헌책집을 드나들었는데, 문득 어느 해부터 발길을 끊습니다. 밥그릇을 내놓아도 그대로였다고 합니다. “얘들이 잘 사는가, 죽었는가 걱정이 되네. 여보 최 선생, 최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나? 얘들이 살았을까, 죽었을까? 밥을 먹으러 안 온 지가 한 달이 넘네.” 석 달 동안 밥그릇이 비지 않자 길고양이 밥그릇을 치우셨습니다. 이때 뒤로 〈뿌리서점〉 지기님한테 길고양이 이야기를 묻는 사람도 사라졌습니다. 아주 가끔 다른 길고양이가 책집 앞을 스치면 바삐 일하시다가도 한동안 이 모습을 지켜보시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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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서울 뿌리서점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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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2021.11.10.

헌책집 언저리 : 굴다리 헌책방



  이제 사라지고 없습니다만, 서울 공덕동 ‘굴다리’ 곁에 헌책집이 조그맣게 있었습니다. 굴다리 곁에는 ‘갈매기살 고기집’이 줄지었고, 이 끝자락에 골마루 하나만 있는 무척 좁은 헌책집이 있었지요. 헌책집이 있다고 할 적에는 그곳을 찾는 책손이 있다는 뜻입니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마을에서 찾는 발걸음이 있으며, 먼걸음으로 찾는 나그네도 있기 마련입니다. 부릉이(자동차)를 몰지 않기에 늘 걷거나 자전거를 탑니다. 볼일 때문에 지나가든, 다른 헌책집을 돌다가 지나가든, 일부러 골목 안쪽이나 마을 한켠을 걷습니다. 헌책집이 큰길가에도 있을 수 있지만, 웬만한 곳은 호젓하거나 조용한 데에 있어요. 공덕동 굴다리 곁에 있는 헌책집은 2000년 어느 날 처음 만났습니다. 그무렵은 출판사 영업부 일꾼으로 지내며 잔심부름을 도맡았는데, 새로 나온 책을 한겨레신문사에 가져다주고서 돌아나오다가 “공덕동 골목에도 헌책집이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하며 일부러 이 골목 저 골목을 돌다가 만났어요. 고기집이 아닌 헌책집에 책을 보러 온 젊은이를 놀랍게 바라보는 책집지기님한테 “사장님, 이곳은 책집 이름이 뭔가요?” 하고 여쭈었어요. “우리? 우리는 이름이 없는데? 그냥 ‘이름없는 책집’이야.” 이무렵까지 따로 알림판을 안 세우고, 전화번호도 없이, 조그맣게 꾸리는 마을 헌책집이 꽤 많았습니다. 그래서 ‘성북동 이름없는 헌책집’이라든지 ‘북가좌동 이름없는 헌책집’이라든지 ‘애오개 이름없는 헌책집’처럼 ‘이름없는 헌책집’ 앞에 그 책집이 깃든 마을이름을 붙이곤 했어요. 저는 이무렵 새로 만난 공덕동 ‘굴다리’ 곁 헌책집이 사랑스럽고 반가워서 혼자 〈굴다리 헌책방〉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 ‘장수갈매기 고기집’ 사장이자 ‘공덕동 이름없는 헌책집’ 사장인 분은 나중에 제가 붙인 이름을 여러 책손한테서 듣습니다. 공덕동 작은 헌책집을 찾아가는 길을 손으로 그림을 그려서 둘레에 돌리니, 여러 이웃님이 이곳을 찾아가서 “여기가 〈굴다리 헌책방〉 맞습니까?” 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하루일을 마치고 이곳을 찾아간 어느 날 저녁, ‘공덕동 이름없는 헌책집’ 지기님이 넌지시 묻습니다. “자네가 우리 가게를 〈굴다리 헌책방〉이라는 이름으로 말했는가?” “아! ‘이름없는 헌책집’이라고만 하기에는 이 예쁜 곳을 제대로 알리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이름을 함부로 붙여서 잘못했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 그래. 우리 가게 이름도 지어 주었는데, 저기 옆(장수갈매기)에 좀 가서 앉으시지? 책이야 나중에 또 와서 봐도 되잖아?” 이때 〈굴다리 헌책방〉 지기님이 ‘장수갈매기’ 지기인 줄 처음으로 알았고, ‘책값으로 살림돈을 늘 다 쓰느라 밥값이 없이 하루하루 살던 가난뱅이 책마실꾼’은 ‘고기에 밥에 술까지’ 푸짐하게 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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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서울 굴다리헌책방.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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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2021.11.10.

헌책집 언저리 : 그 많은 책집을



  “그 많은 책집을 어떻게 다 다녔어요?” 하고 여쭙는 분이 많으나 “아직 저한테는 제가 발을 디딘 책집보다 발을 디디려는 책집이 더 많습니다.” 하고 대꾸합니다. “네?” “다시 말하자면, 다닌 곳보다 못 다닌 곳이 훨씬 많아요.” “…….” “주머니가 닿는 대로 다녔습니다.” “주머니가 닿는?” “책집마실을 하자면 책값을 치러야 하고, 길삯을 치러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틈만 낸대서 책집을 다닐 수 있지 않아요. 책집마실을 할 수 있도록 책값부터 신나게 벌어야 합니다.” “…….” “설마, 책집으로 찾아가서 책을 안 사고 그냥 나올 생각인가요?” “…….” “책집마실을 한다면, 책집으로 가서 기꺼이 온갖 책을 돌아보다가 즐거이 두 손이나 가슴 가득 책을 장만해서 집으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아!” “다시 말하자면, 돈(책값)을 실컷 모아서, 또는 ‘없는 돈을 박박 긁어’서 책집마실을 했기에, 저는 ‘주머니가 닿는 대로 다녔다’고 말합니다.” “아!” “그래서 저는 ‘산 책’보다 ‘못 산 책’이 훨씬 많아요. 적어도 열이나 스무 자락쯤 서서 읽습니다. 이 책도 저 책도 다 장만할 만큼 주머니가 된다면 굳이 ‘서서읽기’를 안 할 텐데, 앞으로는 ‘앉아읽기’를 할 만큼 살림돈을 건사하자고 생각해요.” “…….” “누가 보면, 제가 책을 참 많이 산다고돌 하는데, 제 눈으로 보자면 저는 책을 되게 적게 삽니다.” “…….” “‘주머니가 닿는 대로’ 사야 하기에, 책집에서 눈물을 머금고서 제자리에 꽂는 책이 수두룩해요.” “…….” “어느 모로 본다면, ‘주머니가 닿는 대로’ 책집마실을 하면서 책을 장만해서 읽다 보니, 저절로 책눈(책을 보는 눈)을 스스로 키운 듯해요. 주머니가 가볍기에 ‘서서읽기’로 빨리 읽어내야 하고, 주머니가 가볍기에 ‘눈물을 머금으며 내려놓을 책’하고 ‘눈물을 짜내어 꼭 살 책’을 솎아야 하거든요.” 저는 아직 ‘그 많은 책집’을 얼마 못 다녔으나, 그래도 즈믄(1000) 곳은 넘게 다녔습니다. 10000에 이르는 책집을 다녀 보아야 비로소 “책집마실을 다녔습니다” 하고 말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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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서울 골목책방. 2003


사흘치 밥값으로 장만한 새뜸(신문)꾸러미.

"사흘쯤 굶어도 안 죽잖아?" 하고 생각했다.

숲노래가 책을 사는 길은 이렇다.

뭐, 며칠 굶고서 책을 사서 읽으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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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2021.11.10.

헌책집 언저리 : 고무신



  저는 고무신을 꿰고서 책집마실을 다닙니다. 아니, 저한테는 고무신만 있습니다. 꼼꼼히 따지자면 ‘고무’가 아닌 ‘플라스틱’이라서 ‘플신(플라스틱신)’입니다. 2010년 언저리까지는 고무로 찍은 고무신이 있었습니다만, 뒷굽이 쉽게 까져서 싫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말랑말랑한 플라스틱으로 가볍게 찍는 ‘플신’을 ‘고무신 모습’으로 내놓을 뿐입니다. 고무로 찍는 고무신은 중국에서만 나온다고 들었습니다. 서울·큰고장 이웃님은 “요새도 고무신을 파느냐?”고 묻습니다만, 시골 할매할배는 다 고무신을 뀁니다. 그런데 시골 읍내나 면소재지에 사는 이웃님도 “아직도 고무신이 있나요?” 하고 묻더군요. 고무신은 시골 저잣거리나 신집에서도 팔고, 서울 저잣거리나 신집에서도 팝니다. 다만 서울·큰고장에서는 ‘신집’에서 팔 뿐, ㄴ이나 ㅇ처럼 큰이름을 붙이는 데에서는 안 팔지요. 적잖은 분들은 “요새도 헌책집을 다니는 사람이 있느냐?”나 “아직도 헌책집이 있나요?” 하고 묻는데, 헌책집은 서울이며 나라 곳곳에 튼튼하고 의젓하게 있습니다. ‘알라딘 중고샵’이 아닌 ‘헌책집’은 신촌에도 홍대에도 있고, 여러 열린배움터(대학교) 곁에도 있으며, 안골목에 가만히 깃들어 책손을 기다립니다. 새로 나와서 읽히는 책이 있기에, 이 책이 돌고돌 징검다리인 헌책집이 있기 마련입니다. 고무신도 헌책집도 ‘흘러간 옛날 옛적 살림’이 아닌 ‘오늘 이곳 살림’입니다. 서울·큰고장 이웃님은 “요새도 흙을 짓는 사람이 있나요?”나 “아직도 시골에서 사는 사람이 있나요?” 하고 묻지는 않겠지요? 어쩌면 이렇게 물을 만한 분이 꽤 늘었다고도 할 텐데, 숲·들·바다가 있어야 서울·큰고장에서 사람이 살 수 있습니다. 새책집 곁에 헌책집이 있어야 책이 돌고돌 뿐 아니라, 오랜책으로 새롭게 배우는 살림길을 탄탄히 다스립니다. 발바닥이 땅바닥을 느끼기에 어울리는 고무신입니다. 오늘 이 터전을 어떻게 이루었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적에 아름다운가 하는 실마리하고 밑바탕을 ‘헌책·오래책·손길책’으로 되새기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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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서울 숨어있는책. 2005


한창 이오덕 어른 글을 갈무리하던 무렵,

자전거를 달려서 찾아간 헌책집.

충북 충주부터 서울 신촌까지.

내 신(고무신)은 자전거를 달려 주느라

엄청난 책등짐을 짊어진 몸을 걸어 주느라

언제나 가장 밑바닥에서

온힘을 다해 주었다.


땀하고 먼지에 전 고무신을 헹굴 적마다

이나라 책마을 밑자락에서

조용히 땀흘리는 헌책집지기를

가만히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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