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6.21. 찢어진 고무신



  바닥이 닳아서 물이 새지만 그냥 꿰었다. 아침에 고무신을 헹구는데 옆이 찢어졌다. 그래도 걸을 수 있다. 곧 사상나루에서 시외버스를 타면 딱히 걱정할 일이 없다. 올해 들어 꽤나 바지런히 걷고 두바퀴를 달렸지 싶다. 내가 꿰는 고무신은 으레 열한 달쯤 가는데, 올해에는 조금 일찍 갈아야 하네.


  짊어지고서 걷고 다시 걷고, 짐을 내리고서 숨돌리고 책을 읽고, 이러다가 글을 쓰고 생각에 잠긴다. 서울은 북적인다고 하지. 책잔치를 돈벌이로 삼아서 벼슬을 꿰차는 무리가 있어도, 이들을 감싸는 작은벼슬과 붓잡이(기자 + 작가)가 수두룩하다. 먼나라 책잔치에 찾아가는 숱한 붓잡이는 누가 댄 돈으로 날개를 타고다녔을까?


  불을 쥐려는 붓은 머잖아 재가 된다. 풀을 푸근히 품으려는 붓일 적에 비로소 포근한 품으로 빛난다. 불붓이 아닌 풀붓으로 하루를 그리는 이웃을 헤아려 본다. ‘서울국제도서전’을 손사래(보이콧)한다는 듬직한 붓은 아예 안 보이다시피 하는데, 우리 속모습이지 싶다. 몇날 반짝 책장사를 하면 목돈이 쏟아져들어오니, 판을 벌이는 무리도, 이 판에 나란히 어울리는 사람들도, 목돈벌이를 손사래치기 어려울 만하다.


  그래도 목돈벌이가 아닌 글쓰기와 글읽기를 그려 본다. 큰벌이나 작은벌이가 아닌, 느긋이 함께 일구면서 차분히 같이 가꾸면서 즐겁게 나란히 바꾸는 길을 돌아본다. 모든 숲은 처음에 작은 씨앗 한 톨이었으니까. 모든 숲은 온갖 나무가 어울리고 갖은 풀꽃이 물결치니까. 나는 오늘 새로 작은씨를 심어서 새숲을 이루자고 생각한다. 너도 함께 새삼스레 작은씨를 심으면서 파란별에 푸른숲을 생각해 보겠니?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6.20. 새벽 일손



  마을 할배가 새벽 네 시 무렵에 나물짐 도와줄 수 있겠느냐 물으시기에 그리하겠다고 여쭌다. 마을 할매 다섯 분은 이미 새벽 두 시부터 곤드레를 베셨지 싶다. 베어낸 곤드레는 자루를 갈라서 담고서 보쌈처럼 나물쌈을 한다. 다만 나물쌈 한 보따리는 30킬로그램 즈음 될 듯싶다.


  베고 담고 묶고 나르자면 젊은일손이 꽤 들 텐데, 이 시골에서 놉을 찾을 길은 드물다고 한다. 아니, 젊은 일손은 많다. 시골아이가 새벽에 함께 일하고서 일삯을 받으면 된다. 시골이기에 있는 시골밭일을 일철마다 일삯을 12∼20만 원쯤 받으며 신나게 해보면, 초·중·고등학교 가르침이 얼마나 쉽고 스스로 애쓸 길인지 느끼리라.


  굳이 시골에서 편의점이나 피시방이나 배달 곁일만 찾으려니 일자리가 있겠는가. 손발과 온몸을 흙과 바람과 숲과 해한테 맞추어 움직이는 배움길이야말로 서울에서는 아예 어림조차 못할 대단한 살림빛이다.


  흙을 만지면 손에 흙물이 든다. 흙물이란 싱그러이 살림물이다. 우리나라 헌책집 일꾼도 으레 까무잡잡 일손빛이었다. 일하는 손길에는 흙책과 땀책과 멧새책이 부드러이 감돈다. 오늘 새벽에도 꾀꼬리가 우렁차게 새날을 알려준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25-06-21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놀님 손을 보니 제가 부끄러워집니다.
‘놉‘이란 말을 오늘 여기서 처음 보고 알게 되었어요.
다른 글에서 ‘남새‘라는 말을 쓰신 것을 보고 풀과 같은 뜻 아닌가해서 사전을 찾아보기도 했는데 같은 뜻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파란놀 2025-06-21 09:30   좋아요 0 | URL
여러모로 보면 저부터 스스로 부끄러운 손입니다. 저는 어제 새벽에 고작 두 시간 반을 일손을 도왔을 뿐인데, 시골 할매할배는 늘 이보다 시커멓게 흙물이 들도록 일하시거든요. 그렇지만 일손을 거들거나 도울 적에는 따로 사진을 못 찍게 마련이라, 흙물 든 손으로 사진기를 못 쥐니까요, 집으로 돌아가서 얼른 씻고서 전남 고흥에서 부산으로 일하러 나서는 시외버스에서 숨돌리고서 손전화로 찰칵 남겨 보았어요.

시골 할매할배를 그리고 기리는 마음이라서, 이래저래 부끄럽기만 합니다.

시골일을 하는 어르신은 요새도 ‘놉’이라고 하셔요. ‘인부’ 같은 일본말을 모르시기도 하다고 느껴요. 여러모로 보면, ‘놉’은 ‘놈’하고 말밑이 같다고 느낍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
 

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6.20. 입틀막 하는 자유화



  서울에서는 예전 대통령이 ‘올라오시’면서 한껏 잔치판이라 한다. ‘서울국제도서전’을 사유화로 거머쥐려는 이들은 도종환 씨도 옆구리에 끼고서 활짝 웃는다. 이분들은 ‘도서전 사유화 반대’라는 작은소리를 내는 사람을 보고서 ‘관변단체’라거나 ‘출판노조’ 쪽 아니냐고 지청구를 한다.


  고개를 갸우뚱한다. 출판노조 사람이 어떻게 관변단체와 손을 잡지? 말이나 되는가? 예전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꾼을 거느려서 기념사진을 쏟아내어 새뜸(언론)에 뿌리는 이들이야말로 관변단체이지 않은가?


  작가와 출판단체라면, 누구를 지지하건 말건 누가 뽑히건 말건, 책잔치 자리에는 정치인과 지자체장은 그저 손님 하나로만 받아야 할 뿐, 기념사진도 기념사도 안 해야 마땅하다. 관변과 금을 그어야 책과 말이 제자리이지 않은가?


  책잔치 임자(주인공)는 유명작가나 대형출판사가 아니며, 이분들일 수 없다. 책잔치에는 예전 대통령이나 정치꾼이 찰칵찰칵 찍으면서 웃음마당을 벌이는 곳이 아니며, 이럴 수도 없다. 모든 글지기와 책지기와 책집지기와 책손, 이렇게 넷이 어깨동무로 너나없이 어울릴 노릇인 책잔치여야 맞고 마땅하다.


  ‘도서전 사유화(서울국제도서전·부산국제아동도서전)’가 거리끼지 않다면 ‘수다판(자유토론)’을 나라 곳곳에서 벌여야 마땅하다. 뒤(밀실)에서 기자들한테 밥사주고 모시면서 보도자료만 내는 일이야말로 관변단체 모습이라고 느낀다.


  ‘도서전 사유화 반대 이야기마당’을 막으려는 그들은 무엇이 구려서 숨겨야 하기에 안절부절을 못 하는지, 그야말로 딱하다. 반대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출판인 아닌가? 반대 목소리를 찍어누르려는 그대들은 관변일 뿐 아니라 독재라고 느낀다. 누가 입틀막을 하겠는가? 참(진실)이 두려우니 뒤에서 수군거리는구나 싶다. 참낯이 드러날까 싶어서 들숲을 모두 불태우려고 하는구나.


https://blog.naver.com/no_priv_sibf/223896590508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6.19. 사진을 받으면



  예전에는, 1993년까지 푸른배움터를 다니는 동안, 누구한테 찍히는 일은 매우 드물고 ‘내 사진’이 적었는데, 그나마 나는 조금은 있었다. 사진 한 자락 없는 동무가 수두록했다. 졸업사진에 처음 찍히고 주민등록증 받으려고 비로소 찍히는 동무가 흔했다.


  나는 1998년에 내 찰킥이를 장만해서 마을책집을 찍되 내가 나를 찍는 일은 참으로 드물다. 필름사진이 저물면서 비로소 내 사진을 얻는다. 더없이 고맙다.


  우리는 사진이 가볍고 넘치는 만큼 밥도 자가용도 대중교통도 학교도 이모저모 다 가볍고 넘친다. 굳이 무거워야 하지는 않다. 가벼운 만큼 누구나 누리며 살림길을 북돋우면 아름답고 즐거울 텐데, 어쩐지 자꾸 몇몇 손아귀에 붙들리는 돈벌이 굴레가 늘어난다고 느낀다.


  책을 왜 읽고 글을 왜 쓰나? 대학교를 왜 다녀야 하고, 입시학원에 아이를 왜 밀어넣어야 하나?


  가볍게 누릴 수 있는 터전이지만 정작 함부로 펴면서 스스로 빛을 잊고 잃지 싶다. 어느 책이든 읽으면 되고, 무슨 글이든 쓰면 되는데, 아무 책이나 읽으면서 아무 글이나 쓰지는 않는가? ‘아무 책’과 ‘아무 글’이란, “서울에서 돈과 이름과 힘을 얻는 길을 돕는 책과 글”이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6.18. 잔소리를 하다



  새뜸나름이(신문배달)를 한창 하던 1999년에 첫 이야기꽃(강의)을 폈다. 하루 두 시간 이야기로 그날 20만 원을 받았고, 새뜸나름이 일삯이 31만 원이었으니 목돈이다. 그때 나로서는 석 달치 책값을 번 셈이었다. 그날부터 오늘 2025년 6월 18일까지 이야기꽃을 꽤 폈는데, 오늘 처음으로 이야기를 멈추고서 잔소리를 했다.


  나는 혼자 말하기를 안 바라기에, 듣는 사람이 문득 말을 터뜨리면 기꺼이 기다리며 듣는다. 오늘은 초등3∼4년 어린씨가 수다조차 아닌 ‘함부로’를 10분쯤 이으시기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러고서 30분 동안 아뭇소리를 내지 말라 이르고는 잔소리를 나지막히 들려주었다.


  장난을 넘어설 만큼 마구 구는 아이를 보면, 집에서부터 사랑받지 못 하느라 쌓인 불길이 대단하다. 그래서 5분쯤은 불풀이를 해도 넉넉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혼자 10분 넘게 불풀이라면 학교에 다닐 까닭이 없다. 일자리를 찾아서 집을 일찌감치 떠나야지. 또는 엄마아빠한테 큰소리를 쳐서 아이 스스로 저희 집을 바꾸어야 한다.


  아이는 집에서 엄마아빠한테 큰소리로 “난 사랑받으려고 태어났어! 난 시달리거나 따돌림받으려고 태어나지 않았어!” 하고 외칠 노릇이다.


  나는 이미 어릴적에 우리 아버지한테 이렇게 외쳤고, 틈틈이 외쳤으며, 우리 아버지가 여든 살이 넘어도 철이 안 들기에, 아버지란 나한테 없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타이르거나 달래며 함께 살림을 지으려 하기에 잔소리를 한다. 잔소리란 살림소리이다. 잔소리를 못 받아들이는 사람은 언제나 속없이 겉치레로 흐르더라. 오늘날 숱한 사람들은 잔소리를 못 견뎌 하는데, 그만큼 안 배우겠다면서 철없이 구는 짓이다. 잔소리를 받아들여야 철이 들면서 스스로 배운다.


  큰소리는 와장창 허물고서 아예 새로 세워야 할 때에 터뜨린다. 다시 태어나야 하기에 호통치며 꾸짖는다. 큰소리는 바로 어른과 어버이가 아이한테서 들어야 한다.


  시골아이가 걸어다니기를 빈다. 서울아이도 걸어다니기를 빈다. 아이들이 안 걸으니 도무지 철이 안 든다. 어른이란 몸이지만 땀내며 걷는 일이 사라지니, 몸뚱이는 크고 나이는 많지만 철없이 굴며 나뒹군다. 그대가 어른이라면 자가용을 버리든지 적게 타든지 자주 걷고 자전거를 타며 땀을 뺄 노릇이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