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을 걷는 책읽기



  땡볕을 걷는다면 더울까요, 안 더울까요? 땡볕에 짐을 잔뜩 짊어지고 걷는다면 더울까요, 안 더울까요? 땡볕에 짐을 잔뜩 짊어진 채 아이를 안거나 업으면서 걷는다면 더울까요, 안 더울까요?


  나는 지지난해까지 이런 땡볕에 늘 ‘덥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더운 볕에 살갗을 신나게 태우자’는 생각을 함께 했어요. 지지난해까지는 땡볕에 후끈후끈 더위를 즐기면서 온통 땀투성이로 살았습니다. 지난해부터는 이 살림을 살짝 바꾸기로 했어요. 땡볕을 걸으면서도 ‘덥다’거나 ‘눈이 부시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생각할까요? 저는 이제 ‘내가 가야 할 곳을 바라보면서 웃고 노래하며 걷는다’고 생각해요. 참말로 웃으면서 걷고, 참말로 노래하면서 걷습니다.


  오늘 낮에 면소재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두 아이가 “더워서 걷기 싫어.” “차 타고 갈래.” 하고 말합니다. 나는 아이들한테 말합니다. “여기 오는 길에 차 타고 왔어. 아버지는 더 차 타기 싫어. 집에는 걸어서 갈래. 집까지 웃으면서 걸어 갈래.” 두 아이가 입을 삐쭉 내밀면서 걷습니다. “얘들아, 멈춰 봐. 너희 마음속에 덥다는 생각이 있으니까 더워. 너희는 가방을 멨니? 너희가 물병을 드니? 아버지는 가방을 메고 물병을 들었지만 덥다는 생각이 처음부터 없으니까 땀도 안 흘리고 덥지도 않아. 너희는 맨몸이야. 너희는 맨몸이니까 시어칸처럼 네발로 기는 장난을 할 수도 있어.”


  아이들은 생각을 바꾸어 주었을까요? 아이들은 어쩔 수 없다고 여겼을까요? 십 분 즈음 지날 무렵 아이들 낯에 웃음이 돌고, 아이들도 노래를 부릅니다. 풀밭 사이를 거닐면서 풀꽃을 훑고 풀잎에 손바닥을 쓸리면서 달립니다.


  그늘이 없는 시골 들을 신나게 걷습니다. 걷다가 서로 달리기를 합니다. 아버지는 가방이 묵직하기에 작은아이보다도 뒤에 처져서 달립니다. 아버지가 뒤에 처진 채 달리니 두 아이는 앞에서 깔깔거리면서 기다려 줍니다. 벼를 심지 않은 논에서 부들이 잘 자랍니다. 부들 하나를 꺾어서 작은아이한테 “자, 소시지야. 맛있게 먹어.” 하면서 건넵니다. 큰아이는 혼자서 부들 하나를 꺾습니다. 두 아이는 마을 어귀까지 부들을 손에 쥐고 마음껏 달리고 걷고 하면서 놉니다. 마을 어귀 빨래터에 이르러 풍덩 뛰어들어 한참 물놀이를 합니다. 아이들아, 마음속으로 하나 배웠을까? 오늘 온몸으로 배웠을까? 우리는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한 시간 남짓 걸어온 줄 알겠니? 우리가 마음속에 어떤 생각을 품느냐에 따라서 모든 것이 달라진단다. 2016.7.15.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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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벌레를 읽는다



  밭에서 파씨를 훑다가 작은 벌레를 봅니다. 작은 벌레는 내 손가락을 타고 빙글빙글 돕니다. 얼마나 작은지 여느 때에는 이런 벌레가 우리 집 밭에서 함께 사는 줄 알아챌 수 없겠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이 작은 벌레는 틀림없이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는 목숨붙이입니다. 이 작은 벌레가 있어서 우리 집은 아늑하면서 따사로운 보금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미처 느끼지 못하더라도, 아직 알지 못하더라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더라도, 참으로 수많은 숨결이 내 곁에 머물면서 곱게 바람을 일으켜 준다고 느낍니다. 이러면서 생각하지요. 나는 내 곁에 있는 숨결한테 얼마나 싱그럽거나 하늘처럼 파란 바람과 같을까 하고요. 2016.7.5.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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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일 19일 마포FM(100mhz) 이야기마당



  2016년 7월 1일 저녁 7시(19시)에 라디오 마포FM(100.7mhz)에서 ‘라디오네 별책속으로’가 흐릅니다. 이 방송에 제가 함께 나와서 40분 동안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철수와영희)하고 얽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사전을 어떻게 엮었는가, 이 사전은 어떤 책인가, 이 사전을 내기까지 어떠한 삶을 지었는가, 이 사전을 이웃님이 어떻게 읽으면서 즐길 만한가, 말과 넋과 삶은 서로 어떻게 이어졌는가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오늘 저녁 일곱 시에 짬을 내실 수 있는 분은 즐겁게 들어 주셔요. 오늘 저녁 일곱 시에 짬이 안 되는 분들은 요새는 ‘다시듣기’를 무척 쉽게 할 수 있으니, 느긋하게 다시듣기로 들어 주셔요. 아무쪼록 제 목소리를 사랑스레 들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__^ 2016.7.1.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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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는 연필이 있네

 


  고흥에서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에서 시를 열 꼭지 써 보았습니다. 서울에서 만날 이웃님이 열 사람쯤 되리라 느끼면서 써 보았어요. 흔들리는 시외버스에서 수첩에 볼펜으로 시를 쓰려다가 볼펜을 집어넣습니다. 문득 생각해 보니 볼펜은 버스에서 더 떨려서 그닥 안 좋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연필을 쥐어서 써 보니 무척 부드럽습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버스에서도 연필로 쓰니 매우 좋습니다. 전철에서도 참 좋더군요. 한참 연필로 쓰다가 멈추고 생각했지요. 어쩜 이렇게 연필이 좋을까 하고요. 이렇게 훌륭한 연필이 있는데 왜 그동안 볼펜만 쓰려고 했을까 싶더군요. 오늘 나한테 연필 한 자루가 되어 준 나무와 돌을 가만히 그립니다. 내가 쓰는 모든 글에 나무답고 돌다우면서 고즈넉한 숲바람이 깃들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2016.6.30.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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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념을 잊는 책읽기



  나는 언제부터인가 푸념을 거의 안 합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어느 때까지 으레 푸념을 하며 살았구나 싶습니다. 이 일도 푸념 저 일도 푸념인 사람이 바로 내 모습이었다고 느낍니다. 이제 푸념을 거의 안 하며 살다 보니, 내 둘레에서 푸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푸념이 잘 뜨입니다. 그리고 눈에 잘 뜨일 뿐 아니라 어쩐지 살짝 거슬리다가는 빙그레 웃음이 납니다. 그분 모습에서 내 예전 모습을 읽기 때문입니다.


  푸념이란 말 그대로 푸념입니다. 푸념은 ‘새로짓기’가 아닙니다. 푸념은 제자리걸음이거나 뒷걸음이기 일쑤입니다. 이래서야 삶이 재미없습니다. 푸념을 일삼는다면 삶이 따분하고야 맙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대목이 아쉽다고 푸념하면 이 책은 이 대목 때문에 재미없습니다. 저 책을 읽으면서 저 대목이 서운하다고 푸념하면 저 책은 저 대목 때문에 따분합니다.


  모든 책은 저마다 아쉽거나 서운한 대목이 있을 만합니다. 그러나 모든 책은 저마다 재미있거나 아름다운 대목도 함께 있을 만합니다. 책 한 권을 놓고 어느 대목을 읽겠느냐 하는 생각은 바로 우리가 가름합니다. 내가 고르지요. 나 스스로 푸념을 하는 책읽기를 하겠는지, 아니면 나 스스로 푸념을 잊는 책읽기, 다시 말해서 기쁨을 짓고 살림을 짓는 사랑을 노래하는 책읽기를 하겠는지, 참말로 나 스스로 생각해야지 싶습니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터인가 기쁘게 삶을 노래하는 책읽기를 즐기는 몸짓으로 시나브로 바뀝니다. 2016.6.28.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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