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잔에 받는 초코라떼



  찻집에 들어가서 차분히 앉아 찻물을 누리려 하는데 종이잔에 준다면? 이를 거의 헤아리지 않고 살다가 오늘 종이잔을 받고서 문득 돌아봅니다. 집에서 찻물을 끓여 즐길 적에 종이잔을 쓰는 일이 없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저마다 마음에 드는 꽃잔을 씁니다. 유리잔이든 도자기잔을 써요. 고흥읍에 볼일이 있어 나왔다가 한 시간쯤 길에서 보내야 하기에 놀이터나 팔각정에 가 볼까 하다가 그동안 안 가 본 어느 찻집에 들렀는데, 종이잔에 초코라떼를 주는군요. 조용히 바라보다가 그저 즐겁게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2018.6.21.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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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네



  나막신은 나무로 짠 신. 일본에서만 꿴 신이 아닌 한국이나 여러 나라에서도 두루 꿰던 신. 그런데 오늘날 한국에서는 거의 안 꿰는 신이요, 일본에서는 오늘날에도 제법 꿰는 신. 일본마실을 하며 곁님이 일본 나막신을 한 켤레 장만해서 발에 꿰어 보고는 이렇게 좋은 신이 있었나 하고 놀랍니다. 화학섬유 아닌 나무로, 또 천으로 두룬 신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싶군요. 게다가 이런 신값이 그리 안 비싸네요. 오히려 화학섬유 신값이 무척 비싸요. 천연섬유로는 신을 짓지 않거나 못하는 오늘날, 우리는 어떤 신을 발에 대어 걸어다니는 삶일까요. 2018.6.9.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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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후보 쪽글



  고흥에서 살며 두 걸음째 선거를 맞이합니다. 예전 선거에서는 누가 예비후보라느니 무슨 후보라느니 하는 손전화 쪽글이 아예 없었다고 떠오릅니다. 다가오는 2018년 선거를 앞두고 온갖 예비후보가 손전화 쪽글을 보냅니다. 날마다 몇 가지씩 날아오는데요, 이분들이 제 손전화 번호를 어디에서 어떻게 얻었을까 아리송하기도 하지만, 전라남도에서, 또 고흥군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겠노라 하고 밝히는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저 엇비슷하게 하는 이야기라면 ‘뒤떨어진(낙후된) 지역 개발’일 뿐입니다. 이분들 말마따나 전라남도나 고흥군은 참말로 한국에서 가장 개발이 뒤떨어진 고장이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대목을 뒤집어 말하자면, 전라남도하고 고흥은 한국에서 가장 ‘개발 막삽질을 덜 탄 조용하고 정갈한 고장’이라는 뜻이에요. 전라남도지사를 바라건 고흥군수를 바라건, 또 고흥군의회 의원이나 전라남도의회 의원을 바라건, 이분들이 ‘시골이라는 고장을 텃사람이 사랑하고 이웃고장에서도 사랑할 수 있는 정책’을 손전화 쪽글로 한 가지라도 밝혀서 들려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분들이 얼굴 알리려고 돌아다닐 틈을 쪼개어 책을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덧붙여 전라남도하고 고흥이라는 시골에서 즐겁고 씩씩하게 책밭을 일구는 여러 일꾼이 무슨 마음으로 굳이 이 조용한 두멧자락 시골에 터를 잡고서 책밭을 일구는가 하는 대목을 찬찬히 들여다보기를 바랍니다. 2018.4.17.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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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하치오지 마을우체국



  한국에서 살며 5∼7킬로미터뿐 아니라 10∼15킬로미터를 그리 멀지 않다고 여겨서 걸어다니곤 합니다. 다만 혼자 다닐 적에만 걷습니다. 아이들하고는 아직 이 만한 길을 걷지 않아요. 일본으로 혼자 마실을 나오며 2킬로미터쯤 되는 길은 참말 대수롭지 않아서 사뿐히 걷습니다. 그런데 이런 길을 일부러 큰길조차 아닌 마을길을 걷다가 깜짝 놀랄 만한 마을우체국을 보았어요. 이런 마을 한복판에 우체국이 있다니? 한국에서는 어림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에요. 한국에서는 목이 좋다거나 차가 자주 드나드는 데에 우체국이 있거든요. 큰길에서 한참 먼 마을 한복판에 옹송그리듯 있는 우체국이 한국에 아예 없지는 않으리라 여깁니다만, 일본 하치오지에서 만난 우체국은 건물마저 이웃 여느 집 품에 고스란히 녹아들더군요. 어쩜 이렇게 작고 이쁜 우체국이 다 있을까 싶어요. 우체국에 들어가기 앞서 우체국 언저리를 빙 돌며 슬쩍 안을 들여다보았어요. 이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을 30분 넘도록 못 보았습니다. 우체국 일꾼은 얌전히 걸상에 앉아서 조용히 손님을 기다리는데, 마침 제가 길가에서 볕바라기를 하며 우편엽서를 다 쓴 뒤에 우체국에 들어갈 무렵, 손님을 기다리다가 지쳤을 우체국 일꾼 두 분이 안쪽으로 들어가서 ‘도시락을 먹으려 한’ 듯했어요. 마침 제가 들어간 때가 낮 열두 시를 살짝 넘었거든요. 대단히 미안했지요. 그러나 시골 같은 마을우체국 일꾼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여기며 우편엽서를 받아 주었고, “고노 카도와 싸우스 코레아데 이키마스카?” 하고 어설픈 일본말로 여쭈니 “하이 …… 어쩌고어쩌고” 하면서 얼마를 내면 된다고 계산기에 숫자를 찍어서 보여주어요. 환하게 웃으면서 “아리가또 고쟈이마스으” 하고 말씀을 여쭈고 가볍게 돌아나왔습니다. 2018.3.31.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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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잘하시네요



  2001년에 일본에 왔을 적에 영어를 할 줄 알거나 하려고 하는 이웃을 좀처럼 못 만났습니다. 그래서 그때에는 서로 종이를 꺼내어 한자를 적어서 뜻을 나누곤 했어요. 2018년에 열일곱 해 만에 일본마실을 두 걸음째 하면서 새삼스레 느낍니다. 먼저 말을 걸지 않았는데 ‘내가 일본사람 아닌 외국사람인 줄 알아챈’ 일본 이웃이 영어로 바로 물어보네요. 그런데 이렇게 영어로 먼저 물어보니 외려 제가 어쩔 줄 몰라 말이 안 나와요. 곳곳에서 영어로 말을 잘 할 뿐 아니라, 영어를 잘 알아듣는 분을 만납니다. 이뿐 아니라 한국말까지 제법 알아듣는 분을 만나서 더 놀랍니다. 그러니까 온누리는 꾸준히 달라지는데, 요새 아주 빠르게 눈부시게 거듭나는 셈일 테지요. 할 줄 알며 쓸 줄 아는 영어 낱말을 차곡차곡 늘리려고 합니다. 2018.3.3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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