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손님 바람처럼



  서울에서 도서관으로 손님이 찾아오신다. 아침 일찍 고흥으로 오는 첫 버스를 타신 듯하다. 그러나 오늘 바로 서울로 돌아가자니, 고흥에 머물 수 있는 겨를이 몹시 짧다. 서울하고 고흥 사이를 하루 만에 움직이자면 시외버스에서만 아홉 시간 남짓 있어야 한다.


  바람처럼 찾아와서 바람처럼 돌아가야 할 손님을 마주하면서 가만히 생각한다. 우리 도서관이 서울이나 수도권 같은 데에 있었다면, 적어도 전라북도쯤에만 있었어도 이렇게 오랜 겨를을 써야 하지 않을 테지. 그러나 우리 도서관이 전남 고흥이라고 하는 깊은 시골에 있기 때문에, 비록 아홉 시간이라는 시외버스 마실을 해야 하지만, 이동안 버스 창밖으로 나무와 구름과 숲과 멧자락을 만날 수 있고, 섬진강도 살짝 옆으로 스치면서 냇물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구례 거치고 남원하고 전주를 가로지르면서 너른 들도 만날 수 있다.


  책이 이루어지는 바탕인 숲을 헤아릴 수 있도록 살며시 돕는 ‘서울-고흥 사진책도서관 마실’이 되셨기를 비는 마음이다. 먼길 마실을 하고 돌아가는 길에 즐거운 이야기가 소복소복 내릴 수 있기를 새삼스레 빈다. 4348.12.14.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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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5-12-14 23:14   좋아요 0 | URL
서울~고흥이 시외버스로 9시간이나 걸리는군요.전 영월~서산까지 시외버스로 10시간 걸린 기억이 나네요^^;;;

숲노래 2015-12-15 08:15   좋아요 0 | URL
편도는 네 시간 반쯤이고, 왕복은 아홉 시간 남짓이랍니다 ^^
그래도 많이 줄어들었지요.

부산에서 완도까지 가는 시외버스는 편도만 아홉 시간 남짓이라고 들었습니다 ^^;;
 

작은아이가 고른 타요 케익



  버스나 자동차 장난감이 보이면 꼭 가져야 한다고 여기는 작은아이가 ‘타요 케익’을 골랐다고 한다. 지난주에 일산으로 나들이를 다녀올 적에, 곁님 동생이 케익을 장만해 주었는데, 이때에 다른 사람들은 거의 손도 못 대는 초코케익을 사야 했단다. 타요 장난감을 따로 사고, 케익은 이 케익을 함께 먹을 사람을 헤아려서 장만해야 했을 텐데 말이지. 다섯 살 아이로서는 이 대목까지 헤아리지 못했을 테지. 더군다나 작은아이가 갖고 싶다는 타요 버스는 작은아이가 손에 꼭 쥐고 다니다가 차에서 잠들면서 어디엔가 스르르 놓쳐서 바로 이날 잃어버렸다. 나는 내 생일이 다가오는 줄 모르고서 ‘그냥 케익을 장만하시네’ 하고 여겼는데, 이 케익은 나를 생각해서 미리 장만해 주었다고 했다. 여러모로 올해 ‘타요 케익’은 잊을 수 없을 듯하다. 다들 도무지 못 먹는 초코케익이지만, 나는 두 조각을 먹었다. 그러나 두 조각이 끝. 너무 달아서 더는 못 먹었다. 4348.12.7.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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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5-12-07 09:36   좋아요 0 | URL
숲노래님~~생일 축하드립니다~!!!!!!!!!!!!!^^
`타요 케익`이 재미나고 예쁘네요~~
즐겁고 좋은 날, 되세요~~*^^*

숲노래 2015-12-07 09:39   좋아요 0 | URL
^^;;; 에고고 고맙습니다.
저 스스로는 이날 하루 날짜를 잊어도
둘레에서 다 되새겨 주어서
늘 고맙구나 하고 느낍니다.
삶을 돌아보면 365일 언제나 생일이지 싶어요 ^^
 

미국으로 배우러 다녀오는 길



  엿새에 걸쳐 미국으로 배우러 다녀오는 길이 있는데 아직 비행기표를 못 끊는다. 엿새 동안 배움길을 다녀오려면 비행기삯하고 배움삯이 있어야 하고, 여기에 엿새 동안 지내면서 머무는 길삯이나 밥삯이 들고, 열흘 즈음 세 식구가 고흥집에서 지낼 살림돈이 든다. 이만 한 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고 생각한다면 아무것도 못 한다. 그런데 이제까지 배움길을 다녀오던 나날을 돌아보면, 곁님이 배움길을 다녀올 적에 ‘주머니에 돈이 있든 없든’ 어떻게든 비행기삯하고 배움삯을 카드로 긁어서 보낸 뒤, 어떻게든 이 배움삯을 갚으려 했고, 여태 이러한 돈을 찬찬히 갚으면서 지냈다.


  나는 내 배움길에서 무엇을 망설이거나 두려워하는가? 바로 오늘 이 자리에서 아직 돈이 없기에? 세 식구가 열흘 즈음 지낼 살림돈이 없다고 여겨서? 세 식구가 잘 지낼는지 못 지낼는지 걱정이 되어서?


  그러나, 이보다는 비행기를 탈 적부터 내릴 적하고 움직일 적에 늘 영어를 써야 하고, 영어로 강의를 들어야 하며, 영어로 말을 해야 하는 배움길을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느낀다. 영어로 하는 강의를 제대로 들을 수 있겠느냐고 두려워하는 마음이라든지, 한겨울에 한국보다 추운 고장에서 잘 지낼 만한가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구나 하고 느낀다. 그렇지만, 삶을 사랑스레 살리고 가꾸는 마음을 슬기롭게 다스리는 배움길이라는 대목을 생각하면 이 배움길을 씩씩하게 나서고 싶다. 돈이야 어떻게든 벌어서 채울 수 있지 않겠는가. 세 식구가 이 겨울에 도란도란 잘 지낼 수 있지 않겠는가. 나부터 스스로 슬기로우면서 사랑스러운 마음과 몸짓이 되지 않는다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4348.12.2.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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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 한 켤레 1000원



  올겨울에 신을 내 양말이 집에 한 켤레도 없기에 서울마실을 하는 김에 양말을 한두 켤레 살 생각이었다. 그런데 시외버스를 내린 뒤 서울에서 처음 본 양말집에서는 한 켤레에 3500원이었기에 움찔했다. 한 켤레에 3500원짜리에는 차마 손을 뻗지 못했다. 3500원은 비싼가? 3500원짜리 양말을 신으면 안 될 노릇일까? 나한테는 3500원이나 5000원짜리 양말은 안 어울리는가?


  서울에서 이틀 동안 구멍난 양말을 신고 다니다가 고흥으로 돌아가려고 고속버스역으로 가는데, 강남지하상가에서 ‘한 켤레 1000원’ 하는 알림글을 붙인 양말집을 본다. 아, 하는 소리가 나면서 걸음을 멈춘다. 양말이면 다 같은 양말이니 3500원이건 1000원이건 장만할 노릇인데, 나는 나 스스로 내 몸이 1000원짜리 양말을 신어야 어울린다고 생각했을까.


  이제 막 가게 문을 여는 양말집 안쪽에 대고 “사장님!” 하고 부른다. 1000원짜리 양말을 두 켤레 고른다. 하나는 눈사람 무늬가 작게 들어간 짙푸른 양말이고, 다른 하나는 배롱꽃빛 돼지가 춤추는 양말이다. 한 켤레만 사려다가, 내가 아무래도 마수인 듯해서 두 켤레를 산다. 서울에서 양말을 사자고 생각한 대로, 양말을 사기는 샀다. 막상 이틀 걸어다니는 동안 신을 양말은 못 사고, 시외버스를 타기 앞서 비로소 샀다. 4348.11.25.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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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11-25 20:23   좋아요 0 | URL
그게 그렇더라구요.
가끔 남포동 길에서 천원짜리 몆개 골라담는데 그 절반은 또 내것이 아닌 날이 대부분이죠.

숲노래 2015-11-26 03:0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
늘 아이들 양말만 사고
제 양말을 사는 일은
한 해에 한 번쯤... 입니다 ^^;;;
 

양말 한 켤레 3500원



  양말을 안 신으며 살다 보니 집안에 내 양말이 없다. 늦가을에 서울마실을 하는 길에 맨발로 갈 수는 없다고 여겨 양말을 찾으니 구멍난 한 켤레가 겨우 나온다. 시외버스가 서울에 닿으면 양말부터 한 켤레 사야지 하고 생각하는데, 전철역에 있는 편의점에 걸린 양말이 한 켤레에 3500원이다. 3500원이 비싼지 싼지 모른다. 다만, ‘여태 신지도 않다가 한 번 신으려는’ 양말 값으로 3500원을 치러야 하나 하고 생각하니 차마 이 양말을 사지 못한다. 그냥 구멍 양말을 신은 채 돌아다닌다. 그런데 3500원이 비싼가? 이만 한 값을 치를 마음이 없나? 4348.11.24.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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