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마실을 마친 밤



  곁님 어머니하고 곁님 동생 식구하고 함께 배움마실을 다녀온다. 이틀 동안 모두 씩씩하게 새로운 배움길을 걸었다. 나이가 제법 있는 사람들이 나선 배움길이란 삶을 스스로 새롭게 짓거나 가꾸려고 하는 길이다. 초등학생이나 고등학생만 배우는 길을 닦을 노릇이 아니라, 서른이건 쉰이건 일흔이건 삶을 사랑하려는 꿈이 있으면 누구나 기쁘게 배울 노릇이라고 느낀다.


  배움마실을 히단 엊저녁에 뮤패드 태블릿으로 글을 좀 쓰려는데 무선자판은 갑자기 건전지가 다 닳아서 못 쓰고, 유선다람쥐는 갑자기 먹통이 되었다. 이놈들이 왜 이러나 하고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문득 알아차렸다. 새로운 삶을 배우려고 하면서 내 몸에서 나오는 전자기장이 이 아이들을 이렇게 해롱거리게 했구나 하고.


  이제 오늘 밤 잘 자고 이튿날 새벽에 서울로 전철을 타고 가서, 아침 여덟 시 버스를 신나게 타고 고흥으로 돌아가야지. 사흘 밤을 아버지가 바깥에서 자며 배움마실을 하느라 두 아이가 몹시 기다리겠네. 그동안 모두 재미있게 놀았기를 빌고, 아버지가 시골집으로 돌아가면 아주 재미나게 새로운 마음이 되어 놀아야지. 4348.12.20.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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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놀라서 후다닥 일어나기



  오늘 아침 일찍 서울 가는 시외버스를 타러 나가야 한다. 어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화를 꽤 자주 받아야 하느라 몸이 고단했고, 오늘 서울마실을 가야 하는 터라 집일을 갈무리하고 이것저것 챙기느라 그야말로 힘들었다. 저녁 여덟 시에 아이들하고 촛불보기를 하는데 등허리가 쩍쩍 갈라지는구나 하고 느껴서 무척 일찍 자리에 누웠다. 두 아이를 토닥이며 자다가 불현듯이 번쩍 눈을 떴다. 설마 늦잠을 잤는가 하고. 이불을 걷어찬 아이들을 다독인 뒤 옆방으로 건너가서 때를 살피니 밤 열두 시 이십육 분. 살짝 가슴을 쓸어내렸다. 부엌을 좀 치우고 내 짐을 조금 꾸린다. 아침에 무엇을 마련해 놓고 길을 떠날까 하고 생각하면서, 책상맡에 어지러이 쌓인 책을 치우면서, 이러다가 마당으로 내려서서 별잔치를 올려다보면서, 싱싱 차게 부는 바람을 쐬면서, 아이들한테 남길 편지를 헤아리면서, 이럭저럭 새벽이 흐른다. 시외버스에서 자기로 하고 오늘은 아침 일곱 시까지 바지런히 일손을 놀려야겠다. 앞으로 이틀 동안 람타공부를 하러 가느라 다른 일은 못 할 테니까. 4348.12.18.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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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에 샘터·빨래터를 치우고 나면



  마을 어귀 빨래터와 샘터에 새삼스레 물이끼가 끼었기에 곧 치워야 하는데, 날이랑 날씨를 살피니 어제가 가장 알맞다 싶다. 그래서 가장 포근한 때를 살펴서 해가 쨍쨍 비출 적에 물이끼를 걷어내는데, 어제는 바람이 꽤 세게 불었다. 해가 나더라도 바람이 세게 부니까 맨발로 빨래터에 들어가서 물이끼를 걷을 적에 발이 시렸다. 아이들은 바람이 불든 물이 차든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물놀이를 한다. 옷이 젖든 말든 그리 대수롭지도 않다. 대단한 아이들이라고 여기면서 물놀이를 지켜보다가 ‘아이들은 안 힘들다’고 해도 내가 힘들어서 어느 만큼 놀고서 집으로 돌아간다. 찬바람 듬뿍 쐬고 찬물 한복판에서 물이끼를 걷은 탓인지 세 시간 가까이 끙끙 앓으며 드러누웠고, 이렇게 드러누워서 허리를 펴고 몸을 녹이니 비로소 살아났다. 이 겨울에 빨래터를 안 치워도 되지 않느냐고 할 도시 이웃님이 있을는지 모르는데, 우리 집에서 빨래터를 안 치우면 마을에 계신 일흔∼여든 살 할매가 한겨울에 이 빨래터 물이끼를 치워야 한다. 4348.12.17.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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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커졌다는 과자



  요즈음 ‘국산 과자’가 다시 커진다고 한다. 얼마나 커질는지 알 길은 없다. 10퍼센트쯤 커진다고 하는데, 이만큼 커진 부피는 거의 티가 안 난다고 느낀다. 50퍼센트가 커져야 비로소 티가 날 테고, 곱배기쯤 커지면 살갗으로 느낄 만할 테지. 왜냐하면 그동안 ‘국산 과자’는 아무 소리 없이 자꾸자꾸 작아졌을 뿐 아니라, ‘과자 봉지’가 아닌 ‘질소 봉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소비자를 바보로 여겼고, 소비자도 스스로 바보가 되었기에, ‘국산 과자’를 만드는 회사는 ‘앉아서 돈 먹기’를 했을 테지.


  언 발에 오줌을 눈다는 말처럼, 언 발에 오줌을 눈들 언 발이 얼마나 녹을까. 처음에는 살짝 녹는 듯할 테지만, 이내 오줌마저 얼어서 언 발은 더욱 차갑게 얼어붙으리라. 4348.12.16.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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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송이를 곁에 두고 싶어서



  꽃송이를 곁에 두고 싶은 아이는 종이잔 하나를 얻어서 물을 받은 뒤에 꽃송이를 살포시 얹는다. 꽃송이는 풀밭에 있을 적에 곱게 벌린 이파리로 향긋한 내음을 베푸니까, 사람이 꺾거나 따면 천천히 시든다. 이렇게 물에 담가 놓으면 얼마나 갈까. 그런데 아이가 종이잔에 담근 꽃송이를 바라보다가, 이처럼 물에 띄운 꽃송이는 어른들이 흔히 즐기는 꽃잎차하고 닮았구나 하고 느낀다. 그러게, 아이들은 꽃을 따면서 머리에 꽂거나 물에 띄우면서 놀고, 어른들은 꽃잎을 잘 말려서 차로 끓여서 마시네. 아이나 어른이나 꽃송이를 곁에 두면서 놀고 싶은 마음은 같네. 4348.12.15.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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