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순난앵 열린어린이 창작동화 13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홍재웅 옮김, 일론 비클란드 그림 / 열린어린이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아이들 사랑하는 이야기를
 [어린이책 읽는 삶 21]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그리운 순난앵》(열린어린이,2010)

 


- 책이름 : 그리운 순난앵
- 글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 그림 : 일론 비틀란드
- 옮긴이 : 홍재웅
- 펴낸곳 : 열린어린이 (2010.3.30.)
- 책값 : 9500원

 


  새벽 여섯 시에 아이들이 잠에서 깨어 부시럭거리다가 일어나 슬금슬금 돌아다닙니다. 좀 늦잠을 자면 안 되겠니 싶지만, 이때에 잠에서 깨어 부시럭거리다 일어나겠다 하는데 어찌할 길 없습니다. 어제 일찍 잠들었나 돌아보지만, 썩 일찍 잠들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아이들입니다.


  어버이인 내가 늦게 자면서 일찍 일어난다면, 아이들 또한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삶에 맞추어 하루하루 맞이하리라 느낍니다. 어버이인 나부터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난다면, 아이들 또한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 버릇할는지 모릅니다.


  그러고 보면, 시골 아이는 늦게 자도 일찍 일어납니다. 시골은 밤이 일찍 찾아들고 새벽 또한 일찍 찾아듭니다. 먼동이 트는 새벽 네 시 무렵이면 시골 어른들 누구나 잠을 털고 일어납니다. 어둠이 깔리는 저녁 여덟 시쯤 지나면 시골 어른들 누구나 잠자리에 듭니다. 어른도 아이도 자연이 베푸는 선물을 마음껏 받아들이고, 아이도 어른도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를 가만히 귀기울여 듣습니다.


.. 순난앵 마을에 살던 마티아스와 안나는 뮈라 마을의 한 농가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아주 영리해 보인다거나 착해 보이는 눈을 가지고 있어서, 혹은 성실하게 일할 것 같은 작은 손을 가지고 있어서 데려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아이들이 힘겨워하자 이를 안타깝게 여겨 데려온 것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마티아스와 안나를 데려온 농부는 아이들에게 오로지 일을 시킬 생각뿐이었습니다 … 그들(마티아스와 안나)도 짐작했던 것처럼 가난뱅이 잿빛티를 벗어 버리는 일은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눈이 숲길을 덮어 버려도, 추위에 발톱이 갈라져서 아파도, 샌드위치와 팬케이크로 도시락을 싸 올 수 없을 만큼 가난해도, 어린 남매는 거르지 않고 매일매일 성실하게 학교에 나갔습니다 ..  (7, 16쪽)


  어제 하루, 자전거수레에 두 아이 태우고 먼 나들이를 해 보았습니다. 으레 면내까지만 천천히 논둑길을 돌고 돌아 나들이를 했는데, 다음에 옆지기랑 넷이 자전거를 타면 어디로 돌 때에 좋을까 하고 헤아리다가 그만 한 시간 남짓 고흥 시골마을 멧길과 바닷길까지 돌았습니다.


  우리 시골마을에도 자동차 드나들 일이 뜸하지만, 이웃 시골마을에도 자동차 드나들 일이 뜸합니다. 자전거수레에 두 아이를 태우고 달리자니, 이곳도 호젓하고 저곳도 한갓져요. 면 소재지 둘레만 자동차 여러 대 지나갈 뿐입니다.


  자동차도 사람도 없는 조용한 멧길을 자전거로 오르다가 살짝 멈춥니다. 숨을 돌리고 싶다기보다, 찻길로 길게 뻗는 칡덩굴 때문입니다. 새로 뻗는 칡덩굴을 끊거나 잡아뽑으면 집에서 만나게 풀물을 짜서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천천히 오르막을 오릅니다. 오르막을 지난 다음에는 싱 하고 내리막을 달립니다. 바다가 펼쳐지면 내리막이더라도 자전거를 멈춥니다. 넓은 바다를 바라봅니다. 넓은 바다 품이 있어, 사람도 다른 목숨도 좋은 숨결 누릴 수 있구나 싶습니다.


.. “오빠, 내 발이 그러는데, 보드라운 모래랑 푹신푹신한 잔디가 너무 좋대.” … “아니야, 같이 가면 좋아하실 거야. 어머니는 모든 아이들을 좋아하시거든.” … 비록 말린의 집이 부유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곳은 아름다웠고 재미있는 것이 많았습니다. 상상해 보세요. 봄이 오면 창밖에 서 있는 사과나무가 꽃을 피우는 모습을, 그리고 은방울꽃들이 가득 피어난 숲을 말입니다 … 말린은 밤도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뭇잎과 꽃, 잔디와 나무는 살아숨쉬는 봄의 영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손톱만큼 작은 식물과 지푸라기도 영혼과 생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26∼27, 39, 57쪽)


  나는 좋은 목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좋은 목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칡덩굴도, 봄풀도 여름풀도, 들새도 멧새도, 개구리도 왜가리도, 모두 좋은 목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밤에 두 아이 토닥이며 재우는 동안 생각해 봅니다. 왜가리가 개구리를 잡아 넙죽 먹을 때에는 날것 그대로 삼킬 텐데, 그 작은 목구멍으로 토실토실 개구리가 꾸물꾸물거리며 들어가다가 천천히 삭겠지요. 개구리는 왜가리가 되고, 왜가리는 개구리가 됩니다.


  시골 흙일꾼이 거둔 벼를 깎은 쌀알을 먹습니다. 쌀알은 내 몸으로 들어와 내가 되고, 나는 쌀알을 먹으며 쌀알이 됩니다.


  비트잎을 먹으며 비트잎이 됩니다. 가지를 먹으며 가지가 됩니다. 달걀을 먹으며 달걀이 되고, 과자를 먹으며 과자가 됩니다. 먹는 그대로 내 몸으로 이루어지고, 내 넋이 이루어지며, 내 사랑이 이루어집니다.


.. “문이 왜 닫히지 않은 걸까?” 안나가 물었습니다. “이 문은 한 번 닫히면 다시는 열리지 않는다고 했잖아. 기억 안 나?” 마티아스가 말했습니다. “응, 이제 기억나. 다시는, 영원히 열리지 않는다는 걸…….” 안나가 말했습니다. 마티아스와 안나는 서로를 쳐다보았습니다. 오랫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어린 남매는 서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들은 문을 아주 조용히, 닫았습니다 … 말린은 자신의 손을 조용히 나무줄기 위에 얹었습니다. 바로 그때, 생명도 없이 혼자서 연주하는 것이 라임오렌지나무에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말린은 죽어 있는 나무에게 자신의 영혼을 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 그렇지만 라임오렌지나무 안에 내가 살아 있을 거야 ..  (34, 58쪽)


  아이들 사랑하는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어느 어버이라 하더라도 아이들만 사랑하지 못합니다. 어버이인 내 삶을 사랑할 때에 아이들 삶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한테만 좋다 싶은 밥을 먹이지 못합니다. 어버이 스스로 좋은 밥을 먹을 때에 아이들 또한 좋은 밥을 먹습니다. 어버이 스스로 좋은 옷을 입어야 아이들 또한 좋은 옷을 입어요.


  좋은 밥이란 비싼 밥이 아닙니다. 좋은 옷이란 비싼 옷이 아닙니다. 좋은 사랑을 들여 차린 밥이 좋은 밥입니다. 좋은 꿈을 실어 좋은 손길로 보듬는 옷가지가 좋은 옷입니다.


  곧,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은 보금자리를 이루어야 합니다. 사람이 이룰 보금자리는 ‘회사와 가깝다’거나 ‘나중에 부동산이 될 만하다’거나 ‘편의시설이 가까이 있다’는 대목을 살피며 얻어서는 안 됩니다. 좋은 삶을 누릴 만한 좋은 보금자리를 얻어야 합니다. 내 주머니에 있는 돈에 따라 마련하는 보금자리가 아니라, 내 사랑을 살찌우거나 북돋우거나 보살필 수 있는 보금자리로 마련해야 합니다.


  즐겁게 누릴 삶이지, 돈을 벌 삶은 아니에요. 기쁘게 어깨동무할 이웃이지, 어떤 권력 관계나 잇속으로 사귀는 옆사람이 아니에요.


.. 말린이 부엌에서 부인이 건넨 미음을 먹고 있을 때, 방문이 반쯤 열려 있던 침실에서 어떤 말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말소리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듣고 있노라니 온몸이 떨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가 어린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는 소리였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말소리는 방문을 지나 말린의 귀에 와 닿았습니다 … 그는 손이 뒤로 묶였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꼿꼿했습니다. 그의 눈빛은 오히려 평온해 보였고, 그의 얼굴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  (45, 127쪽)


  아이 둘을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오르막을 올라가기란 참 벅찹니다. 끙끙대는 아버지는 수레에 탄 아이들한테 말합니다. 오르막 올라가기 힘드니까 뒤에서 잘 올라가라 북돋워 주렴. 아버지 말을 들은 첫째 아이는 수레에 앉은 채 신나게 노래합니다. 노래하고 또 노래합니다. 나는 아이들 노래를 받아먹으며 기운을 냅니다. 시골마을 푸른 숲과 파란 바다를 누리면서 자전거를 달립니다.


  누렇게 잘 익은 밀밭 앞 전깃줄에 쉰 마리 즈음 줄지어 앉은 참새를 바라봅니다. 밀밭 건너편에 잘 익은 멧딸을 바라봅니다. 멧딸 몇 알 따서 아이들한테 건넵니다. 나는 작은 알 하나만 먹습니다.


  논 옆을 달리면서 논마다 우렁차게 노래하는 개구리들 이야기를 듣습니다. 개구리들은 무논에서 서로서로 어떻게 얼크러질까요. 무논에서 살아가는 개구리는 얼마나 많을까요.


  우리 집에도 우리 마을에도, 또 이웃 마을에도 이웃이웃 마을에도 제비들이 날아다닙니다. 우리 자전거 앞으로도 날고, 옆으로도 날며, 위로도 납니다. 내가 이름을 알아보는 멧새가 우리 곁을 스칩니다. 내가 이름을 못 알아보는 들새가 우리 둘레에서 지저귑니다. 나는 모든 소리들을 좋게 여기며 맞아들입니다. 바람과 햇살과 흙과 풀과 나무와 벌레와 새가 나란히 들려주는 노래를 곱게 받아들입니다.


.. 그렇지만 남을 아프게 하는 사람은 평생 동안 마음을 편하게 가질 수 없습니다 … 공작의 검은 영혼 속에서 피어난 두려움이 어두운 대지에 뿌린 씨처럼 순식간에 그의 마음을 뒤덮어 버렸습니다. 그저 가난한 악사 하나가 이곳에 왔을 뿐인데 말입니다 … 하지만 망누스 왕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어둠 속에서 왕의 곁에 있었습니다. 그는 볼 수는 없었지만, 그 친구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왕의 생명을 보호하려는 그 친구의 팔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97, 101, 119쪽)


  사람은 밥만 먹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사람은 햇볕도 먹고, 바람도 먹습니다. 사람은 물만 마시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물이 흐르는 길도 함께 먹습니다. 물에 서린 기운도 나란히 먹습니다.


  마늘을 먹을 때에는 마늘이 뿌리내린 흙이랑 마늘이 받아들인 햇살이랑 마늘이 늘 쐬던 바람을 함께 먹는 셈입니다. 벼 한 톨 또한 벼 한 톨을 사랑한 흙이랑 햇살이랑 바람이랑 빗물이랑 골고루 먹는 셈이에요.


  목숨이란 아름답습니다. 나는 내 삶대로 아름답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 삶대로 아름답습니다. 참 예쁘구나 하고 방긋 웃으며 바라본 멧딸이니까, 아이들은 빨간 멧딸을 예쁘게 따서 예쁘게 먹고 예쁜 시골 아이로 자랍니다. 나는 예쁜 아이들 예쁜 웃음짓을 바라보며 늘 같이 지내니까, 나도 예쁜 시골 어른으로 살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흔들릴 때에 내가 손을 내밀어 붙잡습니다. 내가 흔들릴 때에 아이들이 손을 내밀어 붙잡습니다. 서로 믿고 서로 아낍니다. 서로 좋아하고 서로 사랑합니다. 서로 한식구 되기에 저녁에 잠자리에 들 무렵 목청을 가다듬어 자장노래를 부릅니다.


.. 가난한 소작농 오두막집에 다시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은 모두 닐스의 침대 주위로 몰려들었습니다. 닐스가 세상과 이별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가족들은 모두 기쁨에 겨워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어머니는 블라인드를 위로 잡아당겨 침실로 따스한 아침 햇살이 들어오게 했습니다. 동생들은 숲에서 딴 산딸기를 닐스에게 주었습니다. 아직 설익어서 산딸기가 줄기에 조그맣게 달려 있었지만, 올해 나온 첫 산딸기였기에 동생들은 기쁜 마음으로 닐스에게 선물했습니다. 동생들은 닐스가 깨어나서 산딸기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이 너무나 기뻤습니다 ..  (135쪽)


  우리 집 처마 밑 둥지에서 드디어 새끼 제비가 고개를 내밉니다. 새끼 제비 울음소리를 때때로 듣습니다. 이제 이 새끼 제비는 날갯짓을 익히겠지요. 제 어미 제비한테서 좋은 날갯짓을 물려받겠지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 이야기책 《그리운 순난앵》(열린어린이,2010)을 읽습니다. 린드그렌 님이 당신한테 사랑스러운 아이들한테 들려주려고 남긴 이야기책입니다. 당신한테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보살피는 여느 어버이한테 함께 들려주려고 남긴 이야기책입니다.


  아이들은 《그리운 순난앵》을 읽으며 따순 사랑을 받아먹습니다. 아이들 어버이 또한 《그리운 순난앵》을 읽으며 따순 사랑을 나누어 먹습니다. 서로서로 새로운 사랑을 빚습니다. 다 같이 맑은 사랑을 키웁니다. 기쁨을 찾는 넋이 서립니다. 즐거움을 꿈꾸는 얼이 담깁니다. 예쁜 웃음과 아픈 눈물이 어우러지며 삶을 이룹니다. 스웨덴 할머니 순난앵마을은 아름답고, 우리 집 두 아이 동백마을도 아름답습니다. (4345.6.3.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원예반 소년들 카르페디엠 29
우오즈미 나오코 지음, 오근영 옮김 / 양철북 / 201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푸른 잎과 환한 꽃 누리는 아이들
 [푸른책과 함께 살기 94] 우오즈미 나오코, 《원예반 소년들》(양철북,2012)

 


- 책이름 : 원예반 소년들
- 글 : 우오즈미 나오코
- 옮긴이 : 오근영
- 펴낸곳 : 양철북 (2012.3.26.)
- 책값 : 9000원

 


  이웃 할머니가 마늘밭 가장자리에서 풀을 뽑습니다. 일손을 거들까 하지만 당신이 혼자 하시겠다며 손사래를 칩니다. ‘지심매기’만 살짝 거듭니다. 할머니가 지심을 맬 때에 ‘부추’가 보이기에 “‘정구지’는 어떡할까요?” 하고 여쭈려다가, 전라남도에서는 달리 가리킬까 싶어 “‘여기’는 어떡할까요?“ 하고 여쭙니다. “응, 그건 놔 둬. ‘솔’이야 솔. 오늘 ‘아’들이 오는데 가져갈랑가 모르겠네.” 하고 말씀합니다.


  첫째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면내 우체국에 들렀다 돌아오는 길에 들딸기를 땁니다. 아이가 집에서 어머니하고 함께 먹으라고 아이 두 손에 가득 담길 만큼 땁니다. 마을 어귀 마늘밭에서 마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한창 일하시는 모습을 보고는 자전거를 멈춥니다. 아이한테 할머니와 할아버지한테도 조금 나누어 주렴 하고 말합니다. 할머니는 “네가 이걸 나한테 주냐. ‘똘’이네, 똘. 아, 똘 참 맛나다.” 하고 말씀합니다.


.. 문득 ‘학교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전차를 타고 가면 40분 정도 걸린다. 자전거로 가면 두 시간은 걸리겠지만 따듯한 햇살이 등을 떠밀었다 … 흙을 정리할 때 옆을 지나가다가 “뭐 하는 거야?” 하며 아는 척을 했던 같은 반 친구들한테서도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 오와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 화단 하나로 입구 느낌이 훨씬 좋아졌는데도 몰라보는 건가. 삭막한 녀석들 같으니라고.” 그러나 나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는 나도 그 삭막한 녀석들 중 하나였으니까 ..  (5, 91쪽)


  지난주에 둘째 아이 돌떡을 이웃집 모두 돌며 돌리다가, 돌울타리 타고 곱게 자라는 ‘마삭줄’꽃을 잔뜩 보았습니다. 어느 집은 대문 위쪽으로 마삭줄 울타리를 만들기까지 합니다.


  식구들 다 함께 마삭줄꽃을 바라볼 때에는 마삭줄이라는 이름을 몰랐습니다. 나중에 물어 물어 알아차립니다. 꽃이름은 모르지만 참 어여쁘구나 하고 생각하며 “이 바람개비처럼 생긴 하얀 꽃은 무어라 할까?” 하고 궁금했습니다. 이러다 문득 한 가지 떠오르는데, 꽃이든 풀이든 나무이든 꽃 모양만 놓고 무슨무슨 꽃이라 이름을 붙이는 일이 옳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느끼는 대로 이름을 붙일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래서, 아이한테 ‘마삭줄’이라는 이름을 가르치면서, ‘흰바람개비꽃’이라고도 이야기합니다. 나한테도 아이한테도, 마삭줄꽃은 그예 하얗게 생긴 작은 바람개비와 닮은 꽃이에요.


.. 옆에 있는 화분을 보니 잎 모양으로 봐서는 같은 종류인 것 같은데 줄기가 쓰러지고 잎은 시들어 축 늘어져 있다. 꼿꼿한 풀은 내가 앉은 바로 옆에 있는 화분뿐이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걸까. 여기만 비가 온 걸까. 그때, 문득 어제 종이컵에 남은 물을 끼얹고 갔던 일이 떠올랐다 … ‘생각해 보면 풀이 축 늘어져 있다가 싱싱하게 살아나는 모습이, 내가 이 학교에 들어온 지 열흘 만에 본 가장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거든.’ … 시미즈라는 머리 긴 아이가 말했다. “흙과 씨름하는 걸 보면서 참 멋지다는 말도 했어.” ..  (17, 27, 124쪽)


  네 식구 밭둑이나 논둑을 다니다가 ‘들딸’을 따서 먹다가 생각합니다. 우리는 멧자락이나 멧등성이 아닌 들판에서 따서 먹기에 ‘들딸’이라고 여기지만, 먼먼 옛날에는 논둑이나 밭둑이 논둑이나 밭둑 아닌 멧자락이었을 수 있습니다. 멧등성이부터 천천히 퍼져 밭둑까지 ‘딸’이 자란다 할 만합니다. 그래서 이 딸, 또는 ‘똘’은 ‘들딸(들똘)’이 아니라 ‘멧딸(멧똘)’이라 해야 바른 이름일 수 있어요.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으레 ‘멧딸’만 말하지 ‘들딸’은 말하지 않습니다. 멧딸 가운데에는 ‘나무딸’이 있습니다. 딸도 숱한 갈래여서, 모든 딸을 멧딸이나 들딸이나 나무딸이라고만 가리킬 수 없습니다. 우리 식구들 지난해 봄 충청북도 음성 멧자락에서 먹던 멧딸이랑 올해 봄 전라남도 고흥 시골자락에서 먹는 들딸이랑 꽃도 열매가 제법 달라요. 꽃빛도 꽃크기도 다릅니다. 꽃잎도 풀잎도 다릅니다. 이처럼 다른 딸을 그냥 멧딸이라느니 들딸이라고만 해도 될까 궁금합니다. 딱히 어떤 이름을 붙여야 좋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자그마한 빨간 열매를 톡 따서 입에 넣을 때 온몸으로 퍼지는 기운을 헤아립니다. 딸은 내 몸속에서 새로운 기운이 되어 내 숨결을 새삼스레 북돋운다고 생각합니다. 딸이 내가 되고, 내가 딸이 됩니다. 딸 목숨은 내 목숨이고, 내 목숨은 곧 딸 목숨입니다.


.. 먼저 오와다가 가져온 스토크 봉투를 열어 보니 아주 작은 씨앗이 나왔다. 씨앗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모래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갖고 온 페튜니아 봉투를 열어 보고는 더욱 놀랐다. 이건 모래도 아니다. 거의 가루에 가깝다 … “여기 있는 식물의 이름이 뭔지, 어떤 방식으로 키워야 할지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만약 정말 꽃으로 가득한 화원으로 만들고 싶다면 조사해 보는 게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 “BB, 너희 집 꽃가게 하는 거 맞지?” 오와다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어제 원예 책을 한 권 읽었을 뿐입니다.” 쇼지는 정색을 하고 대답하고 나서 오와다를 보았다. “오와다 군은 읽지 않은 겁니까?” ..  (30∼31, 50∼51쪽)


  이제 우리 시골마을이든 면소재지 언저리이든 온통 찔레나무 하얀 꽃잎 잔치입니다. 아이들과 두 다리로 씩씩하게 거닐며 마실을 하든, 자전거를 몰며 천천히 돌아보는 마실을 하든, 어디에서나 하얀 꽃잔치입니다.


  때때로 찔레꽃 하얀 송이 따서 입에 넣으며 잘근잘근 씹습니다. 돌을 갓 지난 아이 입에도 찔레꽃잎 밀어넣습니다. 아이들 모두 입을 낼름 벌립니다. 우리 집 처마에 깃든 제비들이 깐 새끼와 같습니다. 입 참 잘 벌립니다.


  찔레꽃잎을 톡 따서 한 닢씩 넣을 때에 살펴보니, 꽃잎 모양새는 이른바 ‘하트’입니다. 찔레꽃잎은 나무에 달린 모습도 예쁘고 한 닢 똑 딸 때에도 예쁩니다. 한 닢에서도 냄새 그윽하고, 무리진 꽃잎에서도 냄새 고즈넉합니다. 찔레꽃 한창인 곁을 지나가면 온몸에 찔레내음이 감돕니다. 찔레내음이 내 내음이 되고, 내 내음은 찔레내음과 하나가 됩니다. 바야흐로 여름이 코앞인 느즈막한 끝봄자락, 조용조용 찔레잔치를 누립니다.


.. “아니, 오와다 군은 아니지만 그런 불량한 차림새는 다른 학생들에게 불쾌감과 불안감을 느끼게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버젓이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더러 상자를 쓰고 학교에 가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에 졸업할 때까지 학교에 가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혼자 공부해서 고등학교에 들어왔습니다.” … “이름이랑 얼굴 때문에 놀림을 당했다고요! 이런 기분을 오와다 군은 모를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너를 놀리는 녀석이 없잖아!” ..  (71, 115쪽)


  우오즈미 나오코 님이 빚은 푸른문학 《원예반 소년들》(양철북,2012)을 읽습니다.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참 재미없겠다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꼭 도시라서 재미없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만, 온통 ‘더 잘난 학교’에 ‘더 높은 시험성적’ 거두는 데에만 온마음 기울이도록 하는 제도권교육일 때에는, 학교 다니는 재미나 기쁨이나 즐거움이나 보람을 누리기 어렵습니다.


  동무를 밟고 올라서는 일이란 무슨 재미일까요. 동무랑 점수겨루기를 하는 일이란 무슨 기쁨일까요. 더 높은 학교, 또는 더 잘난 대학교에 붙는 일이란 무슨 보람일까요. 모두 똑같은 옷차림에 머리모양에 생각에 가방에 …… 틀에 맞추는 일이란 무슨 즐거움일까요.


  집과 학교 사이를 오가면서, 이 많은 아이들은 무엇을 바라볼까요. 집과 학교 사이를 오가면서, 이 많은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교사는 무엇을 바라보나요.


  아이들은 무슨 삶을 누리는 어른으로 자라야 아름다울까요. 어른들은 무슨 삶을 누리는 푸른 나날을 거쳤을까요.


  사람은 왜 태어나서 살아가는가 생각합니다. 사람은 왜 삶을 누리며 사랑을 꽃피우는가 생각합니다. 사람은 언제 사람다운가 생각합니다. 사람은 어떤 목숨이요, 사람은 어떤 무늬이며, 사람은 어떤 넋인가 생각합니다.


.. 아는 꽃 이름이 늘자 집 근처나 학교를 오가는 길에 갑자기 꽃이 많아졌다. 물론 눈에 띄니까 그런 느낌이 나는 것일 뿐이지, 전부터 늘 있던 꽃이다 … “좋아, 자연을 보러 가자. 누가 뭐래도 우리는 원예반이잖아.” … 초록색이라고 다 같은 초록색이 아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초록색이 산속에 있다. 그 생각을 하면서 숲을 바라보니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  (92, 103, 109쪽)


  아이들이 누구보다 스스로 아끼면서 하루하루 좋아할 수 있으면 참 예쁘리라 봅니다. 아이들이 언제나 스스로 보살피고 이웃하고 어깨동무할 수 있으면 무척 아름다우리라 봅니다. 착한 아이들이 예쁜 아이들입니다. 참다운 아이들이 아름다운 아이들입니다.


  착한 아이들로 살아가며 착한 어른이 됩니다. 참다운 아이들 삶을 빛내며 참다운 어른이 됩니다. 어른이 된다고 할 때에 갑자기 거듭나지 않습니다. 어른이라는 나이에 들어서며 하루아침에 맑은 빛을 뽐내지 않습니다. 갓난쟁이일 적부터 차근차근 사랑을 누리고 빛을 받으면서 시나브로 자라나는 목숨입니다. 아이들은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마을에서나 온갖 사랑을 맞아들이면서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을 때에 씩씩하게 큽니다.


  나는 도시가 나쁘다고 따로 생각하지 않으나,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고 살아가는 아이들이 높다란 건물과 새까만 찻길과 끝없는 자동차와 형광등 켠 건물과 메마른 옷차림만 늘 바라보아야 한다면,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너무 슬프며 어두운 넋이 되겠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이 푸른 나무 푸른 잎과 마알가니 빛나는 환한 꽃을 느끼지 못한다면 어떻게 사람다운 사랑을 빛낼 수 있겠느냐 싶습니다. (4345.5.25.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 속 세탁소
모이치 구미코 지음, 나카무라 에쓰코 그림, 육은숙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맑은 숲을 마주하셔요
 [어린이책 읽는 삶 20] 모이치 구미코, 《숲 속 세탁소》(크레용하우스,2005)

 


- 책이름 : 숲 속 세탁소
- 글 : 모이치 구미코
- 그림 : 나카무라 에쓰코
- 옮긴이 : 육은숙
- 펴낸곳 : 크레용하우스 (2005.7.20.)
- 책값 : 7500원

 


  감나무마다 새잎이 푸르게 돋습니다. 감나무에 새잎이 처음 돋았을 때에는 몇 닢 살며시 톡 따서 입에 넣고 냠냠 씹었습니다. 감나무마다 새로 맞이한 봄에 즐겁고 씩씩하게 틔운 잎사귀마다 서린 향긋한 기운을 보들보들한 감잎으로 느꼈습니다. 이제 감나무 새잎은 꼴을 제대로 갖추며 차츰 커집니다. 머잖아 조그마한 별처럼 감꽃을 피울 테고, 감꽃이 바람 따라 하나둘 질 무렵 조그마한 감알이 푸른 빛깔로 맺히겠지요. 푸른 빛깔로 맺히는 조그마한 감알은 차츰 굵어지고, 차츰 굵어지다가 또 바람에 하나둘 떨어지다가는 알맞다 싶은 숫자를 남기고 찬찬히 발갛게 익겠지요.


  모든 몽우리가 꽃으로 피어나지 않습니다. 모든 꽃이 열매로 맺히지 않습니다. 어느 몽우리는 바람에 그만 떨어집니다. 어느 몽우리는 사람이나 멧새 손길을 타며 그만 떨어집니다. 어느 몽우리는 짓궂은 사람이 가지를 꺾는다든지, 또는 땔감 찾는 사람이 가지를 자르며 그만 몽우리로 끝나기도 해요.


  마루에 앉아 바깥을 바라봅니다. 아이와 손을 잡고 들길을 거닐며 두리번두리번 살펴봅니다. 들새이든 멧새이든 아주 가볍에 나뭇가지에 앉습니다. 몸집 커다란 해오라기나 왜가리도 아주 가벼이 나뭇가지에 앉습니다. 참 가느다랗다 싶은 나뭇가지이건만, 새들은 나뭇가지에 사뿐히 앉습니다. 새들이 앉을라치면 나뭇가지는 살짝 흔들리다가 이내 흔들림이 멎습니다. 여러 마리가 나란히 앉아도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일을 볼 수 없습니다.

 


.. 시커먼 먹구름이 사라지고, 하얀 양떼구름이 하늘 높이 피어 올랐어요. 오소리 아저씨는 오랜만에 세탁소 문을 닫고, 단풍딸기를 따러 가기로 했어요 ..  (6쪽)


  오늘날 여느 사람들이 들새나 멧새가 퍼덕퍼덕 살아서 날갯짓할 때에 손에 살그마니 쥘 일은 드물다고 느낍니다. 오늘날 여느 도시에서는 들새나 멧새를 마주하기 힘드니까요. 내가 마음을 열고 두 팔을 활짝 하늘로 뻗치며 가만히 선다면, 새들 몇 마리가 내 손이나 어깨나 머리에 살짝 내려앉았다가 다시 날아오르리라 느끼는데, 누구라도 새를 손바닥에 앉히고 보면, 새 한 마리 무게가 아주 가벼운 줄 깨달으리라 봅니다. 제법 큰 새라 할 만하다 싶은 직박구리라든지 까치라든지 까마귀라든지 무게가 많이 나가리라 여길는지 모르나, 막상 이 새들을 안아 보셔요. 하나도 무겁지 않습니다. 얼마나 작고 얼마나 가벼우며 얼마나 보드라운지 모릅니다.


  그러고 보면 나뭇가지 하나도 참으로 작고 참으로 가벼우며 참으로 보드랍습니다. 작은 나뭇가지가 모여 조금 굵직한 나뭇가지가 되고, 조금 굵직한 나뭇가지가 모여 제법 굵은 나뭇가지가 되며, 제법 굵은 나뭇가지가 모여 우람한 줄기가 됩니다. 우람한 줄기가 튼튼히 뿌리내려 아름다운 나무 한 그루로 섭니다.


  이 지구별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사람들도 더없이 작은 사람이요, 더없이 작은 사람이 깃든 지구별 또한 더없이 작은 별 하나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 “정말 고맙다. 하지만 우리 세탁소 빨래가 아니구나.” 오소리 아저씨는 하얀 것 가까이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어요. “정말 우리 세탁소에서 쓰는 쥐엄나무 열매를 우린 물처럼 달콤하고 향긋한 냄새가 나는구나. 그런데 이거 아주 좋은 털실로 만들었는데.” 그것은 오소리 아저씨가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새하얀 털실로 만든 것이었어요. 무지갯빛으로 반짝이며 보들보들하고 가벼웠지요 ..  (9쪽)


  숲을 마주합니다. 풀로 이룬 풀숲을 마주합니다. 풀숲에는 사람보다 조그마한 목숨이 수없이 얼크러집니다. 사람들이 풀숲에 아무 생각 없이 발을 디디면, 아주 조그마한 목숨은 그예 밟혀 죽고 깔려 죽습니다. 사람들이 풀숲을 따사로이 보듬거나 건사하면, 아주 조그마한 풀숲은 곱게 살아숨쉬다가는 고운 노래소리 들려줍니다. 바람에 일렁이는 풀잎이 서걱거리는 노래소리, 풀숲에 보금자리 마련한 벌레들 노래소리, 꽃잎이 피고 지며 내는 잔잔한 노래소리 들이 골고루 얼크러집니다.


  숲을 바라봅니다. 나무로 이룬 나무숲을 바라봅니다. 나무숲에는 사람보다 커다란 목숨이 수없이 어우러집니다. 사람들이 나무숲에 아무 생각 없이 발을 디디면, 나무마다 애써 떨군 작은 씨앗이 틔운 여린 새싹이 몽땅 짓밟혀 죽고 짓이겨져 죽습니다. 사람들이 나무숲을 너그러이 보살피거나 돌보면, 아주 커다란 나무숲은 해맑게 살아숨쉬다가는 해맑은 빛깔을 베풉니다. 눈부시게 반짝이는 나뭇잎 빛깔, 나무에 둥지 마련한 새들이 날갯짓하며 펼치는 빛깔, 햇살이 드리우며 알록달록 이루는 푸른 그림자 빛깔 들이 아리땁게 어우러집니다.


  숲이 있어 사람이 있습니다. 숲이 있어 벌레가 있습니다. 숲이 있어 짐승이 있습니다. 숲이 있어 지구별이 숨을 쉬고, 숲이 있어 모든 목숨이 먹이를 얻습니다.

 


.. “이게 내 것이 되면 아주 멋지게 쓸 텐데.” “아니, 곰 할아버지도요? 멋지게 쓰다니, 어떻게요?” 곰 할아버지는 멋쩍은 듯이 대답했어요. “찻주전자 덮개로 말일세.” “찻주전자 덮개요!” “그래. 아주 오래 전부터 찻주전자 덮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  (20쪽)


  숲바람이 마을을 감쌉니다. 흙땅에 나즈막하게 앉은 작은 집으로 이루어진 마을은 숲바람을 포근히 맞아들입니다. 숲에서 살아가는 새들이 작은 마을을 휘휘 돌며 나들이합니다. 숲에서 씨앗을 맺는 나무들이 작은 마을마다 푸른 빛 이야기를 휘휘 흩뿌리며 노래합니다.


  숲바람이 고속도로를 탑니다. 숲바람이 기찻길을 탑니다. 숲바람이 공장 굴뚝을 맴돕니다. 숲바람이 수많은 아파트 사이사이 돌고 돕니다.


  숲바람은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따사로우며 포근하고 시원하면서 향긋하고 싶습니다. 숲바람은 누구한테나 넉넉하며 너그럽고 느긋하면서 한갓지고 싶습니다. 숲바람은 사람들 가슴마다 푸른 빛깔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천천히 천천히 불며 천천히 천천히 서로 사랑하고 싶습니다.

 


.. 아이가 재빨리 물었어요. “그런데요?” “우리한테 주면 좋겠는데…….” 오소리 아저씨는 아이에게 날다람쥐와 토끼와 곰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자 아이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어요. “가방에, 호른 주머니에, 찻주전자 덮개로 쓴다고요? 좋아요. 모두 다 소중히 쓸 것 같으니 드릴게요.” ..  (29쪽)


  모이치 구미코 님 글에 나카무라 에쓰코 님 그림이 어우러진 어린이책 《숲 속 세탁소》(크레용하우스,2005)를 읽습니다. 잔잔히 물결치는 고즈넉한 줄거리가 빛나는 《숲 속 세탁소》는 숲에서 빨래하며 살아가는 ‘오소리 아저씨’ 삶을 한 자락 보여줍니다. ‘세탁소’라는 이름을 붙여 사람들이 이룬 도시에서 으레 보는 가게를 떠올릴까 싶기도 하지만, 숲에 깃든 오소리 아저씨네 집은 기계를 쓰지 않습니다. 오소리 아저씨는 ‘손으로 빨래’합니다. 이야기 흐름으로 보자면, “숲 속 빨래집”쯤으로 적을 때에 한결 잘 어울립니다. 쥐엄나무 열매 우린 물에 빨래를 담그고는 두 손으로 복복 비벼서 빨래를 해요. 숲에서 얻은 비누와 물로 빨래를 하고, 빨래를 마친 물은 숲으로 돌아가도록 합니다. 숲은 언제나 고요하고 숲은 늘 정갈하며 숲은 노상 빛납니다.

 


.. “굉장히 좋은 털실로 만든 장갑으로 별을 닦는구나!” “이거, 하늘의 양털로 만든 거예요.” “하늘의 양털?” 오소리 아저씨는 눈을 동그랗게 떴어요. 아이는 자랑스러운 듯이 말했어요. “저는 요즘 바람의 아이가 하는 일을 배우고 있어요. 오늘은 처음으로 혼자서 별을 닦았어요.” “바람의 아이가 하는 일?” “네. 풍차의 날개를 돌리기도 하고, 양치기 할아버지의 등을 밀어 주기도 해요 …… 모든 별을 다 닦는 건 아니에요. 큰 도시 위에서 더러워진 별만 닦아요.” ..  (32∼37쪽)


  나는 내 옷가지와 옆지기 옷가지와 아이들 옷가지를 빨래합니다. 먼지나 때가 묻은 옷가지를 빨래한다 할 텐데, 내가 하는 빨래는 내 살붙이들 삶을 얼마나 싱그러우며 아름다이 어루만지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깨끗하게 빨래할 무언가는 옷가지 하나만이 아닙니다. 나는 내 마음과 살붙이들 마음도 빨래합니다. 가장 좋은 꿈과 사랑을 실어 가장 좋은 넋과 얼이 되도록 마음빨래를 합니다. 마음을 갈고닦습니다. 마음을 쓰다듬습니다. 마음을 추스릅니다. 마음을 다스립니다.


  내 마음이 늘 정갈하다면, 나로서는 굳이 내 마음을 갈고닦지 않아도 될는지 모릅니다. 《숲 속 세탁소》에 나오는 ‘바람 아이’가 하는 일 가운데 하나는 ‘도시에서 더러워진 별 닦기’라 하듯, 시골에서 ‘더러워지지 않은 별’이라면 굳이 때를 닦지 않을 테니까요. 나 스스로 내 삶을 정갈히 건사해서 내 마음이 언제나 정갈하다면, 나는 굳이 내 마음을 갈고닦지 않아도 즐거워요. 이때에는 언제나 내 삶을 예쁘게 누리며 기쁘게 빛내고 살갑게 나눌 수 있으면 넉넉해요.


  새벽 두 시 반, 멧새들 노래소리를 듣습니다. 문득 우리 집 처마 제비집에서 나는 노래소리도 듣습니다. 새벽 두 시 반에 제비들이 왜 지저귀지? 어느덧 새끼가 알에서 깨어났나?


  두 아이는 달콤하게 색색 잡니다. 고단하게 뛰놀던 첫째 아이는 이리저리 뒹굴며 자고, 씩씩하게 기던 둘째 아이는 이리저리 뒤척이며 잡니다. 이 아이들 몸과 마음을, 또 나와 옆지기 몸과 마음을, 저마다 맑으며 밝게 아낄 수 있는 사랑을 생각합니다. 우리 집 마당 한켠 산초나무마다 푸른 빛깔 작은 몽우리가 몽실몽실합니다. 산초나무 꽃송이를 기다리며 새벽을 누립니다. (4345.5.11.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산촌 유학 - 제13회 미메이 문학상 대상 수상작
나카야마 세이코 지음, 서혜영 옮김 / 도서출판 문원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도시에는 숲이 있어야 해요
 [푸른책과 함께 살기 93] 나카야마 세이코, 《산촌 유학》(문원,2012)

 


- 책이름 : 산촌 유학
- 글 : 나카야마 세이코
- 그림 : 우메다 후지오
- 옮긴이 : 서혜영
- 펴낸곳 : 문원 (2012.2.29.)
- 책값 : 9000원

 


  학교가 처음 생긴 뒤부터, 무언가 배우려는 뜻을 품은 사람들은 학교가 있는 곳으로 찾아갑니다. 학교는 깊은 두멧자락 시골마을에도 서지만, 사람들이 조금 더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읍내나 도시 한복판에 서곤 합니다. 시골마을에는 자그마한 학교가 있다면 도시에는 커다란 학교가 있습니다. 시골마을에 대학교가 자리잡는 일은 드물지만, 도시에서는 대학교가 쉽게 생깁니다. 다른 나라가 어떠한가를 살피기 앞서 이 나라를 살피면, 한국에서 내로라한다는 대학교는 으레 서울에 몰립니다. 서울 바깥에는 ‘내로라한다는’ 대학교가 서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쉬 드나들거나 자주 찾아올 만한 도시에 학교가 서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극장도 책방도 도서관도 학원도 이것도 저것도 모두 도시 한복판에 서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둘레에서 으레 이렇게 말하기에 나 또한 어릴 적부터 이 같은 생각에 천천히 물들었습니다. 제아무리 좋다 하는 학교나 시설이나 기관이라 하더라도, ‘더 많은 사람이 쉽고 빠르게’ 찾아갈 만하지 않다면 부질없지 않겠느냐 여겼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더 많이 살아가는 도시라서 모든 시설과 학교가 도시에 모여야 할까요. 나부터 내 생각을 다스리면서 깨닫습니다만, 학교가 도시에 서야 할 까닭이란 없었구나 싶어요. 도서관도 박물관도 기념관도 체육관도 …… 어느 하나 도시에 서야 할 까닭이 없구나 싶어요. 도시에 무언가 서야 한다면 꼭 한 가지라고 느껴요. 바로 ‘숲’이라고 생각해요.


.. 오른쪽을 봐도 왼쪽을 봐도,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온통 초록이다. 초록색 사이로 시냇물이라기에는 조금 큰 물길을 따라 맑은 물이 흐르고, 드문드문 보이는 기와지붕도 모두 같은 초록색이다 … “낡은 집이지? 지은 지 백 년은 됐을걸.” 현관의 큰 미닫이문을 열면서 아줌마가 말했다. 그 집은 무척 낡아 보였다. 에어컨도 달려 있지 않은 옛날 집이다. 그럼에도 집 안 공기가 서늘한 것은 지붕이 크고 천장이 높기 때문일까? … 별이 이렇게 밝게 빛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어쩐지 딴세상에 온 것 같았다. 일본은 어디나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소리, 냄새, 색깔, 빛, 바람…… 여기는 내가 사는 곳(도쿄)과는 완전히 다르다 ..  (7, 22, 26쪽)


  도시에는 다른 시설이나 기관은 한 가지도 없어도 되리라 느낍니다. 도시에 대학교뿐 아니라 박물관이나 기념관 또한 한 곳도 없어도 되리라 느낍니다. 그러나, 도시에 숲이 없다면, 나무그늘과 들판이 없다면, 논이랑 밭이 없다면, 냇물이랑 골짜기랑 멧자락이 없다면, 이런 데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도시에 사람들이 많이 몰린 까닭은 학교 때문이 아닙니다. 돈 때문입니다. 먼먼 옛날부터 어느 나라에서든 도시가 이루어지는 까닭은 돈이 모이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은 돈 때문에 도시를 만듭니다. 어른들은 돈을 거머쥐려고 도시를 더 크게 키웁니다. 이렇게 어른들이 웅성웅성 모여 돈벌이를 하다가 남녀가 짝을 지어 아이를 낳고, 아이를 낳다 보니 수많은 아이들을 가르칠 겨를이 없습니다. 시골에서는 어버이와 아이가 숲과 들과 바다에서 함께 뒹굴며 서로 가르치고 배우지만, 도시에서 어버이 자리에 설 어른들은 돈을 버느라 바빠요. 언제나 돈을 벌고 늘 돈을 생각합니다. 도시에서 돈을 버는 어른들은 아이들하고 하루 내내 복닥이거나 뒹굴면서 삶을 가르치고 배우는 흐름을 읽지 못해요.


  곰곰이 따지면, 학교는 시골에 서야 올바르지만, 시골에서는 따로 학교라는 울타리가 없어도 됩니다. 도시는 학교가 설 만한 터가 아니지만, 도시 어른들은 아이들을 즐거이 가르치고 아이들한테서 스스럼없이 배울 짬이 없는 나머지, 따로 학교를 세웁니다. 따로 세운 학교에 아이들을 넣고, 아이들한테 삶 아닌 지식을 물려줄 어른을 새로 전문직업인으로 키웁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전문직업인 자리에 설 어른한테서 삶을 배운다면 이 아이들은 ‘돈만 벌 뿐 삶을 가르치지 못하는 어버이’ 곁을 금세 떠나거든요. 삶을 배울 수 없는 어버이한테서는 사랑을 배우지 못합니다. 삶을 들려주지 못하는 어버이한테서는 꿈을 듣지 못합니다. 삶을 보여주지 않는 어버이한테서는 이야기를 얻지 못합니다.


.. 재밌는 건 학생수가 적어서 교장 선생님이 전교생의 얼굴을 모두 알고 있다는 것, 아이들을 부를 때도 별명으로 부른다는 것이다 … 우리 (도쿄) 학교에서는 다른 학년과는 사이가 좋아지는 일이 없다. 그런데 여기서는 학년이 다른 건 크게 상관이 없는 모양이다. 2학년 아이가 (5학년) 아키라를 친구처럼 그냥 “아키라!” 하고 불렀고 … 인원수가 적어서 여자아이들과 저학년 아이들도 함께 시합을 했다. 저학년이 들어오면 공의 힘이 약하거나 패스를 해도 공이 제대로 안 가서 좀 헤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런 데에는 이미 익숙한 듯, 그렇다고 저학년 아이를 빼놓고 시합을 하지는 않았다 ..  (22, 40∼41쪽)


  도시에는 책방이 없어도 됩니다. 도시에서 돈벌이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책방에 찾아가서 마음을 살찌우는 책을 읽을 겨를이 없으니까요. 도시에서 돈벌이 일에 매인 사람으로서는 책방으로 나들이를 하면서 마음을 착하고 환하게 빛낼 책을 끌어안을 틈이 없으니까요.


  도시에는 책방이 많아도 오늘날 도시사람은 책방마실조차 안 합니다. 인터넷으로 책을 삽니다. 인터넷으로 처세책과 자기계발책과 문학책과 인문책만 사다 읽습니다. 정작 삶을 밝히는 책은 사다 읽지 못하고, 애써 삶을 밝히는 책을 사다 읽어도 ‘이야기를 느낄 가슴’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도시사람은 삶을 밝히는 책을 읽으면서도 삶을 못 느끼고 말까요.


  돌이키면 나부터 지난날 도시에서 살며 이와 같았다 할 텐데, 도시에는 숲이 없기 때문에 숲넋을 삶으로 아로새기지 못합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며 숲을 끌어안고 숲을 아끼며 숲을 어깨동무하는 매무새일 때라야 비로소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숲을 모르면서 책을 읽지 못합니다. 숲하고 사귀지 않으면서 책을 사귀지 못합니다. 숲을 사랑하지 않을 때에는 책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도시에는 다른 무엇보다 숲이 있어야 합니다.


.. 일어나자마자 집안일을 도우라니, 이건 또 뭐야! 야채 주스를 마시면서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밥이 나오는 게 아침이잖아? 집안일을 돕다니!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이를 잃은 할머니에게는 아직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거야. 지금도 때때로 꿈속에서 그 아이를 찾고 계신단다.” 등을 둥글게 웅크린 채 흐느끼는 할머니의 모습이 어둠 속에서 희뿌옇게 보였다. 잠이 완전히 깨고 말았다. 이부자리로 돌아왔지만 도저히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희생자 몇 명, 사망자 몇 명, 매일처럼 흘러나오는 텔레비전 뉴스나 신문의 글자. 하지만 숫자로는 아무것도 전할 수 없다. 사람을 숫자로 나타내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  (29, 102∼103쪽)


  숲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삶을 누리지 못합니다. 숲을 누리지 못하는 오늘날 도시사람은 삶을 누리지 못합니다. 다만, 도시에 가득한 돈을 누립니다. 도시에 넘치는 돈으로 값싸거나 값비싼 놀음놀이에 빠져듭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즐거운가를 생각하지 못하고, 어떻게 돈을 써야 할까를 따집니다. 어떻게 사랑할 때에 기쁜가를 헤아리지 못하고, 어떻게 돈을 굴릴까를 살핍니다.


  ‘산촌 유학’이란, 곧 ‘시골 배움마실’이란, 숲을 잃거나 잊은 도시에서 생각을 잃거나 잊고 싶지 않은 어른들이 당신 아이들한테 생각을 일깨우고 사랑을 보여주며 꿈을 들려주고 싶은 가느다란 끈과 같다고 느낍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며 이마저 하지 못한다면 아이한테나 어버이한테나 아름다운 삶 한 자락 누릴 수 없겠다고 여기며 함께하는 ‘학교’라고 느낍니다.


  이제 시골에서 도시로 떠날 아이들은 거의 다 떠났습니다. 앞으로도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갈 아이들은 이럭저럭 있기는 한데, 머잖아 이 아이들은 몽땅 도시로 갈는지 모릅니다. 거꾸로, 도시에 몰린 채 삶이 아닌 지식에 허덕이며 사랑 아닌 정보에 둘러싸인 채 파리해지고 쓸쓸해지는 아이들이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갑니다. 흔히들 ‘귀농’이나 ‘귀촌’을 말하는데, 이제야말로 시골로 가지 않고서야 사람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여길밖에 없습니다. 도시에 남는다 하더라도 끼니를 이으며 돈을 벌 수 있겠지요. 도시에서는 돈벌이가 끊이지 않을 테니까, 어떡해서든 이웃나라하고 무역을 하며 공산품을 내다 팔아 먹을거리를 사들이면 밥은 먹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참말 어른도 아이도 사람답게 살아남고 싶다면, 아니 사람답게 살아가고 싶다면,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갈밖에 없습니다.


.. “응, 그랬어. 하지만 나랑 아키라 오빠는 굉장히 기다렸어. 케이 오빠가 오는 거.” 나나는 나를 보면서 뒷걸음질 치며 걸었다. “왜?” “그냥…… 그게 그러니까, 친구가 생기는 건 기쁜 일이잖아!” …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엥? 그런데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하지만 여름이 끝나면 말라 버리지. 다른 꽃들도 겨울이 되면 말라 버려서 어디에 있었는지조차 모르게 돼. 눈 아래에 묻히고 나면 다시는 꽃이 피지 않을 것 같지. 하지만 봄이 됐는데 꽃이 안 핀 적이 있니?” ..  (35, 89쪽)


  천천히 생겨 천천히 퍼지는 산촌 유학입니다. 시골살이를 하나도 모르는 채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편의점과 유흥시설과 텔레비전과 전자제품에 익숙합니다. 도시 아이들뿐 아니라 도시 어른들은 전철도 버스(도시처럼 자주 많이 다니는 버스)도 비행기도 없는 시골에서 어떻게 지내야 하는가를 알지 못합니다. 자가용 없이 다니는 길, 두 다리로 걸어서 다니는 길, 온몸을 움직여 살아가는 나날을 알지 못합니다.


  도시에서는 그야말로 몸 한 번 움직이지 않아도 밥을 먹고 옷을 입으며 잠을 잡니다. 돈이 있으면 도시에서는 내 몸이 뚱뚱해지건 말라비틀어지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돈만 있으면 도시에서는 내 삶이 어떻게 뒤틀리거나 비틀리거나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시골에서도 돈만 있으면 다 될까요. 시골에서도 돈만 있으면 아무 걱정거리가 없을까요. 시골에서도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지낼 만할까요.


.. 친구들과 함께 채소를 거두기도 하고, 논밭의 김매기를 돕기도 했다. 맨발로 흙 위에 서면 부드럽고 근질거리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 엄마는 슈퍼에서 사는 채소가 비싸다, 비싸다, 불평하곤 했지만, 출하까지 이렇게 품이 많이 드니 어쩔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모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버스에 올라타려는데, 할머니의 감자 같은 손이 내 등에 닿았다. “언제든지 돌아오렴.” ..  (43, 59, 141쪽)


  나카야마 세이코 님이 빚은 푸른문학 《산촌 유학》(문원,2012)을 읽습니다. 이 문학책은 푸름이가 읽도록 쓴 이야기인데, 푸름이 가운데에서도 시골 아닌 도시에서 살아가는 푸름이가 읽도록 썼습니다.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이 책을 읽을 일이 아예 없지는 않겠으나, 이 책을 읽을 아이라면 도시에서 도시살이에 젖은 채 지내는 아이라고 느낍니다. 그런데, 도시 아이들이 이 책을 즐겁게 뽑아들어 읽을까 모르겠습니다. 도시 아이들은 도시에서 누리는 갖가지 놀음놀이를 들려주는 이야기책을 읽지, 시골마을 나들이 이야기를 읽을까요. 도시 아이들 가운데 스스로 깨우치거나 깨달아 도시를 떠나려 하는 아이가 있을까요. 도시 아이들 가운데 교사나 어버이가 이 책을 건네기 앞서 스스로 알아보거나 알아채어 기쁘게 읽어 제(푸름이) 삶을 고치려고 땀흘릴 아이가 있을까요.


  틀림없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틀림없이 도시 삶이 어딘가 비틀리렸다고 느낄 푸름이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틀림없이 입시지옥과 제도권교육과 사회제도 모두 어딘가 튀들렸다고 느낄 푸름이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한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뜻을 되새길 도시 푸름이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한 목숨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빛을 톺아볼 도시 푸름이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한 사랑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꿈을 보듬을 도시 푸름이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제 어버이와 교사를 이끌고 도시를 떠나자고 씩씩하게 외치며 시골 삶을 찾아 빛·꿈·사랑을 일구려 할 도시 푸름이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4345.5.8.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0대와 통하는 윤리학 - 함규진 선생님이 들려주는 윤리와 도덕 이야기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6
함규진 지음, 스튜디오 돌 그림 / 철수와영희 / 201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윤리·도덕·예의, 착함·참됨·고움
 [푸른책과 함께 살기 92] 함규진, 《10대와 통하는 윤리학》(철수와영희,2012)

 


- 책이름 : 10대와 통하는 윤리학
- 글 : 함규진
- 그림 : 돌 스튜디오
- 펴낸곳 : 철수와영희 (2012.4.19.)
- 책값 : 11000원

 


  1988년부터 1990년까지 다닌 중학교에서 ‘도덕’ 과목을 배웠습니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다닌 고등학교에서 ‘철학’과 ‘국민윤리’ 과목을 배웠습니다. 교사들은 우리를 바라보며 “너희는 도덕을 배우면서도 도덕적이지 않다”고 말하기 일쑤였고, “국민윤리를 배우면서 윤리를 지킬 줄 모른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며 교사들한테 대꾸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무렵 교사한테 대꾸 한 마디 할라치면 뺨따귀를 올려붙이거나 몽둥이로 등짝 머리통 허벅지를 마구마구 두들겨팼기 때문입니다.


  1982년부터 1987년까지 다닌 국민학교에서는 ‘바른생활’ 과목을 배웠습니다. 교과서에 실린 이야기는 하나같이 옳고 바른 길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우리한테 이런 ‘옳고 바른 길’을 가르치는 교사 스스로 옳고 바른 모습을 보여주었다고는 느끼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학교에서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도록 닦달하고 새마을청소를 시키며 제식훈련과 교련 따위로 우리들 가슴에 군국주의 넋이 스며들도록 내몰았어요.


.. 윤리가 왜 유익할까? 어떤 단체든, 사람이 모여서 만들어진 단체는 질서를 잡기 위한 규칙이 있어야 해 … 법에 앞서 도덕이 있어야 그 사회가 건강해질 수 있고, 그러기에 도덕에 근거해서 행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윤리가 필요한 거란다 …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주어지는 간섭과 통제, 참 힘든 문제지 … 윤리학적으로 보면, 이것은 전에 말한 윤리의 정신에서 배려가 너무 지나친 경우라고 볼 수 있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너무 큰 나머지, 그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게 되는 거지 ..  (16∼17, 34쪽)


  고등학생이던 때, 국민윤리 교사한테 한두 차례쯤 여쭌 적 있습니다. 윤리나 도덕이나 철학이란 ‘착한 삶’을 말하려 하지 않느냐고. 그러나 마땅하다 싶은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습니다. 오직 대입시험을 잘 치르는 일 하나와 중간·기말시험에서 내신성적이 잘 나오도록 하는 데에 마음을 쏟으라는 이야기만 듣습니다.


  나는 혼자서 생각합니다. 착하게 살고 참답게 살며 곱게 살아갈 때에 아름답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바른생활이든 도덕이든 국민윤리이든 철학이든, 동양철학이든 서양사상이든 하나도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좌파가 되든 우파가 되든 무슨 보람이 있을까요. 중도가 되든 극좌나 극우가 되든 무엇이 대수로울까요. 어느 갈래인가를 묻지 않으면서 가장 아름답게 내 삶을 꾸릴 때에 가장 즐겁게 누리는 날이 아닐까요.


  동무들은 거의 모두 책상에 엎드려 자던 고등학교 교실에서 나는 엎드려 자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국민윤리와 철학 과목을 귀기울여 듣지 않습니다. 나는 혼자서 생각에 잠깁니다. 내가 가장 착하게 살아가고 참다이 살림을 꾸리며 곱게 사랑할 길은 어떠한 모습일까 하고 꿈을 꿉니다.


  알맞춤하다 싶을 만한 땅을 얻어 스스로 흙을 일구어 밥과 옷과 집을 마련할 때에 가장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삶이 되리라 느낍니다. 그런데, 나는 흙일을 배운 적 없습니다. 흙일을 가르치는 어른이 없습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며 도시 인문계 학교를 다니며 대학시험에 목매다는 학생으로서, 도무지 흙일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를 헤아리지 못합니다.


  대학교에 가면 흙일을 가르쳐 줄까. 나 혼자 시골마을로 찾아가서 배울 수 있을까. 논밭은 어떻게 마련하지. 논밭을 일구는 동안 밥은 어떡하나.


  혼자서 생각에 잠기고 꿈을 꾸지만, 이런 걱정 저런 근심이 뒤따릅니다. 국민학교 여섯 해와 중학교 세 해에 이어 고등학교 세 해에 다시금 제도권교육에 길들여지면서, 아름다이 꿈꾸며 즐거이 살아가는 일보다, 이런 논리 저런 이론을 앞세워 걱정과 근심을 쌓는 데에 더 마음이 기울어집니다.


.. 그런데 이상하잖아? 지식보다 함께 사는 법, 윤리적 생활방식을 배워야 하는 학교에서 왜 전보다도 더 비윤리적인 일들이 그토록 자주 일어나는 거지? 학교를 윤리적으로 비람직한 공동체로 만들려면 학생들의 주체적인 노력이 필요한 건 아닐까? 선생님들도 옛날이 좋았다는 타령만 늘어놓지 말고, 좋은 대학 보내는 일에 급급해 하지 말고, 학생들이 훌륭한 가치관을 정립하게 하게끔 도와야 하는 게 아닐까? … 전쟁 덕분에 발전한 기술은 ‘목적’조차 아니지. 그저 ‘부수적 효과’일 뿐이지. 로켓이나 인터넷을 개발하려고 전쟁을 벌인 건 아니잖아? ..  (61, 130쪽)


  함규진 님이 쓴 《10대와 통하는 윤리학》(철수와영희,2012)이라는 푸른책을 읽는 동안 지난일이 떠오릅니다. 학교에서 이만 한 깊이와 너비로 바른생활·도덕·국민윤리를 가르치려 했으면 생각이나 삶이나 꿈이 꽤 달라질 수 있었겠다고 느낍니다. 학교에서는 적어도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조차 들려주지 못했습니다. 아니, 학교는 이와 같은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를 안 다루거나 멀리하도록 내몰았습니다.


  학교는 아이들을 입시기계가 되도록 몰아붙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푸른 넋 푸른 꿈을 키우지 못하도록 해야, 이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마치고 나서 기꺼이 군대에 들어가 젊은 넋 젊은 몸을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푸른 사랑 푸른 살림을 살피지 못하도록 해야, 이 아이들이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되어 돈벌이하는 일에만 매이도록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책이 교과서보다 넓고 깊게 생각을 담는다 하더라도 이론 이야기와 논리 이야기 테두리에서 벗어나지는 않아요. 교과서보다 이론을 넓게 살피고 논리를 깊이 들여다본다 하더라도 이론이랑 논리 울타리에서 맴돌기는 서로 엇비슷해요.


  스스로 빚는 생각을 엿보지 못합니다. 스스로 누리는 좋은 마음을 깨닫지 못합니다. 교사이든 교사 아닌 사람이든, 책을 많이 읽고 학교를 오래 다녔으며 나라밖으로 배우러 다녀오기까지 한다지만, 그닥 윤리·도덕·예의를 지킨다고 느끼기 어렵습니다. 훌륭하다는 책을 많이 읽었다거나 대단하다는 학교를 마쳤다 하지만 막상 착함·참됨·고움을 빛내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 ‘제 앞가림 못 하는 어른들’ 대부분이 이처럼 청소년기에 ‘도야’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방치되거나 야만적인 억압에 시달렸던 사람들이란다 … 오국이 스스로 의지와 결단으로 국가에 충성한다면 윤리적으로 잘못을 찾기 어렵지만, 누군가가 그런 생각을 오국이에게 주입한 것이라면 결코 옳다고 볼 수 없으니까 … 아렌트가 본 아이히만은 피에 굶주린 야수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거든. 그러나 그런 사람이 광기에 찬 체제의 하수인이 되면,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악행을 저지르게 된다는 거야 ..  (79, 100, 140쪽)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신문읽기도 배웁니다. 신문을 제대로 읽는 길을 익힙니다. 그렇지만, 막상 스스로 ‘신문쓰기’를 하지는 못합니다. ‘제도권 신문 틀’에 맞게 학급신문이나 학교신문을 만들기는 하지만, 아이들 스스로 ‘아이인 내 삶’을 아끼고 사랑하는 이야기를 담아 내 나름대로 내 꿈을 펼치는 ‘내 신문’을 빚도록 돕거나 이끌지 않아요.


  아이들한테 권장도서나 추천도서를 읽히고 독후감 숙제를 하도록 몰아세우는 어른들입니다. 아이들 스스로 ‘저마다 마음과 몸에 알맞다 싶은 책’을 스스로 느끼며 찾도록 북돋우지 않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도서관·새책방·헌책방 나들이를 즐기면서 독후감 숙제나 대학입시에서 홀가분한 채 마음닦기를 거드는 책을 찾아 읽도록 살찌우지 않아요. 더 생각한다면, 아이들 스스로 ‘내 삶을 내가 손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진을 찍어 엮는 책’을 짓도록 일깨우지 않아요. 무엇보다, 어느 책이든 내가 꾸리는 삶이 밑바탕이 되어 태어나는 줄 찬찬히 들려주지 못해요.


  학교급식은 얼핏 보면 평등한 교육 문화입니다. 그러나, 학교급식이라는 굴레로 다 다른 아이들 다 다른 몸 다 다른 입맛을 다 똑같이 맞춥니다. 가장 좋은 밥을 학교에서 마련해 준다고 하지만, 다 다른 아이들 삶을 살필 수 없는 학교급식입니다. 어느 아이는 고기를 먹을 수 있을 테지만, 어느 아이는 고기를 먹을 수 없습니다. 어느 아이는 소젖을 마실 수 있을 테지만, 어느 아이는 소젖을 마실 수 없습니다. 달걀이나 치즈나 기름이 안 맞는 아이가 있습니다. 밀가루나 유산균이 안 맞는 아이가 있습니다. 채식이라 해서 다 같은 채식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곰곰이 짚을 대목이 있는데, 풀을 먹는 소한테 고기 성분 깃든 사료를 주면 소가 미쳐요. 고기를 안 먹는 아이한테 고기 반찬을 내주는 일이란, 고기를 썰어 넣고 끓인 카레를 주는 일이란, 소한테 고기를 먹이는 일하고 똑같아요. 밀가루나 유산균이 몸에 안 받는 아이한테 국수나 김치나 냉면이나 동치미를 먹으라 하는 일이란, 갈매기한테 새우깡을 먹이며 내장을 망가뜨리는 일하고 같아요.


  아이들한테 가르친다는 윤리란 무엇일까요. 아이들한테 들려준다는 도덕이란 무엇인가요. 아이들한테 다그치는 예의란 무엇이려나요.


.. 우리는 스스로 마음에 비추어,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을 아름답게 여기고 있지. 그 느낌을 느낌으로 끝내지 않고 남을 돕는 일은 옳은 일이야 ..  (119쪽)


  《10대와 통하는 윤리학》이라는 책을 생각합니다. 초·중·고등학교에서 쓰는 교과서란 참 부질없다고 느낍니다.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교과서 지식을 외우도록 한대서 아이들은 착함·참됨·고움하고 사귈 수 어려우리라 느낍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교과서 지식을 외우도록 한다면 윤리·도덕·예의라 하는 지식을 집어넣을 수 있겠지요.


  착하게 살아가는 길 아닌 윤리를 따지는 일을 생각하도록 이끕니다. 참다이 살림하는 길 아닌 도덕을 찾는 일을 생각하도록 이끕니다. 곱게 사랑하는 길 아닌 예의를 살피는 일을 생각하도록 이끕니다.


  그렇다고 《10대와 통하는 윤리학》이라는 작은 책 하나에 이 모두를 어우르는 사랑과 꿈과 이야기를 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이 작은 책 하나는 대한민국에서 제도권학교에 다니며 입시지옥에 시달리며 대학바라기를 해야 하는 아주 많은 아이들이 교과서 윤리와 도덕과 예의 울타리에서 홀가분하게 지내는 넋을 보듬으려 할 뿐이니까요.


  삶을 바꾸고 싶으면 넋을 바꿀 노릇이고, 넋을 바꾸고 싶으면 말을 바꿀 노릇이며, 말을 바꾸고 싶으면 삶을 바꿀 노릇입니다. 학벌사회를 고치고 싶으면 나부터 학벌하고는 홀가분하게 살아가면 됩니다. 가부장사회를 뜯어고치고 싶으면 나부터 서열이나 돈이나 직장을 내세우며 집일하고 등지는 매무새를 뜯어고치면 돼요.


  윤리에 앞서 착한 삶이에요. 도덕에 앞서 참된 넋이에요. 예의에 앞서 고운 말이에요. (4345.4.21.흙.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