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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철도의 밤 - 푸른문고 14 푸른문고 34
미야자와 겐지 지음, 김유영 옮김, 김주형 그림 / 푸른나무 / 1997년 5월
평점 :
절판




 아픈 눈길로 바라보며 껴안는 동무
 [어린이책 읽는 삶 4] 미야자와 겐지, 《은하철도의 밤》(푸른나무,1997)



- 책이름 : 은하철도의 밤
- 글 : 미야자와 겐지
- 옮긴이 : 김유영
- 그림 : 김주형
- 펴낸곳 : 푸른나무 (1997.5.1.)
- 책값 : 판 끊어짐



 (1) 가난한 삶


 아이들한테 만화영화를 보여주면서 한국말로 나오는 일이 영 달갑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라밖 만화영화에 한국말을 넣을 때 옳거나 바르거나 알맞거나 살갑거나 곱거나 깨끗하다 싶은 한국말로 가다듬거나 추스르는 일은 아예 없기 때문입니다.

 네 살 아이가 한국말을 익히자면, 함께 만화영화를 볼 때에 한국말로 들어야 더 낫다 여길 만합니다. 그렇지만, 네 살 아이일 때부터 엉터리 한국말을 자꾸 들어야 한다면, 제아무리 아름답다 싶은 만화영화라 할지라도, 이를테면 〈이웃집 토토로〉 같은 만화영화라 하더라도 한국말로는 들려주기 싫습니다. 그냥 일본말로 듣고 느낌과 마음으로 이야기를 읽도록 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아무나 만나지는 않습니다. 온갖 사람을 스친다 하더라도 아무하고나 사귀지는 않습니다. 어떤 이는 우리 아이를 바라보며 귀엽다며 ‘엉터리 말투’로 이야기를 걸곤 합니다. 이럴 때 아버지는 곁에서 아이한테 사잇말을 건넵니다. ‘엉터리 말투’를 걸러서 아이한테 들려줍니다.

 시골집으로 찾아온 택배회사 일꾼이 아이보고 ‘바이바이’라 하건 ‘안녕’이라 하건, 아버지는 아이 곁에 서서 “‘잘 가셔요’라 해야지.” 하고 말합니다. 어른들은 으레 아버지가 이렇게 이르는 말마디가 ‘어른한테 높임말을 쓰도록 하는’ 줄 여기지만, 높임말에 앞서 옳게 말을 해야 하기에 옳게 말하도록 이끌 뿐입니다. 할머니나 할아버지한테 하는 인사라면 “살펴 가셔요.”라 말하도록 합니다.

 우리 두 아이는 아무런 보육시설을 다니지 않습니다. 아무런 보육시설을 다니지 않으니 나라에서 두 아이한테 ‘보육시설 미이용 가구 지원’ 정책에 따라 다달이 십만 원 남짓 줍니다. 두 아이가 보육시설을 다닌다면, 두 아이는 보육시설에 들여야 하는 돈을 몽땅 받을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두 아이를 보육시설에 넣는다 할 때에는 돈이 한푼조차 안 들 뿐 아니라, 집에서 아이들 뒤치다꺼리 하느라 힘들이지 않아도 돼요.

 다만, 두 아이를 보육시설에 넣는다면, 두 아이가 날마다 새롭게 크는 모습을 마주할 수 없습니다. 두 아이가 어떤 말을 들으면서 배우는지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두 아이가 어떤 모습과 삶을 바라보면서 어떠한 모습과 삶에 길들거나 익숙해지는가를 가늠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보육시설에 넣을 두 아이는 어버이가 자가용을 몰고 데려다주고 데리러와야 합니다.


.. 죠바니는 조금 더 먹고 싶었지만 사양했습니다. 언젠가 제과점 유리창에서 과자를 바라보며 침을 삼키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자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 ‘빙산이 흐르는 북쪽 바다에서 자그마한 배를 타고서, 바람이랑 얼어붙는 바다랑 혹독한 추위랑 누군가 열심히 싸우고 있었구나.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그 사람들이 정말로 불쌍하구나.’ ..  (106, 127쪽)


 자가용 없는 우리 살림에 읍내나 면내까지 아이들을 데려다주었다가 데리러올 수 없습니다. 더구나, 이러고 싶지 않습니다. 보육시설이라는 데에서는 아이들 오줌가리기를 하지 않으며, 아이들이 마음껏 놀고 뛰도록 하기보다는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니까 달갑지 않습니다. 이 어린 아이들이 어린 나날부터 영어에 익숙하도록 내몹니다. 이 어린 아이들이 시골 아이라 하든 도시 아이라 하든 도시 자본주의 물질문명에 젖어들도록 이끕니다. 시골 어린이집이라서 논밭에서 일한다거나 멧골짜기를 탄다든지 하지 않아요. 숲을 쏘다닌다든지 나무랑 사귀지 않습니다. 목돈 들여 지은 시설에 갖춘 플라스틱이나 쇠붙이 놀잇감을 갖고 놀 뿐입니다. 여느 보육시설에 아이를 넣는다면, 이때부터 초등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아이들은 호미이든 낫이든 쟁기이든 손에 쥘 일이 무척 드뭅니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치고 흙하고 가까워지기란 참으로 힘듭니다.


.. 죠바니는 표지판과 지도를 비교해 보고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나 죠바니는 왠지 모르게 옆에 있는 새 사냥꾼이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백로를 잡아 보자기로 둘둘 말아 가지고 와서 기뻐하다가, 이까짓 표 한 장에 깜짝 놀라 곁눈질로 보며 나를 부러워 하다니. 아마 저 사람은 생활이 너무 어려워서 이런 표조차 구할 수 없었던 거야.’ 죠바니는 돌아오시지 않는 아버지와, 집에 누워 계신 어머니,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누나와 자기 자신을 생각하자, 그 새 사냥꾼의 처지가 마치 자기 일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죠바니는 처음 보는 그 새 사냥꾼을 위해 자기가 가지고 있는 표든, 그 무엇이든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118쪽)


 어버이로서 생각합니다. 우리 식구가 굳이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애써 안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난하든 가난하지 않든 늘 세 가지 마음밭을 돌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참답게 살아야 합니다. 둘째,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셋째, 아름답게 살아야 합니다.

 세 가지 마음밭을 일구면서 가난하든 가멸차든 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 세 가지 마음밭을 일구지 않는다면, 가난하게 살아도 슬프고 가멸차게 살아도 딱하다고 느껴요.

 새옷을 사입지 못하면 어때요. 좋은 이웃이나 동무한테서 헌옷을 얻어 입히면 즐겁습니다. 바깥밥을 사먹이지 못하면 어때요.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읍내 장마당에 다녀오며 집에서 차리는 밥으로 함께 배부르면 넉넉합니다.

 자가용을 타고 멀리멀리 마실을 못 다니면 어때요.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이 손을 잡으며 멧길을 오르내리면서 멧바람을 시원하게 쐬면 됩니다. 멧길을 오르내리다가 멧풀을 조금 뜯어 밥거리를 삼으면 기쁩니다.

 가난하대서 풀을 뜯어먹지 않습니다. 가멸차기에 풀을 안 뜯어먹지 않습니다. 아름답게 살고 싶으니까 멧자락 조그마한 집을 찾아들어 네 식구가 아옹다옹거립니다. 참답게 살고 싶기에 좋은 돈벌이라 하는 일자리는 등을 지면서 복닥거립니다. 착하게 살고 싶어 자전거를 아끼며 사랑합니다.


.. 그러다가 이 아이들에게는 세상을 살아가는 행복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앞으로 헤쳐 나갔습니다 … 결국 나는 이 아이들을 부둥켜안고 단단히 각오를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의 자리를 빼앗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지요 ..  (126쪽)


 나는 자전거 한 대만 있으면 좋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고픈 데에는 다 갈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기 힘들다면 버스를 얻어탑니다. 도시에서는 전철도 탑니다. 택시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되도록 버스도 전철도 택시도 타고 싶지 않습니다. 웬만하면 네 식구가 나란히 걷고 싶습니다. 네 살 딸아이하고 둘이 돌아다닐 때에는 자전거에 수레를 붙여 함께 다니면 됩니다. 어찌 보면 우리 살림이 가난하기에 이렇게 살아간달 수 있는데, 앞으로 어찌저찌 우리 살림이 가멸차게 되는 날을 맞이하더라도 오늘과 같은 삶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에어컨을 쐬면 몸이 아프지만, 멧바람을 쐬면 몸이 즐겁습니다. 햇볕을 쬘 때에 몸에서 기운이 납니다. 흙을 사랑하는 시골자락에서 흙 밑으로 흐르는 물을 길어올려 마시거나 몸을 씻을 때에 개운합니다. 구름을 이끄는 바람이 고맙습니다. 빗물과 나비와 개구리와 들풀이 반갑습니다.


 (2) 가난한 문학


 미야자와 겐지 님이 쓴 《은하철도의 밤》(푸른나무,1997)을 읽습니다. ‘푸른나무’에서 1997년에 나온 책은 어느새 판이 끊어집니다. 어린이가 함께 읽도록 조금 굵직한 글씨에다가 그림을 곁들인 예쁘장한 《은하철도의 밤》은 헌책방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참 아쉽지만, 이러한 모습이 우리 나라 모습입니다. 숨길 수 없는 모습입니다. 감출 수 없는 삶입니다.


.. “우리들은 이제 그 어떤 슬픔도 없을 거야. 우리는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여행하면서 바로 하느님이 계신 곳으로 가는 거야.” … “하지만 우리들은 여기에서 내리지 않으면 안 돼. 여기는 천상으로 가는 곳이니까.” “천상에 가지 않아도 되잖아? 우리들은 이 땅에서 천상보다 더 좋은 곳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어.” “하지만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하느님이 계시잖아?” “그런 하느님은 가짜 신이야.” 두 아이가 티격태격하는 것을 보고 청년이 타이르듯 가로막았습니다 ..  (123, 157∼158쪽)


 《은하철도의 밤》을 천천히 읽으며 천천히 새깁니다. 내가 내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깊은 밤 까만 하늘 밝은 별 이야기를 글로 쓴다면 이렇게 《은하철도의 밤》을 쓸 수 있을까 하고 곱씹습니다. 미야자와 겐지 님이 사람들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일까 헤아립니다. 어떤 목소리로 글을 썼고, 어떤 숨결로 책을 냈으며, 어떤 눈빛으로 이야기를 얻었을까요.

 미야자와 겐지 님이 커다란 도시에서 살았대도 《은하철도의 밤》을 일굴 수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이제 거의 모든 일본사람이나 한국사람은 도시에서 살아가는데, 더군다나 커다란 도시에서 살아가는데, 오늘날 《은하철도의 밤》은 얼마나 읽히고 어떻게 읽힐까 궁금합니다.

 한낱 독서감상문 숙제를 써야 하기에 읽히는 책이 되나요. 손꼽히는 고전 가운데 하나라 일컬으니까 읽는 책이 되나요.

 책이면 책이지, 독서감상문 숙제는 없습니다. 책이면 책일 뿐, 고전이란 없습니다.

 훌륭한 사람도 없고 거룩한 사람도 없습니다. 내 어머니는 그예 내 어머니입니다. 내 아버지는 그저 내 아버지예요. 어머니는 어머니로 사랑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로 좋아합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로 살포시 껴안고, 옆지기는 옆지기로 따스히 어깨동무합니다. 함께 살아갈 기쁜 길동무입니다. 그러니까, 삶동무입니다.


.. “그렇지만 참다운 행복은 도대체 뭘까?” … “참다운 행복을 위해서라면, 나는 이제 저런 커다란 어둠 속도 무섭지 않아. 어디까지라도 함께 나아가는 거야.” … 두 별님은 떨어지면서도 단단히 서로의 무릎을 꽉 잡았습니다. 이 쌍둥이 별님은 어디까지라도 함께 떨어지려고 했던 것입니다 ..  (162∼163, 185쪽)


 두 아이한테 아버지가 되어 살아가는 오늘을 돌이키며 다시금 생각합니다. 그래요. 아버지는 아이한테 얼토당토않은 한국말이 흐르는 만화영화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요 며칠 몸이 너무 아파서 아이한테 그림책 한 번 읽어 주지 못하며 지나가는데, 《은하철도의 밤》 같은 작품을 천천히 조곤조곤 읽히면서 한국말을 한국말다이 느끼도록 하고 싶습니다. 잘 옮긴 대목은 그대로 읽고, 아쉽다 싶은 대목은 죽죽 금을 긋고는 새말을 적으면서 천천히 조곤조곤 읽히고 싶어요.

 문학이란 말꽃이거든요. 문학이란 삶말이거든요.

 살아가는 말이 꽃처럼 피면서 문학이 됩니다. 살아숨쉬는 말이 열매를 맺으며 문학으로 빛납니다.

 미야자와 겐지 님 문학은 온누리 가난한 어버이들하고 함께 살아가는 가난한 아이들한테 맑은 빛과 밝은 꿈을 나누고 싶어 《은하철도의 밤》 같은 이야기열매를 빚지 않았겠느냐 생각합니다. 두 아이 아버지는 두 아이한테 빛나는 이야기열매를 사랑스레 들려주면서 내 삶과 아이 삶을 가꾸어야 즐겁고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 “저 거친 세상에서 단 하나 있는 참다운 표를 결코 잃어서는 안 된다 … 자, 돌아가서 쉬어라. 너는 꿈 속에서 결심한 대로 곧장 나아가는 게 좋겠다.” ..  (169쪽)


 8월에 우는 밤녘 풀벌레 소리를 듣습니다. 밤녘에는 자동차 소리가 잦아들기에 풀벌레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립니다. 때때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집 앞 두릅나무 잎사귀를 흔듭니다.

 아, 이 소리들과 함께 우리 살붙이하고 고즈넉하게 살아가는 나날이 가없이 고맙습니다. 아이들은 저희도 모르게 몸과 마음으로 스며드는 멧새 소리와 개구리 소리와 풀벌레 소리와 바람 소리와 도랑물 소리와 벼락 소리와 구름 소리와 뙤약볕 소리를 골고루 맞아들이면서 무럭무럭 자라겠지요.

 몸이 튼튼할 때에는 이 모든 소리와 기운에 힘입어 즐거이 사랑을 나누고, 몸이 여리거나 아플 때에는 이 모든 소리와 기운을 떠올리며 즐거이 사랑을 받을 수 있기를 빕니다. 튼튼한 몸일 때에도 여리거나 아픈 몸일 때에도, 한결같이 사랑스레 손과 눈과 마음과 꿈을 나누는 목숨붙이로 자라기를 빕니다. (4344.8.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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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가 꽃피는 마을 - 청각장애인 푸르네 가족과 어느 특별한 마을 이야기 장애공감 1318
자닌 테송 지음, 정혜용 옮김 / 한울림스페셜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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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아이와 사랑하며 살아갈 소리
 [푸른책과 함께 살기 86] 자닌 테송, 《수화가 꽃피는 마을》(한울림스페셜,2010)



- 책이름 : 수화가 꽃피는 마을
- 글 : 자닌 테송
- 옮긴이 : 정혜용
- 펴낸곳 : 한울림스페셜 (2010.4.5.)
- 책값 : 9000원



 (1) 사람이 살아가는 소리


 우리 집 아이는 아버지가 끄는 자전거를 함께 탑니다. 아버지가 끄는 자전거 뒤에 수레를 달고, 이 수레에 아이가 앉습니다. 수레랑 자전거가 낑낑거리며 멧등성이를 넘고, 멧자락 꼭대기부터 신나게 내리막을 달립니다. 아버지가 자전거를 끌며 바람을 맞아들일 때에 아이도 바람을 맞아들입니다. 아버지가 자전거를 끌 때에 햇살을 받아들이면 아이도 햇살을 받아들입니다.

 우리 집은 자가용이 없습니다. 우리 집은 자가용을 마련할 돈이 없습니다. 우리 집은 자가용을 장만할 생각이 없습니다. 우리 집에 자가용 마련할 만한 돈이 생긴다 하더라도 자가용을 마련할 뜻이 없습니다.

 여느 때에는 걸어다니면 됩니다. 때때로 자전거를 몰면 됩니다. 다리가 아프거나 짐이 많으면 버스를 탑니다. 몸이 지치거나 벅차면 택시를 부릅니다.

 걸어다닐 때에는 바람소리와 풀소리와 벌레소리와 새소리와 하늘소리를 골고루 듣습니다. 자전거를 탈 때에는 시원한 맛과 땀흘리는 맛을 찬찬히 느낍니다. 제법 먼길을 퍽 금세 오갑니다. 버스나 택시를 얻어 타면, 돈 몇 푼을 들여 이 멀디먼 길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며 다닐 수 있다고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그렇지만 적잖이 두렵습니다. 가까운 길이든 머나먼 길이든, 자동차를 타고 이처럼 쉬 오가도 되는지 두렵습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금을 긋듯 자동차로 싱 달리면서 이곳과 저곳 사이에서 살아숨쉬는 내 이웃과 뭇 푸나무와 벌레와 짐승을 몰라보아도 되는가 싶어 두렵습니다.


.. 내가 왜 청각장애인들에게 집을 팔았을까? 그거야, 아내가 세상을 뜬 뒤로 집을 팔려고 애를 쓰고 있었으니까. 3년 동안이나 말이다.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은 매번 너무 시끄럽다고 했다. 바로 근처에 깔아 놓은 그 엉터리 같은 고속도로 때문이었다 ..  (7쪽)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매미가 우는 소리가 늘 같지 않으면서 노상 새로운 줄 느낍니다. 매미가 우는 소리가 시끄러워 갓난쟁이가 잠들지 못하는 일은 없습니다. 풀벌레가 울든 새가 울든 개구리가 울든 닭이 울든, 이러한 소리를 들으면서 갓난쟁이가 시끄러워 하지 않습니다.

 문을 모조리 닫고 귀를 막아도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는 크게 들립니다. 집안에 텔레비전이 있다면 이 기계에서 나는 소리는 퍽 크게 들릴 테지요. 자동차가 부아앙 바퀴 굴리는 기계 소리를 내며 지나갈 때에는 시끄럽다 느끼고, 아이도 깜짝깜짝 놀랍니다. 텔레비전이 켜진 데에서는 아이가 쉼사리 잠들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나라 삶터를 이루는 거의 모두는 도시입니다. 자동차가 북적거리는 도시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시골 읍내에도 자동차가 많습니다. 시골 바깥자락에도 자동차가 꽤 많습니다. 자동차 없는 대한민국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자동차 없는 살림집이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겠지요. 집에 텔레비전을 모시지 않는 사람이 드물듯, 집에 자가용 안 굴리는 사람이 몹시 드물겠지요.

 집 바깥으로 나가 읍내 장마당 마실을 하든, 볼일을 보러 조금 멀리 마실을 하든, 바깥에서 사람을 만날 때마다 두렵습니다. 이렇게 자동차로 넘실거리는 곳에서 사람들이 어떤 소리를 듣는지 두렵습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며 무엇을 받아들이는지 두렵습니다. 옆지기가 시골집에서 살아가자 이야기를 해서 시골집으로 옮긴 우리 살림인데, 시골집으로 들어오지 않고 도시에 그대로 남았으면, 우리 네 식구는 어떤 소리와 어떤 기운과 어떤 복닥거림에 휩쓸리면서 지치거나 나가떨어졌을까 싶어 두렵습니다.


.. “이 나이가 되어서야 청각장애인들이 있다는 걸 발견했으니 얼마나 멍청한가. 그 사람들은 예전부터 늘 있어 왔는데 말이야!” ..  (14쪽)


 시골에는 일거리가 없다고 여깁니다. 옳게 바라보자면, 시골에 일거리가 없을 수 없습니다. 시골에는 일거리가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다만, 시골에는 돈거리가 드뭅니다. 돈이 될 거리가 적습니다.

 도시에는 일거리가 많다고 여깁니다. 바르게 살피자면, 도시에 일거리가 많을 수 없습니다. 도시에는 돈거리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러니까, 도시에는 일거리 아닌 돈거리가 많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꾸 도시로 몰려듭니다. 땀흘려 일을 하는 아름다움을 누리려는 사람들보다는, 더 느긋하게 먹고살겠다는 꿈을 꾸는 사람이 훨씬 많을 뿐더러, 이 나라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는 ‘일거리’ 아닌 ‘돈거리’만 보여주면서 가르쳐요.

 우리 집 두 아이를 학교로 보내야 하는가를 놓고 늘 망설입니다. 유아원이든 유치원이든 어린이집이든, 아무 데도 아이를 넣지 않으며 지냅니다. 시골집에서 함께 살아갑니다. 시골집에서 함께 복닥이면서 떠듭니다. 나와 옆지기는 우리 두 아이가 ‘돈거리 잘 얻어 돈 많이 벌어들일 사람’이 되기보다는 ‘일거리 슬기로이 다스리며 일과 놀이를 아끼며 사랑할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사람이 사랑하는 소리


 자닌 테송 님이 쓴 《수화가 꽃피는 마을》(한울림스페셜,2010)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손말(수화)이란 어느 곳에도 없던 메마른 마을이 어떻게 손말이 꽃피는 예쁘장한 마을로 거듭나는가를 찬찬히 들려주는 이야기책입니다. 손말을 쓰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알려 하지 않고, 사귀려 하지도 않으며, 마주하려고조차 하지 않으며, 이웃이나 동무나 살붙이로 삼을 마음이 조금도 없는 여느 마을 여느 사람 모습을 꾸밈없이 보여줍니다.


.. 그들에게 내 목소리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이런 깨달음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지금 여기서는 누가 장애인이지? 바로 나로군!’ … 이 모든 일에 대해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보았다. “학생 시절 몇 년씩이나 들여서 영어를 배웠지만 내 평생 외국인을 만나서 영어를 써야 했던 경우는 고작 두세 번뿐이었잖아! 아마 공무원들 거의가 ‘안녕하십니까.’ ‘무슨 일로 오셨지요?’, ‘이 서식을 작성해 주십시오.’ 정도의 말은 영어로 할 줄 알겠지만, 수화는 모른단 말이지! ..  (11, 13쪽)


 손말은 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만 익힐 말이 아닙니다. 손말은 내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내 이웃과 동무를 알뜰히 사랑하면서 사귀려고 익히는 말입니다.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 앞서 손말을 가르쳐야 맞습니다. 초등학교 어린이한테 한자를 가르치려 들지 말고 손말과 점글을 가르쳐야 옳습니다.

 아이들은 지식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은 지식을 더 갖추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맑은 넋과 밝은 얼로 사랑스레 살아가야 합니다.

 이 나라 중앙일간지라는 신문마다 수험생 대학입시에 발맞춘 기사를 잔뜩 내놓습니다. ㅈ신문이든 ㅎ신문이든 대학수학능력시험이나 논술시험을 잘 풀도록 돕는 자리를 많이 마련해서 자주 보여줍니다. 그러나, 어느 중앙일간지도 손말이나 점글을 다루지 않습니다. 어느 잡지에서도, 어느 교육잡지에서도, 어느 제도권학교에서도, 어느 대안학교에서도, 손말이나 점글을 우리 말글과 함께 옳고 바르며 알맞고 사랑스레 가르치면서 배우는 틀거리를 마련하지 않습니다.

 나와 옆지기는 우리 집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 두렵습니다. 손말 하나 못 배우고 점글 하나 못 익히는 제도권학교이든 대안학교이든 보내기 두렵습니다.

 새책방과 헌책방 책시렁을 뒤져 손말책을 갖춥니다. 점글책은 아직 못 갖추었습니다. 아이들이 천천히 한글을 깨치고 나서 손말을 함께 가르치면서 배우고, 점글 또한 나란히 가르치면서 배우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영어나 일본말이나 중국말이나 프랑스말을 잘 하는 지식인이 되기 앞서, 내 나라 내 겨레에서 내 조그마한 삶자락 어여쁜 이웃과 동무를 곱게 사귈 수 있는 착한 사람으로 클 수 있으면 좋겠다고 꿈을 꿉니다. (4344.8.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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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8-08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된장님, 아이들 학교 보내기 참 두려운거 맞아요.
학교가 그다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되지도 않고,
두아이가 하도 고와서요. 하지만 언젠가 사회라는 진흙구덩이에 두아이가 적응하고 자신만의 방향을 정하여 살아나가려면, 학교를 통해서 어느 정도 단련을 시켜야 하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의견을 가집니다. 너무 곱게 핀 꽃은 도시 나오면 죽어버리잖아요.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마음의 여행자>에 나오는데 너무 슬픈 이야기였어요. ㅠㅠ)

이렇게 글을 쓰다보니 서글퍼지네요. 세상에 정답이란 없으니까요.

숲노래 2011-08-08 21:34   좋아요 0 | URL
저나 옆지기나 두 아이나,
사회에 굳이 적응할 생각이 없어요.
사람답게 살아야지,
애써 이런저런 사회에 맞추어서 살아갈 까닭이 없다고 느껴요.
나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면 되거든요.

아이들이든 어른들이든,
'단련'을 할 노릇이 아니라 '사랑'하며 살아갈
고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느껴요.

꽃은 도시로 가지 말고 시골에 피어야지요 ^^;;;;
 
열두 살의 봄 눈높이 어린이 문고 10
이상교 지음 / 대교출판 / 199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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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교육’이란 ‘삶교육’
 [어린이책 읽는 삶 3] 이상교, 《열두 살의 봄》(대교출판,1989)



 아이들한테 언제 성교육을 해야 하는지를 살피지는 않아도 된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성교육이란 삶교육이니까요. 성별이나 성교나 성기를 가르치는 성교육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살아내는 나날을 조곤조곤 이야기하면서 깨닫도록 이끄는 삶교육입니다.


.. 이모는 아기 기저귀를 갈아채우고 젖지 않은 옷으로 갈아입혔습니다. “아들이거나 딸이거나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건 여자니까.” “피잇! 아긴, 뭐, 여자들이 혼자 낳는 건가?” ..  (12쪽)


 무슨무슨 성교육 강좌를 굳이 들어야 한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언제나 듣고 날마다 생각할 수 있게끔 ‘아이와 함께 옳고 바르며 착하고 참다이’ 살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아버지가 하는 일과 어머니가 하는 일을 말로가 아닌 몸으로 느끼도록 하고, 남자가 맡은 몫과 여자가 맡은 몫을 앎조각이 아닌 삶으로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자나 남자이기 앞서 오롯이 목숨 하나 선물받은 사람인 줄을 느끼도록 하고, 사람이기 앞서 옹글게 숨을 쉬고 바람을 마시며 밥을 먹는 목숨붙이인 줄을 깨닫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하고 개구리하고 다를 구석이 없습니다. 다만, 사람은 사람이고 개구리는 개구리입니다. 사람하고 개구리는 똑같은 목숨붙이입니다. 누가 더 값있고 누가 더 값없지 않아요. 여자하고 남자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아름답지 않습니다. 부자와 가난뱅이 사이에서 어느 쪽이 더 훌륭하거나 거룩하거나 낫지 않습니다. 얼굴이 잘생긴 사람이 얼굴이 못생긴 사람보다 멋지거나 좋거나 사랑스러울 수 없습니다. 키가 크든 작든 똑같이 사람이고, 여자이거나 남자입니다.

 때로는 두 눈으로 앞을 보고, 때로는 한 눈으로 앞을 보며, 때로는 두 눈이 있으나 앞을 못 봅니다. 때로는 두 귀로 소리를 듣고, 때로는 한 귀로 소리를 들으며, 때로는 두 귀가 있으나 소리를 못 듣습니다. 태어날 적부터 한손을 못 쓰든, 자동차에 치여 한손을 못 쓰든, 그저 두 손을 두 손 그대로 잘 쓰든, 누구나 똑같은 사람이요 목숨입니다.

 사람이 사람인 줄을 가르치면서 배우도록 하는 삶교육일 성교육입니다. 몇 살에 달거리를 하고, 몇 살에 아기씨가 나오며, 씨가 맺혀 아기가 태어나기까지 몇 달이 걸리는가 하는 앎조각도 익혀야 한달 수 있는데, 이에 앞서 내 삶이 얼마나 고마운 목숨이고, 내가 한 사람으로 우뚝 서서 보내는 나날은 어떻게 즐거우면서 값진가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숨을 쉬는 고마움을 느낄 노릇입니다. 햇볕을 쬐는 기쁨을 누릴 노릇입니다. 밥을 먹는 즐거움을 맛볼 노릇입니다. 저마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삶교육’이 달라질 테고, 삶교육이 달라지는 만큼 ‘성교육’ 또한 저절로 달라져요. 따로 어떤 강의나 강좌를 듣거나 책을 읽어야 제대로 익히는 성교육이 아니라, 내 삶을 어떻게 추스르거나 돌보느냐에 따라 아름다워지느냐 아름답지 못하느냐로 갈리는 성교육입니다.


.. 홍이는 그 뒤, 그 짓을 그만두었습니다. 여자 아이들의 치마를 들추는 짓 말입니다. 여자 아이들이 놀잇감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스갯감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엄마와 여동생 지은이처럼 다른 여자들도 모두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  (36쪽)


 《열두 살의 봄》(대교출판,1989)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글쓴이 이상교 님은 ‘성 지식’을 한복판에 놓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둘레 동무나 어른하고 복닥이는 삶을 돌아보도록 하면서 천천히 받아들이는 ‘삶 이야기’로 ‘성 지식과 성별과 성교와 성기 이야기’를 알아차리도록 돕습니다. 섣불리 ‘하라 마라’ 하는 이야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더 낫거나 나쁘다 하는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날마다 마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아름다울까 하는 이야기를 살포시 들려줍니다.


.. 엄마는, 엄마는 나를 낳을 때도 그렇게 많이 고생했다고 합니다. 이제 동생을 얻는 기쁨은 둘째입니다. 엄마만 전처럼 다시 건강하실 수 있다면 ..  (74쪽)


 어머니는 내 나이 다섯 살에도 어머니이고, 내 나이 열다섯 살에도 어머니입니다. 내 나이 서른다섯이나 쉰다섯에도 어머니는 어머니입니다. 내 나이 스물다섯이나 서른다섯쯤 되면, 나도 누군가한테 어머니가 될 수 있겠지요. 나를 알고 내 어머니와 아버지를 알며, 나 스스로 어머니나 아버지 자리에 서는 삶을 알도록 하자는 ‘삶교육’인 ‘성교육’입니다. 그러니까, 삶교육이란 사람교육입니다. 사람교육이란 사랑교육이에요.

 삶을 어떻게 일구느냐를 돌아보도록 하기에 사람교육입니다. 사람과 사람으로 서로 어깨동무하는 길을 살피도록 하기에 사랑교육입니다. 사랑이 꽃피고 열매맺는 흐름을 일깨우도록 하기에 삶교육입니다.

 삶과 사람과 사랑이 맞물리는 자리를 슬기롭게 깨달아, 착하고 참다우며 곱게 자라는 어린이가 되도록 하자는 뜻에서 펼치는 성교육이에요.


.. “어린아이가 무얼 안다고 때려요? 야단을 치거나 때린다고 버릇이 없어지진 않아요. 그렇게 되면 점점 어른 눈을 피해 버릇이 굳어지기 쉬울 뿐이지.” “그럼, 어떡해요? 남부끄러워서 이젠 친척 집에 데리고 가기도 꺼려지는 걸요.” ..  (122쪽)


 《열두 살의 봄》은 퍽 고마운 책입니다. 《열두 살의 봄》처럼 조곤조곤 삶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야 비로소 성교육을 밝히는 책이라 할 만합니다.

 다만, 이 책 《열두 살의 봄》에서도 어쩔 수 없이 ‘성별과 성교와 성기에 얽힌 앎조각’을 덧달 수밖에 없다고 하겠으나, 이러한 앎조각을 더 덜어낸다면 훨씬 넉넉하면서 따사롭게 삶과 사람과 사랑을 들여다보면서 보듬도록 이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저희 나이에 걸맞게 밥을 하고 빨래를 하며 청소를 하는 삶을 보여주고, 집안일을 온통 여자한테 떠넘기는 삶이 아니라 서로서로 힘을 모아 즐거이 일구는 삶이 될 때에 아름다운 줄을 느끼도록 이야기꽃을 북돋아야지 싶습니다.

 성범죄뿐 아니라 모든 범죄는 삶과 사람과 사랑을 배우거나 느끼거나 누릴 수 없던 슬픈 넋일 때에 저지릅니다. (4344.7.24.해.ㅎㄲㅅㄱ)


― 열두 살의 봄 (이상교 글,대교출판 펴냄,1989.1.4./5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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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짱은 할 수 있어 - 조선 아이 낫짱의 풍금 타기 대작전 보리피리 이야기 4
김송이 글, 홍영우 그림 / 보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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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도 조선도 남녘도 북녘도 같은 사람들
 [푸른책과 함께 살기 77] 김송이, 《낫짱은 할 수 있어》(보리,2008)



- 책이름 : 낫짱은 할 수 있어
- 글 : 김송이
- 그림 : 홍영우
- 펴낸곳 : 보리 (2008.3.10.)
- 책값 : 9500원


 (1) 누가 한국사람인가


 아이를 태우는 수레를 달고 읍내로 마실을 다닙니다. 우체국이나 읍사무소나 가게 앞에 서려면 턱을 낮춘 거님길 자리로 들어서면서 건물 옆이나 한 귀퉁이에 세웁니다. 자전거를 세우는 자리를 따로 마련하는 건물은 거의 없습니다. 알아서(?) 자전거 세울 자리를 찾아야 하고, 알아서(?) 자물쇠를 채우든 해야 합니다.

 어제 낮, 한낮 땡볕을 고스란히 받으며 읍내로 나와 자전거를 세울 즈음,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자동차 하나가 자전거 앞으로 먼저 끼어들어 거님길 턱 없는 데로 들어서더니 자동차가 못 들어서도록 굵직한 돌을 박은 앞까지 끼익 하고 차를 댑니다. 자동차를 몰던 사람이 부리나케 튀어나와 은행으로 들어가려 합니다. 이리하여 자전거는 찻길에 뻘쭘히 서서 오도 가도 못하고 맙니다. 자동차를 몰던 사람을 불러 자동차가 올라서면 안 되는 곳에 올라온 데다가 자전거가 가야 하는 길을 꽉 막아섰으니 뒤로 빼라고 이야기하지만 들은 척하지 않습니다. 자전거가 못 지나가든 아기수레가 지나갈 수 없든 바퀴걸상이 오갈 수 없든 아랑곳할 까닭이 없다는 몸짓이며 말투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도 어김없이 한국사람일 테지요. 읍내라 하더라도 자동차가 아주 뜸한 시골 읍내에서, 좁은 두찻길이 아닌 널따란 여섯찻길인데, 길가에 얌전히 자동차를 세우고 은행 볼일을 보면 될 텐데, 딱지를 뗄 교통순경조차 없는 이 시골자락에서 애써 거님길에다가 자동차를 올려놓으며 사람도 자전거도 아기수레도 바퀴걸상도 꼼짝을 못하도록 하면서 낯빛 하나 바뀌지 않고 은행으로 그냥 들어가는 이런 사람 또한 틀림없이 한국사람이겠지요.


.. 개구쟁이들 대장 노릇 할 시간 있으면 공부나 할 것이지. 잘난 건 제 아빠지 저도 아니면서……. 흥! … “흥, 멍텅구리가 또 뭐라는 거야! 뭐, 조선사람이 있을 데가 아니라구? 너야말로 조용히 해. 이럴 시간 있으면 네 공주병이나 어떻게 해 봐!” 그래 놓고는 입속말로 “사바사바.” 하고 불렀더니 저도 모르게 “후훗.” 웃음이 나왔다. “너, 너, 조센진 주제에 어디서 거들먹거리는 거야!” ‘사바사바 공주’ 아베가 목 비틀린 오리마냥 꽥 소리냈다. 쳇, 조선사람이 뭘 어쨌다는 거야? ..  (10, 48쪽)


 읍내 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자동차 열 대 가운데 아홉 대는 얌전하면서 조용히 자전거 옆으로 퍽 에돌아 지나갑니다. 때로는 자전거 뒤에서 뒷차가 섣불리 앞질러 두찻길에서 사고가 나지 않게끔 지켜 주기도 합니다. 말없이 도와주고 말없이 살피는 ‘열 가운데 아홉’ 사람이 참 고맙습니다. 그런데 열 가운데 한 사람은 난데없이 빵빵 하고 울리며 놀래킵니다. 수레에 앉은 아이가 깜짝 놀랍니다. 깜짝 놀란 아이가 “빠방이 시끄러워!” 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시끄럽게 소리를 지를밖에 없습니다. 아이하고 도시에서 그대로 살았으면 아이는 이 시끄러운 소리를 날마다 숱하게 들었을 테니, 아이가 고운 마음결에 고운 목소리로 지내기는 꽤 벅찬 노릇이었겠다고 새삼 느낍니다. 자동차에서는 그냥 손을 슥 얹어서 빵 하고 울리겠지만, 오르막에서 낑낑대는 자전거를 모는 사람이나 수레에 앉은 아이는 그저 놀랄 뿐입니다.

 달리는 자동차는 빠르기를 늦추기 싫기 때문에 빵빵 울립니다. 자전거는 늘 길가에 붙어서 달리는데, 빵빵 울리는 자동차는 더 길가에 붙거나 멈추라는 뜻으로 빵빵 울립니다. 도시 한복판처럼 자동차가 많다면 모르되, 아니 도시 한복판에서는 자동차가 많으니 자전거가 옆에 있어도 자전거가 더 빨리 다니곤 합니다. 자동차가 거의 없어 2∼3분에 한 대 지나갈까 말까 하는 시골길에서 굳이 빵빵 울리면서 놀래키는 사람은, 자전거를 타거나 길에서 걷는 사람 마음을 모릅니다. 자동차를 똑바로 마주보면서 빵빵 울리는 소리를 들어도 놀라지만, 뒤에서 갑자기 울리는 빵빵 소리를 들으면 훨씬 크게 놀랍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자전거나 걷는이를 놀래키는 사람도 바로 한국사람입니다. 한겨레입니다. 이 나라 이 땅 이 마을에서 한국말을 함께 쓰고 한국글을 함께 읽는 한겨레붙이입니다.


.. “그럼, 안 그래도 할 일이 태산인데. 아이보개, 설거지, 장보기, 특활……. 얼마나 많다고!” “우와, 그 많은 일을 다 한단 말이야?” “그러니까 내가 없는 시간을 내서 우리 반 일을 도우려면, 그만 한 용기와 결의가 필요하단 말이야. 그걸 얄미운 애한테 줄 수는 없어. 알겠지?” … 이시하라한테 떵떵 큰소리쳤지만 마음을 갈기갈기 찢긴 것은 낫짱 자신이다. 공부도 열심히 안 하고 숙제를 자꾸 까먹으니까, 저런 돼먹지 못한 애한테 이런 일을 당한다 싶었다. 낫짱은 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삼켰다 ..  (22, 132쪽)


 착한 이웃도 한국사람입니다. 모진 이웃도 한국사람입니다. 참삶을 찾아 바른길을 헤아리는 동무도 한국사람입니다. 더 많은 돈을 바라며 더 높은 이름값을 좇는 동무도 한국사람입니다.

 진보나 보수로 나뉘건, ㅎ당이나 ㅁ당으로 갈리건, 저마다 한국사람입니다. ㅈ신문을 읽건 ㅎ신문을 읽건 너나없이 한국사람입니다. 20억짜리 아파트에서 살든 일곱 평짜리 작은 골목집에서 살든 모두 한국사람입니다. 커다란 가게에서 일하든 길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아 장사를 하든 누구나 한국사람입니다. 쌀집에서 자전거로 쌀푸대를 나르든 5톤 짐차로 무거운 짐을 나르든 서로서로 한국사람입니다.

 대통령이든 청소 일꾼이든 서로 아름다운 한국사람입니다. 한진중공업 일꾼이든 시골 논밭 일꾼이든 모두 사랑스러운 한국사람입니다. 일자리가 없어 집에서 쉬는 사람이든 날마다 끝없는 집일에 복닥이는 살림꾼이든 다 함께 좋은 한국사람입니다.


.. “사람이 살면서 그걸 죄다 차지하는 건 불가능해. 어느 하나밖에 가질 수 없어. 그렇다면 낫짱은 어느 걸 가지고 싶어할까? 마음의 행복일까?” ..  (104쪽)


 북녘에서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머리에 뿔이 났을 수 없습니다. 터무니없는 막개발을 밀어붙이면서 남녘땅 물줄기를 까뒤집는 사람이라서 엉덩이에 뿔이 나지 않습니다.

 이웃을 등치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이웃을 돕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이웃을 들볶거나 괴롭히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이웃하고 사이좋게 어깨동무하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뒤에서 호박씨를 까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말뜻을 곱게 새기면서 마음동무로 지내려고 애쓰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졸업장을 따지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얼굴이나 몸매를 따지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은행계좌나 자동차 크기를 따지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가방끈 아닌 맑은 넋이나 밝은 얼을 살피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얼굴이나 몸매가 아닌 마음결이나 생각밭을 살피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은행계좌나 자동차 크기가 아닌 손길이나 눈길을 곱다시 여미는 사람도 한국사람이에요.

 그런데 잘 모르겠습니다. 모두 똑같이 이 땅에서 한겨레붙이로 살아간다지만, 참으로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이 땅에서 한국사람답다 할 만한 사람인지부터 잘 모르겠습니다. 내 둘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한국사람다이 일하거나 놀거나 어울리면서 지내는 사람인지조차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든 모두 한겨레붙이고, 고운 목숨이며, 사랑스러운 사람인 한편, 어버이한테서 선물받은 사랑씨입니다만, 누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2) 일본에서 살아가는 조선사람


 일본사람은 일본말로 ‘자이니치’라 말한답니다. 한자로 적으면 ‘在日’이고, 한겨레붙이는 ‘재일’이나 ‘재일조선인’이나 ‘재일한국인’이라 말합니다. 이러하든 저러하든, 곰곰이 돌아보면 ‘일본땅 한겨레’입니다. 《낫짱은 할 수 있어》(보리,2008)는 일본땅 한겨레로 살아가는 한 사람이 어린 날 어떠한 터전에서 어떠한 동무와 어른을 마주하면서 보냈는가를 차분하게 들려주는 이야기책입니다. 어린이나 푸름이가 찬찬히 읽으면서 살갗으로 받아들일 만한 ‘다른 삶터 다른 사람들’이 벌이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 안쓰러운 마음이 안 드는 건 아니지만, 낫짱은 일부러 핀잔을 주었다. “집은…… 아빠가 술 먹고 난리라서 싫어.” “집에 아빠만 계셔?” “응.” “엄마는 어디 가셨어?” “아빠하고 싸워서…… 집 나갔어.” “또?” ..  (12쪽)


 일본에서 힘들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한국에서도 힘들고 가난하게 살아가리라 느낍니다. 일본에서 넉넉하고 오붓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한국에서도 넉넉하고 오붓하게 살아가리라 느껴요. 일본에서 푸대접을 받는 사람이 한국에서라고 푸대접을 안 받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일본에서 막대접을 받으며 괴로운 사람이 한국에서라고 두 다리 쭉 뻗으며 좋은 일자리와 보금자리를 얻을 수 있으리라 여기기 어렵습니다.

 착하게 살아가려는 사람은 한국에서건 일본에서건 착하게 일구는 삶을 사랑하겠지요. 참다이 살아가려는 사람은 한국에서건 일본에서건 스스로 좋은 이웃이 되면서 다른 좋은 이웃하고 살가이 어깨동무를 하겠지요. 곱게 살아가려는 사람은 한국에서건 일본에서건 고운 꿈을 건사하면서 이웃과 동무가 품는 고운 꿈을 북돋우려고 힘쓸 테고요.

 그런데, 한국이고 일본이고 착하거나 참답거나 곱게 살아가는 사람을 괴롭히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전쟁입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입니다. 전쟁을 일으켜 돈을 버는 사람입니다. 전쟁을 일으켜 돈을 버는 사람한테 돈을 받으면서 권력을 거머쥐는 사람입니다.


.. ‘전쟁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는구나. 고모도 전쟁통에 그런 일을 겪지 않았다면 아이들과 헤어져서 살아야 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 일본땅에 살면서 저희와 맞서는 건 일본사람뿐인 줄 알았는데, 조선사람끼리도 이렇게 맞서 싸우고 미워하는 일이 생긴다는 게 슬펐다 ..  (99, 145쪽)


 돈을 벌어야 살아남겠지요. 힘이 있어야 짓밟히지 않겠지요. 그러나, 돈을 번다고 살아남지 않습니다. 벌어들인 돈으로 밥을 사거나 집을 사거나 옷을 사야 살아남습니다. 그러니까, 돈벌이에 앞서 밥과 집과 옷을 어떻게 마련하거나 건사하느냐를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힘이 있어 남한테 짓밟히지 않는다고 하기 앞서 힘이 없는 내가 내 이웃이나 동무하고 얼마나 손을 맞잡으며 서로 토닥이거나 아끼는가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해요.

 돈이 많아서 이웃돕기를 하지 않습니다. 돈을 10억 거머쥔 사람이 거지한테 다달이 백만 원씩 내주는 일이란 없습니다. 거지는 돈을 10억 거머쥔 사람한테서 다달이 백만 원씩 받으면서 먹고살지 않습니다. 거지만큼 힘든 살림은 아니지만, 퍽 팍팍한 살림으로 힘겨운 사람들이 백 원 천 원 보태는 돈을 고맙게 받으면서 먹고삽니다.

 커다란 삽차가 한두 번 뜨면 구덩이를 쉽게 파겠지요. 그런데 커다란 삽차를 불러서 땅을 파려면 돈을 얼마나 많이 들여야 하나요. 더디 걸리며 힘들다지만, 여럿이 서로 도우면서 삽과 곡괭이로 땅을 파면서 흘리는 땀으로 구덩이 하나를 팝니다. 밥 한 술씩 서로 나누어 뜨면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입니다. 밥 한 그릇을 따로 사서 선물할 수 있도록 돈을 벌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물 한 모금 나누어 마시면서 같이 웃고 우는 이웃입니다. 물 한 병 따로 사서 내밀 수 있도록 돈을 모아야 하지는 않아요.


.. 엄마는 우는 딸을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낫짱이 기악부에 든다고 떼를 썼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낫짱한테 어떤 해코지도 당해 낼 수 있겠느냐고 다짐한 것이다. 그러겠노라고 약속했으니 제 힘으로 이겨내야 한다. 그래서 엄마는 속으로 응원만 보내는 것이다. 기껏 종이에 인쇄한 가짜 건반이다. 하지만 낫짱한테는 둘도 없는 보물이다. 낫짱은 가슴이 아파서 울었다. 패거리들 노릇이 너무 치사하고 의뭉스러워서 울었다 … 말로 욕하고, 눈으로 깔보고, 온몸으로 해코지하는 것은 상대해서 싸울 수 있다. 하지만 음흉하게 남의 보물을 훔쳐 없애는 짓은 상대가 보이지 않으니 싸울 수도 없다. 비겁하다 … ‘미요시 선생님, 정말 너무해!’낫짱은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주저앉고 싶을 만큼 힘이 빠졌다. 선생님들이야 해마다 찍는 사진이어서 대수롭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낫짱한테는 평생 딱 한 장밖에 없는 사진이다. 다시는, 다시는 없는 기회다 ..  (109∼110, 148쪽)


 이야기책 《낫짱은 할 수 있어》는 이야기합니다. 할 수 없는 일은 하지 않고, 할 만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으며,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 낫짱 삶을 이야기합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할 만한 일을 찾아서 하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스스로 찾아서 하는 낫짱 삶자락을 들려줍니다.

 우리가 할 일은 서로를 사랑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할 만하지 않은 일은 서로를 미워하거나 들볶는 일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서로를 믿는 일입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은 서로를 못미더워 하거나 못마땅히 여기는 일입니다.

 나뭇잎에 드리우는 햇살을 사랑하고,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을 아끼며, 나무가 뿌리박은 흙을 고마이 여기는 삶입니다.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목숨인 내 하루입니다.

 일본사람도 한국사람도 조선사람도 밥을 먹습니다. 한국사람도 조선사람도 일본사람도 똥을 눕니다. 조선사람도 일본사람도 한국사람도 갓난쟁이로 태어나 씩씩하게 커서 주름살이 늘다가는 곱게 숨을 거둡니다.

 권력을 거머쥐어도 백 살 무렵이 되면 힘을 잃고 흙으로 돌아갑니다. 돈이 넘쳐도 혼자 다 쓰지 못한 채 고스란히 남기며 흙으로 돌아갑니다. 밥은 한 그릇을 먹으면 배부르지, 열 그릇이나 서른 그릇을 먹어야 배부르지 않습니다.

 낫짱은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낫짱은 꿈을 꿀 수 있습니다. 낫짱은 사랑을 하고 꿈을 꾸며 보낸 지난날을 뒤돌아보면서 글을 한 줄 남길 수 있습니다. (4344.7.1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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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협 - 한 재일 사학자의 반평생
이진희 지음, 이규수 옮김 / 삼인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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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지 않은 뒷날, 아이가 어른이 될 무렵
 [푸른책과 함께 살기 83] 이진희, 《해협, 한 재일사학자의 반평생》(삼인,2003)


- 책이름 : 해협, 한 재일사학자의 반평생
- 글 : 이진희
- 옮긴이 : 이규수
- 펴낸곳 : 삼인 (2003.9.20.)
- 책값 : 15000원


 (1) 아이와 살아가는 하루


 아이하고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짧으면서 깁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집일을 도맡으면서 아이하고 부대끼다 보면, 하루란 참 금세 기웁니다. 이 하루 내내 지치지 않고 뛰놀고파 하는 아이랑 부대끼는 만큼, 하루란 참 길디깁니다.

 새벽 다섯 시에 잠에서 깨든, 아침 열 시에 잠에서 깨든, 아이는 언제나 잠에서 깬 때부터 놀자고 조잘조잘댑니다. 네 살 아이는 아직 시간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일 수 있겠지요. 눈을 번쩍 떴으니 다시 잠들기 힘들어 이러할 수 있겠지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난 아이랑 복닥이면서 아침을 보내며 둘째 오줌기저귀를 빨고 옆지기 미역국을 끓이고 난 다음, 밥을 하느라 미처 헹구지 못한 빨래를 마저 하고, 이동안 새로 나온 빨래를 더 한 다음 설거지를 하고 방바닥을 비질합니다. 몇 시쯤 되었을까 헤아리지만 시계를 들여다볼 겨를 없이 몰아치다가 가까스로 한숨을 돌린 때는 열두 시 이십 분. 이제 더는 버티기 힘들어 첫째 아이가 이렇게 떠들건 저렇게 안기건 아랑곳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둘째 갓난쟁이 옆에 털푸덕 눕습니다. 첫째는 어느새 아버지 곁으로 달라붙으며 조잘조잘댑니다. 그림책 하나 읽고 싶기도 하지만, 이럴 기운이 없습니다. 끄응 하고 일어나서 아이 이불을 바닥에 펼친 뒤 아이한테 여기에 누우라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는 얌전히 눕습니다. 틀림없이 졸립기 때문입니다. 새벽 일찍 깨어 논 뒤 밥을 먹을 때부터 졸린 기운이 가득했습니다.

 오른손에는 부채를 들고 살살 부채질을 하며 아버지는 까무룩 잠이 듭니다. 얼마쯤 지난 뒤인지 모르겠는데 문득 눈을 뜨니 아이는 아버지 곁에서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채 잠들었습니다. 부채를 살살 흔듭니다. 땀 맺힌 이마를 쓸어넘깁니다. 한동안 이렇게 부채질을 살살 하면서 부디 깊이 낮잠을 자라고 마음속으로 빕니다.


.. 해방 후 2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일본에 잔류하게 된 데는 남한 정국이 불안했다는 이유도 작용했겠지만, 귀국자 한 사람에게 1천 엔의 지참금만을 허용한다는 비인도적인 처우가 더욱 중요한 원인이었다. 이 돈으로는 부산에 내려 당장 숙식을 해결하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 (일본 정부로) 몰수된 조선인연맹 학교의 재산은 일본 전국적으로 막대한 것이었다. 일본 정부는 점령군을 방패 삼아 이런 조치를 강행하였지만, 결과는 오히려 재일조선인의 반미·반일 감정을 부채질하는 것이었다 … 일본이 낙랑 유적에 그토록 고집한 것은 한나라의 침략에 의해 토착 사회가 발전했다는 궤변이 우리 나라에 대한 식민지 지배 논리를 합리화하는 데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 조선고등학교에서는 2학년이 되면 반드시 자포자기하는 아이들이 생기곤 했다. 성실하게 학교를 졸업한다고 해서 취직의 길이 열리는 것도 아니고, 집안이 가난했기 때문에 장래에 대한 희망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 그들에게 공통적이었던 것은 부모 세대 재일교포들의 쓰라린 역사를 모를 뿐 아니라 사회주의의 미래 또한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  (17, 24, 90, 110쪽)


 팔월에 태어난 첫째는 두 달 뒤에 석 돌을 채웁니다. 석 돌을 채우면 이때부터 다섯 살로 차근차근 나아가는 셈입니다. 아이하고 살아온 나날은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서 바깥으로 나온 때부터가 아니라고 느낍니다. 어머니 뱃속에 조그마한 목숨씨로 깃들 때부터라고 느낍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조그마한 목숨씨로 새근새근 잠들던 나날부터 우리 집은 세 식구였고, 둘째를 바라볼 때에도 똑같습니다.

 첫째가 벌써 이만큼 컸는가 싶기도 하지만, 그동안 얼마나 복닥였는데 이렇게 자라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날마다 새벽부터 밤까지 지켜보면 ‘아이가 얼마나 크는가’를 잘 모른다 하지만, 날마다 새벽부터 밤까지 지켜보기 때문에 ‘아이가 날마다 얼마나 씩씩하게 새로 거듭나면서 크는가’를 환하게 느낍니다. 어제 아이를 안고 오늘 아이를 안을 때에 느낌이 다릅니다. 아이 머리를 감길 때에 고개를 숙이라 하면서 감길 수 있으나 부러 무릎에 누여 고개를 뒤로 젖힌 채 감깁니다. 이렇게 머리를 감기노라면 아이 키가 어느 만큼 컸고, 아이 몸무게가 어느 만큼 늘었는지 몸으로 깨닫습니다. 이제 첫째는 머리를 받치지 않아도 스스로 머리를 잘 가누어, 머리감기기 할 때에 그닥 힘들지 않아요. 몸무게가 꽤 나가서 버거울 뿐입니다.

 둘째 기저귀를 빨아 마당 빨랫줄에 널 때면, 첫째는 부리나케 좇아나옵니다. 통에 든 빨래집게를 제가 꺼내어 건네겠다고 나섭니다. 아버지는 기저귀만 빨랫줄에 걸치고는 기다립니다. 아이는 한손에 하나씩 쥐고는 “자!” 하고 말합니다. 아버지는 “응.” 하고 대꾸하거나 “네, 고맙습니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는 똑같은 빛깔인 빨래집게를 들고 오기도 하다가는, 다른 빛깔인 빨래집게를 들고 오기도 합니다. 한손에 하나씩 쥔 채 딱딱 벌렸다 오므렸다 놀면서 가지고 옵니다.

 사진을 찍는 아버지이기 때문에, 요즈막에는 기저귀를 널며 목에 사진기를 겁니다. 아이가 빨래집게를 들고 달려올 때에 얼른 사진기를 쥐어 찰칵 하고 찍습니다.

 집에서 첫째가 둘째를 귀여워 하는 모습을 보면 잽싸게 사진기를 쥐어들어 찰칵 하고 찍습니다. 심심해 하며 홀로 책을 펼쳐 읽는다든지, 둘째 겉싸개를 뒤집어쓰고 논다든지, 아버지는 넌지시 알아채어 살그머니 사진으로 담습니다.


.. (한국전쟁) 뉴스 필름은 B-29 폭격기가 도시와 민가에 화염 폭탄을 투하하는 장면을 생생히 전해 주었고, 보기만 해도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처음으로 제트 전투기가 등장하고 바주카포가 북한 탱크를 파괴하는 데 뛰어난 화력을 발휘한 것도 그무렵이었다. 나는 민간인을 포함한 대량 살육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필름에서는 미군이 북한군을 섬멸하고 있다고 설명하였지만, 공중 폭격으로 파괴된 것은 평양과 신의주 등 도시만이 아니었다. 북한 탱크가 숨겨져 있다며 한국(남녘)의 초가 농가에도 폭탄을 투하했기 때문이었다 … 1950년부터 4년 동안의 일본의 전쟁 특수 경기는 24억 달러에 이르렀으며, 1957년까지는 45억 달러에 이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 일본은 메이지 이후 조선 침략과 식민지 지배, 중국 침략으로 시작된 아시아 여러 국가에 대한 전쟁 책임을 애매하게 한 채 미국의 반공 정책에 가담함으로써 경제 부흥의 길을 걷게 되었다 … 미군은 처음으로 제트 전투기를 투입하였고, 최신 살인 병기의 성능을 확인하는 실험장으로 삼았다 … 1965년 말에 베트남에 파견된 미군은 18만 명에 달했다. 미국은 남베트남을 잃으면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가 차례로 공산화된다는 도미노 이론을 내세워 동맹국의 참전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부패 정권이라도 반공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면 지원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변하지 않는 정책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의 ‘요청’에 부응하여 한국군 파견을 강행하였다. 파병 군인은 1973년까지 연 40만 명에 이르렀고, ‘베트남 특수’로 사회 전체가 들뜬 분위기였다. 하지만 수많은 인명 희생을 부른 해외 전쟁에 군대를 보내 타민족을 무력으로 억압했다는 씻을 수 없는 오점을 우리 역사에 남겼다 ..  (39∼40, 63, 131쪽)


 사진을 찍는 아버지이기 때문에, 이 사진을 보노라면 첫째가 처음 태어난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날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냈는가를 읽을 만합니다. 날마다 한 장만 찍었다 하더라도 석 돌까지 천 장을 찍는 셈이라 하겠으나, 첫째 아이 사진은 날마다 서른 장 남짓 찍었으니까, 석 돌이 된다면 삼만 장을 넘겠지요.

 사진을 찍는 아버지로서, 그동안 아이를 찍은 사진을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 사진을 보며 지난 삶을 가만히 되새길 수 있기도 하지만, 사진으로만 모든 이야기를 알 수는 없습니다. 사진을 찍기 앞서와 사진을 찍고 난 다음, 사진을 찍을 때까지, 사진에 찍히지 않은 하루, …… 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이야기는 숱하게 많습니다.

 글을 쓰는 아버지로서 곰곰이 돌이켜봅니다. 아이하고 보내는 나날을 글로 날마다 신나게 적바림한달지라도, 아이하고 보내는 모든 이야기를 글로 옮기지 못합니다.

 아이하고 살아가는 어버이로서, 아이가 뒷날 어른이 될 무렵, 아이가 보낸 갓난쟁이일 때하고 두 살 세 살 네 살 다섯 살, 이런 어린 나날 이야기를 어떻게 바라보며 들려주어야 좋을까 곱씹습니다. 아이한테는 무슨 이야기가 도움이 되거나 쓸모가 있거나 기쁨이 되거나 웃음꽃이나 눈물나무가 될는지 헤아립니다.


.. 선명하게 남은 손목 안쪽의 상처를 보자 마음이 얼어붙었다. 북한이 내건 ‘주체 사상’은 평등과 인간 중심주의를 표방하고 혁명 동지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고 선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나의 ‘전화 도청 사건’과 이종수 사건에서처럼 민족교육에 대한 꿈이나 이상과는 달리 비열한 방법으로 동료에게 ‘적’의 딱지를 붙이려고 획책하였다 … 남한 출신의 이종수가 북한을 지지하고 김일성이 내건 사회주의에 모든 것을 바친 것은 인간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따뜻한 사회, 사람들의 생활이 풍요로운 사회를 꿈꾸었기 때문이었다. 북한으로 ‘추방’된 그는 10여 년 후에 저 세상 사람이 되었지만 그 사이에도 편지 한 통 보낼 수 없었다 … 마오쩌둥의 서거를 알고 나서 위대한 지도자도 독재자도 언젠가는 죽고 만다는 감회에 잠겼다. 슬픔보다는 오히려 안도의 기분이 들었다. 왜냐하면 1966년에 그의 주도로 시작된 ‘문화대혁명’이 10년간에 걸쳐 류사오치와 펑더화이 등 노혁명가를 비롯해 많은 지식인을 죽음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 마오쩌둥이 고난의 투쟁을 통해 중국 민중을 제국주의자로부터 해방시킨 업적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권력의 자리에 앉고 나서는 다른 사회주의 국가와 똑같이 과거의 혁명 동지를 숙청하는 등 인간의 존엄성조차 짓밟아 버렸다 ..  (165∼166, 229쪽)


 날짜와 시간에 따라, 이날 이때에는 무얼 했다고 적으면 좋을까요. 아이가 읊는 말을 모두 적을까요. 날마다 사진 한 장에 글 하나를 붙이면 좋을까요. 어버이가 바라보는 아이일 때하고, 아이가 바라보는 어버이일 때에는, 삶이 얼마나 달라 보일까요.

 아이가 살아가는 오늘 하루 온누리에 무슨 일이 터졌는가를 신문이나 잡지에서 오려 그러모으면 뜻이 있으려나요. 뒷날 아이 스스로 읽을 만한 좋다 싶은 책을 차근차근 갈무리하면 기쁘려나요.

 한 시 무렵에 잠든 듯한 아이가 일어나면, 쉬를 한 번 누이고 옷을 챙겨 입혀, 금왕읍 장마당에 다녀올까 생각해 봅니다. 아이는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아버지는 예순터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낑낑거려야 하겠지요. 긴 장마 사이 살짝 비가 멎은 오늘 하루, 푸성귀를 장만하려고 바지런히 마실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는 수레에 탄 채 길을 나서면 수레에서 종알종알 떠들거나 노래를 합니다. 음성읍으로 갈 때에는 오가는 자동차가 적어 마음껏 노래를 부르고, 금왕읍으로 갈 때에는 오가는 자동차가 많아 “빠방이가 시끄러워!” 하고 빽 외칩니다.

 아이는 늘 느끼는 그대로 몸으로 드러내어 살아갑니다. 아이 못지않게 어버이 또한 언제나 느끼는 그대로 몸으로 받아들여 살아갑니다. 좋은 바람을 쐬고 좋은 햇볕을 맞으면 좋은 하루라 여기며 고맙게 살고, 후덥지근한 바람을 안고 찌뿌둥한 하늘을 바라보면 고단한 하루라 헤아리며 고맙게 삽니다. 어느 하루 고맙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어느 하루 반갑지 않은 날이 없어요.


.. 국경선상에 멈춰선 지 10여 분. 여러 생각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강폭은 200미터에 불과하고 상류로 올라가면서 더욱 좁아진다. 국경은 간단히 건널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경계로 언어와 풍습, 습관이 완전히 다른 민족이 존재하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영토가 대륙에 이어져 있는 한반도가 민족으로서의 독자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까닭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나는 곰곰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굴욕의 역사는 이를 덮음으로써 자국의 긍지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역사적 교훈으로서 냉정하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 국가와 민족의 차이를 넘어서 평화를 소중히 여기는 역사 교육이야말로 인류의 미래에 기대를 거는 교육이 아닌가! ..  (313, 321, 325쪽)


 바야흐로 석 돌을 꽉 채울 첫째는 이제 빨래 개는 솜씨가 많이 늘었습니다. 빨래 개기는 두 돌이 채 안 되었을 때부터 시늉으로 했지만, 엊그제부터 곁에서 아버지가 거들지 않아도 퍽 말끔히 갭니다. 몇 달 앞서부터 혼자서 옷을 벗고 입고 잘 해냅니다. 이 옷 입었다가 벗고 저 옷 입었다가 벗고 하는 놀이를 꽤나 즐깁니다. 처음 단추꿰기를 해내던 날에는 하루 내내 온갖 옷에 붙은 단추를 꿰다가 풀다가 하며 놀았어요. 아이 손은 하루가 다르게 야물어지고, 아이 몸은 하루가 새롭게 튼튼해집니다. 아이 눈은 하루가 다르게 빛날 테며, 아이 마음은 하루가 다르게 깊어지거나 넓어지겠지요.

 이 아이가 어린이집이라든지 유아원이라든지 유치원 같은 데에 다녔다면, 아이는 꽤 어린 나이인데에도 뭔가를 알거나 깨치거나 누리리라 봅니다. 그러나, 이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로서 새벽부터 밤까지 부대끼기 때문에, 날마다 새로운 목숨과 삶을 느끼면서 어버이가 누리는 목숨과 삶을 아이한테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어버이가 밥상 앞에 앉는 매무새대로 아이도 밥상 앞에 앉습니다. 어버이가 빨래를 어떻게 하고 청소를 어찌하느냐에 따라 아이도 이러한 집일을 익힙니다. 어버이가 자가용을 모는지 두 다리로 걷는지 자전거를 타는지에 따라, 아이가 앞으로 즐길 탈거리가 달라집니다.

 어버이가 텃밭을 일구면서 푸성귀를 거두면, 아이는 일찍부터 텃밭 호미질에 익숙합니다. 어버이가 꽃밭을 가꾸면서 푸나무를 돌보면, 아이는 어린 날부터 꽃밭 푸나무를 아낄 줄 압니다.


 (2) 내가 사랑하는 하루


 《해협, 한 재일사학자의 반평생》(삼인,2003)을 읽습니다. 재일사학자인 이진희 님은 당신 아이한테 당신이 살아온 나날을 들려주려고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한겨레붙이로 살아가는 아이들이 저희 어버이 삶이 어떠한가를 곰곰이 돌아보면서 어디에서든 씩씩하게 살아가기를 꿈꾸며 이러한 책을 썼겠구나 싶습니다.

 《해협》은 역사책이나 기록이라는 테두리에서 쓴 책이 아닙니다.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면서 아이를 사랑하는 손길로 어루만지는 어버이 마음으로 쓴 책입니다. 이런 역사를 알거나 저런 발자국을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주절주절 읊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런 일이 있는 동안 너희 어버이는 어떠한 살림을 꾸리며 어떠한 생각을 품었고, 저런 일을 겪는 동안 너희 어버이는 어떠한 마음으로 어떠한 길을 걸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옳은 길을 걷겠다고 다짐하며 옳은 길을 걸었든, 젊을 적에는 옳은 줄 알았으나 나중에 돌아보니 철없이 잘못 길을 걸었든, 스스럼없이 하나하나 밝히는 이야기입니다. 잘 한 일만 보여주려는 이야가기 아닙니다. 기쁜 일만 드러내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웃은 일과 운 일, 기쁜 일과 슬픈 일, 벅찬 일과 아픈 일을 골고루 밝히는 이야기입니다.

 삶에는 눈물과 함께 웃음이 있고, 웃음과 함께 눈물이 있거든요. 삶에는 오르막과 함께 내리막이 있고, 내리막과 함께 오르막이 있거든요.


..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친구들 사이에서는 영어를 배워 미국을 잘 알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높았으나, 나는 그렇게 생각되지가 않았다. 미 군정청이 일제의 앞잡이였던 관료와 경찰관을 일제 때보다 더 높은 자리에 등용함으로써 시민들의 분노를 샀던 것이다 … 훗날 안 일이지만 조선고등학교에 취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울에서 두 명의 형사가 시골집에 들이닥쳐 나에 관한 모든 물건들을 압수해 갔다. 아버지는 ‘좌익’에 물든 아들 문제로 치안 당국에 자주 출두하는 신세가 되었다. 당시에는 ‘연좌법’ 때문에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동생도 감시는 물론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할 수도 없게 되었다고 한다. 당국의 방해 공작은 계속 이어져 시골집 논밭만이 아니라 조상 전래의 가옥까지도 남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26년이나 지난 1981년 봄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였다 … 한국에서는 1978년 6월 박정희가 영구 집권을 노려 관변 단체인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9대 대통령 선거를 실시했다. 결과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 모든 권력을 한손에 쥔 박정희는 ‘개발 독재’를 보다 강력히 추진했다. 그러나 정치가뿐만 아니라 학생과 지식인의 저항도 날로 높아졌다 … 메이지 정부는 러일전쟁을 통해 조선과 사할린 남부를 빼앗고, 동청철도와 다롄, 뤼순의 조차권 등을 획득했다. 일본의 많은 역사가들은 이 전쟁을 계기로 일본이 구미 제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고 자랑한다. 또 수많은 ‘영웅’과 ‘전쟁 미담’을 만들어 ‘일본의 긍지’를 널리 선전하기도 했다 … 부상자의 전후는 참혹하여 ‘폐병(廢兵)’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더욱이 “가혹한 세금이 호랑이와 같다”고 할 정도로 무거운 세금이 국민들에게 전가되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러일전쟁이었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민중의 목소리는 압살되고 말았다. 일본은 이 전쟁의 승리를 계기로 군비 확장에 매달렸다 ..  (13, 85∼86, 243, 323∼324쪽)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읍내 장마당에 다녀오면 땀을 몇 바가지 쏟습니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얼굴이 벌개집니다. 아이는 자전거수레에 앉아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곯아떨어지기도 합니다. 오르막은 길디길다고 느끼고, 내리막은 짧디짧다고 느낍니다. 이 긴 언덕을 오르고 나서 시원한 바람을 맞는 내리막은 참으로 짧구나 싶지만, 이렇게 바람을 쐬면서 길디긴 언덕을 오르며 쏟은 땀을 모두 씻거나 텁니다.

 앞으로 낑낑거리며 자전거를 달리는 동안 생각합니다. 수레에 앉은 아이 눈높이에서는 아버지가 어떻게 보이고, 시골길을 오가는 자동차는 어떻게 보일까 하고.

 수레에 탄 아이는 자동차가 곁을 스치고 달릴 때에 “빠방이 시끄러워!” 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자전거를 달리면서도 자동차 소리는 시끄럽다고 느끼지만, 수레에 앉는 나즈막한 높이에서 헤아리자면 훨씬 무서우면서 시끄럽겠구나 싶습니다. 그렇지만, 자동차를 모는 이들은 이러한 줄을 모르겠지요. 생각을 안 하겠지요. 언덕을 낑낑거리며 오르느라 손잡이나 몸에 힘이 빠져 비틀비틀 할 때에 뒤에서 빵빵거리지 않고 빠르기를 줄이면서 옆으로 멀찍이 떨어져서 달리는 자동차는 그리 안 많습니다. 열 대가 지나가면 여섯 대는 아슬아슬하게 붙으며 씽 하고 바람을 일으킵니다. 때로는 시끄럽게 빵빵 울리고 지나가기까지 합니다. 도심지에서라면 모르되, 시골길에서 규정속도를 훨씬 넘기며 달리는 자동차들이 아이를 태운 자전거수레한테 살가이 마음을 쓰기란 어려우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들 자동차에 아이를 태웠다면? 아이를 자동차에 태워 달리면서 아이를 수레에 태운 자전거를 바라볼 때에도 아슬아슬 무시무시하게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지나가도 좋을까 궁금합니다.

 일본에서 나온 만화나 영화를 보면 중·고등학교 여학생이 짧은치마를 입고도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아주 흔히 자주 봅니다. 일본에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아이를 맡기고 데려오는 모습을 만화나 영화로 살피면 으레 자전거에 아기걸상을 마련해서 태우고 다니기 마련입니다.

 한국에서도 장바구니에 먹을거리를 잔뜩 싣고 앞뒤로 아이를 하나씩 태운 채 다니는 아주머니를 가끔 보곤 합니다. 그렇지만, 가끔 볼 뿐, 으레 어디에서나 보지는 못합니다.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맡기는 어버이 가운데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서 맡긴 다음, 자전거에 태워 집으로 돌아오는 어버이는 얼마나 될까요. 이 나라 아이들은 갓난쟁이일 때부터 ‘자동차 타기’에 길들거나 익숙한 삶이 된다고 느낍니다.


.. 이해에 읽은 몇몇 책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와나미쇼텐이 간행한 하타다 타카시의 《조선사》는 그 중 한 권이다. 바로 전 해인 1951년에 출판됐는데 내가 읽기 시작한 것은 신학기가 시작된 4월인가 5월부터였다. 아오야마 교수가 강의에서 소개하여 곧바로 구입하여 자세히 읽었다. 조선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된 것은 한국에 대한 하타다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 공부한 것을 고토 교수 앞에서 피력했지만 단지 허울만 그럴듯했을 뿐 내용은 부실했다. 말뿐인 ‘진보적 해석’에 대해 고토 교수는 ‘주관적인 생각만으로는 학문이 될 수 없다’고 냉정히 비판하였다 … 야나기 무네요시가 이 책을 집필한 것은 우리 나라가 일본 제국주의의 극심한 지배를 받고 있던 1922년이었다. 해방 전에 이처럼 용기 있는 학자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나는 8·15 해방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는 것이 참으로 부끄러울 뿐이었다 … 마음이 깨끗해지는 아름다운 문장이다. 이 글이 발표되었을 때 일본의 지식인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야나기의 맑은 눈과 깊은 사상에 감동한 것이다. 나는 야나기를 생각하면서 (석굴암) 동굴 내부를 둘러보았는데, 본존불의 바로 뒤에 있는 십일면관음상 앞에 섰을 때 그만 두 다리가 멈춰 버렸다. 풍만한 육체에 얇은 천의를 걸친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자비에 가득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 한국을 이해하는 하타다와 같은 일본 지식인이 스무 명만 있었다면 일본인의 한국관은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  (55, 62, 75∼76, 278, 297쪽)


 《해협》을 쓴 재일사학자 이진희 님은 어떤 삶이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해협》을 쓴 재일사학자 이진희 님이 낳아 함께 살아가던 아이들이 어른이 된 다음에는 저마다 어떤 삶을 일구는가 헤아려 봅니다. 멀리 살피기 앞서, 내가 살아가는 이곳에서 나부터 어떤 삶을 사랑하려는지를 돌아봅니다. 내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삶을 좋아할는지를 곱씹습니다.

 보금자리는 어디에서 마련하고, 일자리는 어떻게 맞아들이며, 마음이 맞는 짝꿍은 어떻게 사귀려는지 생각합니다. 어떤 밥을 어떻게 차려서 어디에서 어떻게 즐기려는지를 헤아리고, 고맙게 즐긴 밥으로 얻은 기운으로는 무슨 꿈을 펼치는 어떤 일을 붙잡을는지를 곱씹습니다.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을까요. 어버이가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어 한다면 아이들도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려 할까요.

 고운 사람으로 어깨동무하고자 할까요. 어버이가 이웃하고 고운 사람으로 어깨동무하고자 한다면 아이들도 고운 사람으로 어깨동무하는 길을 걸을까요.

 참다운 사람으로 씩씩한 나날을 누리려 할까요. 어버이 스스로 참다운 사람길을 찾으려 하면 아이들도 참다운 사람길을 찾으려 할까요.


.. 첫 귀국선이 출항한 1959년 말부터 귀국자들은 트럭과 기계류를 가지고 돌아갔지만, 상공인들 사이에서는 북한의 무슨 기념일에는 조선의 문화재를 구입하여 보내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 슬픈 일이지만 러일전쟁 때 개성 주변의 고려 왕릉과 귀족 묘가 파헤쳐져 고려청자 등 엄청난 양의 부장품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개성의 고려 고분에서 도굴당한 고려청자를 당시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가 메이지 천황에게 헌상한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신라와 가야 고분에서의 도굴품,그리고 수많은 석불·석탑·석인이 골동품업자를 통해 반출되었다. 예를 들면 도쿄의 오쿠라집고관에는 평남 대동군 율리사 고려팔각오층탑과 경기도 이천의 정토사에서 가져간 고려오층탑이 있다. 또 네즈미술관에는 고려 귀족의 묘지에서 가져간 석인과 석수 일식이 있고, 석탑과 불상 등이 정원에 진열되어 있다 … 공주에 체재한 시간은 짧았지만 오랜 기간의 의문을 씻을 수 있어서 매우 기뻤다. 하지만 시내에는 5∼6층의 건물이 여기저기에 세워지고 있었다. 무모한 재개발을 막지 않으면 지하 2미터에 묻힌 옛 도읍의 유적은 영원히 파괴될 것 같아 몹시 걱정되었다 … 임진왜란의 격전지 진주성을 방문했다. 논개가 왜의 장수를 껴안고 남강에 뛰어든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성 안에 있던 많은 민가를 밖으로 옮기고 공원으로 정비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하안 단구와 강을 이용한 다소 기복이 있는 성이지만, 외적에 대항하기에는 너무나도 빈역한 규모와 구조였다. 성벽 위의 총구멍 설비를 보고서는 열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당시 조선군은 철포가 없었기 때문에 고전했는데, 총구멍을 설치한 것은 해방 후로, 복원에서 시대 고증을 무시하는 일은 역사의 날조와 연결되는 법이다 ..  (116∼117, 266, 271쪽)


 재일사학자 이진희 님은 당신 삶을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거나 뽐내거나 으스대려고 글을 썼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무슨 반성문이나 참회록을 쓰는 마음이 아니요, 회고록이나 자서전처럼 되는 책을 내려고 글을 썼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고마운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선물받은 목숨을 하루하루 알뜰히 사랑하면서 보냈기에, 이렇게 보낸 기쁜 나날을 찬찬히 적바림하면서 당신 아이들 또한 당신 아이들 나름대로 하루하루 알뜰히 사랑할 나날을 보내기를 비손하듯이 글을 썼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면, 여느 어버이가 아이들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며 기뻐하는 일이나, 《해협》이라는 책이나 서로 마찬가지입니다. 더 빼어난 사진기를 갖추어 아이들 모습을 찍어야 어여쁘거나 사랑스러운 사진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스티커사진을 찍어도 얼마든지 어여쁘거나 사랑스러운 사진이 태어납니다. 1회용 사진기를 써도 애틋하며 살가운 사진이 태어납니다. 값싼 필름사진기를 쓰든 싸구려 똑딱이를 쓰든, 나 스스로 사랑하는 손길로 찍는 사진이라면 사랑스러운 사진이 태어나요. 나 스스로 사랑하는 손길로 쓰는 글이라면 사랑스러운 글이 태어납니다.


.. 조선대학 시절에는 풍경이나 화초에 마음을 기울일 여유가 없었지만, 이제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산진달래 꽃잎을 입에 머금자 고향 뒷산에서 뛰놀던 어린 시절이 뇌리를 스쳤다 … 30여 년 전 어머니 옆을 떠나던 때가 뇌리를 스쳤다. 우리 집은 마을 제일 높은 곳에 있었는데 내가 몇 번이나 뒤돌아보아도 어머니는 ‘대문’ 앞에 서서 꼼짝도 않고 계셨다. 하얀 치마저고리 모습이 점점 작아져 점이 되었다. 그것이 이 세상에서의 이별이었다. 참는 것만을 미덕으로 사시다가 마흔둘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생애를 생각하니 세상의 덧없음에 화가 났다. 언제 다시 성묘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하니 어머니의 묘 옆을 떠나는 것이 가슴 아팠다. 눈물을 겨우 참는 것이 고작이었다 ..  (185, 284∼285쪽)


 집에서 살림하고 일하는 어머니들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집 바깥에서 훌륭하다는 일을 하는 아버지들도 글을 쓰면 좋을 텐데, 갓난쟁이일 때부터 집에서 아이랑 씨름하며 살아가는 숱한 여느 어머니들이 글을 쓰면 좋겠어요. 아이를 씻기거나 재우거나 젖을 물리면서 느끼는 사랑스러운 느낌을 찬찬히 글로 옮기면 좋겠습니다. 아이한테 밥을 먹이며 힘들었던 일이나 고달팠던 이야기를 찬찬히 글로 적바림하면 좋겠어요. 아이 스스로 당차게 서서 뜀박질을 하던 첫 날 이야기를 쓰고, 아이가 뛰며 놀다가 넘어져 무릎이 깨진 이야기를 쓰며, 아이가 말썽을 피워 꾸짖었더니 울고 불고 하던 이야기를 쓰면 좋겠습니다.

 따로 책 한 권으로 태어나야만 글을 쓰는 보람이 있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꾸준하게 ‘아이와 어우러지는 삶’을 수수한 빛이 감도는 글로 담아서 내 아이가 스스로 글을 읽으며 생각밭을 일굴 만할 때쯤 넌지시 건네면 더없이 아름다운 일이 되리라 생각해요. (4344.7.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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