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동네 공부방, 그 사소하고 조용한 기적
최수연 지음 / 책으로여는세상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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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은 오직 삶을 배웁니다
 [책읽기 삶읽기 106] 최수연, 《산동네 공부방》(책으로여는세상,2009)

 


  아이들은 오직 삶을 배웁니다. 아이들 누구나 삶 아닌 다른 무엇을 배우지 않습니다. 어른들은 삶을 가르칩니다. 어른들 누구나 삶 아닌 다른 무엇을 가르치지 못합니다.


  슬기롭게 살아가는 어버이는 슬기롭게 일구는 삶을 물려줍니다. 돈에 얽매인 어버이는 아이들 또한 돈에 얽매인 채 살아가도록 이끕니다.


  도시에 있는 학교는 아이들이 도시에 남아 도시 회사원이나 노동자가 되도록 가르칩니다. 시골에 있는 학교는 아이들이 하루 빨리 시골을 떠나 도시로 몰려들어 도시 회사원이나 노동자가 되도록 가르칩니다. 곧, 도시나 시골이나 똑같이, 도시에서 회사원이나 노동자 되어 ‘월급을 받을 때’가 되어야 ‘축하할’ 일이 됩니다. 커다란 도시에 있는 이름난 회사나 공공기관에 일자리 얻어 들어가면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학교 앞문에 걸개천이 걸립니다. 학교에서는 자랑거리로 삼습니다. 조그마한 시골에서 흙을 일구며 살아가거나 바다에서 고기를 낚는 아이가 되면, 학교에서든 사회에서는 쳐다보지 않습니다.


.. 공부방을 하든 탁아방을 하든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그 동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 동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꼭대기에 앉아 잠시 쉬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동네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참으로 삭막해 보였다. ‘산’동네인데도 정작 사람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작은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았다 … 아이들은 신문에 실릴 만한 내용을 직접 정하고, 취재 일정과 편집 계획까지 스스로 세웠다. 그리고 학교 수업이 끝난 뒤 공부방에서 빌려준 카메라를 메고 그달의 기삿거리를 찾아 파출소며 동사무소, 소방소, 각종 종교단체까지 찾아가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했다. 아이들은 마치 진짜 신문기자가 된 듯 진지하게 취재를 했고, 그 과정을 너무나 재미있어 했다. 취재를 끝낸 뒤 아이들은 기사를 쓰고, 기사에 어울리는 그림까지 그려 넣는 등 자신들이 갖고 있는 온갖 기량을 모아 신문을 만들어 갔다 ..  (32, 36, 138∼139쪽)


  오늘날 학교에서는 꿈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럴밖에 없는 까닭이, 오늘날 학교에서 교사를 맡는 이들 또한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지식만 배우거나 쌓았어요. 교사들 또한 교사가 되기까지 ‘꿈을 키우는 삶’이 아니라 ‘교사가 되어 월급을 받는 일자리를 얻’도록 땀을 흘렸어요.


  교사가 하는 일이란 ‘교과서 진도를 나가’거나 ‘대입시험 문제를 잘 맞히도록 하나하나 뽑아내는’ 일이에요. 교사는 아이들 앞에서 ‘꿈을 꾸는 삶’을 몸소 보여줄 수 없는 얼거리예요. 교사 스스로 꿈을 안 품기도 하지만, 꿈을 품은 교사조차 아이들 앞에서 섣불리 꿈을 보여주지 못해요.


  아이들은 유아원과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거치면서 ‘꿈을 잃는 길’을 걸어요. 유아원도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더 빨리 영어를 가르치고 더 많이 지식을 쌓도록 애쓸 뿐, 정작 아이들이 온삶을 누리며 꿈을 이루도록 하려는 데에는 마음을 기울이지 않아요.


  가만히 생각해 보셔요. 아이들한테 ‘자연 그림책’이나 ‘세밀화 그림책’을 손에 쥐어 주거나 읽히지만, 막상 아이들이 누릴 숲이 어린이집 언저리에 없어요.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여주지만, 참말 여느 살림집 둘레에 아이와 어른이 다 함께 뒹굴 숲이 없어요.


  숲에서 나무를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그늘을 느끼고 잎과 꽃과 열매를 보지 않고서, 나무도감만 들여다보면 무얼 하나요. 나무도감이나 꽃도감이나 나비도감을 보면서 나무랑 꽃이랑 나비 이름은 훤히 꿰뚫는다지만, 아이를 둘러싼 마을이나 학교 어디에도 동백나무이든 배나무이든 복숭아나무이든 이팝나무이든 느티나무이든 없는걸요.


  어린이는 뽀로로 만화를 볼밖에 없어요. 푸름이는 연예인과 가수 얼굴을 볼밖에 없어요. 어른은 연속극과 영화에 나오는 배우를 볼밖에 없어요. 꿈을 보지 않는 어른이기에 꿈을 느끼지 못하고, 꿈과 동떨어진 채 살아가는 어른이기에, 아이들이 꿈을 껴안으며 살아가도록 돕지 못해요.


.. “너, 이놈의 자식, 뭐하는 짓이야!” 그래도 순길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던 순길이 아버지는 내가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몽둥이를 휘두르며 순길이를 때리려고 했다. 그때 순길이가 한마디 했다. “아빠, 엄마랑 계속 싸우면 나는 이렇게 될 겁니더!” … “오늘은 행길이 어머니와 영생이 어머니, 죽기 어머니는 글자를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무슨 글자부터 써 볼까요? 글을 몰라 그동안 답답했지요? 영생이 어머니부터 말씀해 보세요.” “내 이름 석 자 써 보는 기 소원이라요.” “맞아요, 이름 석 자라도 쓰모 원이 없겄어요.” … “큰이모, 파 없어요? 풋고추는요? 달걀은요?” 그럴 때마다 나는 구박 아닌 구박을 했다. “그냥 먹어!” “이왕 먹는 건데 잘해 먹어야지요. 아∼아, 내가 할 테니까 큰이모는 걱정 마쇼.” 말도 늘 짧았다. 그래서 공부방 선배들한테서 잔소리를 많이 듣기도 했다. “니는 할매 나이가 몇 갠데 반말 찍찍 하고 있노?” “아 행님, 정답고 좋잖아예!” ..  (103, 165, 243∼244쪽)


  최수연 님이 빚은 《산동네 공부방》(책으로여는세상,2009)을 읽습니다. 최수연 님은 부산 달동네에서 공부방 교사로 일합니다. 즐겁게 일하고, 씩씩하게 일하며, 사랑스레 일합니다. 다만, 최수연 님이라고 뾰족하게 수가 나지는 않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도시에서 이런저런 일자리를 얻기까지 공부방지기나 마을지기 구실을 하며 곁에서 어깨를 토닥일 수 있을 뿐입니다. 달동네에서 시원스러운 작은 샘터지기 노릇을 할 수 있으나, 아이들이 학교에서 톱니바퀴에 맞물리듯 머리와 마음이 굳어지도록 흐르는 일을 막거나 거스르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달동네 공부방은 도시에 있는 조그마한 숲일 테지요. 모두들 악다구니를 쓰고 쳇바퀴에 톱니바퀴에 올가미에 허덕이지만, 이 슬프고 고단한 삶에 새힘을 북돋우는 맑은 샘물 한 그릇 떠서 내미는 조그마한 숲일 테지요.


  사람은 지나치게 많고, 샘가는 아주 조그맣습니다. 시멘트와 아스팔트는 끝없이 넓으며, 샘터는 아주 조그맣습니다. 밥 한 그릇과 물 한 사발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하고 나눌 수 있을까요. 밥 한 숟가락과 국 한 숟가락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을까요.


  그렇지만, 밥 한 그릇을 마련해서 나누려 하기에, 이 밥 한 그릇이 백 그릇으로 가지를 뻗고 만 그릇으로 뿌리를 내리리라 믿어요. 물 한 사발 길어올려 나누려 하기에, 이 물 한 사발이 백 사발로 늘어나고 만 사발로 샘솟으리라 믿어요.


  아이들은 오직 삶을 배웁니다. 삶을 배우는 아이들 앞에서 삶을 보여주고 삶을 누리며 삶을 사랑하는 하루를 빛낸다면, 조그마한 숲은 커다란 도시를 살찌울 수 있어요. 삶을 아끼고 삶을 노래하며 삶을 좋아하는 손길과 마음결과 꿈씨가 얼크러지면서, 조그마한 숲살림이 커다란 나라살림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회사원과 공무원만 기르는 모든 학교가 문을 닫기를 빌어요. 사람을 가르치고 사랑을 노래하는 조그마한 숲이 차츰 늘어나기를 빌어요. 전쟁과 경쟁으로 치닫는 모든 학교가 사라지기를 빌어요. 사람을 배우고 사랑을 주고받는 조그마한 숲이 활짝 피어날 수 있기를 빌어요. (4345.9.13.나무.ㅎㄲㅅㄱ)

 


― 산동네 공부방, 그 사소하고 조용한 기적 (최수연 글,책으로여는세상 펴냄,2009.2.23./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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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스의 신기한 여행 1 - 클래식 라이브러리 1
셀마 라게를뢰프 지음, 배인섭 옮김 / 오즈북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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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을 꾸기에 꿈을 이루는 삶
 [어린이책 읽는 삶 24] 셀마 라게를뢰프, 《닐스의 신기한 여행 (1)》(오즈북스,2006)

 


- 책이름 : 닐스의 신기한 여행 1
- 글 : 셀마 라게를뢰프
- 옮긴이 : 배인섭
- 펴낸곳 : 오즈북스 (2006.10.30.)
- 책값 : 9000원

 


  하늘을 날고 싶다는 꿈을 꾸면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꿈을 꾸는 그 자리에서 꿈을 이루고, 누군가는 꿈을 이루기까지 퍽 오랜 나날을 들입니다. 꿈을 꾸는 사람은 꿈을 이루지만, 꿈을 안 꾸는 사람은 꿈을 안 이룹니다.


  꿈을 꿀 때에는 가장 맑으며 가장 빛나는 넋이어야 합니다. 가장 환한 사랑으로 살아가며 가장 너른 믿음으로 지내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면서 믿고, 이웃과 동무를 사랑하면서 믿어야 합니다. 고운 사랑은 꿈을 이루도록 이끄는 밑거름이요, 너른 믿음은 꿈을 즐기도록 북돋우는 밑바탕입니다.


.. 어머니는 아버지의 말을 한 마디도 반박할 수 없었다. 다만 아버지와는 다른 걱정을 했다. 어머니의 걱정은 아이가 너무 거칠고 버릇이 없는데다가, 동물들에게 냉혹하고, 사람들에게 못되게 군다는 것이었다. “아, 신께서 아이의 나쁜 마음을 몰아내고 다른 마음을 선물해 주셨으면!” … “내 뿔 위에 올라타고 놀아 보게 해 줄게.” “와 보라니까, 와 보라고. 네가 던진 나막신으로 등을 맞았을 때의 느낌이 어땠는지 너도 한 번 제대로 맛봐야지!” … “그 수많은 못돼 먹은 일들에 대해서 단단히 보상을 해 줄 테니까. 너를 걱정하면서 네 엄마가 숱하게 흘렸던 눈물에 대해서도.” ..  (19∼20, 33쪽)


  이른새벽에 누런쌀을 씻어 불립니다. 이른새벽에 누런쌀을 씻어 불려야 비로소 아침밥을 지을 수 있습니다. 흰쌀이라면 몇 차례 스윽스윽 씻고 나서 곧바로 물을 맞추고 안칠 수 있겠지요. 누런쌀은 잘 불 때까지 제법 기다려야 합니다. 일찌감치 하루를 열며 식구들 맛나게 먹을 밥을 생각해야 합니다.


  쌀을 씻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나는 왜 이렇게 새벽마다 쌀을 씻는가 하고. 나는 왜 날마다 식구들 밥을 차리고 집일을 도맡는가 하고.


  엊저녁 미룬 설거지를 마칩니다. 오늘 할 빨래가 얼마쯤 되는가 가늠합니다. 이러는 동안 시나브로 깨닫습니다. 나는 어린 나날부터 ‘집일을 즐겁게 도맡으며 살림을 꾸리는 아버지’로 살고 싶다는 꿈을 꾸었어요. 내 둘레 어른들 누구나 어머니나 아줌마한테만 모든 집일을 맡기는 아버지나 아저씨였어요. 내 또래 또한 가시내가 집일을 해야 하고 사내는 집일을 안 건드려야 하는 줄 여겼어요. 사촌동생들은 사내이고 가시내이고 아예 집일을 모를 뿐더러 하지 않았어요.


  나는 이 모습이 도무지 말이 안 된다고 느꼈어요. 집일을 안 하거나 부엌일하고 등을 지는 사내라면 사내 구실을 못 하는 셈이라고, 아니 사람 구실을 안 하는 셈이라고 느꼈어요. 사내라면, 또 가시내라면, 아니 사람이라면, 스스로 먹고 입고 잠자는 모든 것을 스스로 가누거나 꾸릴 수 있어야 한다고 느꼈어요.


.. 닐스는 밝은 녹색의 사각형을 가장 먼저 알아보았다. 그것은 지난해 가을 파종한 호밀밭이었다. 겨울 동안 눈에 덮인 채로 녹색으로 자라난 것이었다 … 닐스는 스코네에 대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았던 것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이날 단 하루 만에 볼 수 있었다 … 작은 다람쥐도 자기 집에서 도토리를 꺼내서는 가지 위에 앉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찌르레기가 수염뿌리를 물고 날아갔고, 검은방울새는 나무 꼭대기에서 노래했다. 그때 닐스는 해가 이 모든 작은 생명체들에게 말하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깨어나라, 그리고 너희들의 집에서 나와라. 내가 여기 왔다. 이제 너희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  (39, 42, 66쪽)


  꿈이란 스스로 꾸는 대로 이룹니다. 스스로 좋다고 여기는 꿈이든, 스스로 슬프다고 여기는 꿈이든, 스스로 즐겁다고 여기는 꿈이든, 스스로 아프다고 여기는 꿈이든, 스스로 ‘이렇게 해야겠구나’ 하고 마음에 살포시 품으면, 이 꿈은 어느 날 천천히 이루어집니다.


  꿈을 품는 사람은 스스로 품는 꿈이 어느 길로 나아가는가를 언제나 돌아봅니다. 꿈을 품는 사람은 꿈이 이루어질 길을 씩씩하게 걸어갑니다. 살아가며 하나둘 깨닫는데, 꿈이 있기에 사람들 누구나 목숨을 이어요. 꿈을 생각하기에 오늘 하루 새롭게 맞이해요. 꿈을 천천히 이루기에 내 삶은 내가 마음에 담은 모양대로 가만히 빛을 내요.


  셀마 라게를뢰프 님이 쓴 《닐스의 신기한 여행》(오즈북스,2006) 첫째 권을 읽으며 낱낱이 느낍니다. 이 이야기책에 나오는 ‘닐스’는 스스로 하찮다고 생각합니다. 닐스는 스스로 이녁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벗어나 집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못난 짓을 일삼는 닐스는 스스로 참 못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꿈대로 이루어집니다. 집요정을 괴롭히다가 바야흐로 ‘집요정처럼 자그마한 사람’으로 바뀌어요. 흰거위랑 집을 떠나 멀리멀리 하늘을 날면서 온누리를 떠돌아요.


.. 기러기들은 길들여진 기러기들이 자기들의 말을 더 잘 알아들을 수 있게 하려고 아래로 내려가 소리쳤다. “함께 가자. 그러면 너희들도 날고 헤엄치는 법을 배우고 싶어질 거야.” 그러나 길들여진 기러기들은 오히려 모욕을 당했다고 느꼈다. 그래서 몇 마디 중얼거릴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 기러기들과 함께 여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지, 자꾸만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배고프고 추울 것이다, 당연하다. 닐스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신에 일하지 않아도 되고, 공부를 할 필요도 없었다 … 닐스는 자신이 앞으로 보게 될 모든 것들과 경험하게 될 모든 모험들을 하나하나 그려 보았다. ‘집에서 일이나 하면서 이런저런 욕이나 먹는 것하고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아, 기러기들의 여행에 함께할 수 있다면, 그러면 내 몸이 변한 것이 하나도 괴롭지 않을 텐데!’ ..  (43, 93, 94쪽)


  세 권으로 나누어 옮겨진 《닐스의 신기한 여행》 첫째 권에서 닐스는 아직 ‘스스로 꿈꾸었기에 이루어진 삶’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느끼지 못합니다. 다만, 닐스한테 찾아온 ‘집요정처럼 자그마한 사람’이 된 삶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닐스는 스스로 이러한 삶을 누려야 한다고 받아들입니다. 닐스는 스스로 이렇게 살며 무언가 새롭게 배워야 한다고 받아들입니다.


  이리하여 닐스한테는 새로운 삶이 펼쳐집니다. 이제껏 짐승들을 괴롭히거나 들볶던 짓이 어떠한 바보짓인가를 몸소 느낍니다. 짐승과 벌레와 풀과 해와 바람과 구름이 들려주는 속삭임을 들을 수 있습니다. 다람쥐하고도 여우하고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기러기나 황새나 거위 등에 업힌 채 하늘을 날아다니며 지구별을 새롭게 바라봅니다. 이웃과 동무와 어버이를 새로운 눈으로 마주합니다.


  아, 그래요. 닐스는 ‘어른이 되고’ 싶었군요. 닐스는 철부지 어린이에서 벗어나, 바야흐로 씩씩하며 아름다운 어른이 되고 싶었군요. 날마다 개구진 짓으로 말썽을 부리는 바보가 아닌, 언제나 맑게 웃고 환하게 노래하는 아름다운 어른이 되고 싶었군요.


  맑게 웃는 삶을 누리고 싶기에 기러기들과 먼 길을 돌아다니며 ‘맑음’과 ‘웃음’이 무엇인가를 몸소 겪습니다. 환하게 노래하는 아름다움을 빛내고 싶기에 여러 들짐승을 도와주면서 ‘환함’과 ‘노래’가 무엇이요, ‘아름다움’을 어떻게 읽는가를 몸소 익힙니다.


.. (기러기 우두머리) 아카가 곧바로 대답해 주었다. “다람쥐, 토끼, 피리새, 박새, 딱따구리, 종달새 같은 숲과 들판의 작은 동물들과 친하게 지내도록 해 봐. 그들과 친구가 되면 위험을 미리 알려주고, 숨을 곳을 일러 주고, 아주 위급한 경우에는 너를 보호해 주려고 함께 힘을 합칠 거야.” … 처음 쿨라베리에 온 모든 동물들은 왜 이 축제를 두루미 대무도회라고 부르는지, 그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춤에는 야성이 담겨 있었다. 그러면서도 달콤한 동경이 감정을 일깨웠다. 이 순간 싸움을 생각하는 동물은 하나도 없었다 … ‘어떻게 아카, 이크시, 카크시, 그리고 모르텐 같은 새들에게, 그리고 또 다른 새들에게 총을 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정말 아무 생각도 없단 말인가?’ ..  (96, 137, 185쪽)


  닐스한테는 마땅한 스승이 아직 없었습니다. 뭐랄까, 닐스한테는 좋은 동무조차 아직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닐스는 닐스 스스로 마땅한 스승이 되지 않았고, 닐스는 닐스 스스로 좋은 동무가 되지 않았어요.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스승이 되고 스스로 동무가 돼요. 어버이는 아이한테 삶을 가르치는 스승이면서 아이와 함께 노는 동무예요. 아이는 어버이한테 사랑을 가르치는 스승이면서 어버이와 함께 노는 동무예요. 그런데 닐스는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닐스 스스로도, 또 닐스 어버이도, 또 닐스 둘레 동무들도, 서로서로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모두들 삶을 슬기롭게 바라보지 못했어요. 모두들 삶을 사랑스레 껴안지 않았어요. 모두들 삶을 꾸밈없이 마주하지 못했어요. 모두들 삶을 아름답게 어깨동무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닐스는 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닐스는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새로운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닐스는 꿈을 꾸어야 했고, 꿈을 누려야 했으며, 꿈을 이루어야 했습니다.


.. “한 번이라도 저녁에 덤불 속에서 들려오는 나이팅게일의 노래를 들으면서 여기 암벽가에 앉아 저기 저 너머 칼마르 해협을 바라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섬이 다른 섬들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생겨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할 거예요.” … “그렇다고 너희들이나 농부들도 어쩌지 못했던 그 여우들을 설마 나처럼 작고 힘없는 꼬마가 물리쳐 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작고 똑똑한 이는 많은 일을 할 수 있어.” 숫양이 대답했다 … ‘좋아, 이제 너를 도울 수 있는 것은 너 자신뿐이야, 닐스 홀게르손!’ 닐스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이제 네가 야생의 세계에서 보낸 몇 주일 동안 무언가 배웠다는 것을 증명해 봐야 해.’ ..  (208, 227, 271쪽)


  내가 꿈을 꾸는 어버이일 때에 아이들도 꿈을 꾸는 아이들로 살아갑니다. 내가 좋은 사랑을 빚는 어버이일 때에 아이들도 좋은 사랑을 빚는 아이들로 살아갑니다. 내가 곱게 노래하는 어버이일 때에 아이들도 곱게 노래하는 아이들로 살아가요.


  내가 스스로 울타리에 갇힌 바보짓을 한다면, 아이들도 제 어버이한테서 울타리에 갇힌 바보짓을 물려받습니다. 내가 스스로 쳇바퀴를 맴도는 얼간이 꼴을 한다면, 아이들도 제 어버이한테서 쳇바퀴를 맴도는 얼간이 꼴을 이어받습니다.


  환히 웃으며 부엌일을 하는 어버이 곁에서 아이들은 환히 웃으며 부엌일을 하는 즐거움을 천천히 물려받습니다. 신나게 노래하며 비질을 하고 걸레질을 하는 어버이 곁에서 아이들은 신나게 노래하며 비질을 하고 걸레질을 하는 재미를 찬찬히 이어받습니다.


  어버이가 스스로 빛을 나누는 삶을 누릴 때에, 아이들은 이 빛이 참으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버이가 스스로 사랑을 빚는 삶을 누릴 때에, 아이들은 이 사랑이 더없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버이가 스스로 꿈을 기쁘게 이루는 삶을 누릴 때에, 아이들은 바야흐로 이 꿈을 꾸면서 아이 깜냥껏 새로운 삶을 엽니다.


.. 닐스 홀게르손은 한 가지를 놓치고 말았다. 이 도시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아름답고 특별하다는 것이었다. 뒷골목의 예쁜 집들도 보지 못했다. 검정색 담장과 하얀색 모퉁이, 그리고 번쩍이는 창틀 아래로 빨간 화분받침이 있는 자그마한 집들이었다. 울긋불긋 꽃들이 활짝 피어난 정원과 덩굴로 뒤덮여 있는 폐허의 놀라운 아름다움도 스쳐 지나고 말았다 … 부모들은 모두 이렇게도 간절하게 자기 자식들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닐스는 여태껏 그런 줄을 몰랐다. 아니, 아이들이 곁에 없다고, 자신의 삶이 끝난 것처럼 그렇게 살아간단 말인가! … “어디로 가고 있니? 어디로 가고 있니?” 기러기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아이들이 큰 소리로 외쳤다. “책도 숙제도 없는 곳으로!” 닐스가 소리쳤다. “오, 우리도 데리고 가 줘! 우리도 데리고 가라고!” 아이들이 소리를 질러댔다. “올해는 안 돼. 내년에 보자!” ..  (248, 307, 316쪽)


  가을비가 내립니다. 여러 날 잇달아 내리는 가을비는 나한테 가을비 노랫소리를 들려줍니다. 가을비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가을비 빛깔이 알록달록합니다.


  가을비를 마주하며 가을빛을 느끼는 나라면, 나를 어버이로 삼으며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가을빛을 느끼는 가슴을 물려받아 키웁니다. 가을비를 마주하며 가을빛을 안 느끼거나 못 느끼는 나라면, 나하고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은 빗소리를 알아채지 못합니다.


  가을비가 지붕을 적십니다. 가을비가 도랑을 타고 흐릅니다. 가을비가 후박나무를 적십니다. 가을비가 들판을 덮습니다.


  가을비 맞은 잎사귀는 더 짙게 푸른 빛깔입니다. 가을비 내리는 하늘은 더 하얗고 더 파랗습니다. 가을비 찾아드는 날은 더 선선하고 서늘합니다. 가을비 노랫소리 굵어질수록 들새나 멧새나 풀벌레 노랫소리는 조용히 잦아듭니다.


  불현듯 봄비를 생각합니다. 여름비와 겨울비를 생각합니다. 철마다 다른 이 빗소리는 내 삶에 어떤 무늬로 아로새길까 궁금합니다. 날마다 다른 이 빗물결은 내 넋에 어떤 결로 스며들까 궁금합니다.


  가을비는 나한테 무엇을 가르치려고 찾아올까요. 나는 무엇을 배우고 싶어 가을비를 부를까요. 가을은 나한테 무엇을 보여주려고 찾아올까요. 나는 무엇을 바라보고 싶어 가을을 부를까요.
  어버이는 아이를 어떤 눈빛으로 바라보는가요. 아이는 어버이를 어떤 눈빛으로 바라보는가요. 어버이는 아이를 어떤 목소리로 부르는가요. 아이는 어버이를 어떤 목소리로 부르는가요.


.. 나무들은 아직 완전히 초록색 옷을 차려입지 않았지만, 어디서나 파릇한 새순이 돋아나고 있었다. 웅덩이마다 가득 물이 차올랐고, 웅덩이 가장자리에는 머위꽃이 활짝 피어났다 … 전혀 질서와 규칙이 없었지만 토끼들의 놀이는 숨이 가빠질 정도로 큰 흥분을 안겨 주었다. 이제 봄이 온 것이다. 재미와 기쁨이 다가오고 있었다.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다가온다. 곧 생명이 활짝 피어날 것이다 … 첫 번째 봄비가 대지를 후두둑 두드리는 순간, 나무와 초원 위의 모든 작은 새들은 기쁨의 지저귐을 토해 냈다 … 기러기들은 길고 좁다란 그 도시 위를 날아갔다. 여기서도 기러기들은 도시 밖의 교외 지역에서 그랬듯이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그러나 도시 안으로 들어오니 한참 동안 아무도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길거리에 멈추어 서서 기러기들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  (20, 132∼133, 139, 314쪽)


  꿈을 꾸기에 꿈을 이루는 삶을 생각합니다. 즐겁게 꿈을 꾸기에 즐겁게 이루는 삶을 생각합니다. 바보스레 꿈을 내팽개치기에 바보스레 삶을 내팽개치는 모습을 생각합니다. 어리석게 꿈을 짓밟기에 어리석게 삶을 짓밟는 모습을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밥을 먹으며 목숨을 잇는다 하는데, 밥이란 꿈이 깃든 먹을거리입니다. 밥이란 사랑이 담긴 먹을거리입니다. 꿈과 사랑이 깃들지 않은 밥을 먹을 때에는 ‘나이를 숫자로 늘릴’ 수는 있되, 삶을 빛내는 목숨을 아름다이 누릴 수는 없습니다. 아름답게 빛내는 삶을 누리려고 일자리를 찾아 돈을 버는 나날입니다. 은행계좌 숫자를 늘리려고 돈을 버는 나날일 수 없습니다. 연금도 보험도 부질없습니다. 연금이 있어야 할 삶이라 생각하니까 연금을 부어야 합니다. 보험이 있어야 할 삶이라 생각하기에 보험을 들어야 합니다.


  사랑을 생각하는 삶이라면 사랑을 스스로 빚을 뿐 아니라, 내 둘레 벗님들이 사랑을 나누어 줍니다. 꿈을 꾸는 삶이라면 꿈을 즐겁게 이룰 뿐 아니라, 내 좋은 살붙이들 모두 스스로 꿈을 즐겁게 꾸며 이루도록 북돋웁니다.


  닐스 홀게르손은 날마다 새로운 곳을 날아다니고 새로운 삶을 마주하면서 새로운 아이로 거듭납니다. 새로운 사랑을 빛내고, 새로운 믿음을 가꾸며, 새로운 생각을 갈고닦습니다. 《닐스의 신기한 여행》 첫째 권이 끝날 무렵, 닐스는 아주 놀랍도록 멋스러운 슬기 한 자락을 스스로 빚어 가슴으로 품습니다. (4345.9.1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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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카르페디엠 31
구드룬 파우제방 지음, 이유림 옮김 / 양철북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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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푸른 넋을 맑게 꽃피우도록 이끄는
 [푸른책과 함께 살기 99] 구드룬 파우제방, 《첫사랑》(양철북,2012)

 


- 책이름 : 첫사랑
- 글 : 구드룬 파우제방
- 옮긴이 : 이유림
- 펴낸곳 : 양철북 (2012.7.23.)
- 책값 : 9500원

 


  푸른 넋을 맑게 꽃피우도록 이끄는 한 가지는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 말고는 푸른 넋을 맑게 꽃피우도록 이끌지 못하리라 느껴요. 학력도 재산도 이름도 어느 무엇도 푸른 넋을 맑게 꽃피우도록 이끌지는 못하지 싶어요.


  푸른 잎 틔운 나무가 씩씩하고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도록 하는 한 가지는 사랑스러운 햇살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스러운 햇살 말고 무엇이 나무를 푸르게 할까 궁금해요. 화학비료가? 항생제가? 성장촉진제가? 농약이? 다른 무엇으로 나무를 푸르게 할 수 있을까요.


  푸른 넋은 사랑을 먹으며 살아갑니다. 푸른 나무는 사랑스러운 햇살을 먹으며 살아갑니다. 푸른 넋은 사랑 담은 꿈을 먹으며 자라납니다. 푸른 나무는 사랑스러운 햇살에 깃든 꿈결을 먹으며 자라납니다.


.. 할머니가 말했다. “다들 고개만 돌리고 있지. 너도 위험을 똑바로 보지 않는구나.” … 하지만 오빠는 전쟁을 반겼다. 어찌나 들떴는지 마치 조금취하기라도 한 것 같았다. 새로운 소식이 나올 때마다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 전쟁이 끝날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해전이 확장되었다. 남자들이 돌아오기는커녕 나이가 좀 더 많은 사람들까지 전쟁터로 나갔다 …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우리랑 전쟁을 치르는 나라 사람들은 적이라는 것, 그래서 미워해야 하고 군인이라면 죽여야 한다는 건 한니도 학교에서 배웠다. 평화로울 때 사람을 죽이는 것은 범죄지만 전쟁일 때 사람을 죽이는 것은 범죄가 아니라는, 이 어처구니없는 논리에 한니는 자주 의아해 했다. 심지어 전쟁에서 적군을 많이 죽인 사람한테는 훈장까지 준다 ..  (22, 34, 44, 218∼219쪽)


  ‘어린이’라는 낱말이 널리 쓰이기 앞서, ‘아이’와 ‘어른’ 두 낱말로 삶을 살폈습니다. 아이 때를 거쳐 어른 나날을 누린다고 말했습니다. 시집이나 장가를 가지 않은 사람들은 몸이 크고 나이를 먹어도 ‘아이’로 여겨 버릇했고, 굳이 시집이나 장가를 들지 않고 아이 또한 낳지 않되, 스스로 삶길을 씩씩하게 열 적에는 새롭게 ‘어른’이라 일컫곤 했습니다. 시집이나 장가를 들고 아이도 여럿 낳았으니 ‘어른’ 아닌 ‘아이’라는 소리를 들은 사람도 많아요. 요즈음에는 ‘아이’와 ‘어른’을 으레 나이 숫자로만 따지지만, 두 낱말은 나이로는 헤아릴 수 없는 삶길을 보여주지 싶어요.


  곧, 방정환 님이 널리 쓰자고 하며 뿌리내린 ‘어린이’는 ‘아이’라는 낱말과 사뭇 다릅니다. ‘어린이·젊은이·늙은이’로 이어지는 이 낱말은 오직 나이와 몸피로 살피는 사람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어린이’와 ‘젊은이’ 사이에 이른바 한자말로 가리킬 ‘청소년(靑少年)’은 없습니다. 곰곰이 따지면, 방정환 님이 살던 무렵에는 ‘어린이’ 다음으로 곧장 ‘젊은이’ 또는 ‘어른’이었지 싶어요. 열대여섯 살이면 시집이나 장가를 들고, 열서너 살이라 한다면 ‘한 사람 어른 몫’ 일을 했어요. 따로 학교를 다니며 ‘배우는 디딤돌’을 거치지 않았어요. 지난날에는 누구나 여느 살림집이 ‘먹고자는 집이면서 배우는 터’ 노릇을 했어요. 우리 삶과 삶터를 찬찬히 짚는다면, ‘청소년’이라고 하는 사람이 태어난(?) 지는 얼마 안 되었다 할 만해요. 어쩌면 오늘날에는 ‘청소년’이라 할 만한 사람이 새삼스레(?) 태어났다 할 만해요.


.. 이번에는 엄마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만약 이 애가 우리 애라면 어땠을까? 당신이 전쟁터에 나가 있는 동안 혹시 내가 죽고 우리 애들을 어딘가 보내야 한다면?” … “그 프랑스인은 군인이야. 혼자서 그랬든 여럿이 그랬든, 혹시 어떤 독일인을 죽였는지 누가 알겠니. 포로로 잡힌 적을 학대해서도 안 되지만 너무 위해 줘서도 안 돼.” 엄마가 담담하게 말했다. “만약 우리 위르겐이 포로가 된다면, 전 누군가가 그 애를 잘 보살펴 줬으면 좋겠어요.” … 할머니가 말했다. “세상이 대체 어찌 돌아가는지. 우리 로베르트는 파리에 가 있고 필리프는 여기 와 있고. 그 반대라면 우리한테나 필리프 엄마한테나 훨씬 좋았을 텐데.” ..  (61, 96, 157쪽)


  누구한테나 ‘푸름이’, 그러니까 ‘청소년’이던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나는 내 푸름이 적 삶을 떠올려 봅니다. 아무래도 오늘날 푸름이라 한다면, 열네 살 중학교에 들 적부터 열아홉 고등학교 3학년을 마칠 때까지를 일컫는다 할 텐데, 중·고등학생으로 지내는 나(와 내 동무)를 가만히 돌아보면, 이무렵 여섯 해를 두고 둘레에서 ‘푸름이 대접’을 한 일은 거의 없었구나 싶어요. 둘레 어른들은 나와 내 동무들을 바라보며 ‘학생’이라고만 했어요. ‘푸름이’라든지 ‘청소년’이라고 가리키는 일은 거의 없었어요.


  버스를 타건 도서관에 들어가건 ‘학생 요금’을 받지 ‘청소년 요금’을 받지 않았어요. 버스나 전철에서 ‘청소년 요금’이 생긴 지 얼마 안 되었어요. 얼마 안 되기도 했지만, 중·고등학교를 안 다니는 청소년은 아직도 ‘어른’으로 쳐서 버스삯이나 기차삯을 받기도 해요. 중·고등학교를 안 다니면 푸름이 아닌 어른으로 친달까요. 그런데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학교나 집에서 푸름이로 대접받는지 아리송하곤 해요. 왜냐하면, 어린이는 어린 사람이요, 푸름이는 푸른 사람인데, 어린 사람이 어린 삶에 걸맞게 삶을 배우거나 보거나 즐기거나 누린다고는 느끼기 힘들며, 푸른 사람이 푸른 삶에 알맞게 삶을 익히거나 마주하거나 맞이하거나 펼친다고는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에요.


  버스를 타며 ‘청소년 요금’이든 ‘학생 요금’을 내야 푸름이 대접이 되지 않아요. 어린이는 어린 넋을 사랑하며 북돋울 수 있을 때에 어른들이 어린이 대접을 한다 말할 수 있고, 푸름이는 푸른 얼을 믿고 아낄 수 있을 때에 어른들이 푸름이 대접을 한다 말할 수 있어요.


.. 한니는 다시금 궁금해졌다. 필리프도 이렇게 그리워할 여자친구가 있을까?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 소식을 애타게 기다릴까 … 한니한테 있어 사랑은 뭔가 위대하고 진지하고 영원한 것이었다. 한니는 참된 사랑이란 엄마 아빠이ㅡ 사랑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 한니의 생각은 다시 필리프를 맴돌기 시작했다. 필리프한테 물어 보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지 몰랐다. 필리프는 어렸을 때 어땠을까? 학교에서는 어떤 과목을 가장 좋아했을까? 시를 써 본 적이 있을까? 누구를 닮고 싶어 했을까 … 한니는 필리프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눈치채고 자기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눈물방울이 건반 위에 떨어졌다 ..  (119, 130. 136, 145쪽)


  동물원에 갇힌 짐승이든, 여느 집에서 애완동물로 지내는 짐승이든, 모두 사랑을 받아야 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랑을 못 받으며 동물원에 갇힌 짐승은 모두 불쌍합니다. 사랑을 못 받는 애완동물이라면 ‘애완’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습니다. ‘애완’이든 ‘반려’이든, 또는 ‘한식구’이든, 이런저런 이름을 붙이자면 오직 하나 사랑으로 어깨동무할 수 있어야 해요.


  밥 한 그릇을 지을 적에 어버이는 밥알에 사랑을 담습니다. 사랑 담지 않은 밥그릇이라면 아이들은 맛나게 먹지 못합니다. 비싼 밥이나 놀라운 밥이나 멋진 밥이나 대단한 밥일 까닭은 없어요. 사랑 담은 밥이면 돼요. 옷 한 벌을 지어 입힐 적에도 어버이는 옷에 사랑을 담아요. 말 한 마디를 건네더라도 사랑을 담아요. 어느 몸짓이든 사랑을 담는 말입니다. 낯빛도 사랑 담은 낯빛이요, 몸가짐도 사랑이 샘솟는 몸가짐이에요.


  어버이가 들려주고 보여주며 나누는 사랑을 언제나 보고 자라며 어린 나날을 누린 고운 목숨은, 푸름이라 하는 자리에 접어들어 여러 해를 누리면서 저마다 가슴에 품을 사랑을 생각합니다. 저마다 가슴에 품을 사랑으로 어떤 꿈을 이루면서 삶을 빛낼 때에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푸름이란, 바야흐로 삶을 사랑으로 느끼고 이 사랑을 꿈으로 피울 길을 찾는 사람이라고 하겠어요. 푸름이로 누리는 삶이란, 사랑이 꽃을 피우는 한때라 하겠어요. 푸름이일 적에 사랑으로 꽃을 피우고, 이른바 어른이 되면서 사랑이 열매를 맺겠지요. 어른이 되어 사랑이 열매를 맺으면, 이 열매를 소담스레 무르익히면서 씩씩하고 튼튼한 씨앗을 남겨요. 이 씨앗은 새로운 터에서 다시금 사랑을 먹으면서 천천히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요.


.. 한니는 이렇게 생각했다. 다행이야, 마음은 감시할 수 없으니 … “아, 얘야.” 엄마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너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내가 얼마나 일찍 눈치챘는지 아니? 사랑은 완전히 가릴 수 없단다. 특히 너처럼 아주 젊은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은 온몸에서 행복을 발산하지.” ..  (181, 211쪽)


  “사람들은 전쟁 없이 지내는 법을 언제나 배울 수 있을까요(7쪽)” 하는 글월로 머리말을 여는 이야기책 《첫사랑》(양철북,2012)을 읽습니다. 《첫사랑》을 쓴 구드룬 파우제방 님은 1928년에 태어나 씩씩하게 살아갑니다. 밥그릇 숫자는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가장 푸른 꿈을 길어올리는 글을 써서 지구별 푸름이한테 맑디맑은 사랑이란 어디에서 피어나 어떻게 꽃이 되는가를 밝힙니다.


  책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1940년대이든 2010년대이든 아직 ‘전쟁 없이 지내는 길’을 배우지 않아요. 사람들은 예나 이제나 ‘전쟁을 곁에 둔 채 지내는 길’에 길들어요. 나라에 군대를 둬요. 경찰에 전투경찰에 사복경찰에 경호원에 경비업체에, 온갖 몽둥이와 총과 무기를 둬요. 사람들은 예나 이제나 ‘가장 크고 많은 돈과 품과 겨를’을 새로운 전쟁무기를 만드는 데에 바칠 뿐 아니라, 전쟁무기를 움직이는 데에 들여요. 가장 푸르고 가장 젊은 사내들은 전쟁터로 가거나 군대에서 살인무기를 손에 쥐며 사람 죽이는 재주를 배워요. 맑은 사랑으로 고운 꿈을 생각할 젊은 사내들이 전쟁무기(곧 살인무기)를 손에 쥔 채 ‘사랑할 이웃’이 아닌 ‘미워할 놈’이 누구인가부터 머리에 아로새겨요.


  할머니 구드룬 파우제방 님은 《첫사랑》이라는 이야기책으로 우리들한테 한 마디를 들려줍니다. ‘사람들은 사랑으로 지내는 길을 이제부터 배우면 좋겠어요.’ 하고.


.. 할머니가 말했다. “전쟁에선 많은 이들이 아프단다. 때때로 너무 아파서 죽기도 하지.” … “전쟁이 아무리 끔찍해도 우리 여자들한테는 기회야. 우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수 있거든. 여자들이 없으면 남자들은 전쟁을 할 수도 없어.” … 오빠는 훈제 생선이랑 염소젖과 양젖으로 만든 치즈를 엄마와 카린에게 소포로 보냈다. 두 집안 식구들은 먹을 게 조금이라도 더 생겨서 기뻐했다. 엄마가 소포를 끄를 때 할머니가 중얼거렸다. “그런데 프랑스랑 노르웨이 사람들은? 그 사람들도 먹을 게 충분할까?” ..  (39, 44, 58쪽)


  어버이는 아이를 사랑하는 길을 슬기롭게 배울 노릇이에요. 교사는 학생을 사랑하는 길을 착하게 배울 노릇이에요. 회사 대표는 회사 일꾼을 사랑하는 길을 예쁘게 배울 노릇이에요. 노동자는 돈만 버는 회사 아닌 삶을 사랑하는 길을 밝히는 일터를 찾아, 이녁 몸과 마음을 아름답게 빛낼 일을 생각하며 배울 노릇이에요. 흙일꾼은 돈이 될 곡식이나 열매 아닌 삶을 북돋우는 사랑스러운 곡식이나 열매를 거둘 가장 예쁘고 가장 기름지며 가장 살기 좋은 마을을 돌보며 배울 노릇이에요. 푸른 넋을 맑게 꽃피우도록 이끄는 한 가지는 다만 사랑이니까요. 푸른 넋이 젊은 넋이 되는 길에서도 그예 사랑으로 빛날 테니까요. 어버이가 아이를 낳을 때에는 사랑이 빛날 때일 테니까요.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을 맞아들여 무언가를 가르칠 때에는 바로 사랑을 주고받으며 마음을 북돋아야 교육이 이루어질 테니까요.


.. 알프레드는 어느새 가까운 도시를 가로지르는 전방에 소년병으로 나갔다. 알프레드랑 같은 분대 소년들은 겨우 일주일 동안 전쟁터에 나갈 준비를 한 다음 광신적인 친위대 장교에게 넘겨졌다. 그는 전선 경험이 전혀 없는 소년들을 적군의 총구 앞에 총알받이로 내세웠다 ..  (242쪽)


  그나저나, 푸른책 《첫사랑》 이야기는 온통 전쟁으로 얼룩집니다. 할머니 말을 귓결로 흘린 나이든 사내나 젊은 사내 모두 전쟁터에서 이슬처럼 사라집니다. 바보스러운 우두머리가 홀린 말에 휘둘리던 사내들도 전쟁터에서 이슬처럼 사라지고, 바보스러운 우두머리를 똑같은 전쟁무기로 맞서려고 나선 사내들도 전쟁터에서 이슬처럼 사라집니다.


  돌이켜보면, 서로 전쟁무기를 갖추었으니 전쟁이 이루어져요. 두 쪽 모두 전쟁무기를 가득 쟁였으니 전쟁을 할밖에 없어요. 어느 한쪽이 전쟁무기를 갖추면 전쟁무기 없는 다른 한쪽은 식민지가 된다고들 말하더군요. 그런데, 참말 이렇게 될까요? 전쟁무기 없는 다른 한쪽은 식민지가 될까요. 외려, 전쟁무기 많은 한쪽이야말로 스스로 식민지 노릇을 하면서 삶을 잃거나 잊지 않을까요. 전쟁무기 많은 미국에 평화가 감도는가요? 전쟁무기 키우는 일본이나 중국에 사랑이 감도는가요? 전쟁무기 늘리려 하는 한국이나 대만에 평등과 통일이 감도는가요?


  푸른책 《첫사랑》은 소설이지만 꼭 소설이지는 않습니다. 이 푸른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참말 있던 이야기요, 독일과 프랑스뿐 아니라 지구별 곳곳에서 널리 있던 이야기예요. 포로가 된 프랑스 젊은이는 독일 시골에서 ‘흙일꾼’ 구실을 해요. 마땅한 노릇인데, 독일 시골에는 전쟁무기 아닌 낫이랑 쇠스랑이랑 삽이 있거든요. 프랑스 젊은이이든 알제리 젊은이이든 ‘국경’에 서야 한다면 총을 쥐어야 할 테고 슬픈 눈빛으로 군인 구실을 하겠지요. 독일 젊은이이든 일본 젊은이이든 시골에서 흙이랑 마주한다면 총이나 칼을 쥘 까닭 없이 낫이랑 쇠스랑이랑 삽을 손에 쥐고는 숲을 보살피고 숲 품에 안기며 푸른 숨결을 마시며 살아갈 테지요.


  전쟁 없이 살아가는 길을 배워야 할 푸름이는, 과학문명 없이 살아가는 길을 배워야 하는구나 싶습니다. 전쟁무기 없이 살아가는 길을 배워야 할 푸름이는, 도시문명 없이 살아가는 길을 배워야 하는구나 싶습니다.


  경제성장률이나 주식시세표를 소리높이 외치는 중앙정부요 대한민국 서울입니다만, 태풍 하나 찾아든다고 벌벌 떨면서 온통 어수선합니다. 태풍 하나 찾아들어 길디긴 송전탑 전깃줄 하나 끊으면 서울이고 부산이고 온통 깜깜나라가 돼요. 전기가 끊어진 도시사람은 냉장고도 승강기도 전철도 지하상가도 백화점도 할인마트도 어찌하지 못해요. 모두 쓰레기가 되고 모두 바보가 돼요. 풀포기 하나 나지 않으니, 도시에서는 몽땅 굶어서 죽어야 해요. 이런 도시에서 태어나 대입수험 공부만 하도록 등떠밀리는 푸름이는 어떻게 해야 삶을 밝힐 만할까요. 푸름이들 생일선물로 으리으리한 무언가 손에 쥐어 준대서 푸름이들이 삶을 빛낼 만할까요.


  서울 한복판에서, 또는 부산이나 대구나 인천 한복판에서, 전기와 물과 가스가 모두 끊어진 채 사흘쯤 보내야 하는 나날을 푸름이들 스스로 생각할 수 있기를 빌어요. 푸름이들 스스로 사랑을 가슴에 품으면서 열넷·열다섯·열여섯·열일곱·열여덟·열아홉, 해맑으며 싱그러운 이야기를 환하게 빛낼 수 있기를 빌어요. 태풍이 몰아치면 건물이 무너져 쓰레기가 될 테지요. 태풍이 몰아친 바람이 나무가 꺾이거나 뽑히기도 하는데, 무너진 건물은 그예 쓰레기이지만, 꺾이거나 뽑힌 나무는 ‘태풍이 오기 앞서 뿌린 씨앗’이 땅에서 천천히 싹을 틔워 새로운 나무로 자라요. 꺾이거나 뽑힌 나무는 스스로 거름이 되거나 땔감이 되거나 멧새랑 멧짐승한테 보금자리가 돼요. 푸른 넋은 푸른 사랑을 먹을 때에 푸른 빛으로 춤을 춰요. (4345.8.3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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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사람과 사는 지혜 - 루이제 린저의 38가지 이야기
루이제 린저 지음, 곽복록 옮김 / 지식공작소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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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하는 삶과 살아가는 생각
 [사랑하는 배움책 7] 루이제 린저, 《낮은 목소리》(덕성문화사,1992)

 


- 책이름 : 낮은 목소리
- 글 : 루이제 린저
- 옮긴이 : 윤시원
- 펴낸곳 : 덕성문화사 (1992.1.10.)
- 2001년에 《내가 아닌 사람과 사는 지혜》(지식공작소)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옴

 


  동이 트는 새벽에 먼 하늘가를 바라본 적 있는 사람은 날마다 얼마나 기쁘며 좋은 선물인가를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저녁에 해가 기울 적에도 붉게 타는 노을이요, 새벽에 해가 뜰 적에도 붉게 타는 노을이에요. 지는 노을도 아름답고, 뜨는 노을도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도시에서는 저녁에 지는 노을이든 새벽에 뜨는 노을이든 마주하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도시에는 높은 건물이 너무 많은 나머지 하늘가를 바라볼 틈이 없어요. 새벽 일찍 일어나 회사나 학교로 가는 사람들은 버스나 지하철 같은 데에서 꾸벅꾸벅 조느라 높은 건물 틈바구니에서 벗어났다 하더라도 하늘을 곱게 껴안지 못합니다. 도시를 크게 감도는 먼지구름 때문에 새벽노을이나 저녁노을을 못 보기도 하겠지요.


.. 부정한다고 해서 새로운 운명이 얻어지는 것도 아니며, 그럴수록 부과된 운명은 점점 더 무겁게 느껴질 뿐입니다 … 누구든지 용기를 내고자 하면 용기는 생기는 법입니다 … 자신을 잘 처리해 나갈 수 있다면, 견디지 못할 생활 상태란 없을 것입니다 … 그 행위자를 영원히 미워하여 당신에 대한 행위자의 개선의 기회를 박탈한다면 그것은 가혹하고도 또한 똑같이 비인간적인 처사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행동의 나쁜 점을 지적해 주고 비판해 주고 그들이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실제적인 기회를 주는 것이 참다운 용서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13, 17, 28, 50쪽)


  천천히 파란 빛깔로 물드는 하늘을 누립니다. 하늘빛이 드러나면서 하늘을 채우는 구름이 얼마나 어떻게 있는가를 깨닫습니다. 티 한 점 없다 싶도록 구름이 안 보이는 날이 있고, 온통 하얗디하얗게 빛을 입힌 날이 있어요.


  들판에서는 벼가 익습니다. 이삭을 패고 여무는 벼는 천천히 고개를 숙입니다. 아직 여물지 않은 벼는 볏잎처럼 푸른 빛깔 알곡만 꽃대에 달린 채 뻣뻣합니다. 알곡이 여물수록 차츰 무게를 더하고, 알곡 무게가 더할수록 꽃대는 천천히 휘겠지요. 들판은 모를 심은 날에 따라 알곡이 여무는 차례가 다릅니다. 모를 심은 차례대로 알곡이 익을 테고, 알곡이 익는 차례에 따라 벼를 베겠지요.


  마을 이장님이 새벽방송으로 ‘경관 사업’을 이야기합니다. 시골 면사무소에서는 ‘경관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가을걷이 마친 논에 유채씨 뿌리기’를 시킵니다. 벼를 모두 벤 빈 논이 늦봄까지 텅 빈 채 있으면 ‘보기 안 좋다’ 해서 유채씨를 뿌리도록 시켜요. 유채씨를 뿌리면 늦겨울부터 천천히 푸른싹이 돋고 이른봄에는 꽃대가 올라 유채꽃이 노랗게 피어나요. 늦봄에 써레질을 하고 모를 심기까지 ‘시골 들판을 지나가는 바깥사람’들 눈에 ‘보기 좋으’라고 유채씨를 뿌리도록 한다고, 이러한 ‘경관 사업’을 알뜰히 해 주어야 마을이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빈 들판을 바라보기보다는 노란 꽃누리를 바라볼 때에 한결 좋을 수 있겠지요. 도시로 떠난 딸아들이 자가용 몰고 시골집으로 찾아올 적에는 이 유채밭을 바라보며 ‘아이 예쁘네’ 하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보기 좋은 모습(경관)’이란 왜 유채밭이어야 할까 궁금해요. 자동차나 군내버스나 경운기 지나다니는 큰길 가장자리를 따라 전라남도 시골마을에 어울리도록 유자나무나 석류나무를 심을 수 있을 텐데요. 매화나무를 심고 모과나무를 심을 수 있을 텐데요. 길을 따라 죽 심으면 좋아요. 마을로 접어드는 길에도 온갖 나무를 심을 수 있어요. 밤나무도 심고 참나무도 심으며 소나무와 잣나무를 심을 수 있어요. 능금나무나 복숭아나무를 심을 만해요. 이렇게 심은 나무들이 가득한 시골길이라면, 열 해가 지나고 스무 해가 지나면서 한결 사랑스럽고 시원스러운 길이 되리라 생각해요. 길마다, 마을마다, 열매나무 흐드러진다면, 시골을 떠난 딸아들도 시골로 돌아오도록 이끌 만할 수 있으리라 느껴요. 마을사람뿐 아니라 길손 누구라도 열매를 몇씩 따서 먹을 수 있겠지요. 어느 한 집에서 몽땅 털듯 가져가도록 하지는 말고, 누구나 즐겁게 누리도록 하면 되겠지요.


.. 과거란 엄연히 존재하는 것으로, 그것은 결코 소멸되지 않는 재산입니다. 그러므로 벗어버린 당신의 생을 올바른 관점에서 뒤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신이 아닙니다. 전쟁은 우리가 하며 우리 이웃을 미워하는 것도 우리입니다 … 사람이 완전히 겸허한 가운데 스스로 작고 충실하고 초라한 하느님의 심부름꾼 이외에는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때에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는지를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 사람들은 완전히 자기 자신일 때에만 행복합니다 ..  (36, 37, 58, 81쪽)


  새벽빛이 온 마을을 비춥니다. 하늘가만 붉게 적시던 빛깔은 시나브로 마을로 스밉니다. 불그스름한 빛은 이내 파르스름하게 바뀝니다. 파르스름한 빛은 곧 하얗게 바뀝니다. 그러다가는 노오랗게 바뀌고, 이제 또렷한 무지개빛이 돼요. 햇빛이 무지개빛으로 온 들판을 어루만질 때에 아침이 됩니다.


  우리 집 꽃밭이자 조그마한 텃밭에서 자라나는 부추풀은 모두들 하얀 꽃송이를 환하게 터뜨립니다. 아직 몽우리로 맺힌 부추풀도 제법 많으니, 앞으로 이레쯤 뒤에는 몽우리도 꽃봉오리로 터질 수 있고, 보름이나 한 달 즈음 부추꽃을 날마다 바라보며 꽃놀이를 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하얀 부추꽃에는 온갖 나비가 찾아듭니다. 내가 이름을 아는 나비도 찾아들고, 내가 이름을 모르는 나비도 찾아듭니다. 짝을 지어 찾아들기도 하고, 홀로 찾아들기도 합니다. 나비 따라 잠자리도 우리 집 마당이나 꽃밭으로 찾아들며 노닐기도 하는데, 잠자리는 곧잘 거미줄에 걸립니다. 거미줄에 걸렸다가 풀려난 잠자리가 있으나, 커다란 거미가 지은 커다란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는 그예 거미밥이 됩니다.


  풀숲에서는 여치나 방아깨비가 거미밥이 되곤 합니다. 여치나 방아깨비는 무엇을 먹이로 삼으며 지낼까요. 여치나 방아깨비한테 먹이가 되는 목숨은 어떤 목숨을 받아들이며 저희 목숨을 이을까요.


  하늘은 파랗고 들판은 푸릅니다. 내 마음은 어떤 빛깔일까 생각해 봅니다. 내 사랑은 어떤 무늬일까 헤아려 봅니다. 이 파란 기운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될는지, 이 푸른 숨결을 맞아들이는 사랑이 될는지, 곰곰이 짚어 봅니다.


.. 우리는 누구나 자기에 대한 사랑 없이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 꿈은 그것을 실현시키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 소멸됩니다 … 사랑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어느 때가 가장 행복할가요. 그것은 바로 사랑할 때입니다 … 상승하지 않는 자는 하강합니다. 위를 바라보지 않는 자는 자신을 위로 끌어올릴 만한 대상을 보지 못합니다 … 내가 그 돈을 그들에게 주기 전까지 금고는 텅 빈 채로였으나, 그들은 조바심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단지 그날의 일용할 양식만을 기원했고, 언제나 그것은 채워졌기 때문입니다 ..  (49, 63, 74, 82, 117, 135쪽)


  이른새벽에 누런쌀을 살살 씻어 불립니다. 이른아침에 쌀을 냄비에 담아 불을 올립니다. 자그마한 불로 천천히 끓는 밥은 솔솔 냄새를 피웁니다. 밥냄비를 올리면서 국냄비를 나란히 올립니다. 엊저녁 먹고 남은 된장국을 덥힙니다. 반찬 한 가지 새로 할 수 있고, 오이와 곤약을 송송 썹니다. 텃밭에서 돗나물을 뜯고, 다른 풀을 뜯습니다. 모시풀을 뜯기도 하고, 지칭개를 뜯기도 하며, 쑥을 뜯기도 하지만, 이름을 모르는 풀을 뜯기도 합니다. 잎사귀 하나 혀에 얹고 살살 씹으며 괜찮다 싶으면 어떠한 풀이든 다 뜯어서 나물비빔을 합니다.


  밥을 하는 마음은 내 숨을 북돋우는 마음입니다. 밥을 차리는 마음은 내 숨결을 살찌우는 마음입니다. 하루 더 살고 싶어서 밥을 하지 않습니다. 하루 더 사랑스레 즐기고 싶어서 밥을 합니다. 한 끼니 채우려고 밥을 하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 예쁘게 누리고 싶어서 밥을 차립니다.


.. 나무가 뿌리를 통해서 자라나는 것처럼 우리들을 자라게 하는 요소는 우리들의 무의식의 세계이며,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활력소이며 활력 저장소인 것입니다 … 진리란 어느 한 극단이 없으며, 이쪽도 저쪽도 다 옳은 길이면 진리인 것입니다 … 누구든 앞으로 배울 가능성이 있기 마련이며 … 생명이란 살아 숨쉬는 것입니다 … 한 영혼을 구하기 위해 다른 하나를 잃어버린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 타인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참된 양심에 따라서 진실만을 행동하는 경우뿐입니다 ..  (89, 107, 121, 128, 130쪽)


  루이제 린저 님이 쓴 글을 갈무리한 《낮은 목소리》(덕성문화사,1992)를 읽습니다. 1992년에 나온 《낮은 목소리》는 판이 끊어져 헌책방에서 찾아보는 책이 됩니다. 2001년에 《내가 아닌 사람과 사는 지혜》(곽복록 옮김,지식공작소)라는 이름으로 새 번역과 새 판이 나왔습니다. 이 책은 루이제 린저 님이 짤막하게 쓴 글을 갈무리하는데, ‘운명’이나 ‘인품’이나 ‘용서’나 ‘죽음’이나 ‘삶’이나 ‘돈’이나 ‘행복’이나 ‘사랑’처럼, 사람들 삶에서 흔히 돌아보거나 마주하거나 느낄 만한 대목을 곰곰이 생각을 기울여서 쓴 글입니다.


  이를테면 ‘사랑’이라는 대목에서 “인생이 다양하기에 우리는 각자의 개성으로 아름다워질 수 있습니다.” 하고 말하다가는 “한 인간에게 성실을 지키는 한 그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상대방을 완전무결한 인격체로 보는 것입니다.” 하면서 ‘사랑’을 새삼스레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 그런 규제된 생활은 힘들고 괴롭지만 그것은 그들 자신의 선택인 것입니다 … 만족하는 사람은 평화로운 사람입니다 … 우리가 가진 것에 대하여 격렬하고 완강하게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고통 당하여야만 합니다 … 꿈은 우리의 잘못을 보여주고 우리로 하여금 변화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 그들(아이들)은 말로써가 아닌 그 눈에 가득한 기쁨이나 선물에 대한 충분한 애착으로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  (141, 147, 152, 159, 173쪽)


  생각하는 대로 나한테 찾아오는 삶이라고 합니다. 내가 걱정을 마음에 품으면 걱정이 나한테 찾아온다고 해요. 내가 미움을 마음에 품으면 미움이 나한테 스며든다고 해요. 내가 웃음을 마음에 품으면 웃음이 나한테 찾아온다지요. 내가 수다를 마음에 품으면 수다가 나한테 찾아온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내 마음에 품는 한 가지를 자꾸자꾸 생각하거든요. 자꾸자꾸 생각하면서 내 삶을 이 생각에 맞추거든요. 내가 생각하는 한 가지를 바라봅니다. 내 둘레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 가운데 ‘내 마음에 품은 한 가지’가 보일 적에 쉬 알아채고 어느새 그리로 끌립니다.


  돈을 생각하던 사람은 돈 될 일이 있는 곳에 갑니다. 돈을 생각하던 사람은 돈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 귀를 쫑긋합니다. 꿈을 생각하던 사람은 누가 돈을 얘기하건 말건 듣지 않을 뿐더러, 느끼지 않습니다. 햇살을 생각하던 사람은 누가 자가용을 얘기하더라도 가슴이 움직이지 않아요. 떡갈나무를 생각하는 사람은 코앞에 미루나무 한 그루 있어도 못 알아보곤 합니다. 둥글레풀꽃을 찾는 사람은 코앞에 엉겅퀴꽃이 있어도 못 알아보기도 해요.


.. 당신은 당신의 그 아름다운 생의 비밀을 당신이 믿을 만한 사람에게 자랑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 비밀을 말함으로써 빛나던 광채가 사라졌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 인간이 설사 무인도에서 혼자 지낸다 해도 그는 신과 끊임없이 대화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 인간의 행복은 소유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가운데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자도 어리석습니다 … 천국에서는 결혼도 출산도 없으며 오로지 우정만이 존재합니다 … 내가 사랑하는 경우, 인류 전체의 모든 인간도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사랑을 체험하는 까닭에, 사랑이란 ‘진실로 존재한다’는 가정에는 어디에고 모순이 있을 수 없습니다 ..  (164, 190, 197, 208, 212쪽)


  생각하는 삶이란 살아가는 생각입니다. 살아가는 생각은 곧 생각하는 삶입니다. 삶을 생각하기에 살아가고, 죽음을 생각하기에 죽습니다. 내 어버이를 생각하기에 나 또한 어버이가 되고, 아이들을 생각하기에 나 또한 언제나 아이들 같은 넋으로 살아갑니다.


  전쟁을 생각하는 사람은 삶부터 전쟁과 같으며, 말이나 글 모두 전쟁처럼 내뱉아요. 평화를 생각하는 사람은 집안부터 평화를 이루며, 책을 읽든 빨래를 하든 평화롭게 즐겨요.


  오늘날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생각하도록 이끌까요. 오늘날 학교에서 교사 자리에 선 이들은 스스로 무엇을 생각하며 아이들을 가르치려 할까요. 오늘날 어버이는 아이들 앞에서 어떤 생각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는가요. 오늘날 어버이는 스스로 어떤 삶을 누리려는 생각일까요. (4345.8.2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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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
메리 몽간 지음, 정환욱.심정섭 옮김 / 샨티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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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 맑을 때에 아기도 맑다
 [사랑하는 배움책 6] 메리 몽간,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샨티,2012)

 


- 책이름 :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
- 글 : 메리 몽간
- 옮긴이 : 정환욱, 심정섭
- 펴낸곳 : 샨티 (2012.7.10.)
- 책값 : 2만 원

 


  한여름 새벽에 일어나 찬물로 몸을 씻으며 빨래 한 점을 합니다. 아침에 새삼스레 다시 몸을 씻고 나서 빨래 여러 점을 합니다. 이제 낮이 되어 아이들이 뛰놀고 땀에 젖은 옷을 벗기고 씻길 무렵, 또 빨래를 하겠지요. 낮에 여러 차례 아이들 씻기며 빨래를 하는 여름이요, 저녁에도 아이들을 또 씻기고 빨래하는 여름입니다.


  빨래거리를 그러모아 기계에 넣고는 한꺼번에 돌려도 된다 하지만, 여름날 자주 몸을 씻거나 씻기는 틈틈이 손으로 빨래를 합니다. 몸을 씻으며 흐르는 물로 빨래감을 적시고, 씻은 몸을 말리면서 빨래를 합니다. 따사로운 햇살은 빨래를 보송보송 말려 줍니다.


  네 식구 살림을 꾸리며 하는 빨래는 하루 내내 이어집니다.


.. 당신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생각해 보세요. 또 아기가 자라면서 여러 변화들이 생길 텐데 그때 당신의 느낌이 어떨지 생각해 보세요 … 왜 우리는 정상적인 출산을 부인하고 있고, 출산 교실에서는 왜 출산을 어쩔 수 없는 위험한 의료 작업으로 묘사하는 것일까? … 왜 여성들이 이런 경험을 해야 하는가? 왜 완벽한 출산을 할 수 있도록 창조된 여성의 몸이 진통을 시작하기도 전에 통제되어야 하는가 … 출산이 고통스럽다는 믿음이 너무 강한 나머지 사람들은 그 믿음이 맞는지 어떤지 생각도 해 보지 않은 채 고통을 합리화하고 출산이 고통스러운 이유를 스스로 설명하기도 하며 거기에 고상한 목적을 갖다 붙이기도 한다 ..  (31, 65, 81, 83쪽)


  햇살 뜨거운 여름에는 빨래가 잘 마릅니다. 햇살 포근한 봄가을에도 빨래는 잘 마릅니다. 햇살 따사롭지만 겨울에는 빨래가 잘 안 마릅니다. 그러나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빨래를 합니다. 기저귀를 빨래하고 여느 옷가지를 빨래합니다. 날씨에 따라 빨래 마르기가 달라지지만, 철에 따라 빨래는 다 다른 기운을 햇살과 바람한테서 받아먹습니다. 햇살을 먹으며 마르고, 바람을 먹으며 마릅니다.


  볕이 좋은 날은 이불을 마당에 넙니다. 이불은 좋은 볕을 듬뿍 쬐며 좋은 기운으로 한결 보송보송합니다. 좋은 볕을 머금은 이불을 덮으며 좋은 날씨를 떠올립니다. 장마철을 맞이해 이불을 말리지 못하고, 또 이불을 빨지 못하며 눅눅한 기운을 느껴야 할 때에는 햇살조각을 그립니다. 날은 춥지 않더라도 해가 들지 않는 날에는 살림살이가 얼마나 고단한가 하고 깨닫습니다.


  햇빛이 좋을 때에는 햇볕도 햇살도 좋아, 아이들과 들길이나 멧길을 걷기에 좋습니다. 내 몸은 좋은 빛살을 누리고, 내가 걷는 길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도 좋은 빛살을 누립니다. 저마다 좋은 기운을 뿜으면서 좋은 삶터를 이룹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어버이인 나부터 스스로 가장 즐겁게 누리는 삶을 아이들하고 함께 누리고 싶습니다. 어버이인 나한테 가장 즐겁게 찾아드는 삶을 아이들한테 찬찬히 보여주면서 나누고 싶습니다. 곧, 어버이와 아이로서 다 함께 햇살을 누리고 싶습니다. 어버이와 아이는 다 같이 바람과 풀과 나무를 누리고 싶습니다. 고운 바람을 누리고, 고운 꿈을 빚으며, 고운 사랑을 열고 싶습니다.


.. 아기를 처음 본 날, 아기가 이 세상에 ‘잡아당겨져’ 나오면서 겪었을 경험을 생각하니 치가 떨렸다. 기분이 몹시 우울해졌고 한편으로는 분하기도 했다 … 약물을 쓰지 않고 내 아기를 안전하게 출산하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나는 그(의사)에게 거듭 설명했다 … 의사가 있든 없든 아기는 정확히 자기가 나오고 싶을 때 나오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 진통의 단계 구분은 의료진을 위해 개발된 평가의 척도일 뿐이다. 산모에게 진통은 하나의 연속 과정이고 산모가 깊이 이완할 때 출산은 시작된다 … 산모들은 두려움이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깨닫도록 도움을 받기보다는 약물을 사용하자거나 의료 개입을 받으라고 먼저 권유받는다. 두려움의 실체를 알기보다는 두려움을 없애는 방법부터 선택하도록 내몰리는 것이다 ..  (46∼47, 70∼71, 88∼89쪽)


  두 아이와 살아가는 나날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새벽녘 빗소리를 들으며 네 식구 살림을 돌아봅니다. 옆지기와 빚는 삶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비구름 걷히고 맑은 햇살 따사로이 내리쬐는 빛무늬를 느끼며 시골살이를 돌아봅니다.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저희 삶길을 살피거나 찾으리라 느낍니다. 아이들이 시골살이를 어떻게 여길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나중에 다른 터로 옮기든 그대로 함께 살든 오늘 이곳에서 지내는 나날을 몸과 마음에 새기리라 느낍니다.


  나는 예나 이제나 하루 앞을 걱정하거나 근심하며 보낸 적이 없습니다. 주머니에 맞돈이 하나도 없어 우체국에서 30만 원을 빌고는 ‘도둑맞아 사라진 사진기’ 하나를 헌것으로 13만 원 치르고 장만해서 사진을 찍고 살던 때에도, 은행계좌에 남은 돈이 10만 원이 채 안 되던 때에도, 하루 앞을 걱정하거나 근심하지 않았습니다. 돈은 빌릴 수 있고 갚을 수 있습니다. 스무 해쯤 지나야 갚을는지 모르고, 백 해쯤 지나야 갚을는지 모르지요. 어찌 되든 돈은 얼마든지 빌리거나 갚아요. 다만, 내 마음이나 삶은 오늘을 오늘대로 누리지 못하면 덧없이 지나갑니다. 팍팍한 살림이라 하더라도 오늘은 오늘대로 누려야 비로소 새 하루가 찾아오고, 새 하루도 이날대로 누려야 다시금 새 하루가 찾아와요.


  내 어버이 집을 떠나 서울에서 혼자 살 적에는 다달이 찾아오는 집삯 내는 날이 참 빨랐다고 느낍니다. 서울에서는 혼자 살며 방을 얻을 적이든, 어디를 돌아다닐 때이든, 사람을 만날 때이든, 으레 돈이 들어요. 서울은 전철역조차 걸상이 몇 군데 없습니다. 버스 타는 데에 걸상이 널따랗게 있지 않아요. 사람이 걷는 길은 너무 좁을 뿐 아니라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서기 일쑤요, 전봇대와 꽃밭이 ‘걷는 길을 막’습니다. 제대로 마음을 가다듬지 못한다면, 사람다운 나날을 스스로 깨닫거나 아끼기는 힘든 터가 서울이로구나 하고 느꼈어요. 언제나 돈으로 굴러가는 얼거리이다 보니, 나 스스로 홀가분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집삯이라든지 밥값이라든지, 자꾸 돈에 마음이 쓰이곤 했어요.


  그러나, 이런 서울에서도 돈보다 사람한테 마음을 쓰는 이는 틀림없이 있으리라 믿어요. 빠듯한 살림살이 걱정보다 즐거울 하루 삶에 찬찬히 마음을 기울이는 이는 어김없이 있으리라 믿어요. 모든 사람이 온통 돈에 마음을 빼앗겼다면 그예 불구덩이 같은 서울이요 한국이겠지요.


  서울을 떠나 시골에서 지내고, 고향 인천으로 돌아가서 몇 해를 살며, 다시 시골로 옮겨 지내다가, 이제 아이들 낳고 한결 깊은 시골마을로 옮겨 살아갑니다. 지나온 나날을 하나하나 짚습니다. 도시에서 살던 나날이 끔찍했거나 힘들었다고만 느끼지 않습니다. 다만, 도시하고 시골은 무엇보다 한 가지가 크게 달라요. 내가 보고, 내가 느끼며, 내가 맡고, 내가 마시는 모든 숨결이 크게 달라요.


  나는 푸른 들판과 숲을 보고 싶지, 끝없는 건물과 아파트를 보고 싶지 않아요. 나는 풀 돋는 흙길을 걷고 싶지, 아스팔트나 시멘트로만 덮인 길을 걷고 싶지 않아요. 풀숲에 드러누우면 풀내음을 맡으며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어 즐거워요. 하늘빛이 파랗구나 하고 느끼고 싶어요. 파란 하늘을 하얗게 물들이는 구름을 느끼고 싶어요. 도시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나 스스로한테 하늘을 말하고 구름을 말하며 별을 말했어요. 비가 모질게 퍼부으면 이 빗물이 도시를 다 휩쓸면 어떠할까 하고 생각했어요. 도시에 있는 모든 것이 모조리 빗물에 휩쓸려 사라지면 도시에도 차츰 푸른 싹이 트며 풀밭이나 꽃밭이나 나무숲으로 거듭날까 하고 생각했어요.


.. 여성은 양육자인 동시에 치유자였다 … 자연스럽게 아기를 낳는 동안 여성들은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접받았다. 이러한 태도는 수천 년간 계속되었다 … 출산에서 필요한 것은 출산을 빨리, 급박하게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하고 이완된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부드러운 격려와 출산을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 중요하며 …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말과 생각을 할 필요가 있고, 원치 않는 환경을 불러들이는 부정적이고 불필요한 말이나 행동은 삼가는 것이 좋다 … 서로를 격려해 주는 것만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말하고 생각하고 사는 것이 산모가 긍정적인 출산 경험을 하도록 돕는 것이다 ..  (74∼75, 92, 105, 108쪽)


  메리 몽간 님이 빚은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샨티,2012)을 읽습니다. ‘평화롭게 아기 낳기’를 밝히는 이야기책입니다. 메리 몽간 님은 당신 아이를 ‘조금도 평화롭지 않게’ 낳았다고 해요. 그러니까, 메리 몽간 님은 ‘아주 끔찍하고 매우 아프게 아이를 낳았’답니다. 당신 몸은 가장 슬프고 아픈 생채기를 치러야 했다고 해요. 당신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새로운 아이를 낳을 무렵, 당신 아이한테 ‘평화롭게 아기 낳기’를 이끌어 보았고, 이렇게 이끌며 아기를 낳을 때에 당신 아이와 ‘당신 아이가 낳은 아기’ 모두 평화롭게 이 땅에서 어우러질 수 있었다고 해요.


  간추려서 말하자면, 메리 몽간 님은 몸으로는 슬픔을 겪었습니다. 마음으로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몸에 아로새겨진 생채기를 마음으로 품은 사랑으로 달래면서 쓴 책이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이로구나 싶습니다. 당신은 평화로운 아기 낳기를 할 수 없었으나, 당신 아이를 비롯해 당신 아이 또래 젊은이, 또 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새로 짝꿍을 맺으며 낳을 아이들을 헤아리며 쓴 책이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이라 할 만해요.


  몸으로 배우고 마음으로 익혔기에 책을 쓸 수 있었달까요. 몸으로 배우고 마음으로 익혔으니 기쁘게 글을 쓰고 ‘아기 낳는 참 예쁜 길’ 하나를 깨달아 밝힌다고 할까요.


..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부모가 할 일은 자신들이 아기를 정말 원했으며 환영하고 있다는 것을 배 속의 아기에게 말해 주는 것이다 … 아기가 배 속에 있는 9개월은 아기뿐만 아니라 엄마 아빠도 부모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성장해 가는 기간이다 … 아기들은 자신이 선택한 장소에서 안전하게 나온다 … 산모의 자연스러운 몸의 파동이 아기를 산도로 부드럽게 내려 보낸다 … 누에고치에 있는 나비를 억지로 빼내겠는가? 자연 출산 과정에는 아기와 산모에 대한 존경과 신뢰가 꼭 필요하다 ..  (118, 156, 172쪽)


  가시버시를 맺어 주는 혼례식장에서 가시버시 두 사람한테 ‘평화로운 마음’이 들도록 이끄는 일은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혼례식장은 가시버시 두 사람이 느긋하며 아늑하게 사랑다짐을 하도록 이끌지 않아요. 시간에 맞추어 착착착 형식을 밟습니다. 틀을 세워 틀에 맞추도록 합니다.


  가시버시가 되는 두 사람은 초등학교이든 중학교이든 고등학교이든 ‘사랑을 배우는’ 일이 없습니다. 어느 학교에서도 사랑을 들려주지 않아요. 사랑을 가르치는 교과목이 없기에 사랑을 못 들려주지 않아요. 오늘날 제도권학교는 사랑하고는 동떨어져요. 오늘날 문명사회 제도권학교는 학력자격증을 떼어 주는 기관입니다. 가시버시가 서로를 사랑하는 길을 밝히지 않을 뿐 아니라, 가시버시가 사랑으로 맺은 아이를 사랑으로 보듬는 길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가시버시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뜻을 들려주지 않으며, 가시버시가 사랑으로 빚은 아이가 사랑스레 무럭무럭 자라는 꿈을 이야기하지 않아요.


.. 농약을 많이 쓰거나 방부제 처리된 야채나 과일은 피할 수 있는 지식도 갖추어야 한다 … 산모와 남편이 산모 자신과 아기를 위해 지극히 자연스럽고 평화로우며 만족스러운 출산에 대한 그림을 분명하게 그리고 있다면, 자신의 출산의 다른 사람에 의해 통제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 몇 시간에 걸쳐 아기를 인위적으로 밀어내느라 녹초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역으로 오직 산도가 준비되었을 때에만 아기가 아래로 내려오게 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 아기가 태어난 뒤 다른 사람 손에 아기를 맡기는 걸 아예 막거나 최소화해야 한다. 아기는 자신에게 익숙한 체취나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느끼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 친구나 친지 등 손님은 엄마가 해야 할 집안일을 도와주려는 목적으로 방문하는 사람만 허용한다. 방문해서 식사를 가져다주고, 세탁기를 대신해서 돌려주고, 시장을 봐주고, 집을 청소해 주는 등 손님이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  (206, 223, 297, 317, 326쪽)


  어버이가 맑은 숨을 마실 때에 아이가 맑은 숨을 마십니다. 어버이가 고운 풀벌레 노랫소리를 누릴 때에 아이가 고운 풀벌레 노랫소리를 누립니다.


  어버이가 돈벌이 회사에 얽매일 때에 아이는 시험점수 학교에 얽매이면서 제 어버이와 똑같은 길로 나아갑니다. 어버이가 밥과 옷과 집이 이루어지는 삶을 슬기롭게 살피지 않을 때에, 아이도 밥과 옷과 집이 이루어지는 삶을 스스로 슬기롭게 살피지 않아요.


  ‘아기 낳기’는 점 하나입니다. 점 하나를 찍는 앞뒤 흐름, 곧 삶을 헤아리면서 아기를 맞이하고 아기를 사랑할 노릇입니다. 그런데, 점 하나를 찍는 ‘아기 낳기’는 하늘에서 똑 하고 떨어지지 않아요. 가시버시가 살아가는 나날이 고이 흐르면서 아기도 낳고 무럭무럭 자라며, 어느새 아이들 키는 제 어버이보다 커집니다.


  냇물은 물방울 하나가 아니에요. 물방울이 모여 냇물이 이루어지지 않아요. 냇물에서 물방울 하나를 떼어낼 수 있지만, 이 물방울 하나는 여럿으로 더 나눌 수 있으며, 물방울 하나로도 또다른 냇물이 되어 흐르곤 합니다.


  햇살이 비춥니다. 햇살은 조각과 조각이 모여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햇살 가운데 조각 하나만 떼어내지 못합니다. 풀벌레가 노래합니다. 풀벌레 노랫소리 가운데 조각 하나를 떼어내 듣지 못합니다. 사랑은 사랑일 뿐이요, 삶은 삶입니다. 가시버시 몸속에서 자라는 씨앗부터 사랑하면서 아기가 태어나고, 아기는 스스로 튼튼한 나무 한 그루 되어 살아갑니다.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에서 말하는 ‘평화롭게 아기 낳기’를 살피면, 아기를 낳는 때에만 평화로울 수 없다는 줄거리입니다. 여느 내 삶이 평화로울 때에 아기를 낳을 때에도 평화를 생각하면서 아기를 평화로 맞이합니다. 언제나 사랑을 생각하는 사람은 아기를 사랑으로 맞아들여 사랑으로 낳아 사랑으로 돌봅니다.


  무엇을 걱정할까요. 이 아기가 벙어리로 태어날까 걱정하나요. 이 아기가 앞으로 학교에서 1등을 못할까 걱정하나요. 이 아기가 앞으로 대학교에 못 갈까 걱정하나요.


.. 출산은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좋습니다 … 사랑의 하나님이 부부가 사랑으로 아기를 갖게 하고는 이런 고문 같은 심한 고통 속에서 아기를 낳도록 하셨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 출산은 과학이 아니다. 해부학도 아니다. 또한 의사나 조산사, 간호사의 일도 아니며, 누군가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출산은 부모와 아기의 것이다 ..  (32, 43, 59쪽)


  아기는 사랑으로 낳으면 됩니다. 아기는 사랑으로 돌보면 됩니다. 아기는 사랑으로 먹이고 입히며 재우면 됩니다.


  어버이는 스스로 제 삶을 사랑으로 보살피면 됩니다. 어버이는 스스로 제 하루를 사랑스레 누리면 됩니다. 어버이는 스스로 제 일과 놀이를 가장 빛나는 사랑이 되도록 가꾸면 됩니다.


  걱정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여느 때에도 걱정투성이요, 아기를 낳을 때에도 걱정덩어리입니다. 근심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나 근심꾸러미요, 아기를 낳을 적에도 근심나라입니다.


  가르칠 수 없고 배울 수 없습니다. 살아갈 뿐입니다. 걱정도 사랑도 누가 따로 가르치거나 누구한테서 배우지 않습니다. 스스로 생각해서 맞아들일 뿐입니다. 사랑으로 맺은 두 사람이 아기를 낳을 적에 참말 사랑이 될 수 있지만, 걱정이 되기도 할 테지요. 어버이 두 사람이 참다이 사랑이 아닌 근심이나 걱정이라면, 어버이 두 사람이 착하게 사랑이 아닌 다른 물질이나 욕망에 사로잡힌다면,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을 읽더라도 아기를 평화롭게 낳지 못합니다. 책 한 권 읽는대서 아기를 평화롭게 맞이하지 못해요. 삶이 평화로울 때에 아기도 평화롭게 낳지, 삶은 평화롭게 다스리지 않으면서 아기만 평화롭게 낳지 않아요. (4345.8.1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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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8-20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이 책을 읽지 못한 저를 위해 써 주신 리뷰 같아요.
두어번 반복해서 읽습니다.
비슷한 다큐를 본적이 있어요
큰 아이를 낳을 때 기체조를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걸 배웠지요
내가 아프다지만 밖으로 나오는 아이는 낯선 세상에 더 두렵고 더 아프고 더 고통스럽다고,
그래서 아이 낳는 순간에도 아이 숨을 편히 쉬게 해주려고 복식호흡에 힘썼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입을 벌리지 않았죠
입을 벌리면 복식호흡이 안되니까요.
아기와 건강하게 만나길 바라는 요즘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숲노래 2012-08-20 06:57   좋아요 0 | URL
잘 아실 테지만, 아기를 낳는 일은 '아이와 살아가는 긴 흐름' 가운데 하루예요. 이 하루를 걱정할 일이 없어요. 이 하루를 기쁘게 맞이하면서, 기나긴 나날을 어떻게 즐거이 살아갈까를 생각하시기를 빌어요~ 좋은 기운 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