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름센터 시작합니다
쇼도 가오루 지음, 박재현 옮김, 야마다 우타코 그림 / 가치창조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즐거이 살아가며 즐거이 읽기
 [어린이책 읽는 삶 11] 쇼도 가오루, 《심부름센터 시작합니다》(가치창조,2000)



- 책이름 : 심부름센터 시작합니다
- 글 : 쇼도 가오루
- 그림 : 야마다 우타코
- 옮긴이 : 박재현
- 펴낸곳 : 가치창조 (2010.4.20.)
- 책값 : 8500원


 가을이 깊어지면서 나뭇잎이 하나둘 집니다. 찬바람이 싱싱 불면서 들판과 밭자락에서 끝없이 자라려 하던 들풀이 수그러듭니다. 앙상한 나무는 잎을 모두 떨군 채 겨울나기를 할 테고, 들풀이 수그러든 들판과 밭자락은 이들 들풀이 거름이 되고 이불이 되면서 겨울살이를 하겠지요.

 날이 쌀쌀하니 소매 긴 옷을 챙겨 입습니다. 찬바람에 따라 긴옷입니다. 그런데, 여느 도시에서는 한여름에도 긴옷을 입곤 합니다. 시골에서 도시로 볼일을 보러 마실을 해야 할 때에도 긴옷을 챙겨야 합니다. 버스이든 기차이든 전철이든 온통 에어컨을 펑펑 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와글와글 북적이는 전철이나 버스에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다면 숨통이 막힐 테지요. 그렇지만 언제부터 왜 자동차에 에어컨을 달아야 했을까 궁금합니다. 창문을 열어 바람을 쐴 수 없는 노릇인가요. 지난날에는 기차도 창문을 열어 바람을 쐬었어요. 전철도 땅밑을 오가지 않고 땅위를 달릴 때에는 창문을 열어 바람을 맞아들였어요.

 가만히 돌이키면, 자동차가 부쩍 늘어나면서 에어컨을 써야 합니다. 자동차가 부쩍 느는 바람에 버스를 타며 창문을 열면 매캐한 바람이 잔뜩 몰려들어 재채기가 나옵니다. 자동차를 모는 사람 또한 창문을 열기보다는 에어컨을 틀곤 합니다. 내 자동차를 비롯해 숱한 자동차가 내뿜는 매캐한 배기가스를 들이마시고 싶지 않으니까요.

 여름날 면사무소를 찾아간다든지, 은행에 들른다든지, 우체국에 가 본다든지, 무슨무슨 기관에 발을 디딘다든지 하면, 바깥하고는 너무 다른 차가운 바람 때문에 오슬오슬 떨곤 합니다. 그예 철을 잊습니다. 고스란히 날을 잊습니다.

 바깥 볼일을 마치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시골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합니다. 철을 잊은 터에서 일하는 사람한테는 어떤 철이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날을 잊는 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날을 누릴까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따순 바람과 함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살아갈 목숨을 텐데, 사람은 따순 햇살과 함께 차가운 물을 마시며 살아갈 목숨일 텐데, 철도 날도 잊는다면 무엇을 아는 목숨으로 살아낼 만한지 모르겠습니다.


.. 이름 있는 고전적인 자동차는 아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좋아했던 부품을 모아서 만든,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자동차다 … “너, 조수가 되어 일해 줄래?” “너라고 말하지 말아요. 나는 ‘미카’예요. 이름으로 제대로 불러 주세요.” …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광택, 녹슴, 곰팡이 예방’이라고 쓰여 있었어. 성분은 밀랍, 밍크오일, 부처꽃, 괭이밥의 이파리, 푸조나무의 껍질, 물잠자리의 날개 ..  (5, 32, 57쪽)


 즐거이 살아가는 사람은 즐거이 나누는 사랑입니다. 바삐 살아가는 사람은 바쁜 나머지 잊거나 잃는 사랑입니다. 즐거이 살아가는 사람은 즐거이 읽는 책입니다. 허둥지둥 살아가는 사람은 허둥지둥 앎조각을 쌓거나 자격증을 거머쥐려고 읽는 책입니다. 즐거이 살아가는 사람은 고마이 먹는 밥입니다. 돈벌이에 매여 살아가는 사람은 돈벌이할 틈을 쪼개느라 밥맛을 하나하나 차분히 느낄 틈이 없습니다.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자면 서로 즐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갈 사람은 바쁠 수 없습니다.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고 싶기에 꿈 한 자락 즐거이 나눕니다. 서로 사랑할 틈이 없기에 그만 매몰차거나 딱딱한 몸짓과 말투가 되고 말아요.

 아이들이 반드시 대학교에 가야 한다면 아이들 모두 대학교에 갈 수 있도록 대학교 문이 열려야 합니다. 아이들이 굳이 대학교에 가야 하지 않는다면 대학교 문턱은 높아도 됩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이 나라는 아이들이 굳이 대학교에 가야 하지 않아요. 대학교 문턱이 너무 높거든요. 입시지옥 굴레가 너무 모질고, 대학교 배움값이 지나치게 비싸요. 이런 나라에서는 대학교는 부질없어요.

 사람은 누구나 문턱이 낮은 곳으로 가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낌없이 마음을 여는 이웃이랑 사귀고, 허물없이 마음을 열어젖힌 동무랑 사랑을 나눌 노릇이에요. 문턱 높은 이웃하고는 사귀지 못해요. 허물 많이 뒤집어쓰려는 동무랑 사랑을 나누지 못해요.


.. 꿈을 꾸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꿈이 샘물처럼 솟아오른다고 해요. 먹어도 먹어도 또 좋은 꿈이 쌓인대요 … “엄마는 늘 바쁘니까 귀찮게 굴면 안 돼라고 말해요. 나도 할 수 있는 심부름이 있는데도요.” ..  (22, 33쪽)


 곡식은 좋은 밥입니다. 열매는 좋은 살입니다. 풀잎은 좋은 물입니다. 스스로를 기꺼이 내주어요.

 익은 벼는 스스럼없이 고개를 숙이면서 온몸을 밥으로 내줍니다. 무르익은 열매는 가지가 휘어지도록 열리면서 온몸을 맛난 살로 내줍니다. 갓 돋은 풀잎은 싱그러운 빛을 뿌리면서 고운 내음 번지는 푸른 물을 내줍니다.

 사랑이면서 삶이에요. 삶이면서 사랑이에요. 흙은 누구한테나 밥을 내줍니다. 햇살은 누구한테나 밥을 먹입니다. 물은 누구한테나 밥을 베풉니다. 바람은 누구한테나 밥을 차려 줍니다.

 이야기책 《심부름센터 시작합니다》(가치창조,2000)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할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자동차 하나를 온사랑으로 보듬는 젊은이는 마을 이웃을 따사로이 사랑하는 길을 걸으면서 살림을 꾸립니다. 돈을 더 많이 벌려고 바둥거리지 않아요. 혼자 돈을 거머쥐려고 버둥거리지 않아요. 젊은이 삶을 아끼려고 애씁니다. 젊은이 나날을 사랑하려고 힘씁니다.


.. 장난감 가게에 들어가서 나는 아이코, 하고 생각했다. 주위에는 유모차를 밀고 있는 엄마나 아이들의 손을 잡은 아빠로 가득했다. 여자 아이는 장난감도 보지 않고, 그런 가족들의 모습을 부러운 듯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갈까?” “네.” … 나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나를 지켜봐 준 이가 있었다니! ..  (29, 69쪽)


 다만, 젊은이는 모든 사랑을 빈틈없이 갖추지 않습니다. 젊은이 한 사람이 온갖 사랑을 빠짐없이 건사하지 않아요. 아직 틈이 많아요. 아직 많이 모자라요. 그래, 그러니까 젊은이입니다. 비고 모자란 틈이 많기에 젊은이입니다. 천천히 배우고 천천히 깨달으며 천천히 사랑하기에 젊은이예요.

 새롭게 배우기에 젊은이입니다. 고맙게 맞아들이기에 젊은이입니다. 해맑게 어깨동무하기에 젊은이예요.

 아직 젊은 한 사람은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 같은 슬기가 있을 턱이 없습니다. 아직 젊은 두 사람은 쉰 해 예순 해 일흔 해를 살아온 할매나 할매처럼 깜냥을 갈고닦을 턱이 없습니다. 스무 살 젊은이는 스무 살 젊은이답게 여러 가지를 합니다. 스물두 살 젊은이는 스물두 삶 젊은이답게 여러 사람을 만납니다.

 여러 일을 하고 여러 사람을 마주하면서 제 얼굴과 눈길과 마음을 가다듬는 젊은이예요. 젊은이는 “심부름집을 꾸리”면서 사랑을 배웁니다. 심부름집 일을 하면서 사랑을 느낍니다.


.. “태어나는 많은 것들에게는 봄바람과 빛이 필요하거든.” … “나는 젊은 시절에는 늘 정신없이 바쁘게 지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고 이 세상에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에 와서, 오히려 시간이 넉넉한 것처럼 생각이 드네요.” ..  (70, 84쪽)


 쇼도 가오루 님 글과 야마다 우타코 님 그림이 보드랍게 어우러진 이야기책 《심부름센터 시작합니다》는 아주 대단한 삶을 담지 않습니다. 아마 이 책 비슷한 이야기는 어렵지 않이 다른 데에서도 찾아 읽거나 들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꽤 되리라 생각해요.

 이야기책 《심부름센터 시작합니다》는 젊은 한 사람이 젊은 한 사람대로 스스로 제 삶을 사랑한 줄거리를 보여줍니다. 이 마을 이 사람은 이 마을 이 사람대로 제 이야기를 들려주고, 저 마을 저 사람은 저 마을 저 사람대로 당신 이야기를 들려줘요. 다 다른 사람들은 다 다른 사랑을 길어올립니다. 다 다른 이웃들은 다 다른 사랑을 오순도순 나눕니다. 다 다른 사랑은 다 다른 삶터에서 다 다른 무지개옷을 입으며 가만히 흙에 뿌리내려 새잎을 냅니다. (4344.10.1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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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oferry 2011-10-19 0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둘러보아요. 된장님의 서재에서는 긴장이 되요. 쉽게 쓰던 말들도 조심하게 되고......얼마나 많은 우리 말을 잊어가는 중인지 깨닫게 되기도 하고요, 다정한 말투지만 그 안에 단단한 확신과 진정성을 담기위해 꾹꾹 눌러쓴 된장님의 비평을 읽고 있노라면 왠지 재능없고 노력을 게을리 하는 작가이거나, 무지한 독장의 입장이 되어 얼굴이 화끈거리고요. >~<::
동시에 된장님의 생활방식이나 사고방식들이 제 삶에 건강한 자극을 줍니다.:-)

숲노래 2011-10-23 05:11   좋아요 0 | URL
즐거이 살아가며 즐거이 읽고
즐거이 나눌 수 있으면 돼요~ ^^
 
떠들썩한 마을의 아이들 동화는 내 친구 72
아스트리드 린드 그렌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논장 / 199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들한테 무슨 놀거리를 베푸는가요
 [어린이책 읽는 삶 5]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불러비의 아이들》(국민서관,1981)


- 책이름 : 불러비의 아이들
- 글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 옮긴이 : 이반
- 펴낸곳 : 국민서관 (1991.2.20.)
- 2000년에 ‘논장’에서 《떠들썩한 마을의 아이들》로 다시 나옴


 (1) 어린이삶을 생각한다


 집을 떠나 바깥마실을 다니다가 셈틀방에 들어갈 때가 있습니다. 나는 늘 ‘담배 안 태우는 자리’에 앉지만, 이곳에 앉아도 담배 내음을 맡아야 합니다. 내가 또닥거리는 자판에도 담배 기운이 서립니다.

 집을 떠나 바깥마실을 다니다가 여관에서 잠을 얻어 잘 때가 있습니다. 나와 내 살붙이는 담배를 태우지 않지만, 어느 여관에 들어가더라도 담배 기운이 자욱합니다. 한겨울이건 한여름이건 맨 먼저 창문을 활짝 열고 한참 담배 내음을 빼냅니다.

 담배를 태우는 사람 눈높이로 바라보자면 ‘담배를 마음껏 태울 자리’가 줄어듭니다. 그러나, 담배를 안 태우는 사람 눈높이에서 살피자면, 담배를 태우지 못하도록 하는 자리가 늘어난다지만, 어디에나 담배 내음이 흐릅니다.

 자동차를 모는 사람 눈높이로 생각하자면 ‘자동차가 들어서지 못할 곳’이라든지 ‘자전거가 달리거나 사람이 걷는 길’이 늘어난다 여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가용 아닌 자전거와 두 다리로 움직이는 사람 눈높이에서 돌아보자면 좁은 골목에서도 무시무시하게 내달리는 자동차가 너무 많을 뿐 아니라, 사람이 걸어다닐 길에까지 자동차가 떡 하니 올라서서 버티기 일쑤입니다.


.. 나는 ‘리자’라고 하는 소녀입니다. 물론 여러분들도 나를 그렇게 부를 수 있어요. 나는 일곱 살인데, 금방 여덟 살이 될 거여요. 엄마는 곧잘 이렇게 말하곤 해요. “너는 이제 그만큼 컸으니, 청소하는 것쯤은 도울 수 있지 않니?” 그렇지만 라스와 핍은 이렇게 말해요. “우리는 어린애들까지 인디언놀이에 끼워 주고 싶지 않아. 너는 아직 너무 어리단 말야!” … 엄마는, 어린 여자아이들이 창고에서 잠잔다는 일을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했어요. 하지만, 내가 남자들이 재미있게 지낼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면 여자아이들도 그래야 되지 않느냐고 말하니까, 승낙해 주었읍니다 ..  (10, 57∼58쪽)


 옆지기 어버이와 동생은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서 살아갑니다. 옆지기랑 두 아이와 함께 경기도 일산으로 찾아가는 길은 퍽 고단합니다. 먼저 서울로 들어서야 하고, 서울에서 지하철로 갈아타서 일산으로 접어들어야 합니다. 이동안 매캐한 배기가스와 담배 내음에다가 시끄러운 소리로 골이 띵합니다. 북적이는 사람들은 핏기 없는 얼굴로 바삐 오가느라, 아이들을 건사하며 사람숲을 헤치기란 좀 고달픈 일이 아닙니다. 이 많은 이웃들이 서로를 따사로운 사랑으로 마주하지 못하니, 서울에서든 일산에서든, 아이들하고 즐거이 마실하기는 참 힘겹습니다.

 우리 식구가 시골에서 살아가니까 이렇게 느낀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든 도시에서 살아가든 늘 매한가지입니다. 어디에서 살아가느냐도 틀림없이 돌아볼 노릇인데, 이에 앞서, 사람들이 바라는 길이 거의 한쪽으로 쏠립니다. 돈벌이와 이름얻기와 힘겨루기, 이 한 갈래 길로만 쏠리고야 맙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나 학원에 넣으면서, 정작 이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며 어떻게 살아가기를 바라는가를 깨닫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대학교에 넣으려 하면서 막상 아이들이 대학교 졸업장으로 어떤 슬기를 깨우치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를 꿈꾸는가를 곱씹지 않아요.


.. 할아버지는 앞을 잘 보지도 못하면서, 창가에 베고니아 화분을 놓고 참 잘 돌봐 주고 있답니다. 할아버지는 그 꽃들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곤 했읍니다. 또, 벽 위에는 아름다운 그림들도 걸어 놓았는데, 그 중에서도 나는 특히 두 그림을 좋아해요 … 햇빛 속에 앉으면, 할아버지는 갑자기 ‘좋군, 좋은데!’라고 되풀이하여 중얼거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왜 ‘좋군, 좋은데’라고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것은 할아버지의 젊었을 적 나날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래요. 그때는 보나마나 아주 옛날이었을 겁니다 … “할아버지는 정말 안되셨어요. 눈등을 보실 수 없잖아요. 그 대신 노래를 불러 드릴까요?” 안나가 말했어요. 그녀는 할아버지가 우리의 노래 소리를 듣기 좋아하므로, 그렇게 물은 것입니다 ..  (46∼47, 88쪽)


 아이들은 일을 하지 못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일을 시키지 않습니다. 아니, 어른들부터 일을 하지 못합니다. 어른들은 돈을 벌 뿐, 일을 하지 않습니다. 어른들은 이름값을 높일 뿐, 일을 즐기지 않습니다. 어른들은 힘겨루기에 얽매일 뿐, 어깨동무를 하는 아름다운 일을 사랑하지 않아요.

 내 손으로 밥을 얻어야지요. 내 손으로 옷을 지어야지요. 내 손으로 집을 살펴야지요.

 밥도 옷도 집도 내 손으로 건사할 수 없다면, 어른인 내가 하는 일이란 무엇이 되나요. 밥도 옷도 집도 온통 돈으로만 마련해서 쓰고 버리는 흐름에 젖어든다면, 내 아이는 어른인 나한테서 무엇을 배우거나 물려받을까요.

 아이들은 일을 못할 뿐 아니라 놀이도 못합니다. 아이들은 일하지 못하는 아이들이면서 놀지 못하는 아이들입니다.

 슬프지만 안타깝지만 아프지만, 어쩔 수 없어요. 어른들부터 놀지 못하는걸요. 어른들부터 일하지 않는데다가 놀지 않는걸요.

 놀지 못하는 어른들이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지 못하지요. 신나게 놀고 즐거이 노는 길을 사랑하지 못하는 어른들이니, 이 어른들이 아이를 낳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든, 아이들이 홀가분하게 뛰노는 기쁨을 누리도록 돕지 못해요.


..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도 너무 피곤했기 때문에 썰매에서 소리치는 일은 하지 않았읍니다. 나는 등을 대고 누워서 하늘에 있는 찬 별들을 쳐다보았읍니다. 별은 너무 많고 너무나도 멀리 있었읍니다. 그때, 나는 모피깔개 밑으로 기어 들어가서 라스와 핍이 듣지 못하도록 조용히 나 자신을 위해 노래를 불렀읍니다 ..  (107쪽)


 아이들한테 무상급식을 해 본들 부질없어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먹을 낮밥이든 저녁밥이든 도시락이든 바깥밥이든, 사랑이 깃든 밥이어야 해요. 급식을 거저로 해 준다거나, 도시락을 누가 싸 준대서 아이들이 맛나게 먹지 않아요. 급식이든 도시락이든 사랑이 담겨야 몸을 살찌우는 밥이에요.

 아이들한테 훌륭한 교과서나 교재나 책을 안긴다 해서 아이들이 똑똑해지지 않아요. 교육과정이 빈틈없다고 해서 아이들이 빈틈없이 자랄까요. 원어민 영어강사가 가르친대서 아이들이 영어를 잘 배우나요.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을 나와야 비로소 교사 구실을 하는가요.

 아이들은 놀아야 해요. 아이들은 놀면서 일해야 해요. 아이들은 일해야 해요. 아이들은 일하면서 놀아야 해요.

 그러니까, 아이들은 살아숨쉬는 목숨이어야 해요. 아이들은 펄떡펄떡 뛰는 가슴으로 사랑을 나누는 빛줄기여야 해요. 아이들은 제 어버이한테서 가장 슬기로운 꿈을 물려받으면서 한껏 빛나는 씨앗을 마음밭에 심으면서 하루하루 보람차게 누려야 해요.


 (2) 어린이문학을 생각한다


 2000년에 ‘논장’출판사에서 《떠들썩한 마을의 아이들》로 다시 나온 어린이책 《불러비의 아이들》(국민서관,1981)을 읽었습니다. 1981년 책이든 2000년 책이든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 문학입니다. 옛 번역이든 새 번역이든 아름다운 이야기 감도는 사랑스러운 책이에요.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1981년 책을 뜻밖에 만났습니다. 이윽고 2000년에 새롭게 옷을 입은 책을 만났습니다. 두 가지 책을 나란히 놓고 곰곰이 살피다가, 2000년 책은 책시렁에 예쁘게 꽂고, 1981년 책에 밑줄을 그으면서 읽기로 합니다. 나한테는 1981년 번역이 더욱 애틋하면서 살갑기 때문입니다.


.. 나는 내가 무엇이 될지 잘 모르겠지만, 작고 귀여운 아이들을 좋아하니까 아마 엄마가 될 것 같아요 ..  (14쪽)


 《불러비의 아이들》에 나오는 어린 가시내가 “작고 귀여운 아이들을 좋아하니까” 나중에 어머니가 되리라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눈시울이 촉촉히 젖습니다. 아, 그렇다면, 아이들을, 작고 귀여운 아이들을, 예쁘며 작고 귀여운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내라면 먼 뒷날 아버지가 되리라 생각하겠지요.

 요즈음 아이들을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요즈음 열두어 살 어린이와 열예닐곱 살 푸름이를 헤아려 봅니다. 스물두어 살 젊은이를 헤아려 봅니다.

 오늘날 어린이와 푸름이와 젊은이 가운데 ‘나는 어머니가 되겠어요’라든지 ‘나는 아버지가 되겠어요’ 하고 꿈꾸는 고운 넋은 얼마나 되려나요.

 운동선수나 연예인이나 학자나 의사가 되겠다는 어린이나 푸름이나 젊은이가 아니라, 어머니나 아버지가 되겠다는 어린이나 푸름이나 젊은이는 몇이나 되려나요.


.. 우리 정원 뒤에는 호도나무·노가주나무들과 또, 많은 종류의 관목들이 빽빽한 과수원이 있읍니다. 나무가 정말 너무 많기 때문에, 아빠는 그것을 모두 베어낸 다음 소 목장이나 더 늘려야겠다고 말하곤 합니다. 나는 아빠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거기에는 숨을 장소가 많거든요 … 나는 다른 곳에서 크리스마스가 언제부터 시작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불러비에서는 우리가 생강과자를 굽는 날에 시작이 됩니다. 우리는 그날을 크리스마스 이브만큼이나 재미있어 합니다 ..  (74, 90쪽)


 나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 어린이문학이 좋습니다. 나는 이원수 님 어린이문학 또한 좋습니다.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갈 길을 차근차근 밝히면서, 수수하고 투박한 길을 느긋하게 걸어가는 이야기를 담는 린드그렌 할머님 문학과 이원수 할아버님 문학을 사랑합니다.

 돋보이는 문장력이나 구사력이나 수사력이나 표현력이 얼마나 담겨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공상이니 환상이니 판타지이니 무어니 하는 실마리를 얼마나 실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모든 어린이문학은 사랑에서 비롯해야 한다고 느껴요. 내 사랑스러운 사람들하고 내 사랑스러운 보금자리를 일구는 내 사랑스러운 나날을 아끼는 이야기를 담아야 비로소 어린이문학이라는 이름이 걸맞다고 느껴요. 그리고, 이러한 어린이문학이 밑거름이 되어 어른문학도 태어나겠지요.

 사랑이 없다면 어린이문학이든 어른문학이든 아닐 뿐 아니라, 문학조차 될 수 없으며, 이야기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어요.


.. “생각해 보셔요. 할아버지, 할아버지도 옛날에는 이 뽑기를 무서워했던 어린애였었잖아요?” … “그렇지만, 너도 알다시피 아이들에게 고함을 치며 무섭게 하는 어른도 있어. 그러면, 아이들은 부모 말을 전혀 듣지 않게 되고,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난폭해지게 돼. 신문에 난 기사야.” 안나가 말했읍니다. “이렇게 귀여운 아기에게 어떤 사람이 고함치고 싶어 할까?”..  (125쪽)


 나는 우리 집 두 아이가 예쁜 어머니와 멋진 아버지가 될 수 있기를 비손합니다. 나는 우리 집 두 아이가 예쁜 어머니가 되는 길과 멋진 아버지가 되는 길을 걷자면 스스로 무엇을 익히거나 받아들이거나 살펴야 하는가를 느낄 수 있기를 꿈꿉니다.

 아이들 가슴에서 싹이 돋아 자라날 고운 꿈과 빛을 기다립니다. 아이들 마음에서 움이 트며 꽃이 필 아리따운 이야기와 넋을 바라봅니다.

 어머니가 될 아이들은 담배 내음을 어떻게 마주할까요. 아버지가 될 아이들은 자가용을 어떻게 맞이할까요. (4344.10.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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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10-09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얘기를 빌어 어린이 문학에 대한 된장님의 생각을 엿보게 하는 글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린드그렌의 저 책은 중고책으로라도 사서 보려고 지금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에 동의하면서도 저는 종종 어떻게 하는 것이 아이들을 진정 사랑하는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숲노래 2011-10-10 07:06   좋아요 0 | URL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어머니가 아이하고 함께 지내며 따사로이 돌보는 마음이 바로 어린이 사랑이 아닌가 싶어요..

마녀고양이 2011-10-10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아이가 시골 놀러가서
메뚜기를 잡고 신나하는 모습에, 트럭 뒷칸에서 방방 뛰고, 천염 염색을 열심히 하던 모습에, 참 기뻤어요............. 아주 건강해보였답니다.

숲노래 2011-10-10 17:53   좋아요 0 | URL
앞으로도 이번 일처럼 딸아이랑
좋은 흙 밟는
좋은 나들이
마음껏 즐기셔요.

그리고, 아저씨도 잠을 깨워
함께 움직인다면
더 좋을 테고요 ^^;;;;;;;;;
 
신데렐라는 재투성이다 - 발도르프 선생님이 들려주는 진짜 독일 동화 이야기 2
이양호 지음 / 글숲산책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엉뚱한 번역과 바보스런 문화가 빚은 ‘신데렐라’
 [책읽기 삶읽기 80] 이양호, 《신데렐라는 재투성이다》(글숲산책,2009)



 사진책 《다카페 일기》(북스코프)를 보면, 사진을 찍은 사람과 이이 옆지기와 이이하고 함께 사는 개 이름은 ‘일본말’로 적지만, 이이 두 아이 이름은 ‘한국말’로 옮겨서 적습니다. 참으로 뚱딴지 같다 할 노릇이지만, 2010년대에도 이러한 일이 벌어집니다. 《다카페 일기》를 쓴 일본사람은 당신 아이한테 일본말로 ‘바다’와 ‘하늘’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는데, 이를 한국말로 옮겨서 적으면 어찌 되나요. 거꾸로, 한국사람 이름인 ‘최바다’와 ‘최하늘’을 일본책에서 일본말로 옮겨서 적으면 얼마나 엉뚱하게 되고 말까요.

 북중미 토박이 이름을 일컬을 때에 ‘레드 크라우드’처럼 적는 일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이때에는 북중미 토박이들이 쓰는 ‘북중미 토박이 이름’을 써야 합니다. 이 소리값이 남지 않았다면, 영어를 쓰는 미국사람이 붙인 ‘레드 크라우드’가 아닌 한국말로 옮긴 ‘붉은 구름’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어린이나 어른이나 두루 잘 아는 ‘삐삐’라는 말괄량이가 있습니다. 어린이책과 영화에 나온 ‘삐삐’는 요즈음 번역에서는 ‘삐삐 롱스타킹’이라는 이름으로 적습니다. 그러나, 이 이름 또한 올바르지 않습니다. 삐삐는 미국사람이나 영국사람이 아닌 스웨덴사람이니까요. 삐삐 이름은 ‘스웨덴말’로 적어야지 ‘영어’로 적어서는 안 됩니다. 스웨덴말로 어떻게 적는지를 잘 모른다면, 영어 ‘롱스타킹’이 아닌 한국말 ‘긴양말’로 적어야 마땅합니다. 삐삐는 ‘삐삐 긴양말’입니다.

 이양호 님이 쓴 《신데렐라는 재투성이다》(글숲산책,2009)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신데렐라’는 영어를 쓰는 나라 사람들이 새로 지어서 붙인 이름입니다. 정작 독일에서 ‘옛날 작은 이야기’를 갈무리하며 내놓은 책에는 ‘신데렐라’라는 이름이 없다고 합니다. 한국말로 옮긴다면 ‘재투성이’나 ‘부엌데기’가 될 독일 이름만 있다고 합니다. 곧, 한국에서 이야기하는 ‘신데렐라’란 엉터리로 옮겨서 터무니없이 퍼진 잘못된 이름이요 책인 셈입니다.


.. 우리 발음 체계에서 나오는 ‘신데렐라’란 소리는 아름답고 가볍다. 여기에 쌍드리옹과 아센푸틀의 뜻인 재투성이, 부엌데기가 가지고 있는 슬픔과 무거움이 자리할 곳은 없다. ‘신데렐라’라고 소리를 내는 순간, 슬픔에 젖어 축 가라앉아 있는 인간은 사라져 버린다 ..  (11∼12쪽)


 가만히 생각하면, 이 나라에서는 ‘신데렐라’라는 이름을 비롯해서 ‘신데렐라 얼굴’까지 제대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땡볕에서 밭일을 하고 집안일을 도맡을 뿐 아니라 노예처럼 시달리고 들볶이던 찬밥덩어리 일꾼이 ‘재투성이’입니다. 그러면, 이 아이 재투성이는 어떤 낯빛일까요. 팔뚝과 손마디와 허벅지는 어떤 모습일까요. 하루 내내 고단하게 온갖 일을 떠안아야 하던 괴로운 아이는 살빛이 어떠할까요.

 다시금 돌이키면, 나 또한 어릴 적부터 ‘참다운 신데렐라 모습’을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예나 이제나 ‘신데렐라라는 이름은 거짓’이요 ‘재투성이라는 이름이 참’인 줄을 깨달아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이 이야기 속살이나 알맹이를 옳게 들려준 어른은 없었어요.


.. “발뒤꿈치를 조금 잘라내 버려라. 왕비가 되면 걸어다닐 일이 없을 테니까.” ..  (72쪽/재투성이 번역)


 나이를 제법 먹어 곧 마흔 줄에 접어듭니다. 두 아이는 무럭무럭 자랍니다. 이즈음 비로소 “신데렐라는 재투성이”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야기 번역보다 이야기 비평(또는 풀이)으로 이루어진 책이라 할 《신데렐라는 재투성이다》를 만나지 않았다면, 퍽 예전부터 잘못 퍼지고 엉뚱하게 알려진 이야기 한 자락에 그대로 휘둘렸으리라 봅니다.

 하기는, 이 나라에 잘못 알려지거나 엉뚱하게 퍼진 이야기는 한둘이 아닙니다. 신데렐라만 이와 같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옛이야기가 오늘날 한국에서 ‘뚱딴지 살’이 붙고 ‘바보스러운 손질’로 얼룩졌을는지요. 나라밖 문학을 제대로 옮기는 분이 몇이나 될는지 아리송합니다. 《신데렐라는 재투성이다》를 내놓은 이양호 님도 ‘재투성이’ 번역은 영 어설픕니다. 학문으로 파헤치거나 전문지식을 다루는 데에서는 훌륭하다 여길 수 있습니다만, 문학을 문학다이 맞이하면서 살가이 나누는 자리에서는 좀 젬병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번역하는 분들 발자취를 살피거나, 번역하는 분들을 소개하는 책날개 글을 읽어 보면, 무슨무슨 대학교를 나왔다거나 나라밖 어디로 배우러 다녀왔다는 이야기는 적힙니다. 그렇지만 막상 ‘한국말을 어디에서 누구한테서 배웠’으며 한국말을 얼마나 잘 할 줄 안다든지, 한국말을 옳고 바르게 쓰려고 어느 만큼 힘쓰는가 하는 이야기는 한 줄이나 한 마디로도 적히지 않습니다.

 굳이 안 적어도 될는지 모르지요. 한국사람이니 한국말을 못 하겠느냐 여길는지 모르지요.

 그러면, 한국사람 가운데 한국말을 옳고 바르게 깨달아 옳고 바르게 쓰는 사람은 참말 있기나 있나 알쏭달쏭합니다. 대학교 국문과 교수는 한국말을 옳고 바르게 쓰나요. 중·고등학교 국어 교사는 한국말을 참답고 알맞게 쓰나요.


.. 거죽도 그 대상의 한 부분이기에, 거죽을 핥은 사람이 느낀 맛을 깡그리 틀렸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제대로 맛본 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이 이야기의 겉만 만진 데는 여러 까닭이 있겠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깔끔하지 못한 번역과 옛이야기를 어린애만을 위한 것으로 여기는 데에 그 탓이 있는 듯하다 … ‘재투성이’ 이야기를 두고 일반 사람들은 동화라 하고 학자들은 민담이라고 한다. 이러한 문학 장르를 최초로 갈무리한 독일에선 메르헨이라 하는데, 그 뜻은 ‘작은 이야기’일 뿐이다. 거기엔 동화에 있는 아이 동童도 없고, 민담에 있는 백성 민民도 없다 ..  (13, 16쪽)


 어린이문학 평론을 하는 분들은 ‘메르헨’이라는 낱말을 붙잡고 늘어집니다. 그저 ‘작은 이야기’일 뿐인 ‘메르헨’이라지만, 아예 ‘메르헨 장르’까지 만들곤 합니다. ‘판타지’라는 낱말을 붙잡고 늘어지는 모습하고 비슷한 셈인데요, 이양호 님 말마따나 거죽핥기로 그치는 노릇입니다. 알맹이를 건드리지 않고, 속살을 다루지 않으며, 껍데기에 매달리는 모양새입니다.

 곰곰이 따지면, 재투성이 이야기가 신데렐라 이야기로 바뀐 까닭 가운데 하나는, 예부터 ‘한국 어린이 번역 문학’은 으레 ‘일본 다이제스트 판을 살짝 베낀 문학’에서 싹텄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한국땅 어른들은 한국땅 아이들이 한겨레 넋을 아끼며 살아가는 길을 좀처럼 열지 못한 탓이라고 느낍니다. 한국땅 어른들 스스로 한국땅 아이들이 한겨레 얼을 빛내며 자라는 길을 도무지 열지 않은 탓이라고 느껴요.

 삐삐 이야기를 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은 스웨덴사람이지만, 린드그렌 님 스웨덴문학을 스웨덴말을 익혀서 한국말로 옮기는 번역쟁이는 아주 드물거나 아예 없습니다. 으레 독일말로 옮겨진 책을 한국말로 옮깁니다. 네덜란드문학을 네덜란드말을 배워서 한국말로 옮기는 문화가 있을까요. 으레 독일말이나 영어로 옮겨진 네덜란드문학을 한국말로 옮기기만 합니다. 《안네의 일기》가 수없이 많은 판으로 떠돌지만, 시중에 나온 《안네의 일기》 가운데 네덜란드말로 된 책에서 한국말로 옮긴 판은 아예 없습니다.

 끝으로 덧말을 하나 붙이면, 《신데렐라는 재투성이다》라는 책은 편집을 하며 빈자리를 너무 많이 만들고 판을 아래로 길쭉하게 만드는 바람에 책값이 좀 뻥튀기가 되었습니다. 재투성이 독일말과 영어 자리는 글자를 작게 해도 되고, 한글 밑에 작게 붙여도 됩니다. 쪽수와 부피와 크기를 훨씬 줄여 값싼 책으로 엮을 수 있던 책입니다. (4344.9.20.불.ㅎㄲㅅㄱ)


― 신데렐라는 재투성이다 (이양호 글,글숲산책 옮김,2009.10.31./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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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9-23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몰라서 그러는 건데 영어명 신데렐라(Cinderella)는 원래 재투성이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썽드리용(Cendrillon)를 영어식으로 발음한것이 아닌가 싶군요.
그리고 그림형제는 재투성이를 의미하는 썽드리용(Cendrillon)를 신데렐라처럼 비슷한 발음으로 부르지 않고 재투성이란 의미의 독일어인 아쉔푸텔로 제목을 바꾸지 않았나 싶네요.
제가 위 책을 읽지 못해서 뭐 정확하게 그 내용을 파악하지는 못하겠지만 '우리 발음 체계에서 나오는 ‘신데렐라’란 소리는 아름답고 가볍다. 여기에 쌍드리옹과 아센푸틀의 뜻인 재투성이, 부엌데기가 가지고 있는 슬픔과 무거움이 자리할 곳은 없다. ‘신데렐라’라고 소리를 내는 순간, 슬픔에 젖어 축 가라앉아 있는 인간은 사라져 버린다'란 글은 작가의 오버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아마 작가는 신데렐라는 영어이름보다는 디즈니가 각색한 신데렐라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신데렐라가 밝고 아름답다고 착각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물론 디즈니에서 나오는 신데렐라는 원작의 썽드리용보다는 분명 더 밝고 명랑하지만요....

숲노래 2011-09-24 08:58   좋아요 0 | URL
글쓴이가 '좀 지나치게' 생각한 말이라 여길 수 있으나,
디즈니 만화가 꽤 옛날에 나왔을 뿐 아니라,
'신데렐라'라는 '명작동화'를 온누리에 퍼뜨린 곳은
바로 디즈니제국이 있는 미국이었고,
이 신데렐라를 일본을 거친 미국 문화로 받아들였으니,
한국사람들은 '신데렐라라 부르는 소리값과 여러 느낌'을
고스란히 떠안으면서 참뜻하고는 동떨어질 수밖에 없으리라 느껴요.
 
원숭이 동생 난 책읽기가 좋아
이토우 히로시 글 그림, 김난주 옮김 / 비룡소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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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밥과 마음그릇이 되는 책
 [어린이책 읽는 삶 8] 이토우 히로시, 《원숭이 동생》(비룡소,2003)



- 책이름 : 원숭이 동생
- 글·그림 : 이토우 히로시
- 옮긴이 : 김난주
- 펴낸곳 : 비룡소 (2003.9.4.)
- 책값 : 7500원


 이야기책 《원숭이 동생》(비룡소,2003) 간기를 보면, “캐릭터를 잘 살린 ‘원숭이’ 시리즈는 귀엽고 재치 있는 이야기로 재미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메시지까지 담고 있다” 같은 말이 적힙니다. 나는 《원숭이 동생》이라는 책을 즐겁게 읽고 싶었으나, 이 글줄 때문에 그만 돌부리에 걸려 픽 넘어집니다. 어린이책에 적바림한 글줄도 글줄이지만, 이 글줄로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가를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아이들 읽는 책에 적바림한 ‘캐릭터 잘 살린 시리즈’는 무슨 말이며 ‘철학적 메시지’는 무슨 말이 될까 궁금합니다. 무엇보다, 아이들 읽는 책인데 그림을 ‘사랑스러우면서 잘’ 그려야 합니다. 아니, 어른들 읽는 책일 때에도 그림을 ‘사랑스러우면서 잘’ 그려야 해요. 그림을 사랑스레 잘 그렸다는 이야기를 붙이는 일은 아주 덧없으면서 스스로를 깎아내립니다. 다음으로, 어떠한 이야기가 되더라도 ‘깊은 삶에서 비롯하는 깊은 넋’이 담깁니다. 생각이 담기지 않는 책은 없습니다. 어른책만 생각이 담기고 어린이책에는 생각이 안 담길 턱이 없습니다. 모든 책에는 다 달리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삶에서 샘솟는 넋이 고이 깃들어요. 이 생각들이 아름답다 여길 만한지, 그저 그렇다 느낄 만한지, 따스하다 여길 만한지, 차갑다 느낄 만한지는, 읽는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 내가 사는 섬은 아주 아주 조그맣지만 숲이 있어요 ..  (6∼7쪽)


 내가 읽을 내 책을 골라서 즐겁게 펼칠 때이든, 우리 집 아이가 읽을 책을 살펴서 내가 먼저 읽고 아이한테 나중에 읽힐 때이든, 언제나 곰곰이 헤아립니다. 나 스스로 좋은 마음그릇이 되어서 펼치면, 누구보다 나한테 좋은 마음밥이 되는 책입니다.

 거룩한 말씀을 그러모은 책을 읽어야만 내 말이 거룩해지지 않습니다. 훌륭하다는 소리를 듣는 책을 읽어야만 내 삶이 훌륭해지지 않습니다.

 나부터 내 삶을 거룩하게 돌보아야 비로소 거룩한 넋을 깨달아 거룩한 빛을 가슴으로 받아들입니다. 나 스스로 내 사랑을 훌륭히 돌볼 때에 바야흐로 훌륭한 얼을 느끼면서 훌륭한 꿈을 마음으로 아로새깁니다.

 나는 《원숭이 동생》이라는 책을, 다문 한 줄을 읽고서 장만합니다. “내가 사는 섬은 아주 아주 조그맣지만 숲이 있어요.”라 적바림한 한 줄을 읽고서, 이 한 줄이 따사롭다고 여겨 장만합니다.

 흔한 말이고, 가벼운 말입니다. 시골집에서 살아가며 아이한테 으레 하는 말이고, 시골집에서 살아가는 아이는 노상 느끼는 말입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시골에는 그리 크지 않지만 멧자락이 있고 나무가 있으며 숲이 있습니다. 넓지 않으나 밭뙈기가 있고, 갖은 풀벌레가 우리 집 둘레에 깃들며, 수많은 멧새가 끊임없이 우짖어요.


.. 나는 엄마의 배를 가만히 쳐다보았어요. 엄마가 나를 보고 말했어요. “너도 이 안에 있었단다.” ..  (52∼53쪽)


 마음을 담는 그릇을 떠올립니다. 내 마음을 나부터 어떤 그릇에 담는가 되새깁니다. 내 마음그릇에는 무엇이 담겼는지 곱씹습니다. 내 마음그릇은 내 고운 목숨을 살찌울 마음밥을 알뜰히 담을 만한지 가눕니다.

 나는 이런저런 손재주나 잔솜씨가 빼어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어릴 적부터 나는 썩 손재주가 없고 잔솜씨도 부리지 못했습니다. 아니, 손재주뿐 아니라 발재주도 없는데다가, 잔솜씨는커녕 큰솜씨도 없습니다. 참 용하게 목숨을 이었으며, 먹고사는데다가, 이럭저럭 짝꿍을 만나 이렁저렁 아이 둘을 낳아 함께 지냅니다.

 나한테 손재주가 있었으면 오늘처럼 이렇게 살아갔을까 궁금합니다. 내게 잔솜씨가 있다면 풀벌레와 멧새랑 살아가는 시골자락에서 이처럼 지냈을는지 궁금합니다.

 아마, 손재주로 이것저것 꾸미거나 붙이면서 이름값 드날리려고 억지를 부리지 않았을까요. 아무래도, 잔솜씨로 요것조것 만들거나 뽐내면서 돈벌이 꾀하려고 어거지를 피우지 않았을까요.

 나는 내 어머니가 열 달을 곱게 품어 주셔서 태어난 목숨입니다. 나는 내 아버지가 열아홉 해를 예쁘게 입히고 먹여 주었기에 살아난 목숨입니다. 나는 내 형이 틈틈이 도와주면서 살림을 꾸립니다. 나는 내 옆지기가 늘 바로잡아 주기에 삶을 사랑합니다. 나는 내 두 아이가 날마다 안아 달라 놀아 달라 먹여 달라 외치기에 웃음과 눈물이 마르지 않습니다.


.. 내가 잊어버린 어렸을 때의 일을 엄마는 전부 기억하고 있었어요. 엄마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린 내가 아장아장 돌아다니며 노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어요 ..  (70∼71쪽)


 어린이부터 읽는 어린이책은 어린이부터 쉬 알아듣거나 헤아릴 만한 삶·넋·말로 이루어집니다. 곧, 어린이책은 어린이책이면서 어린이책이 아닙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부터 읽는 책이기에 어린이책이 될 수 있지만, 어린이부터 읽을 수 있으니 어린이책이 되지 않습니다.

 어린이부터 먹을 수 있는 밥은 어린이부터 먹지만, 어른도 함께 먹습니다. 맵거나 짜게 지은 밥거리는 어른만 먹을 수 있습니다. 어린이가 먹도록 지으려는 밥거리라면 매워서는 안 되고 짜서도 안 됩니다. 간을 알맞게 해야 합니다. 곧, 간을 알맞게 하는 밥거리는 어린이부터 누구나 즐길 만한 법거리입니다. 그러니까, 삶·넋·말을 알맞게 다스리는 책은 어린이부터 누구나 읽을 만한 책입니다.

 이 나라 어른들이 ‘어린이처럼 천천히’ 《원숭이 동생》이라는 책을 읽고, 다시 넘기며, 가만히 아로새길 수 있으면 고맙겠습니다.

 덧붙여, 어린이책이면 어린이책에 걸맞게 번역에 더 마음을 기울이면 좋겠어요. “남쪽 나라의 섬에 살고 있지요(5쪽).” 같은 글은 “남쪽 나라 섬에서 살아요.”로 바로잡고, “뱀 동생이 태어나면 정말 굉장할 것 같아요(20쪽).” 같은 글은 “뱀 동생이 태어나면 참 대단하겠지요.”로 손질해 봅니다. (4344.9.1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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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9-18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표지그림이 넘 귀엽네요^^
 
장애도 못 말리는 명랑엄마의 행복선언 - 장애아 셋을 둔 한 엄마의 좌충우돌 육아 에세이
사사키 시호미 지음, 김은진 옮김 / 한울림스페셜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장애아이’라서 대단하지 않습니다
 [책읽기 삶읽기 76] 사사키 시호미, 《장애도 못 말리는 명랑엄마의 행복 선언》(한울림스페셜,2008)



 살구나무는 모두 살구나무입니다. 아직 꽃이 안 피는 어린나무여도 살구나무입니다. 우람하게 자라 흐드러지게 꽃이 피어도 살구나무입니다. 어디가 아파서 꽃을 도무지 피우지 못하더라도 살구나무입니다. 벼락을 맞아 줄기가 두 동강이 나더라도 살구나무예요. 가지를 잘라 장작으로 쓰려 하더라도 살구나무입니다. 베개나 방망이로 쓰려고 베어서 다룰 때에도 한결같이 살구나무입니다.

 잣나무도 언제나 잣나무입니다. 굴참나무도 늘 굴참나무입니다. 벚나무나 느티나무도 노상 벚나무나 느티나무요, 뽕나무나 배나무도 고스란히 뽕나무나 배나무예요.

 새 목숨을 받아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아이는 언제나 우리 아이입니다. 다른 아이들하고 견줄 까닭이 없습니다. 키를 견주거나 몸무게를 견주거나 얼굴을 견줄 까닭이 없습니다. 지능지수나 시험성적을 견줄 까닭 또한 없습니다. 책을 얼마나 읽었다든지, 나중에 돈을 얼마나 벌 만하다든지 하는 따위를 견줄 까닭이란 없어요. 오직 사랑스러운 아이라는 맑은 모습을 바라보면서 함께 살아갑니다.

 나한테 목숨을 베푼 내 어버이는 늘 우리 어버이입니다. 우리 어버이가 잘난 분이건 못난 분이건 따질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 어버이가 이름난 분이건 이름없는 분이건 따질 까닭 또한 없어요. 우리 어버이한테 돈이 많건 적건 조금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랑을 맺어 나를 아이로 맞아들인 삶을 돌아보면서 즐길 우리 어버이입니다.

 나는 내 아버지가 나하고 형이랑 차분히 말을 섞으면서 ‘집과 학교와 동네에서 어떻게 지내는가’ 하는 이야기를 한 번조차 나누지 않은 일을 서운했다고 여깁니다. 내 아버지한테 돈이 넉넉하지 않았다든지, 내 아버지가 일찍부터 자가용을 몰지 못했다든지, 내 아버지가 뒤늦게 대학원을 마쳤다든지, 내 아버지가 가난한 집안 맏아들이었다든지 하는 대목에서 서운하거나 안타깝거나 슬프거나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내 아버지가 집에서 더 느긋하게 지내지 못했다든지, 내 아버지가 대학교 졸업장에 너무 얽매인다든지, 내 아버지가 넓거나 커다란 집에 너무 이끌린다든지 하는 대목이 서운하거나 안타깝거나 슬프거나 괴롭습니다. 살림돈이야 어떠하든 예쁘게 살아가면 즐거워요. 이름값이야 어떠하든 착하게 살아가면 기뻐요. 남들 눈길이야 살피지 말고 우리 살림과 터전과 꿈을 고이 돌보면 웃음꽃이 피어요.


.. 1989년 12월 9일, 우연인지 필연이었는지 ‘장애인의 날’에 큰아들 요헤이가 태어났다. 고교 시절 어떤 강연회에서, “여러분들 가운데 분명 몇 명인가는 장애아의 어머니가 될 겁니다. 반에 한 명은 되겠지요.” 하는 말을 들었다. 학창시절의 기억이라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없는 나였지만, 왠지 이 대목만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데, 나만 그런가 했더니 다른 친구들도 지금껏 이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충격이었기 때문일까. “아, 장애아 엄마가 되느니 차라리 죽고 말 거야. 난 절대 못 키워. 엄마한테 키워 달랠 거야!” 강연회가 있던 날 하교하는 버스 안에서, 친구 중 하나가 그렇게 말했다. 그때 친구들 중 누구도 그 말에 토를 달지 않았던 걸 보면 모두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난 혼자서 키울 거야.” 나는 약간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말했다 ..  (9∼10쪽)


 사람들이 책을 더 많이 읽어야 더 똑똑해지거나 더 슬기롭게 거듭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돈을 더 많이 벌어야 더 넉넉해지거나 더 즐거운 나날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이름을 더 많이 날려야 더 기뻐지거나 더 예뻐지지 않습니다.

 그림쟁이가 훌륭한 작품을 더 많이 남겨야 하지 않습니다. 글쟁이가 훌륭한 글을 더 많이 써야 하지 않습니다. 노래쟁이가 훌륭한 노래를 더 많이 불러야 하지 않습니다. 춤쟁이가 훌륭한 춤을 더 많이 추어야 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제 삶을 사랑하면서 아끼는 나날이면 넉넉합니다. 저마다 제 삶을 믿으면서 고마이 여기는 나날이면 즐겁습니다.

 그러니까, 내 아버지는 내 아버지일 뿐이고, 내 어머니는 내 어머니일 뿐입니다. 내 옆지기는 내 옆지기일 뿐이며, 내 아이들은 내 아이들일 뿐이에요.

 내 옆지기가 국회의원이나 판·검사가 되어야 했다고 생각할 수 없고, 이렇게 바라는 일은 참 덧없습니다. 내 아이들이 이름난 대학교를 마쳐서 돈 많이 버는 회사원이 되기를 꿈꿀 수 없으며, 이렇게 꾀한다면 참 바보스럽습니다. 나 또한 내 옆지기한테는 서로 어깨동무할 길동무여야지, 이 몫을 넘어선 무언가는 할 수 없습니다. 더 큰 무언가를 바라지 않으나, 굳이 더 작게 무언가가 되지 않습니다. 작아야 아름답지 않습니다. 크다고 덜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작든 크든 많은 적든 언제나 같습니다.


.. 장애가 있든 없든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아이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좋은 것임을 그제야 깨달았다. 거기 있기만 하면 된다 … 친구는 만드는 게 아니라 생기는 거였다. 그리고 돕고 도움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는 그냥 친구였다 ..  (16, 42쪽)


 아들을 셋 낳았는데, 세 아들이 모두 ‘장애아이’였다고 하는 일본 아줌마 사사키 시호미 님이 쓴 《장애도 못 말리는 명랑엄마의 행복 선언》(한울림스페셜,2008)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이 책을 처음 손에 쥘 때에도 생각했습니다. ‘왜 한국땅 장애아이 어머니나 아버지는 이만 한 책을 스스로 쓰지 못할까?’ 하고. 우리 나라에서도 5천만에 가까운 사람들 가운데 1/10이 장애를 안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곧, 우리 나라에는 5백만에 이르는 장애 안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 5백만 가운데에는 할머니도 있고 갓난쟁이도 있을 테며, 푸름이나 어린이도 있겠지요. 여느 아저씨나 아줌마도 있을 테고요. 그런데 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내 삶을 스스럼없이 적바림하면서 기쁘게 나누는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어쩌면, 출판사에서 우리 나라 우리 이웃 이야기는 책으로 안 펴내는지 모릅니다. 너무 가까운 이웃이라 누군가는 마음이 다칠까 봐 이웃나라 이야기만 책으로 펴내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내 아이한테 장애가 있다거나 내 어버이한테 말썽이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서로한테 생채기를 남기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감추거나 덮거나 숨길 때에 생채기가 남을 뿐 아니라 크게 도집니다.

 돈이 없는 어버이가 아이들한테 슬픔이나 괴로움이 아니듯, 장애 있는 아이가 어버이한테 슬픔이나 괴로움이 아닙니다. 번듯한 집이 없는 어버이가 아이들한테 아픔이나 고단함이 아니듯, 지능지수나 시험성적이 떨어지는 아이가 어버이한테 아픔이나 고단함이 아니에요.


.. 다이는 지능이 높아서 히로시마에서는 치료교육 수첩을 받을 수 없다. 장애로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장래 샐러리맨은 꿈도 못 꿀 다이인데 사회로부터 보호마저 받을 수 없다니, 어떤 의미에서는 다이가 제일 불안하다 … 깁스를 한 상태였으므로 모처럼의 대형욕실은 포기해야만 했다. 먹는 즐거움도 없다. 그래도 나는 3년 전 수학여행에서 신칸센을 보고 기뻐했던 요헤이를 또 여행 보내고 싶었다. 요헤이는 여행을 즐겼다. 담임선생님과 간호사도 입을 모아 말했다. “표정이 달라졌어요. 안 보냈으면 서운할 뻔했죠.” ..  (81, 126쪽)


 《장애도 못 말리는 명랑엄마의 행복 선언》을 쓴 일본 아줌마 사사키 시호미 님은 당신 삶을 아주 보드랍게 풀어놓습니다. 꾸밀 까닭이 없습니다. 덮거나 가릴 까닭이 없습니다. 차분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세 아이를 맞아들이며 보낸 나날을 고마이 돌아보면서 포근히 이야기자락을 펼칩니다.

 그런데, 한 가지 걸립니다. 세 아들 어머님인 사사키 시호미 님이 당신 세 아들을 낳아 기른 이야기나, 당신 어버이나 당신 옆지기 이야기와 삶을 돌아볼 때에, 사사키 시호미 님네 세 아들은 ‘갓 태어나 아기로 지낼 때’에는 장애아이가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두 어버이나 두 어버이네 어버이 가운데 아이들한테 장애 유전자를 물려줄 만한 사람이 안 보입니다. 그야말로 갑작스레 난데없이 세 아이가 똑같이 장애를 떠안는데, 다 다른 장애입니다.

 옆지기가 문득 말합니다. “여보, 이 아주머니네 아이들은 예방주사 때문이 아닐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거의 틀림없습니다. 세 아들 어머니인 사사키 시호미 님은 당신 세 아들을 모두 병원에서 낳은 듯하고, 병원 처방을 잘 따릅니다. 더구나 ‘아픈 세 아들’하고 살아가야 하는데, 사사키 시호미 님은 도시에서 지내는 삶에 익숙합니다. 세 아들을 비롯한 집식구하고 어떤 밥을 차려서 먹는가 하는 이야기는 책에 한 줄도 나오지 않습니다만, 이분 집이 생협에서 먹을거리를 댄다든지 가공식품을 멀리한다든지 하는 이야기 또한 한 줄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장애아이를 낳아도 혼자서 키우겠어’ 하고 되뇌는 마음가짐은 있지만, ‘어디에서 어떻게’ 아이를 돌보아야 좋은가 하는 대목까지는 헤아리지 못합니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수은을 넣지 않은 예방주사’를 스스로 만들어서 아이들한테 놓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일본에서 ‘수은을 안 넣은 예방주사’를 만든 지는 얼마 되지 않았으며, 모든 예방주사에 수은을 안 넣지 않습니다. 더구나, 수은 한 가지를 안 넣었다뿐, 다른 무시무시한 화학성분은 그대로 있으며, 수은을 갈음한 화학성분은 수은 못지않게 무시무시합니다. 갓난쟁이한테 수은을 몸에 집어넣으면 어떻게 될는지는 사람들 스스로 옳게 깨달아야 합니다. 수은과 포르말린과 알루미늄을 비롯한 무시무시하다는 수많은 화학약품을 갓난쟁이 몸에 주사바늘로 집어넣을 때에 무슨 일이 생길까 하는 이야기는 아이 어버이들이 스스로 참다이 알아차려야 합니다.

 사사키 시호미 님은 당신 장애아이를 ‘혼자 키우겠다’고 다짐했다지만, 정작 장애가 큰 아이는 시설에 넣습니다. 아이들은 병원 처방을 많이 자주 받습니다. 책에도 나오는데, ‘장애를 낫게 해 주는 약이 있으면 먹이고 싶다’는 대목이 보입니다. 글쓴이는 ‘병·의학 화학약품’에 지나치게 기대며 살아갑니다. 장애아이라 하건 비장애아이라 하건 똑같이 사랑하는 마음은 예쁘지만, 장애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아이와 어떻게 어디에서 살아갈 때에 아름다운가 하는 대목은 거의 돌아보지 못해요.

 이는 일본 아닌 한국이라고 조금도 낫지 않습니다. 아니, 한국은 더 끔찍합니다.

 애써 대학교까지 마친 똑똑한 ‘애 엄마’한테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사랑’ 한길을 걸어가라 하기 참 어렵습니다. 더욱이, 애써 대학교까지 마쳤을 뿐 아니라 가부장 사회에서 집안 기둥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애 아빠’한테 회사일을 접거나 회사를 시골로 옮겨서 아이들하고 더 자주 더 오래 어울리면서 집살림을 함께 건사하자고 하기란 대단히 어렵습니다.

 책을 덮습니다. “장애도 못 말리는 밝은 엄마가 즐겁다고 외치는” 이야기책을 덮습니다. 글쓴이요 어머니인 사사키 시호미 님이 얼마나 느끼시는가 궁금하지만, ‘장애아이’라 하는 세 아들은 스스로를 슬프게 여기거나 안타까이 생각하지 않으리라 느낍니다. 장애아이를 바라보는 어버이나 이웃사람이 슬프게 여기거나 안타까이 생각하는구나 싶습니다.

 괜히 해맑거나 밝아야 하지 않습니다. 꼭 씩씩하거나 굳세어야 하지 않아요. 힘들 때에는 쉬면 돼요. 아플 때에는 눈물을 흘리면 돼요. 아이한테 장애가 왜 생겼는가를 제대로 알아야 해요. 장애가 있고 없고가 잘못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왜 장애가 생겼는가를 올바르게 깨달아, 이 아이를 참답고 착하게 사랑하면서 아름다이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해요. 어머니가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머니가 너무 늦게 깨달으면, 아버지는 숨을 거두어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도 못 느끼고 말아요. 부디, ‘하나도 대단하지 않은’ 장애아이 셋을 잘 사랑하면서 얼싸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장애아이라서 대단하지 않듯, 비장애아이라서 대단하지 않습니다. (4344.9.14.물.ㅎㄲㅅㄱ)


― 장애도 못 말리는 명랑엄마의 행복 선언 (사사키 시호미 글,김은진 옮김,한울림스페셜 펴냄,2008.5.16./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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