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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처럼 아이처럼 - 자녀교육, 예수처럼 사랑하고 아이처럼 생각하라
요한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블룸하르트 지음, 전병욱 옮김 / 달팽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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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에 앞서 어른부터 착해야지요
 [책읽기 삶읽기 75] 요한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블룸하르트, 《예수처럼 아이처럼》(달팽이,2011)


 “아파 보지 않아서 모른다” 같은 말을 듣거나 “아프지 않으니 알 수 없다” 같은 말을 들을 때처럼 가슴을 후벼파는 느낌이 드는 때는 드뭅니다. 다른 어느 말보다 ‘아픔’을 몸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마음이 열리거나 닿거나 기울지 않는 모습을 깨달을 때처럼 슬픈 일이란 없다고 느낍니다.

 몸이 몹시 아프거나 무너져서 꼼짝을 할 수 없을 때, 아픈 나는 아픈 누군가처럼 아픈 눈길과 아픈 눈높이로 살아갑니다. 아픈 눈길과 아픈 눈높이로 다문 하루를 살더라도, 아픈 눈길로 무엇을 볼 수 있고 아픈 눈높이로 어떻게 지내야 하는가를 깊디깊이 받아들입니다.

 아픈 눈길로 바라볼 수 있을 때라야 어린 눈길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아픈 눈높이로 살아내려 할 때라야 푸른 눈높이로 마주할 수 있습니다.

 아프지 않을 때에도 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사람이 없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맑거나 밝은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몸이 아프지 않을 때에도 어린 눈길을 느끼면서 따스히 어루만지리라 생각합니다. 곧, 나 스스로 제대로 맑거나 밝은 마음이 되어 살아가지 못하기에, 나부터 내 몸이 몹시 아파서 괴롭거나 힘들 때를 닥쳐야, 비로소 어린 눈길을 헤아리고 푸른 눈높이를 톺아보는구나 싶어요.


.. 어린 아이들에게 뭔가를 요구하는데도 잘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이들이 충분히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는 우리의 요구를 내려놓는 것이 마땅합니다 … 아이의 인격이 존중받지 못하고 어른들의 기질을 강요받게 되면 아이 양육과정에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이 당연하다 … 아이들은 배우처럼 어른들에게 오락거리를 제공할 줄 모르며, 어떤 진지한 것을 가지고 공허하지만 즐거움을 만들어 낼 줄도 모른다 … 수많은 아이들이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예수의 방법이 아니라 부모들의 세속적이고 인간중심의 방식으로 양육받고 있다 … 부모인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그저 성경과 종교 의식 속에서만 만나고 여러분 마음에 모시지 않는다면 아이들을 그리스도께 이끌 수 없다 ..  (28, 36, 45, 72∼73쪽)


 돈이 넉넉한 삶, 이른바 가멸차거나 가면 삶일 때에는 나처럼 돈이 넉넉한 사람들이 누리는 삶을 헤아리거나 살피거나 느낍니다. 돈이 없는 삶, 그러니까 가난하거나 찢어지는 삶일 때에는 나처럼 돈이 없는 사람들이 부대끼는 삶을 돌아보거나 생각하거나 알아챕니다.

 자동차를 몰 때에는 자동차를 모는 다른 사람들 마음을 헤아립니다. 자전거를 탈 때에는 자전거를 타는 다른 사람들 느낌을 함께 나눕니다. 두 다리로 걸을 때에는 두 다리로 걷는 다른 사람들 꿈을 맞아들입니다. 바퀴걸상에 앉는다든지 한 자리에 꼼짝을 할 수 없다면 이제서야 걸을 수 없는 사람들 삶을 가슴으로 아로새깁니다.

 살아갈 때에 비로소 바라보면서 느끼고 껴안습니다. 지식을 쌓으며 안다 할 때에는 조금도 바라볼 수 없고 느낄 수 없으며 껴안을 수 없습니다.

 내 삶이 될 때에 ‘참다이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 삶이 아닌 지식일 때에는 ‘껍데기를 훑는다’고 말할 뿐, 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책을 읽을 때에는 지식이 늘지, 삶이 되지 않습니다. 한 줄을 읽더라도 온몸으로 부둥켜안도록 살아내야 비로소 안다 할 만해요. 한 줄조차 못 읽더라도 온몸으로 부둥켜안는 삶이 아름다워야 비로소 안다 할 만합니다. 백 권이나 천 권을 읽는다지만, 정작 내 삶을 하나도 고치거나 바꾸지 않는다면 하나도 모른다 할 만합니다. 책을 꾸준히 읽는 삶을 사랑하려면, 내 삶을 꾸준히 손질하면서 날마다 거듭나는 매무새가 되어야 합니다. 날마다 새롭게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면, 날마다 읽는 책이란 얼마나 부질없을까요.


.. 아이는 ‘항상’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만의 방식대로 생각한다 … 아이는 방해받지 않고 행복함을 느낄 때 가장 고분고분해진다. 또한 마음이 안정감을 갖고 차분해진다 …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기대하지 말고 설사 많은 말썽을 일으키더라도 사랑해야 한다. 아이들과 함께 버릇없는 행동까지도 품어야 한다 … 아이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  (34, 38, 49, 74쪽)


 누구한테든 날마다 새로 찾아오는 하루가 반갑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한테든 날마다 맞이하는 새날이 고맙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즐거운 일이 가득하다면 즐거운 일이 가득한 대로 반갑습니다. 고단한 일이 넘친다면 고단한 일이 넘치는 대로 고맙습니다.

 돈 500원이 없어 쩔쩔매는 살림은 돈 500원이 없어 쩔쩔매면서 반갑습니다. 돈 100만 원이 없어 괴로운 살림은 돈 100만 원이 없어 괴로우면서 고맙습니다. 보일러에 기름이 가득해 걱정없이 방바닥을 덥힐 수 있는 살림은 걱정없이 겨울나기를 하는 대로 반갑습니다. 애틋한 옆지기하고 입맞추는 사람은 애틋한 옆지기하고 입맞추는 대로 고맙습니다.

 못 누리거나 덜 누리는 사람 때문에 내가 누리는 삶을 부끄러이 여길 까닭이 없습니다. 더 누리거나 많이 누리는 사람 때문에 내가 못 누리는 삶을 남우세스러이 돌아볼 까닭이 없습니다.

 못 누릴 때에는 못 누리는 대로 좋습니다. 더 누릴 때에는 더 누리는 대로 좋아요. 모든 삶은 늘 돌아갑니다.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듯, 좋은 일이 있으니 궂은 일이 있어요. 좋은 일만 잇달지 않고, 궂은 일만 이어지지 않아요. 삶만 끝없을 수 없으며, 죽음만 되풀이되지 않습니다.

 언제나 아름다운 내 삶입니다. 늘 빛나는 내 삶터입니다. 노상 싱그러운 내 삶자락이에요.


.. 그저 아이들과 함께 놀아 주고 이야기하고 사랑하는 것 말고 더 필요한 게 무엇이겠습니까? … 아이들은 부모를 공경하고 존경해야 한다. 하지만 부모들도 마찬가지로 자녀들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 교육의 목표는 언제나 지배계급을 만드는 것이었다 … 아이가 아이로 살 때 아이는 행복하다 ..  (51, 65, 76, 110쪽)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한테 ‘배움 길잡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예수처럼 아이처럼》(달팽이,2011)을 읽습니다. 133쪽에 이르는 조그마한 책에 깃든 조그마하면서 단출한 이야기를 곰곰이 되새깁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아이하고 나눌 ‘배움 길잡이’는 얼마 안 됩니다. 아니, 얼마 안 된다기보다 꼭 한 줄입니다. “아이를 사랑하면서 살아가면” 돼요.

 아이가 나중에 돈벌이를 잘 하기를 바라는 일은 사랑이 아닙니다. 아이가 너덧 살에 한글을 떼기를 꿈꾸는 일은 사랑이 아닙니다. 아이가 어느 한 가지 운동경기를 뻬어나게 잘 하기를 꾀하는 일은 사랑이 아니에요.

 사랑이란 아이가 아이답게 살아가면서 아이다움을 예쁘게 누리도록 하는 일입니다. 아이가 하는 말을 마음으로 듣고, 아이가 보여주는 몸짓을 몸으로 들으며, 아이가 바라보는 눈길을 내 넋으로 받아들이는 일이어야 사랑입니다.

 《예수처럼 아이처럼》은 ‘예수처럼 사랑하고 아이처럼 생각하라’는 줄거리를 담습니다. 이런 지식 저런 사례를 알거나 따진대서 아이를 사랑할 수 없으며, 지구별과 온누리를 빚은 하늘님과 땅님 넋을 껴안을 길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착하게 살아가는 길을 밝힙니다. 참다이 어깨동무하는 삶을 들려줍니다. 아름다이 어우러지는 꿈을 보여줍니다. 아이를 낳은 어른부터 스스로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이 살아가면 됩니다. 아이만 착하기를 바라지 말고, 어른부터 착하면 됩니다. 아이만 예쁘기를 빌지 말고, 어른부터 예쁘게 살아내면 돼요.


― 예수처럼 아이처럼 (요한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블룸하르트 글,전병욱 옮김,달팽이 펴냄,2011.7.15./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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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7일 전쟁 카르페디엠 27
소다 오사무 지음, 고향옥 옮김 / 양철북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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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이 되고 싶은 어른
 [푸른책과 함께 살기 88] 소다 오사무, 《우리들의 7일 전쟁》(양철북,2011)



- 책이름 : 우리들의 7일 전쟁
- 글 : 소다 오사무
- 옮긴이 : 고향옥
- 펴낸곳 : 양철북 (2011.8.15.)
- 책값 : 1만 원


 (1) 어린이와 어른


 사람들은 읽어서 알고, 들어서 알며, 겪어서 압니다. 사람들은 살아서 알고, 만나서 알며, 바라보았기에 압니다. 사람들은 생각해서 알고, 마음써서 알며, 느껴서 압니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어린 나날부터 참 많은 이야기를 압니다. 우리 집 네 살 첫째는 보육원을 다니지 않으니 여느 아이보다 참 적은 이야기를 안다 하리라 봅니다. 우리 집 네 살 첫째 다른 또래는 보육원에서 여러 놀이를 하며 알파벳도 보고 저런 놀이도 하며 또래끼리 온갖 말을 섞겠지요.

 아이들끼리 주고받는 말마디에 가만히 귀를 기울입니다. 아이들이 읊는 말마디는 하나같이 저희 어버이한테서 듣는 말마디입니다. 내 아이가 읊는 말마디라면 바로 내가 읊는 말마디입니다. 아이들은 서로 어울리면서 서로 저희 어버이들 말마디를 주고받습니다. 아이들은 제 또래 말마디를 들어서 배운다기보다 제 어버이 말마디를 제 또래를 거쳐 들으면서 배우는 셈입니다.

 아이들은 텔레비전이나 비디오로 말을 배우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텔레비전이나 비디오나 둘레 어른들 모습을 바라보면서 무엇엔가 익숙해지거나 길듭니다. 자주 보니 익숙합니다. 늘 보면서 길듭니다. 좋거나 나쁘거나 가리지 못합니다. 옳거나 바르거나 살피지 못합니다.

 밥을 받아들이듯 말을 받아들입니다. 물을 마시듯 제 어버이 삶터를 빨아들입니다. 바람을 마시듯 제 어버이와 둘레 어른이 꿈꾸는 삶을 함께 마십니다.


.. 형제가 많은 준코는 보통 집처럼 설날이나 생일에 용돈을 받지 못한다. 용돈이 필요하면 일을 해야 한다. 맏딸인 준코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곧장 가게에 나가 일을 했다. 배달도 나가고 아기 기저귀도 갈아 준다. 청소와 빨래는 준코의 특기다. 무엇보다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준코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집안일을 거들 거라고 했다. 늘 공부에 쫓겨 머릿속에서 성적 고민이 떠나지 않는 에이지를 준코는 불쌍하게 여겼다 ..  (45쪽)


 아이가 이래저래 잘못했을 때에 이런저런 목소리로 꾸짖었다면, 아이는 이 꾸짖음을 가슴에 새깁니다. 아이가 이렁저렁 잘할 때에 요런조런 손길로 쓰다듬는다면, 아이는 이 손길을 몸에 새깁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아이가 받아들이는 말이나 맞아들이는 몸짓은 아이가 아이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어른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어른 또한 둘레 어른이 내뱉는 말을 받아들입니다. 어른도 둘레 다른 어른이 보이는 몸짓을 맞아들입니다.

 사랑으로 따스히 살아가는 어른하고 어깨동무하는 어른이라면 사랑으로 따스히 어루만지는 삶을 받아들입니다. 골을 부리며 성을 내는 어른하고 함께 일하는 어른이라면 저도 모르는 어느 결에 골을 부리며 성을 내는 버릇에 젖어듭니다.

 푸른숲이 껴안는 조그마한 집에서 눈부시게 반짝이는 밤별을 올려다면서 살아간다면, 어른이나 아이나 이 푸른숲이 베푸는 푸른 내음과 기운을 받아먹을 뿐 아니라, 눈부시게 반짝이는 밤별빛을 맞아들입니다.

 아이들이 시골에서 살아야 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습니다. 아이들은 맑은 바람과 밝은 햇살과 고운 흙을 누리며 살아야 제 목숨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어른 또한 맑은 바람과 밝은 햇살과 고운 흙을 누리며 살아갈 때에 어른인 제 목숨과 아이들 목숨을 사랑합니다.


.. “다 같이 하는 일이 이렇게 재미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어. 공부벌레처럼 공부만 하면 도쿄대에 들어갈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난 아마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 거야.” … “그럼 한 가지 물어 볼게요. 시장이나 교감은 그런 (비밀) 모임에 나가도 되나요?” 마이크를 잡은 교감은 할 말을 잃었다. “왜 대답을 못하죠? 얼른 대답하세요.” 히데아키는 날카롭게 다그쳤다. “그 문제와 이건 다르다. 너희는 아직 어린애란 말이다.” “어린애든 어른이든 나쁜 건 나쁜 거예요. 그렇지 않은가요?” “그건 그렇지만…….” “왜 아이들만 진실하게 살아야 하죠? 이유를 말해 보시라고요, 이유를.” ..  (117, 313쪽)


 아이도 목숨이요 어른도 목숨입니다. 아이도 사람이고 어른도 사람입니다. 아이도 삶이며 어른도 삶입니다. 아이부터 사랑이면서 어른 또한 사랑이에요.

 돈벌이에 매인 어른하고 살아가는 아이가 돈벌이에 매이는 삶으로 나아갈밖에 없습니다. 언제나 싱그러이 웃으며 사랑을 꽃피우는 어른하고 살아가는 아이가 제 동무나 이웃하고 예쁘게 웃으며 사랑을 꽃피웁니다.

 무턱대고 아무 책이나 읽어치우는 어버이하고 살아간다면, 책은 많이 읽을는지 몰라도 삶으로 삭일 이야기는 깨닫지 못하는 아이가 되기 마련입니다. 책을 더 많이 읽어야 하는 어른도 아이도 아닙니다. 내 삶에 알맞게 책을 살피고 찾으며 느껴서, 내 삶을 북돋울 고마운 길동무로 사귈 책이라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이들이 영어를 배우든 한자를 배우든 무어를 배우든 늘 똑같습니다. 아이들은 지식을 배워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지식을 쌓아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졸업장이 많아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자격증을 불려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어디에서 누구랑 어떻게 왜 살고 싶은가를 느껴야 합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키울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서로서로 나눌 믿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밥과 옷과 집을 어떻게 이루어 어떻게 나누는 기쁨을 길어올려야 하는가를 헤아려야 합니다.

 곧, 어른부터 제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마련하면서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어른부터 제 밥과 옷과 집을 어찌 건사해야 하는가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돈으로 만드는 밥과 옷과 집이란 없습니다.


.. “아이들이 계속 없어지면 세상은 대체 어떻게 될까요?” “어른들만의 세상……. 생각만 해도 오싹합니다.” “그럼 우리는 어떡하면 좋을까요? ” “야바 씨, 자녀가 있습니까?” “있죠. 초등학교 5학년생 딸 하나.” “저도 초등학교 2학년생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혹시 따님이 없어질 거라고 생각해 본 적 있습니까?” “상상도 안 해 봤죠. 생각만 해도 머리가 어떻게 될 것 같습니다.” 야바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렇죠? 부모치고 아이들의 행복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 준답시고 불행하게 만드는 크나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는 아이들을 ‘착한 아이’로 만들려고 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착한 아이’란 대체 어떤 아이일까요? 그것은 어른의 꼭둑각시죠/ 다시 말해, 어른이 되었을 때 사회에 순응하는 구성원이 되도록 훈련시키는 게 교육이죠.” ..  (330쪽)


 나는 어머니한테서 일하는 삶과 밥하는 손길과 빨래하는 몸뚱이와 할배를 돌보는 마음을 배웠습니다. 한 사람으로 살아갈 모두를 어머니한테서 배웠는지는 아직 잘 모릅니다. 다만, 어머니가 두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갔듯, 나도 옆지기하고 두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면서 생각합니다. 우리 집 두 아이는 제 어버이한테서 무엇을 배우면서 살아갈는지 곱씹습니다. 두 아이가 제 어버이한테서 무엇을 배울 만하고 무엇을 받아들일 만하며 무엇을 즐겁게 누릴 만한지 돌아봅니다. 흔한 말로는 ‘아이키우기(육아)’이지만, 옳게 말하자면 ‘함께살기(어른과 아이가 함께 살기)’입니다.


 (2) 어른과 이레 동안 싸우는 어린이


 소다 오사무 님이 쓴 푸른책, 그러니까 청소년소설 《우리들의 7일 전쟁》(양철북,2011)을 읽습니다. 새 보금자리를 찾아 충청북도 시골집을 떠나 강원도 시골집을 떠도는 길에 시외버스를 타며 읽습니다. 밤에 여관을 찾아들며 읽습니다. 중학교 한 반 아이들이 몽땅 하나가 되어 모든 어른하고 이레에 걸쳐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담은 푸른책을 읽습니다.

 아이들은 왜 어른들하고 싸워야 할까요. 어른들은 왜 아이들이 싸우자고 소매를 걷어붙일 때까지 서로 살가이 사랑하는 길을 걷지 않았을까요.

 싸움이 일어나는 까닭은 딱 둘입니다. 첫째, 힘센 쪽이 힘여린 쪽을 짓밟으면서 노예로 부리려고. 둘째, 힘여린 쪽이 힘센 쪽한테 짓눌리는 삶을 이제부터 떨쳐내려고.


..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도움이 되지 않게 돼. 그리고 도움이 안 되는 걸로 치면 우리 어린애들도 마찬가지 아니야?” “어린애들은 다르지. 부모는 자식을 키울 의무가 있다고.” “자식도 자라면 부모를 돌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 … “역시, 노인은 어른하고는 달라. 약한 사람을 괴롭히고 싶지 않아.” ..  (67쪽)


 아이들은 똘똘 뭉칩니다. 아니, 똘똘 뭉친다기보다 열서너 해에 걸쳐 쌓인 깊은 앙금과 눈물이 얼크러지면서 거센 불길이 됩니다. 아이들한테 쌓인 앙금과 눈물은 너무 아픕니다. 그러나, 이 너무 아픈 앙금과 눈물이 얼마나 아픈가를 어른들은 조금도 깨닫지 않고 느끼지 않으며 바라보지 않습니다.

 ‘나도 너희만 한 때를 살았다’고 말한대서 아이들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개구리가 되니 올챙이 적을 잊는 어른들이잖아요. 올챙이 적이 어떠한 줄을 잊고서 ‘나도 너희만 한 때를 살았다’고 입으로 떠든대서야 어느 어린이나 푸름이가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런데, 딱 두 어른이 이 아이들하고 손을 잡습니다. 아니, 딱 두 어른은 이 아이들한테서 사랑을 받고, 이 아이들한테 사랑을 베풉니다.

 먼저, 다 큰 젊은 아들(어른이 된 아들)한테서 버림받은 할아버지가 아이들 품에 안깁니다. 버림받은 떨꺼둥이 할아버지는 ‘어른들하고 싸우겠다’고 나선 아이들 이야기를 찬찬히 듣습니다. 찬찬히 듣고 나서 ‘싸움’, 그러니까 한자말로 옮기면 ‘전쟁’이란 무엇인가를 차분히 들려줍니다. 꾸미지 않습니다. 감추거나 숨기지 않습니다. 당신이 겪으며 온몸과 온마음에 아로새긴 그대로 하나하나 들려줍니다.

 아이들은 할아버지 말을 들으며 깜짝 놀랍니다. 깜짝 놀랄 뿐 아니라 소리를 지릅니다. 할아버지는 이 모든 소리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 다시금 차분히 되풀이합니다. “너희는 절대 전쟁을 하지 마라(155쪽).” 하고.

 그러면, 청소년소설 《우리들의 7일 전쟁》은 뭘까요? 책이름부터 ‘전쟁’이라고 하는데?


.. “그런 얼굴은 개도 안 핥아요. 진딧물이라면 몰라도.” 다시 모두가 왁자그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이 똥개새끼들이 듣자 듣자 하니까 아주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가네.” “교사잖아요. 좀 더 품위 있는 말 좀 쓰지 그래요.” “나와! 내가 요절을 내주겠다.” “나오라고 한다고 나갈 멍청이가 어디 있어요. 그래서 물개(체육교사 별명)는 뇌세포가 부족하다는 소리를 듣는 거라고요.” … “두 번째 문제. 이건 선생님이라면 누구나 아는 법률 문제예요. 학교 교육법 제11조에서는 뭐라고 말하고 있죠?” “모른다.” 사카이(물개 선생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도 몰라요? 학생에게 체벌을 가하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어요.” 사카이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  (129, 146쪽)


 아마, 어른 눈길로 어린이를 바라본다면 ‘전쟁’이 될 테지요. 어린이 눈길로 어른을 바라본다면 ‘맞서기’입니다. ‘말하기’입니다. 아이들이 이처럼 들고 나서지 않고서야 어른들은 조금도 느끼지 않을 뿐 아니라, 아이들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귀담아듣지 않습니다. 이렇게 이레에 걸쳐 ‘어른이 보기에 전쟁을 벌여’야 겨우 귓등을 엽니다.

 아이들은 어떠한 굴레나 쇠사슬에도 얽히지 않는 홀가분한 곳, 이른바 ‘해방구’에 다 함께 모여 한몸이 될 때에 바야흐로 ‘그동안 하고팠으나 한 마디도 입밖으로 내지 못하던 말’을 마음껏 터뜨립니다.

 아이들한테 노상 손찌검을 하는 못난 교사 앞에서는 ‘야 임마 물개야!’ 하고 혀를 내밀지 못하지만, 홀가분한 쉼터에서는 ‘야 이녀석 물개야!’ 하며 혀를 낼름 내밉니다.


.. 교장은 생활지도주임의 얼굴을 봤다. “잘 모르겠습니다.” “잘 안 되는 이유는 아이들을 인격체로 대하기 때문이야. 우리가 보통 동물을 어떻게 길들이지? 개나 말을 조련하듯이 채찍으로 길들이면 반드시 잘 돼 가게 되어 있어. 이게 비법이야. 자네들도 머릿속에 잘 넣어 두게.” “교장 선생님은 부임하신 지 3년 만에 우리 학교를 도내 몇 안 되는 모범 학교로 바꿔 놓으셨습니다. 이건 기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  (222쪽)


 다른 한 사람,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어른은 양호 교사입니다. 양호 교사는 아이들을 걱정하면서 먹을거리를 날마다 새로 마련해서 갖다 줍니다. 아이들 어느 어버이도 아이들한테 먹을거리를 갖다 주거나 챙겨 주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저 안쪽에서 굶으면 제발로 기어나오리라 여깁니다. 아이들이 굶든, 아이들이 추위에 떨든, 아이들이 외로움에 몸부림치든, 아이들이 슬픔에 잠기든, 하나도 아랑곳하지 않는 어른들입니다.

 어른들은 그저 한 가지를 바랍니다. 이 아이들이 ‘왜 이렇게 어른들 말을 안 듣고 제멋대로 날뛰나?’ 하고 생각하면서, 이 아이들이 ‘예전처럼 고분고분하게 어른들 말을 듣기’를 바랍니다. 어른들 말을 고분고분 듣는 아이들이 앞으로 무럭무럭 자라서 당신들 어른처럼 ‘돈벌이에 푹 싸여 아이들을 당신하고 똑같이 돈벌이 기계처럼 만드는’ 노릇을 이으려 합니다.

 아이들은 이레에 걸친 ‘말하기(전쟁)’를 끝내는 자리에서 어른들한테 “우리 부모들도 지금은 타락했지만 젊었을 때는 꽤 멋진 일을 했군요(328쪽).” 하고 마지막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래요, 개구리들이 잊고 만 올챙이 적 일은 꽤 멋진 일이었는가 봅니다. 그러나, 이 멋진 일을 개구리가 될 때에도 고이 잇지 않는다면, 어느 어른이라 하더라도 하나도 반갑지 않고 멋지지 않으며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3) 어른이 되고 싶은 어른


 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나부터 내 고마운 보금자리에서 내 사랑스러운 옆지기와 내 아름다운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스럽거나 아름다이 마주하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한솥밥을 먹는 살붙이들은 서로서로 얼마나 좋은 길동무이거나 벗님인가 하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보기에 어른인 나는, 얼마나 어른다운 어른으로 살아가는지 궁금합니다. 참말 어른이 되었다 할 만한가 궁금합니다. 밥그릇 숫자로만 어른인가요. 나이로만 어른인가요. 해마다 더 주름이 지는 살결로만 어른인가요. 머리카락을 마음껏 내버려둘 수 있으니 어른인가요. 술을 마실 수 있기에 어른인지요. ‘19금’에서 벗어났으니까, 참말 전쟁이 터지면 총칼을 들고 살인을 마음껏 저지르는 군인이 될 수 있으니 어른일는지요.


.. “져도 좋잖아. 하고 싶은 걸 할 수만 있다면.” … “모두들, 내 이 왼손을 봐라. 그리고 이 배를.” 세가와 할아버지는 왼손을 높이 들어 올리고, 셔츠를 올려 배를 보여주었다. 왼손에는 손가락 네 개가 없었고 배에는 죄어든 듯한 흉터가 있었다. “이 손가락은 전쟁 때 폭탄에 날아가버렸다. 이 배의 흉터도 그 파편이 떨어져 생긴 거고.” “아팠겠네요?” 히데아키가 미간을 찌푸렸다. “한데 말이다. 참 이상하게도 아픈 줄은 몰랐단다. 뜨거운 쇳덩어리에 눌린 것 같았어. 그래서 보니까 손가락이 없어져 버렸더구나.” 모두들 할아버지의 네 손가락이 없는 손을 바라본 채 숨을 죽였다. “그래도 나는 운이 좋았단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몇 명이 동시에 물었다. “그 전투에서 살아남은 건 소대 아흔 명 중 절반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죽었어요?” “죽었지. 나는 다치는 바람에 상이군인이 돼서 돌아왔지만, 그때 살아남은 사람들은 수송선을 타고 필리핀으로 가야 했어. 한데 도중에 잠수정공격으로 배가 침몰하는 바람에 모두 전사했지.” “모두?” ..  (29, 70∼71쪽)


 어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늘 어른다운 삶을 사랑하려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어린이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어린이다운 삶을 사랑하려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푸름이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한결같이 푸름이다운 삶을 사랑하려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 “모두 하늘 좀 봐. 별이 참 예쁘다.” … “할아버지, 전쟁 때 사람 죽인 적 있어요?” “있지.” “살인을 했다고요?” 겐이치가 째지는 소리를 냈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으니까. 전쟁이란 그런 거란다.” “죽였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기분이 아주 나쁘지. 벌써 몇 십 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지금까지도 악몽을 꾸고 가위에 눌려.” ..  (49, 155쪽)


 어른이 되고 싶은 어른이어야 고운 목숨입니다. 어린이가 되고 싶은 어린이여야 맑은 눈길입니다. 푸름이가 되고 싶은 푸름이여야 따스한 몸뚱이입니다.

 늙었기에 주름이 집니다. 젊기에 탱탱합니다. 일했기에 굳은살이 박힙니다. 놀거나 쉬는 동안, 뭉친 힘살이 풀립니다.

 《우리들의 7일 전쟁》에서 이레에 걸쳐 어른들한테 할 말을 마음껏 쏟아낸 아이들은 이제 어떤 푸름이로 살아갈까요. 이 푸름이들을 보살피며 함께 지낼 어버이와 교사는 앞으로 어떤 어른으로 살아갈까요. (4344.8.24.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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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8-24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말이죠,
저한테 좀더 내면에 있는 아이를 다독여서 제 나이까지 끌어올려야 편안해질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좋은 말에, 저는 슬펐답니다. 그냥요. ^^

된장님 말씀대로 모두 시골에 가야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모두 시골에 간다면, 거기가 시골이 맞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사람이란,
그리고 집단화된 사람이란 어느 방향으로 갈지 예상하기 어려우니까요. 된장님처럼
확고한 신념을 가지지 못 한 저로서는, 계속 혼란의 연속일거 같아요.

그래도 항상 좋은 글 감사하답니다.

숲노래 2011-08-24 11:49   좋아요 0 | URL
시골에 가서 산다는 뜻이란,
내 밥하고 옷하고 집을 스스로 마련하거나
스스로 다스린다는 뜻이에요.
이러면서, 나 또한 자연에서 태어난 목숨인 줄을 깨닫고,
이러한 목숨이 제 보람을 다 하도록
맑고 밝으면서 곱게 살아가는 기쁨을 누린다는 뜻이 돼요.

도시에서는 밥-옷-집을 오직 돈으로만 사야 해요.
모두 상품이 되고 재산이 돼요.
도시에서 살아가더라도 내 밥하고 옷하고 집을
스스로 건사할 수 있으면,
이때에는 시골에서 살아가는 나날하고
비슷할 수 있겠지요.
 
식스펜스 하우스 - 책 마을에서 길을 잃다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우리 식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푸른책과 함께 살기 87] 폴 콜린스, 《식스펜스 하우스》(양철북,2011)



- 책이름 : 식스펜스 하우스
- 글 : 폴 콜린스
- 옮긴이 : 홍한별
- 펴낸곳 : 양철북 (2011.7.14.)
- 책값 : 13000원



 (1) 책을 읽는다


 1975년에 태어나 1982년에 국민학교에 들어가기까지 책읽기를 얼마나 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나는 떠올리지 못하지만, 집 안팎에서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읽어 주었는지 모르고, 나 또한 책읽기에 젖어들었는지 모릅니다.

 유치원 비슷한 구실을 하던 미술학원을 다니던 일곱 살 적, 유치원 비슷한 미술학원에서 한 일은 그림그리기와 놀기 두 가지입니다. 이곳에서 동화책이든 그림책이든 가까이한 일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1982년에 국민학교에 들어간 뒤로도 딱히 책읽기를 즐긴 일은 떠올리지 못합니다. 이동안에는 책읽기 없이 ‘독서감상 숙제’가 있었고 ‘독서감상 숙제로 독서감상문을 원고지에 다섯 장 넘게 써서 내야’ 했습니다. 학교에는 도서관이든 도서실이든 없었습니다. 학급문고라고 백 권 즈음 책이 있기는 했으나, 한 반 쉰다섯 안팎 되는 아이들한테서 한 권씩 받은 책으로 마련한 책들입니다. 읽을 만한 책은 아주 드물고, 그냥 책 꼴을 갖추었으면 하나씩 가져온 셈 쳐서 가까스로 백 권 즈음 숫자를 맞추었습니다.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릴 때 인천에서 중학교에 들어갑니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새로 지은 곳이지만, 새로 지은 학교이면서도 도서관이든 도서실이든 없습니다. 요즈음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모르겠지만, 이무렵 인천에 있는 학교치고 체육관 있는 곳은 아주 드물었습니다. 체육관이고 도서관이고 무엇이고 하나 없이 그저 교실만 빼곡하게 들어찬 인천 학교들입니다. 중학생이 될 때 학교에서 내어준 선물이란, 대학입시를 앞두고 이제부터 저녁 열 시까지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하겠다고 교장 이름으로 갱지에 적바림한 알림쪽글.


.. 책 읽는 사람은 늘 희귀하다 … 미국 가정 가운데 한 해 동안 책을 한 권도 사지 않는 집이 절반 정도로 나왔다. 나도 이웃집들을 방문해 본 덕에 책을 보는 집이 많지 않다는 걸 통계적으로 알 수 있었다 ..  (11, 12∼13쪽)


 중학생이 되어 영어를 처음으로 배웁니다. 집에 돈이 좀 있거나 공부 좀 시킨다는 몇몇 아이들은 알파벳을 미리 익힌 채 중학생이 됩니다만, 거의 모든 아이들은 이때에 알파벳을 처음 만납니다. 영어 교사는 알파벳을 제대로 그리지 못하거나 옳게 외우지 못하는 아이들을 몽둥이찜질로 다스립니다. 수업마다 쪽지시험을 치러 몽둥이질을 즐깁니다.

 그러고 보니, 국민학생에서 중학생으로 넘어와서 달라진 대목이라면, 이제 모든 교사들이 출석부를 왼옆구리에 끼고 굵다라면서 길다란 몽둥이를 오른손에 쥔 채 학교를 돌아다니는 모습입니다. 언제 어디에서라도 매질을 하거나 막말을 퍼붓는 대목이 중학생부터 노상 보는 모습입니다.

 중학교 국어 수업에서는 시늉을 하듯 문학을 맛보기로 보여주곤 합니다. 말 그대로 맛보기요, 시험에 나올 이야기를 짚는 데에서 그치지만, 어찌 되든 문학을 다룹니다. 영어를 천천히 배우면서 영어로 된 동화책을 한 권 두 권 사서 읽습니다. 시사영어사에서 나온 빨간 빛깔 작은 영한대역 동화책을 삽니다. 새책방을 잘 뒤지면 1970년대에 찍어 350원이나 250원 책값이 그대로 남은 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 짧은동화라든지 《키다리 아저씨》라든지 하나하나 사서 읽습니다.


.. 유명인이 갖고 있던 책이라고 해서 그게 왜 특별한지 잘 모르겠다. 책에 메모를 잔뜩 해 놓은 경우가 아니라면 무슨 의미가 있나? … 미국 인테리어 잡지는 돈을 주고 다른 사람에게 실내장식을 맡기는 사람들을 위한 잡지다. 영국은 스스로 하는 사람들을 위한 잡지고. 또 실내 사진은 모두 자연광을 이용해 찍었는데, 여기가 영국이다 보니 빛이 거의 없다 ..  (31, 108쪽)


 열네 살부터 새벽 일찍 학교에 가서 밤 열 시까지 학교에 붙잡힙니다. ‘예비 수험생’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채 가방이 아주 무겁습니다. 보충수업이든 자율학습이든, 오직 교과서와 문제집을 달달 외우기만 해야 하는 나날을 보내면서 생각합니다. 우리가 예비 수험생이라 한다면, 국민학교에서는 중학교에서 배울 시험문제를 조금 쉽게 배운 셈이고, 중학교에서는 고등학교에서 배울 시험문제를 조금 더 쉽게 배우는 셈 아닌가. 이럴 바에는 처음부터 대학입시 문제를 가르쳐서 이 끔찍하고 괴로운 나날을 하루라도 줄여 주어야 옳지 않나.

 시험문제 외우기로 여섯 해를 보내야 한다고 헤아리니 죽을 듯합니다. 그저 자리에 앉히고 그예 책상을 앞에 두고 앉혀서 시험점수가 0.1점이라도 더 나오도록 밀어붙이는 곳이 학교라 할 만한지 궁금합니다.

 그렇다고 1980년대 끝무렵 인천구석에서 어디 대안학교라든지 탈학교라든지 하는 낱말이 떠돌지 않았을 뿐더러, 학생이 학교 바깥에서 떠돌라치면 모조리 나쁜이(불량학생)라는 꼬리표가 붙습니다. 숨을 쉴 구멍이 없으나 숨을 쉬어서는 안 되는 수험생입니다. 쉴 자리가 없지만 쉬어서는 안 되는 수험생입니다. 살아도 죽은 척, 죽어도 죽은 그대로 여섯 해를 견디어야 한다는 수험생입니다.

 이 중학교를 마칠 즈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 저항을 합니다. 중학교 졸업사진책을 사지 않기로 합니다. 중학교 졸업사진책에 아이들 이름을 한자로 집어넣는 대목부터 내키지 않지만, 예비 수험생이라는 이름으로 날마다 몽둥이질과 손찌검질과 막말질로 하루 내내 춤추던 이곳을 조금도 떠올리고 싶지 않습니다. 거저 준다 해도 불질러 버리고 싶은 졸업사진책인데 몇 만 원이나 내라 하니 더더욱 사고 싶지 않습니다.

 연합고사를 마칩니다. 이제 연합고사가 끝나니 학교에서는 남은 교과서 진도를 나가지 않습니다.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더는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수업시간을 그냥 넘기지는 않습니다. 비디오를 보여주느니 낮잠을 자라 하느니 운동장에서 공을 차라느니 합니다. 연합고사를 마치고 며칠 뒤인 어느 날, 비디오도 안 보여주고 교사조차 안 들어와서 아주 시끌벅적 법석을 피우는 교실에 수학 교사가 뿔이 난 얼굴로 들어옵니다. 가뜩이나 이학년과 삼학년 때에 아주 지저분한 막말로 아이들 마음밭을 깎아내리거나 비웃던 수학교사인데, 우리가 너무 시끄러워 안 되겠다며 책상 들고 벌을 서라 합니다. 하기는 너무 떠들었으니 조금 벌을 받을 수 있겠지 생각하며 책상을 듭니다. 그런데 이놈 수학교사가 십 분이 지나도록 책상을 내리라 말하지 않습니다. ‘저거 미쳤나?’ ‘중학생으로 보내던 나날 저 수학교사 수업마다 가슴을 후벼파는 막말을 끔찍하게 들었는데, 연합고사까지 끝난 마당에 저이한테서 막말을 또 들으며 책상들기를 이렇게 오래 해야 하나?’

 가슴으로 무언가 북받칩니다. 두 손으로 들던 책상을 교탁 쪽으로 휙 집어던집니다. 나는 맨 뒷자리에 앉았는데, 내 책상은 훨훨 날아 수학교사가 선 바로 옆 칠판에 꽈당 소리 크게 내며 부딪히고 떨어집니다. 마음속으로 수학교사 머리에 맞으라고 빌었으나 오랫동안 책상을 든 탓인지 겨냥을 잘못했습니다. 책상을 들게 한 수학교사는 갖은 비아냥을 늘어놓았으나 이제부터 끽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책상을 내리라 말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들 책상이 없으니 혼자 자리에 털썩 앉습니다. 이렇게 남은 시간을 보냅니다.


.. 출판에는 과대 포장 규제가 없는데 사실 그런 규제가 좀 필요하다. 책을 겉표지로 판단할 위험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대부분 소비자들에게 책 표지 말고는 책을 평가할 다른 판단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 만약 저자의 컬러 사진이 겉표지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면 그 책은 백이면 백, 쓰레기다 ..  (149, 151∼152쪽)


 나한테 중학교 때 일 가운데 떠올릴 만한 일이라면, 연합고사를 마치고 나서 신나게 떠들던 우리 반을 나무라던 수학교사한테 책상을 던진 이때 한 가지 일입니다. 새까맣고 슬프기만 하던 세 해는 내 빛나는 열넷·열다섯·열여섯을 쭈그러뜨렸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떠올릴 만한 일이 있습니다. 이학년 때, 같은 반 동무가 다른 수업을 하는 자리에서 교과서 밑에 소설책을 놓고 읽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지루한 수업에, 따분한 수업에, 졸음 쏟아지는 수업에, 그냥 교과서를 읽는 수업에, 이 아이는 이렇게 오십 분을 부질없이 흘려보내지 않는 길을 아는구나 싶어 아주 크게 놀랐습니다. 기껏해야 공책이나 교과서에 낙서나 하며 보내던 나였지만, 이처럼 교과서 밑에 다른 책을 깔고 읽으면 되는 줄 비로소 알아챕니다.


.. 헤이에서 어떤 특정한 책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여기서는 나에게 다가오는 책만 찾을 수 있다. 원래는 그런 책이 있는지도 몰랐던 책들. 헤이에 오면 전에 한 번도 들어 본 적도 없는 책을 집어들고 … 이따금 나는 엉뚱한 데에 꽂혀 있는 책이나 분류가 안 된 책들 가운데에 보석 같은 책 몇 권이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 재능 있는 작가의 실패한 책에도 멋진 구절이 있을 텐데 그 구절은 무명의 깊은 바닷속에 침몰한 채 영영 물 밖으로 떠오르지 못한다 ..  (56, 114∼115, 270쪽)


 고등학생이 되었다 해서 달라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도드라지게 달라지는 일이 있습니다. 고등학생부터는 밤 열 시 오십 분까지 자율학습을 합니다. 중학생 때보다 50분을 더 합니다. 중학생 때보다 아침 일찍 보충수업을 한 가지 더 합니다. 교과서 가짓수는 더 촘촘히 늘어납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도 새로 지은 학교이지만 도서관이든 도서실이든 없습니다. 그러다가 이학년이 될 때에 조그맣게 도서실 하나 생깁니다. 기껏 갖춘 책이라 해 보았자 추천·필독도서라 할 테지만, 이나마 생긴 일이 더없이 반가우며 고맙습니다. 학교에 도서실이 생긴 일은, 이제 학교에서 ‘교과서 아닌 책을 소지품검사 때 빼앗기지 않으면서 읽을 수 있다’는 소리가 됩니다.


 (2) 참말로 책을 읽는다


 고등학교를 다니며 떠올릴 만한 일이라면, 소지품검사를 하면서 책을 빼앗던 일입니다. 교과서 아닌 책이라면 무턱대고 빼앗습니다. 흔하디흔한 릴케 시이건 황순원 소설이건 가리지 않습니다. 윤동주 시이든 박지원 소설이든 따지지 않습니다. 소지품검사를 끝없이 해대는 교사들 말을 빌면, 교과서가 아닌 책은 몽땅 ‘불온도서’이거나 ‘불량도서’입니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대학입시가 바뀝니다. 학력고사를 없애고 수학능력시험과 본고사가 생깁니다. 학력고사를 없앤다 하니 학생보다 교사가 더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이제껏 ‘쉽게’ 가르치던 틀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니까요. 그러나, 학력고사가 사라지고 수학능력시험이 되면서 ‘교과서 아닌 책을 읽도록’ 문교부에서 길잡이를 내리는 한편 ‘신문을 읽히도록’ 또다른 길잡이를 내립니다. 고등학교 이학년이 될 때부터는 소지품검사를 하며 책을 빼앗지 않습니다.


.. 옛날 사람들은 지금 쓰는 재료와는 성질도 한계도 전혀 다른 재료로 작업했다. 뿐만 아니라 촉감과 냄새도 다르다 … 오늘날 새로 지은 집을 보고 우리가 농담으로라도 이런 감상에 빠질 일이 있을까? 석고보드나 합판을 보고 숭엄함을 느끼게 되지는 않는다. 오늘날 쓰이는 건축 자재는 대부분 우아하게 나이들지 않는다. 그러라고 만든 재료도 아니고. 오직 새것처럼 보이게끔 만들어진 것이다 ..  (23, 28쪽)


 새로 바뀐 대입시험 틀 때문에 이학년부터 수업이 크게 바뀝니다. 처음에는 모든 대학교가 본고사를 치른다 했다가, 하나둘 발뺌을 합니다. 본고사까지 치르겠다는 대학교 숫자가 아주 줄어듭니다. 이에 따라 ‘수학능력시험에 나오는 과목’은 수업을 늘리고, 수학능력시험에조차 안 나오는 과목은 자율학습으로 돌리거나 다른 과목 보충수업으로 뺍니다. 이러면서 제2외국어를 안 가르칩니다. 나는 본고사까지 치러야 하고, 본고사에서 제2외국어 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학교에서는 수학능력시험에 제2외국어가 나오지 않을 뿐 아니라 본고사를 치르는 대학교는 몇 군데 없으니 ‘학생 형평’에 따라 제2외국어를 더는 안 가르치겠다고 합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에서 제2외국어 본고사를 치러야 할 학생은 나까지 해서 딱 둘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학원에 다니기로 합니다. 영어 가르치는 학원은 많아도 제2외국어를 가르치는 학원은 없지만, 새로 생긴 본고사 때문에 ‘본고사 제2외국어 특별반’이 새로 생깁니다. 인천시내에서 본고사 제2외국어를 맞이해야 하는 아이들이 학원으로 모입니다. 일본말이나 프랑스말을 배우는 반은 두엇쯤 생기고, 독일말을 배우는 반하고 스페인말을 배우는 반이랑 러시아말을 배우는 반은 딱 하나씩 생깁니다. 우리 반에는 열다섯쯤 나옵니다.

 학원 독일말 강사는 교과서를 교재로 쓸 수 없다 말하고, 당신이 아는 가장 마땅하다는 교재 하나를 이야기하며, 다음 수업까지 이 교재를 사오라 합니다. 동무하고 나는 인천시내 새책방을 모조리 훑으며 독일말 교재를 찾습니다만, 어디에서도 이 교재를 팔지 않습니다. 다음 수업에서 이 교재를 파는 책방이 없다고 이야기하니, 독일말 강사가 하는 말, “헌책방은 가 봤니? 헌책방에 가 보고 없다고 하니?”

 “네? 헌책방이요?” “그래, 헌책방.” “헌책방에는 안 가 봤어요.” “헌책방에 가 봐. 다음 수업에는 꼭 사서 와야 한다.”

 독일말 교재를 사러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로 갑니다. 이무렵 열 군데 즈음 있던 헌책방을 샅샅이 살피고 뒤지지만 독일말 교재는 좀처럼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헌책방에도 없는가 생각하며 풀이 죽습니다. ‘학교에서 정규과목 그대로 가르치면 괜히 다리품 판다며 길에서 시간을 버리지 않잖아. 이게 무슨 짓이람.’ 이제 헌책방은 한 군데 남습니다. 마지막 헌책방으로 들어섭니다. 풀이 죽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자습서 꽂힌 자리를 서성입니다. 어. 있다. 있네.

 찾디찾던 독일말 교재가 하나 보입니다. 게다가 두 권입니다. 두 권을 모두 집어들고 가슴에 포옥 안습니다. 이렇게 있구나. 이렇게 만날 수 있구나. 설레면서 부푼 마음으로 교재 값을 치릅니다. 얼른 공중전화로 동무네 집에 전화해서 알려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헌책방을 나서기 앞서 문득 뒤를 돌아봅니다. 이렇게 고마운 일이 다 있나 싶어서, 그저 기뻐서.


.. 아무튼 할머니는 우리가 시골로 이사를 해서 (당신 손자) 모건이 시골에서 자라게 되었다는 소식에 반가워한다. “시골에서 보내는 어린 시절이라, 어른이 되고 나면 결코 누릴 수 없는 것이지.” 할머니가 말한다. “돈이 많은들 무슨 소용이냐, 안 그러니? 나는 절대 도시에서는 못 산다.” … 로마제국 전성기에 자기 뜻으로 로마를 떠난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니면 100년 전 런던을 등진 사람은? 제국에는 끌어당기는 중력이 있어 만물을 그 중심으로 끌어들인다 ..  (95, 272쪽)


 독일말 교재 두 권을 품에 안고 나오는 길에 뒤돌아본 헌책방 책시렁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내 눈에는 교과서와 교재는 하나도 안 꽂힌 ‘여느 책들’이 한가득 보입니다. 학교 도서실을 비웃는 듯한, 인천 시내 구립도서관은 아무것 아니라는 듯한, 여느 책들이 골고루 한가득 꽂힌 책시렁이 보입니다.

 알 수 없는 커다란 덩이가 가슴에 내려앉습니다. 기뻤던 마음이 천천히 가라앉습니다. 책방 문을 열고 나섭니다. 동무한테 전화합니다. 동무는 몹시 좋아합니다. 다음주부터 학원에서 아주 홀가분하게 독일말을 배웁니다. 이듬해 본고사를 치릅니다. 본고사에 나오는 제2외국어 시험은 문제 눈높이가 꽤 높습니다. 학원에서는 초급을 배웠다고 한다면, 시험은 고급이라 할 만합니다. 도무지 모르는 낱말투성이에다가 문제를 읽을 수 없습니다. 본고사를 치르는 내내 ‘학교에서 정규과목으로 배웠으면 더 몰랐겠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 식스펜스 (하우스)는 사랑과 돈을 충분히 쏟으면 아주 멋진 집이 될 것이다. 하지만  두 가지 다 우리에게는 여유가 없다. 우리한테는 아기가 있고, 아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아이보다 더 많은 관심을 필요로 하는 집에 살아서는 안 될 것이다 ..  (255쪽)


 독일말 교재를 찾아낸 날은 1992년 7월 27일. 꼭 한 달이 지난 1992년 8월 28일에 헌책방을 다시 찾아갑니다. 학교에서는 학원에 간다는 핑계를 대고 토요일 한 시에 빠져나옵니다. 수험생은 토요일에도 자율학습에 붙잡힙니다.

 자율학습을 빼먹고 찾아가는 헌책방에서 해가 지도록 한 자리에서 꼼짝을 하지 않습니다. 교과서와 자습서에서 이름만 듣던 숱한 시쟁이 소설쟁이 글쟁이 책을 만난 놀라움과 기쁨과 벅참과 보람에 눈을 떼지 못합니다. 이제껏 이름을 듣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책에 박힌 눈을 떨어뜨리지 못합니다. 헌책방 아주머니가 “이제 문 닫을 시간입니다. 나가 주세요.” 하고 부를 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안수길 장편소설과 박은식 《한국통사》를 사들고 헌책방을 나섭니다. 깜깜해진 밤거리를 걷습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내 조그마한 가슴에 스며든 울렁이는 책씨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시원한 여름 저녁바람을 쐬면서 집까지 천천히 걸어갑니다. 이제 비로소 책을 만났다는 생각에, 이제부터 참말 책을 읽는다는 생각에,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책을 모르며 살았으며, 내 열여덟이 그동안 얼마나 어둡고 가녀렸는가 하는 생각에, 곰곰이 중얼중얼 읊으며 길바닥을 내려다보고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두 시간쯤 될 길을 천천히 걸어서 집으로 갑니다.

 찻길을 내달리는 불 밝힌 버스에는 나와 닮은 수험생이 가득 실렸습니다. 학교옷을 입고 무거운 가방을 들었으며 파리하게 지친 얼굴입니다. 가벼운 발걸음을 보여주는 내 또래는 보이지 않습니다. 무거운 가방처럼 무거운 발길을 질질 끕니다. 어깨에 머리에 가슴에 발에 손에 온통 무겁디무거운 납자루를 쥔 꼴입니다.

 내 가방에도 갖가지 교과서와 참고서와 사전이 들었습니다. 이십 킬로그램은 될 듯 아주 무겁습니다. 여기에 헌책방에서 8500원어치 장만한 책 몇 가지 얹혔습니다. 밤길을 거닐며 길거리 등불 빛에 기대어 《한국통사》를 읽습니다.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느작하느작 걷습니다. 자동차들이 윽박지르듯 마구 달리건 말건 나는 책에 빠져듭니다. 교과서에는 딱 한 줄로 지나가는 박은식이라는 이름으료 《한국통사》라는 책이름이지만, 나는 오래오래 곰삭이면서 책 하나로 마주합니다.

 책을 읽는다 할 때에는 사람을 읽는다는 뜻이요, 삶을 읽는다는 뜻이며, 사랑을 읽는다는 뜻입니다. 열여덟 고등학교 이학년 푸름이가 되어서야 이 뜻을 살짝 들여다봅니다.


 (3) 책마을에서 길을 잃었다는 책을 읽다


 폴 콜린스 님이 쓴 《식스펜스 하우스》(양철북,2011)를 읽습니다. 옆지기랑 두 아이랑 살아가는 바쁜 나날을 쪼개어 읽습니다. 둘째가 태어난 뒤 집일을 도맡을 뿐 아니라 옆지기 몸풀이까지 도맡았습니다. 두 달 남짓 하루에 글 한 줄 읽기란 얼마나 힘들며 빠듯한가를 느끼는 한편, 하루에 글 한 줄 읽을 수 있는 일이란 얼마나 큰 고마움이요 아름다움인가를 느낍니다.

 둘째가 태어나고 석 달이 거의 가까울 무렵, 내 몸이 많이 무너집니다. 이동안 옆지기는 첫째랑 멧자락 마실을 다니면서 몸이 많이 좋아집니다. 내 몸이 많이 무너져 이제 집일을 건사하지 못할 만큼 될 즈음, 옆지기가 씩씩하고 힘차게 집일을 맡아 줍니다. 끙끙 앓으며 드러누운 채 옆지기가 집일 하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몸이 아픈 사람이 몸이 튼튼한 사람을 바라보는 눈높이를 몸으로 겪습니다. 일하는 사람도 힘들다 할 테지만, 일을 할 수 없이 지켜보기만 하는 사람 또한 더없이 힘든 나날인 줄 시나브로 느낍니다.

 아픈 몸을 달래면서 모로 누운 채 《식스펜스 하우스》를 읽습니다. 세 식구가 오순도순 사랑스레 지낼 보금자리를 찾아 먼길을 나섰다가 슬프게 제자리로 돌아오는 이야기를 읽습니다. 책마을에서 길을 잃었다기보다 폴 콜린스 당신 삶자락에서 길을 잃었구나 싶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글쓴이 폴 콜린스 님은 당신이 길을 잃은 이야기를 숨기지 않습니다. 당신처럼 길을 잃은 사람들 이야기이든, 아니면 길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제 길을 걷는다는 책마을 사람들 이야기이든, 덧보태거나 깎지 않고 수수하게 들려줍니다.


.. “초콜릿은 어디 있어요?” 계산대 뒤에서 주인 아주머니가 한숨을 짓는다. “아, 떠나요. 문을 닫게 됐어요.” 아주머니가 슬프게 말했다. “하지만, 하지만 …….” 나는 말을 더듬으며 조그만 문방구 안을 둘러본다. “이 가게는 150년 된 가게잖아요!” “맞아요, 그리울 거예요.” 아주머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한다. 오래된 가게는 곁길로 밀려나고, 그걸 막을 방법은 아무 데도 없다 … 어쩐지 다이애나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자, 이 이야기를 지켜 주세요. 혹시 내가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니까 ..  (301, 307∼308쪽)


 길을 잃었대서 바보가 되지 않습니다. 길을 잃은 줄 깨닫지 못하거나 길을 잃었으면서 ‘길을 잃었다는 대목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에 바보가 됩니다.

 길을 잃었기에 길을 찾습니다. 예전 길이든 새로운 길이든, 내가 살아갈 길을 찾습니다. 사랑하는 짝꿍이 있으면 둘이 살아갈 길을 찾습니다. 사랑하는 짝꿍하고 낳은 아이가 있으면 셋이나 넷이 살아갈 길을 찾습니다.

 길을 쉬 보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쉬 보이는 길이 꼭 걸을 만하지는 않습니다. 길은 좀처럼 안 보일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안 보이는 길을 찾아 헤매는 나날이 나 스스로 모르던 내 삶길을 조용히 걷던 나날일는지 모릅니다.

 폴 콜린스 님네 세 식구는 새 보금자리를 찾아 미국에서 영국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갑니다. 우리 네 식구는 멧골짜기에 깃든 자그마한 집에서 한 해를 살았는데, 이곳을 떠나 새로 깃들 보금자리를 찾습니다. 도시는 너무 힘들어 시골로 왔는데 다시 도시로 갈 수 없습니다. 마시는 바람과 물과 햇살부터 다르고, 밟거나 스치는 풀줄기부터 다르기에, 도시로 돌아갈 마음이 없습니다. 더 낫거나 더 좋거나 더 깊다 할 시골보다, 우리 네 식구가 조용하면서 아늑하게 어우러질 만한 사랑스러운 시골 보금자리를 찾고 싶습니다. 텔레비전을 모시지 않는 우리 식구가 새소리와 바람소리와 풀벌레소리를 맞아들일 만한 시골 보금자리를 찾고 싶습니다. 자가용을 섬기지 않는 우리 식구가 자전거와 두 다리를 사랑스레 즐길 만한 시골 보금자리를 찾고 싶습니다. 옆지기가 아이 손을 잡고 오르내리면서 찬거리 삼을 풀을 뜯을 멧골이 있는 시골 보금자리를 찾고 싶습니다. 마당 한켠에 나무를 심고 빨랫줄을 드리우며 해바라기를 즐길 만한 시골 보금자리를 찾고 싶습니다.

 옆지기 몸이 시골살이에 발맞추어 차츰차츰 푸른 빛깔을 띄기에, 옆지기가 나중에 둘째를 태우고 다닐 자전거를 새로 장만했습니다. 천천히 푼푼이 모아 이 자전거에 조그마한 수레를 달아야지요. 천천히 푼푼이 돈을 모으는 동안 옆지기는 이 자전거를 사랑하면서 살뜰히 껴안겠지요.

 자전거길이 따로 없어도 됩니다. 우리는 자전거길을 달리지 않아요. 이 나라 모든 사람들이 자가용을 장만해서 고속도로를 달려도 아랑곳할 까닭이 없어요. 우리는 호젓한 시골길을 자전거 두 대로 천천히 달리면 돼요.

 《식스펜스 하우스》를 쓴 폴 콜린스 님은 돈이 없거나 적으니까 헤이온와이에서 좋은 보금자리를 마련하지 못했지만, 폴 콜린스 님은 돈이 없거나 적기 때문에 헤이온와이를 더 깊이 바라보면서 사랑할 수 있었고, 더 따스히 어루만지면서 아끼는 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4344.8.14.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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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5 1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1-08-15 12:28   좋아요 0 | URL
저희는 수레(트레일러)를 하나 새로 장만해야 해요. 그동안 쓰던 수레가 워낙 오래되었고 낡았거든요.

(ㄱ) http://itempage.auction.co.kr/detailview.aspx?itemNo=A562174467
=> schwinn 이라고 하는 미국 거예요.

(ㄴ) http://www.11st.co.kr/product/SellerProductDetail.tmall?method=getSellerProductDetail&prdNo=96317260&nv_pchs=iYU/RLPUz6gdZjDzgMNuzBPkxF7liIuU
=> 얘는 90만 원이 넘는데 @.@ 되게 좋아 보이기는 하더군요.

(ㄷ) instep 것 : 저희가 쓰는 수레는 이 회사 것인데, 가장 큰 녀석이에요. 이 녀석은 무게가 22kg이고 48kg까지 태워요. 두 아이를 태우지요. 바퀴 옆이 알루미늄 봉으로 되어서 옆에서 차가 받거나 어디에 부딪혀도 조금 안전해요. 길에서 구멍에 빠져 한 바퀴 돈 적 있는데, 이 알루미늄 봉이 톡톡히 제구실을 하더라고요 ^^;;;;;;; 튼튼하기는 인스텝 트레일러가 가장 튼튼할 텐데, 보기에는 가장 투박하답니다. 그리고 몇 킬로그램이 더 무거워요.

..

수레를 달 때에는 자전거 바퀴가 20인치만 넘으면 돼요. 앞에서 끄는 사람이 꾸준하게 타면서 다리힘을 길러 주면 되고요. (ㄷ) 인스텝 것도 사십만 원은 주어야 살 수 있어요.

아기를 태우고 '안전'하게 잘 달릴 수 있는 수레를 '더 싼 녀석'으로 사면, 나중에 되팔거나 안 쓰게 될 수 있어요. 경험으로 하는 말입니다 ^^;

돈이 된다면 (ㄴ)을 90만 원 남짓 주고 장만할 수 있고, 돈이 좀 적다면 (ㄱ)이나 (ㄷ) 가운데 하나를 하시면 좋으리라 생각해요. 트레일러를 매장에서 갖추어 파는 곳이 드물어, 거의 인터넷으로만 사야 하는데, 잘 골라야 해요. 눈이나 사진으로 볼 때하고 실물은 아주 달라요.

그리고, (ㄱ)이든 (ㄴ)이든 (ㄷ)이든 수레 무게는 20킬로그램 안팎이니까, 꽤나 운동을 많이 해야 아이를 자전거 수레에 태울 수 있어요.

그리고, 아이를 수레에 태우려면 두 돌은 지나야 합니다~! 두 돌이 되기 앞서까지는 안 태우거나, 자전거에 '아기 걸상'을 붙여야 하지요~

숲노래 2011-08-15 12:42   좋아요 0 | URL
그나저나 어느새 돌이네요 @.@

힘든 나날 이제부터 더 힘들어지면서 좋아지리라 믿어요.
저희는 요새 "아나스티아사" 여섯 권을 읽어요.
이미연 선생님도 한 번 이 책을 찾아서
천천히 잘 새겨 보셔요.

좋은 길 즐거이 찾으시리라 믿어요~

2011-08-16 1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1-08-18 04:41   좋아요 0 | URL
아나스타시아를 읽으려면,
먼저 내 마음을 착하게 열어야 해요.
그냥 좋은 읽을거리로만 여길 때에는
이 책에서 들려주려는 맑은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없어요.

그러니까, 나 스스로 내가 살아가는 곳에서
맑게 마음을 열면서
고운 소리를 헤아리는 길을 찾을 때에는
아나스타시아를 읽지 않고도
아나스타시아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셈이 된답니다~
 
은하철도의 밤 - 푸른문고 14 푸른문고 34
미야자와 겐지 지음, 김유영 옮김, 김주형 그림 / 푸른나무 / 1997년 5월
평점 :
절판




 아픈 눈길로 바라보며 껴안는 동무
 [어린이책 읽는 삶 4] 미야자와 겐지, 《은하철도의 밤》(푸른나무,1997)



- 책이름 : 은하철도의 밤
- 글 : 미야자와 겐지
- 옮긴이 : 김유영
- 그림 : 김주형
- 펴낸곳 : 푸른나무 (1997.5.1.)
- 책값 : 판 끊어짐



 (1) 가난한 삶


 아이들한테 만화영화를 보여주면서 한국말로 나오는 일이 영 달갑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라밖 만화영화에 한국말을 넣을 때 옳거나 바르거나 알맞거나 살갑거나 곱거나 깨끗하다 싶은 한국말로 가다듬거나 추스르는 일은 아예 없기 때문입니다.

 네 살 아이가 한국말을 익히자면, 함께 만화영화를 볼 때에 한국말로 들어야 더 낫다 여길 만합니다. 그렇지만, 네 살 아이일 때부터 엉터리 한국말을 자꾸 들어야 한다면, 제아무리 아름답다 싶은 만화영화라 할지라도, 이를테면 〈이웃집 토토로〉 같은 만화영화라 하더라도 한국말로는 들려주기 싫습니다. 그냥 일본말로 듣고 느낌과 마음으로 이야기를 읽도록 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아무나 만나지는 않습니다. 온갖 사람을 스친다 하더라도 아무하고나 사귀지는 않습니다. 어떤 이는 우리 아이를 바라보며 귀엽다며 ‘엉터리 말투’로 이야기를 걸곤 합니다. 이럴 때 아버지는 곁에서 아이한테 사잇말을 건넵니다. ‘엉터리 말투’를 걸러서 아이한테 들려줍니다.

 시골집으로 찾아온 택배회사 일꾼이 아이보고 ‘바이바이’라 하건 ‘안녕’이라 하건, 아버지는 아이 곁에 서서 “‘잘 가셔요’라 해야지.” 하고 말합니다. 어른들은 으레 아버지가 이렇게 이르는 말마디가 ‘어른한테 높임말을 쓰도록 하는’ 줄 여기지만, 높임말에 앞서 옳게 말을 해야 하기에 옳게 말하도록 이끌 뿐입니다. 할머니나 할아버지한테 하는 인사라면 “살펴 가셔요.”라 말하도록 합니다.

 우리 두 아이는 아무런 보육시설을 다니지 않습니다. 아무런 보육시설을 다니지 않으니 나라에서 두 아이한테 ‘보육시설 미이용 가구 지원’ 정책에 따라 다달이 십만 원 남짓 줍니다. 두 아이가 보육시설을 다닌다면, 두 아이는 보육시설에 들여야 하는 돈을 몽땅 받을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두 아이를 보육시설에 넣는다 할 때에는 돈이 한푼조차 안 들 뿐 아니라, 집에서 아이들 뒤치다꺼리 하느라 힘들이지 않아도 돼요.

 다만, 두 아이를 보육시설에 넣는다면, 두 아이가 날마다 새롭게 크는 모습을 마주할 수 없습니다. 두 아이가 어떤 말을 들으면서 배우는지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두 아이가 어떤 모습과 삶을 바라보면서 어떠한 모습과 삶에 길들거나 익숙해지는가를 가늠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보육시설에 넣을 두 아이는 어버이가 자가용을 몰고 데려다주고 데리러와야 합니다.


.. 죠바니는 조금 더 먹고 싶었지만 사양했습니다. 언젠가 제과점 유리창에서 과자를 바라보며 침을 삼키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자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 ‘빙산이 흐르는 북쪽 바다에서 자그마한 배를 타고서, 바람이랑 얼어붙는 바다랑 혹독한 추위랑 누군가 열심히 싸우고 있었구나.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그 사람들이 정말로 불쌍하구나.’ ..  (106, 127쪽)


 자가용 없는 우리 살림에 읍내나 면내까지 아이들을 데려다주었다가 데리러올 수 없습니다. 더구나, 이러고 싶지 않습니다. 보육시설이라는 데에서는 아이들 오줌가리기를 하지 않으며, 아이들이 마음껏 놀고 뛰도록 하기보다는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니까 달갑지 않습니다. 이 어린 아이들이 어린 나날부터 영어에 익숙하도록 내몹니다. 이 어린 아이들이 시골 아이라 하든 도시 아이라 하든 도시 자본주의 물질문명에 젖어들도록 이끕니다. 시골 어린이집이라서 논밭에서 일한다거나 멧골짜기를 탄다든지 하지 않아요. 숲을 쏘다닌다든지 나무랑 사귀지 않습니다. 목돈 들여 지은 시설에 갖춘 플라스틱이나 쇠붙이 놀잇감을 갖고 놀 뿐입니다. 여느 보육시설에 아이를 넣는다면, 이때부터 초등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아이들은 호미이든 낫이든 쟁기이든 손에 쥘 일이 무척 드뭅니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치고 흙하고 가까워지기란 참으로 힘듭니다.


.. 죠바니는 표지판과 지도를 비교해 보고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나 죠바니는 왠지 모르게 옆에 있는 새 사냥꾼이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백로를 잡아 보자기로 둘둘 말아 가지고 와서 기뻐하다가, 이까짓 표 한 장에 깜짝 놀라 곁눈질로 보며 나를 부러워 하다니. 아마 저 사람은 생활이 너무 어려워서 이런 표조차 구할 수 없었던 거야.’ 죠바니는 돌아오시지 않는 아버지와, 집에 누워 계신 어머니,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누나와 자기 자신을 생각하자, 그 새 사냥꾼의 처지가 마치 자기 일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죠바니는 처음 보는 그 새 사냥꾼을 위해 자기가 가지고 있는 표든, 그 무엇이든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118쪽)


 어버이로서 생각합니다. 우리 식구가 굳이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애써 안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난하든 가난하지 않든 늘 세 가지 마음밭을 돌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참답게 살아야 합니다. 둘째,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셋째, 아름답게 살아야 합니다.

 세 가지 마음밭을 일구면서 가난하든 가멸차든 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 세 가지 마음밭을 일구지 않는다면, 가난하게 살아도 슬프고 가멸차게 살아도 딱하다고 느껴요.

 새옷을 사입지 못하면 어때요. 좋은 이웃이나 동무한테서 헌옷을 얻어 입히면 즐겁습니다. 바깥밥을 사먹이지 못하면 어때요.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읍내 장마당에 다녀오며 집에서 차리는 밥으로 함께 배부르면 넉넉합니다.

 자가용을 타고 멀리멀리 마실을 못 다니면 어때요.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이 손을 잡으며 멧길을 오르내리면서 멧바람을 시원하게 쐬면 됩니다. 멧길을 오르내리다가 멧풀을 조금 뜯어 밥거리를 삼으면 기쁩니다.

 가난하대서 풀을 뜯어먹지 않습니다. 가멸차기에 풀을 안 뜯어먹지 않습니다. 아름답게 살고 싶으니까 멧자락 조그마한 집을 찾아들어 네 식구가 아옹다옹거립니다. 참답게 살고 싶기에 좋은 돈벌이라 하는 일자리는 등을 지면서 복닥거립니다. 착하게 살고 싶어 자전거를 아끼며 사랑합니다.


.. 그러다가 이 아이들에게는 세상을 살아가는 행복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앞으로 헤쳐 나갔습니다 … 결국 나는 이 아이들을 부둥켜안고 단단히 각오를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의 자리를 빼앗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지요 ..  (126쪽)


 나는 자전거 한 대만 있으면 좋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고픈 데에는 다 갈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기 힘들다면 버스를 얻어탑니다. 도시에서는 전철도 탑니다. 택시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되도록 버스도 전철도 택시도 타고 싶지 않습니다. 웬만하면 네 식구가 나란히 걷고 싶습니다. 네 살 딸아이하고 둘이 돌아다닐 때에는 자전거에 수레를 붙여 함께 다니면 됩니다. 어찌 보면 우리 살림이 가난하기에 이렇게 살아간달 수 있는데, 앞으로 어찌저찌 우리 살림이 가멸차게 되는 날을 맞이하더라도 오늘과 같은 삶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에어컨을 쐬면 몸이 아프지만, 멧바람을 쐬면 몸이 즐겁습니다. 햇볕을 쬘 때에 몸에서 기운이 납니다. 흙을 사랑하는 시골자락에서 흙 밑으로 흐르는 물을 길어올려 마시거나 몸을 씻을 때에 개운합니다. 구름을 이끄는 바람이 고맙습니다. 빗물과 나비와 개구리와 들풀이 반갑습니다.


 (2) 가난한 문학


 미야자와 겐지 님이 쓴 《은하철도의 밤》(푸른나무,1997)을 읽습니다. ‘푸른나무’에서 1997년에 나온 책은 어느새 판이 끊어집니다. 어린이가 함께 읽도록 조금 굵직한 글씨에다가 그림을 곁들인 예쁘장한 《은하철도의 밤》은 헌책방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참 아쉽지만, 이러한 모습이 우리 나라 모습입니다. 숨길 수 없는 모습입니다. 감출 수 없는 삶입니다.


.. “우리들은 이제 그 어떤 슬픔도 없을 거야. 우리는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여행하면서 바로 하느님이 계신 곳으로 가는 거야.” … “하지만 우리들은 여기에서 내리지 않으면 안 돼. 여기는 천상으로 가는 곳이니까.” “천상에 가지 않아도 되잖아? 우리들은 이 땅에서 천상보다 더 좋은 곳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어.” “하지만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하느님이 계시잖아?” “그런 하느님은 가짜 신이야.” 두 아이가 티격태격하는 것을 보고 청년이 타이르듯 가로막았습니다 ..  (123, 157∼158쪽)


 《은하철도의 밤》을 천천히 읽으며 천천히 새깁니다. 내가 내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깊은 밤 까만 하늘 밝은 별 이야기를 글로 쓴다면 이렇게 《은하철도의 밤》을 쓸 수 있을까 하고 곱씹습니다. 미야자와 겐지 님이 사람들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일까 헤아립니다. 어떤 목소리로 글을 썼고, 어떤 숨결로 책을 냈으며, 어떤 눈빛으로 이야기를 얻었을까요.

 미야자와 겐지 님이 커다란 도시에서 살았대도 《은하철도의 밤》을 일굴 수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이제 거의 모든 일본사람이나 한국사람은 도시에서 살아가는데, 더군다나 커다란 도시에서 살아가는데, 오늘날 《은하철도의 밤》은 얼마나 읽히고 어떻게 읽힐까 궁금합니다.

 한낱 독서감상문 숙제를 써야 하기에 읽히는 책이 되나요. 손꼽히는 고전 가운데 하나라 일컬으니까 읽는 책이 되나요.

 책이면 책이지, 독서감상문 숙제는 없습니다. 책이면 책일 뿐, 고전이란 없습니다.

 훌륭한 사람도 없고 거룩한 사람도 없습니다. 내 어머니는 그예 내 어머니입니다. 내 아버지는 그저 내 아버지예요. 어머니는 어머니로 사랑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로 좋아합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로 살포시 껴안고, 옆지기는 옆지기로 따스히 어깨동무합니다. 함께 살아갈 기쁜 길동무입니다. 그러니까, 삶동무입니다.


.. “그렇지만 참다운 행복은 도대체 뭘까?” … “참다운 행복을 위해서라면, 나는 이제 저런 커다란 어둠 속도 무섭지 않아. 어디까지라도 함께 나아가는 거야.” … 두 별님은 떨어지면서도 단단히 서로의 무릎을 꽉 잡았습니다. 이 쌍둥이 별님은 어디까지라도 함께 떨어지려고 했던 것입니다 ..  (162∼163, 185쪽)


 두 아이한테 아버지가 되어 살아가는 오늘을 돌이키며 다시금 생각합니다. 그래요. 아버지는 아이한테 얼토당토않은 한국말이 흐르는 만화영화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요 며칠 몸이 너무 아파서 아이한테 그림책 한 번 읽어 주지 못하며 지나가는데, 《은하철도의 밤》 같은 작품을 천천히 조곤조곤 읽히면서 한국말을 한국말다이 느끼도록 하고 싶습니다. 잘 옮긴 대목은 그대로 읽고, 아쉽다 싶은 대목은 죽죽 금을 긋고는 새말을 적으면서 천천히 조곤조곤 읽히고 싶어요.

 문학이란 말꽃이거든요. 문학이란 삶말이거든요.

 살아가는 말이 꽃처럼 피면서 문학이 됩니다. 살아숨쉬는 말이 열매를 맺으며 문학으로 빛납니다.

 미야자와 겐지 님 문학은 온누리 가난한 어버이들하고 함께 살아가는 가난한 아이들한테 맑은 빛과 밝은 꿈을 나누고 싶어 《은하철도의 밤》 같은 이야기열매를 빚지 않았겠느냐 생각합니다. 두 아이 아버지는 두 아이한테 빛나는 이야기열매를 사랑스레 들려주면서 내 삶과 아이 삶을 가꾸어야 즐겁고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 “저 거친 세상에서 단 하나 있는 참다운 표를 결코 잃어서는 안 된다 … 자, 돌아가서 쉬어라. 너는 꿈 속에서 결심한 대로 곧장 나아가는 게 좋겠다.” ..  (169쪽)


 8월에 우는 밤녘 풀벌레 소리를 듣습니다. 밤녘에는 자동차 소리가 잦아들기에 풀벌레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립니다. 때때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집 앞 두릅나무 잎사귀를 흔듭니다.

 아, 이 소리들과 함께 우리 살붙이하고 고즈넉하게 살아가는 나날이 가없이 고맙습니다. 아이들은 저희도 모르게 몸과 마음으로 스며드는 멧새 소리와 개구리 소리와 풀벌레 소리와 바람 소리와 도랑물 소리와 벼락 소리와 구름 소리와 뙤약볕 소리를 골고루 맞아들이면서 무럭무럭 자라겠지요.

 몸이 튼튼할 때에는 이 모든 소리와 기운에 힘입어 즐거이 사랑을 나누고, 몸이 여리거나 아플 때에는 이 모든 소리와 기운을 떠올리며 즐거이 사랑을 받을 수 있기를 빕니다. 튼튼한 몸일 때에도 여리거나 아픈 몸일 때에도, 한결같이 사랑스레 손과 눈과 마음과 꿈을 나누는 목숨붙이로 자라기를 빕니다. (4344.8.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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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가 꽃피는 마을 - 청각장애인 푸르네 가족과 어느 특별한 마을 이야기 장애공감 1318
자닌 테송 지음, 정혜용 옮김 / 한울림스페셜 / 2010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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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아이와 사랑하며 살아갈 소리
 [푸른책과 함께 살기 86] 자닌 테송, 《수화가 꽃피는 마을》(한울림스페셜,2010)



- 책이름 : 수화가 꽃피는 마을
- 글 : 자닌 테송
- 옮긴이 : 정혜용
- 펴낸곳 : 한울림스페셜 (2010.4.5.)
- 책값 : 9000원



 (1) 사람이 살아가는 소리


 우리 집 아이는 아버지가 끄는 자전거를 함께 탑니다. 아버지가 끄는 자전거 뒤에 수레를 달고, 이 수레에 아이가 앉습니다. 수레랑 자전거가 낑낑거리며 멧등성이를 넘고, 멧자락 꼭대기부터 신나게 내리막을 달립니다. 아버지가 자전거를 끌며 바람을 맞아들일 때에 아이도 바람을 맞아들입니다. 아버지가 자전거를 끌 때에 햇살을 받아들이면 아이도 햇살을 받아들입니다.

 우리 집은 자가용이 없습니다. 우리 집은 자가용을 마련할 돈이 없습니다. 우리 집은 자가용을 장만할 생각이 없습니다. 우리 집에 자가용 마련할 만한 돈이 생긴다 하더라도 자가용을 마련할 뜻이 없습니다.

 여느 때에는 걸어다니면 됩니다. 때때로 자전거를 몰면 됩니다. 다리가 아프거나 짐이 많으면 버스를 탑니다. 몸이 지치거나 벅차면 택시를 부릅니다.

 걸어다닐 때에는 바람소리와 풀소리와 벌레소리와 새소리와 하늘소리를 골고루 듣습니다. 자전거를 탈 때에는 시원한 맛과 땀흘리는 맛을 찬찬히 느낍니다. 제법 먼길을 퍽 금세 오갑니다. 버스나 택시를 얻어 타면, 돈 몇 푼을 들여 이 멀디먼 길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며 다닐 수 있다고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그렇지만 적잖이 두렵습니다. 가까운 길이든 머나먼 길이든, 자동차를 타고 이처럼 쉬 오가도 되는지 두렵습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금을 긋듯 자동차로 싱 달리면서 이곳과 저곳 사이에서 살아숨쉬는 내 이웃과 뭇 푸나무와 벌레와 짐승을 몰라보아도 되는가 싶어 두렵습니다.


.. 내가 왜 청각장애인들에게 집을 팔았을까? 그거야, 아내가 세상을 뜬 뒤로 집을 팔려고 애를 쓰고 있었으니까. 3년 동안이나 말이다.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은 매번 너무 시끄럽다고 했다. 바로 근처에 깔아 놓은 그 엉터리 같은 고속도로 때문이었다 ..  (7쪽)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매미가 우는 소리가 늘 같지 않으면서 노상 새로운 줄 느낍니다. 매미가 우는 소리가 시끄러워 갓난쟁이가 잠들지 못하는 일은 없습니다. 풀벌레가 울든 새가 울든 개구리가 울든 닭이 울든, 이러한 소리를 들으면서 갓난쟁이가 시끄러워 하지 않습니다.

 문을 모조리 닫고 귀를 막아도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는 크게 들립니다. 집안에 텔레비전이 있다면 이 기계에서 나는 소리는 퍽 크게 들릴 테지요. 자동차가 부아앙 바퀴 굴리는 기계 소리를 내며 지나갈 때에는 시끄럽다 느끼고, 아이도 깜짝깜짝 놀랍니다. 텔레비전이 켜진 데에서는 아이가 쉼사리 잠들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나라 삶터를 이루는 거의 모두는 도시입니다. 자동차가 북적거리는 도시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시골 읍내에도 자동차가 많습니다. 시골 바깥자락에도 자동차가 꽤 많습니다. 자동차 없는 대한민국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자동차 없는 살림집이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겠지요. 집에 텔레비전을 모시지 않는 사람이 드물듯, 집에 자가용 안 굴리는 사람이 몹시 드물겠지요.

 집 바깥으로 나가 읍내 장마당 마실을 하든, 볼일을 보러 조금 멀리 마실을 하든, 바깥에서 사람을 만날 때마다 두렵습니다. 이렇게 자동차로 넘실거리는 곳에서 사람들이 어떤 소리를 듣는지 두렵습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며 무엇을 받아들이는지 두렵습니다. 옆지기가 시골집에서 살아가자 이야기를 해서 시골집으로 옮긴 우리 살림인데, 시골집으로 들어오지 않고 도시에 그대로 남았으면, 우리 네 식구는 어떤 소리와 어떤 기운과 어떤 복닥거림에 휩쓸리면서 지치거나 나가떨어졌을까 싶어 두렵습니다.


.. “이 나이가 되어서야 청각장애인들이 있다는 걸 발견했으니 얼마나 멍청한가. 그 사람들은 예전부터 늘 있어 왔는데 말이야!” ..  (14쪽)


 시골에는 일거리가 없다고 여깁니다. 옳게 바라보자면, 시골에 일거리가 없을 수 없습니다. 시골에는 일거리가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다만, 시골에는 돈거리가 드뭅니다. 돈이 될 거리가 적습니다.

 도시에는 일거리가 많다고 여깁니다. 바르게 살피자면, 도시에 일거리가 많을 수 없습니다. 도시에는 돈거리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러니까, 도시에는 일거리 아닌 돈거리가 많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꾸 도시로 몰려듭니다. 땀흘려 일을 하는 아름다움을 누리려는 사람들보다는, 더 느긋하게 먹고살겠다는 꿈을 꾸는 사람이 훨씬 많을 뿐더러, 이 나라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는 ‘일거리’ 아닌 ‘돈거리’만 보여주면서 가르쳐요.

 우리 집 두 아이를 학교로 보내야 하는가를 놓고 늘 망설입니다. 유아원이든 유치원이든 어린이집이든, 아무 데도 아이를 넣지 않으며 지냅니다. 시골집에서 함께 살아갑니다. 시골집에서 함께 복닥이면서 떠듭니다. 나와 옆지기는 우리 두 아이가 ‘돈거리 잘 얻어 돈 많이 벌어들일 사람’이 되기보다는 ‘일거리 슬기로이 다스리며 일과 놀이를 아끼며 사랑할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사람이 사랑하는 소리


 자닌 테송 님이 쓴 《수화가 꽃피는 마을》(한울림스페셜,2010)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손말(수화)이란 어느 곳에도 없던 메마른 마을이 어떻게 손말이 꽃피는 예쁘장한 마을로 거듭나는가를 찬찬히 들려주는 이야기책입니다. 손말을 쓰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알려 하지 않고, 사귀려 하지도 않으며, 마주하려고조차 하지 않으며, 이웃이나 동무나 살붙이로 삼을 마음이 조금도 없는 여느 마을 여느 사람 모습을 꾸밈없이 보여줍니다.


.. 그들에게 내 목소리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이런 깨달음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지금 여기서는 누가 장애인이지? 바로 나로군!’ … 이 모든 일에 대해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보았다. “학생 시절 몇 년씩이나 들여서 영어를 배웠지만 내 평생 외국인을 만나서 영어를 써야 했던 경우는 고작 두세 번뿐이었잖아! 아마 공무원들 거의가 ‘안녕하십니까.’ ‘무슨 일로 오셨지요?’, ‘이 서식을 작성해 주십시오.’ 정도의 말은 영어로 할 줄 알겠지만, 수화는 모른단 말이지! ..  (11, 13쪽)


 손말은 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만 익힐 말이 아닙니다. 손말은 내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내 이웃과 동무를 알뜰히 사랑하면서 사귀려고 익히는 말입니다.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 앞서 손말을 가르쳐야 맞습니다. 초등학교 어린이한테 한자를 가르치려 들지 말고 손말과 점글을 가르쳐야 옳습니다.

 아이들은 지식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은 지식을 더 갖추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맑은 넋과 밝은 얼로 사랑스레 살아가야 합니다.

 이 나라 중앙일간지라는 신문마다 수험생 대학입시에 발맞춘 기사를 잔뜩 내놓습니다. ㅈ신문이든 ㅎ신문이든 대학수학능력시험이나 논술시험을 잘 풀도록 돕는 자리를 많이 마련해서 자주 보여줍니다. 그러나, 어느 중앙일간지도 손말이나 점글을 다루지 않습니다. 어느 잡지에서도, 어느 교육잡지에서도, 어느 제도권학교에서도, 어느 대안학교에서도, 손말이나 점글을 우리 말글과 함께 옳고 바르며 알맞고 사랑스레 가르치면서 배우는 틀거리를 마련하지 않습니다.

 나와 옆지기는 우리 집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 두렵습니다. 손말 하나 못 배우고 점글 하나 못 익히는 제도권학교이든 대안학교이든 보내기 두렵습니다.

 새책방과 헌책방 책시렁을 뒤져 손말책을 갖춥니다. 점글책은 아직 못 갖추었습니다. 아이들이 천천히 한글을 깨치고 나서 손말을 함께 가르치면서 배우고, 점글 또한 나란히 가르치면서 배우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영어나 일본말이나 중국말이나 프랑스말을 잘 하는 지식인이 되기 앞서, 내 나라 내 겨레에서 내 조그마한 삶자락 어여쁜 이웃과 동무를 곱게 사귈 수 있는 착한 사람으로 클 수 있으면 좋겠다고 꿈을 꿉니다. (4344.8.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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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8-08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된장님, 아이들 학교 보내기 참 두려운거 맞아요.
학교가 그다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되지도 않고,
두아이가 하도 고와서요. 하지만 언젠가 사회라는 진흙구덩이에 두아이가 적응하고 자신만의 방향을 정하여 살아나가려면, 학교를 통해서 어느 정도 단련을 시켜야 하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의견을 가집니다. 너무 곱게 핀 꽃은 도시 나오면 죽어버리잖아요.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마음의 여행자>에 나오는데 너무 슬픈 이야기였어요. ㅠㅠ)

이렇게 글을 쓰다보니 서글퍼지네요. 세상에 정답이란 없으니까요.

숲노래 2011-08-08 21:34   좋아요 0 | URL
저나 옆지기나 두 아이나,
사회에 굳이 적응할 생각이 없어요.
사람답게 살아야지,
애써 이런저런 사회에 맞추어서 살아갈 까닭이 없다고 느껴요.
나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면 되거든요.

아이들이든 어른들이든,
'단련'을 할 노릇이 아니라 '사랑'하며 살아갈
고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느껴요.

꽃은 도시로 가지 말고 시골에 피어야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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