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적의 딸 로냐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11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일론 비클란드 그림, 이진영 옮김 / 시공주니어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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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 숲노래 동화읽기 2023.2.23.

맑은책시렁 288


《산적의 딸 로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일론 비클란드 그림

 이진영 옮김

 시공사

 1999.3.20.



  《산적의 딸 로냐》(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일론 비클란드/이진영 옮김, 시공사, 1999)는 1992년에 ‘일과놀이’에서 처음 우리말로 옮겼고, 1999년에 ‘시공사’에서 새로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일본에서는 그림꽃얘기(애니메이션)로 그리기도 했어요. 숲도둑 딸아이로 태어난 로냐가 아버지하고 다른 길을 가면서 아버지가 멧도둑질을 끝낼 뿐 아니라, 이웃하고 손을 잡는 새길을 내도록 이끄는 줄거리를 차근차근 들려주지요.


  로냐 이야기를 읽다 보면 온누리 어느 아버지라도 곁님뿐 아니라 딸한테 이길 수 없고, 이겨서도 안 되는 줄 알 만합니다. 또한 온누리 어느 어버이라도 딸이건 아들이건 어버이로서 낳은 딸아들이 앞으로 새길을 짓도록 이바지하고 도우면서 스스로 거듭나는 하루로 나아갈 노릇인 줄 알 만해요.


  어버이가 아이를 낳아 돌보는 뜻을 제대로 짚을 수 있을까요? 어버이는 아이를 사랑하려고 낳습니다. 그런데 ‘아이만 사랑’할 수 없어요. 어버이로서 아이를 사랑하려면, 어버이가 먼저 ‘어버이 스스로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어버이가 이녁 스스로 사랑할 줄 모르면 아이를 사랑하지 못 해요.


  아이를 괴롭히거나 때리는 모든 철없는 어버이는 아직 ‘스스로 사랑’을 모릅니다. ‘스스로 사랑’을 모를 뿐 아니라, 안 쳐다보았고, 안 생각하고, 안 바라는 탓에 그만 ‘스스로 사랑’도 ‘아이 사랑’도 아닌 바보짓으로 헤매면서 철없는 굴레에 스스로 갇혀요.


  남이 가두는 굴레가 아니라 스스로 갇히는 굴레입니다. 로냐네 아버지도 매한가지예요. 누가 로냐 아버지한테 굴레를 씌우지 않아요. 바로 로냐 아버지가 스스로 굴레를 써요. 딸아이 로냐는 어머니가 미처 바꾸어내지 못 한 아버지를 바꾸어냅니다. 다만, 로냐도 아직 철이 덜 든 탓에 아버지를 억지로 바꾸려 했고, 이를 로냐 어머니는 부드러이 타이르고 달래어 ‘아이가 어버이를 바꾸는 길’이 무엇인지 로냐 스스로 생각해서 로냐 스스로 찾아내도록 돕습니다.


  순이(여성)는 로냐처럼, 또 로냐 어머니처럼, 상냥하면서 부드럽고 따뜻하게 지켜보면서 알려주고 가르치는 몫입니다. 순이는 로냐랑 로냐 어머니처럼, 노래하고 춤추고 놀이를 하면서 살림빛을 가꾸는 자리입니다.


  돌이(남성)는 로냐 아버지처럼, 짝꿍하고 딸아이한테서 배우는 몫이에요. 온누리 모든 돌이(남성)는 순이한테서 살림길을 배우면서 차근차근 ‘살림꾼’이자 ‘머슴’으로 깨어나서 즐겁게 ‘동무’를 하는 동글동글한 마음으로 새로 태어날 숨결입니다.


  《산적의 딸 로냐》는 ‘멧도둑 아버지’가 ‘멧사람 아버지’로 거듭나는 길을 아름답게 들려주는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아이들은 어느 집안에서 태어나더라도 대수롭지 않아요. 아이들은 모든 어버이를 바꾸어내는 길잡이로서 이 땅에 태어나거든요. 오직 아이 눈빛을 바라볼 노릇입니다. ‘누구네 아이’인지 따지거나 가릴 까닭이 없어요. 아이가 아이답게 눈망울을 밝힐 적에 이 아이가 바꾸어내려는 새길을 지켜보고 헤아리면서 어깨동무를 하면 넉넉할 뿐입니다.


  아이한테서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산적의 딸 로냐》는 누구보다도 온누리 아버지(돌이)가 아이를 무릎에 앉혀서 천천히 소리내어 읽어 줄 이야기꽃입니다. 잠든 아이 곁에서 가만히 혼자 읽고서 마음으로 사랑을 깨달아 새롭게 일어설 별빛으로 삼을 이야기꽃이에요.


  스웨덴 할머니는 스웨덴 아이들뿐 아니라, 스웨덴 엄마아빠한테 이야기꽃을 사랑으로 남겼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이들한테 ‘사랑어린 이야기꽃’을 써서 남길 만한 철든 어른이 있을까요? ‘동화’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동화일 수 없습니다. 아이한테서 배우는 어버이 이야기를 그릴 줄 알아야 비로소 동화입니다.


ㅅㄴㄹ


“아가야, 너는 벌써 그 작은 손으로 이 산적의 마음을 사로잡았구나.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렇단다.” (14쪽)


별들만 웅덩이에 떠 있고, 다른 것들은 모두 깊은 어둠 속에 잠겼다. 로냐는 어둠에 익숙했다. 어둡다고 해서 겁이 나지 않았다. 겨울 밤 마티스 요새에 불이 꺼지면 그 어떤 숲보다도 더 어둡지 않았던가! (28쪽)


“비르크, 네가 내 친구였으면 좋겠어!” “그러지 뭐. 너만 좋다면. 산적의 딸!” “그랬으면 좋겠어. 하지만 로냐라고 부를 때만이야!” “로냐, 그래. 넌 내 친구야.” (106쪽)


봄날 저녁은 불가사의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비르크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비르크는 저녁 냄새도 맡지 못했고, 새들의 노랫소리도 듣지 못했으며, 땅 위에 나 있는 풀과 꽃들도 보지 못했다. 단지 후회에서 오는 고통만 느낄 뿐이었다. (215쪽)


‘숲은 왜 여름만 계속되지는 않는 걸까? 그리고 왜 난 행복하지만은 않은 걸까?’ 로냐는 숲과 숲 속에 펼쳐진 모든 것들을 사랑했다. (245쪽)


로냐와 비르크는 곰굴로 들어갔다. 굴 안은 엉망이었다. 그러나 예전처럼 편안하고 익숙했다. 세차게 흐르는 강이며, 아침햇살에 빛나는 숲이며, 모든 것이 옛날 그대로였다. “놀라지 마, 비르크. 내가 봄의 함성을 지를 거니까!” 그리고 로냐는 새처럼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314쪽)


#RonjaRovardotter #AstridLindgren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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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을 위한 역사란 무엇인가
김한종.김승미.박선경 지음, 이시누 그림 / 책과함께어린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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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인문책 2023.2.23.

맑은책시렁 292


《초등학생을 위한 역사란 무엇인가》

 김한종·김승미·박선경 글

 이시누 그림

 책과함께어린이

 2022.12.30.



  《초등학생을 위한 역사란 무엇인가》(김한종·김승미·박선경, 책과함께어린이, 2022)를 읽으면 ‘글(기록)’이 무엇인가 하고 어린이한테 가만히 묻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른바 ‘역사’라는 이름을 붙이는 모든 이야기는 으레 ‘글’이랑 ‘남은것(유물·유적)’을 바탕으로 살핍니다만, 아이를 낳아 수수하게 살아오던 자취는 ‘글’로도 ‘남은것’으로도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전형필 님이 목돈을 들여 ‘훈민정음 해례본’을 건사한 이야기는 널리 알려졌습니다만, 임금이나 벼슬아치가 아닌 수수한 사람들이 쓰던 호미나 낫을 건사한 일은 얼마나 될까요? 키나 도리깨나 베틀이나 물레는 얼마나 건사할까요? 아니, 호미나 낫이나 키나 도리깨나 베틀을 건사하더라도, 이 살림살이를 어떻게 다루거나 쓰는가를 얼마나 알까요?


  글바치는 “낫 들고 ㄱ글씨 모른다”고 읊지만, 흙지기는 “낫 쥐고 풀을 벨 뿐”입니다. 오늘날 숱한 ‘역사책·역사 이야기’는 ‘낫 들고 읽는 ㄱ글씨’에 머무느라 ‘낫 쥐고 풀을 베는 살림’은 등지거나 모르는 얼거리 같습니다.


  《초등학생을 위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살짝 짚기도 하지만, ‘고조선’이란 나라는 없습니다. ‘이씨조선’을 ‘조선’이라 하면서 옛나라 이름 앞에 ‘고-’를 붙일 뿐입니다. 우리는 ‘고조선’이 아닌 ‘단군조선·이씨조선’처럼 갈라야 알맞지 않을까요?


  ‘먼 조선(고조선)’이 아닌 ‘가까운 조선’이 ‘이씨조선’인 까닭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일본사람이 읊기 앞서 우리 스스로도 ‘이씨조선’이라 했습니다. 왜냐하면 ‘왕씨고려’를 무너뜨린 무리는 ‘이씨집안’이었거든요. 오백 해 내내 ‘이씨임금’이 우두머리를 차지하면서 위아래(신분질서)를 세웠어요. ‘이씨조선’이라는 이름은 사람을 위아래로 가른, ‘높은이·낮은이’로 금긋고서 따돌리거나 짓밟은 낡은 굴레를 제대로 바라보자는 뜻을 나타낸다고 하겠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대어 바라본다면 외곬일 수밖에 없습니다. 임금·벼슬아치·붓바치 눈높이가 아니라, 글을 모르고 글을 남긴 적이 없는 수수한 사람들 살림자리에서 바라보아야 비로소 자취(역사)를 제대로 짚을 만합니다. 임금·벼슬아치·붓바치는 ‘이씨조선 터전에서 1퍼센트도 안 되었’습니다. 이름도 글도 남기지 않은 수수한 흙지기(백성)는 ‘99퍼센트에 이르는 우리 삶’이었습니다.


  오늘날 떠들썩하게 이름이 나오는 정치꾼·연예인·운동선수·문화예술인은 ‘1퍼센트도 안 됩’니다. 그러나 옛자취 아닌 오늘자취를 앞으로 ‘역사’란 이름으로 누가 남긴다고 할 적에는 ‘1퍼센트도 안 되는 몇몇 이름’을 바탕으로 쓰지 않을까요? ‘99퍼센트에 이르는 수수한 사람들 수수한 살림살이’를 역사·문화라는 이름으로 누가 남길 수 있을까요?


  몇몇 임금 이름을 외우는 일이 ‘역사공부’일 수 없습니다. 글을 몰랐고 글에 안 남은 수수한 우리 살림살이를 마음으로 되새기고 온삶으로 헤아리는 길이야말로 참다이 ‘살림읽기(역사공부)’로 나아가는 첫걸음입니다.


ㅅㄴㄹ


조선을 세운 사람들은 고조선을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싶었을 거야. 자연히 고조선을 세운 이야기인 단군신화가 우리나라 건국신화가 된 것이고. (19쪽)


홍길동 무리의 도적질 때문에 사람들이 살기 힘들었다는 기록은 양반 지배층이 쓴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거니까 그들의 관점을 담은 것일 수도 있어. 홍길동이 어떤 활동을 했든 간에 이들의 눈에는 그저 도적으로만 보였을 테니까. (28쪽)


이 편지에서 원이 엄마는 ‘자네’라는 표현을 무려 열네 번이나 사용했어. 이러한 사실로 우리는 ‘자네’가 그 당시 부부 사이에서 상대방을 부르는 일반적인 호칭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거야. (50쪽)


그렇다고 일기가 사람들의 생활을 모두 보여주는 것은 아닐 거야. 가난하고 힘없는 다수의 백성은 글을 몰라 자신의 기록을 남길 수 없었어. (61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곧 하늘을 섬기는 것이므로 모든 사람은 하늘처럼 떠받들어야 하는 귀중한 존재라는 것이지. 동학의 평등사상은 신분에 따라 사회적 지위와 생활이 결정되는 양반 중심의 조선 사회를 부정하는 것이었어. (99쪽)


삼전도비는 반대로 우리 역사의 부끄러운 면을 보여주고 있지? 이러한 문화유산은 없애는 편이 나을까? 아니면 곁에 두고 보면서 반성의 기회로 삼는 것이 좋을까? 우리가 유적과 유물을 보존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5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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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왕자 - 오스카 와일드 동화집 재미있다! 세계명작 9
오스카 와일드 지음, 이지민 옮김, 홍선주 그림 / 창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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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동화책 / 숲노래 어린이책 2023.1.30.

맑은책시렁 282


《행복한 왕자》

 오스카 와일드

 이지민 옮김

 창작과비평사

 1983.12.25.



  《행복한 왕자》(오스카 와일드/이지민 옮김, 창작과비평사, 1983)를 아이들하고 읽습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눌 만한 책은 뜻밖에 매우 적으나, 아예 없지는 않고, 또 이래저래 찾아보면 제법 있습니다.


  왜 아이들하고 함께 읽으면서 생각을 지필 책이 적을까 하고 돌아보면, 아이들은 책을 안 읽어도 되고, 어른들도 굳이 책이 없어도 됩니다. 몸으로 뛰놀고, 마음으로 이야기하면 넉넉해요. 몸으로 함께 살림을 짓고, 마음으로 같이 사랑을 그리면 즐겁습니다.


  굳이 글을 쓰거나 책을 엮는 까닭은 있어요. 이 아름다운 삶빛을 씨앗으로 남겨서 언제 어디에서나 되돌아보고 아로새기고 싶은 마음이 들기에 애써 글을 쓰거나 책으로 엮습니다.


  오스카 와일드 님이 남긴 씨앗 가운데 돋보이는 ‘제비’하고 ‘큰사람(거인)’ 이야기가 있어요. 이녁은 ‘임금’이라는 자리가 ‘자리·이름·허울·힘’을 쳐다보려 할 적에는 고약할 뿐 아니라 스스로 좀먹어 죽음길로 가는 줄 꿰뚫어보고서 글로 남겼습니다. 이녁은 ‘아이’라는 이름이 참으로 빛나면서 상냥하고 즐겁게 뛰놀면서 꿈꾸는 이야기로 잇는 길인 줄 알아차리고서 책을 내놓았습니다.


  우리말로 옮긴 분들은 “행복한 왕자”로 이름을 붙였으나, 가만가만 헤아린다면 “즐거운 아이”나 “기쁜 아이”쯤이면 돼요. 우리는 ‘왕·왕비·왕자·왕녀’ 같은 허울을 이제 버릴 때입니다. ‘아이’라는 숨빛을 바라볼 때입니다. 겉멋을 부리는 말씨인 ‘행복’이 아니라 ‘기쁨·즐거움’이라는 낱말을 혀에 얹고서 노래하는 하루를 지을 노릇이에요.


  글을 읽고 싶다는 아이가 있다면, 저마다 어른스레 어진 눈빛을 밝혀 먼저 열 해쯤 날마다 신바람으로 집살림을 가꾸면 됩니다. 열 해쯤 신바람으로 집살림을 가꾸고 나면 저절로 글길을 열 수 있어요.


  글을 쓰고 싶은 이웃님이라면, 오늘부터 열 해 동안 붓종이를 치워버리고서 기쁘게 집안일을 도맡으면 됩니다. 열 해쯤 기쁘게 집안일을 도맡으면 바야흐로 스스로 샘솟는 사랑으로 글자락을 여밀 수 있어요.


  글쓰기란 쉽습니다. 그저 삶을 쓰면 되는데, ‘그냥 삶’이 아닌 ‘스스로 사랑으로 짓는 살림을 푸르게 품은 삶’을 쓰면 돼요. 다들 ‘그냥그냥 쳇바퀴로 맴도는 삶’만 너무 서둘러 조바심으로 얼른 써내고서 ‘작가·예술가’란 이름으로 겉멋을 부리려 하니 망가질 뿐입니다.


  제발 “행복한 왕자”가 되지 맙시다. “기쁜 아이”로 살고 “즐거운 아이”로 오늘을 노래해 봐요. 이렇게 하면 누구나 글님이요 그림님이자 삶님이고 살림님으로 빛나다가 문득 사랑님으로 피어납니다.


ㅅㄴㄹ


직조공은 날카롭게 소리질렀습니다. “그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지요. 다만 내가 누더기를 입고 다닐 때 주인은 좋은 옷을 입고 있고, 내가 배가 고파 기운이 없을 때 그는 좀 너무 먹어서 고통스러워 한다는 것 말고는 그와 나 사이에는 차이가 없지요.” “이 나라는 자유로운 땅이고 너는 노예가 아니잖아?” 하고 왕이 물었습니다. 그러자 직조공은 대답했습니다. “전쟁 때에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노예로 만들지만, 평화시에는 부자가 가난한 자를 종으로 만들지요. 우리는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데, 그들은 우리에게 살아갈 수도 없을 만큼 아주 적은 임금밖에 주지 않아요.” (43쪽)


“너는 높은 나무 꼭대기를 날 수 있으니 온 세상을 볼 수 있지? 말 좀 해줘. 우리 어머니가 보이니?” 그러자 방울새는 “네가 장난삼아 내 날개를 부러뜨렸는데 내가 어떻게 날 수 있겠니?”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별아이는 전나무 속에서 혼자 외롭게 사는 다람쥐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어디 계시니?” 그러자 다람쥐는 말했습니다. “너는 우리 어머니를 죽였는데 이제 네 어머니도 죽이려고 찾는 거니?” (127쪽)


“사랑은 지혜보다 낫고 보물보다 귀중하고, 인간의 딸들의 발보다 좋은 것이라오. 불은 사랑을 파괴하지 못하고 물도 사랑을 식히지 못하도다.” (201쪽)


#OscarWilde #TheHappyPrince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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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세금은 쌀로 내도록 하라 - 변화의 시대 조선 후기 조선 시대 깊이 알기
손주현.이광희 지음, 장선환 그림 / 책과함께어린이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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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2023.1.30.

맑은책시렁 277


《이제부터 세금은 쌀로 내도록 하라》

 손주현·이광희 글

 장선환 그림

 책과함께어린이

 2017.12.13.



  《이제부터 세금은 쌀로 내도록 하라》(손주현·이광희, 책과함께어린이, 2017)를 곰곰이 읽었습니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던 무렵 저잣거리하고 나라살림을 엮어서 들려주려는 얼거리입니다. 고려가 어떤 나라였는지 얼핏 엿보려 하지만, 내내 조선이 새롭고 더 살기 좋다는 줄거리가 흐릅니다. 그러나 고려나 조선이나 오늘날 우리나라 어느 쪽이 더 살기 좋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나라이름이 바뀌고, 나라지기가 바뀌고, 벼슬꾼이 바뀔 뿐입니다. 나라지기는 으레 그들 스스로 가장 낫거나 훌륭하다고 여깁니다. 나라지기나 벼슬꾼이라는 자리에 서면 그들은 ‘사람들 사이’에 안 섞입니다. 아니, 나라지기나 벼슬꾼은 처음부터 ‘사람들 사이’에 없다고 여길 만합니다.


  바쁘다든지 알아보는 사람이 많이서 성가시다든지 이러저러해서 ‘사람들 사이’에 아예 없는 나라지기나 벼슬꾼이 많아요. 붓바치(작가·예술가)도 매한가지요, 이름꾼(연예인·유명인·스포츠 스타)도 ‘사람들 사이’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사이에 없는 나라지기·벼슬꾼’이 나라틀을 짜고, ‘사람들이 맡을 몫이나 낼 낛(세금)’을 따지고 갈무리하고 거두어서 씁니다. 나라지기·벼슬꾼은 나라돈(예산)을 써서 나라일(행정)을 한다고들 하는데, 정작 ‘사람들 사이’에서 살지 않는 그들은 ‘사람들 살림새’를 모르는 터라, 나라돈을 함부로 쓰거나 빼돌려요. 고려이든 조선이든 오늘날이든 똑같습니다. 남녘·북녘도 똑같아요. 우두머리 자리에 있건 벼슬을 거머쥐었든 그들은 똑같이 ‘사람들 사이’가 아닌 ‘끼리끼리 담벼락을 쌓아서 못 넘보’도록 틀어막고 채찍을 휘두르지요.


  어린이한테 우리 옛자취를 들려주는 《이제부터 세금은 쌀로 내도록 하라》인데, 조선 무렵에 나리(양반)가 흙지기(농민)를 어떻게 괴롭히거나 들볶거나 업신여기거나 짓밟거나 가로채거나 우려먹거나 죽이거나 놀렸는지를 조금 더 차근차근 짚으면서 이 대목을 풀어내려고 했다면, 고려뿐 아니라 조선도 허울스러운 나라틀이라는 대목을 밝혔으리라 봅니다. 고려는 신라보다 낫지 않았고, 조선은 고려보다 낫지 않았으며, 오늘날 남북녘은 조선보다 낫지 않습니다. 모두 매한가지인 사슬이자 굴레입니다.


  우리가 돌아볼 옛자취하고 오늘자취는 ‘우두머리가 세운 나라틀’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 저마다 손수 짓는 보금자리 살림새’여야 슬기롭고 아름다우리라 생각해요. 조선왕조실록은 이제 걷어치우고, ‘글로 안 남았으나 몸마음에 남은 수수한 사람들 살림빛’ 이야기를 다루는 어린이책하고 어른책이 태어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ㅅㄴㄹ


“요즘 청의 간섭이 덜해져싸고 해도 도망친 포로 문제만은 길길이 뛰며 돌려보내라고 하니 조정도 어쩔 수 없다고 하오. 작년에 단체로 도망친 포로들을 모두 붙잡아 돌려보내지 않으면 또 쳐들어오겠다고 엄포를 놓으니 우린들 어쩌겠소.” (35쪽)


이렇게 한 푼 두 푼 모아 부자가 된 농민은 땅을 사들이며 떵떵거리며 산다. 반면 고향을 떠나야 하는 농민도 생겼다. 예전에는 죽으나 사나 태어난 곳에서 평생을 살았다는데 말이다. 이들은 농사일을 그만두고 도시에 나가 장사를 하거나 품을 팔아먹고 사는 노동자가 되었다. (77쪽)


이처럼 돈 주고 양반이 된 상민과 노비들이 많아지며 한때 조선 인구 절반을 차지하던 노비 수는 확 줄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양반의 권위는 툭 떨어졌다. 양반이라도 돈 없고 벼슬 얻지 못하면 양반 대우 못 받는다. (143쪽)



* 아쉬운 말씨 하나 (아쉬운 말씨는 많으나 하나만 골라서 손질해 놓는다)

그 도시 한가운데 자리잡은 시장 중앙통을 능숙하게 걸어가는 한 조선 소년이 있다

→ 그 고을 한가운데 자리잡은 저잣길을 슬슬 걸어가는 조선 아이가 있다

→ 그 고을 저잣길 한가운데를 요리조리 걸어가는 조선 아이가 있다

《이제부터 세금은 쌀로 내도록 하라》(손주현·이광희, 책과함께어린이, 2017) 1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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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이 힘찬문고 10
임길택 글, 유진희 그림 / 우리교육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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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 숲노래 동화책 2023.1.30.

맑은책시렁 278


《수경이》

 임길택

 우리교육

 1999.12.15.



  《수경이》(임길택, 우리교육, 1999)를 가만히 되읽었습니다. 1999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조금조금 읽히는구나 싶은데, 이 작은 이야기꾸러미에 흐르는 시골빛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이웃도 조금조금 늘려나 하고 어림해 봅니다.


  멧골마을에서 멧골아이 곁에 서면서, 멧골어른으로 같이 살면서, 살림빛을 사랑하려는 마음을 담은 《수경이》입니다. 이 책이 나오던 무렵에도, 임길택 님이 글을 쓰던 무렵에도, 또 그때부터 스무 해가 훌쩍 지난 때에도, 시골에 뿌리를 내려 살아가면서 시골빛을 품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나날이 줄면서 사그라드는 시골빛이되, 서울을 떠나 시골에 깃들면서 시골노래를 글로 여미어 책을 내는 분은 조금조금 늘어납니다. 다만, 시골에서 조금 더 느긋이 풀꽃나무를 돌아보고 들숲바다를 품어 보고서 천천히 시골노래를 여미면 한결 나을 텐데, 다들 너무 서둘로 글을 쓰거나 책을 낸다고 느껴요.


  시골사람이 서울로 옮겨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이나 책으로 여민다고 생각해 봐요. 서울에서 한두 해 살아 보고서 서울살이를 글이나 책으로 여미면 얼마나 엉성하거나 서툴까요? 적어도 서울살이 열 해쯤 하고서 글이나 책으로 여미어야 ‘서울맛’을 조금 담아낼 만합니다. 서울을 떠나 시골로 옮긴 사람들도 매한가지예요. 적어도 ‘철갈이’라고 하는 ‘열 해’를 묵혀 보아야 이야기가 무르익습니다. 그래서 예부터 “열 해면 들숲이 바뀐다(십 년이면 강산이 바뀐다)”고 얘기합니다.


  멧골내기로 살아가는 꿈을 키우다가 흙으로 돌아간 임길택 님은 누구보다 시골아이랑 시골어른을 바라보면서 글을 여미었고, 시골아이랑 시골어른하고 이웃이나 동무로 지내려는 마음을 키울 서울아이랑 서울어른을 그리면서 글을 써냈다고 느껴요.


  시골에서 짓는 시골빛이든, 서울에서 일구는 서울빛이든, 먼저 우리 스스로 살림빛으로 나아가는 사랑길일 적에 아름답고 즐겁습니다. ‘빛’이란 사랑으로 녹여서 새롭게 가꾸려는 숨결입니다. 이와 달리, 서둘러 선보이면서 팔아치우려 하거나 자랑하려 들거나 내세우려고 하는 자랑길로 간다면 ‘빚’이지요. 텅 빈 수레예요. 빈수레가 시끄럽다고 하듯, 무르익히지 않고서 내놓는 모든 글은 겉으로만 시끌벅적합니다.


  하느님은 틀림없이 하늘에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마음에 빛나는 사랑이 흐르는 하느님입니다. 우리 겨레 이름이 ‘한겨레’인 뜻을 돌아봐요. ‘한 = 하늘 = 하나 = 큰 = 우리 = 해 = 오늘’인 얼거리입니다. 남(서울내기)이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논밭을 지을 수 없어요. 스스로(시골내기) 오늘 하루를 사랑하려고 논밭을 짓습니다. 이리하여 수경이는 들숲을 헤치면서 들꽃을 그러모아 소한테 꽃걸이를 씌워 줍니다. 조그맣게 피어나는 사랑꽃을 속삭이는 작은 이야기꽃인 《수경이》입니다.


ㅅㄴㄹ


“우리가 그렇게 농사짓는다고 도시놈들이 알아주기나 할 줄 아는가?” “그들이 알아주라고 농사를 지어선 안 되지요. 하느님이 주신 우리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농사를 지어야지요.” “하느님 같은 소리 말게. 하느님이 밥 먹여 주는 게 아니여. 하느님이 있었다면 이날 이때까지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걸세.” (28쪽)


책을 떠듬떠듬 읽고, 가지고 온 사탕을 동무들과 나누어 먹으며 금주는 오학년을 마치고 육학년이 되었다. 그동안 결석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금주는 ‘하느님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이런 시를 쓰기도 했다. “어느 날 / 어머니랑 아버지랑 싸우실 때 / 나는 하느님한테 / 우리 어머니하고 아버지하고 / 싸우지 못하게 말려 주세요 하고 / 말씀드렸다.” (94쪽)


수경이는 잡목을 타고 오르던 댕댕이덩굴을 뜯어 둥그렇게 만들었다. 머루알 같은 댕댕이덩굴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거기에 찔레 열매도 꺾어서 꽂고 억새꽃도 끼워 꽃다발을 만들었다. 노란 마타리꽃은 한쪽에 따로 꺾어 놓았다. 소 목덜미를 긁어 주면서 수경이는 그 꽃다발을 소뿔에다 씌워 주었다. 소는 꼬마 주인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기라도 하듯이 그 꽃다발을 뿌리치지 않고 그대로 쓰고 있었다. 수경이가 마지막으로 마타리꽃을 꽂으니 소는 금방 들판의 왕이 되었다. (16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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