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가위바위보!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김은하 외 옮김 / 예꿈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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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날이 새롭게 자라는 아이와 어른
 [어린이책 읽는 삶 18] 하이타니 겐지로, 《우리 모두 가위바위보!》(예꿈,2008)

 


- 책이름 : 우리 모두 가위바위보!
- 글 : 하이타니 겐지로
- 그림 : 츠보야 레이코
- 옮긴이 : 김은하
- 펴낸곳 : 예꿈 (2008.7.25.)
- 책값 : 8500원

 


 하이타니 겐지로 님 글에 츠보야 레이코 님 그림이 어루어진 《우리 모두 가위바위보!》(예꿈,2008)를 다 읽고 덮습니다. 책 겉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나온 지 몇 해 되지 않았으나 벌써 판이 끊겨 사라진 까닭이 참 알쏭달쏭하구나 생각하며 가만히 바라봅니다. 문득, 이 책 《우리 모두 가위바위보!》에는 ‘우리 모두 가위바위보’ 하며 노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고 떠오릅니다. 다만, 살짝 스치듯, 아이들이 가위바위보 놀이를 ‘이쿠’라는 어린이 둘레에서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는 합니다. 이 대목은 이 책에서 그리 대수롭다 할 수 없습니다. 책이름을 가위바위보 놀이를 한다는 투로 붙일 만한 고빗사위가 아니에요. 더욱이, 책 겉에 적힌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이 들려주는 장애 친구 이야기”라는 작은이름은 더욱 맞갖지 않습니다. 이쿠라는 아이가 여러 차례 수술 받은 가녀린 다섯 살 어린이이기는 하지만, 수술을 여러 차례 받았대서 섣불리 ‘장애 아이’라고 일컬을 수 없어요. 또한, 이 이야기책 《우리 모두 가위바위보!》가 장애 아이 이야기를 다루지 않아요.

 

 몸이 여리고 아프면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다섯 살 어린이 이쿠가 좋은 동무들을 사귀면서, 다른 좋은 동무들이 한결 씩씩하면서 착하게 살아가는 길을 스스로 찾는 예쁜 이야기를 다루는 이야기책이 《우리 모두 가위바위보!》라고 느낍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름도, 작은이름도 모두 내키지 않습니다. 수수한 삶 수수한 믿음 수수한 사랑을 곱게 헤아리는 몸짓으로 “우리 모두 좋은 동무”라든지 “우리 모두 착한 동무”쯤으로 이름을 붙여야 마땅하지 않으랴 싶어요.


.. 이쿠를 한참 쳐다봤지만, 손도 발도 꼼짝하지 않았다. “이쿠는 아기였을 때 크게 아팠어요. 그래서 아직은 여러분처럼 말하거나 움직이지 못해요.” … “다섯 살이면 우리랑 같은 초록반 아니에요? 네?” 지로는 보채듯 미유키 선생님 팔을 잡아끌었다. “원장 선생님이 친구가 되어 주라고 했는데 반이 다르면 어떻게 친구가 돼요?” … 선생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 의사 선생님이 아직은 이쿠의 몸이 갓난아기와 비슷하다고 하셨대. 그래서 …….” “몸이 갓난아기 같으면 마음도 갓난아기 같나요?” 요시오가 물었다 ..  (17, 19쪽)


 아이들은 웃어도 예쁩니다. 아이들은 울어도 예쁩니다. 아이들은 넘어져도 예쁩니다. 아이들은 씩씩하게 달려도 예쁩니다. 아이들은 밥을 잘 먹어도 예쁩니다. 아이들은 밥알을 흘려도 예쁩니다. 즐거우니 웃고 슬프니 울어요. 기뻐서 웃고 아파서 울어요. 발밑을 미처 못 보았거나 다리에 아직 힘이 튼튼히 붙지 않았으니 넘어져요. 시멘트나 아스팔트 땅에서는 무릎이 금세 까지거나 갈려 피가 나고, 흙땅에서는 살짝 긁히지만 이내 나아요. 깨진 무릎은 며칠 지나면 아물고, 다친 자리도 곧 새살이 돋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씩씩하게 자랍니다. 씩씩하게 자라는 아이들처럼 어른들도 무럭무럭 씩씩하게 큽니다. 스무 살 어른은 서른 살로 씩씩하게 자랍니다. 서른 살 어른은 마흔 살 어른으로 씩씩하게 자랍니다. 마흔 살 어른은 쉰 살 어른으로 씩씩하게 자라요.

 

 아이들은 제 어버이가 씩씩하게 자라는 모습을 곁에서 늘 지켜보며 저희 나름대로 씩씩하게 큽니다. 어버이는 제 아이들이 씩씩하게 자라는 모습을 옆에서 언제나 바라보며 당신 나름대로 씩씩하게 자라요.

 

 함께 웃어요. 같이 울어요. 함께 밥을 먹어요. 같이 누워 잠자요. 서로 발을 맞추어 천천히 걸어요. 가장 어린 아이 발걸음에 맞추어 다부지게 걸어요. 가장 여린 아이 발걸음에 맞추다가는, 가장 여린 아이를 안거나 업으며 나란히 걸어요.


.. “아픈 친구가 있으면 골치 아프니? 정말 그럴까?”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골치 아프대요.” “정말 그럴까?” “같이 노래를 부를 수도 없잖아요?” “정말 그럴까?” “같이 놀 수도 없구요.” “정말 그럴까?” … “이쿠는 여러분의 친구이긴 하지만, 여러분과 조금 달라요. 일곱 번이나 수술을 받았지만, 아직도 병과 한참 싸우고 있거든요.” ..  (23, 25쪽)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면서 어떤 삶길을 걸어갈까요.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른들은 아이들처럼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 서른 마흔 쉰 예순이 될 무렵 어떤 삶길을 걸어갈까요.

 

 오늘 하루 어디쯤 선 아이들인가요. 오늘 하루 어디쯤 선 어른들인가요. 아이들은 얼마나 좋은 밥과 꿈과 잠과 집과 들과 터를 누리는가요.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른들은 얼마나 좋은 밥과 꿈과 잠과 집과 들과 터로 어른들 삶을 북돋우는가요.

 

 더없이 좋은 일에 몸과 마음을 바치는 어른인지 궁금합니다. 스스로 가장 사랑할 만한 일에 넋과 얼을 기울이는 어른인지 궁금합니다. 서로서로 아주 흐뭇하고 매우 기쁜 꿈누리를 일구는지 궁금합니다.

 

 여린 아이를 안거나 업듯, 여린 이웃을 안거나 업는 어른인가요. 아픈 아이를 달래며 보살피듯, 아픈 이웃을 달래며 보살피는 어른인가요. 배고픈 아이한테 따순 밥을 차리듯, 배고픈 이웃한테 따순 밥을 나누는 어른인가요.

 

 아이가 다리 아파 더 못 걷겠다는데, 아이가 졸립다고 하는데, 어느 어른이 아픈 아이와 졸린 아이를 못 본 척할 수 있나요. 아이가 아프다는데, 아이가 넘어져서 엉엉 우는데, 못 본 척 지나치는 어른이 있나요. 아이가 배고파서 으앙 하는데, 멀뚱멀뚱 텔레비전만 보는 어른이 있나요.


.. “…… 글쎄, 어딜 보고 있을까나. 그건 할머니도 모르겠다만, 우리 이쿠짱은 지금 온몸으로 꼬마 친구들 이야기를 듣고 있을 거야.” “흐∼음.” “여기가 어딘지, 착한 꼬마 친구들이 이쿠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느끼고 있을 거야.” 히로시도, 지로도, 요시오도, 치히로도, 아키라도, 세이코도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였다 ..  (38쪽)


 하이타니 겐지로 님과 츠보야 레이코 님이 《우리 모두 가위바위보!》라는 책으로 아이들과 어른들한테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까 하고 찬찬히 헤아립니다. 나부터 오늘 하루 아이들이랑 옆지기랑 어떤 날을 보냈는가 하나둘 돌아봅니다.

 

 잘 살았을까. 잘 웃었을까. 잘 어우러졌을까. 잘 놀았을까. 잘 사랑했을까.

 

 성적을 매기려는 일이 아니라, 그야말로 뿌듯하고 보람차게 하루를 마감하며 기쁘게 눈을 감고 잠들 수 있을까요. 살살 이마를 쓰다듬고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흐뭇하게 새 하루를 기다릴 수 있을까요.


.. 이쿠는 소리 없이 울었다.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끝없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조용히 울고 있었다 … “세이코, 이쿠는 갓난아기가 아냐. 그러니까 아기처럼 대하면 안 돼! 이쿠는 우리 친구잖아.” ..  (41, 44쪽)


 나날이 새롭게 자라는 아이와 어른이라고 느껴요. 어느 날은 한결 빛나듯 새롭게 자라요. 어느 날은 안쓰럽고 딱하게 흔들리거나 기우뚱하거나 자빠지거나 비틀거리며 고단하게 자리에 누워요. 어느 날은 웃음꽃 예쁘게 피우며 조잘조잘 즐거이 노래해요. 어느 날은 시무룩하거나 찌뿌둥하게 이맛살을 징그려요.

 

 그런데, 어떻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어 이듬날을 맞이하든, 새날은 똑같이 찾아듭니다. 새 아침은 똑같이 밝습니다.

 

 찡그린 얼굴에도 햇살은 곱게 비춥니다. 찌푸린 이맛살에도 햇살은 곱다시 내리쬡니다. 싱그러운 얼굴에도 햇살은 어여삐 듭니다. 환한 얼굴에도 햇살은 아리따이 흘러들어요.

 

 즐거운 일은 더 즐거이 피워요. 슬픈 일은 찬찬히 슬픔을 털어요. 고마운 일은 더 고마움을 느껴요. 서운한 일은 찬찬히 서운함을 씻어요.


.. 미키의 오른쪽 다리가 의자에 끼어 버린 것이다. 미키는 교실이 떠나갈 듯 큰 소리로 울어댔다. 이쿠는 엉엉 우는 미키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어느새 이쿠의 큰 눈에도 눈물이 고이더니 똑똑 한 방울씩 떨어졌다. “이쿠는 참 착하구나.” 요시오가 말했다 … 히로시는 이쿠가 탄 휠체어를 꼭 잡고 걸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쿠에게 말했다. ‘이쿠짱, 네가 우리 반에 와서 너무 기뻐. 우리도 좋은 친구가 될 거야. 내가 너를 꼭 붙잡아 줄게.’ ..  (81, 85쪽)


 인권이나 교육이나 복지나 문화로 따지는 일은 부질없어요. 인권이나 교육이나 복지나 문화는 다른 자리를 살펴야 해요. 아픈 아이한테 더 마음을 기울이는 일이란 사랑이에요. 배고픈 아이한테 밥을 차려서 내미는 일은 사랑이에요. 헐벗거나 가난한 이웃을 돕는 일은 사랑이에요.

 

 교육을 생각하거나 인권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 아니에요. 복지를 누리거나 문화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 아니에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아이들을 감싸안을 노릇이에요. 믿음이 샘솟는 몸가짐으로 서로서로 어깨동무할 노릇이에요.

 

 우리 집 살림살이를 비추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교육이라 한다면, 어버이와 아이가 어떠한 보금자리를 마련해서 어떻게 돌보거나 손질하거나 가꾸며 살림을 꾸려야 아름다울까 하는 길을 찾는 일이 되어야 해요. 먹을거리를 어디에서 어떻게 마련하는가를 스스로 찾도록 도와야 비로소 교육이에요. 흙과 물과 바람과 햇살을 어떻게 느끼며 맞아들여야 하는가를 깨닫도록 이끌어야 비로소 교육입니다.

 

 나는 이제껏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어요. 제대로 배우지 못했어요. 제대로 배우지 못한 어른이니, 아이들을 낳아 살아간대서 아이들한테 제대로 된 삶을 가르치거나 물려주지 못해요. 나부터 어른이자 어버이로서 제대로 옳게 배워야 해요. 삶을 배우고, 밥이랑 옷이랑 집을 배워야지요. 먹을거리를 배우고, 사랑을 참다이 느껴야지요.

 

 사랑으로 살아가는 하루를 착하게 깨달아야 해요. 사랑으로 얼크러지는 사람들 꿈을 곧게 느껴야 해요. 착한 아이들은 착한 삶을 꾸리는 길을 어버이와 어른한테서 씩씩하게 배워 튼튼한 삶길을 걸어야 해요. (4345.1.16.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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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아이 타로오 창비아동문고 230
마쯔따니 미요꼬 지음, 타시로 산젠 그림, 고향옥 옮김 / 창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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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다섯 가운데 별 하나만 매기는 일이란 너무 슬프다.

그러나 내 마음을 속일 수 없다.

마음이 움직이지 못한 작품에 별 둘조차 붙일 수 없다.

 


 나한테 아름다운 삶이란 무엇일까
 [어린이책 읽는 삶 15] 마쯔타니 미요꼬, 《용의 아이 타로오》(창비,2006)

 


- 책이름 : 용의 아이 타로오
- 글 : 마쯔타니 미요꼬(마쓰타니 미요코)
- 그림 : 타시로 산젠
- 옮긴이 : 고향옥
- 펴낸곳 : 창비 (2006.11.30.)
- 책값 : 8500원

 


 밤에 쉬를 누러 마당으로 나와 논둑에 섭니다. 시골마을 고샅길 곳곳에 등불이 밝습니다. 고샅길 등불이 없다면 이 시골마을은 아주 깜깜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고샅길 등불이 있더라도 밤하늘 별이 초롱초롱합니다. 맑고 환하게 빛납니다. 불빛 하나 없다면 달빛이랑 별빛이 훨씬 맑고 환하겠다고 느끼지만, 시골마을 등불은 달빛이랑 별빛을 못 누리게 할 만큼 거치적거리지 않습니다.

 

 겨울날 밤바람이 차갑습니다. 겨울이니 마땅히 차갑겠거니 생각하며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땅에 불빛이 적으면 하늘에 별빛이 가득하고, 땅에 불빛이 많으면 하늘에 별빛이 사라집니다. 땅에 풀빛이 가득하면 하늘에 파란빛 넘실거리고, 땅에 까만 아스팔트빛 넘치면 하늘에 시커먼 잿빛이 그득합니다.


.. 뚝배기 깨지는 소리로 노래만 불러댔습니다. 배가 고프면 일어나서 경단을 먹었습니다. 토끼가 있으면 토끼와 함께, 쥐가 있으면 쥐와 함께 먹었습니다 ..  (11쪽)


 밤에 별을 볼 수 있는 곳에서 살아가니 좋구나 하고 생각하다가는, 막상 밤에 별을 볼 수 있는 이 시골에서 밤에 한두 시간 즈음 아주 느긋하게 별을 올려다본 적은 없구나 싶습니다. 살짝살짝 나와서 올려다보았을 뿐입니다. 파랗고 높은 낮하늘을 올려다볼 때에도 이와 비슷해요. 살짝살짝 나와서 올려다볼 뿐, 막상 흙을 밟거나 보살피며 오래오래 올려다보지 못합니다.

 

 이 겨울이 가고 봄을 맞이하면 아주 흙에서 살아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겨울에 겨울대로 겨울흙을 마주하지 않는다면, 봄이라 해서 갑작스레 달라지는 삶이 될까요. 아이들이 모두 더 자라 스스로 걷고 달리고 호미를 쥘 무렵에야 비로소 흙하고 마음껏 뒹굴 수 있을까요.

 

 바로 오늘부터 만날 흙이고, 바로 오늘부터 부대낄 바람이며, 바로 오늘부터 등에 질 햇살이에요. 내 삶이 집에서 빨래하고 밥하며 청소하는 삶이 아니라 한다면, 빨래랑 밥이랑 청소는 이대로 즐거이 누리면서 흙을 보듬는 삶이라 한다면, 이 좋은 결을 곱게 즐기면서 누리는 쪽으로 조금씩 거듭나야 합니다.


.. “할머니는 어른이 돼야 한다고 했지만 난 못 기다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엄마를 찾아올게. 옛날처럼 사람의 모습으로 만들어서 할머니한테 데려올 거야. 갑자기 용이 됐으니까 틀림없이 다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할머니, 꼭 기다려야 해!” ..  (42쪽)


 마쯔타니 미요꼬 님이 쓴 동화책 《용의 아이 타로오》(창비,2006)를 읽는 내내 곰곰이 생각합니다. 곡식 얻을 땅뙈기가 너무 모자란 멧골 깊은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널따란 논을 얻는 줄거리가 나오는 동화책인데, 어쩐지 그닥 가슴이 울렁울렁 뛰지 않습니다.

 

 왜 논에 모를 심고 벼를 거두어 쌀을 얻은 다음 밥을 해서 먹어야 하나요. 사람은 쌀만 먹어야 살아갈 수 있나요. 사람이 목숨을 건사할 만큼 먹을 곡식은 어느 만큼 거두어야 하나요. 사람한테 얼마나 널따란 땅뙈기가 있어야 하나요.

 

 무나 당근이나 감자나 고구마나 온갖 푸성귀랑 열매랑 다른 곡식이 있지 않나요. 풀을 뜯고 잎을 먹으며 뿌리를 캘 수 있지 않나요. 물고기를 잡거나 들짐승을 잡을 수 있지 않나요.


.. 타로오는 얼굴까지 시뻘게져서 화를 냈습니다. “농부들에게 가장 소중한 물줄기를 가지고 못된 짓을 서슴지 않는단 말이지. 좋아, 내가 꼭 없애 주겠어.” ..  (70쪽)


 용이 되고 말았다는 어머니를 다시 사람으로 돌리고픈 꿈을 품은 아이 타로오는 머나먼 길을 떠나고, 온갖 모험을 거친다고 합니다. 그나저나, 흙일꾼을 성가시게 구는 이를 죽여서 없애는 일이 참말 흙일꾼을 돕는 일인지 궁금합니다.

 

 나쁜 동화나 아쉬운 작품이라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한테 집어넣으려 하는 교훈이 너무 뻔하게 드러납니다. 전쟁이 싫으면 더 힘이 세져서 전쟁에서 이기면 될까요. 주먹다짐으로 괴롭히는 이가 못마땅하다면 주먹힘을 더 키워서 이 몹쓸 녀석을 물리치면 되나요.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전쟁을 전쟁으로 이길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를 밴 어머니가 얼마나 크게 잘못을 했기에 ‘용이 되는 벌’을 받고 ‘두 눈까지 잃어야 하는’지 참으로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다르게 느낍니다. 논일을 하기에 흙일꾼한테 물줄기가 “가장 소중하다” 말할 수 있을 테지만, 물이란 “흙일에서 가장 소중한” 무엇이 아니라, 모든 목숨이 살아숨쉴 때에 밑바탕이 되는 무엇이 아닌가 싶어요. 물과 바람과 햇살이 없으면 어떠한 목숨도 살 수 없어요. 곧, 흙일을 하는 흙일꾼한테는 무엇보다 ‘흙’이 가장 대수로우며 거룩하지 않느냐 싶어요.


.. “그렇지만 이런 보물을 그저 아낌없이 죄다 먹어치울 순 없어. 씨앗으로 둠세. 어때, 우리도 벼농사를 짓자고.” ..  (130쪽)


 《용의 아이 타로오》를 덮습니다.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이 동화책을 쓴 분은 아이들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을까 찬찬히 돌아봅니다. 나는 내 옆지기와 아이들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에 무엇보다 ‘나한테 아름다운 삶이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합니다. 나한테 아름다운 길과 옆지기한테 아름다운 길과 아이들한테 아름다운 길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다 함께 아름다운 길을 걷는 삶이라면 어떠한 모습과 매무새와 몸짓이어야 할까 하고 찬찬히 돌아봅니다.

 

 옆지기는 나한테 교훈을 들려줄 수 없습니다. 나는 옆지기한테 교훈을 들려줄 수 없습니다. 서로서로 가장 사랑하는 꿈을 나눌 뿐입니다.

 

 꿈이란 무엇일까, 그래, 동화라 한다면, 동화 아닌 어른문학이라 하더라도 이와 마찬가지일 텐데, 어린이문학이든 어른문학이라 하든 문학이라 한다면, 바로 ‘어떤 꿈을 들려줄 이야기’인가 하는 대목을 깊고 넓게 다룬다고 느껴요. 그러니까, 나는 《용의 아이 타로오》를 읽는 내내, 이 문학에서 아이들하고 나누고픈 ‘꿈’이 무엇인가를 도무지 읽지 못했습니다.


.. 용은 말없이 계속 생각했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자. 이 아이의 생각에 힘을 실어 주는 거야.’ ..  (164쪽)


 옛이야기를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일이 훌륭하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옛날 옛적 이야기이든 오늘날 이야기이든 앞으로 맞이할 이야기이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면, ‘어떤 사랑을 담는 사람들 꿈’인가를 조곤조곤 밝혀야지 싶어요. ‘어떤 사랑을 담는 사람들 꿈’인가를 낱낱이 드러내지 못한다면, 살가이 꽃피우지 못한다면, 어여삐 북돋우지 못한다면, 이러한 작품은 어린이문학으로나 어른문학으로나 글맛이 없는 노릇이구나 싶어요. 글맛이 없다면 삶맛 또한 없는 셈이구나 싶어요.

 

 애써 옛이야기를 빚으려 하지 않아도 좋아요. 꼭 문학이나 작품이나 예술이나 문화라는 틀에 넣지 않아도 돼요. 좋은 사랑과 착한 꿈과 빛나는 슬기를 이야기 한 자락에 담으면 기쁘겠어요. 나 스스로 오늘 하루 아름답구나 싶은 삶을 누리면, 나는 오늘부터 가장 좋은 문학이 될 이야기를 일군다고 느껴요. 이 이야기는, 내가 눈을 감고 흙으로 돌아간 뒤에, 내 아이들과 내 아이들이 낳을 아이들한테 사랑스러울 ‘옛이야기’가 되리라 믿어요. 굳이 ‘오늘 옛이야기 틀을 만들어 뭔가를 써야’ 문학이 되지 않아요. (4345.1.1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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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에서 자라는 아이들 - 엄마와 보육사가 함께 슨 솔깃한 자연교육이야기
아이카와 아키코 지음, 장희정 옮김 / 호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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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이 되어 살아가는 뜻
 [사랑하는 배움책 3] 아이카와 아키코, 《흙에서 자라는 아이들》(호미,2011)

 


- 책이름 : 흙에서 자라는 아이들
- 글 : 아이카와 아키코
- 옮긴이 : 장희정
- 펴낸곳 : 호미 (2011.10.24.)
- 책값 : 13000원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아이를 낳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간대서 더 훌륭하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지 않으며 살아가기에 더 홀가분하지 않습니다. 훌륭하게 삶을 짓는 사람은 어떠한 얼거리나 터전에서도 훌륭하게 삶을 짓습니다. 홀가분하게 삶을 빚는 사람은 어떠한 곳 어느 때라도 홀가분하게 삶을 빚습니다.

 

 일본사람 아이카와 아키코 님이 쓰고 엮은 《흙에서 자라는 아이들》(호미,2011)에 나오는 ‘숲 유치원’에서 아이를 함께 키운 어느 어머니는 “육아를 하기 전까지는 간단하고 편리한 것만을 추구했지만, 아이를 앞에 놓고 작은 일이지만 날마다의 삶을 신중하게 다시 돌아보곤 한다(195쪽).”고 이야기합니다. 모든 사람한테 들어맞을 말은 아닐 테지만, 적잖은 사람들은 아이와 함께 살아가지 않는 동안 ‘작은 데까지 꼼꼼히 살피며 내 삶 되짚기’를 못하곤 합니다. 그런데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도 ‘작은 데까지 찬찬히 헤아리며 내 삶 돌아보기’를 못하거나 안 하는 사람이 무척 많아요.


.. 아이들은 이백 미터 남짓 한 산길을 한 시간쯤 걸려 천천히 이동하면서 벌레하고 놀기도 하고 나무 열매나 낙엽, 꽃잎을 줍기도 한다 … 움직이는 동물들은 표정이 있다. 웃고 찡그리는 표정에서 아이들은 감정을 느낀다 … 산골짜기에서 나는 이른 봄의 풀 냄새, 흙냄새, 짐승들의 똥 냄새, 향긋한 꽃향기 ……. 자연에는 도시에서는 맡을 수 없는 다양한 냄새가 있다 ..  (20, 25, 35쪽)


 아이와 함께 살아가기에 온누리를 더 두루 살피지는 않습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며 내 삶을 더 낱낱이 헤아리지는 않습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갈 때에는 아이가 언제나 내 곁에 붙으며 같이 움직이니, 이 아이 눈썰미와 눈높이와 눈길로 바라보기 마련입니다. 이 아이 눈썰미와 눈높이와 눈길에서는 아이 삶과 어버이 삶이 어떠한가를 톺아보기 마련입니다.

 

 아이를 낳지 않고 살아가면서 온누리를 밝게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녁 눈길과 마음길과 생각길을 한결같이 올바로 추스릅니다. 아이를 낳으며 살아간대서 온누리를 밝게 헤아리는 눈길과 마음길과 생각길이 한꺼번에 생기지 않아요. 웃고 울며 뛰고 놀며 먹고 자며 아프고 일어서는 아이를 바라보는 동안 ‘앞으로만 치닫던 내 발걸음’을 멈추거나 그치면서 차근차근 ‘함께 살아가기’를 되뇔 때에 비로소 무언가 깨닫습니다.

 

 이를테면, 아이를 낳았어도 퍽 이른 나이부터 학원에 넣는다든지 어린이집이나 유아원에 보내고는 오직 돈벌이에 얽매인다면, 이러한 삶을 보내는 어버이는 아무것도 못 느끼거나 못 깨닫거나 못 바라보거나 못 생각합니다. 아이한테 삶을 느끼도록 이끌지 않으면서 꽤 이른 나이부터 영어이니 수학이니 한자이니 하며 ‘나중에 대학입시 치를 준비’로 아이를 몰아세우는 어버이 또한 아무것도 못 느껴요. 푸름이가 된 아이한테 대학입시 공부를 시키는 어버이라 해서 다르지 않아요. 대학교는 시험을 치러야 들어가는 데가 아니에요. 대학교는 ‘대학교 마친 다음 돈 잘 버는 일자리 수월하게 얻도록 자격증이랑 졸업장 따는’ 데가 아니에요. 곧, 중·고등학교란 문제집과 참고서를 잔뜩 짊어지고 ‘대학입시 공부를 하는’ 곳이 될 수 없습니다. 푸른 빛 흘러넘치는 아이들이 푸른 꿈 마음껏 꽃피우도록 이끄는 곳이어야 합니다. 푸른 빛 흘러넘치는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버이라면, 이 아이들한테 참고서나 문제집을 사서 안기면 안 돼요. 살아숨쉬는 책을 선물하든지, 살아숨쉬는 이야기를 들려주든지, 어버이 스스로 살아숨쉬는 꿈을 이루는 모습으로 살림을 일구어야 해요.

 

 아이들은 집에서 어버이와 함께 삶을 누리면서 배워야 합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스스로 참다이 배우는 길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대학교에 간다 할 때에는, 이제부터 공부뿐 아니라 삶짓기까지 스스로 살피면서 익히는 길을 찾을 마음이어야 합니다.


.. 부모가 자연을 어떻게 인식하고 뭇 생명을 어떤 태도로 대하느냐에 따라 자연에 대한 아이들의 인식과 태도는 크게 달라진다 … 아무리 몸에 좋고 맛있는 음식이라도, 음식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 아이와 함께 음식을 먹을 때, 엄마는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먹는 것은 즐거운 일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음식을 먹어야 몸에도 좋은 법이다 … 아이들은 자신도 똑같이 자기 엄마한테서는 특별한 대우를 받고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신이 충분히 사랑받고 있기에 다른 아이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이다 ..  (24, 30, 115쪽)


 나는 참 오래도록 삶을 짓는 일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막상 삶짓기를 어떻게 해야 좋을까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밥과 옷과 집을 어디에서 어떻게 마련해서 어떻게 누리는가를 옳게 살피지 못했습니다.

 

 목숨을 아끼고 자연을 생각하며 푸나무를 보살필 줄 안대서 삶을 짓는 길에 접어드는 매무새는 아닙니다. 진보를 외치거나 개혁을 부르짖거나 보수를 움켜쥔대서 삶을 지을 수 없습니다. 일구는 삶도 짓는 삶도 누리는 삶도, 진보나 보수나 개혁이나 수구라는 틀로는 다가설 수 없습니다. 봄햇살은 모두한테 따사로운 봄햇살이고, 겨울햇살은 누구한테나 포근한 겨울햇살이듯, 삶짓기란 사상이나 철학이나 학문이나 문학이나 예술이나 그 무엇으로도 재거나 따지거나 다가서거나 알아챌 수 없습니다.

 

 삶짓기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거든요. 나부터 참다이 사랑하고, 내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착하게 사랑하는 나날을 차곡차곡 누리면서 삶짓기를 이루거든요.

 

 손꼽히는 책을 읽는대서 삶을 깨닫거나 느끼거나 알아보지 않아요. 손꼽히는 사람한테서 이야기를 들었기에 삶을 바로보거나 톺아보거나 들여다보지 않아요. 스스로 살아가고픈 삶을 생각하고 찾으며 씩씩하게 걸어갈 때에 스스로 깨닫거나 바로보는 내 모습이에요. 내가 바라보는 대로 내 삶이 돼요. 내가 좋아하는 대로 내 나날이 돼요. 내가 뿌리내리는 대로 내 삶이 돼요.


.. 지금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인공적인 것을 의도적으로 배제하지 않으면 한평생 자연과 접촉할 기회 없이 살아갈는지도 모른다 … 텔레비전은 리모컨으로 조절하고, 휴대전화는 조작 단추만 누르면 신호가 간다. 그러나 숲과 같은 자연은 리모컨이나 조작 단추로 작동시킬 수 없다. 오로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절에 따라 변할 뿐이다 … (시청이 밀어붙이려 하던) 공원조성계획은 엄마들의 의식을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다. 육아를 하면서 엄마들은 ‘골짜기’라는 낱말을 자주 썼다. 자연으로써 ‘골짜기’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런 엄마들의 생각은 아이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아이들은 다른 지역의 골짜기를 찾을 때에도 “논이 있네.” “올챙이고 살고 있을까?” 하고 관심을 두게 되었다 ..  (51, 89, 156쪽)


 《흙에서 자라는 아이들》에 나오는 ‘숲 유치원’은 아이들을 흙에서 뛰놀며 자라게 합니다. 숲놀이라는 길을 걸으면서 아이와 어버이가 저마다 생각하는 삶이 되도록 이끕니다. 누가 몰아세우거나 등떠미는 놀이나 배움이 아니에요. 대학입시를 일찍부터 채근하는 학습이나 자기주도나 창의력이나 무슨무슨 대단한 이름이 붙는 일이 아니에요. 흙땅을 맨발로 걷습니다. 나무를 두 손으로 쓰다듬습니다. 꽃잎과 풀잎을 어루만집니다. 물웅덩이에서 뒹굽니다. 하늘을 바라봅니다. 구름과 바람을 느낍니다. 햇살을 내리쬐고 멧자락을 오르내립니다. 고드름을 따고 얼음을 주머니에 넣습니다. 나뭇가지를 줍고 동무들과 어울려 숲에서 도시락을 먹습니다.

 

 꽃이름이나 풀이름을 따로 외울 까닭이 없습니다. 오늘 보고 모레 보며 글피 보면서 아주 천천히 나하고 가까워지는 꽃이나 풀이 되면, 시나브로 마주하는 벗이 돼요.


.. 엄마들이 아이들을 함께 돌볼 때, 가장 애를 먹는 부분은 아이마다 체력과 발달 상황이 다르다는 점이다. 이럴 때 모든 아이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아이들 중에서 가장 어리고 신체 발달이 느린 아이한테 맞추는 것이다 … 자기 아이를 사랑하고 다른 아이들을 사랑하게 되면, 그 아이들의 앞날을 위해 행동하지 않을 수 없다 ..  (86, 197쪽)


 어른은 어른이 되어 살아가는 뜻을 늘 되새길 수 있어야 어른이에요. 아이를 낳지 않고 살아가는 어른이라면, 내 몸속 목숨으로 빚은 아이가 없으나, 나와 같은 목숨을 빛내는 숱한 이웃 어른과 ‘곧 어른이 될 새 목숨’이 함께 어우러질 사랑스러운 터전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를 낳고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른이라면, 내 아이부터 찬찬히 바라보면서 이 땅 모든 아이들이 사랑스레 발을 디딜 터전을 꿈꾸면서 삶을 빛낼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을 빛내는 꿈을 이루는 사랑을 따사로이 보듬는 사람이 어른입니다. (4345.1.1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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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특별하게 조금 다르게 함께 살아가기 - 자폐인 형제와 함께 살아온 한 가족의 진솔한 삶의 기록
주디 카라시크 지음, 폴 카라시크 그림, 권경희 옮김 / 양철북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함께 있어 좋은 나날
 [사랑하는 배움책 2] 주디 카라시크·폴 카라시크, 《함께 살아가기》(양철북,2004)

 


- 책이름 : 함께 살아가기
- 글 : 주디 카라시크
- 그림 : 폴 카라시크
- 옮긴이 : 권경희
- 펴낸곳 : 양철북 (2004.8.9.)
- 책값 : 9800원

 


 겨울날 방바닥에 불이 뜨끈뜨끈 올라옵니다. 참 좋습니다. 내 삶에서 글쓰기를 내 일로 삼겠다고 여긴 1995년부터 지난 2011년까지 겨울날 손가락이 차갑게 얼지 않고 글을 쓴 적이 아직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곳 전남 고흥에서 마련한 우리 시골집에 불을 후끈후끈 넣도록 기름값을 많이 버는 삶이란 소리가 아니요, 우리한테 목돈이 넉넉히 있어 햇볕전지판을 지붕에 붙여 따순 물 마음껏 쓴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남녘땅 고흥 시골마을은 날이 참말 폭하니까 방바닥에 불을 조금 넣어도 따스히 겨울을 날 수 있어요.

 

 지난겨울 나던 충청북도 멧골집에서는 다달이 기름 300리터를 빠듯하게 써야 했습니다. 이러고도 물은 얼어붙어 얼음물 빨래를 하느라 날마다 손가락이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이무렵 첫째 아이는 막 네 살로 접어들며 밤오줌을 가릴 듯 말 듯했으니 아이 기저귀 빨래는 퍽 줄었지만, 겨울철이니 아이 두툼한 옷가지 빨래는 날마다 넘쳤어요. 지나고 나니 아무렇지 않게 말할 뿐, 한창 얼음물 빨래를 하며 절로 곱아 따가운 손가락을 겨드랑이에 끼며 녹이면서 빨래할 때에는 참말 봄이 언제 오나 하고 노래노래 했어요. 노래로 견디고 봄꽃을 그리는 꿈으로 살았어요.

 

 오늘 내가 퍽 따스한 시골집에서 손가락 얼어붙지 않으며 글을 쓰기에 춥게 겨울살이를 하던 지난날을 잊을 수 있지 않습니다. 돌이키면, 나는 추위를 덜 타지만, 옆지기는 추위를 많이 탑니다. 그동안 집식구한테 너무 모진 삶을 보내도록 했다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따스한 날씨가 이렇게 좋다면, 따스한 손길로 따스히 나누는 사랑은 참말 얼마나 좋으며 기쁘고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아, 모진 미움이나 차디찬 매몰참이나 쓰라린 생채기는 사람들한테 얼마나 슬프며 고단한 삶이 될까요.


.. 이날 큰오빠 데이비드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집 지붕 위에 올라갔다. 큰오빠가 이 집에서 산 지 거의 40년이 되도록 우리 중 어느 누구도 평생을 자폐증에 허우적거렸던 오빠에게 그 흔한 경험을 맛보며 줄 생각을 더 일찍 못했던 것이다 … 불현듯 만약 늘 자기가 집안에 걱정을 안겨 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10, 98쪽)


 함께 있어 좋은 나날입니다. 좋은 사람하고 있으니 좋은 삶이요 좋은 나날이라 할 테지만, 좋고 아니고를 떠나 함께 있어 좋은 나날이에요.

 

 나는 우리 아이들이랑 옆지기하고 한집에서 살아가며 이들 (나를 뺀) 세 식구가 좋거나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느 모습은 좋고 어느 모습은 나쁘다고 금을 그을 수 없어요. 어느 모로 보든, 어느 모습을 느끼든, 한결같이 내 살붙이요 내 사람이며 내 빛덩어리예요. 밥을 먹고 똥을 누는 사람이고, 잠을 자고 눈을 뜨는 사람이에요. 춤을 추고 노래하는 아이들이며, 까르르 웃다가 엉엉 우는 아이들이에요.

 

 오직 함께 있어 좋은 나날입니다. 비싼 밥을 먹을 수 있대서 좋지 않아요. 푸성귀를 잔뜩 벌여 먹는대서 나쁘지 않아요. 값싸게 장만해서 밥을 먹으니 좋을까요. 이웃 할머니 할아버지가 제사를 하신 다음 남은 떡을 손수 가져다주셔서 고마이 먹으니 좋을까요.

 

 오물오물 냠냠 제사떡을 씹어먹습니다. 이웃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우리가 드릴 만한 무언가 있을까 떠올리지만 좀처럼 떠오르지 않습니다. 스스로 지어 스스로 일구는 삶인 어르신인데, 우리가 드릴 만한 무언가는 따로 없습니다. 그래, 이와 같다면, 우리는 ‘무엇이든 주셔요. 다 받을게요.’ 하는 한 가지를 드릴 수 있을까요. 딸아들 모두 도시로 나간 이웃 어르신들 댁에 틈틈이 마실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가지가 될까요. 무엇보다 우리 네 식구 스스로 우리 삶을 우리 손과 몸뚱이 놀려 짓는 길을 걷는다면, 시나브로 예쁜 선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흐뭇할 수 있으리라 믿어요.


.. 큰오빠의 목욕 가운 밑에 가려져 있던 상자를 찾아 내가 빌렸던 책 두 권을 팽개치듯 던져 넣는 순간 갑자기 큰오빠가 한 번도 자기 방 청소를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그랬다. 나는 물건들을 치우느라 반나절 동안 놀지도 못하고 고생 고생 하는데, 왜 이래야 하지? 그런데 큰오빠의 물건은 언제나 큰오빠가 원하는 장소에 그대로 있었다 ..  (37쪽)


 아이들은 더 예쁘장하게 생겼다 해서 예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더 일찍 말문을 튼대서 더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더 빨리 글을 깨치고 책을 읽는대서 더 똑똑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다울 때에 예쁘고 사랑스러우며 똑똑하고 좋아요.

 

 아이들은 천재도 영재도 아닌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은 내 아이가 아닌 아이입니다. 이 아이들은 나와 같은 목숨이고 나와 같은 사람입니다. 아이를 낳은 어버이 스스로 눈빛 맑은 삶일 때에, 아이들은 아주 마땅히 천천히 저희들 눈빛 맑은 삶을 사랑하면서 씩씩하게 저희 길을 걷습니다.

 

 아이들을 학원에 넣을 까닭이 없습니다. 어버이 스스로 삶을 배워서 아이하고 함께 눈 손 마음 몸 꿈 사랑을 맞추면서 펼치면 됩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까닭이 없습니다. 어버이 스스로 우리 보금자리가 배움터가 되도록 슬기로이 일구면 됩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이 터가, 이 집이, 이 마을이, 이 흙땅이, 이 숲이, 이 멧자락이, 이 냇물이, 이 바람 쐬는 후박나무 마당가 빨래줄이 배움터예요.

 

 배움터는 저 멀디먼 읍내나 면내나 도회지에 있지 않아요. 배움터는 저 머나먼 일본이나 미국이나 프랑스나 독일이나 호주나 캐나다에 있지 않아요. 내 보금자리가 배움터예요. 내 마을이 배움터예요. 내 가슴에서 피어나는 배움꽃이에요.


.. 나는 이 상황이, 비록 바람직한 방식은 아니지만,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임을 알고는 있었다. 큰오빠에게 내가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인 것처럼, 내게 큰오빠도 한 핏줄인 가족이었다. 하지만 나는, 당연하고도 옳은 일,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걸 그 당시에는 원치 않았다. 나는 버스를 타고 달아나고 싶었던 것이다 … 아니다. 그게 아니었다. 오빠는 자폐증이 없는 사람들이 자폐인들을 보는 시각을 알고 있었다. 나는 자폐증이 있는 사람들이 영웅이 아니라 자폐증이 없는 사람들이 영웅인 영화를 오빠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아니다. 그게 아니었다. 누구라도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자폐증이 있는 형인 걸 알 수 있다 ..  (101, 184쪽)


 가만히 생각해 보면 누구나 스스로 깨달아요. 장애인이라 하든 비장애인이라 하든, 어느 시설이나 학교나 학원에 보내야 비로소 무언가를 배우면서 이 땅에서 튼튼하거나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아요. 사람들이 도시로 너무 많이 몰리는 나머지, 도시에서 돈버는 일자리에 쫓기듯 휘둘리는 나머지, 그만 학교라고 하는 울타리를 세울밖에 없고, 장애인 시설이나 복지 시설을 마련할밖에 없어요.

 

 가만히 헤아려 보면 누구나 쉽게 알아채요. 동양이든 서양이든 어디이든, 그리 멀지 않은 예전에는 누구나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누구나 집에서 어버이와 둘레 어른한테서 배웠어요.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가리지 않아요. 누구보다 내 집 어른들이 당신들 목숨을 나눈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아끼고 믿을 때에 배움씨앗이 배움꽃으로 피어나요. 배움열매가 맺고 새로운 배움나무가 흙땅으로 떨어져 자라자면, 우리들 살아가는 마을살이가 아름다울 수 있어야 해요.

 

 마을이 학교라 하는데, 마을에 앞서 집이 학교예요. 작디작은 보금자리 집 한 채가 배움터예요. 작은 배움터가 서로 모이고 서로 얼크러지면서 예쁜 배움마을이 돼요. 배움집 하나가 모여 배움마을이 되고, 배움마을이 나란히 어깨동무하면서 배움나라가 됩니다. 배움나라가 하나둘 엮이면 배움별, 곧 이 지구별이 온통 배움빛으로 가득하겠지요.


.. (장애인 보호시설) 브룩 팜에서 정한 규칙에 따라서, 오빠는 정기적으로 집을 방문했다. 집에서는 오빠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오빠는 마음껏 쉬었으며, 그가 좋아하는 쇼를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다. 집에서 오빠는 일을 통해서나 카운슬러의 지도를 받아 개선되어야 할 사람이 아니라, 그저 부모님과 동생들과 함께 집에서 사는 가족이었다 ..  (175쪽)


 주디 카라시크 님이 글을 쓰고, 폴 카라시크 님이 그림을 넣은 《함께 살아가기》(양철북,2004)를 읽습니다. 두 카라시크 남매는 당신 식구들 이야기를 책 하나로 함께 빚습니다. 두 남매가 쓴 두 남매 식구 가운데 한 사람은 장애인이라고 해요.

 

 장애인, 그래요, 장애인이라고 해요.

 

 이야기책 《함께 살아가기》 첫머리부터 거의 끝자락까지 ‘장애인과 살아가기’를 이야기해요. 어느덧 마무리가 될 무렵, 두 사람 카라시크 남매를 비롯해 모든 식구들은 이제껏 함께 살았고 앞으로 함께 살아갈 한 사람이 ‘장애인’이 아닌 ‘그저 나와 같은 한식구’요, 나와 같으면서 다른 목숨인 어여쁜 사람이라고 깨달아요.


.. 파란 불이 들어오자, 우리는 앞으로 나간다. 차 안은 조용하다. 폴과 나와 큰오빠, 말은 소리 없이 우리의 뇌 안에서 폭포처럼 떨어지고 있다 ..  (232쪽)


 《함께 살아가기》를 읽는 동안에도, 《함께 살아가기》를 덮은 뒤로도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 책을 쓴 두 사람뿐 아니라 다른 집에서도 서로 엇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모두들 제도권학교에 발을 디뎌 ‘현대 교육’을 받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손쉽게 ‘장애인’이라고 배워요. 이 낱말을 쓸밖에 없습니다.

 

 내 어릴 적을 곰곰이 되새깁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왜 한국말에는 ‘장애인’을 가름할 만한 낱말이 없을까?’ 하고 몹시 궁금했어요. ‘병신’은 한국말이 아니에요. 한자말이에요. 장애인도 한자말이에요. 장애자에서 장애인으로 바꾼 말이고, 장애인을 다시 장애우로 바꾸자고 하지만, 이러거나 저러거나 다 한자말 굴레에서 맴돌 뿐이에요. 이런 낱말을 바꾼대서 복지나 문화나 생각이 달라지지 않아요. 무엇보다 말바꾸기는 삶짓기하고 너무 동떨어져요. 삶을 아름다이 사랑할 길을 찾아야지, 껍데기 말만 갈아치운대서 나아질 수 없어요.

 

 귀머거리 절름발이 장님 외다리 외팔 애꾸 얼금뱅이 …… 온갖 말마디는 있는데, 이 모두를 아우르는 한국말은 딱히 없습니다. 왜 없을까, 왜 한국말에는 이런 말이 없을까, 오래도록 곰곰이 생각하면서 나는 내 나름대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장애인’을 가리키는 한국말 없는 일이란 참 좋은 일 아닌가 하고.

 

 왜냐하면, 굳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가를 까닭이 없으니까요.


.. “엄마와 아빠는 네 큰형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상한 점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큰형 다음엔 다른 자식은 절대로 안 낳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나요?” “폴, 엄마와 아빠는 자식을 넷 낳기로 했고, 또 실제로 네 명을 낳았지.” ..  (149쪽)


 왼손을 쓰니 왼손잡이입니다. 오른손을 쓰니 오른손잡이입니다. 몇몇 사람은 바른손이라고도 쓰지만 바른손잡이라고는 쓰지 않습니다.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니 장님입니다. 귀로 듣지 못하니 귀머거리입니다. 다리를 저니 절름발이입니다. 팔이 하나, 곧 외로 팔 하나 있으니 외팔입니다. 얼굴이 얽어 얼금뱅이입니다.

 

 장님도 귀머거리도 절름발이도 외팔도 얼금뱅이도 누가 누구를 따로 놀리는 말이 아닙니다. 바보도 멍청이도, 곰곰이 따지면 누가 누구를 놀리는 말이 아닙니다. 저절로 가리키는 말입니다.

 

 돌을 가리켜 돌이라 합니다. 똥을 가리켜 똥이라 합니다. 금을 긋거나 사이를 나누는 말이 아니에요. 바라보며 느끼는 그대로 가리키는 말입니다. 닭은 닭이고 개는 개요 고양이는 고양이예요. 개를 고양이라 가리켜야 높아지지 않아요. 말을 소라고 가리켜야 훌륭해지지 않아요.

 

 나는 생각합니다. 아이는 아이입니다. 아이는 애늙은이가 되면 안 됩니다. 할머니는 할머니입니다. 할머니보고 젊다느니 어리다느니 말할 수 없어요. 할머니는 할머니예요.

 

 다리 하나를 쓰지 못하면 두 다리 쓰는 사람하고 같을 수 없어요. 두 다리 쓰는 사람은 외다리로 살아가는 사람 마음을 알 수 없어요. 거꾸로, 외다리는 두다리 삶을 모르겠지요. 그러나, 두 사람은 두 사람대로 서로 좋은 삶을 일구어요.

 

 기운센 사람은 일을 더 많이 하겠지요. 기운이 여리면 여린 대로 일을 하며 살림을 꾸리겠지요. 기운이 세어 일을 많이 한대서 더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기운이 세기 때문에 짐을 더 나를 수 있고, 기운 여린 사람을 등에 업고 함께 길을 나설 수 있어요.

 

 사람 삶에는 ‘정상’이나 ‘비정상’이 없어요. ‘장애’도 ‘비장애’도 없어요. 모두 다 달리 선물받은 삶이에요. 오롯이 사람으로 바라볼 나날이에요. 뻐드렁니는 뻐드렁니이고 토끼이는 토끼이예요. 덧니는 덧니일 테고 주걱턱은 주걱턱이에요. 모두들 함께 있어 좋은 동무요 좋은 이웃이고 좋은 사람이에요. 더 예쁘거나 덜 예쁜 틀이 없어요. 더 나쁘거나 덜 나쁜 금이 없어요.


.. 오빠에게는 우리가 그 여행에서 함께 무엇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빠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함께 있음’은 정말 중요한 전부였다. 그렇기 때문에 오빠에게 우리는 미래에도 같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 가족은 함께 있을 것이라는 것을 확인했던 것이다 ..  (186쪽)


 함께 걸어가면 돼요. 함께 쉬면 돼요. 함께 놀면 돼요. 함께 밥먹으면 돼요. 함께 잠자리에 들고, 함께 활짝 웃으면 돼요.

 

 얼굴이 검으니까 깜둥이예요. 얼굴이 하야니까 흰둥이예요. 나는 누렁둥이일 뿐이고, 나는 내 살결이 누렁둥이라서 이 모습이 좋아요. 크레파스에 살빛이라는 말을 쓰는 일이 잘못이지 살빛이라는 낱말을 쓰는 일이 잘못일 수 없어요. 아프리카땅 아주 더운 나라에는 눈이 없어요. 눈이 없는 곳에서는 눈이 없으니 눈이라는 낱말조차 있을 턱이 없어요. 우리한테는 함박눈 싸락눈 흰눈이 있어요. 눈송이 눈꽃송이가 있어요. 우리는 우리대로 우리 살빛을 쓰면 아름다운데, 크레파스 공장에서 엉뚱한 빛깔을 살빛으로 넣는 바람에 우리는 우리 살빛을 잊었어요. 한겨레 살빛은 흙빛을 닮은 살결 빛깔이었거든요. 이러한 빛깔을 우리 스스로 잊거나 잃었어요. 구리빛도 누런빛도 아닌 흙빛이 여느 한겨레 살빛이었어요.

 

 사람들 살빛뿐 아니라 잎빛을 보거나 줄기빛을 보아도 서로 매한가지예요. 잎이라 해서 ‘다 똑같은 푸른잎’이 아니거든요. 참나무 푸른잎 빛깔이랑 소나무 푸른잎 빛깔이 같을까요. 살구나무랑 매화나무 푸른잎이 같은 푸름일까요. 은행나무랑 벚나무 줄기는 똑같은 빛깔일까요. 도토리랑 밤이랑 똑같은 빛깔일까요. 개나리랑 원추리랑 수선화랑 달맞이랑 똑같은 노랑일까요. 그런데 우리들은 그저 노랑이나 푸름이니 빨강이니 파랑이니 하면서 뭉뚱그려요.

 

 함께 있어 좋은 사랑이라고 느끼면 기쁘겠어요. 이것도 저것도 아닌 고마운 사랑인 줄 느끼면 반갑겠어요.

 

 아, 새벽에 일어나 조용히 글을 쓰던 나는 이제 졸음이 쏟아져요. 세 식구 새근새근 자는 옆방으로 살금살금 발소리 죽이며 건너가서 다시 이불 뒤집어쓰고 눈을 붙여야겠어요. 네 식구 나란히 누워 하얗게 동 트는 새 아침 예쁘게 맞이해야겠어요. 이불 뒤집어쓰고 따순 기운 듬뿍 받고 싶어요. (4345.1.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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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
김비 지음 / 삼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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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보다 좋은 꽃내음이 있을까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44] 김비,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

 


- 책이름 :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
- 글 : 김비
- 펴낸곳 : 삼인 (2011.10.14.)
- 책값 : 13000원

 


 (1)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생각하며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지난해에 이르러 드디어 보았습니다. 이 영화를 집에서 세 식구가 함께 보고 나서 디브이디를 꼭 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흔히들 〈고양이를 부탁해〉라는 영화가 ‘인천을 무대로 인천을 잘 그린 작품’이라 추켜세우지만, 나는 〈고양이를 부탁해〉를 보며 답답하고 갑갑해서 머리가 도는 줄 알았습니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는 ‘인천을 모르는 사람과 고향이 인천이 아닌 사람과 인천을 알려 하지 않는 사람과 인천에 살아도 제 삶터를 사랑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인천이란 어떠한 곳이라고 바라보는 치우친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이었다고 느낍니다.

 

 인천은 일제강점기부터 아주 끔찍하게 ‘모든 사람과 돈과 품과 땀과 자연을 서울로 올려다 바치는 곳’이 되는 바람에 아주 뚱딴지 같은 도시가 만들어졌어요. 한국은 일본한테 식민지이지만, 인천은 서울한테 식민지였어요. 이 틀은 오늘까지도 고스란히 이어져요.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낸다 하지만, 인천에서는 사람도 물건도 돈도 뭐도 다 서울로 보내고 인천에는 찌그렁이만 남기도록 해요.

 

 나는 이런 인천에 남은 찌그렁이 가운데 하나였어요. 그러나, 내가 찌그렁이라 해서 내 삶이 슬프거나 어둡거나 퀴퀴하거나 답답하거나 못마땅하거나 짜증스럽지 않았어요. 나는 제일제당 공장에서 날마다 어마어마하게 내뿜는 쓰레기물 냄새를 맡으며 국민학교를 다녔고, 연탄공장 탄가루를 마시며 국민학교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했으며 인천 부두에서 내린 온갖 크고 무거운 물건들 가득 실은 커다란 짐차가 무시무시하게 내달리는 찻길 옆 골목동네에서 동무들하고 놀았습니다.

 

 터는 우중충하지만, 터에 깃든 사람들은 웃었고, 밥을 먹었으며 함께 살았어요.


.. 보통 아이들처럼 말을 했고, 보통 아이들처럼 뛰어다녔고 함께 어울렸던 것뿐인데, 내 곁에 있는 아이들은 모두 나를 두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 나 같은 아이와 놀자고 집을 찾아오는 친구들도 없었다. 친구가 없었지만, 나는 친구가 없어 외롭고 싫다는 느낌보다는 이제는 놀릴 사람이 없어서 괜찮다고 받아들였다 ..  (19, 20쪽)


 영화를 함께 보는 옆지기는 으레 “벼리야, 너희 아버지 또 영화 보면서 운다.” 하고 말합니다. 〈천하장사 마돈나〉를 보면서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거든요. 영화를 잘 빚었고, 이야기를 아름다이 엮었으며, 마지막으로 영화를 담은 무대인 인천 골목동네를 티없이 잘 보여주었구나 싶어요.

 

 아파트이든 골목동네이든 사람 사는 터예요. 가난한 아파트이든 가멸찬 아파트이든 똑같이 사람 사는 층층집이에요. 가난한 골목동네이든 마당 널따란 부잣집 골목동네이든 한결같이 사람 어우러지는 살림집이에요.

 

 가난하고 좁은 골목집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으러 딸아들이 명절마다 찾아옵니다. 조그마한 골목집이 복닥거립니다. 조그마한 골목집 마루나 더 작은 손바닥만 한 마당에서 지짐이를 합니다.

 

 이 사랑스러운 곳이 바로 내 고향이고 내 동무들 함께 태어나 뛰놀던 곳이에요.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는 나한테 더없이 멋스럽고 고마운 선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 영화가 막 극장에 걸렸을 때에는 왜 못 보았을까요. 그때 얼마나 일이 많고 바빴다며 이 영화를 지나쳤을까요. 이제 아이가 둘이라 아이들 데리고 극장에 갈 수 없으니 영화를 못 본다고도 하지만, 나는 막상 극장이라는 데에 찾아가서 영화를 본 일이 너무 드물지 않나 돌아봅니다. 그래도 영화가 흥행을 거의 못 하는 바람에 나처럼 극장을 거의 안 가는 사람이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겠구나 생각할 때에는 벌써 내려가서 사라지고 말았을까 싶습니다.


.. 냉철하게 대상자를 관찰하고 판단하는 일이 정신분석학자나 의료진들의 임무이겠지만, 그들이 다루어야 하는 것은 짓무른 상처나 봉합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점을 그들은 간과하는 것처럼 보인다 … 정식적인 절차를 거쳐서 치료를 받는 일이 그렇게 힘든 것인 줄 정말 몰랐다. 분명히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조치도 해 주지 않던 의사나,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기에 남자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남성호르몬을 건네주는 약사나, 그 당시 내게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모습들이었다 ..  (54, 150쪽)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는 ‘인천을 그리는 영화’가 아닙니다. ‘성 정체성이 남자 아닌 여자’라고 느끼는 아이가 ‘남자로 태어나 남자로 살며 부대끼는 고단하면서 밝은 삶’을 다루는 영화입니다. 다만,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이와 같은 줄거리뿐 아니라, 영화를 찍은 바탕이 되는 마을살이가 한껏 눈에 크게 들어왔어요.

 

 이런 느낌은 영화 〈집으로〉에서도 이어져요. 〈집으로〉라는 영화 줄거리뿐 아니라, 이 영화에 나오는 멧골마을이 좋습니다. 〈선생 김봉두〉라는 영화에서는 영화 줄거리는 그닥 알뜰하지 못하구나 싶지만, 영화를 찍은 멧골마을 작은학교가 더할 나위 없이 예뻐서 좋아요.

 

 사람들은 영화를 보며 영화 줄거리를 즐기지만, 나는 영화를 보면서 줄거리뿐 아니라 마을 모습을 함께 즐겨요. 〈라 스트라다〉라는 영화를 보면서 젤소미나와 참파노뿐 아니라 이탈리아 변두리와 시골자락 모습이 한껏 사랑스럽습니다. 열 번 스무 번 다시 보았어요. 나는 〈책 읽어 주는 남자〉라는 영화에서 영화 줄거리 못지않게 두 사람이 젊은 날 자전거를 타고 어울렸던 마을자락 모습이 아주 싱그럽다고 느꼈습니다. 할머니가 목을 매달아 죽은 조그마한 감옥 방구석 또한 매우 아리땁다고 느껴요.

 

 어쩌면, 아름다운 줄거리를 빛내는 바탕이란 아름다이 살아가는 사람들 마을이 아닌가 싶어요. 아름다이 살아가는 마을에서는 좋은 기운을 찬찬히 내뿜으며 이곳에서 영화를 찍건 글을 쓰건 그림을 그리건 사진을 찍건, 또 이런 일을 하건 저런 놀이를 하건, 모두들 아름다운 꿈과 사랑에 젖어들도록 이끌지 않느냐 싶어요.


.. 나는 분명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는데도, 한 번도 내 삶은 세상에 받아들여진 적 없었다 … 그들은 방송의 힘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일반 사람들보다 그들은 방송의 힘을 훨씬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을 이야기를 함으로써, 그들이 얻은 것은 ‘법석’이었다. 물론 그 ‘법석’이 바로 그들이 원했던 것이었다 …내가 전화로 했던 이야기들은 모두 외면했으면서, 자신들이 필요한 것들만 취해 방송에 이용한 것은 분명 성적소수자들을 배려하고 상처를 보듬으려는 행동일 수는 없었다 ..  (153, 174∼175쪽)


 그러니까 나는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가 참 안쓰럽다고 느낍니다.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사랑스레 복닥이는 예쁘장한 골목동네를 우중충하면서 퀴퀴한 곳으로 그리니까요.

 

 누군가는 우중충하면서 퀴퀴한 그림만 느끼기에 이렇게 영화를 찍는다고 하지만, 못생기고 시커만 얼굴이라 하더라도 즐거이 짓는 웃음이란 얼마나 해맑으면서 티없는지요. 깊디깊은 굴에서 탄을 캐고 나온 시껌둥이 아저씨들 짓는 웃음이란 얼마나 고우면서 환한지요.

 

 막장이라서 참말 끝장은 아니에요. 막장에서도 사람이 살아가요. 막장에서도 사람이 숨을 쉬고 밥을 먹으며 꽃이 자라나요. 이 꽃을, 이 빛을, 이 사랑을, 이 이야기를 찬찬히 헤아리며 서로 얼크러진다면 언제나 무지개빛이 지구별을 가득 채우며 보듬으리라 믿어요.

 


 (2) 책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를 읽으며


 김비 님 삶을 들려주는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를 읽습니다. 2011년 10월에 나온 책을 2011년 12월 끝자락부터 읽었으니, 나온 지 두 달이 지나 읽은 셈인데, 내가 집에서 종이신문을 안 읽고, 누리신문조차 읽지 않기 때문에 새책 소식을 못 듣는달 수 있습니다만, 이 책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둘레에서 하나도 못 들었어요.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 같은 이야기책은 널리 알리며 함께 읽을 만하지 못한 책이라, 두 달이 지나도록 이 책을 다루는 글을 찾아 읽을 수 없나 궁금하지만, 나는 이 책을 며칠 동안 천천히 하나하나 곱새기며 읽는 동안, 이 책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는 ‘마흔살 트랜스젠더 김비, 혼란과 아픔을 적은 글’이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김비 님은 참으로 사랑스러운 삶을 누리며 마흔 고개를 넘었어요. 김비 님은 웃음과 눈물을 나란히 실컷 누리면서 마흔이라는 문턱을 디뎠어요.

 

 김비 님은 스스로 어지럽거나 아프지 않습니다. 김비 님을 둘러싼 사회 틀거리가 김비 님을 어지럽히고 아프게 합니다. 김비 님을 낳은 어버이 두 분을 둘러싼 사회 틀거리가 김비 님 두 어버이를 어지럽히고 아프게 합니다. 김비 님네 세 남매를 둘러싼 사회 틀거리가 김비 님네 세 남매를 어지럽히고 아프게 해요.


.. 되돌아보면, 그 시절의 사회적 분위기 자체가 그러했다. 하나의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에 맞추도록 강요하는 사회. 다른 것은 곧 틀린 것이다, 라고 가르치는 획일화는 세뇌시키는 사회. 그런 학교교육이 내게 폭력이 된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이해하지 못했다 … 내가 그동안 치열하게 지나왔던 시간들이 나 자신이 아니라,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규칙이나 틀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억울한 생각이 치밀어올랐다 ..  (22, 99쪽)


 학교는 왜 김비 님한테 사랑을 가르치지 않았을까요. 학교에 함께 다니는 김비 님 동무나 선후배들은 왜 학교에서 사랑을 배우지 않았을까요. 김비 님 둘레에서 살아가는, 또 우리 둘레에서 살아가는 전문가들 지식인들 경제인들 정치인들은 왜 아름다운 사랑을 서로 꽃피우며 나누는 길을 좀처럼 걸으려 하지 않을까요.

 

 이 나라 학교는 아이들한테 숫자를 집어넣습니다. 이 나라 학교는 아이들 스스로 숫자에 붙들리면서 숫자에 얽매이도록 몰아넣습니다. 이 나라 학교는 아이들이 서로서로 숫자로 줄을 세우도록 다그칩니다. 전교 2등이 무슨 대수요, 전국 10등이 무슨 대수일까요. 내신 1%나 20%는 무슨 뜻이요 1등급이나 5등급은 무슨 보람일까요.

 

 집에서 걸레질 한 번 하지 않으면서 받는 내신 1등급이라든지, 이웃하고 싱그러이 웃음인사 나누지 않으면서 거두는 시험성적이란 어떤 값이나 빛이 있을까요. 책을 읽어 상을 받는 독후감은 쓴다지만, 막상 책에 깃든 사랑을 내 삶으로 녹여내어 즐거이 누리는 나날이 못 된다면 무슨 뜻이 있을까요.


.. 엄마의 스무 살은 꽃다운 나이도 아니었으며, 사랑받으며 예쁘게 치장하거나, 꿈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시기도 아니었다. 엄마에게 스무 살은 일방적인 싸움이었고, 언제나 도망치는 전쟁이었으며, 그리고 울며 견뎌야 하는 폭력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 그해 겨울, 다시 제주도로 내려갔을 때, 엄마는 나를 데리고 처음 목욕탕에 갔다. 아무리 한겨울이라고는 하지만, 굳이 목욕을 가자고 채근을 하는 엄마가 이상하기는 했는데, 엄마는 내가 목욕탕에도 가지 못하며 불편하게 살까 봐 걱정이 되셨던 모양이었다 ..  (36, 223쪽)


 김비 님은 어머니한테서 사랑을 고루 받지 못하며 자랐다고 합니다. 김비 님 어머니 또한 당신 낳은 어머니인 김비 님 할머니한테서 그닥 사랑받지 못하며 자랐다고 합니다. 그러면 김비 님 할머니는 당신 어머니한테서, 또 김비 님 할머니를 낳은 어머니는 또 당신 어머니한테서 어떤 사랑을 얼마나 받으며 자랐을까요. 언제부터 사랑이 엇갈리거나 흩어지면서 슬프며 아프고 힘겨운 나날이 이어졌을까요.

 

 그런데, 사랑을 못 받는 사람은 없습니다. 받는 사랑 모양과 무늬와 결과 빛깔과 내음이 다를 뿐입니다. 다 똑같은 사람이 없고 다 똑같은 삶이 없으며 다 똑같은 사랑이 없어요. 김비 님 어머니는 이 땅에 태어난 일만으로도 벌써 사랑을 받았어요. 김비 님 또한 어머니한테서 고운 목숨을 물려받은 일로도 훌륭히 사랑을 받았어요. 앞으로 김비 님은 김비 님대로 김비 님 사랑을 누군가한테 곱게 물려주겠지요.


.. 그때 처음, 나는 집을 그리워하며, 집에 대해 감사하고 있었다. 집이 훈훈한 온기가 도는 곳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 가족의 붕괴로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탓하며 흥청망청하는 그(내 오빠)의 모습이 싫었다. 누군가 중심을 잡아 주었으면, 내 안에 혼란에도 어떤 중심이 있으면 바랐듯, 집안에도 어떤 중심이 있기를 바랐지만, 처음부터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  (80, 103쪽)


 처음부터 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요, 아무도 없었어요. 그러나 바로 그 집에는 김비 님이 있었어요. 중심이 없다지만 김비 님이 있고, 오빠가 있으며, 동생이 있어요.

 

 김비 님은 “내게 사랑은 눈밭을 뛰다가 넘어졌을 때, 넘어진 내 눈앞에 자그맣게 피어 있는 꽃 한 송이다(31쪽).” 하고 노래합니다. 그래요. 사랑보다 좋은 꽃내음이 있겠습니까. 눈밭에 피어난 눈앞에 있는 꽃송이 같은 사랑이에요. 김비 님은 어린 나날부터 ‘제대로 넘어지’면서 끝없이 사랑을 보아요. 맑은 사랑을 보고 어두운 사랑을 봅니다. 기쁜 사랑을 보고 슬픈 사랑을 봅니다. 괴로운 사랑을 보고 즐거운 사랑을 봐요. 놀라운 사랑을 보고 수수한 사랑을 봅니다. 가슴 시린 사랑과 가슴 벅찬 사랑을 두루 봐요.

 

 마흔 살 김비 님은 오래도록 눈밭을 헤매듯 달리다가는 눈밭에서 자꾸 걸려 넘어지면서 눈앞에 나타나는 뜻밖이면서 고맙고 반가운 사랑을 마주합니다. 어쩌면, 이 힘으로, 이렇게 사랑을 마주하는 고마운 힘으로, 이제껏 씩씩하게 하루 이틀 살아내면서 마흔 고개에 이르렀겠지요. 앞으로 걸어갈 쉰 고개에도 김비 님이 머리에 꽃을 달고 우리 앞에 설는지, 앞으로 힘차게 달릴 예순 고개에도 김비 님이 머리에 꽃다발을 얹고 우리 앞에 설는지 궁금합니다. 사랑합니다. (4345.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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