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벽화 높새바람 3
김해원 지음, 전상용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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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28

 


아이들이 빚은 그림
― 고래 벽화
 김해원 글
 바람의아이들 펴냄,2004.4.14./6800원

 


  아이들은 그림을 그립니다. 따로 그림쟁이라는 이름이 붙거나 예술쟁이라는 이름을 누리려고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은 없으나, 아이들은 즐겁게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들은 종이에도 그림을 그리지만, 손바닥에도 그림을 그리고, 팔뚝이나 볼에도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들은 벽에도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들은 세금고지서나 책에도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들은 방바닥에도 그림을 그리며, 밥상이나 책상에도 그림을 그려요. 그리고, 흙바닥이나 모랫바닥에도 그림을 그리지요.


.. 원시 시대 고래 벽화가 발견되었다는 소문은 마을에 짜하게 퍼졌다. 덕수 삼촌마저도 자신이 대단한 일이라도 한 양 떠들며 다녔으니 못 들은 사람이 없었을 거다. 저녁 때까지 마을 사람들은 너나없이 땅끝교회 뒷산에 올라 우리 비밀 본부를 보고 왔다 ..  (50쪽)


  그리고 싶어 그리는 그림입니다. 곧, 부르고 싶어 부르는 노래입니다. 노래꾼이 되려고 노래를 부른다면 몹시 슬픕니다. 그러니까, 글꾼이 되고 싶어 글을 쓴다면 얼마나 서글플까요. 사진꾼이 되려고 사진을 찍는다든지, 정치꾼이 되려고 정치를 하면 얼마나 안쓰러울까요.


  공무원이 되려고 대학교에 들어가서 시험공부 하는 젊은 넋은 매우 딱합니다. 회사원이 되려고 영어를 죽어라 배우며 학원을 다니는 어른 또한 참말 가엾습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삶을 누리지 않을 때에는 불쌍합니다. 스스로 사랑할 삶을 찾지 않을 때에는 어두운 빛이 드리웁니다.


  어른이든 아이이든, 사랑스럽게 살아야 사람입니다. 어른도 아이도, 꿈을 꾸어야 목숨입니다. 어른이랑 아이는, 따사롭게 눈빛 나누며 이야기를 속삭여야 푸른 숨결 건사합니다.


.. “우, 우리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어. 내, 내가 걱정했던 것보다 더 심각해. 어, 어, 어떡하지.” ..  (54쪽)


  2013년을 맞이해 여섯 살이 된 우리 집 큰아이가 글을 씁니다. 재미 삼아서 씁니다. 아이는 제 이름 넉 자 ‘사름벼리’를 예쁘장하게 씁니다. 아버지랑 어머니한테 이런 글 저런 글 써 달라고 종이를 들고 달려옵니다. 아이는 그림책이나 이런저런 종이를 들고는 무슨 글이 적혔는지 묻습니다.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먼저 글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아이가 궁금해 할 때에만 알려줍니다. 어버이로서 아이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우리 아이가 즐겁게 뛰놀고픈 이 나이에 즐겁게 뛰놀기를 바랍니다. 한창 개구지게 놀다가 살며시 쉴 적에 그림책도 들추고 글놀이도 하면 즐거우리라 생각합니다.


  아이와 함께 그림을 그릴 적에 딱히 이렇게 그리라 저렇게 그리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그리고픈 이야기를 종이에 한 가득 담습니다. 나는 나대로 아이 곁에서 내고 그리고픈 이야기를 종이에 한 가득 담아요.


  아이 그림이 예술품이 되어야 할 까닭 없습니다. 아이를 바라보다가 살며시 찍는 사진이 예술품이 되어야 할 일 없습니다. 그림은 즐거운 이야기 담는 그릇입니다. 사진은 재미난 삶 담는 접시입니다.


  그림에 점수를 매길 일 없고, 글씨쓰기에 점수를 붙여야 할 까닭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아이한테 시험을 치르도록 할 일이 없으며, 아이가 시험에 빠져야 할 까닭이 없어요.


.. 우리 사총사는 가짜 벽화를 진짜 벽화인 줄 알고 좋아하는 어른들이 좀 우스웠다. 애들만 보면 뭐든지 가르치려 드는 잘난 어른들이 속아 넘어가는 것을 보니 솔직하게 말해 기분이 좋았다. 그렇다고 진실을 묻어 둘 수는 없었다 ..  (59쪽)


  김해원 님이 쓴 창작동화 《고래 벽화》(바람의아이들,2004)를 읽습니다. 어느 시골마을, 아마 ‘땅끝교회’라는 이름이 나오니, 전라남도 해남을 헤아리며 쓴 창작동화로구나 싶은데, 첫 줄부터 끝 줄까지 읽으면서, 이 창작동화를 아이들하고 왜 읽어야 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시골마을에 뭔가 남다른 일(사건)이 생기고, 시골마을 어른들이 돈에 눈이 먼 일 때문에 다툼(사고)이 벌어지며, 마지막에 아이들이 참을 털어놓으며 어영부영 마무리됩니다.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말썽쟁이 아이들더러 학교 벽그림을 그리라고 이야기한다는데, 한편으로는 있을 법하구나 싶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이런 이야기를 애써 창작해서 동화로 써서 읽히면서 어떤 빛과 꿈을 나눌 만한지 잘 모르겠어요.


  거짓말을 하던 아이들은 스스로 부끄러운 줄 모르면서, 어른들만 거짓스러운 이름값에 얽매인다고 눈을 흘기는 줄거리를 보여주어야 하니까, 이 동화책을 읽혀야 할까요. 시골마을 아이들이 깊은 멧골에 ‘놀이터(아지트)’를 꾸려서 재미나게 노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어, 이 동화책을 읽혀야 할까요.


  글쎄, 우리 식구는 전라남도 고흥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데, 이 시골마을 둘레 아이들 가운데 깊은 멧골에 깃들며 노는 아이는 아직 못 봅니다. 시골 아이들도 학원 가랴 바쁘고, 면내나 읍내 쏘다니느라 바쁘며,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보느라 바빠요. 가난한 집 아이들은 어버이 일 거드느라 바쁘고, 학교 언저리와 집 둘레에서 하루를 보내곤 합니다.


  어쩌면, 시골 아이조차 시골스러운 꿈과 사랑을 빚지 못하는 슬픈 한국 사회에서, 시골 아이들부터 기운을 차려 숲을 누비고 들을 달리기를 비는 마음으로 창작동화 하나 내놓았을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고래 벽그림’이란 무엇일까요. 아이들은 왜 이런 그림을 그려야 할까요. 아이들은 어떤 그림을 즐겁게 누리면서 아이들 생각과 마음을 살찌우는가요. 어디서 본 대로 따라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아이들 나름대로 아이들 마음자리를 빛내는 그림을 그리는 길을 보여주는 창작동화로 거듭날 수는 없을까요.


.. 교장 선생님은 우리에게 벽화를 그리라는 벌을 주고는 낡은 자전거를 타고 학교 문을 나갔다. 교장 선생님은 가면서 여전히 벽 앞에서 서 있느 우리에게 “어여 가!”라며 손까지 흔들었다 ..  (95쪽)


  시골 초등학교에서도 영어를 가르칩니다. 시골 초등학교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는 ‘도시 전문가’가 만들어서 ‘도시 이야기’를 배우도록 이끕니다. 시골 아이가 시골을 사랑하면서 시골에서 보금자리를 일구도록 돕는 교과서는 아직 없고, 시골학교 교사 또한 시골 아이가 시골에서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사랑을 들려주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시골 아이는 어떤 어른을 바라보며 삶을 배울 만할까요. 시골 아이는 ‘시골 사람’으로 자라야 할까요, ‘도시 사람’으로 자라야 할까요. 아니, 시골 아이는 ‘사람다운 삶’과 ‘사람다운 숨결’을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듣고 보고 느끼면서 하루를 빛낼 수 있을까요.


  요즈음에도 시골 교사나 교장 가운데 ‘낡은 자전거’를 끄는 분이 있을까 궁금하지만, 아이들더러 학교 벽에 그림을 그리라 할 만한 분이라면 ‘낡은 자전거’를 끌 테지요. 그렇지만, 책을 덮으면서도 한숨은 자꾸 나옵니다. 글쓴이는 충청도에서 태어났고, 동화책 사이사이 ‘충청도 고장말(사투리)’로 보이는 말씨가 더러 나오지만, 주인공 아이들도 웬만한 어른들도 고장말을 안 씁니다. 아무래도 요새 아이들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 익숙해서 서울말(표준말)을 쓴달 수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시골 아이들은 저희끼리 어울리면, 또 시골 어른들도 이녁끼리 어울리면, 다 고장말을 써요. 여러모로 아쉽고 쓸쓸합니다. 4346.1.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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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욤비 - 한국에서 난민으로 살아가기
욤비 토나.박진숙 지음 / 이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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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02

 


독재정권과 싸우며 나라를 떠나다
― 내 이름은 욤비
 욤비 토나·박진숙 글
 이후 펴냄,2013.1.4./16500원

 


  나는 언제부터 하늘 올려다보기를 좋아했을까 하고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국민학교에 처음 들어가던 1982년에도 하늘을 즐겨 올려다보았고, 중학교에 들어가던 1988년과 군대에서 흰눈 멧자락 바라보던 1995년∼1997년에도 하늘을 즐겨 올려다보았습니다. 내가 미처 떠올리지 못할 수 있는 너덧 살 아이였을 적에도 하늘을 즐겨 올려다보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두어 살 아이였을 적에도 아장걸음 걸으면서 골목동네에서 하늘을 곧잘 올려다보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내 어린 날, 충청남도에 있는 외가집에서 밤하늘 별을 쏟아질 듯 보았습니다. 외가집 형과 누나는 늘 보는 별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나는 저렇게 쏟아지는 별을 늘 보고 싶었습니다. 그무렵, 1980년대 첫머리에는 인천에서도 별을 제법 볼 수 있어, 이럭저럭 별자리를 그릴 만했지만, 학교에서나 동네에서나 별자리를 이야기하거나 달빛을 이야기하는 동무는 없었어요.


  그러고 보면, 한낮에 소나기 쏴아 지나가고 찾아드는 무지개를 좇는다며 달리기를 하던 동무는 몇 없습니다. 소나기가 쏴아 지나갈 때면 소나기가 빠른지 내가 빠른지 땀 줄줄 흘리며 달리기를 했습니다. 언제나 소나기한테 따라잡히지만, 꼭 한 번, 소나기가 그칠 때까지 비를 안 맞고 앞서 달린 적 있어요. 그날, 빗물에 안 젖은 몸으로 바라본 무지개는 몹시 싱그러웠습니다.


  중학교라는 데에 들어가서 밤늦게까지 붙잡히느라 낮도 저녁도 모르던 하루에 시달리기 앞서까지, 국민학교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으레 무지개를 보았습니다. 한여름에는 뭉게구름과 소나기와 무지개, 이 세 가지는 내 벗이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공장마다 굴뚝에서 끝없이 매연을 쏟아내지만, 그런 인천 하늘에서도 뭉게구름과 소나기와 무지개를 보았어요.


  내 마음이 이들 세 벗, 뭉게구름과 소나기와 무지개를 바랐기 때문일까요. 나한테만 이들 세 벗이 보였을까요. 다른 학교동무나 동네 놀이동무는 이들 세 벗을 바라거나 생각하지 않았기에 뭉게구름도 소나기도 무지개도 얘기를 안 하며 어울렸을까요.


.. 콩고는 내전과 독재를 거치며 역사의 격동기를 지나고 있었지만, 나는 초원과 정글을 뛰어다니는 철부지에 불과했다 … 밤늦게 기숙사로 들어가면 한 벌뿐인 티셔츠를 열심히 빠는 게 내 일과의 끝이었다. 그래도 거리낌이 없었다. 고향에서도, 기숙사에서도 금욕적인 생활이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 킨샤사 국립대학에 다니는 학생들 사이에 패인 갈등의 골은 깊었다. 킨샤사를 비롯한 도시 출신의 부유한 학생들과 나 같은 지방 출신 고학생 사이에는 넘지 못할 벽이 있었다 ..  (19, 40쪽)


  국민학교 3학년이던 1985년은 나로서는 열 살이 되는 나이입니다. 그해 인천에는 가을비가 어마어마하게 퍼부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서울 아닌 인천 이야기를 퍽 오랫동안 들려준 적은 그때 빼고는 거의 없었지 싶습니다. 이제는 아파트가 높직하게 들어선, 예전 인천 시외버스역에는 찰방찰방 물결치는 빗물에 잠긴 버스들이 수두룩했고, 시외버스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어른들은 그저 발을 동동 구르는데, 나는 동무하고 이 앞에서 ‘공짜 헤엄터 생겼다!’고 여기며 물장구 치고 놀았습니다. 빗물에 잠긴 버스 지붕에 올라타 앉은 버스 일꾼 멍한 얼굴을 보고서야 비로소 물놀이를 그쳤어요.


  그리고 이해 팔월이었나 구월이었나, 또는 칠월이었나, 아버지 사진기를 살짝 빌려서 구름 사진을 열 장 남짓 찍습니다. 모처럼 집에서 하늘바라기를 하며 놀다가, 저 하늘 어여쁜 구름을 먼먼 뒷날에는 못 볼 수 없겠다고 느낍니다. 앞으로는 우리 나라가 더욱 지저분해지고 매캐한 바람이 불며, 이 어여쁜 구름은 내 마음속에만 남으리라 느낍니다.


  좋은 사진기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완전자동으로 찍는 사진기 단추를 찰칵찰칵 누릅니다. 아무튼 누르면 찍을 수 있는 사진기였어요. 이 구름도 예쁘니 찍고, 저 구름도 예쁘니 찍습니다. 5층짜리 나즈막한 아파트 4층집에서 구름을 올려다보며 한 장 두 장 찍습니다.


  그러고서 스물아홉 해 지난 2013년 오늘, 참말 나는 어릴 적 보던 어여쁜 구름을 좀처럼 다시 보지 못합니다. 열 살 어린이가 인천 바닷가 공단 가까이에서 보던 구름조차, 고흥 시골마을에서도 잘 찾아볼 수 없어요.


.. 과거 로랑 카빌라는 모부투에 대항하는 세력을 모으면서 무력의 상당 부분을 콩고 인근의 르완다와 우간다에서 빌려 왔다. 그러면서 대통령궁에 입성하게 되면 콩고 영토 일부를 르완다와 우간다에 떼어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뒤에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분할을 약속한 지역은 각종 천연자원의 보고였다. 그곳을 떼어 준다는 것은 황금알 낳는 거위를 내주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로랑 카빌라가 약속을 지키지 않자 르완다와 우간다 세력이 들고 일어난 게 그 유명한 제2차 콩고 내전(1998년∼2003년)이다. 4천 명에 이르는 투치족 군인들이 킨샤사 시내까지 침입해 들어오기도 했다 ..  (67쪽)


  늘 고흥 시골집에서 네 식구 오순도순 지내다가, 때때로 도시로 볼일을 보러 마실을 합니다. 인천에도 가고 부산에도 가며 순천에도 갑니다. 서울에도 가다가는 청주에도 갑니다. 크고작은 도시에 가는 길에 으레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가까운 시골인 장흥에 갈 적에도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고흥자락에서 돌아다닐 때에도 마을마다 어떤 하늘을 누릴 수 있는가 헤아리며 하늘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너무 마땅한 노릇인데, 어느 마을에서 바라보더라도 구름이 다릅니다. 구름빛이 다르고 구름무늬가 달라요. 햇살이 다르고 햇볕이 달라요. 바람이 다르고 바람내음이 다릅니다.

  제아무리 자동차 북적거리며 시끌벅적한 서울이라 하더라도, 달빛을 찾을 수 있습니다. 비록 서울이나 부산 같은 데에서는 달빛이 스밀 틈 거의 없지만, 가녀린 달은 숱한 등불과 전깃불 사이로 빼꼼히 고개를 내밉니다. 드높은 건물 사이에서 달을 찾을 때면 ‘이야, 반갑네.’ 하고 인사를 합니다. 손을 들어 달한테 ‘잘 있었니?’ 하고 말을 걸기도 합니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달을 살짝 보고 더는 못 보기 일쑤입니다. 길을 걷노라면 어느새 이 건물에 가리고 저 건물에 막혀 안 보이거든요. 시골에서는 하염없이 걸어도 해하고 속닥속닥 이야기꽃 피울 수 있지만, 시골에서는 이 들길 저 멧길 걸어도 달이랑 도란도란 이야기잔치 벌일 수 있지만, 조그마한 도시에서마저 달하고 벗삼기는 꽤 힘듭니다.


  도시사람은 달을 안 좋아할까요. 도시사람은 달이 안 반가울까요. 어쩌면,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달을 생각할 겨를이 없는지 몰라요. 도시살이란, 달하고 등지는 삶일는지 몰라요. 도시에서 돈벌이 하느라 바쁘고, 도시에서 일자리 지키느라 바쁩니다. 도시에서 자가용 모느라 바쁘고, 도시에서 자가용 댈 빈 구석 찾느라 바쁩니다. 도시사람은 달이고 별이고 해이고 무지개이고 구름이고 찾아볼 틈이 없어요.


.. 마리는 콩고민주공화국 옆에 있는 콩고공화국 사람이었다 … 외국인들이 ‘콩고민주공화국’과 ‘콩고공화국’을 헷갈리듯, 나 역시 ‘북한’과 ‘남한’을 헷갈렸던 것이다 … 마음에 입은 상처는 쉬 사라지지 않았다. 상처를 치유할 힘이 모두 바닥나 버린 것 같았다. 모멸감 섞인 시선과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늘 전쟁터 한복판에 서 있는 기분으로 일하고 생활했다 …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나는 ‘아프리카 노동자’ 아니면 그냥 ‘깜둥이’일 뿐이었다 ..  (87, 100, 190, 200쪽)


  아침이면 파르스름한 빛이 살며시 걷히며 노르스름한 하늘이 열리고 이내 불그스름한 햇덩이가 떠오릅니다. 그런데, 나 또한 이 새 아침을, 이 새 햇살을, 도시에서는 거의 못 느꼈어요. 다만, 어릴 적 인천에서 학교를 다닐 때에는 날마다 보기는 했어요. 나는 국민학생 때에도 새벽 여섯 시 반에 일어나 학교로 걸어갔어요. 중·고등학생 때에는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 학교로 걸어가거나 버스를 타고 갔어요.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삶터를 옮겨 대학교를 다섯 학기 다니고 그만두기까지 신문배달을 하며 아침해를 봅니다. 대학교 그만두고 신문배달을 잇는 내내 으레 아침해를 봅니다. 신문배달은 그만두고 출판사 일꾼으로 들어갈 적에도 새벽 일찍 일터로 가는 버릇을 이으며 언제나 아침해를 봅니다.


  구름이 짙게 끼어 해가 보이지 않더라도 해가 뜰 자리를 바라봅니다. 햇살 기운이 어떻게 스미는가 하고 헤아립니다. 바람이 어디에서 어떻게 부는가를 눈을 감고 살갗으로 느껴 봅니다. 하늘이 밝게 열리며 내 눈자위를 따사로이 어루만지는 느낌을 즐깁니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어디에서나 어떤 건물에 깃들어 일을 해야 하니, 어느새 해를 잊고 하늘과 구름과 바람을 잊어요. 사무실에서는, 또 지하상가나 지하철에서는, 낮도 밤도 잊습니다. 네 식구 함께 고즈넉한 고흥 시골마을에서 조용히 살아가면서 바야흐로 새벽·아침·낮·저녁·밤이 흐르는 결을 살핍니다. 먼저 내 몸으로 받아들이고 내 마음으로 아로새깁니다.


.. 침대에 누워 서울이 콩고의 정글 같다는 생각을 했다. 빌딩과 좁은 골목으로 이루어진 정글 말이다 … 한국 사람들은 왜 자기들 좋은 문화를 외국인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것일까? 나중에 나이지리아 친구를 만났을 때 들었던 얘기가 정답인지도 모른다. “한국 공장에서 바뀌지 않는 게 있어. 한국 사람은 무조건 왕이야. 그 다음이 조선족이고, 그 다음이 필리핀이나 베트남에서 온 사람들이지. 아프리카? 아프리카 사람은 사람도 아니야.” 내 경험에서도, 크게 틀린 얘기는 아니었다. 한국 공장의 카스트 제도는 국적에 따라, 피부색에 따라, 사람들을 나누고 차별했다 ..  (109, 155쪽)


  집안에 텔레비전을 안 들이고, 신문을 끊은 지 열 해가 넘는 우리 집에서는, 사회 흐르는 이야기를 거의 모릅니다. 아니,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들을 값이 없고 알아야 할 까닭이 없다고 느낍니다. 어느 정치꾼이 어떤 말을 했건, 어떤 사건이나 사고가 터졌든, 우리 삶하고는 참으로 동떨어집니다. 수출이 얼마요 새 대통령이 누구요 하는 대목은 그야말로 대수롭지 않습니다. 주식시세표나 연예인 뒷이야기를 왜 들어야 할까요.


  우리 식구한테는, 올겨울에도 우리 집 마당 한켠 동백나무에서 몇 송이쯤 일찌감치 피어날까 하는 대목이 대수롭습니다. 언제부터 봄꽃을 논둑과 밭둑에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대목이 대수롭습니다. 올봄에는 제비가 몇 월 몇 일에 처마 밑으로 돌아와서 반가운 인사를 건넬까 하는 대목이 대수롭습니다. 큰아이는 얼마나 씩씩하게 뛰놀고, 작은아이는 얼마나 말문을 환하게 틀까 하는 대목이 대수롭습니다.


  그런데, 2013년 1월 겨울 한복판에 한국땅 크고작은 도시에 ‘스모그’가 덮쳤다고 하는군요. 1월 한복판에 청주로 마실을 와서 밥집에서 밥 한 그릇 먹다가 옆에 놓인 신문을 문득 바라보니 1쪽에 이런 이야기가 실렸어요. 중금속 잔뜩 머금은 스모그라 하는데, 도시사람은 어른도 아이도 모두 이런 바람을 마시며 살아야 하는구나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고흥에서 청주로 오는 동안, 어둑어둑 뿌연 밤하늘이었지만, 하늘이 꽤 칙칙했어요. 왜 하늘이 이토록 뿌옇거나 칙칙하지 하고 고개를 갸웃했어요. 달이 어슴푸레 보이기는 하지만, 흐리멍덩한 빛이었어요. 그렇구나, 스모그로구나.


  그나저나, 도시사람 가운데 스모그 낀 하늘이 얼마나 아슬아슬하며 끔찍한가를 살갗으로 느낄 사람이 있을까요. 스모그가 왜 생기는 줄 알거나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스모그 끼는 도시에서 어떻게 살아야 아름답거나 즐거운가를 돌아볼 사람이 있을까요.


.. 콩고에서 받은 경제학 석사 학위와 정보요원 경력 따위는 한국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러면 남은 선택지는 공장으로 돌아가는 길뿐이었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으며 하루 열두 시간씩 일해야 하는 그런 삶을, 언제가 될지 모를 그날까지 계속해야 한다는 뜻이다. 왜 난민은 더 나은 삶을 꿈꾸면 안 되는가? 왜 난민은 배움의 열망을 충족시킬 수 없는가 ..  (280쪽)


  욤비 토나·박진숙, 두 분이 일군 이야기책 《내 이름은 욤비》(이후,2013)를 읽습니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 태어나 살다가 그만 한국(남한)이라는 나라로 ‘정치 망명’을 해야 했다던 욤비 토나라고 하는 아저씨가, 한국에서 겪은 일을 찬찬히 되새기는 이야기책입니다. 망명은커녕 이주노동자로서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슬프고 힘겹게 살아야 하던 나날을 담은 이야기책입니다.


  책을 다 읽고 한참 생각에 잠깁니다. 이 나라 한국에서도 지난날 독재정권과 싸우다가 피울음 뱉으며 이 나라 떠난 사람이 퍽 많습니다. 이 나라 한국에서도 지난날 독재정권과 싸우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거나 다친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아니, 어떤 이들은 벌건 대낮에 총을 맞아 죽었어요. 어떤 이들은 훤한 대낮에 몽둥이를 맞아 죽었어요.


  2013년 한국은 민주주의 사회일까요. 한 해가 더 흐르면 자유 물결이 넘실거린다 말할 수 있을까요. 한 해 새로 찾아오면 평화 날갯짓 춤출 만할까요. 한 해 새삼스레 찾아들면 평등 꽃노래 흐드러질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 사회가 얼마나 민주요, 자유요, 평화요, 평등인지, 참말 잘 모르겠습니다. 도시 길가에도 뿌리를 내려 작은 잎사귀 틔우는 들풀 한 자락 사랑스레 쓰다듬을 겨를 없는 이 나라 수많은 사람들 가슴에 민주나 자유나 평화나 평등 같은 이야기가 얼마나 뿌리내린 채 춤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대학입시에 목을 매달며 흐느껴 울거나 동무들을 따돌리거나 괴롭히느라 바쁜, 이 나라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은 얼마나 민주와 자유와 평화와 평등을 아끼거나 보살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내 이름은 욤비》를 쓴 욤비 토나 아저씨는 ‘한국에서 난민으로 살아가는 하루’를 보낸다 하는데, 곰곰이 따지면, 한국사람 가운데 고향 살뜰히 지키거나 돌보며 살아가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잘 모르겠습니다. 고향을 잊거나 등지거나 모르거나 빼앗긴 채, 돈을 버느라 힘들고 일자리 지키느라 버거우며 아이들을 대학교 보내느라 등골 휘는 쳇바퀴 삶 아닌지, 참말 잘 모르겠습니다. 4346.1.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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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코토의 푸른 하늘 - 생활 팬터지 동화 익사이팅북스 (Exciting Books) 40
후쿠다 이와오.시즈타니 모토코 지음, 김정화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27

 


우리 함께 살아요
― 마코토의 푸른 하늘
 시즈타니 모토코 글,후쿠다 이와오 그림,김정화 옮김
 아이세움 펴냄,2008.1.30./7500원

 


  어릴 적에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언제부터 함께 살았는지 잘 안 떠오르지만, 돌아가신 뒤 있던 일은 환하게 떠오릅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았어도 할아버지와 둘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 적은 거의 없습니다. 할아버지 심부름을 한 적은 있어도,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귀를 기울여 듣는다든지, 내가 먼저 할아버지한테 옛날이야기 들려주기를 바란 적은 거의 없습니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나와 할아버지 사이에도 이야기가 드물었지만, 아버지와 할아버지 사이에도 이야기가 드물었습니다. 그리고, 나와 아버지 사이에도 이야기가 드물었어요.


  할아버지는 당신 아들하고 이야기를 어떻게 나누어야 할는지 모르던 분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아버지 또한 당신 아들하고 이야기를 어떻게 나누어야 할는지 몰랐을 뿐 아니라, 배우지 못했고, 생각을 못했구나 싶습니다.


  내 아버지는 왜 당신 아버지와 당신 아이하고 이야기꽃을 못 피우셨을까요. 내 할아버지는 왜 당신 아이하고 이야기꽃을 못 피우셨을까요. 국민학교 교사로 일하던 아버지는 학교에서 너무도 많은 아이들과 부대끼며 하루 내내 시달리느라 막상 집으로 돌아와서는 당신 아이하고는 살가이 놀거나 어울리지 못하셨을까요. 내 할아버지는 당신 젊은 날 바깥으로만 너무 돌아다니다가 그만 집에서 식구들과 오순도순 어울리거나 이야기꽃 피우는 즐거움을 못 느끼셨을까요.


.. 아빠는 회사일이 많아서 늦게까지 일을 할 때가 많았고, 엄마는 아는 사람이 하는 작은 잡화점에서 일하시는데 하는 일이 여러 가지라서 하루 종일 밖으로 돌아다닐 때도 있다고 했다. 주먹밥을 데워 먹다가 문득 에리코 누나는 뭘 먹을까, 생각했다. 에리코 누나는 며칠 동안 먹을 걸 구경도 못 한 사람 같아 보였다 … 나를 만나면 언제나 “안녕!” 하시거나 “잘 지내지?” 하시며 말을 건다. 하지만 내가 먼저 할머니한테 인사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  (16, 18쪽)


  내 아버지하고는 다르게, 나는 식구들하고 늘 집에서 함께 지냅니다. 아이들과 늘 복닥거리면서 아이들 웃음소리와 목소리를 느끼면 즐겁습니다. 살아가는 보람을 늘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내 할아버지하고는 다르게, 나는 식구들하고 언제나 나란히 움직입니다. 아이들과 언제나 함께 있고 보면, 어버이로서 내가 어떻게 살아갈 때에 아름답거나 즐거운가를 되새길 수 있습니다. 어버이 몸가짐이 아이들 몸가짐이 되고, 어버이 말씨가 아이들 말씨가 돼요. 어버이 생각은 고스란히 아이들 생각으로 이어지고, 어버이 사랑 또한 하나하나 아이들 사랑으로 이어갑니다.


  다만, 많이 어린 아이들을 이끌고 마실을 다니자면 고단합니다. 아이들은 새 바람을 쐬고 나도 새 바람을 누립니다만, 면내나 읍내나 도시로 마실을 가면, 시골하고는 사뭇 다르게 넘치는 자동차와 시끄러운 가게 때문에 고달픕니다. 아이들은 어디에서나 신나게 뛰놀고 싶지만, 도시에는 자동차가 너무 많을 뿐 아니라, 아이들을 헤아리지 않아요. 자동차는 그저 달리고, 그예 빵빵댑니다. 개구지게 달리는 아이들을 귀엽게 바라보는 어른이 있습니다만, 쉬잖고 달리거나 까부는 아이들을 못마땅해 하는 어른도 있습니다.


  도시라는 곳은 너무 바빠야 할까요. 시골이라 하더라도 읍내나 면내는 바빠야 할까요. 바쁜 나머지 아이들을 돌아볼 겨를이 없을까요. 아이들을 돌아볼 겨를이 없는 데는 이웃 어른을 돌아볼 겨를 또한 없지 않나요.


  바쁘게 살아갈 때에는 무엇을 누릴까요. 바쁘게 일할 때에는 무엇을 얻을까요. 바쁘게 몰아칠 때에는 무엇을 생각할까요. 아이들이 학교에 바빠야 하고, 학원에 바빠야 하며, 손전화 기계나 인터넷이나 텔레비전 들여다보느라 바빠야 한다면, 이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거나 느끼거나 생각할까요. 어른들이 회사에 바빠야 하고, 술담배에 바빠야 하며, 정치나 사회운동에 바빠야 한다면, 어른들은 무엇을 배우거나 느끼거나 생각할까요.


  너나 없이 바쁜 탓에 자동차를 타고 싱싱 달려야 하는지요. 예나 이제나 바빠야 하는 탓에 걸음 느린 아이들은 안 살펴도 될는지요. 늘 바쁘게 돈을 벌거나 써야 하니까 사랑을 아끼거나 꿈을 보살피는 길하고는 멀어질밖에 없는가요.


.. 할아버지 젊었을 때라니, 상상이 더 안 되었다. 젊었을 때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믿기지 않았다 … “매번 이렇게 복을 나눠 주니 고맙구나.” 스시마 할머니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복을 나눠 준다고요?” “그래, 옛날에는 그렇게 말했단다.” ..  (35, 47쪽)


  바쁜 사람은 겨울이 온 줄 모릅니다. 바쁜 사람은 봄이 온 줄 모릅니다. 바쁜 사람은 여름이 오거나 가을이 와도 모릅니다. 바쁜 사람은 아이들이 꾸준히 자라는 모습을 못 느낍니다. 바쁜 사람은 아이들과 말을 섞을 틈이 없습니다. 바쁜 사람은 꽃내음을 못 느낍니다. 바쁜 사람은 구름이나 별을 볼 겨를이 없습니다. 바쁜 사람은, 이웃에 있는 어려운 사람을 돕거나 바라볼 틈이 없습니다. 바쁜 사람은, 내 손길을 따사로이 내밀며 일구는 마을살이를 깨달을 겨를이 없습니다.


  바쁘기 때문에 민주와 평화는 뒤로 밀립니다. 바쁘기 때문에 평등과 자유는 짓밟힙니다. 바쁘기 때문에 숲을 밀어내고 냇물을 시멘트로 덮습니다. 바쁘기 때문에 수출과 수입에 얽매이고, 바쁘기 때문에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씁니다. 바쁘기 때문에, 아이들을 어버이가 가르치지 않고 교사나 강사한테 맡깁니다. 바쁘기 때문에, 아이들은 삶 아닌 지식을 배우고 살림 아닌 자격증에 끄달립니다.


  우리, 함께 살아가면 좋겠어요. 목숨만 붙은 채 이 지구별에 함께 있는 모습 아니라, 서로 차분히 바라보고 지긋이 손을 맞잡으며 따사로이 이야기꽃 피우는 삶을 일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인터넷으로 하나되는 지구마을 아니라, 웃음과 이야기로 하나되는 지구마을 되면 좋겠어요.


  밥 함께 지어 함께 먹고 함께 설거지를 하는 삶을 누려요. 흙 함께 일구고 곡식 함께 거두며 씨앗 함께 나누는 삶을 누려요. 널따란 냇물 돌바닥에 이불 담가 서로서로 발로 꾹꾹 밟으며 빨아요. 여럿이 이불 맞잡고 힘껏 쭉쭉 짜요. 오순도순 모여 노래를 부르고, 아이들과 도란도란 재미나게 놀이를 즐겨요.


.. “참 말귀를 못 알아듣는 양반이네. 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어요.” (부동산) 할머니는 질렸다는 듯이 손사래를 쳤다. “당신같이 나이 먹은 노인네한테 방을 빌려 줄 사람이 있겠냐고요?” … 왜 아파트를 헐까. 관리만 잘 하면 아직 한참은 더 쓸 만하다고 했던 할아버지 말씀이 떠올랐다. 정말 계속 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럼 할아버지가 집을 얻으려고 고생 안 해도 되고. 나도 전학 같은 거 안 가도 되는데. 날마다 바둑을 둘 수도 있고, 할아버지가 아프면 내가 간호해 드리고, 귀신 나오는 집이라는 소리 따위는 상관 없었다 ..  (63, 93쪽)


  시즈타니 모토코 님 동화책 《마코토의 푸른 하늘》(아이세움,2008)을 읽습니다. 오래된 아파트에서 마지막까지 살아가는 네 식구 이야기를 읽습니다. 이제는 오래된 아파트라 하지만, 처음에는 번듯하게 지은 예쁜 층집이었고, 예쁜 층집은 예쁜 사람이 예쁜 손길로 돌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쁜 손길로 돌보던 예쁜 사람이 숨을 거둔 뒤, 예쁘지 못한 손길로 예쁘지 못한 돈을 바라는 예쁘지 못한 사람이 층집을 예쁘지 못하게 어지럽힙니다. 10층에 이르는 층집이었지만, 사람들이 하나둘 떠납니다. 떠날 새 자리가 마땅하지 않은 사람만 마지막까지 남아 넉 집이 남고, 넉 집 식구들은 저마다 다른 삶을 저마다 다른 사랑으로 보듬으면서 이야기 하나 빚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바라보는 이야기입니다.


..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아빠가 어느새 내 뒤에 서 있었다. “넌 아직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을 보살피는 일은 쉽지 않아. 다들 자기 일만으로도 허덕대잖니.” 여느 때와 다르게 낮은 소리가 귀에 울렸다. “그럼 아라키다 할아버지가 진짜 우리 할아버지면요?” “그러면 생각해 보겠지…….”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 있는 힘껏 문을 닫았다. 할아버지의 어릴 때 얼굴이 떠올랐다. 꼭 쥔 주먹이 오랫동안 부르르 떨렸다 ..  (129쪽)


  자동차를 얻어 타면 아주 빠르게 달릴 수 있습니다. 기차를 얻어 타면 매우 빠르게 달릴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달려도 제법 빨리 갈 수 있습니다. 두 다리로 걸으면 퍽 느리게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다리로 걷더라도 마음이 바쁘면, 들판에 흐드러진 꽃을 느끼지 못해요. 두 다리로 걷다가 다리를 쉬려고 멈추었어도 마음이 바쁘면, 둘레에 가득한 꽃내음을 맡지 못해요.


  마음이 너그러울 때에 꽃빛을 느낍니다. 마음이 따스할 때에 꽃내음을 맡습니다. 마음속에 사랑이 피어날 때에 꽃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환한 기운 북돋울 수 있습니다.


  서로 바쁘다면, 함께 살아갈 사람이 못 됩니다. 서로 힘들다면, 어깨동무할 이웃이 못 됩니다. 서로 즐거울 때에, 함께 살아갈 사람이 됩니다. 서로 웃을 때에, 어깨동무할 이웃이 됩니다.


  어린이집부터 학교까지, 이런 시설 저런 기관에 넣으려고 아이들을 낳지 않습니다. 졸업장이나 자격증을 따서 돈 잘 벌라는 뜻으로 아이들을 낳지 않습니다. 흙 한 줌 만지지 않거나 바람 한 자락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 아이들을 낳지 않습니다. 아끼고 사랑하려는 뜻으로 아이들을 낳습니다. 보살피고 즐겁게 웃고 싶어 아이들을 낳습니다. 서로 좋아하고 서로 손 맞잡을 삶벗이 되고자 아이들을 낳아 함께 살아갑니다. 동화책 《마코토의 푸른 하늘》에 나오는 ‘마코토’네 어머니와 아버지는 파랗게 눈부신 하늘 올려다볼 겨를 없이 바깥일에 바쁩니다. 아마, 오늘날 웬만한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마코토네 어머니와 아버지랑 엇비슷하게 바깥일에 매달리겠지요. 어머니들도, 아버지들도, 또 아이들도, 하늘 올려다보며 구름과 별을 누릴 틈이 없겠지요. 4346.1.1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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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조무래기별들 - 시와 그림이 있는 풍경
박일환 지음, 박해솔 그림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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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22

 


서로 곱게 반짝이는 별
― 아빠와 조무래기 별들
 박일환 글,박해솔 그림
 삶창 펴냄,2012..10.26.11000원

 


  한 해가 지나가며 아이들 나이에 한 살을 더합니다. 다섯 살이던 큰아이는 여섯 살이요, 두 살이던 작은아이는 세 살입니다. 그런데, 다섯 살 큰아이는 “사름벼리는 다섯 살이야. 다섯 살만 할래.” 하고 말합니다. 네 살에서 다섯 살이 되었고, 세 살에서 네 살이 되었으나, 아직 다섯에서 여섯으로 넘어갈 마음이 없는 듯합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렇게 하렴. 그렇지만 넌 여섯 살 맞거든.


  세 살이 된 작은아이는 제가 두 살이든 세 살이든 그리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아직 스스로 말문을 활짝 트지 않기도 했고, 나이가 무엇이건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즐겁게 놀고 맛나게 먹으며 코코 잠자면 넉넉한 하루입니다.


.. 그런 나의 생각과 아내의 입장은 또 달랐던가 보다. 내가 앞에 있는 시를 써서 아내에게 보여줬더니 대뜸, “어이구, 두 애를 씻겨 주느라고 내가 얼마나 힘든데 그래.” 하는 말이 돌아왔던 것이다 … 언젠가 아내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다. 하루는 둘째가 말하길, 자신은 세상의 모든 아빠들이 밤늦게 다니는 줄 알았단다..  (45, 51쪽)

 

 


  아이들한테는 나이도 옷차림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는 저희 어버이가 돈이 얼마나 많거나 적든, 저희 어버이한테 자가용이 있든 말든, 저희 어버이한테 땅이 있든 말든, 그닥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이들로서는 저희 어버이가 잘생기거나 못생기거나 대수롭지 않아요. 그예 어버이일 뿐입니다.


  함께 먹으니 즐거운 밥입니다. 어느 이름난 맛집을 찾아가야 하지 않아요. 밥상에 반찬 한두 가지만 있어도 즐겁고, 국과 밥만 있어도 재미있어요.


  함께 놀기에 즐거운 하루입니다. 어떤 놀잇감이 있어야 하지 않아요. 어떤 놀이공원으로 마실을 가야 하지 않아요. 함께 손 맞잡고 노니까 신납니다. 서로 노래부르고 같이 뛰고 구르니 재미있어요.


  아이들은 밥을 먹다가도 놉니다. 아이들은 놀다가도 밥을 먹습니다. 아이들은 신나게 놀다가 기운이 다하면 스르르 곯아떨어집니다. 아이들은 달게 자고 나면, 다시 기운을 씩씩하게 차려 새삼스레 뛰어놉니다.


  밥을 먹다가 슬그머니 궁둥걸음으로 밥상에서 멀어진 큰아이가 그림책 하나를 들고는 숫자를 읽습니다. “아버지, 사름벼리 여섯 살이야?” 하고 묻습니다. 한손으로는 손가락 다섯을 펼치고 다른 한손으로는 첫째손가락을 펼칩니다. 어느새 그렇게 숫자를 셀 줄 알았니. 놀랍구나. “그래, 사름벼리는 이제 여섯 살이야. 동생은 세 살이야.” 큰아이는 그림책 숫자판을 돌리더니 “이거야? 이거야?” 하고 묻습니다. 숫자 셋을 잘 찍습니다. 용하네. 너희 어머니나 아버지는 너한테 숫자를 찬찬히 가르친 적은 없는데. 그저 지나가는 투로 가끔 숫자를 읽어 주기만 했는걸.


  아침에는 다섯 살 나이를 안 받아들이던 큰아이가 낮이 되어 여섯 살 나이를 받아들입니다. 그러면, 너, 저녁에 일곱 살이라 하면 일곱 살 나이도 받아들이겠니?


.. 도시의 아파트 생활이란 게 단조롭고 삭막하다는 건 누구나 아는 얘기다. 그러면서도 먹고사는 직장에 매이다 보면 생활의 편리함 때문에 아파트를 벗어나기 힘들다.  자연 속에 아이를 놓아 기르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쉽사리 실행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초상 속에 나 역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아이와 함께 (텔레비전) 메리벨을 볼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일곤 했다 ..  (81쪽)

 


  아이들은 놀면서 자랍니다. 아이는 나이를 먹으며 자라지는 않습니다. 나도 우리 아이들처럼 어린 나날 씩씩하게 뛰놀면서 자랐습니다. 나 또한 나이를 먹으며 자라지는 않았어요. 날마다 개구지게 뛰고 구르고 달리고 하면서 자랐습니다. 넘어지기도 하고 자빠지기도 합니다. 부딪히기도 하고 다치기도 합니다. 씩씩하게 다시 일어섭니다. 튼튼하게 먹고 자고 입고 놉니다. 기운차게 놉니다. 온힘 바쳐서 놉니다.


  잘 논 아이는 밥을 잘 먹습니다. 잘 놀지 못한 아이는 밥을 잘 못 먹습니다. 잘 논 아이는 노래를 즐겁게 부릅니다. 잘 놀지 못한 아이는 노래부를 마음이 샘솟지 않습니다.


  나는 국민학교에 들 때까지 한글이나 숫자를 알았는지 몰랐는지 떠오르지 않습니다. 알았을까 몰랐을까 아리송한데, 미리 알았다 한들 더 똑똑해질 일 없고, 늦게 익힌들 덜 똑똑해질 일 없어요. 동무들끼리 놀면서 ‘한글 안다고 도움될’ 일 없어요. 동무들끼리 글놀이를 할 일이란 없어요. 흙바닥에 돌멩이로 금을 긋고 놉니다. 빈터나 찻길이나 주차장이나 풀숲에서 술래잡기를 합니다. 꼬리물기놀이를 하고 달리기를 하면서 놉니다. 그저 맨땅을 땀 송송 돋도록 달릴 뿐이지만, 달리기도 즐거운 놀이 가운데 하나예요.


  이른바 트랙이라 하는 운동장을 달려야 하지 않아요. 학교 운동장에서도 달리지만, 골목에서도 달립니다. 마당에서도 달리고, 방에서도 달리며, 마루에서도 달립니다. 학교 골마루에서도 달리고, 교실에서도 달립니다. 그러고 보면, 내 어린 나날은 늘 달리는 하루였어요. 학교 교사나 둘레 어른은 ‘교실에서 뛰면 못 써!’ 하고 윽박지른다든지, ‘그렇게 달리다가 넘어질라!’ 하고 걱정할 뿐이지만, 우리들은 쉬잖고 달립니다. 마치, 달리지 않으면 아이가 아니기라도 한 듯, 달리며 땀 송송 솟지 않으면 아이가 될 수 없기라도 하는 듯.


.. 지금도 아침마다 아내의 손을 잡고 나란히 밭둑길을 걸어서 출근하던 일과 그때마다 북녘땅에서 틀어놓은 대남 방송이 웅웅대며 들려오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 바쁘게 몰아치는 근대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가장 큰 위로를 주는 건, 그러한 체제의 톱니바퀴에서 벗어나 잠시 마주하는 자연의 풍경 같은 게 아닐까 싶다 ..  (95, 118쪽)

 


  밤하늘 올려다보면 시골마을에서는 뭇별 반짝반짝 빛납니다. 도시에서는 짙게 낀 먼지구름이랑 숱한 불빛 때문에 별을 보기 어렵습니다. 어쨌든, 밤에는 별이 뜨지요. 밤에는 별빛이 환하지요. 어느 별은 더 크게 반짝이고, 어느 별은 좀 작게 반짝입니다.


  그런데, 지구별에서 바라보니까 어느 별이 더 크거나 작게 보이지, 막상 그 별에 가고 보면 참말 클 수 있어요. 지구별이랑 가까운 달이니 크게 보이지, 달이나 지구보다 훨씬 크지만 지구별이랑 멀리 떨어졌기에 아주 작게 보이는 별이 많아요.


  모두 빛나는 별이에요. 크든 작든 모두 환한 별이에요. 모두 사랑스러운 별이에요. 지구와 가깝든 멀든 모두 사랑스러운 별이에요.


  박일환·박해솔 두 사람이 빚은 이야기책 《아빠와 조무래기 별들》(삶창,2011)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아버지 박일환도 아이 박해솔도 환하게 빛나는 별이에요.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빛나는 별이요, 딸아이는 딸아이대로 빛나는 별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고운 별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아끼는 따사로운 별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보살피는 착한 별이에요.


.. 아내와 함께 맞벌이를 하다 보니 오후에 애들을 보살펴 줄 수가 없었다. 유치원 시절에는 종일반이 있으니까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가 다가오면서 어찌해야 좋을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내와 머리를 맞대 보았지만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 없었고, 결국 초등학교 1학년짜리를 학원으로 내몰아야 했다. 그나마 학원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는 걸까 … 나 역시 그러한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남편이었음을 고백한다. 밥 달라고 보채지는 않았지만 내가 스스로 밥을 지어서 상을 차려 준 적이 없고, 임신한 아내가 맛있어 할 만한 걸 미리 알아서 사다 준 기억도 별반 없다 ..  (105, 137쪽)


  지구별 어버이들 누구나 당신 아이들과 더 오래 더 가까이 더 살가이 지낼 수 있기를 빕니다. 아이들을 보육시설이나 학교에만 맡기지 말고, 아이들이랑 손 맞잡고 하루를 더 즐거이 뛰놀 수 있기를 빕니다.


  아이들하고 놀이공원 안 가도 돼요. 아이들하고 집에서 힘차게 뛰놀면 돼요. 아이들을 자가용이나 시외버스 태우고 어디로 마실을 다니지 않아도 돼요. 아이들과 가까운 숲으로 찾아가 숲바람 쐬고 숲햇살 누리면 돼요. 나도 너는 저마다 맑게 빛나는 별이니, 저마다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별빛을 느끼면서 즐거이 마주하면 돼요.


  생각해 봐요. 두 어버이가 맞벌이를 해서 돈을 번 다음 어디에 어떻게 쓸 생각인가요. 맞벌이를 해서 돈을 더 번 다음, 아이들 맡길 보육시설이나 학교나 학원을 찾아야 하나요. 맞벌이를 안 하고 돈벌이를 줄이면서 아이들과 사랑스러운 보금자리에서 한결 알콩달콩 누리는 삶일 때에 아름답게 빛나는 별이 되지 않을까요. 4346.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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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성과 사랑 - 건강한 성과 행복한 사랑 이야기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8
노을이 지음, 스튜디오 돌 그림 / 철수와영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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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01

 


사랑하며 살아갈 나와 너
― 10대와 통하는 성과 사랑
 노을이 글,돌 스튜디오 그림
 철수와영희 펴냄,2012.12.14/12000원

 


  두 아이 아버지로 살아가면서도 생각하지만, 나 스스로 한 사람 목숨 받아 찬찬히 살아오는 동안 ‘성교육’은 굳이 없어도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 아이들한테 베풀 가르침이라면, 또 나 스스로 배울 가르침이라 한다면, 꼭 하나 ‘사랑교육’이면 넉넉하지 싶어요. 성관계·성문제·성평등 같은 대목은 굳이 이야기할 까닭이 없으리라 느껴요. ‘사랑하며 어깨동무할 삶’을 이야기하면 모든 실타래가 솔솔 풀릴 수 있으리라 느껴요.


.. 많은 기업과 방송 매체들이 성으로 돈을 벌기 위해 쾌락을 소비하도록 부추기고, 점점 더 강한 자극을 만들어 내요. 그런데 이들이 부르짖는 성의 자유 이면에는 성 소비를 위한 도구가 되어 자신의 성을 착취당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대표적인 예가 성매매 여성들이나 포르노 배우들이죠. 이들은 대부분 성적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계’를 위해서 그렇게 살아요. 그리고 비인격적인 대접을 받고 소외당하죠 … 대중매체들은 ‘원하는 대로 누릴 권리가 있다’는 핑계로 자극적이고 왜곡된 성 문화가 담긴 정보를 만들어 내고, 파괴적인 연애관을 담은 작품들을 쏟아 냅니다. 이러한 정보들은 ‘네가 선택할 자유가 있다’라고 말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유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매체가 주는 자극에 익숙해지고 그 메시지를 믿도록 해요 ..  (16, 19쪽)


  내 어린 날과 내 푸른 날을 돌이켜보면, 나는 성교육도 받은 적 없지만, 사랑교육 또한 받은 적 없어요. 학교에서는 중학교 2학년인가 3학년쯤에서야 비로소 성교육이랍시고 비디오 한 번 보여주고 끝이었어요. 고등학교에서는 아예 성교육조차 없었어요. 고등학교에서는 오직 대학입시 교육만, 아니 대학입시를 바라보는 문제풀이만 있었어요.


  그러니까, 나는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 동안 사랑을 배운 적이 한 차례도 없어요. 교사도 어버이도 사랑을 이야기하거나 다루거나 밝히지 않았어요. 교과서에서는 사랑을 들려주지 않고, 여느 책에서도 사랑을 말하지 않아요. 인문책은 인문사회과학 지식에만 파묻힌 채, 사람이 누릴 사랑을 깨우치도록 이끌지 않아요.


  사랑이 없는 삶이란, 슬프며 어둡고 퀴퀴합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이란, 차갑고 매몰차며 어리석습니다. 사랑이 없는 나라란, 경제성장율이나 전쟁무기나 물질문명으로 치닫습니다.


  사랑 없는 채 돈만 밝히는 사람이란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가요. 사랑 없는 채 전문가라 우쭐거리는 사람은 얼마나 건방지고 무시무시한가요. 사랑 없는 채 지식을 앞세우는 사람은 얼마나 번드르르하면서 속은 텅 비는가요.


  꽃 한 송이도 사랑으로 핍니다. 풀 한 포기도 사랑으로 푸릅니다. 나무 한 그루도 사랑으로 우람합니다.


  힘이 없으면 힘이 있는 놈한테 잡아먹힌다고 하지만, 이는 그야말로 엉터리입니다. 사랑은 없이 오직 껍데기로만 살겠다는 뜻인데, 사랑이 없으면서 어떤 삶을 누리겠어요. 사랑은 없으면서 힘으로만 누르겠다면, 차츰 늙어 힘이 빠지면 당신 또한 다른 힘센 놈한테 잡아먹혀야 한다는 소리일밖에 없어요. 힘을 앞세우거나 돈을 앞세우거나 이름을 앞세우는 짓은, 나 스스로 갉아먹는 바보놀음이에요.


.. 야동의 힘은 대단해요. ‘보기만 하는 건데 뭐 어떄?’라고 십게 생각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머리는 분명히 영향을 받고 있어요. 야동에서 강간을 하면 강간을 해도 되는 것 같고, 야동에서 여성이 성관계를 좋아하면 모든 여성은 성관계를 좋아하는 것 같죠.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말이에요 … 보기에는 엄청난 쾌감을 느끼는 것 같은 배우들은 사실 누구보다 고통스러워하는 우리의 이웃이에요.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이죠. 야동은 결코 진실을 보여주지 않아요. 연출된 환상에 불과합니다 … 야동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진짜 성관계가 어떤 건지 말하지 않아요. 여러분 부모님은 야동에서처럼 성관계를 해서 여러분을 낳은 게 아니에요. 여러분의 엄마 아빠가 나눈 성관계는 쾌락과 욕구 충족만을 위해 나눈 관계가 아닌,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따듯하고 부드럽게 공유한 관계예요 ..  (63, 76, 84쪽)


  따사로이 어루만지는 손길이 좋은 아이들입니다. 짓궂게 더듬는 손길은 어느 누구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따뜻하게 얼싸안는 품이 반가운 아이들입니다. 거칠게 다루는 품은 어느 누구라도 달갑지 않아요.


  따사로운 손길로 씨앗을 건사해서 흙을 살찌웁니다. 기름진 흙은 씨앗을 곱게 보듬어 튼튼히 뿌리를 내리도록 돕습니다. 밝은 햇볕은 여린 새싹이 싱그러운 풀포기로 자라도록 이끕니다. 맑은 바람은 풀줄기에 싯푸른 빛이 감돌도록 거듭니다. 시원한 빗물은 풀잎에 드리우며 고운 숨결 피워냅니다.


  사람도 짐승도 새도 풀을 먹습니다. 풀은 사람과 짐승과 새한테 먹이를 내어주며 스스로 한결 푸르게 빛납니다. 풀은 잎사귀를 내주어도 다시 새 잎사귀가 돋습니다. 풀은 뿌리째 내주어도 다시 새 뿌리를 내어 자랍니다.


  풀은 꽃도 잎도 열매도 씨앗도 모두 내줍니다. 그러고도 넉넉히 우거져서 풀숲을 이루고 나무숲을 이뤄요. 사람들은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무엇을 만드는데, 이렇게 나무를 쓰고 또 써도 숲은 그예 우거집니다. 왜냐하면, 풀과 나무는 사람들하고 사랑을 주고받거든요. 사람들한테서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운 마음을 받으며 저희 몸통을 모두 내줍니다. 사람들은 풀과 나무를 고맙게 받아 쓰면서, 이녁이 늘 찬찬히 일구며 북돋운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운 마음을 사랑스레 건넵니다.


  어느 과학자는 따로 실험을 해서 ‘풀도 나무도 클래식 노래를 들으면 더 싱그럽고 튼튼하게 자란다’고 밝혀요. ‘풀도 나무도 사람들이 고운 말로 얘기하면 더 싱그럽고 튼튼하게 자라지만, 풀도 나무도 사람들이 거친 말을 마구 일삼으면 제대로 못 자라거나 시든다’고 밝혀요.


  굳이 과학을 빌지 않아도 어린이도 아는 일이에요. 어린이들은 ‘과학이라는 낱말을 몰라’도, 이녁 스스로 살살 예쁘게 풀잎 어루만질 때에 더 푸르게 빛나는 줄 몸으로 알아요. 어린이들은 ‘과학실험을 몰라’도, 이녁 스스로 가만가만 곱게 나무줄기 얼싸안을 때에 더 튼튼히 자라는 줄 마음으로 알아요.


.. 사랑은 정직하게 나의 마음을 보여주고, 또 상대의 진실한 마음도 수용할 줄 아는 가장 친밀하고 소중한 만남, 바로 ‘관계’예요 ’ 남성에게 스킨십이 중요하다면 여성에게는 정서적 관계가 중요해요. 여성은 임신과 양육을 하도록 성장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훨씬 신중해요. 이 사람이 충분히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없는 채로는 섹스를 하면 안 된다는 경각심이 있죠. 이성적으로 하나하나 따지지 못해도 소녀들의 마음에는 이런 본능적인 경계선이 있어서 훨씬 고민도 많고 조심스러운 거예요.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스킨십을 거부하는 게 아니랍니다. 지금도 계속 사귀고 있는 이유는 도리어 많이 좋아하고 관계를 잘 만들고 싶기 때문이에요 … 연애를 하는 데 진도가 왜 중요한가요 … 상대방은 원하지 않는데 내가 원한다고 일방적으로 강요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 남자 친구는 지금 날 사랑하고 있는 게 아니라, 날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걸 해 보고 싶은 거죠 ..  (86, 104, 105, 114쪽)


  사랑하며 살아갈 나와 너입니다. 사랑을 배우고 가르칠 나와 너입니다.


  다만, 학문으로 가르칠 사랑이 아닙니다. 삶으로 가르칠 사랑입니다. 삶으로 가르쳐, 삶으로 배울 사랑이에요.


  밥짓는 사랑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밥을 차려서 함께 나누는 사랑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빈 밥그릇을 치우며 설거지하는 사랑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옷을 짓거나 깁는 사랑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옷을 입는 사랑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옷을 빨고 널고 개고 건사하는 사랑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집을 짓고 손질하는 사랑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집을 돌보며 즐거운 보금자리 되도록 꾸리는 사랑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이리하여, 나를 사랑할 짝꿍을 찾는 길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내가 사랑할 짝꿍을 만나서 어깨동무하는 길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기에 즐거이 가르치며 기쁘게 배웁니다.


  졸업장을 따려고 배우지 않아요. 자격증 때문에 가르치지 않아요. 졸업장으로 일자리를 얻어야 하니까 배우지 않아요. 자격증으로 뭔가 자랑하려고 가르치지 않아요.


.. 자신이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분명하게 알고, 연애를 할 때도 그 가치를 지키세요 … 상대를 배려하며 자신도 잘 가꾸는 사랑의 실력을 키워 가세요. 그러다 이별을 경험한다 해도 괜찮아요. 헤어진 것을 후회할 필요도 없어요. 우린 성장하는 중이니까요 … 두 사람을 위해서 지금 당장 피임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임신이라는 엄청난 문제가 닥쳤을 때 정말 책임질 것 같나요? 이 순간의 분위기와 흥분된 감정은 성행위가 끝나면 지나가 버리고 말아요 ..  (117, 121, 135쪽)


  도덕은 따로 가르치지 못합니다. 도덕은 삶으로 받아들여 누리는 하루입니다. 철학은 따로 가르치지 못합니다. 철학은 하루하루 알차게 누리는 삶입니다. 그러면, 사랑도 못 가르친다고 하겠지요. 맞는 말이에요. 사랑도, 하나하나 따지면, 누가 누구한테 가르치지 못해요. 그러나, 사랑을 가르치고 배운다 할 때에는, 스스로 사랑스럽게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사랑스레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며 집을 돌봅니다. 사랑스레 말을 하고 꿈을 꾸며 일을 합니다.


  사랑스레 놀이를 즐깁니다. 사랑스레 심부름을 합니다. 사랑스레 글을 씁니다. 사랑스레 사진을 찍고, 밭에서 김을 매며, 등짐을 져 나릅니다.


  성교육 아닌 사랑교육을 해야 한다는 말은, 어떤 지식이나 정보로 ‘사랑은 바로 이렇지! 이걸 알라구!’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사랑으로 누리는 삶은 어떠한가를 몸소 빛내면서 즐길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사랑교육입니다. 이를테면, 볕 잘 드는 숲속 풀밭에 앉아 눈을 감고 해바라기를 해요. 밭뙈기에 씨앗 한 알 심고는 흙을 잘 도닥여 봐요. 아이를 품에 안고 가장 고운 목소리를 뽑아 노래를 불러요. 들길을 함께 걸어요. 바람을 함께 들이켜요. 신을 벗고 흙땅을 맨발로 달려요. 냇물을 손바닥으로 떠서 마셔요. 풀밭에 앉았으면 풀내음을 맡고, 멧새와 들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요. 풀벌레 속삭이는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요.


.. 임신하면 원치 않아도 아기가 삶의 중심이 된답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 살던 학교생활과 친구 관계, 취미 생활, 미래에 대한 꿈도 송두리째 바뀌죠. 나만큼이나 중요한 또 한 사람(아기)이 내 인생에 들어왔기 때문이에요 … 서로가 사랑하기로 했다면, 그 관계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온힘을 기울이세요 … 돈 때문에 자신을 팔아서는 안 돼요. 그건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버리고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까지 상처 입히는 일이 돼요 … 아시다시피, 부모님께서 건강한 성 인식을 갖지 못하면 아이에게도 건강한 성을 가르쳐 주기 어렵습니다 ..  (138, 144, 152, 211쪽)


  ‘노을이’ 님이 쓴 《10대와 통하는 성과 사랑》(철수와영희,2012)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참말,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이러한 ‘사랑책’을 읽히면서, 우리 어른과 어버이도 이 같은 사랑책을 슬기롭게 읽을 수 있을 때에 아름다우리라 느껴요. 사랑이 샘솟는 자리를 헤아리고, 사랑이 흐드러지는 길을 살피며, 사랑이 빛나는 꿈을 돌아볼 때에, 사람들은 저마다 활짝 웃을 수 있으리라 느껴요.


  대학교에 붙어야 할 아이들이 아닙니다. 사랑을 하며 살아갈 아이들입니다.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되어야 할 아이들이 아닙니다. 사랑스레 일하고 사랑스레 살림을 꾸릴 아이들입니다. 유명인사가 되거나 이름을 드날릴 아이들이 아닙니다. 사랑스레 웃고 사랑스레 노래할 아이들입니다.


  내가 나를 아끼고, 네가 너를 아끼면서, 서로가 서로를 아낍니다. 내가 나를 슬기롭게 보살피고, 네가 너를 슬기로이 보살피며, 서로가 서로를 슬기로이 보살피며 어깨동무합니다.


  별빛이 곱게 흐릅니다. 햇빛이 온누리를 골고루 비춥니다. 바닷바람은 들바람이 되고, 들바람은 숲바람이 됩니다. 냇물은 빗물이 되고, 빗물은 다시 냇물이 됩니다. 구름은 무지개가 되고, 무지개는 어느새 안개가 되며, 안개는 새삼스레 아지랭이가 됩니다. 달팽이가 풀잎을 먹습니다. 풀잎에 풀벌레 알이 붙습니다. 풀꽃에 나비가 앉습니다. 애벌레가 풀잎을 먹습니다. 사람이 풀을 뜯습니다. 사람들 옷에 풀씨가 붙습니다. 바람이 휭 불더니 풀잎노래 흐드드 퍼뜨리며 지나갑니다. 고래는 깊은 바다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달빛이 흘러 물결이 넘실거립니다. 참새는 도시에서도 고운 이야기꽃을 나누어 줍니다. 지렁이는 똥을 고운 거름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잠자리가 날고, 제비가 집을 짓습니다. 개구리가 논에 알을 낳고, 가재가 도랑에서 새끼를 칩니다. 도룡뇽이 지나가고, 다람쥐가 나무열매를 갉습니다.


  저마다 삶을 빚어 이야기를 빚습니다. 모두들 삶을 일구며 사랑을 일굽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너무 오래 가두지 마셔요. 아이들을 학원에 자꾸 가두지 마셔요. 아이들이 서로 사랑하며 지낼 수 있도록 자리를 넓혀 주셔요. 아이들이 스스로 사랑하는 넋으로 지낼 수 있게끔 숨통을 터 주셔요. 다 다른 아이들한테 모두 똑같은 옷을 입히지 마셔요. 다 다른 아이들이 마을마다 집마다 저마다 고운 사랑으로 거듭나는 길을 맑은 눈빛으로 지켜보아 주셔요. 4345.12.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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