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리장수 다로 1
김민희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544



나를 사랑하니까 죽여 주겠다고?

― 젤리장수 다로 1

 김민희 글·그림

 마녀의책장 펴냄, 2010.11.30. 6000원



  노예제가 사라졌을 적에 노예로 있던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합니다. 소작제가 사라졌을 적에도 소작농으로 있던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합니다. 아무런 대책이나 보호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채 제도만 없앤다고 해서 삶이 바뀔 수 없습니다. 수백 해에 걸쳐서 노예나 소작농으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은 ‘남이 시키는 일’을 하는 삶에 익숙합니다. 게다가 수백 해에 걸쳐서 노예나 소작농으로 있었기 때문에 ‘내 땅’이나 ‘내 일’이 없기 마련입니다. 제도가 없어져도 노예나 소작농은 다시 노예나 소작농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얼거리입니다.


  왜 그러할까요? 노예나 소작농은 ‘노예로 뒹굴어야 하는 삶’이나 ‘소작농으로 짓눌려야 하는 삶’ 말고는 보거나 겪거나 배운 적이 없습니다. 스스로 ‘다른 삶’이나 ‘새로운 삶’을 찾거나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노예나 소작농이 다른 삶이나 새로운 삶을 찾거나 생각할 적마다 목숨을 빼앗기거나 끔찍하게 얻어맞았을 테니, 제도만 하루아침에 없앤다고 해서 달라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긴 전시 동안 대량생성된 군인들은 평화로운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다. 살육에 익숙한 그들은 평화로운 삶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게 된 것이다. 적응에 실패한 군인들은 걸인이나 산적과 같은 주변인으로 전락하여 사회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이에 나라에서는 구 케산국의 변경에 위치한 ‘절망의 광야’에 출몰하는 괴물들에게 현상금을 붙인다. 그리하여 방황하던 군인들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절망의 광야에 몰려들게 되었다.’ (9쪽)



  김민희 님이 빚은 만화책 《젤리장수 다로》(마녀의책장,2010) 첫째 권을 읽으면서 빙긋빙긋 웃습니다. 김민희 님이 보여주는 우스개가 재미있기도 하고, 이 만화책에서 흐르는 이야기는 만화에서만 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어서 쓸쓸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보며 빙그레 웃고, 쓸쓸한 이야기에는 쓰겁게 웃습니다.



‘부럽긴 뭐가 부러워. 착각하면서 사는 게 자신감의 비밀이라니, 쯧쯧. 시시한 인간 같으니! 그나저나 저런 인간을 위해 일평생 여기서 갇혀 살아야 한다니!’ (35쪽)


‘전쟁의 시대는 지나갔다. 저 사람들은 과거의 사람들이다. 하지만, 난 아니다.’ (52쪽)



  ‘전쟁하는 때’에 태어나서 군인이 되어야 한 사람들은 전쟁터에 끌려갈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이들은 전쟁터에서 무기를 들고 ‘누군가를 죽이는 몸짓’이 익숙합니다. 이 일 말고는 달리 할 줄 아는 일이 없습니다. 게다가 무척 오랫동안 온 나라가 싸움판이었다면, 젊은 사내는 무엇을 할까요? 봄이 되어 흙을 갈아 씨앗을 심는 일을 할까요, 아니면 무기를 들고 훈련을 하는 일을 할까요?


  다만, 만화책 《젤리장수 다로》는 ‘무거운 사회비판’ 만화가 아닙니다. 《젤리장수 다로》는 바보스러운 사회에서 바보스러운 몸짓으로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언뜻선뜻 터져나오는 웃음을 가만히 잡아채는 만화입니다. 무엇보다도 ‘전쟁하는 쳇바퀴’에 길든 어른하고는 다르게 살겠노라 다짐하는 ‘내 삶을 새롭게 찾으려고 하는 어린이(또는 푸름이)’가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미자 씨는 지도 그리는 일을 진짜 좋아하는구나. 미자 씨 꿈은 금방 이루어지는 거라서 좋겠다.’ (93쪽)



  군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적군 잘 죽이기’입니다. 군인이 보람을 누릴 수 있는 일이란 ‘적군 많이 죽이기’입니다. 우리한테 적군이 될 저쪽 군인도 마찬가지예요. 서로서로 ‘너를 빨리 죽여’야 내 가슴에 훈장이 붙습니다. 서로서로 ‘너희를 많이 죽여’야 우리한테 평화가 찾아오는 줄 여깁니다.


  그런데 전쟁은 좀처럼 끝나려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서로 죽이고 죽여도 전쟁이 끝날 낌새가 안 보입니다. 전쟁이 커지면 커질수록 애꿎게 죽어야 하는 사람이 늘어나기 마련이기에, 이쪽과 저쪽은 서로서로 더 미워하고야 맙니다.


  전쟁은 평화로 나아갈 뜻이 없습니다. 전쟁은 언제나 더 오랫동안 사람들 마음속에 미움과 짜증과 앙갚음을 아로새기려 합니다. 이러는 동안 권력자는 높다란 걸상에 한갓지게 앉아서 온갖 권력을 누립니다.



“사람 친구를 먹다니, 그런 적은 없어요. 아직 친구랑 같이 여행 다녀 본 적이 없거든요.” “아직?” “그래서 여러분과 같이 여행을 떠난 것이 몹시 흥분되고 즐거워요.” “시끄러워, 시끄럽고! 아직이란 말은 그런 상황이 오면 사람 친구도 먹을 거란 말이냐? 엉?” “예? 그거야 불가피한 상황이 온다면야, 우리는 지도 그리는데 목숨을 걸고 있단 말이에요. 제가 먼저 죽으면 제 몸을 줄 거고, 반대로 친구가 먼저 죽으면 그 몸을 먹어서라도 살아갈 거예요.” (112∼113쪽)



  군인이 꿀 수 있는 꿈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내가 죽지 않고 살아남기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루 빨리 전쟁이 끝나서 지긋지긋한 이 짓을 그만두기입니다. 군인을 부리는 권력자는 전쟁이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전쟁이 이어져야 사람들을 전쟁터로 내몰면서 권력을 더 단단히 지키기 때문입니다. 어쩌다가 전쟁이 끝나더라도 사람들한테 ‘또 전쟁이 터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사람들 마음에 심어서 언제까지나 권력을 아주 단단히 지키려 합니다.


  그런데, 군인으로서 전쟁터에서 ‘내가 안 죽어’도 내 동무와 이웃과 한식구는 죽기 마련입니다. 군인으로 전쟁터에 끌려가서 ‘내가 안 죽어’도 끝없는 아픔과 슬픔을 언제까지나 짊어지고야 맙니다. 게다가, 전쟁이 끝나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군인이라 하더라도 고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피비린내에 익숙한 사람이 흙내에 온몸을 비벼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기란 몹시 어렵습니다.



“인어국의 최고 형벌이 인간으로 변화시켜서 인간의 감옥에 유배시키는 거라고? 사형이 최고형이 아니네.” (133쪽)



  만화책 《젤리장수 다로》에는 젤리장수인 앳된 사내가 나옵니다. 앳된 사내는 젤리를 한몫 단단히 팔아서 하루 빨리 부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루 빨리 부자가 되어야 ‘권력자 밑에서 노예로 지내는 어머니’가 풀려나는 길을 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앳된 사내가 젤리를 팔려면 ‘인어 할아버지’를 옆에 끼어야 합니다. 젤리를 팔려고 가로질러야 하는 붉은닥세리는 아무나 가로지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만화책에서는 ‘평화와 전쟁’ 두 가지를 한몸에 품은 인어가 나오는데, 이 만화책에 나오는 인어는 ‘남을 죽이는 짓’을 아무한테나 하지 않습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인어 사회에서는 ‘목숨을 빼앗는 짓’은 가장 좋아하는 사람한테 하는 일이라고 나와요. 그리고, 가장 싫어하는 사람한테는 “너 미워.” 하고 내뱉는 한 마디가 가장 끔찍한 폭력이라고 합니다. 사람 사회 잣대로 보면 도무지 알아먹을 수 없는 ‘인어 사회 잣대(만화책에 나오는 얼거리)’라 할 테지요.



“이것이 나의 정체다. 인어 중에 가장 못된 인어가 나다!” ‘정말 이게 사실이야? 사람을 미워하는 게 죄라니. 인어국은 귀여운 나라구나.’ (156쪽)



  사랑하거나 좋아하는 님이 있으면 ‘목숨을 빼앗아(죽여)서’ 고마움을 나타낸다고 하는 인어 할아버지를 옆에 끼고 붉은닥세리를 가로질러서 젤리를 신나게 팔아 부자가 되려는 만화책 주인공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앳된 주인공은 인어 할아버지가 ‘귀엽다’고 느껴서 더 잘해 주려고 하는데, 인어 할아버지는 앳된 주인공이 더없이 착하고 고마워서 ‘너처럼 멋지고 사랑스러운 사람은 죽여 주고 싶다’고 잠꼬대로 한 마디를 합니다.


  젤리장수 아이는 젤리를 팔아서 부자가 될 수 있을까요? 인어 할아버지는 저한테 따스한 젤리장수 아이를 죽일까요?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도를 그리겠다는 젊은 가시내는 지도를 다 그릴 수 있을까요? 참말 한 치 앞조차 내다볼 수 없는 삶이고, 이러한 삶을 김민희 님은 《젤리장수 다로》에 재미나면서 멋지게 잘 담았구나 싶습니다. 4348.8.18.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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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어 게임 3
카이타니 시노부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47



올바르게 살면 늘 속을까?

― 라이어 게임 3

 카이타니 시노부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7.4.25. 4200원



  카이타니 시노부 님 만화책 《라이어 게임》(학산문화사,2007) 셋째 권 첫머리에서 ‘놀라운 사기꾼’ 노릇을 하는 ‘아키야마’라는 젊은이 이야기가 흐릅니다. 아키야마네 어머니는 이녁 아들을 대학교까지 보내려고 궂은 일을 마다 않으면서 일을 하다가 그만 몸이 무너졌고, 이즈음 다단계 업체에 속아넘어가면서 나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아키야마라는 젊은이는 어머니가 속아넘어간 다단계 회사한테 앙갚음을 할 뜻을 품었고, 끝내 다단계 회사를 와르르 무너뜨리고는 옥살이를 했다고 합니다.



“꾀를 부려서 잠시 이득을 봐도,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어. 하지만 정직하게 살면 반드시 행복이 찾아올 거야.” (12쪽)


아키야마의 어머니는 고스란히 속아넘어간 것이다. 언제 어느 때나 사기꾼은 절박한 사람을 하이에나처럼 찾아낸다. 아키야마의 어머니도 이때 정말 몸도 마음도 한계에 몰려 있었던 것이다. (15쪽)



  《라이어 게임》에서 두 주인공 가운데 하나인 아키야마는 언제나 머리를 똑똑하게 굴립니다. 어리숙하게 보이면 다른 사람이 나를 속이려 하니, 조금도 어리숙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속여서 제 배를 채우는 사람이 있다면 이녁한테 곧바로 앙갚음을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회는 내가 너를 밟고 일어서느냐, 아니면 내가 너한테 밟히면서 바보스레 눌려야 하느냐 같은 두 갈래 길밖에 없다고 여겨요.


  만화책에서 흐르는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참말 이 같은 모습을 쉽게 마주할 수 있습니다. 눈속임이나 거짓말이 아닌 착한 몸짓과 참말로 서로서로 아끼는 사람은 좀처럼 안 드러나는 듯 느낄 만합니다. 신문이나 방송이나 책을 보면 어떤 사람들이 도드라질까요? 바로 참말 아닌 거짓말로 사는 사람들 모습이 도드라집니다. 조용히 제 보금자리를 가꾸는 사람들 이야기는 신문에도 방송에도 책에도 거의 안 나온다고 할 만합니다. 떠들썩하게 말썽을 일으키는 사람들 이야기가 신문이나 방송이나 책을 가득 채워요. 그런데 수많은 여느 사람들은 바로 이런 신문이나 방송이나 책을 보면서 ‘믿기’ 마련입니다.



“그걸 왜 지키니? 이건 라이어 게임. 속고 속이는 전쟁이야. 후후후, 아무튼 둔해 빠졌다니까. 넌 말이지, 내가 올라가기 위한 제물이었어.” (82쪽)


“아, 난 왜 이렇게 멍청할까. 왜 그런 게임을 해 버린 걸까.” “후회해도 소용없어. 당했으면, 갚아 줘야지!” (126쪽)



  올바르게 살면 늘 속을까요? 어쩌면 속을는지 모릅니다. 올바르게 살면 늘 빼앗길까요? 어쩌면 빼앗길는지 모릅니다. 올바르게 살면 늘 가난할까요? 어쩌면 가난할는지 모릅니다. 올바르게 살면 늘 고달플까요? 어쩌면 고달플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나를 속이지 않는 사람은, 아니 나 스스로를 속이려는 마음이 없이 삶을 짓는 사람은 즐겁게 웃습니다. 아프거나 슬픈 일이 있으면 아프거나 슬프게 눈물을 흘립니다. 나를 속이지 않으니 밥을 지을 적에 스스로 가장 맛있게 지으려 하고, 스스로 가장 맛있게 지은 밥을 이웃하고 넉넉히 나누지요.


  나를 속이지 않으니, 아니 늘 나를 참다이 바라보면서 살림을 가꾸니, 가난하건 가멸차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아이들하고 한솥밥을 먹는 기쁨으로 활짝 웃으면서 노래할 만합니다. 귀뚜라미 노랫소리가 반갑고, 바람 따라 춤추는 나뭇잎 소리가 재미납니다.



“싫으면 안 사도 돼. 기다리는 것은 패배뿐이니까.” (182쪽)


“전, 여러분의 말을 듣지 않겠어요! 모두들, 정말 이기적이군요. 1회전 투표 전에 한 스피치 타임에선, 아무도 제 이야기를 들어 주지 않았잖아요!” (196∼197쪽)



  《라이어 게임》은 이 이름 그대로 ‘거짓말 놀이’에 휩쓸린 사람들 모습과 몸짓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거짓말 놀이를 해야 나 혼자 살아남겠구나 하고 느끼는 사람들이 어떤 모습이 되어 어떤 몸짓을 보여주는가를 낱낱이 드러냅니다.


  그런데, 거짓말 놀이가 아닌 ‘참말 놀이’를 하겠노라 하고 생각을 바꾸면 어떻게 될까요? 내가 너를 속여야 내 밥그릇을 두둑히 챙길 수 있다는 생각이 아니라, 내가 너랑 즐겁게 손을 맞잡고 슬기를 모으면 서로서로 밥그릇이 푸짐하다는 생각을 품으면 어떻게 될까요?


  네 몫을 내가 차지해야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네 몫은 네가 누리고 내 몫은 내가 즐기자는 생각으로 어깨동무를 하면 어떻게 될까요? 혼자서 돌다리를 놓기는 매우 힘들지만, 둘이 하거나 서넛이 하면, 또는 열이나 스물이 하면 무척 손쉬우면서 거뜬합니다. 두레나 품앗이를 하는 사람들은 똑같은 품을 들여서 다 함께 더 넉넉히 누리는 살림을 지을 수 있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플레이어 전체로서는 손해를 보지 않는 거죠. 그것은 즉, ‘나만 이득을 보겠다’라고 생각하는 플레이어가 하나도 없다면, 전원이 살 수 있다는 뜻이에요.” (208쪽)


“이 라이어 게임은 거짓말쟁이가 이기는 게임이라고 생각하셨죠? 저는 아니라고 봐요. 라이어 게임이란, 사실, 거짓말을 해서 이기고 싶다는 욕망을 극복하고, 정직해질 수 있느냐를 시험하는 게임이라고 생각해요.” (210쪽)



  한 사람만 배가 부르다고 해서 나쁠 일은 없다고 봅니다. 다만, 한 사람이 배가 부르면 다른 사람은 모두 배가 안 부르겠지요. 한 사람이 돈을 왕창 번다면, 다른 사람은 돈을 왕창 잃겠지요.


  혼자 배가 부르면 즐거울까 궁금합니다. 혼자 모든 돈을 거머쥐면 이 돈을 얼마든지 쓸 만할까 궁금합니다.


  많이 먹거나 많이 써야 즐거운 삶이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즐겁게 먹어야 즐겁고, 즐겁게 써야 즐겁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웃을 속이면서 등골을 빼먹으려는 사람은 한 번 등골을 빼먹으면 앞으로도 등골을 빼먹으려는 길을 가고야 맙니다. 언제까지나 스스로 거짓말에 휩쓸려서 살아야 합니다. 여느 때에 늘 이웃하고 오순도순 나누는 사람은 앞으로도 늘 오순도순 나누는 기쁨을 가꾸기 마련입니다. 삶은 삶 그대로 바라보면서 가꿀 때에 아름답습니다. 4348.8.17.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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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의 형태 2
오이마 요시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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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38



너하고 얘기하려고 배운 ‘새로운’ 말

― 목소리의 형태 2

 오이마 요시토키 글·그림

 김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5.5.31. 5500원



  아기가 하는 말을 도무지 못 알아듣는 어른이 꽤 많습니다. 아기를 낳아서 돌본 적이 없으면, 아기가 옹알거리는 말을 못 알아채기 마련입니다. 아기를 낳아서 돌본 적이 있어도 아이 곁에서 오래도록 따스한 마음으로 지켜보지 않았으면, 막상 이녁 아기가 옹알거리는 소리도 못 알아들을 뿐 아니라, 다른 아기가 옹알거리는 소리도 못 알아듣기 일쑤입니다.


  아기하고 한마음이 될 적에 아기가 들려주는 말을 알아듣습니다. 아기하고 눈높이를 맞출 적에 아기가 옹알거리는 소리를 알아차립니다. 아기하고 함께 놀면서 하하하 웃을 적에 아기가 노래하는 이야기를 비로소 가슴으로 받아들입니다.



“어떻게 수화를 하는 거야?” “배, 배웠어! 나라고 할 말 없었던 거 아냐. 네가 목소리가 안 들리다 보니 나도 나름대로 고충이 컸다고.” (15쪽)


“사실은, 나 자신을 위해 여기 왔어. 계속 드는 생각이 있어. 초등학교 6학년 그때, 그때 서로 목소리가 들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난 내가 싫어. 나밖에 모르고, 배려심도 없고, 같은 반 애들을 깔보면서 살아왔어. 17년 간 살면서 한 번도 착한 녀석이었던 적이 없어. 그때는 서로를 상처 입히는 것으로밖에 목소리를 전하지 못했어.” (18∼20쪽)



  오이마 요시토키 님이 빚은 만화책 《목소리의 형태》(대원씨아이,2015)를 읽으며 가만히 생각합니다. 《목소리의 형태》 첫째 권을 읽으면, 이 만화책에 나오는 사내 아이는 초등학교에 다닐 적에 한 반 가시내를 몹시 못살게 굴었습니다. 삶이 너무 따분하고 지겹다고 여긴 사내 아이는 ‘소리를 못 듣는 동무’한테 아주 짓궂었어요. 그런데, 사내 아이만 짓궂지 않았습니다. 같은 반 아이들 거의 모두 똑같이 짓궂은 짓을 일삼았어요.


  나중에 이 따돌림은 크게 말썽이 됩니다. 교장 선생님까지 나서면서 ‘누가 이런 짓을 일삼았느냐’ 하고 물으니, 사내 아이가 혼자 ‘따돌림’을 짊어집니다. 같은 반 아이들이 ‘우리는 아무도 괴롭히지 않았다’고 하면서 사내 아이 혼자 그 아이를 괴롭혔다고 몰아세웁니다.



‘오늘은 높은 다리에서 죽으려고 했는데, 예정은 다 꼬이고 잉어 먹이나 주고 있지 않나. 덜 떨어진 얼굴에, 눈은 벌겋고, 여드름 하며.’ (29쪽)


“그 노트, 그렇게 소중해?” “한 번 포기했지만, 네가 주워 줬으니까.” (45쪽)



  ‘소리를 못 듣는 동무’를 괴롭히던 아이는 얼결에 ‘따돌림받는 아이’가 되었어요. 그동안 ‘여린 동무를 따돌리던 아이’에서 하루아침에 자리가 뒤바뀌었지요. 그런데, 곰곰이 따지고 보면, ‘주동자’라는 아이가 ‘피해자’가 된다 하더라도, 말썽거리는 그대로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동자로 동무를 괴롭히던 아이’를 둘러싼 다른 아이들도 ‘여린 동무를 괴롭히던 아이’이거든요. 게다가, ‘따돌림받는 사람’이 바뀌기만 했을 뿐, ‘따돌림이 벌어지는 학교 모습’은 그대로입니다.


  아마 학교에서는 ‘주동자’를 찾아내어 이 아이만 다그치면 될 일이라고 여길는지 모릅니다. 참말 학교나 사회에서는 ‘가장 나쁜 놈’ 하나를 콕 집어서 꾸짖거나 나무라면 된다고 여긴다고 할 만합니다. ‘주동자한테 이끌려서 동무를 괴롭히’는 짓을 했든, ‘주동자 못지않게 신나게 동무를 괴롭히’는 짓을 했든, ‘다른 아이들이 여린 동무를 괴롭히는 짓을 못 본 척’하며 고개를 돌렸든, 모두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따돌리는 짓’을 함께 한 셈인데, 이 대목을 돌아보면서 학교와 사회를 고치려고 마음을 기울이는 어른이 드뭅니다.



‘죽었으면, 엄마의 이런 얼굴도 못 봤겠지.’ (47쪽)


‘친구라는 게 뭘까. 사람은 언제부터 타인을 친구로 인식하는 걸까? 단둘이 이야기했을 때? 서로 연락처를 교환했을 때? 함께 사진을 찍었을 때? 쟤네는 알까? 친구라는 게 뭘까.’ (66쪽)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는 동안 무엇을 배울까요? 학교를 안 다니면 무엇을 못 배울까요? 아이들을 학교에 넣는 여느 어버이는 으레 ‘학교를 다녀야 사회를 배운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틀린 말이 아니라서, 아이들은 참으로 학교에서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을 똑똑히 배워요. 좋은 모습이든 궂은 모습이든 모두 배우지요.


  학교에서 마주하는 좋은 모습이라면, 마음이 맞는 동무하고 어울리는 기쁨을 배운다고 할 만합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날마다 꾸준히 배울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너른 운동장에서 뛰놀 수 있는 재미를 배울 수 있고, 과목에 따라 차근차근 짚으면서 이끄는 어른들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학교에서 마주하는 궂은 모습이라면, 점수에 따라서 줄을 세우는 모습을 학교에서 배우고, 주먹힘이나 돈에 따라서 동무를 괴롭히는 모습을 학교에서 배우며, 입시지옥 얼거리를 배울 뿐 아니라, 학력으로 계급이 갈리는 모습까지 학교에서 배웁니다.



“그 마음을 그대로 전해 주면 돼. 그럼 답이 돌아올 거야. 하지만, 이시다, 난 우정이라는 건, 말이나 이치, 그런 걸 초월한 곳에 있다고 봐.” (72∼73쪽)



  《목소리의 형태》에 나오는 사내 아이는 어릴 적에 제가 괴롭히던 아이를 찾아가려고 합니다. 이 아이는 손말(수화)을 혼자 배운 뒤에 찾아가려고 합니다. 철이 아주 없던 어린 날에는 아무 생각이 없이 하루를 빨리 넘기려는 마음이었다면, 철이 조금씩 들 무렵에는 조금씩 생각을 키우다가 손말을 익히고, 누구보다 떠오를 뿐 아니라 잊을 수 없던 옛 동무한테 찾아가요.


  그런데, 이 아이는 스스로 죽을 생각을 하면서 옛 동무한테 찾아갑니다. ‘소리를 못 듣는 동무’한테 털어놓고 싶은 말을 후련하게 털어낸 뒤, 어머니가 짊어져야 한 빚을 갚고는, 아쉬움 없이 목숨을 내려놓고 하늘나라로 갈 생각입니다.


  자, 그러면 이 아이는 ‘소리를 못 듣는 옛 동무’를 만나서 어떻게 될까요? 마음에 맺힌 응어리를 다 풀까요? 응어리를 푼 뒤에는 어떻게 할까요? 이 아이가 응어리를 푼 뒤에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하면, 이 아이를 지켜보던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 될까요?  



‘웃긴 뭘 웃는 거야, 내가 지금! 난 웃으면 안 되잖아! 나 자신이 싫다. 옛날 잘못을 용서 받고, 자기 편한 결과가 나오면 그걸로 그만이라는 건가? 그럴 리가! 잊으면 안 돼. 원래는 미소로 가득했어야 할 시간도. 어두운 기억도. 하지만 그 미소를 보고 있으면 언젠가 잊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187∼189쪽)



  우리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려면 먼저 ‘말’이 맞아야 합니다. 한국사람하고 일본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려면 둘 가운데 한 사람이 한국말이나 일본말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니면, 두 사람 모두 영어를 알아야 하겠지요.


  ‘소리를 못 듣는 사람’하고 이야기를 나누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소리를 못 듣는 사람’이 ‘소리를 듣는 사람’이 말할 적에 입술을 씰룩거리는 모습을 보며 ‘소리를 읽는다’면 될 테고, ‘소리를 듣는 사람’이 손말을 익혀도 될 테지요. 그러면, 어느 쪽으로 갈 적에 두 사람은 서로 사이좋게 마음을 열면서 이야기를 나눌 만할까요?


  아기를 낳는 어버이는 아기한테 맞추어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기한테 말을 가르쳐 줄 뿐 아니라, 아기가 옹알거리는 말을 모두 알아들으면서 아기가 즐겁고 넉넉하게 자랄 수 있는 보금자리를 가꾸려고 합니다. 힘이 여리거나 마음이 여리거나 아픈 이웃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리거나 아픈 사람더러 ‘안 여리거나 안 아픈 사람’한테 맞추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겠지요? 여리거나 아픈 사람한테 맞추거나 고개를 숙이거나 눈높이를 맞추어야 하겠지요?


  너하고 얘기하려고 배운 ‘새로운’ 말은 너와 나 사이를 여는 실마리입니다. 너하고 마음을 나누려고 배운 ‘새로운’ 말은 너와 나 사이에 피어나는 사랑입니다.


  ‘목소리’는 입으로만 내지 않습니다. 목소리는 마음으로도 냅니다. 아니, 목을 거쳐서 입으로 터지는 말소리는 맨 먼저 마음에서 우러나옵니다. 마음에서 참되고 착한 숨결로 흐르는 이야기일 때에, 비로소 목을 거치고 입으로 터져서 아름다운 말이 됩니다. 4348.8.12.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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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나라한 결혼생활 : 결혼편 적나라한 결혼생활 4
케라 에이코 지음, 심영은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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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34



‘함께 짓는 삶’이 뭔데?

― 적나라한 결혼생활, 결혼편

 케라 에이코 글·그림

 심영은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2015.3.6.



  ‘혼인’은 사회 제도입니다. 혼인을 하려면 혼인신고를 해야 하고, 혼인신고를 하면 두 집안 어버이가 서로 만나서 인사를 하면서, 앞으로 ‘한식구’가 된다고 합니다. 혼인이라고 하는 사회 제도를 따르지 않고 함께 산다면, 그저 ‘함께 산다’고 합니다. 함께 사는 사이는 친척도 친족도 아니며 한식구도 아닙니다. 다만, 매우 가까운 이웃이거나 동무입니다. 서로 피로 맺은 사이는 아니라 하지만, 마음으로 아끼고 보살피면서 지내는 사이가 됩니다.



“현재의 자신도 아직 잘 모르는데, 그 후의 문제를 들이대 봤자지! 장래 같은 거 생각할 수 없을 거 아냐? 분명.” (12쪽)

“결혼 같은 건 아직 먼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먼 일이란 언제? 몇 살쯤?” “서른 살이랄지?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지금은 일도 막 시작했고, 그럴 때가 아니야.” “왜? 결혼해도 일은 할 수 있잖아!” (17쪽)



  케라 에이코 님 만화책 《적나라한 결혼생활, 결혼편》(21세기북스,2015)을 읽습니다. 책이름은 ‘적나라한’이라고 하는데, 감추지 않고 다 밝힌다고 하는데, 무엇을 안 감추고 다 밝힐까요? 결혼생활이란 무엇일까요? 두 집안이 만나서 함께 이루는 친족살이가 되는 모습이 결혼생활일까요?


  사랑을 하는 두 사람이라면, 사회 제도로 혼인신고를 하든 안 하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랑을 하는 두 사람이라면, 한국사람하고 일본사람이 한집 사람이 되어도 아름답습니다. 사랑을 하는 두 사람이라면, 나라를 따지지 않을 뿐 아니라, 나이도 성별도 따지지 않습니다. 오직 마음으로 흐르는 기쁜 넋을 바라봅니다.



“나한텐 좋은 점이 없지 않아?” “무슨 말이야? 이런 귀여운 아이를 독점할 수 있잖아.” (20∼21쪽)

‘가까워진 계기가 ‘만화 동아리’? 뭔가 얼간이 같은 이 두 사람!’ (63쪽)



  만화책 《적나라한 결혼생활, 결혼편》은 ‘사회 제도에 맞추어 혼인신고를 하고 예식을 올리려고 하는 동안’에 어떤 일을 겪고, 이러한 일을 겪는 동안 어떠한 마음이 되는가를 찬찬히 보여줍니다. 철이 없거나 생각이 깊지 않던 나이에 혼인신고와 예식을 함께 치르면서 한집살이를 하려고 하는 마음이나 몸짓이 무엇이라고 하는가 하는 대목을 가만히 보여줍니다.


  ‘까놓고(적나라하게)’ 말하자면, 혼인하기 앞서나 혼인하고 나서나 그리 달라질 일이 없습니다. 게다가, 이 만화책을 그린 분은 ‘살섞기(섹스)’를 거의 안 하거나 아예 안 하는 부부 사이입니다. 두 사람은 그저 서로 아끼고 좋아하면서 스스럼없이 어우러지는 한집살이를 생각할 뿐입니다. 아양을 떨거나 살내음을 바라는 한집살이가 아니라, 마음이 차분하게 맞는 두 사람이 새롭게 짓는 하루를 누리고 싶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요즈막 젊은이들 눈높이나 삶하고는 많이 안 맞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살섞기도 거의 안 하거나 아예 안 할 뿐 아니라, 서로 손을 잡고 다니는 일조차 드물면서 ‘혼인’을 하며 지내는 이야기가 흐르는 만화이니까요.



“이러나 저러나 어쨌든 전부 부를 수 없는 건 사실이네.” “친구에 우선순위라니. 적기 어렵다. 또, 그렇게 친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내가 초대를 받아서 이쪽도 부르지 않으면 미안한 사람도 있네.” (110쪽)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을 할 일입니다. 사랑은 사랑일 뿐, 살섞기가 아닙니다. 살을 섞거나 입을 맞추기에 ‘사랑’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살을 섞으면 살섞기이고, 입을 맞추면 입맞춤입니다. 서로 껴안으면 껴안기입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도 안 아끼면서 살만 자주 섞는다고 해서 사랑이라 하지 않습니다. 마음으로는 조금도 안 헤아리면서 손만 잘 잡는다고 해서 사랑이라 하지 않습니다.


  사랑도 혼인도, 살내음에 앞서 마음결을 느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삶도 생각도, 얼굴이나 몸매나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씨를 바라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저기 저기, 생선 별로지 않아? 역시 한 등급 위의 코스로 해둘 걸 그랬어.” “엣? 그렇구나.” ‘싫다. 그렇구나. 모두들 먹고 있잖아. 아아, 저 사람 지금 막 먹으려 한다. 아, 씹고 있어. 씹고 있어. 죄송하네.’ (161∼162쪽)



  함께 짓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함께 짓는 삶에서 우러나는 기쁨이란 무엇일까요? 나는 너를 왜 좋아하고, 너는 나를 왜 좋아할까요? 한집에서 쉰 해나 일흔 해를 함께 살 수 있을 만한 사이라고 한다면, 둘은 어떤 마음이 되어야 할까요? 날마다 늘 얼굴을 마주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울 만한 사이라고 한다면, 둘은 어떤 눈길이 되어 서로서로 바라보아야 할까요?


  만화책 《적나라한 결혼생활, 결혼편》은 대단한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보여주지 않습니다. 참말로 철이 없거나 바보스럽기까지 한 가시내와 사내가 어떻게 혼인신고를 하고 예식을 치르면서 한집살림을 꾸리는 데까지 나아갔느냐 하는 대목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겉모습이나 이름값이나 돈이 이끌려서 한집살이를 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바로 이 사람’이면 ‘앞으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숨을 거두는 날까지 늘 웃고 노래하면서 살 수 있겠네’ 하는 생각이 들면서 기쁘게 한집살이를 한다는 이야기가 흐르는 만화책입니다.


  사랑은 국경을 따지지 않는다고 하듯이, 혼인도 한집살이도 국경뿐 아니라 ‘눈에 보이는 온갖 허울’을 따질 일이 없습니다. 일류 대학교를 나왔기에 함께 살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돈을 잘 벌거나 얼굴이 멋지게 생겨서 함께 살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착하고 참다우면서 슬기로운 사람이로구나 하고 느낄 때에 비로소 함께 살 만한 사람이라고 맞아들일 수 있습니다. 4348.8.10.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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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연금술사 21
아라카와 히로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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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43



내 마음은 ‘그림자’인가 ‘빛’인가

― 강철의 연금술사 21

 아라카와 히로무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9.2.25.



  아라카와 히로무 님 만화책 《강철의 연금술사》(학산문화사,2009) 스물한째 권을 읽으며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저마다 제 삶을 그림자로 보는지, 아니면 빛으로 보는지 가만히 헤아릴 노릇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 삶을 그림자로 본다면, 언제나 다른 사람 꽁무니를 좇으면서 남이 시키는 일을 하겠지요. 내 삶을 빛으로 본다면, 언제나 스스로 모든 일을 지으면서 즐겁게 나아가겠지요.


  다만, 그림자이든 빛이든 좋거나 나쁘지 않습니다. 빛이기에 좋거나 그림자이기에 나쁘지 않습니다. 나무에 드리우는 그림자는 시원한 그늘이 되어 한여름 더위를 식혀 줍니다. 풀포기에 맺히는 그림자도 싱그러운 그늘이 되어 흙이 메마르지 않도록 보살피고, 온갖 풀벌레가 더위에도 말라죽지 않도록 돌봐 줘요.



“도망가라니! 자기 식구만 빼돌리면 어쩌라고! 넌 이 나라가 박살나는 걸 못 막니!” “막을 거야! 막긴 하는데 만에 하나의 경우란 게 있잖아!” “만에 하나고 억에 하나고도 없어! 놈들의 야망을 저지하고 이 나라를 지켜! 그리고 에드도 알도 원래의 몸을 되찾아서 돌아와!” (21∼22쪽)

“네가 찾던 현자의 돌이다. 쓸래?” “미쳤어? 상관없는 사람의 생명인데. 자기 실수 때문에 몸을 잃은 우리가 어떻게 써!” “그런 말을 할 줄 아는 아이라 다행이다.” (71쪽)



  그림자나 그늘이 ‘어두움’이 아닙니다. 가슴속에 꿈이 없는 모습이 어두움입니다. 해처럼 환하게 밝아야 ‘빛’이 아닙니다. 가슴속에 꿈이 있는 모습이 빛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어디에서라도 삶을 즐겁게 짓습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돈이 넉넉하거나 살림살이가 많아도 삶이 즐겁지 않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날마다 새로운 하루로 나아갑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날마다 쳇바퀴를 돌듯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맙니다.



“‘죽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돈을 갖고 싶다’, ‘여자를 갖고 싶다’, ‘세계를 지키고 싶다’ 그건 모두 욕심. 즉 ‘소망’이야. 모두 본심에서 우러나는 감정이라는 건 마찬가지니까. 내가 보기에 욕심에는 귀천이 없다고. ‘욕심’에 고상한 척 등급을 매기니 인간은 골치 아프단 말이지.” (24쪽)

“실패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 그렇다면 제군이 지켜야 할 명령은 단 하나. 죽지 마라! 이상이다!” (145쪽)



  만화책 《강철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두 아이는 늘 꿈을 꿉니다. 너무 철이 없던 때에 저지른 잘못을 짐으로 떠안기는 했으나, 짐을 떠안았어도 늘 꿈을 되새깁니다. 가슴속에 꿈을 품었기에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남고 말겠다’는 생각을 하며, ‘살면서 활짝 웃겠다’는 생각으로 나아갑니다.


  아마 이 아이들한테 꿈이 없다면 ‘뜻없는 학살’이나 ‘생각없는 살인’을 저지르는 여느 군인하고 똑같겠지요. 이 아이들한테 꿈이 없으면 ‘수많은 사람 목숨을 빼앗아서 빚은 돌’을 함부로 쓰려고 하겠지요.



“반드시 큰 그림자 부근에 있었지? 숲의 그림자 속에 본체가 있어.” “본체? 갑옷이 본체가 아니라?” “저건 아니야. 외출용 ‘그릇’이 있지.” “어떤 그릇이지?” (109쪽)

“위험했네, 아저씨. 그나저나 이런 어린애가 호문쿨루스였다니. 고스란히 속아넘어갔잖아, 셀림.” “외모 같은 건 기호일 뿐이랍니다. 조그만 연금술사, 형!” (161쪽)



  우리는 빛으로 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어두움으로 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꿈으로 갑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갑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빛이나 어두움이 아닙니다. 우리는 삶을 빛이나 어두움으로 가를 까닭이 없습니다. 내가 품는 꿈이 바로 내가 갈 길이고, 너와 내가 나눌 사랑이 바로 우리가 나아갈 삶입니다.


  꿈과 사랑을 품기에 우리는 서로 어깨동무를 하는 착한 사람입니다. 꿈과 사랑으로 어깨동무하면서 삶을 짓기에 우리는 서로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아이도 어른도 모두 가슴속에 꿈을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린이도 할머니도 언제나 꿈을 키울 수 있어야 합니다. 꿈이 있기에 삶은 뜻이 있고, 사랑이 있기에 삶은 즐거움이 피어납니다. 4348.8.9.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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