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당포 시노부의 보석상자 3
니노미야 토모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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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96



돌을 보는 마음하고 보석을 보는 눈

― 전당포 시노부의 보석상자 3

 니노미야 토모코 글·그림

 이지혜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7.4.15. 5000원



  아이들은 돌을 주워서 놉니다. 아이들 손에 보석을 쥐어 주더라도 아이들은 이 보석을 돈으로 따지지 않습니다. 수많은 소꿉 가운데 하나로 여길 뿐입니다. 보석을 돈으로 따지는 눈이란 사회에 길든 어른들 눈입니다. 예쁘기에 걸친다든지 즐겁게 만지면 좋을 테지만, 예쁘거나 즐겁다는 마음보다는 돈이라는 값으로 따져서 높으니까 거머쥐려고 할 적에는 늘 얄궂게 달라지는 보석이지 싶습니다.


  이러다 보니 ‘비싼’ 보석하고 ‘싼’ 보석이 갈리고 말아요. 마음에 드는 보석이 아닌 ‘더 비싸면 더 좋은’ 보석인 줄 잘못 알고 말지요.



“그녀에게도 이걸 보여주고 싶었는데.” “보여주면 되잖아?” “응. 하지만, 그녀가 좋아하는 건 ‘보석’이지, ‘광물’이 아니거든.” (5쪽)


“난 보석을 좋아해. 그러니까 내가 착용하는 건 내가 고르고 싶어. 그리고 그 비싼 명품 주얼리는 누구 돈으로 샀을까? 물론 너희 집이 부자인 건 알지만 넌 알바도 안 하잖아.” (7쪽)



  니노미야 토모코 님 만화책 《전당포 시노부의 보석상자》(대원씨아이,2017) 셋째 권은 ‘돌·보석’ 사이에서 오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리고 돌이랑 보석 사이를 오가면서 보석을 마주하는 마음도 사람마다 다르다는 대목을 다룹니다.


  곰곰이 따지면 ‘돌’이 ‘보석’으로 이름을 바꾸는데, 돌이든 보석이든 그저 ‘소꿉’일 수 있어요. 보석뿐 아니라 돌도 ‘돈’으로 따질 수 있어요. 돌이거나 보석이거나 ‘살림’으로 삼을 수 있어요. 때로는 ‘선물’로 바라볼 수 있고, 때로는 ‘즐길거리’나 ‘이야깃거리’로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 남자는 남친이 아니야. 그냥 보석 가게 외판원이지.” “뭐?” “그리고 그 강가에 떨어진 돌멩이의 매력을 타카코 씨도 알아줬으면 하는 게 아니었어?” (26쪽)


“이건 에메랄드 원석. 전 늘 가게에서 근사한 보석만 보니까, 이렇게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요.” (28쪽)



  빵 한 점이나 밥 한 그릇을 어떻게 바라볼 만할까요. ‘먹을거리’로 볼 수 있고, ‘끼니’로 볼 수 있습니다. 하루에 두끼나 세끼 채우는 먹을거리인 빵이나 밥일 수 있습니다만, 때로는 ‘영양소’만으로 볼 수 있어요. 또 누구는 이를 ‘선물처럼 고맙게 찾아든다’고 볼 수 있으며, ‘먹기 싫은데 귀찮아’ 하고 여길 수 있어요.


  책 한 권이 누구한테는 아름다운 길벗이나 이슬떨이가 될 수 있습니다. 책 한 권이 누구한테는 불쏘시개일 수 있고, 냄비 받침일 수 있습니다. 누구한테는 지겨운 짐이나 숙제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구한테는 심심풀이가 되고, 누구한테는 가벼운 일거리가 됩니다. 누구한테는 돈벌이가 되고, 누구한테는 아무것이 아닐 수 있어요.



‘이 사람이 평범한 센스를 기뻐할까? 하지만 평범하지 않다는 건 뭐지?’ (62쪽)


“좋은 돌인데 제대로 평가도 안 하고. 다른 것들도 그래. 낡았네, 어쩌네 그렇게 안 좋은 말을 들을 물건이 아니라고!” (105쪽)



  바라보는 마음에 따라 돌도 보석도 값어치가 바뀝니다. 바라보려는 눈길에 맞추어 돌이든 보석이든 얼마든지 즐거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얼마든지 지겹거나 고달플 수 있습니다. 《전당포 시노부의 보석상자》에 나오는 가시내는 돌이든 보석이든 숱한 물건이든, 이러한 것에 깃드는 ‘우리 마음’을 읽으려 하고 느끼려 하며 헤아리려 합니다. 이와 달리, 이 만화책에 나오는 사내는 아직 ‘우리 마음’이 무엇인가를 읽으려 하지 않고, 무엇보다 사내 스스로 ‘내 마음’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지켜보지 못합니다. 두 마음은 머잖아 슬기로우면서 아름답게 만날 수 있겠지요? 2017.3.30.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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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이야기 1
오제 아키라 지음, 이기진 옮김 / 길찾기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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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을살림'입니까, '막삽질'입니까?

[책으로 읽는 대선주자] 막개발 멈출 공약이 있나요?

 

 오제 아키라 글·그림, 길찾기 펴냄



얼핏 잠이 들려고 하다가 찍찍 하고 제법 크게 우짖는 새소리를 듣고 번쩍 눈을 뜹니다. 아, 새로구나, 새가 한 마리 나무에 앉아서 놀다가 가는구나. 이 새는 무엇을 생각하면서 나무에 앉았을까요. 이 새는 어떤 먹이를 찾아 우리 집 둘레 나무에 앉았을까요.


나무 한 그루는 천천히 자랍니다. 새가 앉았다가 가는 나무 한 그루는 천천히 자랍니다. 새 한 마리가 앉을 만한 나무라 한다면, 새 한 마리가 어른으로 큰 뒤 새끼를 낳아 새로서는 기나긴 삶을 모두 누리고 흙으로 돌아갈 만한 나날을 살았지 싶어요. 새 한 마리는 나무 한 그루가 갓 싹이 돋고 줄기가 오를 즈음부터 지켜보았을 테고, 흙을 돌아갈 무렵 나무 한 그루가 우람히 자란 모습을 보고는 빙그레 웃음을 지을는지 모릅니다.


새는 나무를 바라보며, 이만큼 잘 컸구나 하고 생각하겠지요. 나무는 새를 바라보며, 네 새끼들이 내 가지에 앉아서 쉬겠구나 하고 생각하겠지요. 우람하게 선 나무에 처음으로 새가 찾아와서 내려앉을 때부터 새와 나무 사이에 이야기 하나 태어납니다.


“아버지 말이야. 전에는 공항이 지역발전에 도움될 거라고, 도미사토 마을의 공항 반대 서명을 거절했잖아.” “그, 그거야.” “남의 땅이라면 찬성해도 우리 땅엔 안 된다, 라니. 좀 그렇잖아?” (1권 59쪽)


“헤헤헤, 찬성도 반대도 아니라고요? 바보같이!” “겐지.” “태평스럽게 그런 말 하고 있을 때, 불도저가 와서 학교를 싹 쓸어버릴걸요! 어때요, 선생님. 그렇게 돼도 찬성도 반대도 아니라고 할 거예요? 이런 학교 부서져 버리라지!” (1권 154∼155쪽)


“뎃페이. 도모노 지사는 말이다, 여기를 공항으로 만들어도 좋겠습니까, 라고 우리에게 물어 보러 오는 게 아니여. 이미 결정된 것이니까 이해해라, 협력해라, 땅을 팔아라, 이거여.” (1권160쪽)


“히로시. 땅은 말이여, 원래 그 누구의 것도 아니란다. 이 땅은 우리의 것도 공단 것도 아니여. 옛날부터 그저 여기에 있었을 뿐. 그것을 인간이 제멋대로 선을 긋고 제것이라고 우기기 시작한 거여. 우리도 마찬가지여. 하지만 말이다, 누구의 것도 아닌 땅을 일구고 갈고 씨앗을 뿌려서 비옥한 흙으로 만든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여.” (1권 184쪽)


나무가 있는 곳에서 사람이 살아갑니다. 나무가 없는 곳에서도 사람이 살아갈는지 모릅니다만, 사람은 으레 나무가 있는 곳에서 보금자리를 가꾸려 합니다. 섬에서든 뭍에서든, 이 나라에서든 저 나라에서든, 나무가 있을 때에 비로소 집이 섭니다. 그리고, 집이 한 채 선 뒤에 다른 집이 두 채 석 채 찬찬히 섭니다. 다른 집이 하나둘 새롭게 서면 어느새 마을이 섭니다. 서로 돕고 아끼면서 어깨동무를 하는 마을입니다. 한집 사람으로 지내는 마을입니다. 한마음이 되고 한몸이 되는 마을입니다. 기쁠 때에 함께 웃는 마을입니다. 슬플 때에 함께 우는 마을입니다. 서로 아끼면서 즐거운 마을입니다. 같이 도우면서 사랑스러운 마을입니다.


이곳에 마을 하나가 서듯이 저곳에 마을 하나가 섭니다. 곳곳에 마을이 섭니다. 마을은 서로 가까운 자리에 서기도 하지만, 꽤 떨어진 자리에 서기도 합니다. 그러나 똑같은 마을은 없기 때문에, 마을마다 말이 다릅니다. 다만 말이 아주 다르지는 않아요. 웬만큼 다릅니다. 이럭저럭 다르지요. 마을과 마을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만, 스스로 제 마을에서 쓰는 말로 이야기를 해요.


우리 마을에서 쓰는 말이기에 더 낫거나 훌륭하지 않습니다. 이웃에서 지내는 마을더러 우리 마을에서 쓰는 말로 바꾸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웃에 있는 마을도 우리 마을더러 우리 마을 말을 버리고는 저희 마을 말을 쓰라 할 수 없습니다. 다 다른 마을은 저마다 다른 마을빛을 건사하면서 마을살이를 이룹니다. 다 다른 마을은 서로서로 아름답게 살림을 꾸립니다.


“도깨비가 우리 편이면 든든한데!” “도깨비뿐만이 아냐. 숲 속에 사는 원령들과 나무와 물의 정령들, 부엉이, 하늘다람쥐, 뱀들도 모두 우리 편이다.” (2권 72∼73쪽)


일본은 그 전쟁(베트남전쟁)에 가담하고 있어. 이 나라도 가해자란 거지. 그러니까, 이 나라에 태어나서 살고 있는 우리도, 베트남의 어린이들을 죽인 가해자라고 할 수 있을지 몰라. 이 전쟁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일본인 모두가 B52에 폭탄을 채워 넣고 있는 건지도.” (2권 169∼170쪽)


“공항은 어른들 문제다! 애들은 공부나 해라! 그런 소리 이제 지긋지긋해요! 하지만, 공항이 생기면 사라지는 건 우리 집이라고요! 우리 마을이라고! 우리 학교라고요!” (2권 39쪽)


“근데, 우리 마을, 우리 집, 우리 밭이 사라진다고, 빼앗겨 버린다고 생각하니, 지금까지 대수롭지 않던 우리 보리밭이랑 땅콩밭들이 굉장히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 그렇게 싫어했던 밭일도 더는 싫지 않고. 이 싸움이 논밭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면, 그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비료를 주고 잘 키워서 수확하고, 하는 것이 가장 커다란 반대운동이 아닐까 생각했어. 땅에 대한 애착이나 그런 건 아직 모르겠지만, 내가 지켜야 할 것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면 이 싸움은 의미가 없지.” (2권 130∼131쪽)


오제 아키라 님이 빚은 만화책 《우리 마을 이야기》 일곱 권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만화책을 여러 차례 읽었고 이웃님한테 이 만화책을 읽어 보시라고 곧잘 이야기합니다. 군수님이나 시장님도 읽어 보기를 바라고, 여느 공무원도 읽어 보기를 바라며, 대통령 후보로 나오는 이들도 읽어 보기를 바랍니다.


이 만화책에는 일본 산리즈카 시골마을 사람들이 일본 정부가 밀어붙이려 하던 나리타공항 때문에 얼마나 아프고 괴로웠으며 힘들었는가 하는 이야기가 깃듭니다. 오늘날 우리는 일본 나리타공항이 그냥 그렇게 덩그러니 있는 줄 여기기 쉽지만, 아직도 나리타공항 옆에 있는 산리즈카마을에서는 ‘공항한테 오랜 터와 땅과 보금자리를 빼앗길 수 없다’면서 맞서는 시골지기가 있다고 합니다.


가만히 돌아봅니다. 저는 산리즈카 사람들처럼 공권력 때문에 두들겨맞지 않으니, 그럭저럭 지낼 만할까요? 하루아침에 난데없이 땅도 집도 모두 빼앗긴 채 다른 고장으로 쫓겨나야 하는 일이 없으니, 이냥저냥 살 만할까요?

우리 식구가 지내는 전남 고흥을 되새겨 봅니다. 고흥 군수와 군청 공무원은 포스코와 손을 맞잡고 엄청나게 큰 화력발전소를 끌어들이려고 했습니다. 이 무시무시한 화력발전소는 마을사람 힘으로 막아냈습니다만, 예전에는 엄청나게 큰 핵발전소를 고흥에 끌어들이려고 했어요. 지난해에는 폐기물발전소를 고흥에 끌어들이려고 했지요. 이 모두 마을사람이 막아냈습니다.


그런데 고흥군은 다도해 국립공원 바닷가와 맞닿은 숲을 광주시 교육청에 강제수용을 해서 팔았어요. 여러 해 된 일입니다. 이러고는 갑작스레 청소년수련원 공사를 밀어붙였지요. 아름드리 숲을 하루아침에 밀어 없앴습니다. 국립공원이던 곳을 조용히 풀더니 하루아침에 강제수용으로 팔았을 뿐 아니라, 숲도 바다도 몽땅 어지럽혔어요. 아름다운 바다라고 해서 해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전남 고흥 발포 바닷가를 찾아왔으나, 이제 발포 바닷가에 가는 발길은 뚝 끊어집니다. 청소년수련원 건물을 와장창 지으면서 숲과 바다를 모조리 어지럽히니, 사람들 발길이 뚝 끊어져요. 다른 고장 사람들뿐 아니라, 고흥사람인 저희조차도 아이들하고 발포 바닷가에 안 갑니다. 무시무시한 짐차가 수없이 오가는 길이 안 좋기도 하고, 바닷물이 공사장 때문에 더러워져요. 이런 곳에 갈 까닭은 없습니다.


일본 산리즈카에서 일본 정부가 ‘덜 민주스럽게’ 몰아붙였으면, 나리타공항은 짠하고 곧장 태어났으리라 생각합니다. 한국 영종도와 용유도에서처럼 한국 정부가 ‘우악스레 강제수용을 해서 밀어붙’이면, 척하고 공항 하나 쉬 들어섭니다. 한국에서 어떤 사람이 얼마나 ‘인천공항 반대’를 외쳤을까요. 예쁜 갯벌을 없애고 예쁜 섬을 밀며 예쁜 소금밭을 망가뜨리면서 공항을 지었을 뿐 아니라, 용유와 영종에 깃든 시골집을 모조리 없애고 아파트로 바꾸었어요.


“정부가 우리를 대등하게 보지 않는 것에는 우리들에게도 책임이 있어. 농업 보호의 미명 하에 정권은 농민들을 꼭두각시로 삼아 왔다. 농민들도 그걸 받아들이고 오랜 시간 의지해 왔던 거지.” “윗대가리들이 지들 마음대로 우리를 죽이고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여. 여태 우리가 알아서 기었잖여.” “여기까지다! 권력자들의 그런 생각을 부숴 버리는 건 우리가 정권에 의지하는 모습을 버리고 자립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다. 그건 어쩌면 공항을 저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일지도 몰라.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투쟁하는 농민이다!” (3권 85∼86쪽)


‘우리 마을에 공항이 들어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6년 동안 늘 자상하고 따뜻하게 우리를 대해 주었던 선생님은, 마지막까지 결국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선생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길 뿐이었다. 문제의 본질에서 애써 눈을 돌린 채, 그저 동정을 보낼 뿐이었다 …… 우리가 정말로 가르쳐 줬으면 했던 것, 정말로 배우고 싶었던 것, 우리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회 문제를 다뤄 주는 것을 끈질기게 피하기만 했던 그 학교에, 나는 그날, 작별을 고했다.’ (3권 75, 78쪽)


한국이라는 나라에 ‘민주’가 있을까요. 한국에서는 ‘민주’가 어느 만큼 힘을 낼까요. 한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민주’에 얼마나 눈길을 둘 겨를이 있을까요. 저마다 제 코가 석 자는 아닐까요.


집이 있고 마을이 있은 뒤에 고을이 있습니다. 비슷한 마을이 곳곳에 모여 고을을 이룹니다. 고을로 아우르는 마을은 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서로 어깨를 겯을 만큼 살갑거나 가까운 삶입니다. 저마다 다른 삶터에 맞추어 저마다 다르게 삶을 가꿉니다.


고을이 있으면, 고을을 아울러 고장이 있습니다. 고장과 고장은 사뭇 다르다고 할 만합니다. 이를테면 경상도와 강원도는 사뭇 다르고, 충청도와 전라도는 사뭇 다릅니다. 꽤 높다란 멧줄기가 고장과 고장을 가릅니다. 퍽 깊고 넓은 냇물이 고장과 고장을 갈라요.


우리 마을과 우리 고을로도 넉넉하면서 즐겁기에 굳이 이웃 고장으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이웃에서도 괜히 우리 고장으로 넘어오지 않습니다. 서로서로 제자리를 지킵니다. 서로서로 제길을 알뜰살뜰 가꾸는 살림을 짓습니다.

바다가 너른 고장이라서 숲이 너른 고장보다 아름답지 않습니다. 멧골이 깊은 고장이라서 들이 넓은 고장보다 아름답지 않습니다. 어느 고장이든 저마다 아름답습니다. 겨울이 더 춥든 여름이 더 덥든, 고장마다 사랑스러운 삶이요 나날입니다. 굳이 여러 고장을 하나로 뭉뚱그려야 하지 않아요.


“(조건파는) 왜 일부러 집을 부수고 가는 거야?” “나도 잘 모르는데, 자기 집을 부수고 가는 게 조건이래. 여기에서 더 이상 사람이 살지 못한다는 증거로.” (4권 20쪽)


1969년 9월 9일. 426㎡나 되는 면적으로 공항 용지의 40%를 차지하는 고료목장의 나무 10만 그루에 대한 벌목이 시작됐다. 그것은, 수령 200년의 고목을 매일 천 그루씩 베어내는 작업이었다. (4권 124쪽)


“시끄러운 공항 문제를 축제 분위기로 덮어버리려는 속셈이야.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없는 치들이 분위기에 휩쓸리겠지.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들떠서 웃고 춤추고 노는 사이에, 나라는 개차반이 되는 거다.” (4권 44쪽)


불도저로 파헤쳐진 논밭과 삼림은 이미 공단이 매수한 땅이었지만, 그것은 우리들의 집과 논밭, 그리고 우리 마을과 이어져 있었다. 거칠게 파헤쳐진 붉은 땅을 보면, 우리의 땅이 투영되어 보였다. 우리들이 엄연히 여기 살고 있는데도, 이 나라에서 산리즈카는 이미 ‘공항 용지’일 뿐이었다. (4권 162쪽)


스스로 즐겁게 살림을 가꾸는 사람은 ‘우리 보금자리’에서 모든 삶을 이룹니다. 먼저 밥을 짓습니다. 남한테 기대지 않고 스스로 밥을 지어서 이룹니다. 다음으로 옷을 짓습니다. 남한테서 얻으려 하지 않고 스스로 옷을 지어서 이룹니다. 그리고 집을 짓습니다. 집을 지을 적에는 이웃 손길을 받을 수 있으나, 혼자서도 너끈히 집을 짓습니다. 다만 혼자 집을 지을 때에는 퍽 오래 걸리지요. 그러나 오래 걸린다는 생각을 할 일이 없어요. 스스로 날마다 새롭게 이루는 삶이니, 집을 천천히 지으면서 즐겁습니다. 조금씩 마무리를 짓는 모습을 살피면서 기쁩니다.

스스로 즐겁게 살림을 가꾸는 사람이 ‘우리 보금자리’를 이루는 결대로 하나씩 모여 이루는 마을입니다. 한 집만 있어도 이 한 집은 스스로 삶을 이룰 뿐 아니라, 스스로 삶을 이루는 집들이 모인 마을이니, 마을은 언제나 스스로 삶을 이루어요.


모자랄 일이 없고 아쉬울 일이 없습니다. 집집마다 오순도순 지냅니다. 집집마다 사랑스러우면서 따사로운 노래가 흐릅니다. 노래가 흐르고 이야기가 태어나는 집이 모인 마을이니, 마을살이란 ‘온누리’라고 할 만합니다. 모든 것을 가장 넉넉하고 즐겁게 이룬 삶이니, 언제나 사랑을 길어올립니다.


그러니까 ‘보금자리·집’이라고 할 적에는, 스스로 모든 삶을 이루는 살림을 가꾼다는 뜻입니다. 나이가 찬 사람이 제금을 나서 지내는 터가 집이 아닙니다. 아파트 한 채나 다세대주택 한 자리가 집이 아닙니다. 모든 삶을 이룰 수 있는 데가 집입니다. 커다란 장비를 써서 수만이나 수십만 채 집을 똑같이 찍어내듯이 만들어야 집이 아닙니다. 집은 나라에서 지어서 줄 수 없습니다. 집은 장사꾼이 지어서 팔 수 없습니다. 나라가 짓거나 장사꾼이 파는 것은 언제나 ‘부동산’이나 ‘재산’입니다.


“교장 선생님, 당신네 학교는 방음교사의 건설이 예정돼 있지요?” “소음으로부터 아동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그게 어째서 아이들을 지키는 일입니까? 왜 교육환경을 파괴하는 공항 건설에 반대하려고 하지 않는 겁니까? 바깥 공기가 차단된 방음교사에 아이들을 가둬 놓는 것은 차별이 아니란 말입니까? 공항 건설이 진행되면 등교길이 끊겨서 아이들은 먼 길을 돌아서 다니거나 전학을 해야 해요! 이건 차별 당하지 않는 평등한 교육입니까?” (5권 82∼83쪽)


“똑똑히 봐 두는 거여, 뎃페이.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죄다.” “할아버지.” “그리고 잘 생각해 보는 겨. 네 할애비랑 아버지, 어머니가 여기서 살아온 세월을. 흉작에 울고 풍작에 웃으면서 조금 조금씩 쌓아 온 이 마을의 역사를. 그것들이 죄다, 이 땅과 함께 콘크리트 밑으로 묻혀버릴지도 모르는 지금 이 사태를 말이여.” (5권 21∼22쪽)


“선생님은 기동대를 본 적이 있나요?” “응? 아니.” “기동대한테 맞거나 발로 차이거나 체포되거나 해 본 적 있어요? 우리 부모님과 형처럼요. 지금 저의 의무는 투쟁에 참가하는 거예요. 전 산리즈카 소년행동대장이니까요. 전 가 보겠습니다!” (5권 26∼27쪽)


“공항 문제는 정치도 사상도 아니오. 우리들의 생명에 관한 문젭니다. 친권 남용이라고요? 그거 당연한 거 아닙니까? 농가가 바쁠 때는 어린 애들에게도 하루 종일 일을 시켜요! 아이들을 투쟁에 끌어들이지 말라고? 강도가 집을 빼앗아 가려고 하는 마당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부모가 어디 있답디까? 그렇게 우리 자식들이 걱정된다면…….” (5권 84∼85쪽)


“그래요. 아무리 많은 사람이 편리해진다고 해도, 그것을 위해 단 한 사람이라도 불행해진다면, 공항 같은 건, 만들면 안 돼요. 누군가가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 그건 공항을 만드는 인간들이 지어낸 말이에요.” (5권 212∼213쪽)


경상도 밀양에서 송전탑 때문에 벌어진 일을 돌아보면, 한국에는 민주도 평화도 평등도 없구나 싶은 모습을 잘 읽을 만합니다. 그런데 밀양 송전탑에 앞서, ‘핵발전소’를 보면, 또 수많은 막개발을 보면, 또 4대강을 망가뜨린 막삽질을 보면 이 나라가 얼마나 반민주에 반평화 반평등인가를 알 만합니다.


핵발전소 하나만 놓고 생각해 봐요. 이런 시설을 처음 지을 적에 한국 정부는 어떻게 했을까요. 핵발전소를 처음 지을 적에 신문·방송은 무엇을 했을까요. 핵발전소를 처음 지을 적에 글쟁이와 교사와 교수 같은 이들은 무슨 말을 했을까요. 핵발전소를 처음 지을 적에 학교는 무엇을 했을까요.


모든 언론과 학교는 중앙정부 권력을 등에 업고 ‘핵발전소는 깨끗하고 안전하며 돈이 적게 드는 전기’라고 떠벌였습니다. 가장 비싸며 가장 무시무시하고 가장 끔찍한 전기인 줄 가르친 학교는 없었다고 느낍니다. 핵발전소가 어떤 곳인지 낱낱이 밝히거나 알린 신문이나 방송은 없었다고 느낍니다.


커다란 발전소를 짓고 송전탑을 박을 돈이라면, 집집마다 ‘자가 발전’을 하는 시설을 갖추고도 돈이 아주 많이 남습니다. 집집마다 전기를 스스로 빚어서 쓰도록 시설을 갖추는 데에 들이는 돈은 아주 적습니다. 집집마다 전기를 스스로 빚어서 쓰면 송전탑을 세울 까닭마저 없어요. 대형발전소가 없어도 될 뿐 아니라, 이 나라를 아주 깨끗하게 가꾸는 길을 열지요.


게다가 쓰레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흙도 바람도 물도 더럽히지 않습니다. 공장이나 아파트나 큰 건물에서도 전기를 스스로 빚어서 쓰도록 하면 됩니다. 못할 일이란 없습니다. 집집마다 빚어서 쓰는 전기가 남으면 이를 모아서 큰 건물이나 공장이나 아파트에 보낼 수 있어요. 이런 장치는 어렵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중앙정부는 이런 일을 안 했어요. 아직도 안 하며 앞으로도 안 할 듯합니다. 오늘날 전기는 ‘권력’이기 때문입니다. 집집마다 스스로 전기를 만들어서 쓰면 ‘권력 통제’가 안 되어요. 커다란 발전소를 세워서 중앙정부가 ‘통제’를 해야 사람들을 마구 휘어잡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하면 전기만 뚝 끊어도 돼요. 도시에서는 전기와 가스와 물을 뚝 끊으면 아마 도시사람 모두 며칠 만에 모조리 죽을 수 있어요.


“아빠가 말했어요. 땅을 지키는 것은 바로 저를 지키는 것이기도 하다고. 나는 계속 아빠하고 함께 싸워 나갈 거예요! 공항에 비교하면 우리 밭 같은 건 상대가 안 되겠지만, 하지만 그것이 나를 지금까지 키워 준 걸요. 엄마 아빠의 소박한 농사꾼의 마음이 거대한 공항이라는 괴물을 이길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6권 7∼8쪽)


“우리 학교는 도쿄의 한가운데 있어서 나무나 풀도 없고 하루 종일 자동차 소음과 배기가스 냄새에 휩싸여 있어요. 공항이 만들어지면 여러분의 학교도 이렇게 되겠지요. 저는 산리즈카의 어린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어요.” (6권 13쪽)


“근데 말야, 도쿄에서는 선생님이 공항에 대해 얘기해 주신다는데, 아이들도 우리에 대해 잘 알고 있는데 말야, 왜 우리 학교에서는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 걸까? 공항은 도쿄가 아니라 여기, 우리 마을에 만들어지는데.” “맞아.” “우리 선생님은 찬성도 반대도 아닌 중립이라고만 해.” (6권 14쪽)


“하하핫! 까불고들 있어! 농사꾼 두들겨패고 땅 빼앗고, 임산부의 배를 걷어차면서 대체 뭘 하겠다는 거여! 국제공항이라고 했냐! 웃기고들 있네! 농사꾼이 땅을 지키고 체포당하는 거라면 얼마든지 해 주지! 여보! 죽어도 밭을 내주면 안 돼!” (6권 80∼81쪽)


“교장선생님, 선생님이 만약 우리들의 입장이라면, 선생님의 부모가 피투성이가 되어 기동대한테 붙잡혀서 유치장에 갇힌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무척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입장이 공무원이다 보니.” “……. 공항이 들어서면 이 학교도 당연히 방음교사가 됩니다. 선생님은 하루 종일 창문도 열 수 없는 어두운 교실에 들어가고 싶습니까?” “아니, 들어가고 싶지는 않지요. 학생들을 들여보내고 싶지도 않아요.” “그러면 공항에 반대하시는 거네요? 중립이 아니라. 방음교사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면 어째서 반대하지 않는 건가요? 왜 싸우지 않는 건가요?” “그러니까, 공항이 만들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요.” “교장선생님! 학생들을 방음교사에 가두고 싶지 않다고 하시면서 공무원이기 때문에 공항을 반대하지 않는다든 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이래도 되는 겁니까? 선생님! 선생님은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정부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것뿐이에요. 그것이 교육자로서 올바른 자세라 할 수 있습니까?” (6권 177∼179쪽)


만화책 《우리 마을 이야기》는 오랫동안 ‘자급자족’을 하던 조용한 시골마을 사람들한테 들이닥친 막삽질이 무엇인가를 똑똑히 보여줍니다. 시골사람은 처음에는 ‘나라가 시킨’ 일이니 고분고분 따라야 한다고 여깁니다. 이러다가 이 일이 ‘시골을 모두 등지거나 버리고 쫓겨나야’ 하는 일인 줄 깨닫고는 처음으로 들고 일어섭니다.


권력이 싫어하는 것은 딱 하나이지 싶습니다. 바로 ‘자급자족’이에요. 사람들이 스스로 밥과 옷과 집을 지으면서 삶을 가꾸는 일을 권력이 아주 싫어합니다. 사람들이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지을 줄 알면, 권력은 아무 힘을 못 써요. 정치권력뿐 아니라 경제권력도 힘을 못 씁니다.


시골사람은 대통령 이름이나 군수 이름을 굳이 알아야 하지 않아요. 예부터 시골사람은 임금 이름을 몰라도 흙살림을 일구며 모두 스스로 지어 스스로 얻으며 이웃하고 나누었어요. 권력자 자리에 선 이들은 스스로 지을 줄 모르기 때문에 세금을 걷으며 시골사람한테서 집도 옷도 밥도 얻어다가 누렸지요.


정치나 사회나 경제 얼거리를 보면, 사람들이 밥이며 옷이며 집을 ‘회사에서 번 돈을 써서 가게에서 사다 쓰도’록 틀을 짜야, 비로소 정치와 경제와 문화와 교육과 행정과 과학을 비롯한 모든 권력이 힘을 얻습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모시와 삼에서 실을 얻어 옷을 지어 입는다면, 옷공장이나 옷회사는 모두 무너집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숲을 가꾸어 숲에서 나무를 몇 그루 얻은 뒤 집을 지으면, 건설회사와 자동차회사와 석유회사 모두 무너집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제 터를 집숲으로 가꾸어 밥을 손수 지어서 먹으면, 식품회사와 약품회사와 병원과 백화점뿐 아니라 모든 도시 얼거리가 무너집니다.


권력은 도시를 지키려고 사람들한테서 ‘자급자족’이라는 열쇠를 빼앗습니다. 권력은 도시를 키워 사람들을 바보나 노예나 부속품으로 만들려고 학교를 세웠습니다. 학교에서는 모든 아이들이 ‘도시에 가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거나 전문직이 되거나 운동선수나 예술가 따위가 되어 돈을 버는 길’을 찾도록 이끕니다. 학교에서는 어느 누구도 밥·옷·집을 스스로 짓는 길을 안 가르칩니다. 교과서나 참고서나 문제집은 밥이나 옷이나 집에 아이들이 눈길을 못 두도록 가로막습니다.


더 헤아려 본다면, 인문책도 사람들한테 길을 보여주지 않지 싶어요. 어떤 인문책도 사람들한테 밥을 스스로 짓고 옷을 스스로 지으며 집을 스스로 지으라고 알려주지 않습니다. 어떤 인문학자와 철학자와 교육자도 사람들한테 밥·옷·집을 스스로 가꾸어 누리면서 살아가라고 말하지 않을 뿐더러, 말할 만한 슬기나 깜냥이 없지 싶어요. 학자는 학문을 할 뿐이거든요. 학자는 ‘자급자족’을 하지 않아요.


이러다 보니, 이 땅에서 태어나는 인문책뿐 아니라 이웃나라에서 나오는 인문책도, 그저 지식조각이기 일쑤입니다. 사람들이 머릿속에 새로운 지식조각을 채우도록 이끌 뿐입니다. 사람들이 머릿속에 지식조각만 가득 채워서 스스로 밥도 모르고 옷도 모르며 집도 모르게 내몹니다. 사람들이 그저 돈을 벌어 돈으로 밥과 옷과 집을 사서 쓰도록 이끌듯이, 모든 인문책은 사람들이 ‘자꾸 새로운 인문책을 사서 새로운 지식조각을 머릿속에 쑤셔넣도’록 살살 꼬드깁니다.


“선생님! 그렇게 걱정이라면 같이 싸워 주세요!” “요새에 들어가서 함께 싸워요! 다칠 염려는 없어요. 우리가 지켜 줄 테니까!” 30분도 안 돼서 선생들은 도망치듯 돌아갔다. 주위에서 비웃음이 일었다. 선생들은 말로만 우리를 이해하고 동정했을 뿐, 결국 우리를 저버렸다. 아니, 우리가 선생들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 (7권 12∼13쪽)


할머니네 집은 흔적도 없이 무너지고 없었다. 비겁한 눈속임으로 치러진 대집행은 2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피붙이도 없고 아무런 힘도 없는 고독한 할머니의 자그마한 논과 집을 국가가 무력으로 뿌리째 뽑아 앗아갔다. 아니, 빼앗긴 것은 그냥 논과 집이 아니다. 그곳은 할머니에게 있어서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그 작은 생명을 지켜 주는 단 하나의 보금자리였던 것이다. 피곤할 때는 해님에게 인사하고, 빨래해 널고 목욕하고, 술 두 잔 정도 하고 자면……. (7권 176∼177쪽)


“거기서는 화학비료도 농약도 쓰지 않고 훌륭한 수확을 거두고 있더라.” “그런 게 가능해요?” “가능하니까 신기한 게지. 아니, 신기할 것도 아니여. 나도 요 몇 년 논과 밭의 지력이 떨어진 원인이 뭔지 생각하고 있었다. 흙이 점점 모래처럼 되고 작물도 생생함을 잃고 있어. 농약을 써도 안 써도 해충이 줄어들 기미가 안 보여. 이러다가 논밭이 못 쓰게 되고 먹고살 수 없게 되면 투쟁이고 뭐고 다 소용 없는 겨 …… 그게 말여, 미생물농법이라던가, 유기농법이라던가, 퇴비 만들기부터 시작하는 손이 많이 가는 농사여. 보람이 있을 겨. 잘 봐둬라, 뎃페이. 내가 모두에게 이 농법을 전파시킬랑께. 산리즈카에서 공항 이상으로 가치 있는 농업을 만드는 거여.” (7권 214∼215쪽)


우리 마을을 지키는 힘이란 우리 집을 지키는 힘입니다. 우리 집을 지키는 힘이란 우리 삶을 스스로 지키는 힘입니다. 밥 한 술을 뜰 적에 남이 내 몫을 먹어 주지 못합니다. 내 몫을 남이 먹어서 배가 부르다 하면 그이가 배가 부르지 내가 배부르지 않아요. 옷 한 벌을 입을 적에 남이 내 몫을 입어 주지 못합니다. 내가 내 몸에 옷을 걸쳐야 따뜻합니다. 남이 내 옷을 그이 몸에 걸치면 그이가 따뜻하지, 내가 따뜻하지 않습니다.


마을을 지키려면, 먼저 내가 스스로 내 집을 가꾸는 슬기를 찾아야 합니다. 내가 오롯한 삶을 가꾸는 집을 지켜야 합니다. 내가 이곳에서 튼튼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보금자리 하나’로 있을 때에, 내 이웃은 이웃 나름대로 저곳에서 튼튼하고 씩씩하게 살아요. 내가 있고 네가 있어서, 서로 이웃이 되어서, 천천히 마을로 거듭납니다.


마을이란 사랑입니다. 집집마다 다 다르면서 모두 새로운 사랑이 있을 적에, 이러한 사랑이 하나로 모여 마을이 됩니다. 마을이란 노래입니다. 집집마다 다 다르면서 언제나 새로운 노래가 흐를 적에, 이러한 노래가 하나로 모여 마을이 됩니다.


만화책 《우리 마을 이야기》는 산리즈카라고 하는 아주 조그마한 시골마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중앙정부 권력에 맞서면서 스스로 ‘집을 지키’고 ‘삶을 가꾸’며 ‘사랑을 노래했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나리타공항 반대 투쟁기’가 아닙니다. ‘시골에서 삶을 찾고 깨달아 스스로 사랑이 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만화책 《우리 마을 이야기》입니다.


부디 작은 이웃님을 비롯해서 여느 공무원도 군수나 시장도 대통령 후보도 이 작은 만화책을 곰곰이 읽어 볼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함께 어깨동무를 하면서 나아갈 길은 ‘경제발전’이나 ‘일자리 만들기’가 아닌 줄 느낄 수 있기를 빕니다. 우리가 서로 아끼며 걸어갈 길은 ‘마을살림’이요 ‘집살림’이라는 대목을 헤아릴 수 있기를 빕니다. 돈을 들이는 개발사업이나 개발정책이 아니라, 스스로 짓고 스스로 나누며 스스로 사랑하는 ‘마을살이’를 바라볼 수 있어야 마을도 작은 집도 나라도 함께 살아나리라 생각합니다. 마음을 따사롭게 덥히는 슬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ㅅㄴㄹ

덧붙이는 글 | <우리 마을 이야기 1-7>(오제 아키라 글·그림 / 이기진 옮김 / 길찾기 펴냄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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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의 자전거 11
미야오 가쿠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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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95



자전거를 달리면 누구나 ‘바람이 되’어요

― 내 마음속의 자전거 11

 미야오 가쿠 글·그림

 오경화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2004.9.25.



  한국에서 나온 자전거 만화는 퍽 드뭅니다. 자전거를 다룬 만화 가운데 ‘더 빨리 달리는 자전거’ 이야기는 더러 있습니다만, ‘누구나 마을에서 즐겁게 타는 자전거’ 이야기는 거의 찾아볼 수조차 없어요. 이 가운데 《내 마음속의 자전거》는 매우 돋보이는 작품이에요. 그런데 2006년에 13권이 한국말로 나온 뒤 이제껏 뒤엣권은 더 나오지 않습니다. 설마 ‘일본 만화책’이 13권에서 끊어졌을까요?



“아저씨, 제 자전거 돌려주세요!” “아아, 지금 바퀴살 갈고 있으니까, 좀만 더 기다리렴.” “그런 거 한두 개쯤 나가도 상관없어요! 전 지금 가야 돼요!” “안 돼. 지금 널 이 자전거에 태울 순 없다.” (14∼15쪽)


“그 32개의 살이 서로 엇갈려, 좌우로 당기면서 바퀴의 밸런스를 유지해 주고 있는 거야. 하나라도 부러지면 잡아당기는 밸런스가 무너져, 처음엔 미비하지만 나중엔 크게 요동치다가, 완전히 망가지게 돼. 단 한 개도 쓸데없는 바퀴살이란 없단다.” (21쪽)



  2006년 언저리에는 이 만화책이 일본에서 더 나왔는지, 아니면 더는 안 나오는지 찾아볼 생각을 못 했습니다. 요즈음 들어 문득 매우 궁금해서 일본 아마존을 살펴보았어요. 그랬더니 《내 마음속의 자전거》라는 이름으로 옮긴 ‘竝木橋通りアオバ轉車店(미나키바시 마을 아오바 자전거집’은 20권으로 마무리를 짓고, 그 뒤에 ‘アオバ轉車店’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20권이 더 나왔다고 해요. 그러니까 모두 40권에 이르는 자전거 이야기가 만화책으로 나온 셈입니다.


  한국말로 나오지 못한 서른일곱 권에는 어떤 이야기가 흐를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한국에서는 ‘생활 자전거’ 이야기를 다루는 만화책은 아직 팔리거나 읽히기 힘들기에, 그동안 열세 권이 한국말로 나왔으니 이 대목에서 고맙게 여겨야 할 노릇일까요. 한국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꽤 많고, 자전거 동아리에 들어가서 자전거를 즐기는 분이 무척 많은데, 자전거를 이야기하는 만화책에서는 느끼거나 배우거나 돌아볼 만한 대목이 없을까요.



“저번부터 보자 보자 하니까, 딴청 부리고 대충 운전하다 쾅쾅 부딪치면 자전거가 너무 불쌍하잖아.” (33쪽)


“휴대폰 없는 난, 날개 꺾인 새나 마찬가지인걸. 아무 데도 날아갈 수 없어.” “날개라면, 아직 남아 있잖아. 여기! 26인치짜리 커다란 날개가!” (34∼35쪽)



  아이들하고 《내 마음속의 자전거》를 함께 읽으며 생각해 봅니다. 이 만화책에서는 모든 일을 자전거를 한복판에 놓고 생각합니다. 자전거집(아오바 자전거집) 딸아이는 열한째 권에서 초등학교에 갓 들어가는 나이입니다. 열한째 권 마지막 이야기에서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이에 앞서는 일곱 살이에요. 일곱 살 아이는 여느 어른 못지않게 자전거를 만질 줄 알아요.


  길을 가며 만나는 사람들이 ‘자전거를 함부로 다루는’ 모습을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일곱 살 아이는 “자전거가 너무 불쌍하잖아” 하고 얘기해요. 그리고 “자전거라는 커다란 날개”를 알려주면서, 이 자전거를 믿고 씩씩하게 달려 보라고 북돋우기도 합니다.



“로드레이서는 굉장히 빨리 달리는 물건이에요. 빨리 달릴 수 있단 말은 곧 빠른 물건에 ‘목숨을 맡긴다’는 뜻이죠. 빨리 달리고 빨리 꺾고 빨리 멈춘다. 그러려면 견고한 프레임, 바퀴, 브레이크를 꼭 갖춰야 합니다.” (61쪽)


“서부고에는 오오바뿐만 아니라 ‘바람이 되고 싶다’고 여기는 애들이 또 있을 거예요. 하지만 시대착오적이라 해도 교칙은 교칙. 그러니 교칙을 지키면서 ‘바람이 될 수 있는 자전거’를 우리 집에서 만들어 봅시다.” (67쪽)



  만화책 《내 마음속의 자전거》에도 ‘빨리 달리는 자전거’라든지 ‘산을 타는 자전거’가 나옵니다. 그렇지만 이런저런 자전거는 모두 ‘여느 사람들이 여느 마을에서 복닥거리는 삶자리’로 녹아듭니다. 더 빨리 달려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는 자전거 만화책입니다. 더 멋지게 달려야 한다고도 이야기하지 않는 자전거 만화책이에요.


  그러면 어떻게 달려야 할까요? 바람처럼 즐겁게 달리자고 이야기를 건네는 만화책입니다. 때로는 바람처럼 싱싱 달릴 수 있으나, 바람은 여느 때에는 가볍고 싱그러우면서 맑게 불어요. 바람이 날마다 싱싱 분다면 사람들은 못 견딜 테지요. 바람은 가끔 싱싱 불 뿐, 여느 때에는 온누리 골골샅샅 부드러이 감싸 줍니다.


  곧 우리가 즐기는 자전거도 이러한 바람과 같아서, 여느 때에는 여느 마을에서 여느 자전거로 즐겁게 달리면서 서로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삶을 북돋우고 살림을 살찌우는 자전거라고 할 만해요.



“쿠로이, 네가 타고 다니는 자전거는 키쿠의 죽은 남동생 거란다. 어릴 때부터 심장병 때문에 병원을 들락거리던 그 애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려고 키쿠가 고등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해서 사 준 거야. 하지만 그 동생은 한 번도 타 보지 못한 채 10살 때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지. 쿠로이, 키쿠도 부모가 없는 이 고아원 애였단다.” (109쪽)



  자전거 하나를 둘러싸고 온갖 사람이 수많은 이야기를 지핍니다. 자전거에 깃든 애틋한 슬픔을 오늘 새롭게 만나는 이웃 아이들하고 다독이면서 기쁨으로 끌어올립니다. 사랑 한 줄기를 자전거에 싣고, 이 사랑 한 줄기는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는 마음에 곱게 스밉니다.


  자전거를 비롯해서 모든 것을 두루 아낄 줄 아는 마음을 들려줍니다. 자전거뿐 아니라 우리 둘레를 널리 헤아릴 줄 아는 마음을 보여줍니다. 자전거이며 모든 살림이며 저마다 아름다운 숨결이라는 대목을 건드립니다.



“괴, 굉장하군요. 이렇게 작은 부품인데, 그런 것까지 생각해 만들어졌다니.” “네, 물론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일은 아닙니다. 20년 동안 착실하게 개량에 개량을 거듭한 결과예요.” (160쪽)


“코사카 선생님같이 훌륭한 도예가 분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더없는 영광이네요. 하지만 아마 애 아빠에게도 할아버님께도 ‘작품’을 만들고 있단 생각은 없을 거예요.” (183∼184쪽)



  만화책 《내 마음속의 자전거》에는 전문용어가 흐르지 않습니다. 아오바 자전거집 아저씨는 어느 모로 본다면 전문가일 수 있지만, 자전거집 아저씨나 아주머니는 스스로 전문가처럼 굴지 않습니다. 자전거집 딸도 전문가 노릇을 하지 않습니다. 자전거집 할아버지도 이와 같아요. 네 사람은 ‘즐거운 자전거’를 그립니다.


  이리하여 이 만화책 한국판에 붙은 이름 그대로 “내 마음속”으로 스며는 자전거입니다. 내 마음속에서 새로 태어나는 자전거입니다. 내 마음속에 사랑을 들려주는 자전거예요. 내 마음속에 기쁨을 베푸는 자전거이지요. 내 마음속에 따사로운 꿈을 일깨우는 자전거예요.



“말씀해 주십시오. 당신들이 만드는 물건은 작품이 아닌가요?” “작품? 천만에요. 저희가 만드는 건 타기 편한, 도구랍니다.” (204쪽)



  열셋째 권에서 한국말 번역이 멈춘 지 열 몇 해가 흐릅니다. 열넷째 권도, 스무째 권도, 그리고 스무째 권 뒤로 이어지는 새로운 스무 권도 한국말로 나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전거를 ‘전문 영역’이 아닌 ‘여느 살림자리에서 누리는 살림살이’로 바라보도록 이끄는 이쁘장한 만화책을 한국에서 널리 읽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어른뿐 아니라, 자전거를 이제 막 배우면서 달리려는 아이들한테 《내 마음속의 자전거》라는 만화책은 둘도 없이 뜻있고 재미난 이야깃거리요 스승이요 길동무가 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혼자 자전거를 달릴 적에도, 짐받이에 앉을 자리를 마련해서 한 사람을 앉히고 달릴 적에도 우리는 바람이 됩니다. 자전거에 수레를 붙이거나 샛자전거를 달아서 아이들하고 함께 달릴 적에도 우리는 바람이 되어요. 저마다 다르면서 고운 바람이 됩니다. 가슴을 활짝 펴고 노래하는 시원한 바람이 될 수 있습니다. 2017.3.22.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만화비평/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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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낸시 (스티커 포함)
엘렌 심 지음 / 북폴리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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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93



쥐마을에서는 ‘아기 고양이’를 받아들일까?

― 고양이 낸시

 엘렌 심 글·그림

 북폴리오 펴냄, 2015.2.17. 15000원



  고양이만 사는 마을에 ‘아기 쥐’가 깃들어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요? 거꾸로 쥐만 사는 마을에 ‘아기 고양이’가 깃들어 같이 살아갈 수 있을까요?


  터무니없는 말을 묻는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꼭 터무니없는 말만은 아닙니다. 고양이랑 쥐, 또는 쥐랑 고양이, 이렇게 둘 사이가 아닌 ‘남·북녘’을 놓고도 생각할 수 있어요. ‘한국 노동자·이주 노동자’를 놓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이·어른’이라든지 ‘가시내·사내’를 놓고도 생각할 수 있어요.


  자, 고양이마을에 어느 날 어느 집 문 앞에 아기 쥐가 바구니에 담긴 채 놓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거꾸로 쥐마을에 어느 날 어느 집 문 앞에 아기 고양이가 바구니에 담긴 채 놓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추워요. 아기가 추워해.” “그러네. 데리고 들어가야겠다. 그렇지?” (14쪽)


“여러분, 더거 씨가 며칠 전에 아기 고양이를 주웠습니다.” “그럼 어서 멀리 내보내쇼!” “하지만, 쫓아내기엔 너무나 어린 동물입니다.” (41쪽)


“아아, 짐을 싸야겠네요. 솔직히 이해해 줄 것이라곤 생각 안 했어요.” “우리 잠시만 기다려 보자고. 내가 여기서 오래 살아 봤는데, 우리 마을 쥐들이 꽤 착했던 것 같거든.” (46쪽)



  엘렌 심 님이 빚은 만화책 《고양이 낸시》는 쥐마을에 어느 날 덩그러니 놓인 아기 고양이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제껏 딱히 대단하거나 남다른 일이 없던 조용한 어느 쥐마을 어느 집 문 앞에 아기 고양이가 바구니에 놓여요. 쥐마을 어느 집 아저씨와 아이는 이 아기 고양이를 보지요. 아이는 이 아기 고양이가 쥐인 줄 아직 모르나, 아저씨는 아기 고양이를 보자마자 고양이인 줄 알아챕니다.


  이때에 아이는 “아기가 추워해” 하고 말해요. 아저씨(아이 아버지)는 어쩔 줄 몰라서 망설이는데, 고양이인 줄 모르는 아이는 ‘아기’라는 대목만 보고는 얼른 ‘우리 집’으로 들여서 따뜻하게 품어 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꼬리를 가졌구나!” “정말?” “우린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야.” (106쪽)


“낸시 데려갈 거면 한 명 놓고 가. 우리 공주님 놀이 해야 해!” (114쪽)


“낸시는 (연극에서) 무슨 역이 하고 싶니?” “난, 해님, 할래요.” (139쪽)



  만화책 《고양이 낸시》는 만화책이기 때문에 참으로 만화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을 돌아보면 《고양이 낸시》에 흐르는 만화스러운 이야기를 어렵잖이 마주할 수 있어요. 여린 이웃을 살피고 아픈 동무를 헤아리는 아이들이 있어요. 힘없는 이웃을 아끼고 고단한 동무를 보듬는 어른들도 있지요.


  여리거나 아프더라도 고개를 홱 돌리는 아이나 어른이 있을 수 있어요. 힘없거나 고단하더라도 모르는 척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말이에요, 우리 삶터가 오늘 여기까지 흐르는 동안 더 많은 사람들이 여린 이웃을 아끼고 아픈 동무를 보살피는 살림이었으리라 하고 생각합니다. 밥 한 술을 나누면서 서로 도울 줄 아는 마음을 키워 왔지 싶어요.


  아기 적부터 같이 살던 개랑 고양이는 한집에서 함께 아끼면서 살곤 합니다. 새와 악어는 처음에 같은 자리에서 깨어나서 서로 아끼는 동무가 될 수 있어요. 우리는 꼭 먹이사슬이라는 얼거리로만 바라보아야 하지 않습니다. 같은 목숨이나 이웃 숨결이라는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요.



“아니, 도대체가, 밖에 애들이랑 노는 저 커다란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낸시요.” “낸시.” “낸시다.” “아니, 이름 말고요!” “더거 씨네 딸?” “우리 아들 친구?” “귀여워.” (157∼158쪽)


“고양이의 위험성?” “네. 마을 쥐들이 모르는 것 같으니 뭐라고 말 좀 해 주세요.” “헥터, 괜찮을 거다.” “아버지! 이 책에도! 저 책에도! 모든 책에서 고양이는 위험하다고 되어 있단 말이에요! 특히 이 책에는…….” “흠.” “아버지?” “그랬지, 헥터 너는 어렸을 때부터 너무 가까이서 책을 보곤 했었지.” (173∼175쪽)



  《고양이 낸시》에 나오는 쥐마을에서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에는 ‘고양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돋습니다. 이와 달리 쥐마을 아이들은 처음에는 ‘고양이’를 모르기 때문에 고양이라고 해서 두려워하지 않아요. 그저 함께 지내는 동무로 삼습니다.


  어릴 적부터 고양이 낸시를 동무로 삼은 쥐마을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에도 낸시를 그저 ‘동무 낸시’로 여깁니다. ‘고양이 낸시’ 아닌 ‘동무 낸시’예요.


  쥐마을을 떠나 여행을 오랫동안 하다가 돌아온 어른 쥐 헥터는 ‘고양이 한 마리’가 고향마을에 있는 모습을 보고는 벌벌 떱니다. 쥐마을 어른들이 모두 머리가 돌았다고 여기지요. 어떻게 고양이를 버젓이 쥐마을에 두느냐고 따져요.


  이 어른 쥐 헥터 마음을 모를 수 없습니다. 쥐 헥터는 어릴 적부터 고양이는 무섭다고 배웠으니까요. 지식으로 길들었으니까요.



“낸시가 위험해. 책방에서 들었는데, 헥터 형이 낸시가 고양이라고, 고양이라서, 나쁘다고 마을 쥐들에게 말하겠다고 했어. 그러면 낸시는 마을에서 쫓겨나고 말 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지켜 줘야 해. 낸시는 우리 친구잖아.” (188∼189쪽)


“헥터 형.” “응?” “형, 있잖아요.” “응.” “낸시 너무 미워하지 말아 줘요. 낸시는 지미의 소중한 동생이에요.” “응.” (218∼219쪽)



  서로 이웃이기에 함께 지내며 아낄 수 있습니다. 서로 이웃이라는 마음을 나누기에 기쁨을 함께하며 웃을 수 있어요. 서로 동무이기에 같이 노래하며 춤출 수 있어요. 서로 동무라는 마음을 주고받으니 까르르 웃고 노래하는 즐거움으로 한껏 흐드러질 만해요.


  렇지만 서로 이웃이라고 여기지 못하면 싸워요. 서로 이웃이 아니니 싸우지요. 내 몫이랑 네 몫을 가릅니다. 내 자리랑 네 자리를 갈라요. 서로 동무라고 느끼지 않기에 다툽니다. 서로 동무가 아닌 터라 전쟁무기를 자꾸 만듭니다. 서로 동무라면 핵무기를 만들 생각을 할까요? 서로 동무인 둘 사이에 국경을 가르거나 군대를 둘 생각을 할까요?



“낸시야, 아빠가 중요하게 할 말이 있어. 우선 말하기 전에 아빠는 정말 낸시를 사랑한단다!” “응, 나두!” “음, 그러니까, 낸시는 사실 아주 조금 특별하단다. 아주 조금 달라. 하지만 그게 절대 나쁜 것이 아니란다! 낸시는 말이야, 낸시는 그러니까, 조금, 아빠나 마을 쥐랑 다른, 그러니까.” “낸시 알아. 낸시는 고양이야.” “무, 뭐?” “낸시는 고양이야.” “어, 음!” “친구들과 조금 다르지만, 괜찮아!” “으, 응, 그럼 그럼!” (242∼244쪽)



  만화책 《고양이 낸시》는 쥐마을 아이들이 서로 슬기롭게 마음을 나누면서 낸시랑 동무로 지내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여기에 어른들이 아이들을 따사로이 아끼며 함께 사랑을 짓는 이야기를 보탭니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어른은 어른 나름대로, 서로서로 마을을 사랑으로 짓는 기쁜 마음을 북돋우려고 해요.


  두려움을 떨치기에 이웃이 되고 동무가 됩니다. 미워하지 않고 싫어하지 않으니 금을 긋지 않으며 손을 맞잡아요. 좋아하는 마음을 키우면서 어느덧 사랑으로 거듭나니 따사로운 기운이 흐릅니다. 밝은 봄바람을 함께 누립니다. 싱그러운 봄볕을 함께 쬡니다. 2017.3.19.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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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장치의 사랑 1
고다 요시이에 지음, 안은별 옮김 / 세미콜론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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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90



로봇은 노예가 아니라서 눈물 흘릴 줄 알아요

― 기계 장치의 사랑 1

 고다 요시이에 글·그림

 안은별 옮김

 세미콜론 펴냄, 2014.11.28. 11000원



  누가 저한테 이렇게 묻습니다. “최종규 씨는 국어사전 쓰는 일을 하신다는데, 만화책을 그렇게 많이 읽으시는 줄 몰랐어요. 어떻게 만화책을 그렇게 많이 읽으셔요?” 저는 이 물음에 싱긋이 웃으면서 대꾸합니다. “한국말사전은 우리 생각을 말이라고 하는 그릇에 담아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북돋우는 책이에요. 만화책은 글하고 그림을 아름답게 엮어서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에요. 그래서 말을 다루며 한국말사전을 새롭게 엮는 일을 하는 저로서는, 만화책이 우리한테 베푸는 ‘삶을 사랑으로 마주하며 곱게 그리는 꿈’이라고 하는 대목을 배워야 한다고 느껴요. 만화책을 읽으면서 한국말사전을 즐겁게 쓴답니다.”


  제 대꾸가 뜬금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다 요시이에 님이 빚은 만화책 《기계 장치의 사랑》(세미콜론 펴냄)을 읽어 보신다면, 제 말을 좀 알아차려 주실 만하리라 생각해요. 책이름부터 남다른 “기계 장치의 사랑”이에요. ‘로봇’이 노예가 아닌 사랑이 흐르는 숨결이라고 하는 대목을 비추는 만화책입니다.



‘이번에도 난 중고로 팔려가게 될까.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날 산 사람도 있었어. 이상한 짓을 하려고 구입한 사람도 있었지. 다음엔 어떤 사람에게 팔려가게 될까.’ (12∼13쪽)


“누구야, 쟤는?” “네가 태어나기 전에 같이 살았던 로봇이란다.” ‘그때 나는 아이를 낳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 “이 (로봇) 녀석, 울고 있어요.” “설마, 오일이 새는 거겠지.” (21쪽)


“이 (로봇) 아이, 예전에 길렀던 적이 있거든요.” “아, 그렇지만 메모리는 이미 삭제했는데.” “괜찮아요. 제가 기억하니까요.” (24쪽)



  《기계 장치의 사랑》은 아홉 가지 로봇 이야기를 짤막하게 다룹니다. 아홉 가지 로봇 이야기를 읽는 내내 눈시울이 촉촉합니다. 맨 처음 이야기에서는 ‘어린이 로봇’를 다루는데, ‘어린이 로봇’을 심심풀이처럼 다루는 어른이 있고, 괴롭히는 어른이 있어요. 그리고 수많은 어른들 가운데 이 어린이 로봇을 오롯한 사랑으로 안아 준 어른이 꼭 하나 있어요.


  늘 버림받고 생채기를 입던 어린이 로봇은 어느 날 ‘메모리 장치에 남은 따스하고 즐거운 추억(또는 기억)’에 따라서 그 따스한 사람을 찾아나섭니다. 그 따스한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길에 이 어린이 로봇은 눈물을 흘려요.


  어린이 로봇이 ‘다른 사람 임자한테서 달아났다’며 붙잡으러 온 정비공들은 로봇 따위가 무슨 눈물을 흘리느냐고, 그저 기름이 샜을 뿐이라고 말해요. 그러나 어린이 로봇은 정비공이 아무리 닦아내도 사라지지 않는 눈물 자국을 눈 밑에 냅니다.



“반장님.” “뭐야.” “우린 지금 뭘 굽고 있는 걸까요.” “음, 그건 나도 모르지.” “그렇군요.” “시키는 일을 할 뿐이지.” (31쪽)


“어렴풋이 눈치챈 녀석들도 있겠지만, 인정하고 싶지는 않겠지. 자기들이 로봇 밑에서 일하고 있는 게 되니까. 그래서 자네 같은 열등 로봇을 점포마다 한 대씩 배치해 놓은 거야. 인간들이 우리 기계에게 열등감이나 혐오감을 갖지 않게 하려고.” (60쪽)



  기계 장치한테 마음이 있을까요? 기계 장치는 그저 쇠붙이나 플라스틱 껍데기일 뿐일까요? 우리가 쓰는 손전화나 셈틀에는 마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우리가 타는 자동차나 기차나 버스나 비행기에는 마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연필이나 볼펜에는, 또 공책이나 책에는 마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풀이나 꽃이나 나무한테는 마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돌이나 바람이나 비에는 마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모래나 물고기나 바다에는 마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그리고 우리 사람한테는 마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우리는 참말 사람으로서 사람다우며 ‘마음’이 있는 살림을 짓는다고 할 만할까요?



‘확실히 나 역시, 보노보 녀석은 대단하다고 생각해. 이 녀석에겐 아무래도 인격 비슷한 게 있달까. 나 역시 보노보 덕에 몇 번이나 목숨을 건졌는지 몰라.’ (99쪽)


“넌 늘 책만 읽는군. 인터넷에서 데이터로 받으면 1초 만에 머릿속에 들어가는 거 아니었나.” “그런 건 독서가 아니지요. 이렇게 눈으로 좇으며, 천천히 체험하며 읽어야 독서겠죠.” “자꾸 웃는데 말야, 유머소설인가?” “하하. 아니요 인간의 어리석음을 묘사한 소설입니다. 먼 옛날 소설이지만, 작가의 독기에 웃지 않을 수 없어요. 그리고 아무리 어리석다고 해도, 저는 인간을 좋아합니다.” (101쪽)



  만화책 《기계 장치의 사랑》은 사람과 기계 사이에 흐르는 삶을 조용히 건드립니다. 기계와 기계 사이에 흐르는 삶을, 또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삶을 넌지시 짚습니다.


  사람이 기계나 로봇을 만든다면, 왜 만들까요? 노예처럼 부려먹으려고 기계나 로봇을 만들어서 쓰나요? 즐겁게 기계나 로봇을 마주하면서, 사람으로서 우리 삶을 아름답게 가꾸거나 밝히거나 나누려고 하는 뜻일까요?


  그런데 사람은 전쟁무기를 만들어요. 기계나 로봇뿐 아니라 총칼도 만들고 미사일과 폭탄도 만들지요. 끔찍한 핵폭탄까지 만드는 사람이에요. 우리 사람한테 참말로 착한 마음이나 고운 마음이 있다면, 전쟁무기를 굳이 만들어야 했을까요? 우리 사람한테 참으로 맑은 마음이나 밝은 마음이 있다면, 수많은 전쟁과 차별과 계급을 언제쯤 없앨 만할까요?



“마사루 군이잖아.” “생각났어? 나, (보모 로봇) 마시가 20년 전에 길러 줬던 혼다 마사루야.” “이렇게 훌륭하게 자라다니, 못 알아볼 뻔했어.” “마시 손에 자란 아이들은 절대 마시를 잊지 못해. 나만 해도 그래서 이 회사에 들어왔을 정도야. 마시가 가르쳐 준 사랑은, 누구라도 평생 못 잊을 거야. 그러니 걔도 괜찮아!” (130쪽)


“식물도 동물도 인간도, 그놈(재벌·권력자)들의 소유물이 아니야! 자연의 것이다. 그거야말로 하느님의 것이라고!” (213쪽)



  한국말사전은 낱말만 잔뜩 담은 창고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책은 지식이나 정보만 담으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계나 로봇은 우리 사람이 일만 시키면서 괴롭혀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식이나 정보도 대수롭지만, 지식이나 정보를 슬기롭게 다스리면서 사랑스레 나눌 줄 아는 마음이야말로 가장 대수롭다고 생각합니다. 사전은 사전으로서 삶을 아름답게 비추는 구실을 하도록 말을 담을 노릇이에요. 책은 책으로서 사람마다 살림을 스스로 기쁘게 짓는 길동무 노릇을 해야지 싶어요.


  눈물을 지을 줄 아는 로봇이라고 봅니다. 그러니 웃음을 지을 줄도 아는 로봇이라고 봅니다. 우리 사람도 이와 같아요. 우리는 사람으로서 눈물하고 웃음이 함께 있어요. 여기에 노래랑 춤도 함께 있어요. 사람이 로봇을 지어내어 곁에 둔다면, 로봇은 일만 해야 하는 노예가 아닌, 사람하고 함께 웃고 울며 노래하고 춤추는 아름다운 삶을 나누는 벗님이지 싶습니다. 2017.3.17.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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