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분의 일 2
타카토시 나카무라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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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65



우리는 서로서로 돕는 지구별 이웃님

― 십일분의일 (1/11) 2

 나카무라 타카토시 글·그림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3.12.25. 4800원



  저녁에 아이들을 재웁니다. 두 아이가 마음껏 뛰고 떠들고 웃고 노래하고 뒹굴고 그림도 그리고 책도 보고 다 놀았구나 싶을 무렵 초 한 자루를 켭니다. 집안에 차분하게 흐를 만한 노래를 틉니다. 전깃불은 모두 끕니다. 모두 방석에 앉아서 촛불을 바라봅니다. 촛불에서 어두운 곳을 고요히 바라봅니다. 처음에는 낯설거나 힘들어 하던 아이들이지만, 이제 무척 야무지게 촛불보기를 합니다. 나도 아이들이랑 함께 씩씩하게 촛불보기를 합니다.


  아이들은 촛불을 보다가 하품이 나오거나 졸리면 스스로 들어가서 이부자리에 눕습니다. 나는 촛불을 더 보고 나서 이부자리를 살피지요. 아이들 이마를 쓸어넘기고 이불깃을 여미어요. 얼마 앞서까지는 촛불보기를 하지 않고 그냥 아이들 사이에 누워서 한 시간 남짓 자장노래를 부르면서 재웠고, 요즈막에는 저녁마다 촛불보기를 하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제 잠자리를 챙겨서 눕도록 합니다.



‘그래도 그는 골키퍼라는 포지션이 좋았다. 온몸을 사용해 골문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되는 것이 좋았다.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는다 해도,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12쪽)


‘그 녀석이 그렇게 날 믿고 있는데, 내가 날, 믿지 않으면 어쩌자는 거야.’ (34쪽)



  아이들이 모두 잠들었구나 싶은 때에 부엌으로 갑니다. 작은아이가 저녁에 먹고 남긴 밥그릇을 들여다봅니다. 이 밥은 내가 마저 먹습니다. 한창 먹다가 아차 하고 깨닫습니다. 아이들이 남긴 밥은 우리 집에서 함께 눌러서 사는 마을고양이한테 주어도 될 텐데.


  다음에는 아이들이 남긴 밥을 고양이밥으로 살뜰히 챙기자고 생각하면서 만화책 《십일분의일(1/11)》(학산문화사,2013) 둘째 권을 읽습니다.


  눈치가 빠른 분이라면 만화책 이름인 ‘십일분의일’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쉽게 알아챌 만합니다. 바로 축구 이야기입니다. 운동장에서 뛰는 열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삶을 짓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나는 레귤러 자리를 지키고 싶어 골키퍼가 되었던가? 아니잖아.’ (49쪽)


“당신은 몸을 던져 골을 지켰어. 거기서 주저하며 움츠러들었다면 내가 흠씬 두들겨팼을 거야! 그러니, 당신은 당당하게 가슴을 펴. 절대 사과할 필요 없어.” (54∼55쪽)



  아는 사람은 다 알 테고 모르는 사람은 다 모를 텐데, 축구는 혼자서 하는 경기가 아닙니다. 다른 운동 경기도 이와 같아요. 혼자서 하는 경기는 없습니다. 경기장에 나서는 사람이 혼자라 하더라도 경기장 둘레와 뒤에서 돕거나 지켜보는 사람이 아주 많아요. 경기장에 혼자 나서는 사람도 경기장에 나오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이녁이 연습을 하거나 훈련을 하도록 돕지요.


  이리하여, 열한 사람 가운데 하나는 열한 사람이 한몸처럼 움직이는 물결 가운데 한몫을 맡습니다. 열한 사람 가운데 하나가 빠지더라도 다른 열 사람 물결이 흔들려요. 모두 다른 사람이지만 경기장에서는 모두 한마음이요 한몸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잘 해도 열한 사람이 함께 잘 하는 물결이고, 한 사람이 잘 못해도 열한 사람이 함께 잘 못 하는 물결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잘 못 하더라도 다른 열 사람이 곁에서 받치거나 돕습니다. 두 사람이 잘 못 하면 아홉 사람이 받치거나 돕지요. 세 사람이나 네 사람이 잘 못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기꺼이 나서서 어깨동무를 합니다.


  다만, 경기를 마친 뒤에는 ‘최우수 선수’나 ‘우수 선수’를 가리곤 합니다. 모두 훌륭했으나 이 가운데 가장 훌륭했다는 사람을 따로 가리기도 해요. 그러면, 이 한 사람은 왜 가장 으뜸으로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바로 다른 열 사람이 튼튼하게 버팀나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열 사람이 넉넉하고 아기자기한 밑물결이 되었기 때문이에요. 가장 으뜸인 한 사람을 뽑을 수 있는 까닭은 열한 사람이 모두 으뜸이 되도록 훌륭했기 때문입니다.



“네가 잔소리 해대지 않아도 다 알거든! 내가 폐를 끼치고 있다는 것을! 그런데 여자아이가 우울해 하고 있으면 위로부터 해야 하는 거 아냐? 힘든 사람을 더 몰아세우면 어쩌자는 거야?” (77쪽)


“슬픈 기억은 좋은 기억으로 덧씌우면 되잖아?” (80쪽)



  아이들이 잠든 밤에 부엌에서 조용히 설거지를 하면서 생각합니다. 나는 아직 아이들한테 집일을 시키지 않습니다. 더러 자잘한 심부름을 시키지만, 밥을 하라거나 설거지를 하라거나 빨래를 하라거나 청소를 하라거나 같은 일은 안 시킵니다. 아이들더러 읍내에 가서 장보기를 하라고 시키지 않고, 아이들더러 자전거를 타고 우체국에 다녀오라고 시키지 않아요.


  두말 할 까닭이 없습니다만, 나어린 아이들한테 섣불리 일을 시킬 수 없습니다. 나어린 아이들한테는 ‘자, 너희는 기쁘게 뛰놀렴.’ 하고 말할 뿐입니다.


  만화책 《십일분의일》에 나오는 ‘한 사람’은 어떤 몫을 할까요? 공격수이든 수비수이든 문지기이든 모두 매한가지입니다. 저마다 한 자리를 맡아서 지키되, 다른 사람들이 제몫을 기쁘게 할 수 있도록 버티는 나무가 되어 줍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한 자리를 맡아서 지키는 동안, ‘한 사람’은 한 사람대로 마음껏 제 솜씨를 뽐내면서 뛰어다닐 수 있습니다. 열 사람은 한 사람을 받치고, 한 사람은 ‘열 사람 가운데 하나’가 되어 다른 한 사람이 마음껏 뛰고 달리며 땀을 흘릴 수 있도록 받쳐 주어요.



“대충 적당히 한 녀석은 긴장 따위 안 해. 나도 시합 전엔 늘 긴장되거든. 그전까지 연습을 필사적으로 했을 때는 더욱 그렇고. 그러니 걱정 마. 넌 틀림없이,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97쪽)


“너도 너무 무리하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헤딩이라면 할 수 있잖아?” “하지만, 난.” “‘나는, 나는’ 하며 뭐든 혼자 하려고 하지 마. 11명이나 있는걸. 네가 필살 슛을 넣지 않아도, 이길 수 있어.” (137∼138쪽)



  아이들은 밥을 지어 주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은 밥을 맛있게 먹어 주기만 하면 됩니다. 아이들은 빨래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은 밤에 새근새근 잠들면서 즐거운 꿈나라로 날아갈 수 있으면 됩니다. 아이들은 걸레질이나 비질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은 까르르 웃고 노래하면서 날마다 무럭무럭 자라면 됩니다.


  축구라는 운동 경기에서 열한 사람은 저마다 한 가지씩 즐겁게 제몫을 맡으면서 다른 동무나 이웃이 기쁘게 운동장을 누비도록 돕습니다. 그리고, 경기장에서 선 한 사람은 다른 열 사람이 뒤와 옆에서 든든하게 지켜 주기에 마음껏 웃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이 지구별에서 수십 억에 이르는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삶을 짓습니다. 나는 다른 지구별 이웃을 돕는 버팀나무요, 다른 지구별 이웃은 나를 돕는 버팀나무입니다.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즐겁고, 함께 두레를 하기에 기쁩니다. 4348.10.23.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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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에 Historie 9
이와키 히토시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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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63

 


‘사랑이 흐르는 삶’을 스스로 짓는 ‘홀가분한 넋’

― 히스토리에 9

 이와아키 히토시 글·그림

 오경화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2015.7.30. 5000원



  이레쯤 앞서 뒤꼍에서 풀을 베다가 손가락에 가시가 박혔습니다. 풀을 한창 벨 적에는 모르다가 일을 마치고 부엌으로 가서 밥을 짓다가 자꾸 왼손 손가락이 따끔따끔하다 싶어서 들여다보니 가시가 꽤 깊이 박혔더군요. 하던 일은 마저 하자고 생각하면서 밥을 다 지은 뒤 손톱깎이로 살점을 조금씩 뜯으면서 가시를 뽑으려 하는데 안 뽑힙니다. 혼자서 안 되는구나 싶어서 곁님더러 해 달라고 하지만 피만 나올 뿐 안 됩니다. 안 뽑히는 가시라면 그냥 살점에서 내 살이 되어 살라고 할밖에 없습니다. 시골에서 살며 가시 박히는 일이야 흔하기에 이제 잊고 지나가자고 생각합니다.


  가시 박힌 자리가 아프지는 않지만 일을 하면서 문득 느낌이 옵니다. 나흘쯤 지난 저녁에 이 자리가 조그맣게 붓습니다. 조그맣지만 노란 빛깔도 돕니다. 왜 이러나 싶어서 가시 박혔던 자리를 들여다보다가 다시 손톱깎이를 손에 쥡니다. 살점을 천천히 뜯는데 노란 고름이 뽀록 나옵니다. 손톱깎이는 내려놓고 족집게를 쥡니다. 어디 보자 뭐가 나오려나 하고 혼잣말을 하며 슬슬 살점을 누르니 가시가 쏙 고개를 내밉니다.


  어느 풀에 있던 가시였을까요. 이 가시는 왜 내 손가락으로 파고들어 여러 날 지냈을까요. 잔고름을 마저 뺀 뒤 가시는 풀밭으로 던집니다. 네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렴 하고 얘기합니다. 가시가 빠진 자리는 시원하면서 어딘가 허전합니다. 자꾸 손가락을 쓰다듬습니다. 가시 빠진 자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다 안 빠지고 조금 남은 듯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다른 가시가 더 박혔는지 모릅니다. 다른 가시도 머잖아 고름이랑 함께 빠져나올는지 모르지요.



“이건 아탈로스 님이 세워야 ‘공’이 되는 겁니다! 만약 제 경우라면 어떻게 되겠어요?” “어떻게 되는데?” “신출내기 서기관 주제에 실로 애매한 근거 하에 아탈로스 장군의 이름을 사칭해 격이 한참 높은 장군 둘을 턱으로 부려먹고, 그나마 결과가 잘 나왔으니 망정이지, 전군을 위험에 빠트린 건 사실이잖아요.” (8∼9쪽)



  기원전 300년대를 살았다고 하는 에우메네스 이야기를 담은 만화책 《히스토리에》(서울문화사,2015) 아홉째 권을 읽습니다. 알렉산드로스 같은 사람은 이름이 널리 알려졌지만 에우메네스 같은 사람은 알렉산드로스하고 대면 이름이 조용히 묻혔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라고 하는 사람이 힘을 떨칠 수 있던 바탕에는 수많은 에우메네스가 있고, 에우메네스도 이녁을 둘러싸고 이녁을 돕거나 믿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만, 만화책은 만화책일 뿐, 만화책은 역사책이 아닙니다. 이천 해가 훨씬 넘는 옛이야기를 다루는 만화책은 그야말로 만화책일 뿐, 이 만화책으로 역사를 돌아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만화책뿐 아니라 글로만 빚은 역사책도 ‘글로 쓴 이야기’일 뿐입니다. 옛날 책이나 자료를 바탕으로 논문을 쓴다고 하더라도 이천 해가 훨씬 넘는 지난날을 몸으로 살아내지 않았으니 ‘옛날 모습을 그대로 담아서 보여준다’고 할 수 없습니다. 글이든 만화이든 모두 ‘지은이 나름대로 생각을 담아서 보여주기’ 마련입니다.



“당신은, 마케도니아인이 아니면서! 그리스인도 아니고! 그런데 어디서 잘난 척을! 애당초 필리포스 왕을 기습해서 큰 부상을 입힌 건 너희 야만족 스키타이인이잖아!” “왕께 부상을 입힌 건 스키타이인이 아니라 트리발로이인인데?” “그게 그거지! 둘 다 똑같은 야만족이잖아! 본래는 노예여야 마땅한 미개한 야만인들! 얼굴 생김새도 죄다 똑같고!” “그런 사고방식은 썩 좋지 않은데? 자신과 다른 세계를 한데 싸잡아 버리는 게 ‘단정’이나 ‘편견’을 낳고, 더 나아가 전쟁의 원흉이 되는 거니까!” (23∼24쪽)



  손가락에 가시가 박혀도 목숨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가시가 번거로우면 살점을 많이 파내어 뽑을 수 있습니다. 바늘을 달군 뒤에 살점에 구멍을 내어 뽑을 수도 있습니다. 가시 박힌 손가락을 자꾸 생각한다면, 이 생각에 얽매여 다른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해야 할 일은 할 노릇이고, 하지 않아도 될 일은 하지 않을 노릇입니다. 언제나 스스로 제대로 생각해야 합니다. 언제나 스스로 제대로 움직여야 하지요.


  만화책 《히스토리에》에 나오는 에우메네스라고 하는 사람은 여러모로 슬기로우면서 씩씩한 숨결이었지 싶습니다. 장군이기도 했고, 학자이기도 했으며, 알렉산드로스 임금이나 필리포스 임금을 받치는 비서이기도 했으니, 슬기로운 숨결일 뿐 아니라 씩씩한 숨결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느껴요. 머리만 좋은 사람이 아니라 몸도 튼튼한 사람이었을 테고, 마음하고 몸을 스스로 다스릴 줄 알던 사람이었으리라 봅니다.



‘죽이는 것 아니었나? 하긴 그래. 죽일 목적이었다면 첫날 푹 찌르고 끝이었겠지.’ (65쪽)


“무기를 파는 것만이 장사는 아니니까요!” (73쪽)


“포키온은 한없이 냉철한 사내. 전쟁을 잘 아는 평화주의자야.” (89쪽)



  평화를 알기에 평화를 지킬 수 있습니다. 전쟁을 알기에 전쟁을 거스르면서 평화로 가는 길에 더욱 힘을 쏟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평화를 모르기에 평화를 못 지키기 마련입니다. 전쟁을 제대로 모르기에 전쟁에 휩쓸리거나 휘둘리면서 그만 전쟁이라는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노예 해방’이라는 말을 흔히 쓰기는 하지만, 노예로 오랫동안 길든 사람은 노예 노릇에서 풀려나도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노예로 눌려서 지내더라도 ‘노예가 아닌 삶’을 늘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느 날 문득 노예에서 풀려나더라도 그야말로 할 줄 아는 일이 없습니다. 노예에서 풀려나고서야 ‘노예가 아닌 삶’을 생각하려 한다면 아주 늦습니다. 노예인 몸이든 아니든 언제나 ‘노예가 아닌 삶’을, 그러니까 바로 ‘내가 스스로 누리려고 하는 꿈으로 가는 삶’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 사회를 놓고 본다면, 남북이 갈린 사회를 멍하니 바라볼 수 있을 테고 ‘남북이 하나가 되는 사회’를 슬기롭게 바라볼 수 있어요. 앞으로 언제 남북이 하나가 될는지 까마득하다고 하더라도, 마음속으로는 평화와 기쁨과 사랑과 통일과 민주와 평등이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늘 생각하고 가꿀 줄 알아야 합니다.



“응, 참 좋은 마을이야. 지금은 카론이 사랑하는 마을, 메란티오스의 고향 마을인가?” (127쪽)


“이제 와서 이런 말하는 것도 좀 웃기지만, 위대한 자유! 축하한다! 메란티오스!” (136∼137쪽)



  만화책 《히스토리에》는 에우메네스라고 하는 한 사람을 다루면서 ‘히스토리에’라는 이름을 씁니다. 이 만화책은 영웅을 주인공으로 보여주려 하지 않습니다. 이 만화책은 영웅이 얼마나 멋진가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발자국’을 보여줍니다. 삶을 걸어온 발자국을 보여주지요. 스스로 삶을 지으면서 꿈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이 걸어온 발자국을 보여줍니다.


  이 만화책은 영웅전이 아니기 때문에 이 만화책으로 ‘옛날 옛적을 살던 한 사람 이야기’를 살피는 길잡이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만화책은 ‘삶을 짓는 발자국’을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 짓는 하루를 어떻게 지을 적에 스스로 즐거웁거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가 하는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즐겁게 살아야지요. 어떤 삶이 아름다울까요? 말 그대로 아름다운 삶이 아름답지요. 삶이란 무엇일까요? 사랑이 흐르는 삶일 때에 비로소 삶이라는 말을 쓸 수 있겠지요.



‘그 두 다리로 지평선 저 끝까지 달려가는 것도, 혹은 대군을 이끌고 이 땅에 쳐들어오는 것도, 전부 네 자유다! 내 아들아!’ (146∼148쪽)



  한자말 ‘자유’를 한국말로 옮기면 ‘홀가분’입니다. 홀가분한 몸과 마음이 바로 자유로운 몸과 마음입니다. 홀로 하는 일, 홀로 짓는 삶, 홀로 가꾸는 생각, 홀로 다스리는 마음, 이 모두가 자유입니다. 멋대로 하는 일이 자유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삶을 지을 수 있는 몸짓일 때에 자유입니다. 아무것이나 다 해도 되기에 자유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삶을 사랑으로 지을 줄 아는 슬기로운 넋일 때에 자유입니다.


  그러니까, 만화책 《히스토리에》는 먼 옛날 에우메네스라는 사람을 빌어서 바로 ‘홀가분한 넋(자유로운 영혼)’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어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홀가분한 넋입니다. 무엇이든 스스로 짓는 홀가분한 숨결입니다. 무엇이든 사랑스레 가꿀 줄 아는 홀가분한 사람입니다. 4348.10.20.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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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코형사 ONE코 11
모리모토 코즈에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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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64



팔랑이는 꽃치마가 즐거운 개코 형사

― 개코형사 ONE코 11

 모리모토 코즈에코 글·그림

 이지혜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5.10.15. 4200원



  만화책 《개코형사 ONE코》(대원씨아이,2015) 열한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형사이면서 팔랑팔랑거리는 꽃옷(드레스) 입기를 좋아하는 ‘개코’형사가 나오는 이 만화책을 모리모토 코즈에코 님은 몇 권까지 그릴 만할까 하고. 앞으로 스무 권이나 서른 권이 넘도록 그릴 수 있을까 하고.


  차분하면서도 차근차근 수사를 벌이는 형사들 이야기가 아니라, 개처럼 냄새를 잘 맡는 코를 킁킁거리면서 실마리를 찾는 주인공인 ‘하나모리(원코)’ 형사 이야기를 그리는 만화입니다. 이 형사는 경찰서에서도 사회에서도 ‘형사’ 대접을 제대로 못 받기 일쑤입니다. 개코와 같은 코라서 냄새를 아주 잘 맡기에 ‘여느 자료와 실마리’로는 도무지 알기 어렵던 수수께끼도 ‘냄새 하나’로 참·거짓을 낱낱이 밝힙니다.



“우리가 불려온 걸 보면 타살의 의혹이 있는 건가요? 자살이 아니라?” (15쪽)


“사토미한테는 사귀는 남자가 있었어요.”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 “아뇨. 이름이나 직업은 몰라요. 물어봐도 사토미는 절대로 알려주지 않았어요.” (24쪽)



  이 만화책에 나오는 ‘개코형사 원코’ 같은 사람은 찾아보기 매우 어렵거나 아예 없다고 할 만합니다. 아무리 형사가 자유롭게 옷을 차려입고 다닌다고 하더라도 ‘팔랑치마’나 ‘꽃옷’이 아니라면 안 걸치는 형사는 그야말로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할 테니까요. 게다가 팔랑치마나 꽃옷만 입는 여형사는 개코입니다. 냄새를 아주 잘 맡지요. 사건 실마리를 찾을 적마다 머리를 박고 코를 킁킁거리면서 냄새를 맡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을 마주할 적에는 옷차림으로 마주할 수 없습니다. 네가 양복을 빼입었기에 너를 대단하게 볼 까닭이 없습니다. 네가 민소매에 깡똥치마를 입었기에 너를 가벼이 볼 까닭이 없습니다. 네가 새까만 차를 몰고 다니기에 너를 우러러볼 까닭이 없습니다. 네가 두 다리로 걷거나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기에 너를 하찮게 볼 까닭이 없습니다.


  옷차림뿐 아니라 얼굴이나 몸매로도 이와 같아요. 잘생기거나 예쁘게 보이면 더 마음에 들어야 하지 않아요. 못생기거나 안 예쁘게 보이니까 마음에 안 들어야 하지 않습니다.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이 있는 사람일 뿐,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아닙니다. 돈이 없는 사람은 돈이 없는 사람일 뿐, 나쁜 사람도 좋은 사람도 아니에요. 우리는 서로서로 마음으로 마주합니다. 너는 내 마음을 읽고, 나는 네 마음을 읽습니다.



“잘 들어! 냄새는 증거가 되지 않아! 상대는 전 법무부 대신의 사위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접근하면 어떡해!” “윽! 그게 뭐예요! 과장님은 상대가 대단한 사람이라면 얼렁뚱땅 넘어가 줄 거예요?” (59쪽)



  만화책 《개코형사 ONE코》가 사회에서 흔히 엿볼 수 있는 ‘편견·선입관’을 깨려는 작품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이 만화는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편견이나 선입관은 아주 우습게 여기면서 이야기를 잇습니다. 무엇보다도 만화책 《개코형사 ONE코》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꾸리고 싶은 작품입니다. 딱딱하거나 무겁거나 칙칙하게 흐르는 이야기가 아니라, 밝으면서 가볍고 신나는 웃음을 짓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다만, 이러한 얼거리이면서도 만화 소재는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이지요.



“저기, 그런 거짓말은 하면 안 돼. 유서를 숨기고 멋대로 휴대폰을 쓰는 것과는 달라. 죄를 물을 수도 있어.” “알았어요?” “대강은. 그래도 형사니까.” “놀랐어요. 하나모리 씨가 그런 우수한 형사였다니. 하나모리 씨만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81∼82쪽)


“아마 옥상에서 아래를 보고 사토미를 발견했겠죠. 하지만 그 남자는 사토미한테는 가 보지도 않고 서둘러 도망쳤어요. 최악이죠? 사토미는 왜 그런 녀석을.” “외모는 착해 보였으니까.” (89쪽)



  팔랑이는 꽃치마 입는 개코 형사는 겉모습만 이와 같을 뿐입니다. 개코 형사가 개코가 아니라 번뜩이는 눈썰미로 사건을 푼다면 어떻게 바라볼 만할까요? 여러모로 ‘한결 보기 좋’거나 ‘멋있다’고 할 만할까요? 코가 아닌 귀가 밝아서 사건 실마리를 잘 푼다면, 이때에는 어떻게 바라볼 만할까요? 머리가 뛰어나서 ‘재빨리 돌아가는 머리’로 사건 실마리를 잘 푼다면? 잽싼 달리기나 몸놀림은? 빼어난 주먹힘이나 엄청난 사격 솜씨는?


  너무 마땅한 노릇인데 개코형사는 냄새만 맡습니다. 그래도 형사이니까 여러모로 형사로서 다른 대목에서도 형사 노릇을 하지만, 개코형사는 ‘개코’를 넘어선 대목에서는 그냥저냥 ‘꽃치마순이’입니다.



“실은 제가 함정에 빠졌다고 생각하니 화가 나서, 경찰보다 먼저 범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뭐야, 함정이라고?” “범인 녀석은 나한테 혐의가 걸리도록 꾸민 거예요.” “그 이유가 뭔데?” “제가 그 시간에 온다는 걸 알고서 일부러 현관문을 열어 놨고, 그리고 그 향수. 선반 위의 병이 그렇게 방에 떨어져 있는 건 이상하잖아요.” (147쪽)



  아침에 설거지를 하고 쌀을 씻어서 불립니다. 밥을 끓일 때까지 아이들은 기다려야 하니 능금을 한 알 썰어서 아이들한테 줍니다. 두 아이는 능금 반 알씩 받아 쥐고는 마당에서 놀다가 대문을 열고 나가서 고샅에서 놉니다. 가을볕은 따뜻하고 가을들은 샛노랗습니다. 다 함께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고, 저마다 즐거운 놀잇거리나 일거리를 찾으면서 부산스레 움직입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언제나처럼 꽃치마를 스스로 챙겨 입으면서 만화책 주인공처럼 꽃치마순이가 됩니다. 작은아이는 언제나처럼 한손에 반드시 자동차 장난감을 쥐면서 자동차돌이가 됩니다. 나는 부엌돌이도 되고 빨래돌이도 되다가 청소돌이나 밥돌이가 됩니다. 마당에서 풀을 뜯으면 풀돌이가 되고,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우면 자전거돌이가 됩니다.


  즐거움을 찾을 적에 웃습니다. 즐겁게 일하거나 놀 적에 노래가 흐릅니다. 우리는 이 어여쁜 별에서 저마다 재미나고 즐거운 꿈을 찾아서 순이와 돌이로 삶을 짓는 이웃으로 하루를 엽니다. 살림을 돌보다가 문득 돌아보면서 빙그레 웃음지을 수 있는 만화책 한 권이 있어서 반갑습니다. 4348.10.14.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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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여우 10
오치아이 사요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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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61



‘어떤 사랑’을 받고 싶은가요

― 은여우 10

 오치아이 사요리 글·그림

 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5.8.31. 5000원



  사랑을 받고 싶으면 사랑을 받으면 됩니다. 사랑을 주고 싶다면 사랑을 주면 됩니다. 다만, 하나를 알아야 합니다. 사랑을 주고받으려는 뜻이 있으면 사랑을 주고받으면 될 노릇이지만, 사랑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사랑을 받고 싶다고 해서 ‘받는 사랑’은 남이 나한테 선물을 했기에 받을 수 있는 사랑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속에서 길어올린 사랑입니다. 사랑을 주고 싶다고 해서 ‘주는 사랑’은 내가 너한테 선물로 건넬 수 있기에 주는 사랑이 아니라, 네 마음속에 잠자던 사랑을 북돋우거나 깨워서 일어난 사랑입니다.



“미안해. 괜히 신경 쓰게 해서. 아저씨한테도.” “괜찮아, 괜찮아. 이런 일도 있지!” (24쪽)


‘신사가 집이면 어떤 느낌일까. 나는 마코토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네.’ (42쪽)



  오치아이 사요리 님 만화책 《은여우》(대원씨아이,2015) 열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해 봅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좋아하는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할 적에 이 마음은 거짓이 아니에요. 참입니다. 다만,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너를 사랑하는 내 마음’이 다른 사람들 마음보다 크지 않아요. 또 작지도 않지요. 네가 나한테서 사랑을 받으니까 네가 가장 즐겁거나 기쁘지 않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할 적에는 내 마음이 움직일 뿐입니다. 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요. 이 대목을 잘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 할 적에는 서로가 서로를 스스로 아끼면서 삶을 곱게 짓는 슬기로운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함께 어깨동무를 하면서 하루를 짓는 사이요, 함께 이 길을 걸으면서 씩씩하게 웃고 노래하는 사이라는 뜻입니다.



“나야말로 우리 마코토와 늘 사이좋게 지내 줘서 고맙구나. 앞으로도 마코토 잘 좀 부탁한다.” (62쪽)


“너, 마코토 좋아해?” “안 좋아해.” (71∼72쪽)



  내가 나를 사랑할 줄 알 때에 비로소 내 몸짓이 바뀝니다. 내 몸짓이 바뀔 적에 나하고 마주하는 네가 이 몸짓을 문득 알아챕니다. 내 달라진 몸짓을 알아챈 너는 너 스스로도 네 몸짓을 새롭게 가꾸고 싶다는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때에 너는 너대로 네 마음속에서 그동안 잠자던 사랑을 일으키지요. 나는 나대로 내 사랑이고 너는 너대로 네 사랑이기에 너와 나는 ‘한사랑’으로 만날 수 있어요.


  다시 말하자면, 주고받는 사랑이 아닙니다. 함께 있으면서 하나로 흐르는 사랑입니다. 함께 어우러지면서 하나로 어여쁜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너를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건 말건 대수롭지 않아요. 사랑은 홀로 차지하지 못합니다. 아니, 사랑을 홀로 차지하겠다고 하는 마음이야말로 ‘사랑이 아닌’ 바보짓이지요. 사랑은 ‘소유’가 아닙니다.



‘다다음주. 엄마의 기일. 아빠는 나와 비슷한 나이에 엄마를 만났다고 했어. 엄마는 내 나이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115쪽)


“바보라 해도, 그게 나쁜 건 전혀 아니니까. 지금의 히와코는 정말 예쁜걸.” (162쪽)



  만화책 《은여우》에 나오는 풋풋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는 삶일까요? 마음이 따뜻하게 피어나는 기운을 느끼는 아이들은 이 기운이 무엇이라고 알아챌 수 있을까요?


  내가 네 곁에 있으면서 너를 지켜보거나 보살필 수 있자면, 나는 먼저 나를 제대로 바라보면서 나를 지키거나 보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나 스스로 나를 지키거나 보살피지 못한다면, 나는 네 곁에 서지도 못해요.


  스스로 꿋꿋하면서 씩씩한 숨결이기에 내가 나를 사랑합니다. 스스로 싱그러우면서 맑은 넋이기에 내가 나를 보듬으면서 아낍니다. 사랑은 내가 나를 어루만지면서 나를 둘러싼 모든 숨결하고 넋을 어루만지는 바람하고 같습니다.



“긴타로도 알고 있었으면 진작 알려줬으면 좋았을 텐데.” “에츠코한테서 들었으니 이제 됐잖아. 그게 전부야.” “아빠랑 엄마 사이를 반대했다는 얘기는 해 줬으면서.” “윽.” “긴타로는 여기서 줄곧 많은 것들을 봐 왔구나.” “나무도 숲도 신사도, 옛날부터 있던 일 전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전해 주지 않아. 우리는 그저 잠자코 지켜볼 뿐이야. 다른 인간은 아무도 우리에게 뭔가를 들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어.” (205∼206쪽)



  사랑은 거머쥐지 않습니다. 사랑은 마음속에서 일으킵니다. 사랑은 불쑥 찾아오거나 문득 지나가지 않습니다. 사랑은 늘 마음속에서 나를 기다립니다. 눈을 뜬다면 사랑을 봅니다. 눈을 감는다면 사랑을 못 봅니다. 눈을 뜨고 마음을 열기에 사랑이 흐릅니다. 눈도 안 뜨고 마음도 안 연다면 사랑은 흐르지 않아요.


  ‘어떤 사랑’을 받고 싶은지 생각해 보셔요. ‘어떤 사랑’으로 내가 나를 아끼려 하는지 생각해 보셔요.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어떤 사랑’을 느끼면서 저마다 스스로 기쁘며 아름다운 나날을 가꾸도록 손을 내밀고 싶은지 생각해 보셔요. 4348.10.12.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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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 동경대 가다! 20 (신장판) - KBS 드라마 '공부의 신' 원작
미타 노리후사 지음, 김완 옮김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62



서울대에 들어가도 꿈이 없으면 바보짓

― 꼴찌, 동경대 가다! 20

 미타 노리후사 글·그림

 김완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2010.1.4. 4500원



  꼴찌는 꼴찌입니다. 꼴찌이면서 서울대에 갈 수 있고, 꼴찌이면서 고등학교마저 그만둘 수 있습니다. 어느 길이든 다 갈 수 있습니다. 으뜸은 으뜸입니다. 으뜸이면서 서울대에 갈 수 있고, 으뜸이면서 고등학교를 그만둘 수 있습니다. 어느 길이든 마음대로 갈 수 있습니다.


  서울대에 가거나 안 가거나 대수롭지 않습니다. 스스로 가려는 길이기에 갑니다. 스스로 가려는 길이 아니지만 졸업장이나 이름값을 얻으려고 서울대에 간다면 참으로 덧없으면서 괴롭습니다.


  졸업장으로 무엇을 할까요? 이름값으로 무엇을 하나요? 졸업장은 삶을 밝히지 않습니다. 이름값은 사랑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시험 사이사이 쉬는 시간에 지난 과목 답을 맞춰 보는 짓을 절대 하지 말도록. 실수한 걸 알아봤자 동요만 할 뿐, 해결할 방법도 없다. 시간 낭비야. 끝난 과목은 머리에서 지워 버리고 남은 일들만 생각해. 시험에 임하는 자세는 언제나 ‘앞으로’다!” (41쪽)


“강자는 자신을 믿고 뻔뻔해질 수 있지만, 평범한 사람이 그러려면, 각오를 다지는 수밖에 없어.” (70쪽)



  미타 노리후사 님 만화책 《꼴찌, 동경대 가다》(랜덤하우스코리아,2010) 스무째 권을 읽으면, 이 만화책 두 주인공이 드디어 동경대 시험을 치르는 모습이 나옵니다. 두 아이는 동경대 시험을 치르려고 한 해 내내 죽어라 시험공부를 했습니다. 두 아이는 다른 대학교는 거들떠보지 않고 오로지 동경대만 바라보았습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두 아이는 ‘졸업장’ 때문에 동경대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한 아이는 등록금이 쌀 뿐 아니라 새로운 삶을 스스로 짓는 꿈으로 나아가려는 첫걸음으로 동경대를 바라봅니다. 다른 아이는 집안 식구들 눈초리를 받지 않는 홀가분한 삶을 생각할 뿐 아니라 스스로 옭아매던 울타리를 뛰어넘으려는 첫걸음으로 동경대를 바라봅니다.


  두 아이한테는 ‘굳이 동경대가 아니어’도 됩니다. 그러나 ‘애써 동경대를 고른’ 까닭은 ‘사회에서 첫손으로 꼽는 대학교’라고 하는 ‘울타리’를 ‘스스로’ 뛰어넘거나 허물고 싶기 때문입니다. ‘자기 한계’라고 하는 울타리를 스스로 없애면서 ‘내 꿈’을 이제부터 키우고 싶기 때문입니다.



“결코 새로운 문제는 나오지 않아. 평소 풀던 연습문제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것뿐이다. 공부건, 스포츠건 연습대로만 하면 대체로 성공하게 돼 있어. 세상 웬만한 일들은 평소대로만 하면 잘 되는 법이야.” (92쪽)


“자는 것도 먹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공부에 몰두한다. 끈질기게, 무아지경이 돼서 죽을 만큼 공부한다!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거야.” (147쪽)



  한국에서 서울대에 들어가도 꿈이 없으면 바보짓일 뿐입니다. 일본에서 동경대에 들어가도 꿈이 없으면 똑같이 바보짓이에요. 이리하여, 한국이나 일본 모두 서울대나 동경대를 나오고 나서 바보짓을 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손꼽히는 대학교를 마쳤으나 슬기롭지 못한 몸짓과 말짓으로 바보짓을 일삼는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사람들은 왜 바보짓을 할까요? 생각을 키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 생각을 키우지 않았을까요? 아직 꿈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꿈이 없을까요? 시험공부만 바라보느라 정작 꿈을 돌아볼 겨를이 없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교사에 대한 신뢰를 잃는 순간은 언제일까? 그건, 이제까지 들었던 이야기가 거짓말이란 걸 알았을 때야.” (178쪽)


“사람은 일에서건 무엇에서건 끝마무리를 딱 지어 두려 하지만, 이건 에너지를 비효율적으로 쓰는 셈이지. 조금만 남겨두고 다음날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이건 스트레스를 쌓지 않고 매사를 원활히 진행하는 비결이야.” (202쪽)



  만화책 《꼴찌, 동경대 가다》를 읽으면 시험공부를 어떻게 맞이하고 수험생으로서 어떤 마음이 될 때에 씩씩할 수 있는가 같은 대목을 잘 엿볼 수 있습니다. 대학입시를 앞둔 수험생이라면 이 만화책을 찬찬히 읽을 만하리라 느낍니다.


  다만, ‘입시 비결’을 바라면서 이 만화책을 읽는다면 부질없겠지요. ‘입시 비결’이 아닌 ‘내 꿈 찾기’를 생각하면서 이러한 만화책을 읽어야지요. 참고서나 교과서나 자습서나 문제집을 왜 들여다보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시험점수를 잘 맞으려고 들여다보는지, 아니면 내 꿈으로 가는 길에 ‘시험이라는 울타리’를 넘으려는 마음으로 시험공부를 하는지, 똑똑히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험만 잘 치르는 기계가 아니라, 시험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 삶을 사랑으로 가꾸는 슬기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아름다운 숨결로 거듭납니다. 대학입시는 ‘끝’이 아니라 ‘첫단추’일 뿐입니다. 4348.10.7.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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