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나 La Habana, Cuba
이동준 지음 / 호미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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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읽기 358


관광산업 없어도 사람들이 찾아가는 나라
― 아바나 La Habana, Cuba
 이동준 글·사진
 호미 펴냄, 2017.3.31. 3만 원


  뉴욕이나 도쿄 한복판으로 나들이를 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뉴욕이나 도쿄 한복판 나들이라면 여행보다 관광에 가까울 테고, 이곳에서는 주머니에 두둑히 챙긴 돈으로 무엇을 사거나 쓰기 마련입니다.

  티벳이나 네팔로, 또는 부탄이나 쿠바로 나들이를 가는 분들도 많습니다. 티벳 네팔 부탄 쿠바로 찾아가는 나들이라면 관광보다 여행에 가까울 테며, 더 헤아리면 마실이라고 할 만하지 싶어요. 이곳에서는 돈을 써서 무엇을 사려는 마음이 아닌, 삶을 되돌아보는 기쁨을 찾아보려는 길이지 싶습니다.

  관광객이 돈을 쓰도록 이끄는 관광산업이 나라살림이나 마을살림에 도움이 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돈을 쓰는 관광객 발길이 뚝 끊어진다면? 관광객이 돈을 안 쓴다면? 그리고 관광객이 오가면서 남기는 쓰레기는? 관광산업에서는 이러한 얼거리를 얼마나 생각할까요?

  돈을 안 쓰는 여행객이라면 돈으로 나라살림이나 마을살림을 북돋아 주는 일은 매우 드물리라 생각해요. 그런데 돈을 안 쓰는 여행객이 조용히 다녀가든 안 다녀가든, 조용히 제살림을 짓는 나라에서는 대수로울 일이 없습니다. 곱게 가꾸는 나라나 마을일 적에는 늘 홀가분하게 제살림을 지어요. 무슨 대단한 시설이나 투자나 개발이 없어도 사람들이 즐겁고 홀가분하게 살아가지요.


오늘날 쿠바를 단적으로 설명하는 키워드는 무상 의료, 무상 교육, 최저생계비 보장 그리고 유기농업을 꼽고 있다. 비록 가난하지만 행복 지수는 높은 나라, 비록 고단하게 일해야 하지만 빈부 격차가 크지 않고 범죄율이 낮은 안정된 나라, 자유로운 영혼이 음악과 춤을 즐기는 정열의 나라, 쿠바. (20쪽)


  사진을 찍는 이동준 님은 어느 날 ‘부에노 비스타 소설 클럽’이라는 영화를 보았다고 해요. 이 영화에 흐르는 마을살이, 마을사람, 마을노래를 비롯해서 바람과 물결과 집과 골목과 자동차 모두에 흠뻑 빠졌다고 합니다. 이 사랑스럽도록 조용하면서 기운차는 곳을 꼭 두 발로 디뎌 보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고 합니다.

  저토록 낡아빠져 보이는 건물이 왜 낡아빠진 집이 아닌 따스한 보금자리로 보이는지 궁금했다고 해요. 겉으로 허름하거나 가난해 보이는 사람들이 왜 저토록 신나고 아름답게 노래하고 춤을 누릴 수 있는지 궁금했다고 해요. 살림살이를 정갈하게 매만지는 손길은 어디에서 비롯했는지 궁금했다고 합니다.

  사진책 《아바나 La Habana, Cuba》(호미,2017)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도무지 생각해 볼 수 없던 모습을 어디에서나 쉽게 마주하는 쿠바에서도 아바나라는 고장을 이야기합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곁에서 엄청난 무역제재를 했다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작으면서 조용한 제살림 짓기에 나서면서 어깨동무하는 나라를 이룬 터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어우러지는가를 이야기합니다.


빨강, 파랑, 노랑 같은 원색을 띤 이들 자동차들은 대개가 1950년대의 미국산 자동차들이다. 비록 오래되어 낡았지만 살뜰한 손질로 여전히 아름답게 빛나는 구식 자동차들이 거친 엔진 소리를 내며 거리를 질주한다. (40쪽)


  100층이 넘는 높다란 건물이 줄줄이 선 곳이어야 놀랍지 않습니다. 빼곡하게 들어찬 높은 건물 사이로 수많은 사람이 물결처럼 쏟아지는 곳이어야 놀랍지 않습니다. 길거리에 자동차가 가득해야 놀랍지 않습니다. 가게마다 불빛이 번쩍거리면서 값비싼 물건이 넘쳐야 놀랍지 않습니다.

  관광산업이란 제살림하고 아주 동떨어진 모습이지 싶습니다. 관광산업에 맞추어 일자리를 얻거나 돈을 버는 사람들은 제살림을 못하는 하루가 되지 싶습니다. 관광객한테 보여주려고 꾸미거나 세우는 시설은 마을사람한테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될 만하지 싶습니다.

  으리으리하게 짓는 별 몇 개짜리 호텔이나 식당은 마을사람이 여느 때에 가벼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이 될까요? 으리으리한 쇼핑몰이나 백화점은 참말로 마을사람이 여느 때에 손쉽게 드나들 수 있는 자리가 될까요? 더 넓은 찻길이나 더 빠른 고속도로는 참으로 마을사람 살림살이에 보탬이 될 만할까요?

  사진책 《아바나》는 우리 한국 사회하고 사뭇 다른 쿠바가 왜 다른가를 넌지시 보여줍니다. 한국에 번쩍거리는 높은 건물이나 값비싼 새 자동차가 많더라도 정작 한국에 무엇이 없는가를 찬찬히 보여줍니다. 한국에 가수나 가수 지망생이 많더라도 막상 한국에 무엇이 없는가를 하나하나 보여줍니다.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더니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었으니 노인에게 돈을 주라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노인은 앞이 보이지 않는 맹인이었다. 노인을 향해 반사적으로 사진기를 들이댄 것이 부끄럽고 민망해, 며칠 전에 사 둔 시가 하나를 노인의 낡은 셔츠 주머니에 넣어 드리고는 비록 앞을 보지 못하지만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냈다. (102쪽)


  사진책 《아바나》에 흐르는 아바나 사람들(쿠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삶과 산업을 생각해 봅니다. 나라에서는 관광산업에 돈을 들여서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라에서는 마을살림에 돈을 들여서 마을사람이 넉넉하고 즐겁게 살도록 북돋울 수 있습니다.

  관광산업을 일으키자면 돈을 들여야(투자를 해야) 하니, 관광객이 돈을 써야만 하는 얼거리로 흐르고, 마을사람은 ‘돈을 쓸 손님(소비자)’을 기다리는 하루가 됩니다.

  이와 달리 마을살림을 가꾸는 데에는 그리 큰 돈을 들이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마을사람 스스로 제살림을 짓기 마련이기에, 관광객이나 여행객이 있든 없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스스로 마을을 살찌우고 북돋우면서 즐겁게 어우러져요.

  《아바나》에 담긴 살림과 사람과 웃음과 노래를 마주하면서 담양군 ‘달빛무월마을’이라는 작은 시골이 떠오릅니다. 작은 고장 담양에서도 작은 시골인 무월마을이라는 곳은 마을사람 스스로 시골집과 시골길을 가다듬고 멧자락하고 숲정이를 돌봅니다. 다른 아무런 문화시설이나 관광시설이 없으나 이 작은 시골마을을 찾아오는 분들은 넉넉한 마음을 누릴 수 있다고 해요. 돈을 쓰지 않아도, 뭔가 사지 않아도 기쁜 마음이 된다고 해요.

  관광산업이나 첨단산업으로 키우는 곳에서는 어떤 사진을 찍으며 어떤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까요? 제살림으로 스스로 즐거운 노래가 피어나는 곳에서는 어떤 사진을 찍으며 어떤 이야기를 길어올릴 수 있을까요?

  스피커로 유행노래를 크게 틀어놓지 않아도 사람들 누구나 어디에서나 즐거이 노래를 부르면서 웃음짓는 마을이 한국에서도 하나둘 늘어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17.8.15.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책 읽기/사진비평)

* 이 글에 붙인 사진은 호미출판사에서 고맙게 보내 주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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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景)-신미에서 경진까지 - 1991-2000 눈빛사진가선 19
정동석 지음 / 눈빛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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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읽기 357



똑같지도 비슷하지도 않은 모습

― 경景, 신미에서 경진까지 1991-2000

 정동석 사진

 눈빛 펴냄, 2015.11.20. 12000원



배추는 배추끼리, 잡초는 잡초끼리,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 자라는 것인 줄로만 알았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보통 생각하고 산다. 허나 배추와 잡초, 벼와 피가 경쟁을 하며 또 도우며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머리말)



  한 가지만 심어서 기르는 논이나 밭에서는 잡풀 때문에 속을 썩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농약을 듬뿍듬뿍 자주 칩니다. 한 가지가 저마다 엇비슷하게 잘 자라도록 하려고 비료를 가득가득 주지요. 때로는 비닐을 덮어씌워서 오직 한 가지만 자라도록 하기 마련입니다.


  사람이 따로 심어서 기르는 풀이기에 남새요, 사람이 따로 안 심어도 자라는 풀이기에 나물입니다. 남새도 나물도 사람이 먹는 풀입니다. 모두 풀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풀은 한 가지만 심어서 기르는 논밭에서는 모두 잡풀(잡초)이 되고 맙니다.


  한국 사회는 어떤 길을 갈까요? 한국 사회는 다 다른 사람이 저마다 다른 숨결로 즐겁게 살아가면서 어우러지는 길을 갈까요? 아니면 모두 똑같거나 엇비슷한 몸짓이나 모습으로 서울에서 살며 돈을 벌어야만 하는 길을 갈까요?


  사진책 《경景, 신미에서 경진까지 1991-2000》은 이 나라 시골이나 숲을 사진으로 가만히 찍어서 보여줍니다. 사람 손을 타는 논밭이나 시골이나 숲이 어떤 모습인가를 보여줍니다. 이 사진책은 시골 들이나 멧골을 사진으로 보여주는데, 곰곰이 따지자면 서울처럼 커다란 도시를 찍어서 보여주는 모습하고도 닮아요. 건물이나 아파트가 풀이나 나무로 드러나고, 사람물결이 흙으로 나타날 뿐입니다.


  땅에는 수많은 씨앗이 조용히 기다립니다. 온갖 씨앗은 철 따라 깨어나려고 가만히 숨을 죽이면서 기다립니다. 봄에는 이 풀이 돋고 여름에는 저 풀이 돋아요. 봄 가운데 삼월에 오르거나 사월에 오르거나 오월에 오르는 풀이 달라요. 몇 해를 묵었다가 깨어나는 씨앗이 있고, 열 해나 스무 해쯤 묵고서 깨어나는 씨앗이 있지요. 우리 곁을 차분히 돌아보면서 다 다른 씨앗(사람)을 마주할 수 있다면, 우리가 사진으로 찍는 모습은 무척 아름다우면서 새로우리라 생각합니다. 2017.8.12.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사진읽기/사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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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의 저녁
오규원 지음 / 눈빛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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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읽기 356



글밭이 텃밭으로 바뀌는데

― 무릉의 저녁

 오규원 글·사진

 눈빛 펴냄, 2017.2.2. 25000원



문득, 노래하고 싶을 때가 있다. 보이지는 않지만, 문득 어디선가, 빛이라든가 어둠이라든가 나무라든가 돌멩이라든가 문이라든가가 노래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다. 그러한 것들이 노래를 듣고 싶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6쪽)



  시를 쓰는 오규원 님이 사진을 찍으며 사진말을 펼칩니다. 이녁 삶자리에서 바라본 시골 이야기를 사진으로 살포시 담고, 이 사진에 맞추어 이녁이 살아온 이야기를 적바림합니다. 《무릉의 저녁》(눈빛,2017)은 이녁 스스로 가장 느긋하면서 넉넉한 마음이 되는 삶자리에서 사진하고 글이 태어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랫동안 글하고 책으로만 새로운 글을 쓰는 살림을 이었다면, 이제는 땅하고 하늘을 마주보는 자리에서 새로운 글을 쓰는 살림이라고 합니다. 글하고 책만 보면서 글을 쓸 적하고, 땅하고 하늘을 보면서 글을 쓸 적은 사뭇 다르겠지요.


  모를 노릇일 텐데, 시인 할배가 아이를 돌보면서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어 본다면 이때에도 사뭇 달라지겠지요. 글하고는 매우 다르고 책하고도 무척 동떨어진 새로운 자리를 보고 느끼고 받아들이겠지요.


  다만 《무릉의 저녁》을 보면 글치레처럼 사진치레를 하려는 손길이나 눈길이 곳곳에 드러납니다. 힘을 잔뜩 들인다고 해서 더 나은 글이 되지 않습니다. 멋을 부린다고 해서 더 나은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글밭이 아닌 텃밭을 만나듯이, 살구 대추 감 상추 쑥갓 호박 옥수수를 만나듯이, 흙을 만날 적에는 흙내음이 나는 낱말을 가려서 흙내음이 나는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으면 한결 투박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을 만하지 싶습니다. 2017.8.11.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읽기/사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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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속의 강
한영수 지음 / 한스그라픽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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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읽기 355


옛 서울 냇가로 마실을 가다
― 시간 속의 강
 한영수 사진
 한선정 엮음
 한그라픽스 펴냄, 2017.5.1. 4만 원


  여름에 여름 휴가를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서울 같은 도시에서 사는 분들이 여름 휴가를 떠납니다. 일손을 쉬고서 다른 고장으로 나들이를 갑니다.

  이와 달리 여름에도 여름 휴가를 못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간직으로 일하는 사람은 좀처럼 여름 휴가를 받기 어렵습니다.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사람이 있고, 살림이 벅찬 사람이 있습니다.

  더 생각해 보면 시골사람은 따로 여름 휴가를 떠나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살며 짐승을 치는 분이라면 언제나 짐승 곁에 머물며 짐승을 돌보아야 합니다. 논밭을 가꾸는 시골지기도 논밭 곁에서 지내지요.

  이 여름날에 사진책 《시간 속의 강》(한그라픽스,2017)을 읽습니다. 한영수문화재단에서 펴낸 한영수 님 사진책입니다. 어느덧 세 권째 나오는 한영수 님 사진책이에요. 첫째 권 《Seoul, Modern Times》가 2014년에 나왔고, 둘째 권 《꿈결 같은 시절》이 2015년에 나왔습니다. 셋째 권인 《시간 속의 강》이 2017년에 나오는데, 세 사진책은 지나온 우리 삶을 서울이라는 고장을 바탕으로 삼아서 보여줍니다. 이제 사진으로 남은 아득한 옛 살림을 보여주지요.

  《시간 속의 강》은 1950∼60년대라는 시간이 흐르는 물줄기를 보여줍니다. 이 물줄기는 서울이라고 하는 터전에서 한강이라는 시간과 발자국과 사람과 마을을 보여줍니다.

  사진책 《시간 속의 강》에 나오는 한강 둘레는 참말로 어느 시간이 흐르는 물줄기요 냇가이며 살림자리일까요? 사진 밑에 1950년대 어느 해라든지 1960년대 어느 해라는 말을 안 붙인다면 도무지 떠올리기 어려운 서울 한강 모습이지 싶습니다. 노들섬 뚝섬 마포 한남동 같은 이름을 안 붙인다면 그곳이 참말로 그곳이 맞는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할 만한 서울 한복판 모습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1950∼60년대에 서울 한강에서 얼음을 지치며 놀던 일을 떠올리던 분들조차 머리에서 잊은 모습이 이 사진책에 흐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1950∼60년대에 서울 한강이 얼어붙은 날 얼음을 켜서 소가 끄는 수레에 싣고 내다 팔려고 끌고 가는 일을 하던 분들조차 다 잊은 모습이 이 사진책에 담겼다고 할 수 있어요.

  요즈음 한강물을 두 손으로 떠서 마시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 한강물을 그대로 마시는 분은 없겠지요? 그런데 1950∼60년대에는 얼어붙은 한강에서 엄청나게 큰 얼음을 톱으로 켜서 썼대요. 게다가 이 얼음을 소가 끄는 수레에 실었어요.

  한강 얼음에 소수레입니다. 한강에서 얼음낚시를 할 뿐 아니라, 스케이트를 지칩니다. 한강에 넓게 펼쳐진 모래밭에서 햇볕을 쬘 뿐 아니라, 물놀이를 즐깁니다.

  그리고 한강물에서 빨래를 합니다. 한강을 옆에 끼고 살림집을 짓습니다. 어른들은 물에서 일하고, 아이들은 물에서 놉니다. 한강물 곁에서 마을을 이루어 삽니다. 한강을 어여쁜 냇가로 여기면서 이웃하고 사귀고 동무하고 어우러져요. 냇물이 흐르는 소리를 듣고 모래밭을 밟아요. 냇가에서 풀내음을 마시고 새소리를 들어요. 서울 한복판이라고 할 테지만, 이 서울 한복판에서 시골스러운 기운을 듬뿍 먹으면서 아이들이 자랐다고 합니다.

  이제 서울이라고 하는 고장은 어마어마한 개발로 옛모습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서울에서 풀집이나 논밭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나마 궁터나 성터는 남고, 기와집도 조금 남지요. 빨래터나 우물터나 대장간이나 길쌈터는 찾아볼 길이 없어요. 버드나무 그늘에서 멱을 감던 일은 그야말로 사진에나 남겨진 모습이 될 만합니다. 뱃사공이 길손을 실어 나르던 일은 까마득한 옛날 옛적 모습으로 사진에만 겨우 새겨진 자국으로 흐릅니다.

  그러나 서울도 예전에는 시골과 같았다고 해요. 서울도 얼마 앞서까지는 시골스러웠다고 해요. 서울에서 다른 고장으로 여름 나들이를 떠나지 않아도 되었다고 해요. 서울에서는 한강에서 여름을 나고 여름을 누리며 여름을 노래했다고 합니다.

  한강을 둘러싼 어마어마한 찻길을 걷어내고서 이곳에 다시 모래밭이 펼쳐지도록 바꿀 수 있을까요? 앞으로 서울사람이 한강에서 물놀이를 하고 모래밭에서 모래놀이를 할 수 있을까요? 얼어붙은 한강에서 얼음을 켜거나 얼음지치기를 할 날을 새삼스레 맞이할 수 있을까요? 흐르는 냇물을 두 손으로 떠서 마음껏 마실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이 여름에 시원한 다른 고장으로 나들이를 떠나지 못하신다면, 어여쁜 물줄기하고 모래밭이 눈부신 한강을 사진으로 만나는 《시간 속의 강》을 곁에 두고서 펼쳐 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서울에도 한때 멋스럽고 신나는 물놀이터가 있은 줄, 누구나 걸어서 여름과 겨울을 누리던 냇물하고 냇가가 있은 줄 되돌아봅니다. 2017.8.4.쇠.ㅅㄴㄹ

* 이 글에 붙인 사진은 한영수문화재단에서 보내 주셨습니다. 고맙게 싣습니다 *

(숲노래/최종규 . 사진비평/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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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보는 눈 - 기록하는 사진작가 도로시아 랭 다큐멘터리 인물그림책
바브 로젠스톡 지음, 제라드 뒤부아 그림, 김배경 옮김, 최종규 추천 / 책속물고기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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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읽기 354


이웃을 마음으로 바라보며 사진을 찍다
― 진실을 보는 눈, 기록하는 사진작가 도로시아 랭
 바브 로젠스톡 글
 제라드 뒤부아 그림
 김배경 옮김
 책속물고기 펴냄, 2017.7.5. 12000원


  옥수수를 씨앗으로 심어서 돌보아 본 적이 없다면, 옥수수싹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저도 예전에는 이러했습니다. 수박이나 수세미를 씨앗으로 심어서 돌보아 본 적이 없다면, 해바라기나 민들레를 씨앗으로 심어서 돌보아 본 적이 없다면, 벼나 밀을 씨앗으로 심어서 돌보아 본 적이 없다면, 수박싹도 수세미싹도 해바라기싹도 민들레싹도 벼싹도 밀싹도 알 길이 없어요.

  씨앗에 실 같은 뿌리가 내리면서 조그마한 싹이 터서 올라옵니다. 어린 싹을 모르면 그냥 밟고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옥수수싹이든 밀싹이든 풀싹이든 뭐가 뭔지 모르니까요. 꽃이 핀 모습을 보고는 참으로 곱다고 말하더라도, 꽃이 피기까지 어떻게 싹이 오르고 줄기가 솟으며 잎이 돋는가를 살피지 못한다면, 그 이쁜 꽃이 새싹이던 무렵 그만 밟아서 죽일 수 있어요.


도로시아는 눈이 남달랐어요.
잿빛이 도는 초록 눈동자로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는 세상을
볼 수 있었거든요. (2쪽)


  풀싹을 보는 눈이란 이웃을 보는 눈입니다. 풀싹을 눈여겨보는 마음이란 이웃을 눈여겨보는 마음입니다. 겉모습을 훑는다고 해서 이웃을 알 수 없어요. 옷차림을 살핀다고 해서 이웃을 알 길이 없지요.

  예부터 이런 일이 있어요. 먹을거리가 없는데 애먼 불을 땐다고 하지요. 굴뚝에 연기가 솟게 한다잖아요. 밥을 하지도 않는데 불을 때어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도록 한다고 해요.

  얼핏 보기로는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니 ‘저 집은 끼니마다 밥을 잘도 먹네’ 하고 여길 수 있어요. 속으로 헤아리는 눈이 있다면 ‘틀림없이 저 집에 먹을거리가 다 떨어졌을 텐데 어떻게 연기가 나오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습니다.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만 보고서 지나치는 사람이 있고,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로는 믿을 수 없기에 슬그머니 이웃집을 들여다보거나 찾아가는 사람이 있어요.

  우리는 어떤 눈으로 이웃을 보는가요? 우리는 어떤 몸짓으로 이웃한테 다가서는가요?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는가요? 우리는 어떤 사랑으로 이웃을 마주하려는가요?


도로시아는 어릴 때부터 얼굴을 좋아했어요.
뺨이 둥그런 엄마와 턱이 모난 아빠,
입술이 오므라든 할머니,
콧방울이 도톰한 동생까지
가족 얼굴을 가만히 지켜봤지요.
얼굴을 보노라면,
그 사람을 껴안는 느낌이 들었어요. (3쪽)


  바브 로젠스톡 님이 글을 쓰고, 제라드 뒤부아 님이 그림을 빚은 그림책 《진실을 보는 눈, 기록하는 사진작가 도로시아 랭》(책속물고기,2017)이 있습니다. 이 책은 그림책이면서 사진책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사진책이면서 그림책입니다. 또한 이 책은 이야기책이면서 삶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겉보기로는 그림책입니다. 줄거리로는 사진책입니다. 사진가 한 사람이 걸어온 길을 그림으로 담은 흐름을 가만히 살피면, 이웃을 사진으로 담은 마음을 들려주는 이야기가 살뜰합니다. 도로시아 랭이라는 사진가 한 사람 삶을 놓고서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사진가로서 어떠한 사랑으로 삶을 마주할 적에 사진을 기쁘게 찍을 수 있느냐 하는 대목을 건드립니다.


병은 나았지만, 도로시아는 오른쪽 다리를
제대로 쓸 수 없었어요.
아이들은 절뚝거리는 도로시아를 놀려댔지요.
도로시아는 꼭꼭 숨고 싶었어요.
그래서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기로 했지요. (6쪽)


  더 살펴본다면 이 그림책은 위인전일 수 있어요. 사진이라는 길에 깊고 너른 발자국을 남긴 훌륭한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남겼는가를 다룬 위인전입니다. 그러나 이 그림책은 위인전이 아닐 수 있어요. 오늘 우리는 도로시아 랭이라는 분이 남긴 사진을 톺아보면서 사진 한 장으로 참말 훌륭한 일을 했구나 하고 높이 살 수 있습니다만, 도로시아 랭이라는 분은 ‘사진 역사’를 이루려는 뜻으로 사진을 찍지 않았어요. ‘사회를 바꾸려는’ 뜻으로 사진을 찍지도 않았어요.

  도로시아 랭이라는 분은 이웃을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사진을 찍었어요. 도로시아 랭이라는 분은 이웃을 사랑하려는 손길로 다가가서 어깨동무를 하는 삶으로 사진을 찍었어요. 도로시아 랭이라는 분이 남긴 사진을 우리가 훌륭하게 여기거나 애틋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아무래도 사진에 깃든 마음과 사랑이 따스하면서 넉넉하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돈을 많이 벌었고, 결혼해서 새 가정도 꾸렸어요.
겉으로는 마음 느긋하게 사는 듯이 보였지요.
그렇지만 커다란 고민이 있었어요.
‘나는 왜 눈과 마음으로 사진을 찍지 않을까?’ (16쪽)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사진기를 손에 쥐면 누구나 사진을 찍지요. 그런데 아무나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비록 사진기를 손에 쥐었어도 궂거나 밉거나 나쁘거나 모진 마음을 품는다면, 이녁은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멋지거나 값진 기계를 손에 쥐었기에 사진을 잘 찍지 않습니다.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은 모델이나 피사체가 아닙니다.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은 모두 이웃이에요. 사진기를 손에 쥔 우리가 ‘사진으로 찍힐 사람’을 이웃으로 바라볼 수 있을 적에, 한 걸음 나아가서 사진기를 손에 쥔 우리를 둘러싼 이웃을 마음으로 아끼고 사랑으로 손을 맞잡을 적에, 비로소 사진다운 사진 하나를 얻는다고 느껴요.

  아무나 못 찍는 사진이지 싶습니다. 아무나 못 쓰는 글이지 싶습니다. 아무나 못 그리는 그림이지 싶습니다. 아무나 못 부르는 노래요 아무나 못 추는 춤이지 싶어요. 왜냐하면 먼저 마음으로 바라볼 노릇이거든요. 마음으로 바라본 뒤에는 사랑으로 품을 노릇이고요.

  마음도 없고 사랑도 없이 사진기만 쥔다면 빈 껍데기만 쏟아낼 뿐이에요. 마음과 사랑으로 사진을 안 찍고 포토샵만 만진들 멋지거나 놀라운 모습이 나올 수 없어요. 마음도 없고 사랑도 없는 채 쓰는 글은 우리 가슴을 적시거나 울리지 못해요. 마음도 없고 사랑도 없는 채 가락이나 박자나 음정이나 …… 이런 잔솜씨만 잘 맞춘다고 해서 듣기 좋은 노래가 되지 않아요. 잔솜씨만 그럴듯해 보인다고 해서 춤이라고 하지 않아요.


도로시아는 사진기를 들고 세상을 두루 살폈어요.
아버지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들판에서 쉬지 않고 일했어요.
어머니들은 천막에서 목마르고 아픈 아이들을 돌봤지요.
어떤 가족은 먼지 폭풍으로 모든 재산을 잃고 낡은 자동차에서 살았어요.
도로시아는 절뚝거리며 배고프고 아픈 사람들에게 다가갔고,
사진에 낱낱이 담아냈어요.
세상이 등 돌린 사람들을 마음으로 되새기고 싶었지요. (21쪽)


  그림책 《진실을 보는 눈》은 책이름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참을 보는 눈이기에 참을 그립니다. 참을 마주하는 눈이기에 참을 옮깁니다. 참을 바라보는 눈이기에 이웃이 겪거나 치르거나 마주하는 모든 슬픔과 응어리와 아픔과 고단함을 내 몸으로도 받아들입니다.

  참된 눈에서 참된 사진이 태어나요. 참다운 손끝에서 참다운 사진이 태어나요. 참된 몸짓에서 참된 사진 한 장이 태어나요. 참다운 사랑으로 찍는 손길이기에 참다운 사진 한 장을 찍어서 우리한테 보여줄 수 있어요.

  사회가 등을 돌리고 정부가 등을 돌린 사람들한테 마음으로 다가선 도로시아 랭 님입니다. 이웃으로서 다가갔지요. 동무로서 마주보았지요. 이웃으로서 손을 잡았어요. 동무로서 어깨를 겯었어요.

  꾸미지 않습니다. 이웃을 사진으로 찍는데 꾸며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덧바르지 않습니다. 동무를 사진으로 찍는데 덧발라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이웃이 살아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이웃이 살림하는 하루를 사진으로 옮깁니다. 이웃이 느끼는 슬픔을 사진으로 싣습니다. 이웃이 고단해 하면서 한풀 꺾인 모습을 가만히 사진으로 드러냅니다.


도로시아는 꾸준히 사진에 진실을 담아냈어요.
모든 사람은 소중하다는 진실, 서로가 서로를 살펴야 한다는 진실을요.
그렇게 도로시아는 우리 모두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요. (24쪽)


  나무는 모든 것을 사람한테 내어줍니다. 열매도 땔감도 줍니다. 몸뚱이를 통째로 주어 집을 짓도록 해 줍니다. 책상이나 걸상이 되어 줍니다. 연필이나 책이 되어 줍니다. 나무가 숲으로 우거질 적에는 싱그러운 바람을 사람한테 주지요. 마당에 나무가 우람하게 자라면 그늘을 베풀 뿐 아니라, 드센 비바람을 막아 주기까지 해요. 이러면서 온갖 새가 찾아드는 보금자리 구실을 해요. 나무 한 그루를 마당에 두는 사람은 맑은 새소리를 아침저녁으로 들을 수 있어요. 더욱이 나무는 작은 애벌레도 품에 안아서 나비가 깨어나는 자리도 되어요. 나무 한 그루가 있으니 멋진 나비 춤사위까지 만나요.

  《진실을 보는 눈》이라는 그림책은 도로시아 랭이라는 사진가 한 사람이 바로 나무와 같은 품을 보여주었으리라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따사로운 마음이 되어 나무 같은 숨결로 사진을 찍은 사람이 바로 도로시아 랭이라고 할 만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떤 사진기를 손에 쥐든 다 좋습니다. 마음으로 이웃을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는 누구나 사진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진기가 손에 없어도 좋습니다. 사진기로만 사진을 찍지 않아요. 우리는 늘 마음으로 먼저 사진을 찍어요. 마음으로 찍은 사진을 마음에 새기지요. 마음으로 담은 사진을 마음으로 나누고요.

  어느 모로 본다면 도로시아 랭 님은 다큐작가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오롯이 사진가입니다. 살가운 이웃입니다. 반가운 벗입니다. 나무 같은 사람입니다. 하늘 같은 사랑이에요. 2017.6.23.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비평/사진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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