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
김영갑 / 눈빛 / 199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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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진책시렁 3


《마라도》

 김영갑

 눈빛

 1995.2.28.



  사진을 하는 길은 어렵지 않습니다. 사진을 하는 길이 어렵다면, 스스로 어렵게 여기기 때문이요, 남들이 어렵다고 하는 말을 그냥 받아들인 탓입니다. 사진길을 걷는 사람은 이 길이 즐겁습니다. 남 눈치나 눈길 때문에 사진길을 걷지 않습니다. 스스로 사진으로 피우고 싶은 꽃을 느끼고 알기에 한 걸음씩 내딛습니다. 흔히들 김영갑 님 사진길이 고달픈 걸음이었다고 말하지만, 참말 김영갑 님은 스스로 고된 걸음으로 하루하루 걸었다고 여겼을까요? 어쩌면 그리 말한 적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사진기를 손에 쥐고 제주를 밟고 오름에서 자며 마라도를 드나든 길에 늘 마음 가득 노래가 꽃처럼 피었났으리라 생각합니다. 김영갑 님이 빚은 《마라도》를 넘기노라면, 김영갑 님 앞으로나 뒤로나 아직 어느 누구도 김영갑 님처럼 마라도 이야기를 풀어내지 못하는구나 싶습니다. 아무래도 김영갑 님처럼 이곳 마라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넘실넘실 무지개처럼 흐르지 못하기 때문이라 하겠지요. 즐겁게 웃고 환하게 노래하면서 느긋한 눈길로 고이 품는 사진을 차곡차곡 빚자고 생각하지 못한 탓이라 할 테고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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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사진책은 안 뜨네.

참 싫다.

어째 이 사진책이 안 뜨나.


..


사진책시렁 2


《朝鮮民族》

 山本將文

 新潮社

 1998.9.25.



  사진찍기란 이웃을 사귀는 일이라고 여깁니다. 사진읽기란 이웃을 배우는 길이라고 여깁니다. 사진찍기란 동무랑 어깨를 겯는 일이라고 느낍니다. 사진읽기란 동무랑 손을 잡고 가는 길이라고 느낍니다. 그래서 이웃을 사귀려는 마음이나 숨결을 사진으로 담지 않은 책을 보면 거북해요. 찍히는 사람을 이웃으로 느끼지 않으면서 사진기를 쥐다니, 너무하지 않나요? 야마모토 마사후미(山本將文) 님은 한겨레 이야기를 사진책으로 여럿 선보입니다. 아직 한국말로 나온 이녁 사진책은 없습니다만, 알게 모르게 이녁 사진책을 반기면서 장만하는 분이 있어요. 한국에는 없으니 기꺼이 일본마실길에 장만하지요. 저는 《朝鮮民族》을 두 권 장만했어요. 한국에서 하나, 일본에서 하나. 일본에서 장만한 《朝鮮民族》은 도쿄 진보초에 있는 아름다운 책집 ‘책거리’에 오랫동안 빌려주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책집 ‘책거리’를 드나드는 분들이 이 사랑스러운 사진책을 가만히 넘기면서 사진으로 이웃이 되고 동무로 거듭나는 즐거운 길을 누리시기를 바라요. 우리는 사진가 이름을 얻으려고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술을 누리려고 사진을 읽지 않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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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EGGLESTON PORTRAITS (Hardcover)
Phillip Prodger / Thames & Hudson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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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시렁 1


《Portraits》

 William Eggleston

 Yale University press

 2016.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면 무척 재미있어요. 사진을 오직 사진으로만 바라볼 적에는 마음 가득 새로운 빛물결이 넘실거리는구나 싶어요. 어릴 적에 사진을 보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했어요. ‘누가 찍었나’도 대수롭지만 ‘무엇을 찍었나’가 훨씬 대수롭구나 싶었지요. 그리고 ‘무엇을 찍었나’를 살피다 보면, 제 마음을 사로잡는 ‘무엇을 찍은’ 사람이 누구인가 가만히 그림으로 그릴 수 있었고, 이이 이름을 처음에는 몰랐어도 나중에 ‘아, 그래, 어쩐지 이 사람이었구나’ 하고 알아차리기도 해요. 사진을 읽자면 무엇보다도 ‘알려진 작가인지 아닌지’를 모두 잊고서 ‘무엇을 찍었나’를 보면 되고, 우리 마음에 스며드는 즐겁거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사진을 하나하나 모으면 좋아요. 이렇게 모으다 보면 ‘저마다 다른 우리 나름대로 모은 사진’을 누가 찍었는가를 어렵잖이 깨달을 수 있고, 이런 길을 천천히 느긋하게 거치면서 사진눈을 키웁니다. 《Portraits》를 빚은 윌리엄 이글스턴(William Eggleston) 님 사진이 아주 좋다고는 여기지 않아요. 다만, 다들 ‘흑백 작품’에 풍덩 빠지던 때에 ‘무지개빛’을 볼 줄 알았기에 반가웠어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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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카파, 사진가
플로랑 실로레 지음, 임희근 옮김 / 포토넷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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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읽기 369


사진가는 죽음 아닌 삶을 그리는 사람
― 로버트 카파, 사진가
 플로랑 실로레/임희근 옮김
 포토넷, 2017.8.1.


1936년 8월, 바르셀로나 프랑스역. 우리는 열기 가득한 이 도시에 도착한다. 거리 곳곳마다 무장한 군중의 술렁임과 정치의식이 피부에 와닿는다. 그리고 내가 필름에 담는 이 숱한 미소들. 민중의 야단법석에서 느껴지는 이 소통의 기쁨. (13쪽)

1936년 9월. “게르다, 마드리드에 가면 나 당신과 결혼할 거야.” “이런 카파, 내가 누군데? 게르다 타로가 결혼이라는 부르주아 제도에 굴복할 것 같아? 어떻게 여기서, 한창 퇴각 중에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숱한 시체, 부상자와 고아들 무리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데. 우리 필름엔 죽음이 땀처럼 배어 나와, 카파.” (17쪽)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사진은 몸으로 찍습니다”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진기를 손에 쥔 몸을 움직여야 찍을 수 있거든요. “사진은 마음으로 찍습니다”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몸만 움직인다고 해서 사진다운 사진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몸하고 마음이 함께 움직여서 사진기 단추를 눌러야 비로소 이야기가 흐르는 사진이 태어납니다.

  “사진은 삶으로 찍습니다”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몸이며 마음이 움직였어도 이웃 삶을 읽지 못한다면 겉훑기로 그칩니다. 이웃이 살아가는 나날이나 터전이나 모습을 고스란히 읽을 뿐 아니라, 이웃이 어떠한 꿈을 그리는가를 찬찬히 읽기에 비로소 사진 한 장을 새로 찍어요.

  “사진은 사랑으로 찍습니다”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살섞기는 사랑이 아닙니다. 고이 여기며 맑게 아낄 줄 아는 삶이 바로 사랑입니다. 삶을 읽더라도 삶을 사랑으로 마주하며 얼싸안는 몸짓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겉을 넘어 속을 바라보려고 하되, 애써 바라본 속삶을 어떻게 삭이거나 헤아려서 서로 아름다이 나아갈 길을 열도록 사진 한 장으로 갈무리할 만한가를 모르기 일쑤입니다.


1937년 2월. 사람들은 내가 나만의 스타일을 찾았다고들 한다. 전투 중 찍은 일련의 사진들, 감성 풍부한 짧은 설명이 곁들여진 그 사진들. 편집진은 좋아서 죽는다. 게르다가 몸으로 보여주는 용기가 나날이 조금씩 내게 깊은 인상을 준다. 방공 사이렌이 울려도 그녀는 절대 망설이지 않는다. (18쪽)

1937년 7월 30일. 게르다의 부고는 〈뤼마니테〉 1면에 실렸다. 그녀는 전사한 최초의 여성 사진가였다 … 게르다의 남자 형제들은 그녀에게 라이카 카메라 다루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나를 원망했다. 그녀는 스물일곱 살을 앞두고 있었다. (25쪽)


  사진책 《로버트 카파, 사진가》(플로랑 실로레/임희근 옮김, 포토넷, 2017)를 읽습니다. 《로버트 카파, 사진가》는 사진을 말하고 사진가를 말하기에 사진책입니다. 그리고 사진을 만화로 담아서 보여주기에 만화책이기도 합니다. 또한 사진을 만화로 담아 이야기를 지피니 이야기책이기도 합니다.

  사진책이면서 만화책이고 이야기책인 이 책은 사진을, 삶을, 사랑을, 무엇보다 이 모두를 둘러싼 우리 이야기가 어디에서 비롯하여 어디로 흐르는가를 차분히 짚으려고 합니다.


1938년 10월 25일. 정처 없이 떠도는 이 사진쟁이의 삶은 대체 뭐 하자는 짓인가? 우리 사진들을 살릴지 여부를 통제할 권리가 없는 편집장들을 옹호하는 것은? 우리가 그들의 권리를 수호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는가? 다시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한 가지 계획이 떠오른다 … 독립해서 활동하는 재능 있는 젊은 사진가들의 에이전시를 협동조합 모델로 창립하는 거다. 더 이상 우리의 고용주가 아닌 언론사들에 사진저작권을 그냥 양도하지 말고 그 권리를 우리가 가진다면? (33쪽)


  《로버트 카파, 사진가》를 읽으며 ‘게르다 타로(Gerda Taro/Gerda Pohorylles)’라는 이름을 새롭게 만납니다. 이 책을 지은 분은 게르타 타로란 분이 남긴 글을 읽고서 가슴이 찌릿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로버트 카파 + 게르다 타로’라는 얼거리로 만화를 그려 사진하고 삶하고 사람이 이어진 고리를 밝히고자 했다는군요.

  이 대목을 헤아리고 보니 책이름이 왜 “로버트 카파, 사진가”인가 알 만합니다. ‘로버트 카파 + 사진가 = 로버트 카파 + 게르다 타로’요, 로버트 카파라는 한 사람이 종군사진가이자 우리한테 ‘사진가’로서 널리 이름을 아로새긴 바탕에 게르다 타로라는 분이 있었구나 싶어요.

  누구보다 씩씩했고, 누구보다 새롭게 앞길을 그릴 줄 알았으며, 뒤로 물러서거나 한발 빼는 일이 없었다는 게르다 타로 님은 ‘여성 종군사진가’ 가운데 처음으로 전쟁터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탱크에 밟혀서 죽었다지요. 다만 ‘여성’이라는 말은 빼야지 싶어요. 똑같이 종군사진가입니다. 무엇보다 이이는 늘 함께 사진을 찍던 한 사람을 크게 바꾸었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에 언제나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1941년 3월. 항구의 통관 당국은 꽤나 애를 먹인다. 미국 영주권자이면서 헝가리 출신의 종군사진가라는 내 지위 탓에 통관만 할라치면 일이 꼬인다. (47쪽)

1944년 6월 6일. 주변에 비 오듯 쏟아지는 함포 사격으로 귀가 먹먹하고, 멀리는 기관총 쏘아대는 따다닥 소리가 들린다. 나는 네모상자에 달라붙는다. 찰칵. 너는 진짜로 여기 있는 게 아니야. 찰칵. 나는 거리를 어림잡아 초점을 맞추고, 두 손은 걷잡을 수 없는 경련으로 덜덜 떨린다. 찰칵. 뷰파인더에 눈을 딱 붙이고 있어, 제기랄! 이건 배 안에서 토하던, 방금 본 그 녀석이 아니야. 되밀려오는 파도에 내장이 둥둥 뜬 채 흔들리는 건 그가 아니야. 찰칵. (59쪽)


  사진가는 죽음 아닌 삶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피바람이 몰아치는 싸움터에서 죽은 사람들을 찍고 무너진 집을 찍는다고 하더라도, 이 죽음수렁에서 살아가려는 사람을 가만히 비춥니다. 죽이고 죽은 끔찍한 땅에서 새롭게 살아나고 일어서려는 눈빛을 하나하나 비춰요.

  종군사진가 필름에는 죽음이 땀방울처럼 흐를 테지만, 이 죽음 어린 땀방울이란, 바보스러운 죽임짓을 멈추고 사랑스러운 살림길로 가기를 바라는 뜻을 품은 숨결이지 싶습니다.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죽음 곁에서 사진기를 쥐었으나 죽음을 떨치려 합니다. 죽음 아닌 삶을 보려 하면서 한 걸음을 딛고 우뚝 서서 찰칵 한 장을 찍습니다. 죽음이 비처럼 쏟아지는 한복판이지만, 이 빗줄기 같은 죽음을 다시 떨치고 한 걸음을 내딛은 뒤 더 씩씩하게 우뚝 서서 찰칵 새로 한 장을 찍습니다.

  한 걸음 두 걸음 기운을 내어 나아갑니다. 한 장 두 장 손에 힘을 주어 단추를 누릅니다. 스스로 기운을 내지 않으면 죽음수렁에 갇혀 벌벌 떨다가 사진 한 장 못 찍을 뿐 아니라, 그대로 죽고 말 테지요. 삶을 찍으려고 한 발을 내딛습니다. 사랑을 찍으려고 한 발을 뻗습니다. 사람을 찍으려고 한 발을 듭니다.


1946년 5월. 난 언제든 카메라 가방을 메고 〈라이프〉든 다른 언론사든 일을 받아 떠나야 할 처지다. 뒤에 아내와 어쩌면 아이까지 남긴다는 건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73쪽)

1954년 5월 25일. 빨리! 이 친구들이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전에 셔터를 눌러. 찰칵. 두 번 눌러. 혹시 모르니까 좀더 잘 찍으려면 옆으로 한 발짝……. (85쪽)


  《로버트 카파, 사진가》는 로버트 카파 님이 1954년 5월 25일, 지뢰를 밟고 이슬처럼 스러진 날까지 이야기를 그립니다. 그때 그곳에서 어떤 마음으로 사진기에 눈을 박고 걸었는가를 그립니다. 지뢰밭 사이를 걸으면서도 지뢰 아닌 사진을 그리고, 사람을 그리고, 삶을 그리던, 무엇보다 사랑을 그리면서 한 걸음을 내딛으려던 몸짓을 그립니다.

  이러다가 로버트 카파 님은 마지막 단추를 누르고는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요. 사진기를 떨어뜨리고 몸뚱이가 사라집니다. 오래도록 그리던 이 품으로, 이제는 사진기도 사진짐꾸러미도 더 어깨에 걸치지 않아도 될 곳으로, 전쟁 아닌 사랑이 흐르는 보금자리로, 먼저 떠난 게르다 타로 님이 있는 하늘로, 가볍게 날아갑니다.

  그리고 우리 곁에 사진이 남습니다. 한 발 두 발 꿋꿋하게 내딛으면서 찍은 사진이 남습니다. 신문사나 잡지사 소유물이 아닌 사진가 스스로 일군 땀방울로 세운 ‘사진두레(사진 에이전시)’에 남긴 사진이 오래오래 퍼지면서 이야기꽃이 됩니다. 전쟁을 찍으면서 사랑을 그린 사진이 남습니다. 전쟁 한복판에서 사람살이를 담은 사진이 남습니다. 죽이고 죽는 피범벅에서 길어올린 따스한 삶을 그리는 마음이 사진으로 남습니다. 2018.4.2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사진읽기/사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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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이예식 지음 / 눈빛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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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읽기 365


사할린 한겨레가 돌아갈 곳은 어디?
― 귀환
 이예식 사진, 눈빛, 2016.10.26.


  올림픽이란 서로 하나로 어우러지는 자리라고 합니다. 누가 얼마나 잘하는가를 겨루기도 하지만, 겨루기보다 어우러지기를 더욱 높이 삽니다. 아니, 어우러지지 않고 겨루기만 하려 든다면, 이는 올림픽하고 어긋난다고 여겨요.

  어우러지기란, 하나되기란 올림픽에서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여느 운동경기에서도 이야기하지요. 여느 운동경기에서도 팔꿈치로 몰래 찍는다든지, 다리를 슬쩍 걸어 넘어뜨린다든지, 꼼수나 속임수를 쓰면 손가락질을 해요.

  운동경기뿐 아니라, 마을이나 학교나 사회 어디에서나 첫자리 올라서기를 가장 높이 살 수 없습니다. 남보다 잘나 보여야 하기 때문에 집을 지어 살림을 꾸리는가요? 시험점수를 더 높이 받아야 하기에 학교를 다닐까요? 님을 밟고 올라서야 하는 사회일까요?


사할린 동포들의 운명은 참 억울하고 비참하다고 봅니다. 1939-1940년에 카라푸토(사할린의 일본식 지명)로 강제징용 당한 이들은 타국 땅 탄광, 벌목장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태평양전쟁이 끝나면서 일본이 패망하지만 동포들은 그렇게 그리웠던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131쪽)


  사진책 《귀환》(눈빛, 2016)을 읽으면서 어우러지기를 헤아려 봅니다. 사할린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은 일제강점기가 끝난 뒤에 그곳에 그대로 남습니다. 잃었던 나라로 돌아갈 길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나라가 사할린 한겨레를 부르지 않았어요. 이 나라는 중국하고 중앙아시아하고 일본에서 살던 한겨레도 부르지 않았습니다. 이들을 돕는 일을 안 했으며, 까맣게 잊었어요.

  1949년 사할린 마카롭에서 태어나 〈새고려신문〉 사진기자로 일한 이예식 님은 사할린에서 살며 사할린 한겨레를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역사라고 하는 자리가 아닌, 삶터라고 하는 자리에서 사할린 한겨레가 걸어왔고 걸었으며 걸어갈 길을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한국 정부는 ‘영주귀국’이라는 일을 꾀한 적이 있으나 모든 사할린 한겨레를 아우르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사할린 1세를 지나 사할린 2세나 3세나 4세는 아예 생각 밖입니다.

  어우러지기나 하나되기는 마음에 없는 한국 정부라고 할 만합니다. 올림픽 같은 커다란 운동경기를 치르기는 하되, 정작 이 나라 안팎에서 아프고 슬픈 한겨레를 아우르는 길을 좀처럼 못 보여준다고 할 만합니다. 전쟁무기를 만들어 건사하는 데에 엄청난 돈을 들이지만, 평화로이 하나되는 길에는 아직 못 연다고 할 만해요.


영주귀국……. 사할린 1세 동포들의 영주귀국 주요 조건은 1945년 8월 15일 전 출생자들로 제한했고, 그들의 자식과 손자들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또 하나의 비극이 일어난 것이죠. 그립고 그리웠던 조국에 갈 수 있게 됐지만 자식들을 버려야만 하는 심정은 어땠을까요? 하루하루 늙어 가는 동포들의 삶은 기다림이었기 때문에 자식보다는 대부분 조국을 선택했습니다. (131쪽)


  숱한 이주노동자가 한국으로 들어옵니다. 한국에 일자리가 없지 않습니다. 온누리 여러 나라는 차츰 가까워집니다. 이웃나라는 이웃마을처럼 살가운 사이로 달라지는 판입니다. 여러 말을 쓰며 삶을 이어야 했던 한겨레붙이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더 넓고 깊게 온누리를 바라보도록 북돋울 수 있는 슬기와 힘이 있습니다. 두 손이며 온몸이 거친 주름살이 되기까지 삶을 일군 한겨레붙이 발걸음이나 이야기는 우리 모두한테 살아숨쉬는 오랜 역사이자 교과서가 될 수 있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친, 기다리고 기다리다 흙으로 돌아간, 숱한 사할린 한겨레 이야기를 흑백사진으로 고요히 담은 《귀환》은 돌아갈 길을 찾다가 끝내 찾지 못한 우리 이웃이자 한식구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러면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묻습니다. 어우러지기란, 하나되기란, 참말로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이제 눈을 뜨고 바라보아야지 싶어요. 함께 살아갈 나라를, 함께 일굴 터전을, 함께 사랑할 마을을, 함께 손을 잡고 활짝 웃음지을 길을 바라보아야지 싶습니다. 2018.2.20.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읽기/사진비평)

* 이 글에 붙이는 사진은 눈빛출판사에 말씀을 여쭈어 고맙게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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