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경계 - 분단시대의 동해안
엄상빈 지음 / 눈빛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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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읽기 352


쇠가시울타리 걷어낼 평화를 바랍니다
― 또 하나의 경계, 분단시대의 동해안
 엄상빈 사진
 눈빛 펴냄, 2017.4.3. 4만 원


  저는 인천에서 나고 자라면서 인천 바다를 늘 바라보았습니다. 살던 집이 바닷가 코앞이기도 해서 아침저녁으로 언제나 바다를 바라보기도 했고, 일부러 바닷가 쪽을 걷기도 했습니다. 동무네에 놀러가는 길에 바닷길을 따라 달리거나 걷곤 했어요.

  다만 인천 앞바다는 고기잡이배보다 짐배가 훨씬 많습니다. 인천에 있는 수많은 공장으로 갈 원료나 자재를 싣는 짐배라든지, 고속도로를 거쳐서 서울로 보낼 물건을 실은 짐배가 으레 인천 앞바다로 찾아옵니다.

  언제나 바다 곁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나날이었지만, 언제나 바닷가로는 쉽게 다가서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쇠가시울타리, 이른바 철조망이 빼곡하거든요.


1960년대 후반 바닷가에 처음 등장한 군경계 시설물은 ‘흔적선 끌기’였다. 모래밭을 써레질하듯 평평하게 밀어 놓음으로써 밤사이 침입자의 발자국 등 흔적을 찾기 위함이었다. 그 무렵 섬뜩한 불빛이 수 킬로미터나 나가는 ‘서치라이트’라 부르던 탐조등도 등장했다. 그 다음은 나무 울타리를 연상케 하는 ‘목책’이 생겨났고, 1970년대 후반에 와서야 비로소 지금의 ‘철조망’이 등장했다. (사진가 말)


  어릴 적에 ‘철조망’이라는 말을 들으며 이 ‘철조망’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머리통이 굵은 뒤에 사전을 찾아보고서야 ‘철조(鐵條)’는 “굵은 쇠줄”을 가리키고, ‘망(網)’은 “그물”을 가리키는 줄 알았어요. 쇠줄로 엮은 그물이래서 ‘철조망’인 셈인데, 바닷가에서 본 ‘쇠줄로 엮은 그물’은 그냥 쇠줄로만 엮은 그물이 아니라 손이라도 댈라치면 뾰족한 쇠가시에 찔리거나 긁혀서 다치는 ‘쇠가시로 높이 쌓은 울타리’였어요.

  다른 고장에서는 인천 앞바다를 으레 똥물이라고 놀렸습니다. 인천 앞바다는 물이 더럽다는 뜻입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커다란 발전소이며 화학공장이며 유리공장이며 온갖 공장이 가득한 인천이니까요. 더욱이 서울에서 버리는 쓰레기물이 물줄기를 타고 인천 앞바다인 ‘황해(서해)’로 흘러들고요. 이러거나 저러거나 바다는 틀림없이 바다요, 밀물썰물이 오가며 드러나는 어마어마한 갯벌이며 물결이 퍽 놀라워서 이 바다를 가까이에서 제대로 바라보고 싶건만, 쇠가시울타리가 없는 데란 없을 만큼 빽빽했어요. 어디에서도 제대로 바다를 보기 어려웠어요.


철조망은 한때 녹슬고 삭아서 기둥만 남을 정도로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도 했지만 1996년 ‘동해안 북한 잠수함 침투’ 같은 사건에 따라 더욱 튼튼한 모습으로 규모와 형태가 바뀌기도 했다. 이러한 철조망의 변모는 당시의 통치이념이나 남북 관계의 분위기와 그 맥을 같이했다. 철조망에 내걸린 문구도 ‘접근하면 발포함’ ‘접근금지’와 같이 군사정권다운 위협적이로 일방적인 명령어였다. 오후 6시만 지나면 살벌한 분위기가 감도는 통제구역으로 바뀐 채 밤을 맞았다. (사진가 말)


  사진가 엄상빈 님이 긴 나날에 걸쳐서 속초를 비롯한 강원도 바닷가에서 마주한 삶을 담아낸 사진책 《또 하나의 경계, 분단시대의 동해안》(눈빛,2017)을 읽습니다. 경계에서 또 하나 더 있는 경계는 분단이고, 이 분단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모습 가운데 하나는 바로 쇠가시울타리였다고 합니다.

  사진책 《또 하나의 경계》에 깃든 사진을 보면서 제가 어릴 적에 인천 앞바다에서 수없이 보던 그 쇠가시울타리뿐 아니라, 곳곳에 많은 경계초소를 떠올려 봅니다. 바닷가를 따라 길게 펼쳐진 끝없는 울타리 사이사이에 있는 경계초소를 가리던 ‘소나무’를 새삼스레 떠올려 봅니다. 가만히 되새기니, 경계초소나 쇠가시울타리를 가리려고 강원도뿐 아니라 온 나라 곳곳에서 소나무를 베거나 뽑아다가 바닷가에 줄줄이 두었구나 싶어요.

  엄상빈 님이 책끝에 ‘사진가 말’로 붙이기도 했는데, 강원도 바닷가뿐 아니라 인천 바닷가에서도 ‘탐조등’이 바닷가를 밤마다 비추곤 했습니다. 이 불빛이 얼마나 센지 몰라요. 얼굴에 이 불빛을 맞으면 눈이 멀까 싶도록 따갑고 뜨겁습니다. 눈을 못 뜨지요.

  어릴 적에 동무네 집에 놀러가려고 일부러 바닷길을 따라서 걸으면 으레 무섭게 생긴 어른을 마주쳤던 일이 생각납니다. 인천 바닷길이라고 해도 모든 바닷길은 쇠가시울타리로 막혔으니 이 쇠가시울타리를 손으로 슬슬 만지거나 긁거나 스치면서 걷는데, 사람 발길이 없는 바닷길에 갑자기 낯선 어른이 무서운 얼굴로 나타나서 이 쇠가시울타리를 건드리지 말라고 윽박지르지요.

  그때에는 왜 갑자기 낯선 어른이 나타나서 이렇게 말하는지 몰랐어요. 그러나 바닷가 쇠가시울타리에는 빈 깡통이라든지 뭔가 길게 이어지기 마련이에요. 제가 동무네 집에 가는 길에 심심하기도 하고 바다를 보며 걷다가 얼결에 자꾸 쇠가시울타리를 건드리니, 또 빈 깡통을 나뭇가지로 톡톡 두들겨 보기도 하니, 군부대 경계초소로 ‘어떤 신호’가 갔겠지요. ‘아이들 장난’을 마치 ‘간첩이나 북한군이라도 넘어온 일’이 터진 듯 여겼겠지요.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성화 봉송 때는 ‘자연보호 The Preservation Nature’라는 거짓문구를 붙이는가 하면, 7번 국도에서 보이는 수많은 경계초소를 감추느라 커다란 소나무를 베어다 가려 놓기까지 했다. 이는 성화 봉송을 취재하는 외신기자들의 눈을 속이려는 임시방편이었지만, 지나가는 한순간을 위해 이런 식으로 베어진 소나무는 동해안만 해도 수만, 수십만 그루였으리라 짐작된다. (사진가 말)


  사진책 《또 하나의 경계》에 흐르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바닷가를 따라 끝도 없이 이어지는 쇠가시울타리는 누구를 누구한테서 지키는 구실을 했을까 궁금합니다. 끝도 없이 이은 쇠가시울타리를 따라 시멘트로 쌓은 경계호와 경계초소는 누가 누구를 지켜보거나 막으려고 한 자리였을까 궁금합니다.

  ‘개구멍’이라고 하는, 쇠가시울타리 한쪽을 자그맣게 잘라내어 마련한 구멍길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마을 어른들이 슬그머니 드나들고, 마을 아이들이 살짝살짝 드나들지요. 저는 어릴 적에 쇠가시울타리를 잘라내어 구멍을 낸다는 생각은 못 했고, 어딘가에 개구멍이 있으리라 여기며 한참 바닷길을 따라 걸으면서 찾아보곤 했어요. 개구멍이 난 자리로 몰래 들어가서 바닷가에서 낚시를 하며 놀고 싶었거든요.

  애써 개구멍을 찾아내도 오래 드나들지는 못 합니다. 어느 날 이 개구멍이 거친 손길로 막혀요. 그러면 다른 개구멍이 있나 찾아보고, 다른 개구멍을 찾아내어 대나무 낚싯대를 들고 살그마니 들어갑니다. 어느 날은 몇 시간째 이리저리 살펴도 개구멍이 없어서 아픈 다리를 주무르면서 풀이 죽어 집으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어릴 적에는 몰랐습니다만, 개구멍을 내려는 마을 어른하고 개구멍을 막으려는 군인 사이에서 고단한 실랑이가 늘 도사렸지 싶어요.

  사진책 《또 하나의 경계》를 보면 쇠가시울타리에 오징어를 널어서 말리기도 하고, 빨래를 널어서 말리기도 하는 모습이 고즈넉하면서 부드러이 흘러요. 두려움이 없달까요, 무서움이 없달까요. 그러나 마을사람들 살림을 돌아본다면 쇠가시울타리에 돋은 뾰족뾰족한 쇠가시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법 없이도 착하고 정갈하며 곱게 살아가는 수수한 마을사람은 쇠가시울타리나 시멘트 담벼락이 없어도 도란도란 이웃사랑을 나누는 살림이에요. 총칼로 지키는 삶이 아니라, 사랑으로 나누는 삶입니다. 뾰족한 쇠가시로는 지키지 못하는 평화요, 오순도순 어깨동무하는 이웃사랑으로 지키는 평화입니다.


7번 국도변에서 자란 탓에 어려서부터 보아 온 낯익은 바닷가 풍경이었지만, 철조망을 이용해 호박넝쿨을 키우고 때로는 빨래나 오징어를 널어 말리기도 하는 이 구조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진가 말)


  이제 우리는 안보가 아닌 평화를 헤아릴 때를 맞이했다고 봅니다. 선거철만 되면 ‘안보 팔이(안보 장사)’를 하며 나라를 ‘빨갛게’ 물들이려고 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이제 이런 안보 팔이와 전쟁 팔이는 그칠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끝없이 펼쳐진 쇠가시울타리는 인천 앞바다를 비롯한 황해 바닷길을 따라서도 끝없이 이어집니다. 우리가 우리를 스스로 가둔 쇠가시울타리라고 할 만해요. 적한테서 우리를 지키는 쇠가시울타리가 아닌, 우리 스스로 쇠가시울타리에 갇힌 얼거리인 셈입니다.

  무엇보다 경계초소로 평화를 지키겠노라 하는 몸짓은 이제 끝내야지 싶어요.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는 평화로 거듭나야지 싶습니다. 저쪽보다 더 세거나 더 무시무시한 전쟁무기를 갖추어서 이쪽이 평화롭겠노라고 윽박지르는 몸짓은 이제 멈추어야지 싶어요. 남북녘 살림을 살펴보면, 북녘이든 남녘이든 전쟁무기에 너무나 많은 돈과 사람과 품을 바치느라, 막상 북녘도 남녘도 좀처럼 평화롭지 않고 넉넉하지 않구나 싶습니다.

  북녘은 핵무기와 미사일을 새로 만들어 내려는 몸짓을 멈출 노릇이요, 남녘 정부는 북녘이 이러한 길로 가도록 슬기로우면서 따스한 손길로 이끌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남녘은 남녘대로 북녘이 걱정하지 않도록 부질없는 전쟁무기는 이 땅에서 걷어내거나 걷어치워야지 싶습니다. 남북녘이 서로 손을 맞잡고서 ‘전쟁무기를 차츰 줄여 앞으로는 몽땅 없애는’ 길로 가야지 싶습니다. 이러면서 남북녘 모두 스스로 나라 곳곳에 세운 덧없는 쇠가시울타리를 녹여서 호미랑 낫으로 바꿀 수 있으면 좋겠어요. 쇠가시울타리랑 경계초소로 얼룩진 자리를 호미랑 낫으로 가꾸어서 마을텃밭이나 마을숲으로 바꾸어 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는 참다운 평화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는 속초를 비롯한 동해안 7번 국도 자리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아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젊은 군인이 아닌 젊은 시골지기가 젊은 마을로 일구는 싱그럽고 착한 몸짓을 사진으로도 마주하고 삶으로도 만날 수 있기를 바라요. 평화는 오직 평화로운 마음일 때에 이룹니다. 평화는 오로지 평화를 꿈꾸는 사랑일 적에 함께 나눕니다. 2017.5.20.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비평/사진노래)

* 이 글에 붙인 사진은 눈빛출판사에 말씀을 여쭈어 고맙게 받아서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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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민탕 - 다 때가 있다 눈빛사진가선 34
손대광 지음 / 눈빛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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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읽기 351


‘제 때’를 살피는 ‘제때’에 찍는 사진

― 광민탕, 다 때가 있다
 손대광 사진
 눈빛 펴냄, 2016.12.2. 12000원


  한국말에서 ‘때’는 두 가지로 씁니다. 첫째로 우리가 살아가는 나날이나 해 같은 흐름을 나타내요. 둘째로 우리 몸에서 먼지랑 땀이 얽히며 생기는 것을 나타내요. 생김새는 같으나 뜻은 사뭇 다르다고 할 만한 ‘때’입니다.

  몸에 때가 생기면, 이 때를 벗길 때라는 뜻입니다. 때를 벗길 때에는 따뜻하거나 뜨거운 곳에 몸을 두어요. 살갗이 부풀기를 기다립니다. 천천히 때를 기다리면서 때를 벗깁니다. 알맞구나 싶은 때가 찾아오면 슬슬 때를 벗기지요.

  아무 때나 함부로 벗길 수 있는 때가 아닙니다. 살이 아직 부풀지 않은 때에 마구 문질러서 때를 벗기려 하면 살이 아파요. ‘제때’를 기다려서 ‘제 때’를 벗겨야 합니다. 제 때를 벗기려 한다면 참말로 제때를 맞추어야 합니다.

  때를 살피기에 때를 벗길 수 있으니, 때를 놓치거나 때를 안 살피면 때를 벗기기 어렵습니다. 때를 모르면 때를 못 벗긴다고 할 만하고, 제 때를 모르니 제때를 가누지 못한다고도 할 만해요.

  이러구러 ‘때’라는 낱말 하나를 두고 두 가지로 쓰는 살림이 재미있으면서 뜻깊구나 싶어요. 어쩌면 예부터 ‘때’라는 낱말 하나를 사뭇 다르다 싶은 두 군데에 쓴 뜻이 있구나 싶기도 합니다.

“오면 가는 게 생이다.” 목욕을 마친 잿빛 머리의 환갑을 넘긴 남자가 탕 문을 나서며 한마디 던진다. 선승 같은 그 사내의 말을 되새김질하며 나는 오래도록 가부좌를 틀거나 두 다리를 뻗치며 몸에 감기는 살냄새 나는 물의 마음을 생각하였다. 오면 가는 게 생이듯 광민탕도 지금은 사라지고 없어졌지만 ‘에이씨 비씨 디씨…’ 여기서만 통하는 욕이자 콧노래라던 광민탕 이발사의 웃는 얼굴을 떠올리며 벌거숭이 나에게 가끔씩 물음을 던져 보곤 한다. 그대가 좋아하는 살맛 나는 온도는 몇 도인가? (사진가 노트)

  손대광 님이 빚은 사진책 《광민탕》(눈빛,2016)을 읽습니다. 부산에 퍽 오랫동안 있었다는 목욕탕 가운데 하나인 ‘광민탕’을 둘러싼 이야기를 담은 사진책입니다. 이제 이 광민탕이라는 곳은 문을 닫았다고 해요. 광민탕을 드나들던 사람 이야기나, 광민탕에서 일하던 사람 이야기는, 이제 이 사진책에만 남습니다.

  부산을 비롯해서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목욕탕이 퍽 빠르게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이른바 ‘찜질방’이 생기면서 목욕탕은 아주 빠르게 시들었어요. 잠도 잘 수 있는데다가 아무 때이고 몸을 불리며 노닥거릴 수 있기까지 한 찜질방은 목욕탕을 아주 가뿐히 밀어내었다고 할 만합니다.

  작은 마을이나 골목에 있던 숱한 가게가 편의점하고 큰가게(대형할인마트)에 밀리면서 문을 닫거나 시들합니다. 뭔가 더 도시스럽고 커다란 곳이 들어서면서 마을이 하루아침에 바뀌곤 합니다. 이러는 사이에 우리는 퍽 오랫동안 우리 곁에 있던 이웃을 쉬 잊고 발빠르게 다른 자리로 갈아탑니다. 미처 가만히 생각해 볼 겨를이 없이 더 빠르거나 크거나 넓다고 여기는 데로 움직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책 《광민탕》에 나오는 사람들은 천천히 몸을 씻으려고 광민탕을 드나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때나 광민탕을 드나들지는 않아요. 제 몸에 때가 쌓일 즈음 찾아갑니다. 제 몸에서 때를 벗길 만한 때를 저마다 스스로 깨달으면서 찾아가지요.

  목욕탕에서 사진을 찍자는 생각을 품은 손대광 님은 목욕탕 사람들한테 천천히 다가갑니다. 목욕탕한테도 천천히 다가서지요. 목욕탕에서 때를 함께 벗기면서 다가갑니다. 목욕탕에서 천천히 때를 벗기면서 목욕탕하고도 천천히 사귑니다.

  손대광 님은 이녁을 둘러싼 사람들을 스치고 지나가는 모델(피사체·취재원)로 여기지 않습니다. 이녁을 둘러싼 사람들을 ‘한마을에서 사는 이웃’으로 마주합니다. 스치고 지나가는 모델이나 피사체나 취재원이 아닌 터라, 서둘러 사진기를 손에 쥘 까닭이 없습니다. 이녁은 여덟 달 만에 드디어 사진기를 손에 쥘 수 있었다고 하는데, 고작 여덟 달 만에 사진기를 쥐었다고 느끼지 않아요.

  그러면?

  여덟 달이 아니라 스무 해나 서른 해였겠지요. 손대광 님이 광민탕이라는 목욕탕을 둘러싸고 살아온 나날을 고이 지켜보고 마주하고 함께한 발자국이 있으니, 이 발자국이 밑바탕이 되어 지난 여덟 달을 더욱 눈여겨보면서 어떤 이야기를 사진 한 장으로 담아내자는 생각이 솟았겠지요.

  살아온 나날을 몸에 아로새긴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때를 바탕으로 여덟 달이라는 나날을 고이 건사하면서 생각을 가다듬은 때를 보냈다고 할 만해요. 제때를 기다려 사진 한 장을 찍어요. 제때를 생각하며 사진 한 장을 빚습니다. 제때를 마주하고 바라보고 느끼고 되새기면서 사진 한 장을 이룹니다.

  오늘 사라질 모습이라고 해서 서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곧 사라질 곳이라고 해서 바삐 찍지 않아도 됩니다. 먼저 마음에 새길 모습이고, 다음으로 몸으로 느낄 모습입니다. 이러고서 가만히 생각을 기울여야지요. 무엇을 왜 어떻게 누가 어디에서 누구를 찍되, 어떠한 사랑이 흐르는 손길로 찍느냐를 생각할 노릇입니다.

  제 때를 벗기듯이 제때에 사진기를 손에 쥐면서 묵은 이야기 실타래를 한 올 두 올 벗깁니다. 우리 때를 벗기듯이 우리 살림살이에 깃든 오랜 발자국을 한 걸음 두 걸음 옮기면서 사진 몇 장으로 남겨 봅니다. 사진책 《광민탕》은 목욕탕이라고 하는 마을 만남터·쉼터를 둘러싸고 수많은 ‘때(삶)’가 켜켜이 쌓인 숨결을 보듬은 이야기꽃과 같구나 싶습니다. 2017.4.23.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책 읽기/사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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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의 고양이 - 동물들을 마지막까지 지켜주고 싶습니다
오오타 야스스케 지음, 하상련 옮김 / 책공장더불어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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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읽기 350



후쿠시마를 되새기며 ‘탄핵’ 다음은 ‘탈핵’

― 후쿠시마의 고양이

 오오타 야스스케 글·사진

 하상련 옮김

 책공장더불어 펴냄, 2016.4.22. 1만 원



  2011년을 가만히 떠올립니다. 이해에 우리 식구는 전남 고흥이라는 고장으로 살림터를 옮겼습니다. 도시를 떠나 전남 고흥이라는 시골에 살림터를 새로 움틀 적에 여러 가지를 살폈어요. 공장이나 고속도로나 골프장이 없는 고장을 살피기도 했지만, 한국에 있는 핵발전소하고 멀리 떨어진 고장을 살피기도 했어요.


  핵발전소가 아니어도 무시무시하다 싶은 시설이나 건물이 한국 곳곳에 많습니다. 전남 고흥은 동녘이나 서녘에 있는 핵발전소가 ‘꽝 하고 터질 적’에 ‘위험 대피 구간’에 들지 않는 하나뿐인 곳이었어요. 위성지도로 이 대목을 알아보고 난 뒤에 고흥에 깃들자고 다짐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둘레에 하면 예전에는 그냥 웃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뭘 그렇게 따져?’ 하는 눈치였어요. 일본에서 핵발전소가 터질 줄은, 게다가 핵발전소가 터지니 그렇게 끔찍한 일이 일어날 줄은, 더욱이 그 손길이 일본에 그치지 않고 한국으로도 넘어오는 줄 헤아린 사람은 퍽 드물었지 싶어요. 요즘에는? 요즘에는 ‘후쿠시마에서 큰일이 터진 줄 잊은’ 분이 꽤 많지 싶습니다.



 그날(2011년 6월) 나는 원전으로부터 10킬로미터 떨어진 도미오카에서 개,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던 길에서 작업복 차림의 무뚝뚝한 표정의 남자와 딱 마주쳤다. 바로 마츠무라 씨였다. 당시 그곳은 피폭 위험이 아주 높아서 머무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그런데 마츠무라 씨는 그곳에 홀로 남아 사람들이 피난 가면서 남겨진 개와 고양이를 찾아다니며 밥을 챙기고 있었다. 또한 상업적 가치가 없어져서 살처분당하기만을 기다리는 소들도 데려와서 돌봤다. (6쪽)



  《후쿠시마의 고양이》(책공장더불어,2016)라는 작은 책을 읽습니다. 이 책은 오오타 야스스케라는 분이 글하고 사진으로 엮었습니다. 2011년 3월에 일본에서 무시무시하고 슬픈 일이 터진 뒤에 마주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오오타 야스스케라는 분은 2011년 유월에 후쿠시마 원전에서 얼마 안 떨어진 데에서 ‘버려진 개하고 고양이’한테 밥을 주었다고 해요. 이때에 마츠무라라는 사내를 만났고, 이 사내는 후쿠시마 둘레에서 ‘버려진 수많은 짐승’을 거두면서 돌보았다고 해요. 방사능 때문에 무시무시하다고 하는 곳에서 방사능은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사람이 버린 짐승’ 곁에 머물며 홀로 조용히 살았다고 합니다.


  사람도 짐승도 사랑받을 숨결이라고 여긴 마츠무라 씨라고 합니다. 사람도 짐승도 똑같이 아름다운 목숨이라고 여긴 마츠무라 씨라고 해요. 오오타 야스스케라는 분은 이런 마츠무라 씨를 처음 만난 뒤 이이가 후쿠시마 한복판에서 길도 집도 사랑도 잃은 크고작은 짐승을 살뜰히 보살피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글로 남깁니다.



동물을 버린 사람들은 모른다. 버려진 동물들이 어떻게 되는지. 그들은 믿고 싶지 않겠지만 보건소로 간 동물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다. 하지만 네 마리 새끼 고양이는 살 운명이었던 모양이다 보호시설의 자원봉사자가 새끼 고양이를 살리기 위해 입양자를 찾던 중 알고 지내던 마츠무라 씨에게 연락을 한 것이다. “불쌍하네.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17쪽)



  《후쿠시마의 고양이》라는 작은 책에는 ‘후쿠시마 고양이’를 비롯해서 ‘후쿠시마 개’나 ‘후쿠시마 소’나 ‘후쿠시마 타조’나 온갖 짐승이 나옵니다. 이들 짐승은 한때 사람한테서 사랑받았습니다. 이들은 한때 ‘사람이 먹을 고기’로 여겨 커다란 우리에서 지냈습니다.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가 터지고 무서운 바람이 휩쓸자 그만 사람들은 죽기도 했고 떠나기도 했는데, 이때에 수많은 짐승은 보금자리이며 먹이가 없이 죽음만 기다려야 했다고 해요.


  사람 살기에 바쁘니 짐승은 죽음수렁에 그대로 내버려둘밖에 없을 수 있어요. 사람은 살려도 짐승은 위험하니 짐승은 모두 죽여야 한다고 여길 수 있어요.


  한국을 돌아보면 조류독감이나 어떤 돌림병이 퍼질 적마다 수많은 소나 닭이나 뭇짐승이 수없이 죽습니다. 산 채로 땅에 파묻힙니다. 무서운 병이 퍼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뜻은 알 만합니다만, 참으로 아무렇지 않게 수만 수십만 수백만 ‘고기짐승’이 산 채로 파묻혀서 죽음길로 갑니다.



인간도 동물도 같은 생명이다. 하지만 가축의 생명은 다르다. 인간을 위한 식재료가 될 때는 그나마 의미가 있지만 방사능에 피폭이 되어 먹을 수 없게 되자 ‘아무 의미도, 아무 필요도 없게’ 되어 버렸다. (70쪽)



  소나 돼지나 닭은 ‘식재료’, 이른바 ‘먹을거리’일 뿐일까 궁금합니다. 우리는 우리 곁에 있는 수많은 짐승을 그저 먹을거리로만 바라보면 될는지 궁금합니다. 이러면서 몇몇 짐승을 놓고서는 귀염둥이로 여기면 될는지 궁금합니다.


  남새나 열매는 무엇일까요? 능금나무나 배나무나 복숭아나무는 오직 사람한테 먹을거리를 내어주는 목숨일 뿐일까요? 방사능에 더러워졌으면 수많은 열매나무도 모조리 베어서 태우면 될까요? 농약에 찌든 남새나 곡식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다른 나라에서 사들이는 수없이 많은 열매나 남새나 곡식은 농약을 비롯해서 방부제나 온갖 화학약품을 뒤집어쓰는데, ‘먹을거리·푸나무’라는 얼거리에서 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좋을까요?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에 대해 아무 일도 없었던 초기 상태로 되돌리고 싶어한다. 한마디로 ‘리셋’하고 싶은 것이다. 단번에 모든 동물을 깨끗하게 없애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복원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97쪽)



  핵발전소가 터진 자리에서 방사능 기운이 사라지려면 끔찍하도록 긴 나날이 흘러야 합니다. 일본은 소련과 미국에 이어 핵발전소가 터지는 무서운 일을 겪었습니다. 핵발전소가 있는 어느 나라는 일본 후쿠시마를 지켜보면서 이제 핵발전소는 더 짓지도 말고 그대로 두지도 말아야겠다고 정책을 바꿉니다. 또 어느 나라는 핵발전소를 그냥 더 늘리거나 모두 그대로 두려는 정책을 잇습니다.


  한국은 앞으로 어느 길을 가는 나라가 될까요? 한국은 일본 바로 옆에서 후쿠시마 핵발전소를 지켜보면서 무엇을 배웠을까요? 한국 사회는 ‘탄핵’ 다음으로 ‘탈핵’에 나설 수 있을까요? 그리고 탄핵에 뒤이어 탈핵으로 나아가는 길에 핵발전소나 핵폐기물처리장뿐 아니라 수많은 대형발전소와 송전탑과 군부대와 전쟁무기를 바로볼 수 있을까요?


  여기에 ‘후쿠시마에 남겨진 짐승’을 바라보는 눈썰미를 키울 수 있을까요? ‘조류독감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짐승’을 바라보는 눈매는 어떻게 다스릴 만할까요?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들, 잃은 소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안 고친다면 어떤 살림이 될는지 곰곰이 생각할 노릇입니다. 송전탑 둘레에서, 폐기물처리장 둘레에서, 대형발전소 둘레에서, 핵발전소 둘레에서, 그리고 숱한 농약과 항생제와 방부제와 화학약품이 물결치는 곳 둘레에서, 사람들이 앓고 아프며 괴롭습니다. 한국 사회는 언제쯤 이 굴레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아름다운 삶터와 마을과 나라로 나아갈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2017.3.15.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사진책 읽기)


* 이 글에 붙인 사진은 책공장더불어 출판사에 말씀을 여쭈어서 고맙게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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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모하는 서울 - 1960~1980년대 한치규 사진집 2
한치규 지음 / 눈빛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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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읽기 349



신호등 없던 이쁜 서울을 그린다

― 변모하는 서울

 한치규 사진

 눈빛 펴냄, 2016.2.25. 3만 원



  직업군인이던 한치규 님은 군부대에 머물며 지냈습니다. 그런데 한치규 님은 직업군인이면서 사진을 무척 좋아했어요. 사병이 아닌 장교였던 터라 군부대에서도 사진기를 만지작거리며 군부대 언저리를 사진으로 담을 수 있었습니다. 군부대에서 휴가를 받아 서울에 있는 집으로 돌아올 적에는 서울 시내를 사진으로 담고, 이녁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았다고 해요. 이리하여 1960년대부터 한치규 님이 찍은 사진은 《한씨네 삼남매》라는 이름으로, 또 《분단 이후》라는 이름을 붙여 사진책으로 태어납니다. 《변모하는 서울》(눈빛,2016)은 군부대와 집 사이를 오가는 길에 틈틈이 바라본 서울 시내를 아스라이 보여줍니다.


  사진책 《변모하는 서울》은 1960년대를 지나고 1970년대를 가로질러 1980년대에 닿는 서울 모습을 보여줍니다. 서울 시내에 꾸준히 있으면서 지켜본 서울은 아닙니다. 군부대와 서울 사이를 가끔 오가는 길에 살펴본 서울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늘 서울에 머물거나 있던 사람은 ‘서울이 달라지는구나’ 하고 미처 못 느낄 수 있어요. 때로는 ‘이렇게 바뀌는구나’ 하고 느끼더라도 미처 사진으로 못 담을 수 있습니다.


  한치규 님은 군인이라는 몸으로 군부대하고 서울을 오가는 길이었기에 ‘서울이 달라지는구나’를 여느 서울사람보다 살갗으로 알아챕니다. 그리고 짧은 휴가 동안 사진으로 찍어야 하니 ‘이렇게 바뀌는 흐름을 바지런히 찍어야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고작 1960∼70년대인데, 이무렵 서울 시내를 보면 신호등이 잘 안 보입니다. 꽤 넓은 길인데 자동차하고 사람이 알맞게 섞입니다. 아직 전차가 다니는 모습도 사진으로 엿볼 만합니다.


  사진책 《변모하는 서울》을 보다가 문득 이 대목을 눈여겨보아야겠다고 느낍니다. 한국도 1960년대가 저물 무렵까지, 때로는 1970년대로 접어든 뒤에도, 서울 시내에 ‘신호등·건널목’이 없던 곳이 많았구나 싶어요. 오늘날 2010년대에는 서울 시내 어디에나 신호등하고 건널목이 많습니다만, 신호등하고 건널목이 많아도 교통사고가 잦아요. 지난날이라고 해서 교통사고가 드물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만, 길이 ‘오직 찻길’이 아니라 ‘사람하고 차가 섞일 수 있는 길’이라면 사뭇 다르리라 느껴요.


  사람하고 차가 길에 함께 있다면 차는 아무래도 빠르기를 줄여야 해요. 함부로 빨리 달려서는 안 되지요. 사람하고 차가 함께 있기에 차는 한결 느긋할 만합니다. 너른 길을 사람들이 홀가분하게 건널 수 있기에 시내는 아주 많이 시끄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차 많은 길하고 차 없는 길을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자동차가 다니지 않을 뿐이라 하지만, 차 없는 길은 대단히 조용합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발걸음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여름이나 가을에는 서울 시내에서도 풀벌레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이와 달리 차 많은 길에서는 풀벌레 노랫소리는커녕 사람 말소리도 알아듣기 어렵지요. 자동차가 한 대만 지나가더라도 ‘걷는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가 끊어지기 일쑤예요.


  서울 광화문 앞에 모이고, 경복궁 앞에 모이며, 시청 앞에 모인 사람들이 우렁차게 내는 소리가 서울을 오랫동안 뒤덮었습니다. 작은 사람들이 드넓은 찻길을 차지하면서 손에 쥔 촛불 한 자루로 어둠을 환하게 밝히기도 했습니다.


  길이란 자동차만 다니는 곳이 아닙니다. 길에는 사람이 지나갑니다. 우리가 걷고, 우리가 가게를 내고, 우리가 보금자리를 이루고, 우리가 마을을 가꾸고, 우리가 삶을 짓는 길 한켠입니다.


  사진책 《변모하는 서울》에서는 대단히 꿈틀거리거나 용솟음치는 그런 서울을 찾아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진책에 깃든 조용하며 아늑하고 따사로운 서울을 느낄 수 있습니다. 높은 건물과 자동차와 드넓은 찻길을 뽐내는 서울이 아니라, 작고 수수한 사람들이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즐거이 짓는 살림으로 이쁘장한 서울을 돌아볼 수 있어요.


  이 나라 서울이 사랑스러우면서 아름다이 거듭나면 좋겠습니다. 서울뿐 아니라 골골샅샅 모든 고장과 마을이 사랑스러우면서 아름다이 피어나면 좋겠습니다. 우지끈 뚝딱 허물거나 세우는 도시나 시골이 아닌, 따뜻한 사람들이 따뜻한 손길로 차근차근 일구어 빛내는 어여쁜 마을이 된다면 참으로 좋겠어요. 보퉁이를 인, 아기를 업은, 가벼운 고무신 차림으로 걷는 아지매 손이 이 나라를 튼튼히 살찌웠습니다. 2017.3.12.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책 읽는 즐거움/사진비평)


* 이 글에 붙인 사진은 눈빛출판사에서 보내 주셔서 고맙게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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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녜 - 김흥구 사진집
김흥구 지음 / 아카이브류가헌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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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진책 읽기 348



제주에서 좀녜를 마주한 열네 해

― 좀녜

 김흥구 사진

 아카이브류가헌 펴냄, 2016.11.30. 4만 원



  사진책 《좀녜》(아카이브류가헌,2016)를 보면, 사진가 김흥구 님이 풋풋한 젊은이였던 무렵(2003년) 문득 사진으로 담은 좀녜 이야기를 그 뒤 열 몇 해가 흐른 오늘에도 꾸준히 바라보면서 사진으로 담은 자국이 고이 흐릅니다.


  한때 눈여겨보고 사진으로 신나게 아로새긴 좀녜 이야기가 아닙니다. 좀녜를 보고, 어머니를 보고, 가시내를 보고, 아버지를 봅니다. 이러면서 어느덧 김홍구 님 스스로를 본다고 합니다.


  어느 날에는 이윽고 섬을 볼 수 있었다고 해요. 섬과 섬 사이에서 물질을 하는 사람들 곁에 있으면서, 김홍구 님 스스로 섬과 섬 사이에서 사진질을 하는구나 하고 깨달았다고 합니다.


  사진책 《좀녜》에는 이 사진책에 붙은 이름처럼 ‘좀녜’만 나옵니다. 그런데 좀녜인 분들은 바다에서 물질만 하지 않아요. 물질을 하러 바닷가로 걸어가요. 물질을 해서 딴 바닷것을 짊어지고 나와요. 불을 피워 몸을 말려요. 함께 물질을 하는 이웃 좀녜하고 이야기꽃을 피워요. 물질 말고도 밭일을 하지요. 집안일을 해요. 아이를 낳아 돌보아요. 살림을 꾸리며 아이를 가르쳐요. 학교라는 곳이 서기 앞서까지 좀녜인 분들 누구나 ‘일꾼’이면서 어머니요 아버지이자 살림꾼이자 ‘교사(아이를 가르치는 이)’로서 이 땅에 튼튼히 선 숨결이에요.


  바다에서 물옷 ‘소중이’를 입을 적에는 좀녜입니다. 집에서 아이를 돌볼 적에는 어머니예요. 살림을 꾸리며 집안을 이끌 적에는 아버지요, 아이한테 말을 가르치고 씨앗 심어 밭을 일구는 손길을 물려줄 적에는 교사입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라는 이름을 얻지 않더라도, 좀녜는 좀녜로서 살갑고 사랑스러우며 씩씩한 숨결로 늘 제주섬 한켠에서 마을을 가꾸고 보금자리를 지은 분들 삶에 붙은 이름이라고 느낍니다. 김흥구 님이 빚은 사진책은 좀녜를 만나고 어머니를 만나며 여자와 아버지와 김흥구 님 스스로를 만나는 동안 한 올 두 올 피어난 이야기일 테고요.



해녀가 있다. 

매일 볼 때도 있고, 한 달에 한두 번 혹은 일 년에 한두 번 볼 때도 있다.

있다, 있는 것은 온통 해녀뿐인데

어떤 날은 어머니였다가, 여자였다가, 때로는 아버지였다.

그리고 그것은 나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늘 섬과 섬 사이에 있었다. (17쪽)



  마을에서 할매가 호미를 손에 쥐고 나물을 캡니다. 할매는 먼먼 옛날부터 호미질을 했고, 나물을 캤습니다. 이 나물은 온식구한테 밥이 됩니다. 때로는 저잣거리로 들고 나가서 팔아요.

  마을에서 할배가 지게를 짊어지고 나무를 합니다. 할배는 먼먼 옛날부터 나무를 했어요. 땔감을 마련해서 집에 쟁였고, 우람하게 잘 자란 나무는 살뜰히 건사하면서 먼 뒷날 아이들이 집을 새로 지을 적에 쓰도록 남겼습니다.


  마을에서 할매가 물질을 하며 바닷것을 땁니다. 할매는 먼먼 옛날부터 물질을 했고, 바닷것을 땄습니다. 처음에는 식구들이 먹을 바닷것이었고, 마을에서 나눌 바닷것이었습니다. 나중에는 나라에서 바닷것을 바치라고 했어요.


  마을에서 할배가 먼먼 옛날부터 하는 일을 헤아려 보면, 땅을 일구고 집을 지으며 새끼를 꼬았습니다. 바구니를 삼고 그릇을 엮었어요. 이러다가 나라가 생기고 임금이 서면서, 할배 같은 사내는 젊을 적에 군역을 진다든지 성벽을 쌓는다든지 하는 자리에 끌려가야 했습니다.


  할매가 걸어온 길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할배가 살아온 날에는 무엇이 흐를까요. 예부터 할매랑 할배는 온몸으로 온살림을 짓는 데에 온힘을 기울였어요. 이러면서 온마음으로 이야기를 지어 아이들한테 들려주었어요. 할매나 할배는 먼 옛날부터 ‘슬기로운 사람’ 자리에 있었어요. 젊은이나 어린이는 할매나 할배한테서 슬기를 물려받고 사랑을 이어받으면서 이녁을 고이 섬기는 삶이었어요.


  사진책 《좀녜》를 읽으면서 할매랑 할배가 이 땅에 남긴 자국을 헤아립니다. 제주에서 ‘좀녜(해녀)’로 일을 한 할매들 자국은 역사책에 몇 줄 안 나옵니다. 이른바 조선왕조실록 같은 역사책에는 임금님 이야기만 잔뜩 있어요. 따로 좀녜 이야기를 갈무리한 역사책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인문지리학에서도 좀녜를 찬찬히 살피거나 파고든 책은 거의 찾아볼 길이 없지요. 요즈음 들어서야 조금 있다고 할 만합니다.


  사진을 찍은 김흥구 님은 앞으로도 낮은 걸음으로 제주 좀녜를 사진으로 담을 생각이라고 합니다. 스물을 갓 넘긴 때에 바라본 좀녜하고, 서른을 지나며 바라보는 좀녜는 다를 테고, 마흔을 지나고 쉰을 지나며 바라볼 좀녜는 또 다르면서 새로운 결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윽고 김흥구 님이 머리 하얀 할아버지가 되어 좀녜를 꾸준히 찍는 사진길이 된다면, 그때에는 사진으로 빚고 이루는 남다르면서 새로운 실마리를 살며시 밝힐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함께 늙고 함께 삽니다. 함께 나이가 들고 함께 슬기를 얻습니다. 함께 무르익고 함께 자랍니다. 바닷바람이 불고 바닷물이 일렁이는 곳에서 고요히 물속에 잠겼다가 가쁜 숨을 내뱉으며 물밖으로 나와서 살림을 이루는 손길을 사진마다 따사로이 마주합니다. 2017.3.2.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책 읽는 즐거움/사진비평)


* 글에 붙인 사진은 류가헌갤러리에서 고맙게 보내 주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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