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게스트하우스 한국어 창비시선 460
권창섭 지음 / 창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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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2021.9.7.

노래책시렁 202


《고양이 게스트하우스 한국어》

 권창섭

 창비

 2021.7.25.



  썩 재주가 없는 몸으로 태어나서 살아오다 보니 “번뜩이는 재주” 같은 말을 들으면 주눅이 들었습니다. 마흔 줄 나이를 지나면서 “재주가 없는 몸이야말로 재주이겠네” 하고 느끼는데, 저한테는 ‘번뜩이는’ 눈빛이나 말빛이 없다고 생각해요. 글을 쓰든 살림을 하든 아이를 돌보든 밥을 짓든 무엇을 하든, 참말로 ‘번뜩이는’ 사람이 있고 언제나 ‘수수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는 ‘번뜩번뜩’일 테고 누구는 ‘조촐조촐’입니다. 《고양이 게스트하우스 한국어》를 읽으며 번뜩거리는 글길을 느낍니다. 이렇게 번뜩댈 만하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어쩐지 저한테는 번뜩글은 그리 마음으로 스미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한 가지 번뜩말은 다른 번뜩말로 잇기 마련이고 자꾸자꾸 번뜩말에 얽매입니다. 번뜩거려야 한다는 굴레에 스스로 갇히지 싶어요. 안 번뜩거리면서 삶을 짓는다면 어떤 말이 피어날까요? 수수하게 살림을 돌보는 눈망울이라면 어떤 말로 하루를 노래할까요? 번뜩말이 나쁘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만, 자꾸 번뜩번뜩하면 눈이 부셔서 쳐다보지 못해요. 새까만 시골 밤길에 번뜩거리는 부릉이 같달까요. 별빛을 보고 싶은데 부릉부릉하면서 시끄럽게 구는 서울내기 같달까요. 노래는 노래이면 됩니다.


ㅅㄴㄹ


흥미로운 것은 인스턴트만 먹고 사는데도 / 설거짓거리가 자꾸 쌓인다는 겁니다 / 몇번은 음식물 쓰레기를 변기에 그냥 내리기도 했어요 / 먹다 남은 것은 마치 제 배설물 같기 때문입니다 / 사실 아직 / 분리배출을 잘하지 못한다는 비밀도 있습니다 (39-죄책감들 2/23쪽)


유명한 사람과 헤어지고 나는 / 07년식 프라이드에 앉아 시동을 건다 / 나는 홀로 차에 앉아 혼잣말을 하고 / 유명한 사람은 많은 사람들과 5호선에 앉아 있다 (계급/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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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맑은 물살 창비시선 137
곽재구 지음 / 창비 / 199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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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2021.8.27.

노래책시렁 195


《참 맑은 물살》

 곽재구

 창작과비평사

 1995.11.10.



  저한테 돌볼 아이가 없던 무렵에도 글을 쓸 적에는 늘 “어린이도 함께 읽도록 쓴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줄거리나 이야기를 다루더라도 “어린이가 못 읽을 글은 못 쓰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른만 읽는 글꽃(문학)은 얼마나 아름답거나 값질까요? 우리는 글꽃이란 이름으로 어떤 속내나 민낯을 그리는가요? “어른만 읽도록” 또 “글 좀 읽은 어른만 읽도록” 맞추면서 글꽃이라는 허울을 붙이거나 내세우지는 않는지요?  《참 맑은 물살》을 읽다가 고흥하고 인천 이야기를 오래도록 되읽어 보았습니다. 고흥사람도 인천사람도 아닌 글님이 바라본 고흥하고 인천은 이러한 빛이요 삶이로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참말로 고흥에 노닥술집(단란주점·유흥주점)이 많습니다. 시골에까지 이런 노닥술집은 왜 많아야 하나요? 인천에는 비둘기도 많지만 갈매기도 많습니다. 또 코앞이 갯벌이라 이 터로 찾아드는 철새도 수두룩합니다. 그렇다면 고흥하고 인천을 바라볼 어린이라면 무엇을 느끼거나 생각할 만할까요. 이 고장 어린이는 스스로 무엇을 꿈꾸면서 하루를 가꿀 만하나요. 글꽃이란 이름을 내걸고서 글을 쓰는 모든 어른이 이 대목을 헤아리기를 바랍니다. 구경하듯 쓰지 말고, 겉훑기로는 더 쓰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ㅅㄴㄹ


노란 스타킹의 이금순 / 녹동 선창 금다방에 몸 풀었네 / 구기자꽃 바람 날리는 시산 앞바다 / 고깃배빚 오백만원 갚는다고 / 아버지 몰래 처음 수평선 떠났네 / 선창에 반짝이는 네온사인 불빛들 / 국일장 만수장 영하장 동백장 삼미장 / 불빛 속에 한 석달 꾹 참고 있노라면 (금다방/19쪽)


친구여 / 인천 만석동 개펄 어디에서 / 네가 처음 태어나던 날 / 나는 축전 하나 보내지 못했구나 / 세상일에 너무 쫓기고 허덕였으므로 / 밥벌이에 숨쉴 불똥 하나 찾지 못했으므로 / 갈매기 새끼 한 마리가 얼룩무늬 알을 깨고 / 이 세상에 태어나는 일 살피지 못했구나 (인도교 지나며―한 갈매기를 위하여/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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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없는 애인 문학과지성 시인선 391
김이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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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2021.8.7.

노래책시렁 192


《말할 수 없는 애인》

 김이듬

 문학과지성사

 2011.4.25.



  흔히들 ‘옷’을 ‘껍데기’로 여기거나 알지만, ‘옷’은 ‘껍데기’가 아닌 ‘몸’입니다. 삶을 겪거나 치러내는 몸이 바로 옷입니다. 삶을 고스란히 느껴서 마음으로 보내는 구실을 하는 몸이 바로 옷이라고 하겠어요. 이 옷을 꾸미거나 치레하느라 바쁘다면 삶을 겪거나 치를 틈이 줄고, 옷을 이쁘장하게만 건사하려 든다면 아예 삶하고 동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옷에 힘을 줄수록 삶하고 등져요. 삶을 겪는 몸인 옷이기에, 옷(몸)은 좋거나 나쁘지 않고 못생기거나 잘생기지 않습니다. 다 다릅니다. 《말할 수 없는 애인》을 읽으며 ‘옷·몸’하고 ‘말·마음’을 가만히 생각합니다. ‘옷·몸’을 바로볼 적에 비로소 삶을 바로봅니다. ‘말·마음’이 하나인 줄 느끼고 알아서 깨우칠 적에 비로소 사랑으로 갑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노래(시)는 무엇을 보고 느껴서 말하는 길일까요? 옷자락을 꾸미고, 온몸으로 삶을 안 겪으며, 마음을 담는 말이 아니라, 솜씨나 재주를 부리는 글이 넘실거리는, 속삶하고 동떨어진 겉삶이 물결치는 모습이지 싶습니다. 몸으로 겪으며 옷이 어떻게 달라지나요? 마음으로 바라보며 말을 어떻게 다스리나요? 몸으로 마주하며 마음을 어떻게 돌보고, 삶이 배어들 말을 말 그대로 사랑이 되도록 나아가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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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처럼 떨어지는 접시를 받았다 / 바나나가 있는 접시였다 / 바나나가 좋아 / 난 바나나가 좋아 / 더 주세요 / 위에 대고 소리 질렀다 // 내일부터 접시 닦기를 할 거예요 / 내 꿈은 작고 웃기는 거 (날치고 훔치고/22쪽)


그를 만나기 전부터 그가 보내오는 이모티콘이 맘에 들었고 종종 난 그의 동그란 코와 생기 넘치는 탱탱한 엉덩이를 씻겨준다 욕조에서 입 맞추고 비누 거품으로 장난치는 게 좋다 // 웬걸, 그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는가 // 그는 지독히 달라붙는 꼬마였고 망할 놈의 우리는 죽음을 빌었다는 것밖에 (권태로운 첫사랑/108쪽)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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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어두운 저편 창비시선 308
남진우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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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2021.8.7.

노래책시렁 191


《사랑의 어두운 저편》

 남진우

 창비

 2009.11.20.



  2021년 언저리에 널리 퍼진 말씨 하나는 ‘대면·비대면’입니다. 예전에도 이 일본스런 한자말을 쓰기는 했을 테지만 갑작스레 부쩍 늘었습니다. 어린이 눈높이를 헤아려 “만나는·안 만나는”이나 “보는·안 보는”이나 “마주하는·얼굴 없는”처럼 쓰는 사람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라(정부)에서 내려보내는 말씨를 그냥그냥 씁니다. 이제 어린배움터·푸른배움터뿐 아니라 열린배움터도 거의 닫을 판입니다. 그렇다면 생각해야겠지요. 배움터하고 배움책은 어디에 무슨 쓸모가 있을까요? ‘글쓰기·글읽기’가 아닌 ‘문학창작·문학비평’은 삶에 이바지할 만할까요? 《사랑의 어두운 저편》을 읽으며 배움책(교과서)스럽구나 싶었습니다. 노래가 아닌 ‘시라는 문학’이 되려면 이러한 틀을 맞추고, 이렇게 솜씨를 부리고, 이처럼 줄거리를 짜야 한다고 가르치네 싶어요. ‘문학교육’이란 말까지 쓰는 판입니다만, 글은 가르치거나 배울 수 없습니다. 글은 언제나 말이고, 말은 언제나 마음이고, 마음은 언제나 생각 한 줄기에서 태어납니다. 생각 한 줄기에서 태어나는 마음은 삶으로 드러나고, 이 삶을 말에 얹어서 글로 옮깁니다. 배우거나 가르칠 글이 아닌, 살며 삶으로 웃고 울면 어느새 노래(시)가 되고 꽃(동화·소설)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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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잠든 사이 / 당신의 집 지붕 위를 걸어다니는 사람이 있다 / 뚜벅뚜벅 확신에 찬 발걸음으로 / 당신의 불안한 잠에 큰 발자욱을 찍어놓는 사람이 있다 (당신이 잠든 사이/14쪽)


전갈 한 마리 소리없이 네 발뒤꿈치에 다가와 / 가만히 물고 지나갔다 // 사막 입구 쓰러진 네 몸 위로 / 둥근 달이 떠올랐다 / 멀리 출구에서 불어온 한줄기 바람이 / 네 귀에 뭐라고 속삭이고 지나갔다 (生/44쪽)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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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령 큰바람 - 1995 제3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문학과지성 시인선 131
황동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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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2021.8.1.

노래책시렁 190


《미시령 큰바람》

 황동규

 문학과지성사

 1993.11.30.



  배움터(학교)는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노래(시)를 물음풀이(시험문제)에 맞추어 조각조각 뜯고 줄거리(내용)하고 알맹이(주제)하고 글감(소재)을 알아내도록 가르칩니다. 그런데 노래를 ‘줄거리·알맹이·글감’으로 뜯어야 할까요? 가락(운율)을 짚고 빗댐말로 헤아려야 할까요? 저마다 다른 사람이 어느 한 가지를 저마다 다르게 느끼기에 저마다 달리 노래하기 마련입니다. 이웃이 어떤 마음이요 생각인가를 느끼고 읽어서 주고받으려는 뜻이 아니라면, 굳이 노래를 가르치거나 배워야 할까요? 《미시령 큰바람》을 읽는 내내 노래는 누가 누구한테 가르칠 수도 배울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노래는 그저 부릅니다. 잘난 노래나 못난 노래란 없어요. 노래를 놓고서 물음풀이를 한다면 모두 눈속임이나 거짓이지 싶습니다.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르게 느끼기 마련일 노래인데, 어떻게 줄거리나 이야기를 하나로 짜맞추어야 할까요? 곰곰이 보면 이 나라에서는 ‘문학비평·문학창작·문학수업·문학강좌’가 있습니다. 삶을 노래하고 살림을 사랑하면서 사람이 숲으로 서는 길을 나누는 자리는 좀처럼 안 보입니다. 글쓰기를 배워서 틀에 맞추는 문학이 아닌, 사랑으로 살림을 짓는 삶에서 저마다 피어나는 노래이기를 빕니다.


ㅅㄴㄹ


오백 년은 넘어 뵈는 느티나무가 지나가고 / 오르페우스처럼 / 나는 휘딱 뒤돌아본다. / 오토바이 하나가 눈앞에서 확대되려다 만다. (지방도에서/26쪽)


마음속 악마가 속삭인다. / 뒤돌아보지 마라. / 뒤를 보이지 마라. / 시간 됐다, 출석부와 책을 끼고 곧장 강의실로. (마왕魔王/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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