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는 목마름으로 창비시선 33
김지하 지음 / 창비 / 199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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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숲노래 노래책 2022.1.23.

노래책시렁 216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창작과비평사

 1982.6.5.



  1941년에 태어나 서슬퍼런 나라에서 서슬퍼런 글을 살을 깎으며 쓴 사람은 1991년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를 읊습니다. 민족문학작가회의는 이이를 내쫓고 ‘변절·배신·이단’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노래님 김지하는 왜 마흔 살에 “죽음굿판을 걷어치우라”고 외쳤을까요? 그동안 제대로 안 밝혀진 뒷이야기는 지난 서른 몇 해 사이에 조금씩 드러났습니다. 간추리자면 ‘운동권·진보문인’은 “김지하가 박정희 군사독재 감옥에서 목숨을 빼앗겨 ‘열사’가 되어야 민주·평화·통일을 빨리 되찾는다”고 여겨 숱하게 “자살하라”고 괴롭혔”으며, “끝까지 스스로죽기(자살)를 손사래친 김지하를 끝없이 괴롭히고 따돌릴 뿐 아니라, 가시어머니 박경리 님까지 나란히 괴롭히고 따돌렸다”고 합니다. 이 대목을 헤아리고 나니 왜 박경리 님이 조용한 시골로 터전을 옮겨 손수 호미질을 하고, 딸이랑 사위가 시골로 가서 지내도록 그렇게 애썼나를 알겠어요. 《타는 목마름으로》를 서른 해 만에 천천히 되읽었습니다. 이름팔이·돈팔이가 아닌 ‘사랑’이라는 길을 찾아서 노래하고 싶은 푸른숨결이 피어나는 글입니다. 이 사랑노래를 글힘꾼(주류문단·기득권 진보문인)은 깔보며 비웃었습니다. 그들 무리는 참사랑이 아니니까요.


ㅅㄴㄹ


언젠가는 돌아올 봄날의 하늬 꽃샘을 뚫고 / 나올 꽃들의 잎새들의 / 언젠가는 터져나올 그 함성을 / 못 믿는 이 마음을 죽음이라 부르자 (1974년 1월/11쪽)


눈은 내린다 / 술을 마신다 / 마른 가물치 위에 떨어진 / 눈물을 씹는다 / 숨어 지나온 모든 길 / 두려워하던 내 몸짓 내 가슴의 / 모든 탄식들을 씹는다 / 혼자다 (바다에서/25쪽)


저 청청한 하늘 / 저 흰구름 저 눈부신 산맥 / 왜 날 울리나 / 날으는 새여 / 묶인 이 가슴 // 밤새워 물어뜯어도 / 닿지 않는 밑바닥 마지막 살의 그리움이여 / 피만이 흐르네 / 더운 여름날의 썩은 피 (새/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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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2022.1.16.

노래책시렁 212


《지는 꽃이 피는 꽃들에게》

 김희수

 광주

 1988.5.30.



  글이 꽃이 되자면, 글을 쓰는 사람 스스로 꽃살림을 지으면 돼요. 글이 노래가 되자면, 글을 쓰는 사람 스스로 살림노래를 펴면 되고요. ‘글꽃’은 한자말 ‘문학’을 손질한 낱말일 수 있으나, 글이 갈 길을 밝히는 이름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오늘날 숱한 글은 스스로 꽃이기보다는 겉멋으로 흐릅니다. 스스로 노래이기보다는 자꾸 겉치레로 어수선합니다. ‘민중문학’에 ‘민중’이 있을까요? ‘민족문학’에 ‘민족’이 있는가요? 글바치가 ‘민중’이란 한자말로 가리키는 사람은 ‘민중’이란 한자말을 안 쓰고, 글꾼이 ‘민족’이란 한자말로 가리키는 사람도 ‘민족’이란 한자말을 안 써요. 그냥 ‘사람’이라 할 뿐입니다. 《지는 꽃이 피는 꽃들에게》를 무덤덤히 읽었습니다. 스물 몇 해 앞서 읽던 때에 조금 거슬리던 대목은 스물 몇 해를 지나면서 퍽 거북합니다. 돌이가 아닌 순이가 글을 쓰면서 ‘민중·민족’을 말할 적에도 살을 부비는 줄거리를 그토록 써댈까요? 글쎄, 아니지 싶습니다. 곰곰이 보면, ‘민중문학·민족문학’ 어디에서도 밥을 짓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아기를 돌보거나 집안일을 하거나 걸레를 빨거나 못질을 하거나 도끼질로 땔감을 얻는 얘기가 없지 싶습니다. 이제 겉말치레를 걷을 때입니다.


ㅅㄴㄹ


무등 아래서 / 총각처녀들 눈맞아 사랑 나누고 / 아들은 커서 더 큰 아버지 / 딸은 커서 더 큰 어머니 되고 (무등아래서/12쪽)


눈 맞았단다. / 알량한 남편을랑 사우디에 앗겨버린 / 상여집 며느리와 / 밤 몰래 부르스를 추고 돌아와 / 흙무지랭이라서 고자라 소문나서 / 장가 못가 애타던 서른 여섯을 / 던져버렸단다 박꽃도 숨죽여 / 시들어버린 저 벌판의 음흉한 밤에 (여름 悲歌/1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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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구별에 온 날
나비연 지음 / 있는그대로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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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2022.1.16.

노래책시렁 213


《내가 지구별에 온 날》

 나비연

 있는 그대로

 2020.11.11.



  왜 글을 쓰느냐고 묻는 분이 많아서 “저는 글을 안 써요. 저는 얘기를 글로 옮길 뿐입니다.” 하고 들려줍니다. “글로 옮기기가 글을 쓰기가 아니냐”고 되묻는 분한테 “달라요. 처음부터 글을 쓸 생각은 하나도 없어요. 스스로 짓는 삶을 스스로 받아들여서 한껏 누리고서 말로 담고, 이 말을 다시 글로 옮길 뿐이에요. 요새는 아이들하고 누리는 살림을 신나게 살아내고서 새삼스레 글로 옮깁니다.” 하고 덧붙여요. 《내가 지구별에 온 날》을 읽으면서 노래님이 ‘푸른별’ 너머에 있는 온별을 바라보다가 누구한테나 마음 가득히 빛나는 속별을 나란히 헤아릴 만한가 하고 어림합니다. 때로는 온별을 바라보는 글이 흐르고, 때로는 별빛을 잊은 잿빛나라(도시)다운 글이 출렁입니다. 조금 더 뜸을 들여서 별빛을 바라보았으면 이 노래책이 한결 반짝일 텐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으로도 별을 볼 뿐 아니라, 몸으로도 언제나 별을 보는 살림을 누린다면 이야기가 확 새로울 만했다고도 생각합니다. 다만 사슬에 갇힌 글이 너무 넘치는 오늘날이라, 사슬을 내려놓고 살짝 달아나서 여민 글은 반갑습니다. ‘달아나기’를 나쁘게 여기는 분이 꽤 많은 듯싶은데, ‘달리며 놀 수 있는 곳을 찾아 달아나’야, 비로소 ‘나다운 나를 찾’습니다.


ㅅㄴㄹ


사람 안에 담겨 / 사람이 됐고 // 여자 몸에 살게 돼 / 여자가 됐고 // 여자로 태어나서 / 딸이 됐고 // 늦게 와서 / 동생이 됐고 (나는 나/32쪽)


하루 종일 파이팅 / 싸울 때나 안 싸울 때나 / 언제나, 파이팅! (파이팅!/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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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통수 좀 삐딱하면 어때 한솔수북 동시집 3
김경화 지음, 김성찬 외 그림, 권은정 지도 / 한솔수북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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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동시읽기 2022.1.16.

노래책시렁 214


《뒤통수 좀 삐딱하면 어때》

 김경화 글

 김성찬·이주민·안재우 그림

 한솔수북

 2021.12.17.



  잿빛집이 살기 좋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아서 잿빛집이 쭉쭉 늘어날는지 모르나, 잿빛집살이에는 ‘아파트 = 돈’이라는 생각하고 ‘아파트 = 서울살림(도시생활)’이라는 틀이 맞물립니다. 잿빛집을 사거나 빌려서 살아갈 적에는 ‘아이’하고 ‘살림’하고 ‘사랑’ 셋을 몽땅 버리는 길이요, ‘숲’을 잊는 굴레이기도 합니다. 잿빛집이 나쁘다는 소리가 아니라, 잿빛집은 이런 바탕으로 올려세운다는 뜻입니다. 오랜마을을 밀어내고 숲을 깎아내려야 잿빛집을 올립니다. 냇물을 못 마시도록 막고서 꼭짓물을 마시도록 길들여야 잿빛집을 이룹니다. 마당에 나무를 심고 텃밭을 돌보는 조촐한 살림하고 등져야 잿빛집이 우람합니다. 《뒤통수 좀 삐딱하면 어때》를 비롯한 오늘날 웬만한 노래꽃은 잿빛집살이를 바탕으로 엮습니다. 워낙 잿빛집에서 사는 사람이 많으니 잿빛집을 둘러싼 하루를 글이며 그림으로 담을 텐데, ‘잿빛’을 덜어낸 ‘집’을 바라보면 사뭇 다르게 이야기를 풀어낼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어버이를 따라서 잿빛에 물드는 아이한테 맞추는 글이 아닌, 오롯이 아이라고 하는 숨결을 바라보면서 쓰는 글이라면, 줄거리가 확 다를 만합니다. 마당도 꽃밭도 없이 자라는 아이요 어른이니 까마귀 소리를 미워하는 글을 씁니다.


ㅅㄴㄹ


모든 게 까마귀 때문이야 / 아침부터 깍깍 / 더 자고 싶은데 / 시끄럽게 울어대니 / 아침잠이 모자라 / 수업에 집중할 수 없잖아. (까마귀 때문이야/28쪽)


산마루에 걸터앉아 / 바다를 바라보는 무지개 아파트 // 알록달록 색칠 / 얼룩덜룩 벗겨진 무지개 아파트 // 옹기종기 모여 살던 사람들 떠나고 / 북적북적 시장통 가게들 문 닫고 / 시끌벅적 골목길 조용해지고 / 덩그러니 혼자 남은 무지개 아파트 // 무지개 아파트 허물고 / 29층 새 아파트 세운다는데 / 차곡차곡 쌓아 둔 추억들은 어떻게 될까? (무지개 아파트/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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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네안데르탈 상상인 시인선 5
최종천 지음 / 상상인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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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2022.1.1.

노래책시렁 207


《그리운 네안데르탈》

 최종천

 상상인

 2021.7.23.



  살아온 날을 더듬으면 저한테 빚진 사람이 꽤 있을 테지만, 잘 안 떠오릅니다. 그 빚이 뭔 대수랴 싶어요. 이와 달리 제가 빚진 사람은 늘 떠올립니다. 나한테 빛을 베푼 이웃하고 어른하고 동생하고 동무가 있기에 즐겁게 살림꽃을 피우는 밑거름으로 삼는구나 싶습니다. 이태 앞서 얻은 빚을 갚고서 생각합니다. 진 빚에 곱으로 얹어서 그이한테 보내면서 “잘 가렴. 다시 볼 일 없겠구나.” 하고 혼잣말을 했습니다. 밤새 이 빚·빛을 가만히 돌아보았어요. 돈이 없어서 바보이지 않고, 돈이 있어서 바보이지 않습니다. 마음이 텅 비어 바보요, 마음을 사랑으로 채우기에 빛납니다. 《그리운 네안데르탈》을 읽으며 반가우며 아쉬웠어요. 노래님이 ‘어린이’ 눈빛으로 글결을 여미었으면 그야말로 눈부실 텐데, 어린이를 마주하는 삶을 반기는 몸짓만큼 글은 덜 무르익었네 싶어요. 글을 못 썼다는 뜻이 아닌, ‘어린이가 함께 읽을 글은 아니’란 뜻입니다. 나이도 이름도 몸뚱이도 잊기를 바랍니다. 눈빛하고 마음하고 사랑만 헤아리기를 바라요. 어린이하고 주고받는 말을 넘어, 어린이하고 마음으로 속삭이는 노래를 어린이 눈빛에 어린이 말씨로 차곡차곡 풀면서 ‘어린이랑 노래할 글’로 가다듬는다면 들꽃 한 송이가 피리라 생각합니다.


ㅅㄴㄹ


친구들은 다 아파트로 이사 가는데 / 우리 언제 이사 갈 거야 아빠! 하며 / 대들던 녀석이 / 그날 밤 /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 물난리 난 후 처음으로 / 아내와 집 한 채 짓고 싶던 밤이었다. / 녀석을 가운데 두고 / 셋이서 한 몸이었다. (입주/24쪽)


집단주택에서는 아기 우는 소리가 지나치게 크면 / 와서 따지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 무슨 악기로 아기가 우는 소리를 낸다면 / 사람들은 그 소리를 음악이라고 하여 / 제법 크게 들으며 어느 대목이 어쩌니 해가며 / 법석들을 꾸밀 것이다. (아기 울다/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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