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자 - 풀빛시선 31
김남주 / 풀빛 / 198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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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숲노래 노래책 2022.3.6.

노래책시렁 221


《솔직히 말하자》

 김남주

 실천문학사

 1989.11.25.



  민낯을 말하기에 글입니다. 민낯을 말하지 않으면 눈가림이나 눈속임입니다. 참을 말하기에 글입니다. 참을 말하지 않으면 거짓입니다. 누구는 눈가림·눈속임·거짓을 말해도 ‘글’이지 않느냐고 읊으나, 참말로 눈가림·눈속임·거짓을 ‘글’이라 말할 수 있는지요? ‘글’이라 말해도 될는지요? 예전에 무슨무슨 뽑기(선거)만 있으면 사람들한테 막걸리를 먹이고 뒷주머니에 돈 몇 푼 욱여넣고서 종잇조각(표)을 얻곤 했습니다. 2022년 오늘날에도 이런 짓은 시골 한켠이나 서울 한복판에서 버젓이 일어납니다. 대통령·국회의원·시장·도지사·군수 앞에서 알랑거리면 돈이며 자리를 얻고, 그들 눈밖에 나면 빈그릇이지요. 새 우두머리를 뽑는 마당에 ‘택배상자·지퍼백·호주머니·분리수거 쓰레기자루’에 ‘코로나 확진자 투표용지’를 욱여넣는 일이 벌어지고, 이를 찰칵찰칵 담아낸 사람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라는 노래책 이름대로, 고스란히 말할 노릇입니다. 잘못을 잘못이라 말하거나 밝히지 않는다면, 참빛(자유·민주·평등·평화)을 어디에서 찾을까요? 이웃나라 일본 우두머리가 뭔가 잘못을 저지를 적마다 “유감”이라 말해서, 이 문드러진 말이 얼마나 문드러졌는가 따지던 무리가 똑같이 “유감”을 읊는 오늘입니다.


ㅅㄴㄹ


우리 둘의 사랑은 / 은하수 건너 무지개끝을 달리는 / 그런 사랑도 아니라오 / 누구 누구 아무개 싯귀처럼 / 단풍나무 숲으로 난 작은 길로 / 백마 타고 청포자락 날리며 가는 / 그런 사랑도 아니고요 (우리 시대의 사랑/15쪽)


미국이 이 땅을 점령하고 그동안 40년 동안 / 나라의 대통령이란 자가 해야 할 급선무는 / 자유가 그 고개를 들면 그 목을 치고 / 민족이 그 목소리를 높이면 그 입을 틀어막고 / 노동이 해방의 불꽃으로 타오르면 그 불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네 (발언/66쪽)


이쪽은 썩고

저쪽은 곪고

그쪽은 너무 먼나라 얘기를 읊는다.

썩지 않으면서 가멸찬 이도 있을 테고

곪지 않으면서 착한 이도 있을 텐데

서른 해 가까이 ‘주7일 종일노동’을 해온

작은 일꾼(노동자)으로서

‘주4일노동’은 아무래도

터럭만큼도 와닿지 않는다.


‘탄소 기후변화 온실가스’가 아닌

‘풀꽃나무 숲 별빛 바닷물 바람’......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다 거짓말쟁이로 돌아선 민낯을

서른 해 즈음 지켜본 터라

기호 15번이나 16번,

또는 기호 100번이나 200번 즈음을

찍을까 하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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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식 - 1980 제4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민음 오늘의 시인 총서 17
김명수 지음 / 민음사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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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2022.3.6.

노래책시렁 220


《月蝕》

 김명수

 민음사

 1980.7.10.



  ‘시’를 쓰는 사람들은 으레 “시 = 언어예술”처럼 말합니다만, 이런 말을 들을 적마다 오글거립니다. 참말로 ‘시’가 ‘언어예술’이라면, ‘시·언어예술’ 같은 바깥말을 우리말로 풀어내거나 고치려는 생각을 터럭만큼이라도 하면서 새말을 지었을 테지요. 《月蝕》은 김명수 님이 처음 선보인 노래책이라고 합니다. 한글로 ‘월식’이라 안 적고 한자로 적은 책이름인데, ‘달가림’을 뜻하는 한자말 ‘月蝕’입니다. 노래님은 노래에 한자를 끝없이 씁니다. 한글로 ‘산천’을 적다가도 불쑥 ‘山川’으로 적고, ‘5月달’처럼 쓰기도 해요. ‘5月달’이 겹말인 줄 느끼지도 못했겠지요. 1980년에 내놓은 노래책에 한자를 안 쓴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김남주 님이 한자를 함부로 썼느냐고 묻겠어요. 여느 글이 아닌 노래에 한자를 함부로 섞거나 내세우는 이들은 ‘읽을 사람’을 먹물로 못박은 셈이요, 한글조차 모르는 사람은 아예 노래를 읽지 말라고 막아선 꼴입니다. “노래 = 말꽃”이려면 그야말로 생각이 꽃처럼 피면서 날개를 달아 나비다이 날아오르도록 가다듬을 노릇입니다. 가시내 젖가슴을 훔쳐보는 바보짓을 그리는 엉성한 사내질이 아닌, 온누리를 사랑으로 보듬는 어진 숨빛을 담을 일이에요.


ㅅㄴㄹ


용왕님은 병이 들고 / 토끼야, 너 간을 주어라. // 萬花方暢한 봄날 산천에 / 네가 따먹은 진달래 꽃잎 주어라 …… // 도토리 익는 十月 山川에 / 싸리순 피는 봄날 산천에 / 언덕 뛰던 / 네 빠른 생기 주어라 // 東海바다 저 어둡고 어두운 / 먹물결 위에 / 네 더운 피도 이제 모두 주어라 (토끼의 肝/52쪽)


해지고 나면 고향마을 윗냇가에 / 목물하던 처녀 아이들 // 풍덩대던 밤 물결에 / 흰 젖가슴 / 달도곤 훤히 비추어 오고 // 풀섶 냇뚝에 숨죽이던 악동들 / 반짝이며 웃음 참던 / 눈동자 몇 개 (개똥벌레/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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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동물원 민음의 시 132
이근화 지음 / 민음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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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2022.2.19.

노래책시렁 217


《칸트의 동물원》

 이근화

 민음사

 2006.4.25.



  우리 집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나이가 들수록 큰고장(도시)을 힘들다고 느낍니다. 큰고장은 무엇보다 뛰놀 곳이 없습니다. 느긋이 해바라기를 하며 쉴 곳이 없고, 별바라기를 넉넉히 하면서 고요히 잠들 곳이 없습니다. 새랑 노래하거나 풀벌레하고 사귈 곳이 몹시 드물고, 바람하고 물을 맑게 마실 데는 없습니다. 《칸트의 동물원》을 가만히 읽었습니다. 여러 벌 되읽어 보는데 어쩐지 숨이 좀 막힙니다. 노래님은 숨막히는 서울살이(도시생활)를 아무렇지 않게 그려낸 듯합니다. 숨막히는 큰고장에서 스스로 새롭게 숨통을 틀 조그마한 불빛을 찾아내는 하루를 그리는구나 싶어요. 먼 옛날 글바치는 으레 두 가지 글감으로 노래했습니다. 첫째는 임금붙이를 기리는 노래요, 둘째는 풀꽃나무를 그리는 노래입니다. 오늘날 글바치는 어떤 글감으로 삶을 노래할까요? 아무래도 스스로 집을 얻어서 살아가는 터전에서 늘 마주하는 하루를 글로 옮길 테지요. 그렇다면 서울·큰고장이라고 하는 터전은 사람한테 얼마나 사람스러운가요? 사람한테 사람스럽지 않게 짠 서울·큰고장에서 어떻게든 수수하게 살아남으려고 하는 길에 적는 글일는지, 스스로 즐겁게 굴레를 내려놓고서 홀가분하게 새길을 나아가며 노래할 글일는지, 저마다 찾아나서야겠지요.


ㅅㄴㄹ


골목마다 장미가 피어나고 / 오후에는 차를 마신다 / 어느 맑은 날에는, // 낮잠을 자고 / 어김없이 목욕을 하고 / 나는 또 나인 듯이 / 외출을 한다 (지붕 위의 식사/30쪽)


나는 나로부터 멀리 왔다는 생각 / 편의점의 불빛이 따뜻하게 빛날 때 / 새벽이 밀려왔다 이 거리는 얼굴을 바꾸고 / 아주 천천히 사라질 것이지만 (따뜻한 비닐/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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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엮은 방패 창비시선 454
곽재구 지음 / 창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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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2022.2.19.

노래책시렁 218


《꽃으로 엮은 방패》

 곽재구

 창비

 2021.2.19.



  일곱 해쯤 앞서 ‘넋·얼·마음·숨’이 어떻게 다른 결인가를 풀어낸 적 있습니다. 오늘 새벽에 새삼스레 이 네 낱말을 짚으면서 어떻게 태어난 결인가를 풀어냅니다. 곰곰이 보면 거의 쉰 해를 들여 네 낱말을 살피고 풀어낸 셈입니다. 이처럼 말뜻풀이·말밑풀이를 해내면 덤덤해요. “아, 이제 끝이네?” 같은 혼잣말이 나옵니다. 해내기 앞서까지는 온생각을 그러모아 바라보고, 해내고 나서는 온마음을 부드러이 풀어놓고서 앞으로 새롭게 바라볼 낱말을 그립니다. 《꽃으로 엮은 방패》를 되읽다가 곽재구 님이 스스로 안 놓으면서 둘레 사람한테는 놓으라고 말하는 결을 새록새록 느낍니다. 〈세월〉 같은 노래는 첫 다섯 줄은 좋으나 다음 줄부터는 군말이네 싶어요. 첫 다섯 줄로 노래가 끝났습니다. 〈기차는 좀더 느리게 달려야 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창비시선 454’에 이름을 ‘올리’고 ‘산문’을 매우 길게 붙였습니다. 칙폭이(기차)는 칙폭이대로 달리면 됩니다. 노래는 노래대로 부르면 됩니다. 회오리바람이 산들바람처럼 불어야 할까요? 더 빠르거나 더 느린 결은 없습니다. 저마다 다를 뿐입니다. 노래란, 소리에 얹는 가락이자 생각이 흐르는 마음입니다. 노래란, 목소리가 아닙니다. 목소리만으로는 ‘외침’일 뿐입니다.


ㅅㄴㄹ


하얀 민들레 곁에 냉이꽃 / 냉이꽃 곁에 제비꽃 / 제비꽃 곁에 산새콩 / 산새콩 곁에 꽃다지 / 꽃다지 곁에 바람꽃 // 소년 하나 언덕에 엎드려 시를 쓰네 (세월/11쪽)


KTX는 시속 삼백 킬로미터로 달리지 / 손을 흔드는 아이도 없지 // 기차는 좀 느리게 달려야 해 / 사람은 좀 느리게 살아야 해 (기차는 좀더 느리게 달려야 한다/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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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고 시선집
최종고 지음 / 와이겔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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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2022,1,23,

노래책시렁 215


《法 속에서 詩 속에서》

 최종고

 교육과학사

 1991.10.20.



  부러우면 진다고들 말합니다. 길(법)을 다루는 길잡이로 일한 최종고 님은 노래님을 부러워해 마지 않습니다. “詩集이 팔린다”는 글을 쓰며 대놓고 부러워하는데, 《法 속에서 詩 속에서》에 담은 모든 글은 ‘부러움노래’입니다. 살다 보면 부러워할 수 있지 않느냐고도 하지만, 글쎄, 왜 부러워해야 할까요? 부러움은 잘못도 나쁨도 아닙니다만, 부러움에 사로잡히면 스스로 빛을 잃습니다. 스스로 즐겁게 펼쳐서 누리는 길로 나아가면 남을 부러워할 까닭이 없어요. 스스로 안 즐겁기 때문에 부러워합니다. 스스로 노래하지 않으니 부러워해요. 자, 봅시다. 모든 새가 꾀꼬리나 종달새여야 하지 않습니다. 모든 새가 독수리나 매여야 하지 않습니다. 꾀꼬리만 노래하지 않아요. 직박구리도 참새도 딱새도 딱따구리도 노래합니다. 오리도 왜가리도 거위도 노래합니다. 모든 새가 똑같은 날개를 달아야 할까요? 모든 나비가 똑같은 무늬나 크기여야 할까요? 모든 꽃이 똑같은 빛깔에 똑같은 날 피어야 할까요? 노래를 노래로 여기지 못하니 길을 길로 느끼지 못합니다. 스스로 ‘法’이랑 ‘詩’라는 굴레에 갇히려 하면 어떤 노래도 피어나지 않습니다. 옛말에 “법 없이도 산다”고 했어요. 슬기로우면 ‘길’이요, 억지라면 ‘틀’입니다.


ㅅㄴㄹ


詩集이 팔린단다. / 팔려도 많이 팔린단다. / 詩集이 팔려도 되는 것일까? / 그럼에도 시집이 팔린다니 / 한국은 詩的인 나라인가? / 아니면 하두 따분하다 보니 / 어디 詩나 읽자하는 세상인가? … 아무튼 詩가 팔린다니 詩人은  좋겠다. / 땀빼어 두꺼운 硏究書를 내어도 / 1년에 몇권도 안 팔리는 法學界와는 달라 (詩集이 팔린다/7쪽)


내 경상도에서 태어나 / 무슨 행운인지 서울法大 교수가 되어, // 관악 캠퍼스에 연구실 하나 차지하고 / 매일마다 관악산 봉우리를 쳐다보며 산다. / 돌 山, 惡山이라 혹평해도 / 10년을 넘어 바라보니 / 그런대로 情같은 것도 들어 (冠岳傳說/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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