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42


《the National English Readers 註解書 6》

 편집부 엮음

 보문당

 1951.12.10.



  남북녘이 한창 서로 죽이고 죽는 싸움판이던 무렵에도 책은 꾸준히 나왔습니다. 집이며 마을을 떠나면서도 배움터를 새로 열었습니다. 곁에서 숱한 사람이 죽어 나갈 적에, 마을이 무너지고 숲이 불탈 적에, 어깨동무하던 이웃이 어느새 눈을 부라리며 윽박지르는 사이로 바뀔 적에, 배움터에서는 무엇을 가르칠 만했을까요. 어린이는 무엇을 배우면서 자라야 이 고단하며 멍울진 살림새를 추스를 만할까요. 《the National English Readers 註解書 6》은 쇠붓으로 긁어서 엮은 책이요, “내쇼낼 英語讀本 註解書”라고 합니다. 학교에서 다루는 영어 교과서를 풀이한 도움책(참고서)입니다. 낱말풀이는 없고, 교과서 글월을 한글로 옮겨놓기만 했는데, 이런 도움책이어도 무척 모자랐을 테고, 몹시 아끼면서 돌려읽었지 싶습니다. 그런데 ‘주해서’는 하나같이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세운 학교 얼거리에 따라 생기고 퍼진 도움책입니다. 바깥말을 익히는 길에 ‘글월풀이’도 있으면 좋겠지만 ‘낱말풀이’가 함께 있을 노릇이지 싶어요. 교과서에 적은 글월은 어느 한 가지만 짚은 대목일 뿐 말은 아니거든요. 무엇보다 예나 이제나 삶·살림·사랑을 밝히는 슬기로운 책이 아닌 이런 도움책부터 나오는 대목은 아쉽습니다. 학습지가 너무 넘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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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47


《조선어문 초급중학교 2》

 조선어문교재편집실·류미옥 엮음

 연변교육출판사

 1985.1.



  사전이란 책을 쓰려면 우리가 쓰는 모든 말을 가리지 않고서 다루어야 합니다. 더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말이 없이 모든 말이 태어난 자리를 살피고, 모든 말이 흐르는 길을 들여다보고, 모든 말이 나아가거나 퍼지는 결을 헤아립니다. 이 나라는 남북녘으로 갈린데다가 중국이며 일본이며 러시아이며 중앙아시아로 흩어지기까지 했어요. 남녘말만 보아서는 사전다운 사전을 못 엮습니다. 그러나 남북녘 정치 우두머리는 으레 으르렁거리기만 하고, 언제나 그들끼리 어울릴 뿐이에요. 이러다 보니 남북녘 말씨뿐 아니라 중국조선족이나 일본한겨레가 쓰는 말씨를 살피기란 너무 어렵습니다. 2001∼2003년에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으로 일할 즈음 연변에 ‘중국조선족 책하고 교과서’를 사려고 다녀오곤 했습니다. 이 나라 헌책집에 때때로 들어오는 《조선어문 초급중학교 2》 같은 교과서가 보이면 주머니를 털어서 장만했어요. 북녘 교과서는 아직 구경조차 못하지만 연변 교과서를 들추면서 북녘 말씨를 어림합니다. 정치는 벼슬아치끼리 노닥거리더라도 여느 사람들 마을살림하고 말살림은 홀가분하게 흐르도록 할 노릇이지 싶습니다. 어려운 말로 하자면 ‘문화 교류’ 없이는 참다운 어깨동무(평화·민주)란 없겠지요. 삶이 말이니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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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책 348


《우표》 124호

 이정호 엮음

 재단법인 체성회

 1976.3.1.



  우표라는 종이를 왜 모았을까 하고 돌아보면, 이 조그마한 종이로 ‘살아가는 오늘, 살아온 어제’ 두 가지를 갈무리하기 때문이었지 싶습니다. 지나간 지 얼마 안 되는 날을 둘레에서 알려주는 일이 드물고, 잘 떠올리지 못하기 일쑤라고 느꼈어요. ‘우표에 새긴 발자취’라고 한다면 으레 ‘나라 자랑질’이기 마련이지만,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우표나 ‘대통령 해외순방’ 우표뿐 아니라 ‘천연기념물’이나 ‘이 나라 새’나 ‘이 나라 숨은 멋터’나 ‘이 나라 악기나 옷’을 우표로 만날 수 있었어요. 나중에는 만화 우표까지 나옵니다. 여느 초·중·고등학교나 대학교는 아직도 만화를 만화라는 갈래로 따로 제대로 들여다보거나 다루지 못합니다만, 우표는 일찌감치 만화조차 ‘우리 살림살이’ 가운데 하나로 여겼습니다. 나라밖 우표에도 눈길이 갔어요. 나라밖 이야기도 신문·방송으로는 너무 좁았고, 학교나 집이나 마을에서는 더더구나 듣기 어렵지만, 나라밖 우표를 들여다보면서 온누리 여러 나라 수수한 살림자취나 ‘그 나라 자랑질’을 엿보았어요. 우체국에 가면 달책 《우표》가 있습니다. 우체국에 가서 서서 읽고, 돈을 모아 받아보았어요. ‘새’를 담은 우표를 크게 담은 《우표》 124호는 여러모로 애틋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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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49


《사라진 나라》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김경연 옮김

 풀빛

 2003.1.15.



  2020년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평전’이 한말로 나옵니다. 반가우면서 아쉽습니다. 지난 2003년에 바람처럼 나왔다가 조용히 사라진 《사라진 나라》가 떠오르거든요. “Debbe Dag, Et Liv”라는 이름이 붙은 ‘평전’은 다른 사람이 린드그렌 님을 돌아본 이야기라면, 《사라진 나라》는 린드그렌 님 스스로 남긴 이야기예요. 스웨덴에서는 1975년에 처음 냈다는데, 어떤 어린 나날을 보냈고, 어떻게 글을 쓰는 길을 걸었으며, 어버이로서 아이들하고 어떻게 어울리면서 하루를 살았나 하는 이야기가 빼곡하게 흘러요. ‘린드그렌 님이 남긴 글하고 발자국’을 다른 사람이 요모조모 살펴서 쓰는 평전이라는 책이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만, 린드그렌 님이 걸어온 길이라면 누구보다 린드그렌 목소리부터 들을 수 있을 적에 한결 넓고 깊이 헤아릴 만하다고 봅니다. 바깥에서는 터무니없는 울타리하고 숱하게 싸워야 했겠지요. 린드그렌 님 이야기책에서 이런 결을 노상 느낍니다. 그런데 이녁은 놀이로 맞섰다고 느껴요. 목소리가 아닌 놀이로, 아이들이 아이답게 뛰노는 터전이며 보금자리를 가꾸고픈 마음으로 높다란 울타리하고 맞섰지 싶어요. “사라진 나라”라는 말에는 “사라진 어린이 놀이나라”라는 뜻이 숨었지 싶습니다. ㅅㄴㄹ


#AstridLindgren #SamuelAugustfromSevedstorpandHannaiHult #AlovestorySwedish #SamuelAugustfranSevedstorpochHannaiHult #DasentschwundeneLand #사라진나라 #우리가이토록작고외롭지않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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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50


《집안일이 뭐가 힘들어!》

 완다 가그 글·그림

 신현림 옮김

 다산기획

 2008.9.30.



  어린 날을 돌아보면, 아버지는 일터에서 돌아온 뒤로 집에서 손을 놓고 받아먹기만 하고, 어머니는 새벽부터 한밤까지 손을 놓을 틈이 없습니다. 아버지한테는 주말이 있으나 어머니한테는 주말이 없습니다. 집 바깥에서 돈을 번다고 해서 숱한 아버지(사내)는 집에서 아무 일을 안 하기 일쑤였어요. 오늘날에는 이 얼개가 바뀌었을까요, 아니면 그대로일까요, 아니면 둘 다 집안일을 안 하고 ‘돈을 들여 심부름꾼을 쓸’까요? 《집안일이 뭐가 힘들어!》는 이 나라에 2008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나옵니다만, 이내 판이 끊어졌습니다. 그린님은 미국에서 1935년에 첫선을 보였어요. 집밖에서 들일을 하며 ‘힘들다’고 외치는 아저씨가 ‘집안일은 매우 쉬워 보인다’면서 곁님한테 집 안팎에서 하는 일을 바꾸어 보자고 말했다지요. 아주머니는 서글서글히 ‘그러자’ 했고, 아저씨는 ‘쉬워 보이는 집안일’을 맡아 보기로 하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엉망진창이었고, ‘들일이야말로 쉽’고 ‘집안일을 함부로 보면 안 되네’ 하고 깨달았다고 합니다. 서로돕고 함께하는 살림길을 슬기로우면서 재미나고 사랑스레 보여주는 이 그림책은 어찌하여 ‘쉽게 사라진’ 책이 되어야 했을까요. 다들 집안일을 대수로이 여기는 물결 탓일까요. ㅅㄴㄹ


#TheStoryofaManWhoWantedtodoHousework #GoneisGone #WandaG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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