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19


《咸錫憲 先生의 편지》

 함석헌 글

 함석헌 펴냄(자비출판)

 1957.2.5.



  ‘옳다 그르다’로 가릅니다. ‘옳다’는 ‘올바르다’나 ‘올차다·알차다’로 잇고, ‘오롯하다·옹글다’로 이으며, ‘알뜰하다’에 ‘아름답다’로 잇습니다. 이 결을 살피면 ‘올·옹·알’이 한 갈래입니다. ‘알’이란 ‘씨알·씨앗’입니다. 새로 자라날 기운을 고스란히 담은 조그마한 꿈이 씨알(씨앗)이요, 곧거나 바르게 서면서 흐르는 튼튼한 숨결이 씨알(씨앗)입니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전쟁에 군사독재를 온몸으로 마주하면서도 조용히 흙을 일구어 삶을 읽던 함석헌 님은 뒷날 《씨알의 소리》란 잡지를 펴내지요. 이녁이 ‘씨알’이라는 낱말을 애틋하게 곁에 둘 만하다고 느낍니다. 씨알이란 모든 숨결에서 바탕이요 밑틀이면서 첫밗이거든요. 손수 쓰고 엮어서 내놓은 《咸錫憲 先生의 편지》는 몇 자락이나 나왔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이런 책이 나온 줄 아는 사람도 드물리라 봅니다. 졸업장학교가 아닌 시골에 길이 있다고 여긴 분이요, 절집이 아닌 하늘에 사랑이 있다고 여긴 분이며, 책이 아닌 흙에 빛이 있다고 여긴 분이고, 정치나 사회가 아닌 숲에서 부는 바람 한 줄기에 뜻이 있다고 여긴 분이었을 테지요. 손수 흙을 돌본다면 권력자가 안 됩니다. 아이를 보살피는 어버이는 독재자가 안 되지요. 사랑이어야 사랑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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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84


《유관순》

 김대영 옮김

 김석배 그림

 초동문화사

 1977.6.10.



  ‘을지그림문고’라고 하는 이름으로 ‘고구려서점 총판’이란 데에서 돌린 《유관순》은 ‘덤핑책’입니다. 책에 붙은 값은 아랑곳하지 않고 싸구려에 무더기로 넘긴 판입니다. 학교에 뒷돈을 건네면서 팔던, ‘가정판매’란 이름으로 집집을 돌며 바가지를 씌우기도 하던, 책마을을 어지럽힌 자국입니다. 글쓴이가 아닌 ‘옮긴이’가 나오는 이러한 책을 쓰거나 엮거나 펴낸 어른은 아이들한테 어떤 돈을 우려내려는 마음이었을까요? 후줄그레한 책을 얄궂게 내놓아 돈벌이에 기울인 그 어른들 삶에 조금이라도 이바지를 했을까요? “그런 책이라도 어디냐? 책 하나 손에 못 쥐는 가난한 아이가 많았는데?” 하면서 지난날 이런 책을 잘못으로 안 여기고 핑계를 대는 어른이 수두룩한 터라, 우리 삶터가 오래도록 쳇바퀴질이지는 않았을까요? 출판사에서는 맞돈을 손에 쥐려고 ‘총판 거래’를 했습니다. 2000년대로 접어든 다음에는 총판보다 ‘홈쇼핑 거래’로 책을 덤터기로 팔아치웠지요. 책을 책으로 여기지 않는 마음이라면, 우리가 이 종이꾸러미로 무엇을 배울까요? 마구잡이로 팔아치우려는 책이어도 ‘유관순’을 다루면 ‘좋은 책’이 될는지요? 하루이틀 팔아넘길 싸구려 아닌, 즈믄해를 고이 건사할 이야기책을 지어서 나누고 싶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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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92


《너에게 친구가 생길 때까지 1》

 호타니 신 글·그림

 한나리 옮김

 대원씨아이

 2015.1.15.



  태어나는 책이 있고, 사라지는 책이 있습니다. 태어난 모든 책이 새책집에 꽂히려면 새책집은 날마다 책칸을 늘리고 책시렁을 들여야겠지요. 그러나 책칸을 늘리거나 책시렁을 들이며 ‘오늘 태어난 책’을 갖추면서 ‘어제 태어난 책’을 보듬는 책집은 몇 안 됩니다. 새로 태어나는 책이란 우리가 그동안 가꾼 삶에서 새롭게 피어난 이야기꽃입니다. 어제 태어난 책이란 앞으로 우리가 즐겁게 가꿀 삶에 밑거름이 될 이야기숲입니다. 두 갈래를 고이 보듬으면서 어우를 적에 이야기라는 자리가 싱그럽겠지요. 갓 나온 책이든, 나온 지 오래된 책이든, 언제나 줄거리하고 알맹이로 마주하면서 이 속살을 넉넉히 받아안는 길을 찾을 적에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너에게 친구가 생길 때까지》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다섯걸음으로 나온 만화책이지만, 이내 판이 끊어집니다. 썩 안 읽힌 만화책은 매우 빠르게 사라집니다. 여러모로 알뜰하며 포근하기에 둘레에 알리고 싶지만 만만하지 않아요. 오늘날 이 나라 공공도서관·학교도서관은 그냥 만화가 아닌 아름만화를 얼마나 건사할까요? 세 해마다 도서정가제를 쑤석거리면 책읽기가 살아날까요? 책을 제값으로 장만하여 제대로 누리는 터전을 닦는 데에 뜻이며 품을 모으는 나라이기를 빕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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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83


《민족중흥 대학·일반용》

 한국문인협회 엮음

 어문각

 1969.4.30.



  “우리는 국민교육헌장을 세밀히 분석하여 그 정신이 가르키는 바 여러 가지 요지를 18개 항목으로 나누었다.” 하고 머리말에 밝히는 《민족중흥 대학·일반용》은 한국문인협회라는 데에서 엮습니다. ‘새 국민 문고’로 나온 책이라는데, ‘대학·일반용’이 있으니 초등하고 중등을 가르는 판도 있겠구나 싶습니다. ‘서강대도서관 폐기도서’로 헌책집에 흘러들었기에 이런 책이 다 있었네 하고 오늘에 와서 돌아봅니다. 나라를 살리자는 뜻보다는 정치권력이 흔들린다 싶기에 나라팔이를 했다고 느낍니다. 나라지기나 벼슬아치가 갖은 말썽을 피우면서 이 말썽짓을 감추려고 ‘민족중흥’이란 이름을 앞세워 사람들을 길들이려 했구나 싶습니다. 군사독재가 온나라를 짓밟은 나날을 붓끝으로 나무라지 않는다면 그들을 글님(문인)이라 할 수 있을까요? 군사독재한테 빌붙거나 엉겨붙으면서 돈·이름·힘을 거머쥔 그들은 그저 허수아비이거나 거머리라고 해야겠지요. 이런 책을 찍은 곳도 똑같이 독재부역을 한 셈입니다. 아무리 ‘폐기도서’로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습니다. ㅅㄴㄹ


“또 혼란해지는 질서를 바로 하기 위해선 군인들까지가 나서 혁명도 하면서, 이 천지개벽만큼 새로운 우리 겨레의 중흥을 위해 진땀을 빼고 있다.” (12쪽/서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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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79


《소설 보다 봄·여름》

 김봉곤·조남주·김혜진·정지돈

 문학과지성사

 2018.8.29.



  소설꾼 한 사람이 그동안 내놓은 책이 2020년 여름날 크게 말썽이 됩니다. 출판사도 소설꾼도 한참 입을 다물거나 팔짱질이었으나, 사람들이 들불처럼 일어나자 부랴부랴 움직이더니 뒤늦게 고개숙이는 시늉에 책을 거둬들이기로 합니다. 이러고서 얼마 안 지나 소설꾼 이름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어렵게 바뀌고, 누리책집에서 이 소설꾼 책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아예 감추려 하네 싶습니다. 큰 출판사가 여러 가지로 보여준 모습은 이 나라 정치·사회하고 닮습니다. 아니, 매한가지일 테지요. 이제는 찾을 길이 없다시피 한 그 소설꾼 자취를 《소설 보다 봄·여름》에서 엿봅니다. 그릇이 얕은 쪽은 소설꾼 하나뿐일까요? 큰 출판사 일꾼이나 대표는, 또 문학평론을 하는 이는, 또 우리들은 ……?


“무엇보다 고향을 떠난 것이 결정적인 변곡점이었다. 나는 상경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촌스러운 내 옷들과 함께 내 말투를 버렸다. 그다음은 옛 친구들이었다 … 여름을 위해 준비해둔 향수는 르라보의 상탈33과 바이레도의 블랑쉬입니다 … 세상에 온전히 ‘나’가 ‘나’인 사람이 없듯, 온전히 ‘나’의 이야기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 역시나 가장 만나고 싶은 독자는 다음 소설을 쓰게 할 사람이에요.” (38, 49, 50, 56쪽/김봉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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