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2.10.26.

숨은책 737


《꼬마 인형》

 가브리엘 벵상

 별천지

 2009.10.30.



  어릴 적에 우리 할머니나 할아버지하고 논 적이 없습니다. 나이가 많기도 하셨으나, 할아버지는 술노름으로 몸이 진작 망가진 뒤였고, 할머니는 이런 짝꿍이 보기싫어 따로살았습니다. 몸져누운 할아버지인데, 우리 어머니는 살뜰히 돌보며 똥오줌을 날마다 치워 주었습니다. 같이 놀고 같이 웃고 같이 쉬고 같이 살림을 짓는 길을 좀처럼 배우거나 보거나 맞이하지 못 했더라도, 술노름이 아닌 살림길로 접어들 수 있습니다. 늙어서 쓰러지기 앞서, 아직 힘을 쓰고 말을 할 수 있을 무렵, 어진 눈빛하고 마음결을 추스른다면, 아이한테 새길을 차근차근 이야기로 여미어 물려줄 수 있어요. 《꼬마 인형》은 1992년에 처음 나왔고, 우리말로는 2003년에 옮깁니다. 길거리에서 돈을 안 받고서 ‘인형극’을 보여주는 할아버지가 골목아이하고 동무로 어울리면서 웃음꽃을 들려주고 나누는 하루를 상냥하게 그려냅니다. 요즈음 이 나라 할아버지들은 어떤 눈빛에 손길에 몸짓에 말씨일까요? 아이들이 이어받아 어떤 터전으로 가꾸기를 바라는 마음일까요? 붓 한 자루로 그림책 한 자락이 얼마든지 아름답게 태어납니다. 값진 물감이 잔뜩 있어야 하지 않아요. 쌈지가 두둑해야 잘살지 않아요. 마음자리에 사랑씨앗을 심어서 돌볼 줄 알아야 살림이에요.


ㅅㄴㄹ

#LaPetiteMarionnette #GabrielleVincent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어제책 20222.10.23.

숨은책 758


《Maria Sibylla Merian : Metamorphosis Insectorum Surinamensium》

 Maria Sibylla Merian 글·그림

 Lanoo Books

 2016.



  1647년에 태어난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님은 독일사람인 아버지에, 네덜란드사람인 어머니를 둡니다. 시앗(후처)으로 들어간 집에서 거의 사랑받지 못 하며 자라던 메리안 님은 어릴 적부터 들에서 놀기를 즐겼고, 풀꽃나무뿐 아니라 ‘풀꽃나무에 깃드는 벌레’를 눈여겨보며, 이 벌레가 나비로 깨어나는 모습을 낱낱이 지켜보았다지요. 꽃이나 나비를 그리는 사람은 많아도 ‘나비가 어떻게 깨어나는지’ 살피거나 이를 담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뿐 아니라, ‘벌레를 가까이하거나 그림으로 담으면 마녀사냥으로 몰려 죽을 수 있던’ 그즈음, 몰래 벌레를 집에서 기르며 고치·날개돋이를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끝내 독일을 떠나야 하면서 어머니 나라인 네덜란드로 건너갔고, 밭짓기하고 그림그리기로 늙은 어머니와 두 딸을 돌보았다지요. 유럽하고 사뭇 다른 수리남을 어렵사리 다녀온 뒤 ‘풀벌레 한살이·눈부신 나비’를 이 풀벌레가 좋아하는 풀꽃나무랑 함께 그림으로 담아 1705년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펴내기도 합니다. 이 책은 2016년에 《Maria Sibylla Merian : Metamorphosis Insectorum Surinamensium》란 이름으로 새로 나오지요. 풀꽃 곁에는 풀벌레가 있고, 풀벌레는 풀꽃하고 함께 살아갑니다. 풀꽃이 맺는 열매하고 풀잎이 사람들 밥이니, 사람은 풀벌레가 곁에 있어야 밥살림을 지어요. 풀꽃나무를 사랑하려면 풀벌레를 사랑하고, 모두 어우러지는 숲을 사랑하자는 뜻이 그림에 물씬 흐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어제책 2022.10.15.

숨은책 712


《世界陶磁全集 18 高麗》

 相賀徹夫·崔淳雨·長谷部樂爾 엮음

 小學館

 1978.7.25.첫/1987.8.1.5벌



  온누리 질그릇을 스물두 자락짜리 두툼하고 커다란 책으로 1978년에 여민 일본책을 살피니, 석 자락은 우리나라 질그릇 이야기입니다. 이 가운데 《世界陶磁全集 18 高麗》를 곰곰이 읽으면서 우리나라는 1978년에 무엇을 했고, 2000년에는 무엇을 했으며, 2020년에는 또 무엇을 했으려나 돌아봅니다. 일본에서는 ‘일·중·한’을 살림길로 견주는 책을 꽤 자주 깊고 넓게 여미는데, 우리나라는 ‘한·중·일’을 살림길로 헤아리는 책을 여태 얼마나 선보였을까요? 우리나라 사람이 이웃나라 살림길(문화)을 찬찬히 짚거나 다루는 책을 내는 일은 드문데, 이 가운데 일본 살림길을 헤아리는 책은 더더욱 드뭅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웃나라 살림길조차 모르고 안 쳐다볼 뿐 아니라, 우리 살림길마저 영 모르거나 안 쳐다보는 나날은 아닐까요? 하루하루 너무 바쁘게 지내면서 값싼 살림을 사서 쓰다가 지치고, 값비싼 이웃나라 살림을 돈으로 마련해서 자랑하는 두 갈래입니다. 손수 쓸 살림이니 손수 지으면서 손수 곱게 무늬를 새기던 마음은 아주 스러졌나요? 2000년 우리 살림길이나 2020년 우리 살림길은 무엇인가요? 2050년에는 우리다운 살림길이 남을 수 있을까요? 온나라가 서울스럽게 틀에 박히고, 사투리는 빠르게 잊히고, 서울말조차 우리말스럽기보다는 일본말씨에 일본 한자말에 옮김말씨가 외려 물결치는 판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어제책 2022.10.15.

숨은책 714


《나나NANA 45호》

 전영호 엮음

 예원문화사

 1995.9.1.



  이제 사랑그림꽃(순정만화)을 읽는다고 스스럼없이 밝히는 돌이가 조금 늘지만, 지난날에는 사랑그림꽃은 순이만 보아야 한다고 여기는 눈길이 짙었고, 요새도 이 눈길은 썩 안 바뀝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부터 누구나 읽는 책인 줄 깨닫는 분이 부쩍 늘었으나, 어른이 왜 ‘유치하게 어린이책을 읽느냐고 핀잔하거나 나무라는 사람이 아직 꽤 많습니다. 세 살 터울 언니하고 《보물섬》·《소년중앙》·《만화왕국》·《아이큐점프》뿐 아니라 《르네상스》·《하이센스》도 꼬박꼬박 챙겨 함께 읽었습니다. 이러다 언니가 스무 살에 접어들어 푸른배움터를 마치고 제가 열일곱 살로 접어들어 하루 내내 배움수렁(입시지옥)에 갇힐 즈음부터 이 그림꽃을 하나도 못 읽습니다. 갓 태어난 《나나NANA》는 구경조차 못 했어요. 1995년 가을에 싸움터(군대)로 끌려가며 더 만날 길이 없더니, 겨우 집으로 돌아오고 책마을에서 일자리를 얻을 즈음에는 사랑그림꽃을 담은 달책인 《나나NANA》는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아예 잊은, 아니 처음부터 못 본, 풋풋한 그림꽃이 깃든 달책을 꾸러미로 서른 해 만에 장만해서 읽다가 생각합니다. ‘사랑그림꽃을 읽는 돌이’는 싸움을 꺼리고, 순이돌이가 오순도순 지낼 사랑길을 그립니다. 어린이책을 읽는 어른도 어깨동무를 사랑하게 마련이에요. 우리는 뭔가 크게 잊다가 잃은 듯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어제책 2022.10.15.

숨은책 702


《ロシアの民謠》

 井上賴豊 글

 筑摩書房

 1951.10.20.



  오늘날 우리는 매우 비뚤어진 별에서 살아갑니다. 사람을 마구 죽이고 숲을 함부로 짓밟는 총칼(전쟁무기)을 끝없이 만들면서 ‘첨단과학’이란 이름을 붙일 뿐 아니라, ‘방위산업 수출’이라고까지 읊습니다. 적잖은 러시아사람은 제 나라 우두머리가 시키는 대로 총칼을 앞세워 이웃나라로 쳐들어갈 뿐 아니라, 이웃사람을 끔찍하게 죽입니다. 참말로 총칼로 어깨동무(평화)를 이룰까요? 총칼을 자꾸 만들기에 서로 때리고 미워하다가 죽이기까지 하지 않나요? 《ロシアの民謠》는 “附 ロシア民謠歌曲集”이라 붙이듯 러시아사람이 드넓은 숲과 들을 품고 살아오면서 스스로 지은 살림을 살며시 옮긴 노래가 무엇인가 하고 짚습니다. 언뜻 보면 메마르거나 추운 땅인 러시아일 테고, 곰곰이 보면 사이좋게 아끼고 손잡는 마음을 그리는 너른터인 러시아일 텐데, 스스로 싸움수렁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매한가지 아닐까요? 북녘도 남녘도 더 센 총칼을 만들거나 마련하려고 목돈을 씁니다. 남녘도 북녘도 러시아도 미국도 가난할 수 없어요. 총칼을 때려짓지 않으면 누구나 넉넉하게 살 만합니다. 싸움을 그치고, 우두머리를 쫓아내어, 들풀 같은 사람들이 들노래를 부르면서 들꽃내음을 마신다면, 가난도 배고픔도 없이 누구나 아늑하고 아름다울 테지요. 들노래를 잊기에 허수아비가 되어 총칼을 쥔다고 느낍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