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3.3.21.

숨은책 819


《시와 혁명》

 김남주 글

 나루

 1991.12.25.



  늘 책을 만지작거리고 붓을 놀리니, 하루 내내 종이랑 함께산다 할 텐데, 막상 ‘종잇조각(졸업장·자격증·상장)’은 내키지 않아 모조리 멀리하며 살았습니다. 작은아버지도 우리 아버지도 “야, 차 살 돈 없어? 차는 사줄 테니까 운전면허증만 따!” 하고 말씀했지만 “차를 사주셔도 저는 종잇조각을 안 딸 생각이니, 차를 장만할 돈을 물려주시면 책을 사서 읽겠습니다.” 하고 대꾸했어요. 작은아버지도 우리 아버지도 ‘차를 사주겠다’는 말은 했으나 ‘책을 사주겠다’는 말은 안 했고, 책값을 준 일도 없습니다. 걷고 또 걷고 다시 걷던 어느 날 헌책집에서 《시와 혁명》을 만났습니다. 갓 태어난 큰아이를 돌보고 재우고 놀리느라 띄엄띄엄 읽었어요. 이 책을 다 읽은 날, 앞자락 귀퉁이에 몇 마디 끄적였습니다. 앞으로도 종잇조각은 움켜쥘 마음이 터럭만큼도 없는 사람한테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이 김남주 님 책을 스스로 읽을 만한 나이에 이르면, 이 글이 무슨 뜻인지 알겠거니 여기며 후딱 휘갈기고서 큰아이랑 곁님이 먹을 밥을 지어서 차렸지요.


“나는 길에서 : 나는 길에서 살고, 길에서 일하고, 길에서 놀고, 길에서 어울리고, 길에서 생각하고, 길에서 읽고, 길에서 씁니다. 두 다리 쭈욱 뻗을 따뜻하고 넓은 방에서 글을 쓰거나 무엇을 하며 살아 본 적이 없습니다. 2009.4.19.”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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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3.3.21.

숨은책 818


《초록색 엄지소년 티쭈》

 모리스 드리용 글

 최윤경 그림

 배성옥 옮김

 민음사

 1991.3.20.첫.1996.8.25.7벌



  1994년부터 서울을 드나들기 앞서까지 인천도 ‘꽤 크다’고 여겼습니다만, 인천은 ‘백화점도 없다가 겨우 생겼으나 일찌감치 무너진’ 곳이고, ‘방송국이 없’다가 1997년에 ‘itv’가 태어났으나 몇 해 뒤 ‘서울방송국 짬짜미’에 밀려 닫아야 했습니다. 없는 투성이인 고장이지만, 매캐한 공장은 수두룩했고, 서울을 버티는 일개미(노동자)는 날마다 불수레(지옥철)를 이루며 오갔습니다. 서울내기 동무가 “그래도 광역시인데 백화점이 없다고?” 하고 물으면 “응, 다들 거의 서울로 새벽에 가서 밤에 돌아와 자는데 백화점에 갈 일부터 없지.” 하고 대꾸했어요. ‘잠고장(침대도시)’에 큰가게가 설 수 없겠지요. 그러나 서울도 백화점이 이따금 사라졌습니다. 예전 서울역에 있던 큰가게가 닫았고, ‘미도파백화점’도 가뭇없이 떠났어요. 판이 끊긴 《초록색 엄지소년 티쭈》를 어렵사리 헌책으로 찾아내었는데, ‘서울 미도파백화점 상계점 7F’에 있던 〈미도파문고〉에 깃든 자국이 고스란하더군요. 팔림쪽(전표)이 그대로 붙었다면, 안 팔렸다는 뜻일 텐데, ‘96.10.22.’에 책시렁에 꽂힌 뒤 얼마나 오래도록 손길을 못 받았을까요. 그래도 용케 서른 해 가까이 어디선가 살아남았습니다. ‘미도파’도 ‘미도파문고’도 이제 없으나 ‘미도파백화점 7층 미도파문고 책시렁’에서 잠자던 책은 제 곁에 있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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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숨은책 / 숲노래 책읽기 2023.3.19.

헌책읽기 8 교육과 문화적 식민주의



  배움터를 다니기에 배우지 않습니다. 이름은 ‘배움(학) + 터(교)’이지만, 정작 우리나라는 배움터가 아닌 ‘사슬터’나 ‘굴레터’이기 일쑤입니다. 우리나라 초·중·고등학교에 대학교가 ‘배움터’라 한다면, 종잇조각(졸업장·자격증)을 안 주고 안 따질 테지요. 종잇조각을 거머쥐느라 불꽃이 튀면서 서로 밟고 다투고 겨루는 판이라면, 배움길하고는 등집니다. 왜냐하면 종잇조각은 ‘사랑나눔(서로 사랑을 나눔)’이 아닌 ‘자리나눔(위아래로 자리를 나눔)’으로 기울거든요. 어질게 일하며 착하고 땀흘리는 사랑으로 나누는 길을 배움터에서 얼마나 엿볼 만할까요? 종잇조각을 내밀면서 돈벌이하고 이름팔이에 얽매이는 얼거리이지 않은가요? 《敎育과 文化的 植民主義》처럼 딱딱하고 한자가 그득한 책은 다시 읽히거나 나오기 어려우리라 봅니다. 그저 묵은 책입니다. 그러나 이 묵은 책에서 얼핏설핏 짚는 ‘학교와 교육이 식민주의를 심는다’는 줄거리는 예나 이제나 곰곰이 돌아볼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배움터(학교)를 드나들 수 있기에 ‘민주·평등·자유가 퍼지지 않는다’는, 오히려 ‘민주·평등·자유를 짓밟는다’고 하는 ‘보통교육’이라지요. 미국이 어떠한가를 들여다보기 앞서, 우리나라를 들여다보기를 바랍니다. 홀로서기(독립운동)를 바라면서 배움터를 세운 뜻있는 분들하고 너무도 달랐던 ‘조선총독부 보통교육’입니다. 오늘날 ‘입시지옥 보통교육’은 ‘박정희 군사독재 새마을운동 보통교육’하고 매한가지입니다. 허울은 ‘보통교육’이라 하지만, 미국 독립운동·한국 일제강점기·박정희 군사독재와 새마을운동·한국 입시지옥은 모두 나란히 흐르는 사슬이자 굴레가 되어, 우리 스스로 ‘배움터를 더 다니면 더 다닐수록 종(노예)이 되는’ 셈입니다. 따로 이반 일리치까지 안 들추어도 됩니다. ‘보통교육’이 없던 지난날에는 모든 사람이 손수짓기(자립·자급자족)를 했습니다. ‘보통교육’이 뿌리내린 오늘날에는 되레 ‘학벌·파벌’이 춤춥니다.


ㅅㄴㄹ


《敎育과 文化的 植民主義》(마틴 카노이/김쾌상 옮김, 한길사, 1980.11.29.)



남북전쟁의 결과로도 흑인의 경제적 위치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들은 이제 노예신분에서는 벗어났으나, 이들이 처하여 있던 토지제도는 그 성격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 (278쪽)


학교교육은 개인의 소득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인이 되지만, 기존의 상하계층 구조가 그대로 존속하는 한, 학교교육은 소득을 평등화시키는 데 이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366쪽)


교사와 학생은 학교 내의 자신들의 현실을 직시하고 또 학교라는 제도가 불의를 영속화시키는 데 어떤 기능을 하는가도 꿰뚫어보아야 한다. (37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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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숨은책 / 숲노래 책읽기 2023.3.19.

헌책읽기 7 한국과 西洋



  이웃말(외국말)을 익히는 분이 부쩍 늘었고, 우리말을 이웃말로 옮긴다든지 이웃말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는 분이 무척 늘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이라면 뜻밖일 텐데, 우리말을 제대로 익히거나 가다듬는 분은 영 안 늘어날 뿐 아니라, 외려 줄어들기까지 합니다. 스스로 살아온 나날을 글로 옮기는 분은 자꾸자꾸 늘어날 텐데, 막상 ‘글로 옮길 말’을 어떻게 다스리거나 살피거나 알 적에 비로소 ‘삶을 담는 말’이 피어나는가를 헤아리지는 않는 셈이라고 할 만합니다. 《乙酉新書 25 한국과 西洋》은 프랑스말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에 오래도록 힘쓴 정기수 님이 갈무리한 꾸러미입니다. 이 땅에서 어떤 사람들이 프랑스말을 이웃말로 익혀서 프랑스사람들 삶과 마음이 흐르는 글을 이 나라에 알리거나 나누려 했는가를 차근차근 짚어요. 다만, 정기수 님도 이웃말은 무척 마음을 기울여 익히신 듯하되, 우리말은 썩 마음을 기울여 익히지는 않았다고 느낍니다. 갖은 옮김말씨(번역투)가 흐르거든요. 또한 쉬운말을 잘 안 씁니다. 세 살 아이한테 들려주는 이야기하고 다섯 살 아이한테 들려주는 이야기하고 일곱 살 아이한테 들려주는 이야기에 쓰는 낱말은 같을 수 없습니다. 아홉 살 아이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나 열한 살 아이한테 들려주는 이야기에 쓰는 낱말도 다를 수밖에 없어요. 서울사람하고 시골사람한테 들려주는 이야기에 쓰는 낱말도 다르겠지요. 꼰대스럽게 말하거나 글을 쓸 적에는 고지식할 뿐 아니라 고리타분합니다. 스스로 꼬마가 되어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면서 말하거나 글을 쓸 적에는 어느새 꽃으로 곱게 피어나게 마련입니다. 어느 ‘꼬’를 바라보면서 어느 ‘고’로 갈는지 스스로 헤아릴 일입니다. 조선 오백 해는 비록 ‘훈민정음’이 태어났으나 ‘이씨 집안’에 벼슬자리를 맡기면서 위아래로 갈랐고, 중국 한문만 우러렀습니다. 조선도 고려도 ‘한겨레·한나라’가 아닌 ‘그들굴레’였어요. 이제 우리는 갇힌(쇄국) 틀을 벗고서 열린 눈빛으로 말할 수 있을까요?


ㅅㄴㄹ


《乙酉新書 25 한국과 西洋》(정기수, 을유문화사, 1988.11.25.)



(조선) 역대의 국왕과 양반들은 자기들의 제도의 우월성을 확신하여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문명·문화 및 정치적 완성의 수준에 도달해 있다. 이러한 결과를 박탈당하지 않게 하자.” (38쪽)


우리는 이 모든 번역들이 일본의 영향 아래서, 일본어 번역으로부터 중역하였거나, 그렇지 않고 만약에 프랑스어에서 직접 옮겼을 경우에는 일본어 번역을 참고하면서 옮겼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175쪽)


김억의 번역을 읽어 보면, 첫째 줄을 제외하고는, 무슨 뜻인지 통 알 수가 없으리라. 그리고 그가 프랑스어에 썩 능하지는 못하구나 하는 느낌이 들리라. 하지만 서구의 시를, 특히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를 맨 먼저 우리나라에 소개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이, 그 자신도 시인이었던 바로 이 김억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자. (190쪽)


우리는 한국에서의 번역 활동을 개관하고, 번역의 이론과 방법 및 전문교수의 몇 가지 번역의 실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대체로, 번역들이 문학예술 작품의 의미를 정확하게 옮기는 데 언제나 성공하지는 못하고 있음을 우리는 확인했다. 그것은 무엇에 기인하는가? 첫째, 번역자들에 의한 작품의 이해가 충분히 깊지 못하다. 다음에, 그들 자신의 나라 말에 대한 지식이 충분히 견고하지 못하다. 끝으로, 때로는 그들에게 성실성과 정직성 그리고 세삼한 주의가 모자란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너무 많이, 따라서 너무 서둘러 번역을 한다. 출판사의 청탁에 응하기 위해, 자기들의 능력 이상으로, 독자들을 무시하고, 그리고 원작을 해치면서. (232쪽)


조선 교회는 이 나라에서 전통적인 사회 계급과 일부다처 제도를 배척하였는데, 이것이 억눌린 자들 사이에 기독교의 급속한 전파를 도운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프랑스 선교사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약국과 양로원과 고아원을 세웠으며, 조선의 젊은이들을 신학교에서 교육시켰다. 조선 교회는 천주교 교리의 번역에서 한글을 사용함으로써 한글의 대중화에 이바지하였다. (261쪽)


한국인들은 고통받은 사람들이요, 한 많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슬픔을 애틋이 사랑하고 있어서, 말하자면 그것을 먹고살아 가는 것과 같으며, 복수는 그들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비천한 자들과 불우한 자들을 불쌍히 여긴다. (264쪽)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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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3.3.2.

숨은책 815


《난장이 마을의 유리병정》

 조세희 글

 동서문화사

 1979.5.15.



  앞날이 밝으리라 여기면서 종잇조각(대학졸업장)을 버리기로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앞날이 되려나 따지지 말고, 언제나 오늘 이곳부터 씨앗 한 톨을 심으면서 천천히 걸어가자고 생각했습니다. 둘레에서는 “야, 네가 이루고 싶은 꿈은 그 종잇조각을 버리지 않고서 높은자리에 올라가서 이루면 더 빠르고 둘레에도 이바지하지 않겠어?” 하면서 뜯어말리거나 나무랐습니다. “그 종잇조각을 안 버린 이들 가운데 높은자리에 올라서서 첫마음을 안 잃은 사람이 있나?” 하고 대꾸했습니다. 벼슬·이름값·돈이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벼슬·이름값·돈을 쥐기 무섭게 시커멓게 물들면서 썩어문드러진 이들을 숱하게 보고 겪었습니다. 그나저나 조세희 님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난장이 마을의 유리병정》에 《시간여행》에, 책이름은 다르지만 겹치는 글이 많은 책을 다른 판으로 내놓았습니다. 펴냄터에서 일부러 이렇게 했을까요? 예전에는 일부러 ‘책 하나를 오롯이 새글로만 안 꾸린 판’이 꽤 나왔습니다. 그래도, 겹친 글을 되읽으며, 하루하루 살아갔습니다.


은강 방직의 여근로자들이 단식농성을 했다. 아는 사람은 알았고 모르는 사람은 몰랐다. 안 사람들 중의 얼마는 그들을 도울 수 없어 안타까와했고, 안 사람들 중의 얼마는 그냥 알고만 있었다. 모른 사람은 계속 몰랐기 때문에 계속 모르고만 있었다. 모른 사람이 알았더라도 아무 일 없었을 것이다. (60쪽/우리는 모두 몰랐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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