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3.7.29.

숨은책 851


《충청남도 민담》

 최운식 엮음

 집문당

 1980.10.30.



  ‘민담’이란 낱말을 처음 듣던 날, “무슨 담을 민다는 소리인가?” 하고 혼잣말을 했습니다. 어린이한테는 낯설며 어려운 한자말입니다. 그러나 숱한 이들은 어린이가 알아듣기 수월할 뿐 아니라, 먼 옛날부터 흐르거나 이은 우리말을 오히려 멀리합니다. 글이나 책을 쓰는 이들은 ‘민담·속담·설화·신화·민화’ 같은 일본스런 한자말을 줄줄이 읊습니다. 우리말 ‘이야기·얘기·옛말·수다’는 ‘학문적·학술적’이지 않다고 여깁니다. 《충청남도 민담》은 뜻있게 나온 꾸러미입니다. 엮은이는 충청남도 곳곳을 다니면서 ‘글 아닌 말로 살림을 짓는 어르신’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습니다. 다만, 1980년 언저리에도 이미 시골 할매할배는 보임틀(텔레비전) 말씨에 물들었고, 흙두레(농협)에서 쓰는 말씨에 젖었습니다. 말끝 빼놓고는 충청말이라 여길 대목을 찾기가 어려워요. 아마 앞으로는 더더욱 시골말이 사라질 테고, 머잖아 마을말·고을말뿐 아니라 ‘마을얘기·고을수다’도 자취를 감출 만합니다. 손수짓기를 잊으면 낱말도 이야기도 손수 안 짓거든요.


“밥이라니? 에따, 그게 지지리다.” “지지리가 아니구유 사람유. 그게 어디 지지리여. 내가 봤다구. 사람이라구,” “그러믄 니가 협조를 좀 해다우. 나도 그놈을 밤새 태워 가지구 왔음께 원수를 갚으야겠쓴게.” (21쪽)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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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3.7.29.

숨은책 850


《17세의 모순》

 백시영

 범우사

 1982.6.30.첫/1992.4.30.9벌



  예전에는 흔히 했으나 이제는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여기는 몸짓이 있는데, 요즈음이라 함부로 하면 안 되는 몸짓이 아닌, 예전부터 함부로 하지 않아야 할 몸짓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짓은, 사람이 스스로 살림을 짓는 하루하고 등지면서 불거졌습니다. 위아래(신분·계급)가 나타나면서 주먹다짐이 생깁니다. 위아래가 없는 곳에는 어깨동무가 있고, 어깨동무하는 사이에서는 깎음말도 낮춤말도 없어요. 스스로 높이고 서로 돌보는 말씨가 있습니다. “국회의원 장영달 증정” 같은 글씨가 곳곳에 찍힌 《17세의 모순》을 보면서, ‘국회의원이 책을 읽기도 하는구나’ 하고 여기다가, ‘여학생 찬미’가 자꾸 흐르는 줄거리에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재미’도 아닌 ‘잔재미’라 하는 대목부터 얄궂고, ‘여학생’을 노리개처럼 바라보면서, ‘남학생’도 나란히 까는, 이러면서 글쓴이 스스로 갉아먹는 글을 1982년에 책으로 선보였는데, 글쓴이는 ‘숙명여고 국어 교사’였다더군요. 순이도 돌이도 꽃이고, 아이도 어른도 꽃입니다. 누구나 꽃입니다만, 노리개도 장난감도 아닙니다. 이런 책을 ‘드림’으로 사다 나른 벼슬꾼은 우리 민낯입니다.


여학생은 잔재미가 있어 좋다. 같은 말이라도 방긋 웃으며 말을 붙이니 어찌 정들지 않겠는가? 복도에서 스칠 때마다 인사다. 귀엽게 생긋 웃으며 눈만 깜짝, 고개는 숙일 듯 말 듯, 아무리 화나는 일이 있어도 귀여운 막내딸처럼 재롱부리듯 대하는 이 여학생들이 어찌 사랑스럽지 않겠는가? (145쪽)


+


어딘가 연고지를 찾아서 나섰을 것이다

→ 어딘가 아는곳을 찾아서 나섰으리라

32쪽


나의 생활이 있고, 나의 생활은 나의 힘으로 열어젖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 내 삶이 있고, 내 삶은 내 힘으로 열어젖혀야 하는 줄 깨닫는다

42쪽


이처럼 공포의 대상이 되었을까

→ 이처럼 무서울까

→ 이처럼 두려울까

56쪽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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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3.7.29.

숨은책 847


《나의 여공애사》

 다까이 또시 글

 편집부 옮김

 백산서당

 1984.4.21.



  할머니 이야기를 엮는 책이 곧잘 나오기에 반가우면서도 섭섭합니다. 할머니한테서 ‘할머니가 걸어온 길’을 ‘책 몇 꾸러미’에 이르도록 차근차근 두고두고 귀담아듣고서 여미는 꾸러미는 아직 없다고 여길 만합니다. ‘할머니·어머니·가시내’라는 길이 꽃길 아닌 가싯길이던 자국을 고스란히 짚으면서, ‘가싯길을 꽃길로 일구어 어깨동무하려는 숨빛’을 환하게 지피는 책은 더더욱 없다고 여길 만하거든요. 《나의 여공애사》는 ‘할머니 일손’을 눈여겨본 이웃나라 사람들이 있기에 태어났고, 우리나라에서도 눈여겨본 사람이 있어서 한글판이 나왔으며, 더 눈여겨본 사람이 있기에 ‘반달도서원’에서 건사하였는데, 막상 ‘빌린이’는 없는 채 버림받았습니다. ‘들꽃으로 살아온 할머니’ 삶길은 누가 갈무리할까요? ‘역사·기록’이란 이름으로 무엇을 남기는가요? ‘들꽃 할머니’ 곁에 있는 ‘들풀 할아버지’ 살림길은 누가 갈무리하지요? 피눈물에 피고름이 아롱진 ‘우리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볼 노릇입니다. 저들도 그들이 아닌 오늘을 볼 일입니다.


나름대로 생각컨대 나는 배운 건 없었지만 나쁜 짓은 결코 하지 않았읍니다. 여공으로 10년, 여급으로 1년 반, 무허가상으로 5년, 품팔이꾼으로 20년, 그 중의 20년은 주부노동자였읍니다. 그리고는 지금 집도 없고 연금도 없읍니다. 송두리째 짜내 봐도 아무것도 없고 이제는 노동할 힘도 없이 오직 죽음만을 기다리게 되었읍니다. (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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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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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3.7.29.

숨은책 837


左翼事件實錄 第二券 (檢察資料)

 최대현 엮음

 대검찰청 수사국

 1968.8.30.



  서울 신촌에 〈신촌헌책방〉이라는 곳이 한동안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여느 책집이나 책숲에서 볼 길이 없는 책이 자주 가득 들어왔습니다. 적잖은 글바치가 이곳을 드나들었고, 값지고 드문 책을 살 적에 에누리를 바라며 책집지기하고 실랑이를 벌이기 일쑤였습니다. 저는 책을 사며 에누리한 적이 아예 없습니다. 어느 날엔가 “여보, 젊은이, 자네는 돈도 안 많을 텐데 왜 깎아 달라는 말을 않소?” 하고 물으면서 “손님들은 우리(헌책집 일꾼)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굴지만,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면 이런 책을 어떻게 파오?” 하고 덧붙입니다. 《左翼事件實錄 (檢察資料)》는 몇 꾸러미가 한꺼번에 들어왔습니다. 시커멓고 퀴퀴한 책이되 역사·사회·문화를 파는 글바치라면 눈여겨볼 만한데, 몇 해에 걸쳐 하나도 안 나가더군요. 그러나 제 주머니로는 큰덩이를 살 엄두는 안 나고 “하나만 사도 될까요?” 하고 여쭈었어요. “짝도 안 맞고, 사가는 사람도 없으니 좋을 대로 하쇼.” 예나 이제나 검찰에는 ‘좌익사건’만 있고 ‘우익사건’은 없습니다. 잘잘못은 ‘왼오른’이 아닌 ‘잘잘못’으로만 따질 일입니다. 어느 쪽에서 일으켰어도 잘못은 잘못이고, 잘한 일은 잘한 일입니다. 우리는 이제라도 ‘참길’을 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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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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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책 852


《사회학적 상상력》

 C.라이트 밀즈 글

 강희경·이해찬 옮김

 홍성사

 1978.3.10.



  ‘한글’하고 ‘우리말’은 다릅니다. ‘한글’하고 ‘훈민정음’도 다릅니다. 그러나 무엇이 어떻게 왜 다른가를 또렷이 알면서 어린이한테 들려주는 어른은 참으로 드뭅니다. ‘글’은 ‘말’을 옮겼다고 여기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 떠도는 글 가운데 ‘말·우리말’을 옮긴 ‘소리무늬’인 글은 드뭅니다. 《사회학적 상상력》은 2004년에 이르러 고침판이 나오지만, 1978년에 옮긴 말씨를 그대로 읽혔고, 나중에라도 썩 안 바뀌었습니다. “우리 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직접간접으로 도움을 주신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린다. 전체적으로는 일본어 번역본 《社會學的 想像力》(鈴木廣 譯, 紀伊國屋書店 刊, 1975년 제8판)을 많이 참고했으며(6쪽)”처럼 ‘일본책을 베낀 일’을 밝힌 머리말을 의젓하다고 보아야 할까요, 어리석다고 여겨야 할까요, 창피하다고 느껴야 할까요? 스즈키 히로시(1938∼2014) 님이 1965년에 일본글로 옮긴 책에 나온 ‘일본말씨·일본 한자말’을 1978년에도 2004년에도 2023년에도 그대로 쓰거나 퍼뜨리는 우리나라입니다. 삶터를 그릴 줄 모르면 삶을 읽지 못 할 테고, 마을·나라·곳을 헤아릴 줄 모르면 스스로 눈뜨지 않습니다. 무늬가 한글이라서 우리글이나 우리말이 아닙니다. 배움길은 무늬 아닌 삶길입니다.


ㅅㄴㄹ


#TheSociologicalImagination


다음과 같은 한 문제가 나를 약간 당황스럽게 만든다

→ 나는 다음에 들 보기 때문에 좀 어지럽다

→ 나는 이러한 보기 때문에 적잖이 놀란다

→ 이런 일을 볼 때마다 퍽 어리둥절하다

4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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