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58


《거북바위 3》

 고우영 글·그림

 우석

 1981.7.10.



  어린 날을 돌아보면, 둘레 어른들은 《삼국지》나 《서유기》나 《수호지》쯤을 읽어야 비로소 ‘책을 읽었다’고 여겼습니다. 4서3경이라고 하는 중국책을 읽지 않았다면 ‘아직 책을 안 읽었다’고도 여겼어요. 우리는 중국이 아닌데, 저는 중국사람이 아닌데, 왜 중국책을 안 읽으면 ‘책을 안 읽은 셈’으로 여기려 할까요? 아무리 그 중국책이 뛰어나더라도 먼저 이 땅 이 마을 이 자리에 흐르는 살림살이부터 헤아리고서 슬기롭게 익히고 사랑으로 가꾸는 길을 걸을 노릇이 아닐까요? 《삼국지》나 《서유기》를 읽으니 제법 재미있기는 했으나 온통 ‘사내들 쌈박질’ 이야기이고, ‘가시내는 노리개 구실’에 머무는 얼거리입니다. 손꼽히는 여러 중국책은 틀림없이 어떤 알맹이가 있겠습니다만, 이제는 우리 나름대로 새롭게 짓고 가꾸면서 ‘아름터를 그리는 아름책’을 나눌 적에 즐거우리라 생각해요. 《거북바위》는 고우영 님이 이녁 나름대로 선보인 ‘이 나라 작은 살림’을 다룬 만화입니다. 비록 고우영 님도 ‘사내들 쌈박질’이나 ‘가시내는 노리개 구실’에서 거의 못 벗어났습니다만, 서슬퍼런 군사독재 무렵에 《거북바위》에 《일지매》를 그려냈지요. 이다음 삶길을 못 그린 대목은 이분도 스스로 굴레에 매인 탓이겠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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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67


《키리히토 찬가 3》

 테즈카 오사무 글·그림

 서현영 옮김

 학산문화사

 2001.11.25.



  2001년에 테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이 잔뜩 나왔습니다. 그동안 구경하기 어렵던 한글판이 이렇게 쏟아지니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모릅니다만, 차근차근 읽으면서 장만하려고 생각했습니다. 한몫에 다 장만하기에는 벅찼거든요. 이 꾸러미를 다 읽고서 저 꾸러미를 사고, 저 꾸러미를 다 읽고서 그 꾸러미를 사는데, 한꺼번에 잔뜩 나온 테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이 꽤 빠르게 판이 끊어집니다. 한숨이 나오지요. 여느 책이라면 도서관에서 갖추어 줍니다만, 만화책을 도서관에서 갖추는 일은 거의 없어요. 게다가 ‘만화책 출판사’에서 선보이는 만화책은 도서관에서 아예 안 갖추다시피 할 뿐 아니라, ‘어린이·푸름이 추천도서’에 하나도 안 끼워 줍니다. 일찌감치 새책집에서 자취를 감춘 《키리히토 찬가》입니다. 넉걸음 가운데 하나만, 빗물에 젖어 퉁퉁 분 낡은 판으로 어렵사리 찾아냈습니다. 빗물에 젖고 곰팡이가 피었어도 반갑습니다. 책은 껍데기가 아닌 ‘종이라는 겉몸에 입힌 이야기에 흐르는 마음’을 읽으니 후줄그레한 겉모습은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다만 ‘만화다운 만화’가 이 나라에서 어떤 자리에 있는가를 뚜렷이 엿볼 만해요. 아이들하고 어떤 만화를 함께 읽으면서 생각·꿈·사랑을 지어야 어른다운 삶이 될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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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きりひと讃歌 #手塚治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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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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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의 사회》

이봔 일리히 글

안응렬 옮김

분도출판사

1978.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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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지 않는 사람은 자전거길을 어떻게 내야 하는가를 알기 어렵거나 모르거나 생각조차 못합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지 않는 사람은 아이가 즐겁게 꿈꾸면서 아름다이 자라는 길을 알기 어렵거나 모르거나 생각조차 못합니다. 맑은 물하고 바람으로 아픈 몸을 달래면서 튼튼하고 싱그러이 돌보는 길을 걸은 적 없는 사람은 숲을 어디에 왜 어떻게 품고 돌보면서 아낄 적에 넉넉한 살림이 되는가를 알기 어렵거나 모르거나 생각조차 못해요. 입시지옥이 아이랑 어른 삶·넋·마을을 어떻게 망가뜨리는가를 모른다면, 입시지옥을 걷어치우는 길로 나라살림을 가꾸지 않겠지요. 《공생의 사회》는 진작에 나왔으나 널리 읽히지는 않았습니다. 이반 일리히 님이 쓴 책이 꽤 읽히기는 했어도 막상 자전거를 타거나 병원을 끊거나 화학약품을 멀리하거나 서울을 떠나거나 졸업장학교를 그만두거나 전문가 노릇을 끝내거나 마을숲을 사랑하거나 아이랑 신나게 노는 어른을 찾기는 꽤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반 일리히 님은 ‘글을 어렵게 안 썼’을 테지만, 이녁 글을 한글로 옮길 적마다 너무도 어렵고 딱딱하며 재미없는, 삶내음이 안 흐르는 번역 말씨·일본 한자말투성이예요. 우리는 두레살림·함께살기·어깨동무를 언제쯤 배울 생각일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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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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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lete course in photographing children》

John Hedgecoe 글·사진

Simon & Schuster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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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잘 찍는 길이 있어요. 무엇을 찍고 싶은가를 찬찬히 생각해서 즐겁고 사랑스레 누리는 삶으로 녹이면 됩니다. 사진으로 담아내고픈 모습을 언제나 스스로 기쁘게 누리다가 문득 사진기를 손에 쥐면, 따로 누구한테서 배운 적이 없더라도 아름답구나 싶은 사진을 얻어요. 아이를 사진으로 담고 싶다면 아이랑 즐겁게 놀며 사랑스레 살림을 짓는 길을 가다가 문득 사진기를 쥐면 됩니다. 글쓰기도 이와 같아요. 《complete course in photographing children》을 읽으면, 어린이를 사진으로 훌륭히 담는 길을 차근차근 짚습니다. 이런 때 저런 자리를 알맞게 보도록 잘 이끄네 싶으면서 ‘먼저 아이랑 신나게 놀자’나 ‘늘 사랑으로 살림을 짓자’ 같은 대목은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이웃나라에서는 아이를 아이 눈높이로 바라보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이만큼조차 못 되거든요. 어려운 길이란 없다고 여겨요. 즐겁게 나아간다면 모든 길은 가볍고 환하게 이룰 만해요. 처음 하기에 힘들거나 까다롭지 않아요. 그저 처음일 뿐인걸요. 처음 아이를 낳았든 둘이나 셋이나 너덧 아이를 낳았든 매한가지예요. 아이 마음을 바라보고, 아이 손을 잡고, 아이랑 노래하는 숨결이라면 언제나 아름답고 빛나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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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60


《look at us, etc, etc》

 William Saroyan 글

 Arthur Rothstein 사진

 Cowles book

 1967.



  한때는 동심천사주의·교훈주의 동시가 넘쳤다면, 요새는 입시지옥·동무사이를 다루는 동시가 넘칩니다. 어린이 삶자리·꿈길·사랑꽃·숲노래를 바라보는 동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어린이는 무엇을 보며 자랄 적에 환하게 웃을까요? 푸름이는 어떤 터에서 어떤 말을 들으며 슬기로이 철들고 노래할 만할까요? 입시지옥을 없애도록 애쓰지 않으면서 입시지옥 때문에 앓는 푸름이를 문학으로 그린들 무엇이 달라질는지 모르겠어요. 학교를 다니면 다닐수록 더 쇠밥그릇이나 뒷돈에 빠져드는 터전이라면, 이런 입시지옥인 학교를 모조리 닫고 교육부도 닫을 노릇이라고 느껴요. 자, 교과서 진도나 대학입시는 그만 쳐다보고 어린이 눈망울을 바라봐요. 왜 서울 집값이 오를까요? 서울에 그토록 대학교가 많고, ‘in 서울’이 안 되면 모두 막히도록 쏠렸잖아요. 서울 곁에 아파트를 때려짓는 새 고장을 키운대서 ‘서울몰이질’은 안 사라져요. 서울바라기·대학바라기부터 없애고 ‘사랑바라기·아이바라기·숲바라기’를 할 적에 집값 따위야 한칼에 떨어집니다. 부드러운 글하고 사진이 어우러진 《look at us, etc, etc》를 읽으며, 미국은 아무리 엉터리인 대목이 많아도 이 만한 책이 나올 수 있는 터전이네 하고 새삼 생각했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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