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80


《바다밑 20만 리》

 쥘 베른 글

 한낙원 옮김

 계몽사

 1975.10.3.



  아무리 엉터리이거나 잘못이거나 나쁘다고 하더라도 ‘나한테 익숙하니 내가 익숙한 대로 쓰는 길이 낫다’고 여기는 분이 있습니다. 이런 말은 으레 나이든 사람이 합니다. 어린이는 이런 말을 안 해요. 어린이는 늘 새로 맞아들여서 즐겁게 배우려는 눈빛인 터라 ‘알맞고 바르며 즐겁고 사랑스러운 길’을 들려주면 의젓하게 나아갑니다. 쥘 베른 님은 푸른별 안팎을 둘러싼 이야기를 꽤 써냈습니다. 믿기지 않는다 싶은 이야기라는 타박을 꽤 들었다는데요, 마음으로 어디로든 찾아다니고 느끼면서 바다밑 이야기도 이웃별 이야기도 그릴 만했지 싶습니다. 《바다밑 20만 리》는 ‘원자력 잠수함’에 끌린 한낙원 님이 옮긴 어린이문학입니다. 1869년에 “Vingt mille lieues sous les mers”라는 프랑스말로 나온 책을 일본은 “海底二萬里”로 옮깁니다. 우리나라는 ‘일본사람이 옮긴 말씨’를 그대로 베꼈지요. ㅅㄴㄹ


“그리고 이 소설의 원제목은 《바다밑 2만 리이그》입니다. 1리이그는 약 4.8킬로미로 우리나라의 10리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바다밑 20만 리》로 번역하였으니, 일본사람들이 번역한 《바다밑 2만 리》와 혼동이 없기를 바랍니다.” (옮긴이 말/25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63


《朝鮮語辭典》

 朝鮮總督府 엮음

 朝鮮總督府

 1920.3.30./1928.7.5.



  1800년대가 저물 무렵까지 나라지기·벼슬아치·먹물꾼은 중국 한문으로 글을 남깁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도 이 땅에서 나눌 말이 아닌, 이웃나라 우두머리를 섬기는 말글로 억눌렀어요. 조선이란 나라가 무너질 1900년대로 접어들 즈음 훈민정음을 새로 바라보려는 조그마한 물결이 일고, 한문으로 붙인 낡은 이름으로는 우리가 쓸 글이 못 되리라 여겨 ‘한겨레·한나라’를 가리키는 ‘한’을 딴 ‘한글’이란 이름을 새로 짓습니다. 다만 이때까지 우리글이 어떤 얼개인지 기틀을 닦지는 못합니다. 이러다가 일제강점기를 맞이했고, 조선총독부 취조국은 1911년부터 일꾼을 모으고 밑틀을 다스린 끝에 1920년 3월에 《朝鮮語辭典》을 선보입니다. 한겨레는 엄두조차 못 내거나 생각마저 못하던 우리말사전을 일본사람이 낸 셈인데, 일본은 이웃나라하고 사귀려고 일찍부터 이웃나라 말씨를 살피는 책을 꾸준히 내놓았어요. 바탕이 있으니 사전을 엮을 만합니다. 58639 낱말(한자말 40734, 우리말 17178, 이두 727)을 실은 사전인데, 제가 헌책집에서 찾은 판은 1928년이 첫판이라 합니다. 왜 1920년 아닌 1928년을 첫판으로 책자취에 밝히는지 아리송하지요. 그나저나 《조선어사전》은 앞가지·뒷가지·말밑을 살펴 엮은 얼개가 돋보입니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81


《鄕歌麗謠新釋》

 지헌영 글

 정음사

 1947.8.15.



  신라 무렵에 흐르던 노래를 한문으로 옮긴 ‘향가’라 하고, 고려 무렵에 돌던 노래를 한문으로 남긴 ‘여요’라 합니다. 한문으로 옮긴 노래는 한문을 알아야 새깁니다. 이 옛노래를 놓고 우리보다 일본에서 더 눈길을 두었어요. 일본사람이 새긴 이야기가 나돌자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우리 나름대로 다시 새기거나 읽으려고도 했습니다. 1945년에 일본한테서 풀려난 뒤에 숱한 글님은 이 신라 노래하고 고려 노래를 다시금 새겨 보려 했고, 이런 땀방울 가운데 하나가 《鄕歌麗謠新釋》으로 태어납니다. 한문도 일본글도 아닌 한글로 새기면서 옮기려던 옛노래인데요, 1947년이라 아직 일제강점기 티를 벗기 어려워 온통 한자로 책을 여미어야 했을까요? ‘新釋’이 아닌 ‘새풀이’나 ‘새로새김’ 같은 이름을 쓰자는 생각을 곧장 하기는 어려웠을까요? 정치를 옭아매던 사슬이 풀리기에 나라나 삶이 풀리지는 않습니다. 삶을 나타내고 마을이며 나라를 이루는 길에 우리 생각을 펴는 말글부터 슬기롭고 상냥하면서 새롭게 풀 적에 비로소 사슬터를 아름터로 바꾸어 낸다고 느껴요. 일본 글님은 일제강점기에 우리 옛노래도 풀이했지만 시골 일노래·놀이노래를 그러모으기도 했습니다. 이 나라 글님은 퍽 창피합니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88


《한글》 제3권 제6호

 조선어학회 엮음

 조선어학회

 1935.8.1.



  이 나라에서 쓰는 글은 ‘한글’입니다. ‘훈민정음’은 위(임금)에서 밑을 내려다보는 종살이를 담는다면, ‘언문’은 우리가 입으로 터뜨리는 말소리를 손으로 새롭게 나타내는 글씨를 얕보기에 안 어울린다고 여긴 한힌샘 주시경 님은 ‘한글’이란 이름을 새로 짓습니다. 이 나라에서 오래도록 살아온 겨레를 우리말로는 ‘한겨레’라 하고, 한자말로는 ‘韓民族’이라 합니다. ‘한’은 ‘하늘·하나’하고 이어지고, ‘크다·넓다·빛’ 같은 뜻을 품어요. ‘韓’은 ‘한’이란 오랜 우리말에 붙인 한자일 뿐입니다. 서울 한복판에 흐르는 물줄기는 그저 한글로 ‘한가람’이라 적으면 되지요. 일제강점기에 말글로 큰일을 편 조선어학회는 1932년에 잡지 《한글》을 처음 선보입니다. 일본글이며 한자가 판치던 나라에 씩씩하게 편 글씨요 이야기를 담은 책이에요. 이무렵 일본은 ‘國語’란 이름을 갑자기 밀어붙입니다. ‘日本語 = 國語’라 하여 중국하고 대만에까지 ‘국어 교육’이란 틀을 세워요. 이때에 우리는 ‘한글·조선말’이었는데 ‘한글·한말’로 기운차게 나서 보면 오늘 얼마나 달라졌으려나 어림해 보곤 합니다. ‘한’을 즐겁게 붙여 ‘한옷·한밥·한집·한새·한넋·한얼’로, ‘한사랑·한마음·한마을·한나라’로.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89


《숲속의 생활》

 헨리 소로우 글

 양병탁 옮김

 서문당

 1973.10.1.1벌/1981.11.25.6벌



  이제 《월든》으로 나오는 책은 한동안 《숲속의 생활》이란 이름으로 읽혔습니다. 이 책을 일본에서는 “森の生活”로 옮겼어요. 아무래도 일본책 이름을 그대로 따왔지 싶은데요, ‘월든이란 숲에서 지낸 날’, 간추려 ‘숲살이·숲살림·숲삶’입니다. 여러 사람이 옮긴 여러 판이 있는 책인데, 저는 1973년에 손바닥책으로 나온 판이 마음에 듭니다. 뒷주머니에 꽂고 다닐 만큼 가볍고 작기에 숲마실을 다니다가, 자전거를 타고 들길을 달리다가 쉴 참에, 낫질을 하고서 땀을 들일 즈음에, 슬쩍 꺼내어 조금조금 읽으면서 누릴 만해요. 큰고장으로 치달을 뿐 아니라, 손수 지어 수수히 나누는 살림을 낡아빠졌다고 얕보던 1800년대 미국 물결을 거스른 이야기는 1970년대나 1980년대뿐 아니라 1990년대 이 나라에서 읽히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싶어요. 글님이 말한 숲삶은 ‘전원생활’이 아닌 ‘숲을 마음으로 읽고 사랑하면서 스스로 숲이 되는 길’이에요. 돌림앓이가 확 불거진 2020년 뒤부터는 비로소 찬찬히 읽히면서 우리 마음에 숲빛이라는 길을 열 수 있을까요? ㅅㄴㄹ


“동이 트는 날이 또 있다. 태양은 새벽녘의 별에 지나지 않는다.” (30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