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64


《高等小學 算術書 第二學年 兒童用》

 文部省 엮음

 文部省

 1932.9.30.



  이웃나라로 쳐들어와서 총칼로 짓밟을 뿐 아니라 사람을 마구 죽이고 숲을 함부로 밀던, 이러면서 이웃나라 삶터를 아무렇게나 휘저은 일본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막상 ‘일제강점기에 일본 제국주의가 퍼뜨리면서 억지로 쓰라고 닦달한 일본 말씨나 일본 한자말’을 말끔하게 털어내면서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쓰려고 마음을 기울이거나 사랑을 쏟거나 생각을 가꾸는 분은 뜻밖에 드뭅니다. 우리한테 우리말이 없다면야 어느 말이든 받아들여서 쓰겠지요. 우리한테 우리말이 있다면 마음을 기울이고 사랑을 나누며 생각을 짓는 길에 우리 슬기를 빛내어 새롭게 꿈을 그릴 적에 즐겁고 아름다우리라 느껴요. 《高等小學 算術書 第二學年 兒童用》은 일본에서 1932년에 나온 일본 길잡이책입니다만, 조선총독부란 이름으로 이 나라에서도 이 길잡이책을 그대로 써요. 일본사람이 쓴 ‘ノ(の)’만 ‘-의’로 바꾸고, 일본 한자말은 소릿값만 한글로 적지요. 길잡이책 이름에 나오는 ‘고등’이나 ‘제2학년’이나 ‘아동’이나 ‘-용’이나 ‘-서’ 같은 말씨도 아직 그대로 쓰는 곳(또는 사람)이 많아요. 총칼을 앞세운 일본 제국주의가 ‘가르친’ 말씨이건 말건 ‘꽤 오래’ 길들거나 익숙하니까 그냥그냥 쓸 만할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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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95


《CUORE 愛の學校物語》

 エドモンド·デアミ-チス

 大木篤夫 옮김

 アルス

 1930.9.16.



  이탈리아에서 1886년에 “CUORE”란 이름으로 나온 책은 일본에서 《愛の學校物語》란 이름으로 옮기고, 우리나라는 “사랑의 학교”란 이름으로 옮기지요. 이탈리아말로는 수수하게 ‘마음·사랑’을 나타낼 뿐입니다. 일본은 여기에 ‘학교’란 말을 덧입혀서 태평양전쟁 무렵 일본 어린이를 ‘나라에 한몸 바치도록’ 내모는 구실을 했습니다. ‘오오키 아츠오(大木惇夫)’란 일본사람은 ‘大木篤夫’라는 글이름을 썼다고 하며, 1895년에 태어나 1977년에 숨을 거두었다지요. 일본이 제국주의 총칼을 앞세울 무렵 총알받이로 군대에 끌려가서 죽을고비를 숱하게 넘겼다는데, 이때에 쓴 노래를 일본 언론·정부가 크게 띄워 ‘싸움판(전쟁)을 기리는 노래’를 자꾸자꾸 지었다지요. 이러다 일본이 싸움에서 진 1945년 8월부터 오오키 아츠오란 분은 일본 언론·정부한테서 따돌림을 받았대요. 이녁이 썩 아름다이 노래를 지었다고 하기 어렵겠습니다만, 일본 언론·정부는 그들이 짊어질 짐을 글꾼 몇 사람한테 덤터기를 씌우고 빠져나갔다더군요. ‘日本兒童文庫 75’으로 나온 “CUORE”는 애틋한 이야기이기는 한데,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 언론·정부·학교에서도 ‘어린이를 군사독재정권에 충성하도록 길들이’는 책으로 많이 써먹었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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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94


《자료집 1 : 가자! 농촌으로 해방으로 통일로 가자!》

 경희대학교 총학생회·단대연합회 엮음

 경희대학교 총학생회·단대연합회

 1986. 8.10.



  전남 고흥 시골자락에 살면서 이곳에 ‘농활(농촌봉사활동)’을 온 대학생을 두 해 보았습니다. 광주에 있는 대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라는데, 이틀인가 사흘쯤 머물더군요. 어느 아이는 하룻밤만 머물고서 돌아갑니다. 하루나 이틀을 머무는 대학생은 ‘태어나서 여태 하루도 해본 적 없는 흙일’을 얼마나 이바지하거나 거들 만할까요? 이름으로는 낫이나 호미라는 낱말은 들었겠지만, 막상 손에 쥐고서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를 얼마나 알는지요? 이들은 마을회관에서 묵었는데, 버스를 빌려 짐을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니 짐칸에서 술병이 끝없이 나오더군요. 농활이란 이름을 빌려 시골에서 술잔치를 벌일 셈이었을까요. 밤에는 폭죽을 터뜨리고 술에 절어 노래한다며 시끄럽던 일이 새삼스럽습니다. 《자료집 1 : 가자! 농촌으로 해방으로 통일로 가자!》는 대학생이 농활을 갈 적에 미리 배우기도 하고, 시골 마을회관 같은 데에서 함께 익히도록 꾸린 글뭉치입니다. 아마 웬만한 대학생은 농활을 가기 앞서까지 시골살이·농협이 얽힌 실타래를 하나도 모를 테고, 헤아린 적도 없겠지요. 그런데 술잔치 농활조차 해보지 않고서 공무원이나 정치꾼 노릇을 하는 이들은 나중에 무슨 일을 할까요? 낫이며 호미를 쥔 적 없이 어떤 행정을 펼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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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19


《咸錫憲 先生의 편지》

 함석헌 글

 함석헌 펴냄(자비출판)

 1957.2.5.



  ‘옳다 그르다’로 가릅니다. ‘옳다’는 ‘올바르다’나 ‘올차다·알차다’로 잇고, ‘오롯하다·옹글다’로 이으며, ‘알뜰하다’에 ‘아름답다’로 잇습니다. 이 결을 살피면 ‘올·옹·알’이 한 갈래입니다. ‘알’이란 ‘씨알·씨앗’입니다. 새로 자라날 기운을 고스란히 담은 조그마한 꿈이 씨알(씨앗)이요, 곧거나 바르게 서면서 흐르는 튼튼한 숨결이 씨알(씨앗)입니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전쟁에 군사독재를 온몸으로 마주하면서도 조용히 흙을 일구어 삶을 읽던 함석헌 님은 뒷날 《씨알의 소리》란 잡지를 펴내지요. 이녁이 ‘씨알’이라는 낱말을 애틋하게 곁에 둘 만하다고 느낍니다. 씨알이란 모든 숨결에서 바탕이요 밑틀이면서 첫밗이거든요. 손수 쓰고 엮어서 내놓은 《咸錫憲 先生의 편지》는 몇 자락이나 나왔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이런 책이 나온 줄 아는 사람도 드물리라 봅니다. 졸업장학교가 아닌 시골에 길이 있다고 여긴 분이요, 절집이 아닌 하늘에 사랑이 있다고 여긴 분이며, 책이 아닌 흙에 빛이 있다고 여긴 분이고, 정치나 사회가 아닌 숲에서 부는 바람 한 줄기에 뜻이 있다고 여긴 분이었을 테지요. 손수 흙을 돌본다면 권력자가 안 됩니다. 아이를 보살피는 어버이는 독재자가 안 되지요. 사랑이어야 사랑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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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84


《유관순》

 김대영 옮김

 김석배 그림

 초동문화사

 1977.6.10.



  ‘을지그림문고’라고 하는 이름으로 ‘고구려서점 총판’이란 데에서 돌린 《유관순》은 ‘덤핑책’입니다. 책에 붙은 값은 아랑곳하지 않고 싸구려에 무더기로 넘긴 판입니다. 학교에 뒷돈을 건네면서 팔던, ‘가정판매’란 이름으로 집집을 돌며 바가지를 씌우기도 하던, 책마을을 어지럽힌 자국입니다. 글쓴이가 아닌 ‘옮긴이’가 나오는 이러한 책을 쓰거나 엮거나 펴낸 어른은 아이들한테 어떤 돈을 우려내려는 마음이었을까요? 후줄그레한 책을 얄궂게 내놓아 돈벌이에 기울인 그 어른들 삶에 조금이라도 이바지를 했을까요? “그런 책이라도 어디냐? 책 하나 손에 못 쥐는 가난한 아이가 많았는데?” 하면서 지난날 이런 책을 잘못으로 안 여기고 핑계를 대는 어른이 수두룩한 터라, 우리 삶터가 오래도록 쳇바퀴질이지는 않았을까요? 출판사에서는 맞돈을 손에 쥐려고 ‘총판 거래’를 했습니다. 2000년대로 접어든 다음에는 총판보다 ‘홈쇼핑 거래’로 책을 덤터기로 팔아치웠지요. 책을 책으로 여기지 않는 마음이라면, 우리가 이 종이꾸러미로 무엇을 배울까요? 마구잡이로 팔아치우려는 책이어도 ‘유관순’을 다루면 ‘좋은 책’이 될는지요? 하루이틀 팔아넘길 싸구려 아닌, 즈믄해를 고이 건사할 이야기책을 지어서 나누고 싶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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