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2.2.4.

숨은책 621


《보내지 않은 편지》

 아델 꾸뚜이 글

 김하 옮김

 연변교육출판사

 1955.2.첫/1955.12.석벌.



  북녘 ‘조선녀성사’에서 1954년에 처음 나온 《보내지 않은 편지》는 중국 길림성 연길시에서 벌마다 2만 남짓 찍어 석벌에 이르렀다는데, 그 뒤로 더 찍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숱하게 읽혀 해진 책은 ‘쏘련 각시’가 ‘마음에 든 사내’한테 글월을 쓰기는 했으나 차마 보내지 못한 이야기를 소설 얼거리로 다룹니다. 이른바 ‘사랑 이야기(연애소설)’일 텐데, ‘혁명을 바라보고 이루려고 땀흘리는 순이’가 어떤 매무새여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줄거리라 할 만합니다. 아직도 이런 글이 읽히지는 않겠지요. 모든 사람을 톱니바퀴로 여기면서 ‘나라에 한몸 바치라’고 부추기는, 또한 ‘삶을 짓는 손길’이 없는 글은 누가 왜 써서 읽히려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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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어요. 단지 아오모리 현만 하여도 그러한 계약서가 천여개나 되며 부르죠아 출판물들이 전하는 바에만 의하여도 일본에는 오늘날 현재로 공식적 수속을 밟은 매음부들이 五만 三백 五十三명이 된다는 거예요. “네게는 녀편네 노릇 밖에 더 없다. 너는 공부도 하지 않고 직장에도 다니지 말라. 너의 일은 부엌 살림에, 례배당에, 침대에 있다”, 이렇게 파시스트들은 떠들고 있지요.” (93쪽)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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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2.4.

숨은책 620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였는가》

 오쓰뜨롭쓰끼 글

 편집부 옮김

 연변인민출판사

 1978.11.



  “그런 책을 어디서 찾았어?” “어디서 찾다니? 뻔히 눈앞에 있잖아?” “눈앞이라고?” “봐, 여기 있었지, 어디 있었니?” 둘레에서 저더러 ‘숨은책’을 잘 찾는다고 말할 적마다 책이 숨은 적이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익숙한 책’이 아닌 ‘스스로 새롭게 배우려고 하는 책’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으면 어느 책이건 눈에 뜨일 일이 없이 ‘숨어버린다’고 얘기했어요.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였는가》는 헌책집에서 곧잘 보았으나 ‘소설’은 읽고 싶지 않아 지나치기 일쑤였습니다. 이러다가 《보리 국어사전》 짓는 일을 하면서 북녘말을 살펴야 했기에 비로소 장만해서 읽었습니다. 함께 일하는 윤구병 님이 어느 날 물어요. “야, 너 그 책 어디서 찾았어?” “헌책집에 흔하게 있는데요?” “흔하다고? 그럼 나도 좀 사 줘.” “책값만 주시면 사 드리지요.” 너덧 분한테 똑같은 책을 다 다른 헌책집에서 찾아내어 건네었습니다. “너 참 재주도 좋다. 어떻게 이렇게 많이 찾아내니?” “재주 아닌데요? 읽으려고 하는 사람한테는 반드시 보여요. 읽을 마음이 없으면 코앞에 놓아도 못 알아보잖아요.” 묵은 책을 스무 해 만에 되읽습니다. 우리는 ‘무쇠’나 ‘톱니’가 될 까닭이 없습니다. 물결에 휩쓸리지 말고 ‘나’여야 합니다.


ㅅㄴㄹ


이제 스무 해도 훌쩍 넘은 이야기이니

좀 홀가분히 말하려 한다.

다만, 이따금 조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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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2.2.

숨은책 619


《文章作法, 受驗作文의 範例》

 김이석 글

 수험사

 1959.6.25.첫/1963.2.15.3벌



  저도 ‘글쓰기를 다룬 책’을 썼습니다. “글을 쓰려면 누구한테서도 배울 생각을 치우고, 스스로 제 마음을 사랑하고 이 삶을 고스란히 그리되, 맞춤길·띄어쓰기를 다 잊고, 어린날 듣고 익힌 가장 수수하고 쉬운 말씨로 옮기라”고 밝혔어요. ‘배운다 = 똑같이 받아들인다’가 아닌, ‘배운다 = 내 나름대로 받아들인다’입니다. 1959년에 처음 나온 《文章作法, 受驗作文의 範例》는 ‘공무원 되기·큰일터 일꾼 되기에 이바지할 글쓰기’를 다룹니다. 어쩜 저때에도 이런 책이 다 나왔고, 꽤 읽혔나 싶으나, 그만큼 우리나라는 뒤처졌다는 뜻입니다. ‘문장작법 수험서’는 온통 ‘나를 잊고 틀에 맞추라’는 줄거리입니다. 지난날에는 누구나 사투리를 썼는데, 사투리를 버리고 서울말을 써야 한다고 다그칩니다. 묵은책을 덮으려다가 끝자락에 남은 “於 莞島書店 西紀一九六四年 十月 二十二日 鄭信吉 主”란 글씨를 봅니다. ‘於·主’는 우리말씨 아닌 한문입니다. 그런데 이 배움책(참고서)은 〈완도서점〉에서 팔렸군요. 완도에서 나고자라 벼슬꾼(공무원)을 꿈꾼 분이 읽었지 싶습니다. 어릴 적에 우리 어머니나 이웃 아주머니는 한자·한문을 몰라 동사무소에서 늘 애먹었습니다. 이제는 한글을 쓴다지만 공문서는 아직 딱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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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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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2.2.

숨은책 618


《現代韓國新作全集 5 長詩·詩劇·敍事詩》

 김종문·홍윤숙·신동엽 글

 을유문화사

 1967.12.25.첫/1971 .5.25.재판



  신동엽 노래책을 자꾸 사서 둘레에 건네고 되읽는 모습을 지켜본 헌책집지기가 어느 날 “자네 신동엽을 좋아하나? 허허, 그러면 삼만 원만 있으면 더 귀한 책을 살 수 있는데?” 하고 물으십니다. 귀가 솔깃하지만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한 달 31만 원을 벌어 15만 원을 목돈으로 붓는 살림인 터라 빠듯합니다. “3000원 아닌 300원이 모자라 라면 하나를 외상으로 달아서 사는걸요.” “허허, 다른 책 안 사면 《아사녀》를 살 수 있는데? 나중엔 돈이 있어도 못 살걸?” 어느 분이 《님의 침묵》을 보여준 적 있어 만져 보기까지 했습니다만 끌리지는 않았습니다. 첫판을 쥐면 뿌듯할 터이나, 가난살림에 책값은 늘 힘에 부쳤고, 헌책집에서 가장 낡은 판으로 골라 가장 싸게 장만하며 알맹이만 읽던 나날입니다. 《現代韓國新作全集 5 長詩·詩劇·敍事詩》는 서울 ‘경성 중·고등학교 도서관’에 있다가 버림받습니다. 빌린이가 없었겠지요. 배움책숲에서 빌린이가 없어, 버린 책은, 가난한 책벌레한테 아주 반가운 빛줄기입니다. 알아보지 못한 채 쉰 해를 잠들었기에 헌책집에서 건사하거든요. 〈금강〉을 처음 실은 책을 쓰다듬습니다. 먼지를 고이 닦습니다. 한 줄 두 줄 새삼스레 되읽습니다. 모든 책은 새로 빛나려고 잠들어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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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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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2.2.

숨은책 613


《兒童說敎 五十二集》

 홍병선 글

 형제출판사

 1939.6.26.첫/1954.7.고침



  어버이가 슬기롭다면 아이를 섣불리 가르치려 들지 않습니다. 아이는 놀이를 거쳐 소꿉으로 가고, 이윽고 심부름을 맡으면서 살림을 하나씩 깨닫고, 어느새 스스로 듬직히 일꾼으로 일어나서 새길을 닦는 철든 숨결로 살아갑니다. 아스라히 먼 옛날부터 배움터(학교)가 따로 없어도 어른은 아이한테 숲살림을 사랑으로 물려주었고, 아이는 어른한테서 고이 물려받았습니다. 나라(정치권력)를 세운다면서 힘을 거머쥔 임금붙이는 손수짓기(자급자족)란 삶길을 흔들어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만 배워야 한다’고 억눌렀어요. 《兒童說敎 五十二集》은 1939년에 처음 나왔고, 일본이 물러간 1954년에 고침판이 나옵니다. 글을 쓴 홍병선(1888∼1967) 님은 YMCA에서 1920년 소년부 간사, 1925년 농촌부 간사, 1938년 영창학교 교장을 맡는데, 덴마크를 다녀오고서 크게 깨우쳐 농촌협동조합 물결을 일으켰고, 이녁 아들은 홍이섭 씨라지요. 글님은 믿음길을 걸었기에 어린이가 예수를 따르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여겨요. ‘밖에 있는 빛’에 앞서 모든 아이마다 ‘마음에 있는 빛’부터 느끼도록 다독이면서 ‘바깥빛 섬기기’가 아닌 ‘스스로 빛나는 별로 삶·사랑·살림을 짓는 사람’으로 나아가도록 북돋았다면 더없이 아름다웠으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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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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