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2


《햇빛과 바람과 땀》

 이오덕 엮음

 임동동부 국민학교 대곡분교장

 1970.8.4.



  2003년 여름에 〈보리 국어사전〉 엮음빛(편집장) 자리를 그만두고서 충주 무너미마을 시골집에 깃들어 이오덕 어른 글을 갈무리했습니다. 먼지가 곱게 내려앉은 책시렁을 하나하나 들추다가 《햇빛과 바람과 땀》을 보았습니다. 쇠붓으로 꾹꾹 눌러서 묶은, 손바닥 크기만 한 글묶음(학급문집)입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천천히 읽었습니다. 해가 지고 밥때가 지난 줄 잊었습니다. 이오덕 어른은 1945년 8월에 일본이 물러간 뒤에 크게 뉘우쳤다고 밝혔습니다. 아이들한테 일본말을 가르친 부끄러운 모습을 어떻게 씻어야 하나 생각하다가, 죽는 날까지 아이들 곁에서 아이들만 바라보면서 살기로 다짐하고서, 늘 멧골자락 조그마한 배움터에서 종이·붓을 멧골아이들한테 사주면서 흙살림이야말로 눈부신 살림길이라고 들려주고 텃밭을 일구었다지요. 배움새뜸(학교신문)을 엮고 글묶음을 아이마다 하나씩 나누어 주면서 멧골아이가 멧골·시골이 푸르게 아름다운 줄 느끼도록 이끌려 하고요. 겉에 ‘대곡 어린이 시집’이라고 적은 뜻이 사랑스럽습니다. 즈믄(1000) 자락도 온(100) 자락도 찍지 않은 조촐한 노래책(시집)은 가슴을 활짝 펴자고 북돋우는 씨앗입니다.


“시란 이렇게 하여 순진하고 솔직한 사람, 가장 인간스러운 사람이 되기 위해 쓰는 귀중한 공부입니다. 그리고 시를 쓴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머리말)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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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2.15.

숨은책 631


《차개정잡문》

 로신 글

 연변인민출판사

 1976.12.



  2005년에 중국 연길시에 갔을 적에 길거리책집에서 《차개정잡문》을 만났어요. 중국한겨레(조선족)는 길바닥 책장사를 안 한다더군요. 남녘으로 건너가면 목돈을 벌 일자리가 많기 때문이라지요. 한글책을 파는 중국사람은 ‘모처럼 한글책이 팔려’ 이 책 저 책 보여주면서 한몫에 싸게 가져가라고 손짓했습니다. 남녘에서 나도는 흔한 소설책을 빼고 몽땅 장만하니 두 손으로 가득했습니다. 며칠을 연길시 골목골목 거닐었는데 길장사도 책집도 모두 중국사람입니다. 우리는 돈만 잘 벌면 될까요? 잔뜩 번 돈은 어디에서 어떻게 쓸 셈일까요? 손때가 짙게 밴 《차개정잡문》 뒤쪽에는 ‘연길시 신화서점 留念’ 같은 글씨가 찍혔습니다. 중국말 ‘유념’은 우리로 치면 ‘드림책’에 찍는 글씨이지 싶습니다. 로신(노신·루쉰) 님은 앞길을 읽으며 오늘과 어제를 새롭게 새기는 글을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온나라를 바보로 만들려면 “책집을 밟으면 된다”고 읊은 말은 참으로 옳아 슬픕니다.


“서점을 억압하는것은 그야말로 제일 좋은 전략이다 … 일본은 워낙 계급투쟁을 말하지 못하게 하지만 세계상에 계급투쟁이 없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중국은 세계상에 계급투쟁이란것이 존재하지 않는데 모두 맑스가 날조해낸것이므로 그를 금지하는것은 진리를 수호하기 위함이라는것이다. (186, 187∼188쪽)”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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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2.15.

숨은책 630


《룡구슬 제2집 무천도사 거북신선》

 허춘희 엮음

 연변인민출판사

 1993.7.



  일본에서 《ドラゴンボ-ル》로 나온 책을 우리나라는 《드래곤볼》로 옮겼고, 중국은 《七龍珠》로 옮겼으며, 중국 연변에서 살아가는 한겨레는 《룡구슬》로 옮겼습니다. 한자로는 ‘용’이고, 우리말로는 ‘미르’이니, 곰곰이 보면 ‘미르구슬’이나 ‘일곱구슬’로 옮길 만했구나 싶습니다. 연변인민출판사는 《七龍珠》를 바탕으로 우리말로 옮기는데, 남녘에서 쓰는 말씨하고 확 달라요. ‘갖풀갑’은 ‘캡슐’을 다듬은 낱말이고, ‘굳잠’은 ‘숙면’을 손질한 낱말입니다. ‘잘코사니’ 같은 낱말이 재미나고, ‘돌가위보’로 쓰는 말씨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온밤·닦아세우다·너절로·드센·게걸스럽다·엇서다’ 같은 낱말을 남녘에서는 어린이책에도 어른책에도 그닥 안 쓴다고 느낍니다. 북녘이나 연변 어린이가 즐기는 그림꽃책을 손에 넣으면 그곳에서 쓰는 투박하면서 수수한 우리말을 새록새록 들여다볼 만하지만, 좀처럼 찾아내기 어렵습니다. 말이란, 언제나 우리 삶을 고스란히 담을 뿐 아니라, 아이들이 살림살이를 차근차근 익히도록 이끄는 첫 징검다리입니다. 그림책·그림꽃책·어린이책에 어떤 낱말을 어떻게 추슬러서 담아내느냐에 따라 그 나라 앞빛이 확 달라진다고 느껴요. ‘어린이나라’가 ‘아름나라’이니까요.


ㅅㄴㄹ


‘갖풀갑’은 조금 손질해서

‘갖풀집·갖풀이’로 쓸 만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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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2.15.

숨은책 634


《시인 할머니의 욕심없는 삶》

 황보출 글·그림

 푸른어머니학교

 2020.9.



  아이가 짓는 그림은 아이다운 숨결이 흐릅니다. 어른이 빚는 그림은 어른스러운 숨빛이 감돕니다. 할매할배가 일구는 그림은 할매할배라는 숨소리가 깃듭니다. 삶자리에 따라서 다 다른 그림이면서, 나이에 따라서도 다르고, 생각이며 마음에 따라서도 다르지만, 스스로 바라보는 사랑으로 살아가는 살림살이에 따라서도 다르게 피어나는 그림입니다. 《시인 할머니의 욕심없는 삶》은 여든이 훌쩍 넘어 아흔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하루를 되새기면서 갈무리한 글·그림으로 조촐하게 여민 그림책입니다. 여느 책집에서는 장만할 수 없고, 황보출 할머님 손빛을 헤아리는 마을책집으로 마실을 하면 장만할 수 있습니다. 할머니는 글을 모르는 채 살았다지만, 사랑하고 살림을 차근차근 익히면서 살았어요. 일찌감치 글을 익혔다고 해서 이녁 삶을 글로 갈무리할 틈은 빠듯하거나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글을 배우기’로 한 때가 드디어 스스로 어제를 돌아보고서 갈무리할 틈이 난 하루요, 이제 오롯이 스스로 마음눈을 뜨면서 홀가분히 글도 그림도 엮어 나갈 만하다고 느낍니다. 반듯하게 잘 쓸 글이 아니고, 빈틈없이 잘 빚을 그림이 아닙니다. 무엇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사랑하는 하루를 그러모아 살림꽃을 피우는 나날인지 담으면 아름답습니다.


https://www.epurun.org


저는 군포 <터무니책방>에서 황보출 할머님 그림책
네 가지를 만나서 장만했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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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2.13.

숨은책 632


《꾸러기 곰돌이 2 그네 좀 태워 줘》

 남미영 글

 오명훈 그림

 웅진출판사

 1985.11.15.



  어릴 적에는 그림책을 못 읽었어요. 1982∼87년에 어린배움터를 다니는 동안 어마어마한 짐(숙제)에 억눌리면서 이따금 ‘위인전·명작동화’를 ‘독후감 숙제’ 때문에 읽되, 그때에는 ‘그림책’이란 낱말이 있는 줄조차 몰랐어요. 스물다섯 살에 이르러 ‘그림책’을 처음 만났고, 그때부터 그림책을 늘 곁에 놓으면서 삶을 새삼스레 읽어요. 《꾸러기 곰돌이 2 그네 좀 태워 줘》를 처음 만날 무렵에는 《달팽이 과학동화》를 꾀해서 선보인 보리출판사가 웅진출판사하고 삯다툼(인세 분쟁)이 있는 대목만 알았어요. 나중에 헌책집에서 《꾸러기 깐돌이》(지경사, 1988) 꾸러미를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고, 곧이어 여러 헌책집에서 《ノンタン》(偕成社, 1976)을 만나고서 깜짝 놀랐어요. 웅진출판사가 1985년에 낸 《꾸러기 곰돌이》는 1976년에 기요노 사치코(キヨノ サチコ) 님이 선보인 ‘논탕’ 그림책을 고스란히 훔치고 베낀 판이더군요. ‘훔치기+베끼기’로 돈을 억수로 번 펴냄터·글쓴이·그린이입니다만, 마흔 해 사이에 누가 뉘우치거나 잘못을 빌거나 고개숙였을까요? ‘배울’ 수는 있으나 ‘훔치고 베낀’다면, 그림책을 읽을 어린이하고 어른은 무엇을 보고 느낄까요? 돈벌이에 넋을 팔아 주머니가 두둑한들 아름길하고는 한참 멉니다.


ㅅㄴㄹ

#ノンタン #キヨノサチコ #ノンタンぶらんこのせて


キヨノ サチ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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