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2.3.11.

숨은책 641


《학교 교련 교본 (전편)》

 육군본부 작전교육국 엮음

 문헌사

 1949.5.10.첫/1949.9.1.두벌)



  푸른배움터를 1993년까지 다녔기에 ‘교련’ 갈래를 마지막으로 배운 셈입니다. 1994년부터 총칼다루기(총검술)하고 모둠틀(제식훈련)을 없애고 혼배움(자율학습)이었거든요. 한두 해 어린 뒷내기부터 안 배울 뿐 아니라, 배움터에서 대놓고 얻어맞는 일이 확 줄어든 1994년에 또래 사내는 두 마음이었습니다. “걔네들도 맞아 봐야 하는데, 우리까지만 맞고 사라지다니!”가 하나라면 “이제라도 그런 쓰레기가 사라지니 시원하다!”가 둘입니다. 푸른배움터 ‘교련’은 사라졌어도 총알받이 싸움터(군대)에 끌려가니 허구헌날 두들겨맞더군요. 《학교 교련 교본 (전편)》은 일본한테서 풀려난 지 몇 해 뒤에 나온 책으로, ‘바른걸음·옆걸음·빠른걸음·제자리걸음’ 같은 우리말이 제법 나오되, ‘좌·우·주간진로·야간진로·횡단·일거동작’ 같은 일본말씨가 고스란합니다. 바짓주머니에 들어갈 만큼 작고 도톰한 이 책은 ‘京畿公立工業中學校’를 다닌 분 이름이 뒤켠에 남습니다. 1949년 ‘교련’은 어떤 구실이었을까요? 총칼수렁(식민지)에서 벗어난 나라를 돌보려는 길에 편 ‘담금질(敎鍊)’이기보다는, 제주섬을 비롯해 온나라를 한겨레 스스로 억누르거나 짓밟으려던 ‘길들이기’로 오래오래 슬프고 아프게 이어왔지 싶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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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京畿公立工業中學校 #경기공립공업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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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3.6.

숨은책 627


《북두의 권 11》

 미진 기획

 박진 옮김

 미진문화사

 1990.9.30.



  1988∼90년 세 해를 제 삶에서 지웠습니다. ‘중학교’라는 곳을 다니는 내내 “여기는 학교가 아닌 감옥이자 지옥일 뿐이니, 오로지 내 삶만 바라보자” 하고 다짐했어요. 기껏 열네 살인 또래들은 입만 열었다 하면 막말이 쏟아지고, 길잡이도 똑같고, 어른아이 모두 온하루가 주먹질이었습니다. 둘레에 눈감고 “죽은 듯이 시험공부만 하자”고 생각했어요. 이즈음 또래 사내들은 손바닥보다 작은 《북두의 권》하고 《드래곤볼》을 글붓집(문방구)에서 사다가 돌려읽더군요. 주먹질이 춤추는 그림에 사람을 갈기갈기 찢어죽이는 모습이 뭐가 재미있는지 낄낄거리는데, 여리거나 작은 또래를 ‘만화책에서 본 모습 그대로 괴롭히는 짓’을 날마다 해대더군요. 《北斗の拳》은 ‘부론손 글·하라 테츠오 그림’으로 1983∼88년에 일본에서 나왔습니다. 우리나라는 몰래책(해적판)으로 마구 찍어 아이들 주머니를 털었습니다. 《북두의 권》은 나쁜책이 아닙니다만, 어떤 줄거리로 어떤 삶을 그리는가를 풀어내는 어른이란 그때나 요즘이나 없고, 그저 싸움박질을 고스란히 아이들한테 보여주는 판입니다. 〈오징어게임〉도 그렇지요. 이 나라 어른이란 사람은 돈에 눈멀어 주먹질을 자꾸 그리기만 할 뿐입니다. 어깨동무하고 사랑을 그릴 줄 몰라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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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3.6.

숨은책 637


《正音 第二十四號》

 권영희 엮음

 朝鮮語學硏究會

 1938.5.31.



  조선 오백 해는 숱한 사람들로서는 아랫내기로 억눌리는 나날이었으나, 몇몇 사람들한테는 윗내기로 힘·이름·돈을 누리는 나날이었습니다. 이웃나라가 총칼로 우리나라를 집어삼킨 마흔 해 가까이, 숱한 사람들은 괴롭고 배고파야 했으나, 적잖은 사람들은 앞잡이 노릇을 톡톡히 하면서 떵떵거렸습니다. 빼앗긴 말을 찾으려고 애쓰면서 우리 말글을 가꾸려는 사람들이 땀흘리는 한켠이 있었고, 일본글·중국글을 우러르면서 허수아비짓을 일삼는 무리가 있었어요. 《正音》이란 이름으로 달책(잡지)을 엮은 조선어학연구회(박승빈·안확)는 총칼수렁(식민지)에 이바지하는 길을 가면서 우리 말글을 흔드는 몫을 했습니다. 이들은 달책에 “日鮮漢音便覽(일선한음편람)”을 싣고, “皇國臣民ノ誓詞(황국신민의 서사)”를 싣지요. 누구나 제 뜻을 펴면서 제 생각을 일구는 밑틀로 우리 말글을 누리기보다는, 몇몇 글바치끼리 주물럭거리는 윗내기 노릇을 잇기를 바랐습니다. ‘正音·정음’은 우리말일까요? 그들(친일부역자)은 일본글을 ‘正音’으로 우러렀을 텐데요. 오늘날 국립국어원은 독립운동이나 한글학회하고는 동떨어진 뿌리입니다. 나라말을 돌보려는 마음이라면 ‘국어’ 같은 일본말을 진작 걷어냈으리라 봅니다. 말을 말다이 쓰는 바탕이 서야 생각을 생각다이 지으며 날개를 펼치는 참다운 길을 열 수 있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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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3.6.

숨은책 639


《하늘의 절반》

 클로디 브로이엘 글

 김주영 옮김

 동녘

 1985.5.30.



  사내는 부엌에 얼씬거려서는 안 된다고 여기던 나라에서 언니하고 저는 어릴 적부터 온갖 심부름하고 설거지를 했고, 밥살림을 익혔습니다. 한가위하고 설에도 바삐 일하고 함께 먹을거리를 장만했어요. 이동안 우리 아버지는 끝까지 부엌에 코빼기조차 안 비쳤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사람으로 서려면 밥옷집 세 가지 살림길을 스스로 지어서 누리거나 나누는 길을 익힐 노릇입니다. 누구는 안 하고 누구만 하는 길로는 모조리 무너집니다. 순이돌이가 나란히 부엌에 서고, 밭에 앉고, 일터에서 뛸 노릇이에요. 《하늘의 절반》은 중국이란 나라에서 순이돌이가 얼마나 어깨동무를 훌륭히 하는가를 다룹니다. 하늬녘(서양) 사람은 중국에서 돌이가 밥을 짓고 집안일을 하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지요. 그러나 오늘날 중국은 어떠한지 아리송합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 쳐들어갈 적에 손뼉을 치는 중국이요, 대만·홍콩을 총칼로 짓누를 뿐 아니라, 중국 우두머리는 중국사람이 목소리를 못 내도록 억누르거든요. 칼로 자르는 어깨동무란 없습니다. 키가 다른 사람이 서로 발맞추고 천천히 걸으며 노래하는 어깨동무예요. 총칼 치우기·어깨동무·숲길·배움꽃·글쓰기·살림살이는 언제나 한동아리입니다. 모두 슬기로이 바라볼 노릇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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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2.27.

숨은책 640


《온다는 사람》

 엄승화 글

 청하

 1987.11.20.



  2008년에 큰아이를 낳았습니다. 큰아이는 갓난쟁이일 적부터 그무렵 살던 인천 배다리 하늘집(옥탑방) 건너켠에 있던 〈아벨서점〉 할머니하고 어울리며 책집을 놀이터로 누렸습니다. 터전을 시골로 옮겨 책집 할머니는 큰아이를 거의 못 보다가 열다섯 살에 이른 2022년 2월 끝자락에 인천마실을 하며 몇 해 만에 얼굴을 보이고 저녁을 나눕니다. 이 틈에 책시렁을 둘러보다가 《온다는 사람》을 들추니, 속에 “이 책은 판매할 수 없음”이란 붉은글이 찍혀요. 처음 헌책집을 다닌 1992년부터 ‘청하’ 책은 으레 이런 붉은글이 찍힌 채 나돌았습니다. 마을책집에서 안 팔려 되돌리고서(반품) 버린(폐기) 책을 종이무덤(폐지처리장)에서 건져내어 다루던 자국입니다. 뒤쪽에는 팔림쪽이 고스란히 남습니다. 이 자취를 갈무리하려고 장만하자니, 책집 할머니가 “이분 시집 잘 안 나오는데.” 하셔요. 누구일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엄승화 님이 쓴 〈풍금을 놓아두었던 자리〉, 〈해변의 의자〉라는 노래(시)를 신경숙 글바치가 슬쩍 훔쳐 1992년에 소설에 글이름으로 붙여서 한때 말밥에 올랐으나 글힘꾼(문단권력자)이 떼로 감싸면서 어영부영 넘어갔다더군요. 노래책 하나를 남긴 분은 뉴질랜드로 건너가서 조용히 살아간다고 합니다.


ㅅㄴㄹ

#풍금이있던자리 #신경숙표절 #신경숙 #해변의의자

#문단권력 #한국문학 #한국문학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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