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2.4.7.

숨은책 647


《일반과학 동물계》

 조복성 글

 정음사

 1950.5.8.



  어릴 적에 나무이름이며 풀이름이며 벌레이름을 참 못 외웠습니다. 묻고 또 묻고 다시 물었습니다. 둘레에 나무이름에 풀이름에 벌레이름을 물을 만한 어른은 우리 어머니였어요. “그만 좀 물어. 벌써 몇 벌째니?” “잘못했어요. 생각이 안 나서요.” “아니야. 잊어버렸으면 다시 알려주면 되는데, 어머니가 미안해.” “그런데 어머니는 어떻게 이름을 그렇게 잘 알아요?” “어머니는 어릴 적에 시골에서 자라서 늘 보고 자랐어.” “어, 그러면 저도 시골에서 태어났으면 이름을 잘 알 수 있었을까요?” 우리 어머니는 이다음은 입을 다무셨어요. 나중에 다시 여쭈니 오빠들은 배움터(국민학교·중고등학교)를 다 가는데 어머니는 딸이라 어린배움터도 다니는 둥 마는 둥 해야 했고, 그마저 푸른배움터는 엄두조차 못 내었다더군요. “넌 시골이 아니라 인천에서 태어나서 고마운 줄 알아야 해.” 하고 곧잘 말씀했습니다. 《일반과학 동물계》는 우리 손으로 일군 우리 풀벌레·숲짐승·헤엄이 살림살이를 다룬 배움책입니다. 드디어 1950년에 이만 한 책이 태어나는데 한 달 뒤에 한겨레싸움(동족상잔)이 불거지며 이 책은 가뭇없이 밟히고 잊힙니다. 우리 곁에 있는 작은이웃을 눈여겨보고 이름을 부른다면 어깨동무를 할 텐데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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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3.25.

숨은책 645


《鄕土仁川의 案內》

 유희강 엮음

 광명사

 1959.12.20.



  1995∼2004년을 서울에서 살았는데, 다른 고장 이웃님이 찾아와서 “서울 구경 좀 시켜 줘” 하면 으레 서울 골목길을 걸어서 헌책집으로 이끌었습니다. “뭐야? 이곳이 서울에서 가장 멋진 곳이야?” “네, 서울에서 숨은 빛(보석)이 이 작은 헌책집입니다. 서울 속내를 환히 읽어낼 수 있어요.” 인천으로 삶터를 옮긴 2007∼2010년에도 똑같이 인천 골목길을 한나절 걷고서 헌책집으로 이끌었지요. “송도나 인천대교 같은 데는 안 가?” “그럼요. 껍데기 아닌 알맹이를 보고 느껴야 이 고장을 일구는 사람들 숨결을 만나거든요.” 고흥으로 옮긴 2011년부터는 우리 마을 어귀 ‘빨래터’부터 보여주었으나 마을빨래터는 2022년에 망가졌습니다. 《鄕土仁川의 案內》를 서울 어느 헌책집에서 목돈을 들여 장만했습니다. ‘인천 인현동 9번지’에서 펴내었고 “古跡·名勝·天然紀念物 附 傳說”을 붙인 얇은 책에는 ‘인천공설운동장’ 모습을 석 칸으로 찍어서 붙여요. 숭의1동·도원동 옛 골목집을 한눈으로 바라보며, 이 낮고 작은 살림집이야말로 아름빛이라고 느낍니다.


더욱이 이것이 博物館事業에 從事하는 동안에 거두어진 微細한 一部의 收錄이라 하겠으니 仁川博物館 創設로 부터 十年間 慘擔經營해온 前館長 李慶成氏의 調査 舊稿大部分을 이小冊字에 담기게됨을 다시금 滿足하며 謝意를 表한다. (엮은이/79쪽)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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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3.25.

숨은책 646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

 사기사와 메구무 글

 최원호 옮김

 자유포럼

 1998.1.20.



  요즘이라면 겉에 “일본 인기 여류작가의 서울살이 180일” 같은 이름을 섣불리 안 붙일 테지만, 1998년에는 이런 이름을 박는 곳이 흔했고, 저는 그무렵 이런 한 줄이 못마땅해서 밀쳤습니다. 이러던 2004년 4월 11일, 사기사와 메구무 님은 “일본사람·조선사람으로 가르고, 순이돌이로 가르는 굴레가 사라지기를 바란다”는 글을 짤막하게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갑자기 멍해서 예전에 밀쳐둔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을 장만하려고 했더니 진작 판이 끊어졌습니다. 2004년 12월에 헌책집에서 겨우 한 벌 찾아내어 읽었습니다. ‘¼ 한겨레 핏줄’이 흐르는 줄 문득 알아차리고서 한말글을 익히려고 서울 연세어학당을 여섯 달 동안 다니는 동안 두 나라가 얼마나 차갑고 메마른가를 새록새록 느꼈다는 줄거리가 흐릅니다. 일본에서 나온 “ケナリも花 サクラも花”는 옅파란 바탕에 두 가지 꽃이 나란하고 군말을 안 넣습니다. 글님은 그저 ‘글님’일 뿐이고, 사는곳은 사는곳일 뿐이거든요. 모든 꽃은 참말로 꽃이요, 모든 풀은 그저 풀이며, 모든 나무는 늘 나무입니다. 그러나 차갑거나 메마른 두 나라는 ‘안 배우려는’ 사람들입니다. ‘배우려는’ 사람들은 어느 나라에서든 따뜻하고 곱고 포근해요. 부디 하늘빛으로 쉬시기를.


ㅅㄴㄹ


#ケナリも花サクラも花 #鷺沢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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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3.15.

숨은책 643


《두만강 물고기》

 김리태 글

 농업출판사

 1990.11.30.



  책집으로 찾아가서 책을 사는 분이 있고, 집에서 셈틀이나 손전화로 책을 시키는 분이 있습니다. 마을책집이 꾸준히 늘고, 누리책집이 확 늘었는데, 우리나라 누리책집은 헌책집이 일찌감치 첫발을 떼었습니다. 서울 〈신고서점〉이 1997년에 ‘누리헌책집’을 열 즈음 “누가 책을 인터넷으로 사나?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면서 사지?” 하는 핀잔이 꽤 많았는데, 이제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면서 책을 사니 새롭다!” 하고 놀라는 분이 많습니다. 한창 누리헌책집이 늘던 2000년대 첫머리에 중국 연변에서 〈아라리안〉이 열었어요. 이곳은 연변책하고 북녘책을 팔았지요. 그야말로 남북녘이 어깨동무하는 길로 달라지려나 하고 반가웠습니다. 다만 이곳은 책집살림을 오래 잇지 못하고 닫았습니다. 책값이 엄두가 안 나서 사지 못하더라도 북녘책 겉그림을 구경할 수 있기에 날마다 드나들던 일이 새삼스럽습니다. 《두만강 물고기》는 북녘에서 헤엄이를 살피는 분이 엮어내고서 중국에 있는 벗한테 건네었습니다. “中國科學院 動物硏究所 張玉珍 同志 1991.9.9.”이란 손자국이 깃들어요. 남녘도 연변도 책숲(도서관)에서 버리는 책은 늘 나옵니다. 헌책집이 있어 버림치를 건사해서 새길을 이으니 책빛은 고이 흐를 수 있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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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3.15.

숨은책 642


《나는 곰이란 말이에요》

 프랭크 타슐린 글·그림

 김대웅 옮김

 한벗

 1982.12.5.



  요즈음은 어린이책이나 그림책만 펴내는 곳이 늘었습니다만, 2000년으로 접어들 무렵까지 어린이책이나 그림책만 펴내는 곳은 드물었어요. 푸른책만 내는 곳은 더욱 드물고요. 이제 어린이·푸름이한테 아름다이 읽힐 책을 펴낸다고도 할 테고, 어른책은 장사가 안 되어 어린이책·푸른책으로 넘어왔다고도 할 만합니다. 1980년에 피비린내가 훑으며 온나라가 얼어붙은 무렵, 나라지기는 프로야구·프로축구·프로씨름을 내세우며 책마을을 조금 풀어주었습니다. 이때 이웃나라 삶책(인문책)을 옮긴 곳이 아주 많아요. 이즈음 어린이책에 눈길을 둔 곳은 매우 적은데, 이 가운데 ‘한벗’이 있고, ‘쉘 실버스타인’ 책을 우리말로 쉽게 옮겼으며 《나는 곰이란 말이에요》를 내놓았습니다. 1946년에 처음 나온 이 그림책은, 그즈음 확확 무너지는 숲과 무시무시하게 늘어나는 서울(도시)을 맞대었어요. 우리 이웃이 누구요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넌지시 물으며, 우리는 오늘 어디에서 어떤 숨빛인가를 조용히 들려줍니다. 1982년에는 알아보는 사람이 적었고 2007년에 새로 알아본 사람이 있어 《곰이라고요, 곰!》(계수나무 펴냄)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ㅅㄴㄹ

#TheBearThatWasnt #FrankTash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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