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한 위반 - 나쁜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을 묻는다
박용현 지음 / 철수와영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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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옳은 길을 즐겁고 신나게 걸어요
 [책읽기 삶읽기 84] 박용현, 《정당한 위반》(철수와영희,2011)



 사람들은 시골에서 살아가려 하지 않습니다. 젊은 나이에 시골에서 일거리를 마련하며 살아가는 이는 몹시 드뭅니다. 시골에서 살아가지 않으니, 이 나라 시골이 어떤 모습이요 어떤 얼거리인지 모릅니다. 시골을 모르니까, 시골 이야기를 글로 쓰든 사진으로 찍든 그림으로 그리든 하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흙을 일구면서 글을 쓰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참말 드뭅니다.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나날로도 온몸이 뻑적지근하며 바쁠 텐데, 저녁에 불을 밝혀 글을 쓰기란, 참 꿈같은 노릇입니다. 시골 이야기이든, 흙을 일구는 이야기이든, 으레 도시에서 흙을 안 만지는 사람이 씁니다.

 이런 글쟁이 저런 글쟁이가 비정규직 이야기를 글로 씁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오늘날은 누리사랑방(블로그)이나 누리모임(인터넷카페)이나 누리신문 같은 데에 글을 쓰는 비정규직이 적잖이 있습니다만, 중앙일간지라든지 잡지라든지 책이라든지, 이런 데에 글을 쓰는 비정규직은 얼마나 될까요. 이른바, 버스기사 택시기사 전철기사 가운데 글을 쓰는 사람은 얼마나 되고, 이들 운전기사 가운데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글을 쓰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요.

 옷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은, 저잣거리 좌판을 펼쳐놓은 사람은, 큰 건물 청소를 맡는 사람은, 동사무소에서 서류를 만지작거리는 사람은, 고깃배를 타고 고기를 낚는 사람은, 집에서 아이들 보살피며 살아가는 사람은, 저마다 어떤 글을 얼마나 넉넉하고 느긋하게 쓸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누구보다 아이 어머니들과 할머니들은 얼마나 홀가분하게 글을 쓸 수 있는지 궁금하며, 아이 어머니가 쓴 글은 어떠한 자리에 어떠한 크기로 실려 얼마나 많은 사람한테 읽힐는지 궁금합니다.


.. 어떤 문제에선 다수 여론을 등에 업고, 어떤 문제에선 다수 여론을 백안시한다 … 긴급조치 위반 사건 재판을 맡았던 판사 명단이 공개되자 자신에 대한 정치 공세라고 주장했다. 차라리 조용히 눈물 흘려 그 시대 인권 유린의 책임자인 아버지의 죄업까지 씻어내릴 수는 없었는지. 그 눈물로 억울하게 고초 겪은 숱한 이들의 상처를 닦아 줄 수는 없었는지 ..  (25, 37쪽)


 이제 이태째 집식구들 다 함께 시골살이를 합니다. 이태 앞서는 인천에서 지냈습니다. 우리 식구 인천에서 지내던 때에 보증금 200만 원도 없어 형한테서 돈을 빌었습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나처럼 글쓰기 일을 하면서 보증금 200만 원 빌며 살아가는 글쟁이는 못 보았습니다. 지역 종이신문에든 누리신문에든 글을 쓰는 사람들이란, 또 인천 골목동네로 사진찍기를 하러 찾아오는 사람들이란, 언제나 ‘골목동네에서 똑같이 가난하게 살아가는 이웃’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아는 이들 가운데에는 서너 사람쯤 빼고, 보증금 200만 원에 벌벌 떠는 사람은 못 보았습니다.

 진보를 말한다는 ㅎ신문이든 ㄱ신문이든, 한두 달쯤 ‘가난한 골목동네 달방’을 얻어 지내면서 ‘체험기’를 쓰는 일은 있겠지요. 여느 때에는 겪지 않고 느끼지 못하며 바라보지 못하니까, 그나마 한두 달쯤 몸소 겪어 보기는 하겠지요.

 보수를 말한다는 ㅈ신문이나 ㄷ신문에서 일하는 사람은, 한두 달쯤이나마 ‘가난한 골목동네 달방’을 얻어 네식구가 조촐히 살림을 꾸릴 일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니, 진보를 말한다는 ㅎ신문이나 ㄱ신문 기자부터, 혼자서가 아니라 네식구쯤 다 함께 가난한 골목동네 달방에서 제대로 뿌리내려 지내 보고서 ‘골목동네 삶자락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는 그의 말로 인해 구속됐다. 허위 사실유포라는 혐의였다. 같은 말을 대학 교수나 칼럼니스트가 했다면 어땠을까? 검찰은 언론의 숱한 오보와 명예훼손에 대해서도 같은 칼날을 들이댈 것인가? 다른 건 몰라도, 미네르바 구속을 전후해 그를 못된 범죄인으로 공공연히 묘사했던 언론사들이 그의 무죄판결 이후 단 한 마디 사과라도 했던가? … 그 고아 수출국에서 전 국토를 관통하는 멋들어진 21세기 초호화 대운하를 뚫겠다는 이명박 대통령. 고아 수출국에서 몇십 억대 재산과 세금 체납 전력을 자랑하며 새 시대의 동량이 되겠다고 나선 국회의원들. 고아 수출국에서 세계 일류 도약을 부르짖어대는 언론인들 ..  (104, 191쪽)


 그저께 읍내에서 마을밥잔치가 있었습니다. 요즈음은 시골 어르신들 나이가 많고, 집집마다 반찬을 마련해 마을에서 밥잔치를 열기 몹시 힘들다면서, 읍내 뷔페집을 얻어 조촐히 밥잔치를 마련한답니다. 마을에 백 살 자신 할머님 있어, 백살을 기리는 백살잔치를 마련했는데, 백살잔치에 가는 마을사람은 모두 할머니랑 할아버지입니다. 예순 살 아래 마을사람은 서른일곱 나하고 네 살 딸아이 둘뿐입니다.

 바쁜 가을걷이철이 끝났으니 모두들 느긋하게 밥과 술을 자십니다. 그러나 이듬날에도 서숙을 터는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이듬날에도 마늘밭에서 마늘을 심고 풀을 뜯습니다.

 크고작은 도시에 있는 가게마다 놓이는 쌀이며 마늘이며 배추이며 무이며 당근이며 …… 나이 예순이 안 되는 ‘젊은’ 흙일꾼이 흙을 일구어 거둔 푸성귀는 거의 없습니다. 이른바 ‘중국에서 사들인’ 푸성귀가 아닌, 나라안에서 거둔 푸성귀는 하나같이 나이 예순이 훨씬 넘은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땀흘려 거둡니다. 서숙이든 밀이든 보리이든 모두 매한가지예요. 젊은 흙일꾼이 거두는 일은 드뭅니다. 나이든 꾸부정한 흙일꾼이 쉰 해 예순 해 일흔 해 내리 쉬잖고 거둡니다.


.. 보상금과 연금이 계산돼 우리 앞에 제시된다. 그것이 1억 원이든 2억 원이든, 다달이 100만 원이든 200만 원이든, 그것은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길게 펼쳐진 내일을 감당하기엔 턱없이 모자란 체면치레일 뿐이다. 그들이 위로받고 또 남은 희망을 그러모아 삶을 견뎌내도록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보상금이나 연금뿐일 수는 없다. 더더군다나 일회성 성금으로 우리의 책임을 덜려 해서는 안 될 일이다 ..  (326쪽)


 박용현 님이 내놓은 산문책 《정당한 위반》(철수와영희,2011)을 읽습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고픈 가냘픈 꿈을 담은 조그마한 산문책입니다. 참말 이 나라에는 아직 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합니다. 민주주의 씨앗이 살짝 흙에 닿았을 뿐, 이 씨앗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니, 싹도 트지 못해요. 흙일꾼이 흙땅에 씨앗만 던졌다고 할까요.

 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한 탓은 무엇일까 헤아립니다. 바보스러운 대통령 때문인가요. 엉터리 정책 때문일까요. 어처구니없이 헌법을 짓밟는 사람들 때문이려나요. 공권력을 사랑스레 보듬지 못하는 공무원들 때문인지요.

 “옳게 거스르기”는 없다고 느낍니다. 옳은 길은 그저 옳은 길입니다.

 진보이든 개혁이든 보수이든 수구이든, 밥을 안 먹으면 다 죽습니다. 하루 두어 끼니 밥그릇 소복하게 담은 밥을 쌀밥으로든 보리밥으로든, 또 흰밥으로든 누런밥으로든 먹지 않으면 다 죽습니다.

 물을 안 마시고 살 수 있는 진보주의자는 없습니다. 햇볕 안 쬐고 살아남을 수 있는 보수주의자는 없습니다. 흙을 일구는 할머니 없이 돈벌이를 즐길 수 있는 개혁주의자는 없습니다. 고기를 낚는 할아버지 없이 정치를 읊을 수 있는 수구주의자는 없습니다.

 “옳게 거스르기”는 없습니다. 옳은 길만 있습니다. 옳은 길은 아무것도 거스르지 않습니다. 물과 바람과 햇살은 아무것도 거스를 까닭이 없습니다. 흙과 풀과 사람은 아무것도 거스를 일이 없습니다. 그예 사랑스러운 사람은 그예 사랑스레 길을 걷습니다. 그예 아름다운 사람은 그예 아름다이 길을 걸어요.

 “옳으니까 거스른다”고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 옳으니까 거스를 일이 없어요. 옳으니까 옳은 대로 살아가면 돼요. 옳다고 여기면, 아니 옳다고 온몸과 온마음으로 느끼면, 이 옳은 길을 즐겁고 신나게 걸어요. 옳은 길을 기쁘게 걷는데 누구 눈치를 보나요. 옳은 길을 예쁘게 걷는데 누구하고라도 어깨동무하면 돼요. 나는 새봄에 씨앗을 심어 거둘 푸성귀를 ‘진보정당 믿는 손님’한테든 ‘박근혜 사랑하는 손님’한테든 거리끼지 않고 나눌 생각입니다. 사랑받는 사람이면서 사랑을 못 느낀다면 사랑을 나누어야지요. 미운 아이도 예쁜 아이도 다 함께 떡을 골고루 나누며 배불리 먹어야 즐거워요. (4344.11.15.불.ㅎㄲㅅㄱ)


― 정당한 위반 (박용현 씀,철수와영희 펴냄,2011.10.26./1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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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 물어야 할 한 가지 - 결혼을 배운 적이 없는 모든 당신들을 위하여
강수돌 외 지음 / 샨티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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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옆지기하고 즐겁게 살아갑니다
 [책읽기 삶읽기 85] 강수돌과 열여섯 사람, 《결혼 전 물어야 할 한 가지》(샨티,2011)



 옆지기는 《결혼 전 물어야 할 한 가지》(샨티,2011)라는 책에 글을 쓴 열일곱 사람 가운데 딱 한 사람을 안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로는 ‘네 살 딸아이까지 세 식구가 중동에서 넉 달째 나들이를 한다’는 편해문 님을 안다.

 나는 편해문 님을 1999년이었나 2000년부터 알았다. 어린이책 만드는 출판사에서 일하던 이무렵, 막 어린이책 두 가지를 내놓아 ‘새내기 작가 이름’을 걸친 편해문 님은 어린이놀이 이야기에 여러모로 마음을 쓰는 분이었다. 얼굴을 보고 인사를 하며 이름을 알기로는 이때부터이지만, 막상 느긋하게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로는 2010년 이른겨울이 처음이었다고 느낀다.

 어찌 되든, 옆지기는 《결혼 전 물어야 할 한 가지》라는 책에서 편해문 님 글만 골라 먼저 읽는다. 편해문 님 글이 좋다고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 글은 읽지 않았단다. 나는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는다. 모두들 ‘혼인을 해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글을 한 꼭지씩 쓰는데, 옆지기 말마따나 누구라도 ‘혼인이란 무엇인가?’ 하는 밑앎 이야기를 다루려 애썼다고 느낀다. 다만, 편해문 님을 빼놓고는 ‘혼인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 구성진 이야기’에 눈길을 두려는 분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나같이 ‘오늘날 한국땅에서 얼마나 벅차고 힘들며 고단한 혼인인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 결혼을 하는 순간, 우린 종종 상대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송두리째 점유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고 믿는다. 심지어는 그의 과어와 미래까지도 모두 아내 혹은 남편이란 이름으로 온전히 컨트롤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착각하곤 한다 ..  (28쪽/목수정)


 책을 덮고 나서 옆지기 말을 거듭 곱씹는다. 열일곱 사람 어느 누구라도 ‘한국땅에서 혼인이란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밝히겠다며 힘썼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내 가슴으로 촉촉히 젖어드는 이야기는 좀처럼 찾아보지 못한다. 어느 이야기라도 답답하다. 어느 분 글이라도 갑갑하다.


.. 결혼 후 몇 번 이사를 다니다 보면,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서재, 아내의 서재가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이렇게 온몸으로 깨닫게 된다. 그것은 아예 존재하지조차 않는 방이었다. 여성은 남편과 함께 공동의 서재를 쓰기 때문에 집 안에 서재는 하나로 충분하며, 만일 두 개의 서재가 마련되어 있다면 그것은 둘 다 남편의 서재이거나 혹은 태어나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에 미리 만들어 놓은 아이의 방이었다 ..  (68∼69쪽/서윤영)


 열일곱 사람 가운데 ‘혼인을 하며 즐거이 살아간다’고 글을 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나마 편해문 님은 세 식구가 오붓하게 중동 여러 나라를 돌아보는 마실을 여러 달째 한다고 글을 쓴다.

 참 꿈 같다. 세 식구가 여러 달 나들이라니. 돈은 얼마나 있을까. 아이가 하나이니 단출하게 마실을 할 수 있겠지? 아이가 둘만 되어도 넋을 온통 사로잡아 도무지 어쩌지 못하겠는데. 아이가 셋이라면 그야말로 허둥지둥 더 복닥거리겠지. 넷이라면? 넷이라면 참 빠듯할는지 모르지만, 두 아이와 살아가건데, 넷부터는 첫째가 막내나 동생을 찬찬히 보살피도록 함께 살아가야 할 테니, 이럭저럭 짐은 좀 덜지 않으랴 생각한다. 그러나, 집에서 빨래기계 안 쓰고 아버지가 집일을 도맡는 우리 모습을 돌아본다면, 서른일곱에 둘째가 태어난 이 집에서 넷째까지 보려 한다면, 아이들 사이에 세 해는 틈을 주어야 하니까, 나는 마흔다섯 살까지도 기저귀를 빨며 보내야 한다.

 아, 기저귀 빨래란! 첫째 아이 밤오줌 가리기를 겨우 떼고 첫째 아이 기저귀 빨래에서 풀려났다고 생각할 무렵, 하루도 쉴 틈이 없이 새삼스레 둘째 아이 기저귀 빨래로 접어들어야 하던 일이란! 이레 남짓 첫째랑 둘째 기저귀를 빨래하느라 아주 손목 팔목 빠지던 일이란! 제발 밤에 잠 한 번 제대로 자자고 꿈꾸던 나날이란!

 머잖아 둘째 아이 젖떼기밥을 마련할 일을 헤아리면 집일은 도무지 끝날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집일이 조금이나마 줄 틈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옆지기하고 두 아이를 함께 낳아 살아오면서 ‘혼인은 뭐지?’ 하는 생각을 거의 못 했다. 그냥저냥 살아가는 사람이라서 생각을 안 하지 않는다. 참말 끝없는 집일을 건사하면서 하루하루 서로서로 사랑하며 살자고 다짐하기에도 눈알이 핑핑 돈다. 밤에 잠자리에 들며 오늘은 오늘대로 좋아하고, 이듬날은 새롭게 서로를 더 사랑할 수 있기를 빌며 눈을 감는다. 이듬날은 아이들과 더 예쁘게 말을 섞자고 다짐하며 눈을 감는다.


..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나 고학력에 비해서 아직도 우리 사회는 가정에서만은 봉건적인 여성의 역할을 강요한다. 고학력 여성군의 독신 비율이 늘어나는 이유도 우리 사회 결혼 제도의 모순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  (121쪽/오진희)


 나는 《결혼 전 물어야 할 한 가지》를 읽으면서 한 가지 궁금하다. 왜 이 책에 글을 쓴 열일곱 사람은 ‘집에서 하는 일’을 놓고는 아무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을까. 아니, 집에서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또렷하게 밝히면서 올바로 보여주는 글은 왜 하나도 없을까. 혼인하는 삶을 이야기하는 열일곱 사람 모두 ‘바깥에서 하는 일’과 ‘내 마음에 맞는 짝꿍이 있을 때에 꼭 법률 제도에 따라 예식을 올려 한 집에서 살을 섞어야 하는가’에만 눈길을 두면 되는가. 이만 한 글이라면 혼인 제도나 혼인 문제를 다 다루었다고 여길 만한가.

 여남 불평등이건 남녀 평등이건 대수롭지 않다고 느낀다. 사회가 불평등이건 평등이건 나 스스로 아름다이 살아가는 길이 가장 즐겁다고 느낀다. 나 스스로 아름다이 살아가면서 나와 함께 아름다이 어깨동무하는 길을 일굴 짝꿍을 사귀어 서로를 지키고 기대는 옆지기로 한삶을 돌보면 가장 따사로우리라 느낀다.

 먼저 서로 아끼고 사랑할 ‘좋은 보금자리’를 찾아서 오래오래 살아야 한다고 느낀다. 돈벌이에 사로잡히거나 돈벌이에 얽매이는 공해덩어리 도시가 아닌, 삶짓기에 걸맞거나 삶사랑에 알맞을 좋은 마을살이를 꿈꾸어야 한다고 느낀다. 어른인 두 사람부터 아름다이 살아가는 보금자리라면, 이 아름다이 살아가는 보금자리에서 태어날 아이들은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랄 수 있겠지.


.. 왕자라는 사내가 옳은 정신이 박힌 자라면 신데렐라가 부엌데기이든 무어시든 신데렐라의 현재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 참 남자들이 이렇게 어리석다. 한 세월 아무리 한 이불 덮고 자도 서로 해서는 안 될 이야기가 있고, 끝까지 지켜 줘야 할 무언가가 있다. 그런데 남자들이 이런 걸 잘 못한다 … 쉽게 말해 나무꾼은 선녀들을 염탐하던 한 짐승의 귀띔에 온통 마음이 빼앗겨 선녀의 옷을 훔치고, 그것을 빌미로 한 여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가둬 버리려는 파렴치한 짓을 서슴지 않았다 … 나무꾼은 아이를 셋이나 낳고 온갖 살림살이를 다 하며 사는 아내를 진정 사랑했던 것일까? 사랑했다면 아이를 하나 낳았을 때, 아니면 둘을 낳았을 때 서둘러 자신의 잘못을 고백했어야 했다 ..  (196, 200쪽/편해문)


 나는 생각한다. 혼인에 앞서 물을 한 가지라면 오직 ‘삶·사람·사랑’을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이 보살필 수 있느냐라고. 혼인에 앞서 물을 한 가지란, 내가 살아가며 나 스스로 묻고 이야기할 한 가지라고.

 저마다 살아가는 대로 사랑할 짝꿍을 만난다. 저마다 살아가는 대로 스스로 마음에 아로새길 책을 만난다. 저마다 살아가는 대로 아이하고 마주한다. 저마다 살아가는 대로 글을 쓰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그림을 그린다. 저마다 살아가는 대로 흙을 만지고 밥을 먹는다.

 내 하루 오늘 삶을 어떻게 얼마나 아끼느냐에 따라, 내 사랑과 혼인과 일놀이 모두 새삼스레 거듭난다고 느낀다. (4344.10.31.달.ㅎㄲㅅㄱ)


― 결혼 전 물어야 할 한 가지 (강수돌과 열여섯 사람 씀,샨티 펴냄,2011.10.25./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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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 - 그해, 내게 머문 순간들의 크로키, 개정판
한강 지음 / 열림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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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이야기, 작은 삶, 작은 책
 [책읽기 삶읽기 83] 한강,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열림원,2003)



 소설을 쓰는 한강 님이 쓴 산문을 모은 책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열림원,2003)을 읽는다. 책 판짜임은 자그마한데 빈자리 많고 글씨를 아주 큼지막하게 박아서 나온, 종이를 참 많이 잡아먹으면서 쪽수를 잔뜩 늘린 책을 읽는다.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은 원고지로 치면 몇 장쯤 될까. 300장이나 될까. 300장은 넘을까. ‘작은 이야기’를 억지스레 책 하나로 꾸민 셈 아닌가 싶다. 굳이 책 하나로 따로 묶을 까닭은 없을 텐데, 왜 이렇게 내야 했을까 궁금하다. 반드시 이 이야기를 책으로 내놓아 사람들하고 나누어야 한다고 여겼을까 아리송하다.

 원고지로 몇 장 안 된다면, 말 그대로 작은 책으로 꾸미면 된다. 쪽수는 더 적고 부피는 더 적으며 책값은 훨씬 눅은 작은 책으로 엮으면 된다. 한 권에 5000원이나 3000원 값을 붙이는 자그마한 책으로 만들면 된다. 뒷주머니에 꼽을 수 있게끔 작게 만들면 된다. ‘작은 이야기’라 해서 책으로 만들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작은 이야기’는 작은 이야기대로 ‘작은 책’으로 일굴 때에 참말 아름다우면서 뜻깊으니까.


.. 우리는 버스의 중간쯤에 나란히 앉았다. 그녀는 한국어에 대해 물었고 영어를 중고등학교에서 배운다고 내가 설명하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한테도 영어는 모국어가 아냐. 보호구역의 미션스쿨에서 배웠지. 내가 아파치말을 쓸 때마다 수녀들이 날 때렸어……. ‘노 아팟치!’ ‘노 아팟치!’ 하면서. 한 수녀는 내 새끼손가락을 세 번 분질렀어.” ..  (10쪽)


 한강 님이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에 담은 이야기는 한강 님 삶이라기보다, 한강 님이 미국에서 문학을 새롭게 배울 때에 만난 사람들한테서 ‘얻은 삶 이야기’이다. 스스로 더 깊이 깨닫거나 느끼거나 헤아린 이야기는 아니다. 둘레에서 저마다 다 달리 살아가는 사람들 다 다른 말과 넋과 꿈을 담아서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곰곰이 돌이킨다. 한강 님 스스로 일구는 이야기조차 아닌, 다른 사람 입을 거쳐 나온 이야기로 가득 채우는 책을 ‘한강 산문모음’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가.

 이렇게 보든 저렇게 보든,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은 책 하나로서 그닥 아름답지 못하다. 예쁘지 못한 모습으로 태어나고 만 책이다. 글쓴이 삶도, 출판사 뜻도, 썩 사랑스레 어우러지지 못한 채 태어났다고 느낀다.


..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9·11 때 파괴된 게 무역센터가 아니라 센트럴파크였다면 뉴욕사람들은 결코 극복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 거대한 초록빛 허파가 아니라면 이 도시는 견뎌낼 만한 공간이 못 돼요.” 캐런만이 쓸 수 있는 편지, 솔직하고 쓸쓸한 문장들 앞에 나는 잠시 막막해졌다 ..  (26쪽)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고 으레 말하는데, 옳게 말하자면, 이 말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는 터무니없는 소리이다. “꽃은 꽃 그대로 예쁘다” 하고 말해야 옳다.

 예쁘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은 모든 사람 그대로 예쁘다. 얼굴이 잘생기고 못생기고를 가르는 자리가 아니다. 사람은 사람이기에 이 결 그대로 예쁘다. 꽃은 꽃이기에 이 모습 그대로 예쁘다.

 책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어느 책이건 예쁘다. 한강 님 산문모음은 이 산문모음대로 예쁘다. 나는 오직 이 까닭 하나 때문에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을 장만해서 읽는다. 글쓴이를 더 좋아한다거나 출판사를 더 아낀다거나 문학을 더 즐긴다거나 하는 까닭이 아니다. 그예 예쁜 책 하나를 새로 만나 기쁘게 살아가고 싶기에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을 장만해서 읽는다.

 전라남도 고흥에서 일산을 거쳐 인천으로 갔다가 다시금 일산으로 갔다가는 고흥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을 금세 읽는다. 책은 인천에서 산다. 일산에서 시외버스 타러 전철을 먼저 타고 서울로 접어들 무렵 후루룩 읽고는 덮는다. 글이 짧다고 금세 읽어치우지는 않지만, 더디 읽을 수는 없는 책이다.


.. 외국어로 말하고 외국어로 읽고 외국어로 쓰는 생활. 밤과 아침이면 긴 일기와 편지를 썼지만 모국어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에는 부족했다. 모국어라는 것이 나에게 밥과 공기 같은 것이었다는 것을 나는 천천히 깨달아 갔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침대에 걸터앉아 어릴 때 부르던 노래들을 불러 보곤 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하고 부르다 보면 그 발음의 아름다움이 내 마음에 나직이 사무치는 것을 느꼈다 ..  (83쪽)


 다 읽은 책을 무릎에 얹는다. 고개를 든다. 메마른 낯빛 딱딱한 몸짓 어두운 옷빛이 감도는 서울 지하철을 함께 탄 내 몸을 돌아본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물결을 이루는 하나가 된 내 몸을 헤아린다. 시골사람 주제에 서울 지하철을 타고는 책 하나 읽은 내 몸을 곱씹는다.

 요새는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내 고무신 차림을 기웃기웃 훔쳐본다. 우리 보금자리 깃든 마을에서는 사람들 누구나 고무신을 신으니까 내 신차림을 기웃기웃 훔쳐볼 까닭이 없다. 면내나 읍내로만 나가도 초등학생이건 중학생이건 면사무소 일꾼이건 누구건, 아니 고등학교 교사이건 유치원 교사이건 고무신을 안 신는다. 흙을 밟고 일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고무신을 안 신는다. 서울처럼 커다란 도시에서는 고무신을 구경할 수 없다. 이 도시하고는 참 안 어울리는 고무신을 꿰고, 이 도시살이하고는 도무지 안 맞는 책읽기를 한답시고 가방에 책 여러 권 쟁여 바깥볼일을 보는 내 삶을 차근차근 되뇐다.

 그래, 사람들 스스로 흙을 안 밟으니까 고무신을 안 신는다. 아니, 예전에는 다들 짚신을 신었지. 흙을 밟는 사람이니까 짚신을 삼아서 신지. 흙을 안 밟을 뿐 아니라, 흙 있을 자리를 모두 시멘트로 밀고 아스팔트를 까니까 고무신마저 신을 수 없지. 값비싼 구두나 운동신을 신으려 할 테지. 아니, 구두나 운동신이 아니고서는 시멘트길과 아스팔트길을 어찌할 수 없겠지. 버스를 타거나 전철을 타거나 비행기를 타거나 구두가 어울리지 고무신이 어울리겠나. 외국출장을 가건 국내여행을 하건 등산신처럼 크고 두툼한 신을 꿰어야 걸맞지 고무신이 걸맞겠나.


.. 흙을 밟고 싶다, 나무들의 뼈대를 보고 마른 낙엽의 냄새를 맡고 싶다는 갈망에 시달리며, 나는 얼마간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이 공간을 혐오하게 되었다 … 그 삭막한 기다림 속에서 나는 수유리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 시내에서 돌아오면 맑은 공기가 코와 목구멍을 시원하게 뚫어 주었다. 마을버스로만 지하철과 연결되었으므로 교통은 불편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 내킬 때마다 흙을 밟을 수 있고 나무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나는 그곳에서 미처 깨닫지 못하고 지냈다 ..  (134쪽)


 한강 님 산문을 처음 읽으면서, 한창 읽는 동안, 마지막 쪽까지 읽어내어 덮고 난 다음, 한강 님은 어느 동네 어느 집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몹시 궁금하다. 왜 스스로 수유리를 떠나 흙을 안 밟아야 하는 땅에서 살아가며 푸념을 늘어놓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왜 스스로 가장 좋으며 가장 아름다우며 가장 사랑스러우며 가장 빛나며 가장 거룩하며 가장 즐거울 길을 스스로 안 걸으면서 푸념만 쌓는지 더없이 궁금하다.

 뒤늦게나마 흙을 밟을 수 있는 곳이 고마움인 줄 알았다면, 흙을 밟을 수 있는 데로 옮겨야 마땅하다. 흙을 밟으며 흙을 만져야 한다. 나무를 쓰다듬고 풀을 어루만져야 한다.

 한강 님 산문모음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을 읽은 사람 가운데 흙사랑을 하거나 흙삶을 일구려 하는 사람이 얼마쯤 될까 모르겠다. 한강 님이 미국에서 문학을 새롭게 배운 젊디젊은 날 발자취를 책으로 묶은 일도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으나, 한강 님이 ‘흙을 밟으며 느낀 사랑과 꿈과 믿음’을 따사로우면서 넉넉하게 글로 여민 이야기를 책으로 묶을 수 있으면 얼마나 멋지며 대단할까 하고 꿈을 꾼다. (4344.10.25.불.ㅎㄲㅅㄱ)


―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 (한강 글,열림원 펴냄,2003.8.14./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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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실이 - 김은미 에세이집
김은미 지음 / 해드림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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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고 아름다이 살아가고픈 꿈
 [책읽기 삶읽기 82] 김은미, 《꼬실이》(해드림,2010)



 우리 살붙이 새로 둥지를 틀 시골집을 계약합니다. 마을 어르신 네 분이 모여 지켜봅니다. 이튿날 아침, 등기이전을 하려고 집임자요 땅임자가 사는 동광양으로 버스를 타고 두 시간 길을 달립니다. 집임자요 땅임자인 분은 땅만 등기를 해 놓고 집은 등기를 해 놓지 않았습니다. 옛날부터 이와 같았는데 이제껏 몰랐답니다. 법무사를 찾아가서 서류를 마무리하려다가 이 대목에서 걸려, 집 등기를 하기 앞서 갖출 서류를 새로 만들어야 하기에 동광양에서 고흥읍으로 돌아오고, 도화면사무소를 찾아가며, 다시 고흥읍으로 갑니다. 아침 일곱 시에 시골마을에서 길을 나섰는데, 저녁 여덟 시가 넘어서 겨우 마을로 돌아옵니다.

 땅은 등기가 되었으니 집은 그냥 그대로 살아갈 수 있다 할 만합니다. 그러나, 내가 눈을 감거나 옆지기가 눈을 감은 다음, 이 집에서 우리 아이들이 고이 살아간다 할 때에, 또는 우리 아이들이 이 마을을 떠나 도시에서 살아간다 할 때에, 어버이 된 내가 집 등기를 제대로 마무리짓지 않으면 나중에 아이들이 또 골머리를 앓으면서 길에서 여러 날을 흘려야 합니다. 먼 뒷날을 곰곰이 그립니다. 아이들이 하루하루 슬프게 길에서 보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어버이인 내가 여러 날 길에서 보내자고 다짐합니다. 밥 먹을 틈 없이 버스에 택시에 군청에 면사무소에 설계사무실에 한전에 우체국에 몰아쳐야 하지만, 나한테 주어진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살붙이 살아가려는 도화면 신호리 동백마을로 돌아가는 군내버스를 타려다가, 고흥읍내 정류장 옆에 있는 조그마한 표파는곳 선간판을 봅니다. 저기에서 표를 끊는가 보구나. 맞돈 1900원을 내도 되지만 표를 끊고 싶습니다. 표파는곳에 섭니다. 안을 살며시 들여다보니 종이에 고무도장 찍은 표입니다. 표값은 1800원. 시외버스 타는 데에서 군내버스를 타면 1900원이고, 여기에서는 1800원입니다. 한 장을 끊습니다. 곧이어 석 장을 더 끊습니다. 석 장은 두고두고 간직하려고 끊습니다. 누리끼리한 똥종이에 고무도장으로 1800 숫자를 찍은 조그마한 종이표가 애틋해, 이 버스표 석 장을 예쁘게 돌보고 싶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스물이 되고 서른이 된 나이에는 이 종이표가 틀림없이 사라지고 없을 테니까, 그무렵 ‘얘들아 너희 아버지가 이 마을에 살려고 막 들어와서 바쁘게 돌아다닐 때까지 이곳에서는 이 종이표를 끊어 버스를 탔단다.’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요.


.. 식구 가운데 누구 하나 들어오지 않아도 굶는 꼬실이는 간밤 내내 자는 척, 사실은 기다리기만 했을 거다 … 어쩌다 아주 넓은 풀밭에 데려가면 그때야 사방을 뛰어다니느라고 잠시도 쉬지 않았지만 그럴 일이야 한 해 한 번이나 제대로 있을까 … 참 행복했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며칠이건 몇 달이건 혹은 운 좋게 몇 해건 우리에게 허락될 그동안을 더 사랑하고 더 행복하자 … 언젠가는 헤어지고 말 것이지만, 추억으로 힘을 얻게 될 것이니 ..  (24, 100, 192, 201쪽)


 시골집 계약서를 쓰고 나니 마을 어르신들이 “잘 왔네, 축하하이. 이제 한 동네 사람이 된 거여.” 하면서 활짝 웃습니다. “마을에 살면 마을에 맞는 행동도 해야 하고 힘들 수도 있지만, 우리 마을이 보기보다 인심이 더 좋으니 걱정할 것 없으이.” 하면서 막걸리를 사발에 따릅니다. 마을에서 할머니로서는 가장 젊다는 이장님네 예순다섯 할머님이 술안주로 단감을 깎습니다. 단감은 이장님에 마당 가장자리 돌울타리 곁에서 자라는 감나무한테서 얻습니다.

 4일과 9일은 고흥읍 장날입니다. 10월 14일 어제, 새벽 세 시부터 빗방울이 들었습니다. 아침 여섯 시 무렵에는 주룩주룩 비가 내립니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이 되고 보니, 마을 분들은 들일을 나가지 않는답니다. 모두들 일할 때와는 다른 정갈한 옷차림으로 갈아입고는 이른아침부터 읍내 나가는 버스를 탑니다. 들일을 쉬니 바깥 볼일을 봅니다. 마침 장날이기도 하고요.

 “우리 마늘이 임자 잘못 만나 불쌍하다 불쌍하다 했는데 비가 오긴 오네.” 나락 베기 앞서 밭자락 푸성귀를 거두고 한 차례 갈이를 하고 조금 있다가 마늘을 심습니다. 마늘을 심을 때에는 마을 할머님들이 서로 품앗이를 합니다. 젊은 날부터 함께 일하고 서로 돕습니다.


.. 예의니 도리니 하는 것으로 눈막음은 하지만 기실 병약하거나 늙은 사람들에 대해 하찮게 여기는 마음이 왜 없겠는가 … 사람들은 죄다 한마디씩 한다. “어머, 이제 늙었나 봐. 하긴 오래 살았지. 확실히 늙은 티가 확 나네.” 등등 주절거리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다. 누가 자기한테, 자기 어머니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면 기분이 어떨까. 짐승에게는 도대체 배려라는 게 없는 게 인간이라는 동물이다 … 잠시 토닥토닥 두들겨 주다가 소파에 재워 놓고 눈을 감았다. 어떤 세상일까. 해가 눈부신 건 질색을 하는 나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깜깜한 것이 하염없이 지속된다는 게 쉽게 견딜 일 아니다 … 간혹 나를 난감하게 하는 고집, 부릴 만하겠다 싶다 ..  (37, 45, 118쪽)


 이장님 댁에서 사흘 묵습니다. 우리 살붙이 지낼 집을 계약하기까지 묵도록 작은방을 내어주십니다. 밥도 ‘한 그릇 더 놓을’ 뿐이라면서 함께 먹습니다. “우린 시골이라 이렇게 풀만 먹어요.” 하면서 늘 드시는 밥차림 그대로 함께 먹습니다. 이 밥상을 옆지기가 함께 받으면 얼마나 좋아할까 떠올립니다.

 꼭 알맞춤한 작은 집, 작은 마당, 작은 밭과 논, 작은 일손, 작은 마을입니다. 먼 옛날, 또는 가까운 지난날, 이 마을에 빈집이 없이 가득했을 때에는 사람들이 얼마만큼 북적였을까요. 마을 모든 집이 가득 찼다 하더라도 웬만한 도시하고 견주면 그야말로 조그마한 마을 아니었을는지요. 예나 이제나 이 마을은 그저 작은 마을이요 작은 사람들이면서 작은 사랑이라고 느낍니다. 나와 우리 살붙이는 이 작은 마을에 또다른 작은 사람이 되면서 작은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으면 즐거우리라 느낍니다.

 많이 벌어 많이 쓸 까닭이 없어요. 넉넉히 벌어 넉넉히 쓸 까닭이 없어요.

 꿈을 꿉니다. 알맞게 벌어 알맞게 알맞게 누리면서 살아갈 꿈을 꿉니다. 즐겁게 일해서 즐겁게 일한 만큼 버는 그대로 우리 살붙이랑 이웃이랑 동무랑 나누면서 살아갈 꿈을 꿉니다.

 나부터 좋은 넋으로 좋은 말을 즐길 때에 우리 아이들 또한 좋은 넋으로 좋은 말을 즐길 수 있으리라 느끼면서 살아가는 꿈을 꿉니다.


.. 슬프기는 하지만 살아 있는 목숨은 계속 살아지고 다시 다른 대상을 사랑하게 된다. 결코 잊지는 않지만 헤어질 그 즉시처럼 인생이 자근자근 아프지는 않다. 그리고 새로운 대상을 사랑하게 되면, 그런 마음을 다시 품게 된 것은 먼저 보낸 그 아이와 사랑을 나누었기 때문이라고 굳게 믿는다 … 그 몫의 자리가 있고 그 몫의 사랑이 있다. 꼬실이가 죽고 나서 다른 개를 데려다 기르면서 꼬실이한테 미안한 마음을 품지는 않을 것이다. 최선을 다해서 사랑했으니까 … 특별한 능력을 타고났는지 계발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짐승들의 마음을 읽는다는 커뮤니케이터 아니더라도 나는 녀석의 마음을 대개 읽을 수 있다 ..  (128, 129, 151쪽)


 집살림을 하는 아주머니로 살아가는 김은미 님이 ‘막둥이 꼬실이’ 이야기를 적바림한 《꼬실이》(해드림,2010)를 읽습니다. 이야기책 《꼬실이》는 열여덟 나이까지 살아낸 꼬실이 마지막 삶을 돌아본 나날을 담습니다. 곁에서 사랑스러웠고 언제나 함께였던 막둥이가 조용하면서 얌전하게 눈을 감은 삶을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함께 살았으니 즐겁습니다. 서로 아꼈으니 사랑입니다. 나란히 밥을 먹고 잠을 잤으니 한식구입니다. 즐거운 삶에 따로 더 바랄 일이 없겠지요. 아끼는 사랑에 군더더기를 붙일 까닭이 없겠지요. 고운 한식구를 예쁘게 되새기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 새롭게 맞이할 수 있겠지요.


.. 그렇게 계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헌책을 떠올렸다. 닳은 겉장, 바뀌기 이전 맞춤법, 조악한 인쇄, 금방이라도 낱장이 흩어질 것만 같은 제본 등, 하지만 100년 가까운 시간이 그 안에 꼭꼭 박혀 있을 터였다. 아버지 젊은 날에는, 우리가 한창 자라던 중장년 시절에는 우리든 누구든 그 책을 들추고 읽었으면 하고 초조하신 적도 있었으리라. 이렇게 좋은 경험, 참고할 것, 깊은 생각이 많은데 왜 아무도 주의 깊게 읽으려 하지 않나 괘씸하기도 하셨을 게다. 그렇지만 그 한 해, 아버지는 당신 혼자 넘기고 되넘기면서도 충분히 만족하신 듯이 보였다 ..  (55쪽)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말이 퍽 널리 쓰입니다만, 나는 이러한 말이 퍼지는 일이 썩 달갑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으레 입으로만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욀 뿐, 정작 어느 누구도 스스로 작게 살아가려 하지 않거든요.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말하려면, 남녘땅 한강과 낙동강과 금강과 섬진강을 쇠삽날로 망가뜨리는 일을 하지 말아야지요. 작게 작게 살려야지요.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말하려면,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이루면 자동차나 전자제품을 얼마나 많이 팔아먹어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는가 따위를 읊지 말아야지요. 도시사람도 텃밭을 일구든 주말농장을 하든 스스로 흙을 만지고 아끼면서 내 먹을거리를 조금이나마 내 손으로 일구는 삶으로 바꾸어야지요.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말하려면, 자가용하고 헤어지거나 자가용을 좀 덜 타야지요.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야지요.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말하려면, 아파트를 이제부터라도 작게 지어야지요. 적은 돈으로도 살 만한 아파트를 짓고, 높직하게 올려세우지 말며, 알맞춤한 돈으로 살림집 마련해 알맞춤한 돈으로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를 보살피면서 내 나날을 알맞춤하게 누려야지요.


.. 의지하고 믿고 사랑하는 아름다움에 대해 우리는 함께 배워 왔지요 … 막둥이 보낸 지 겨우 하루 지났다. 장난감이 부서진 게 아니라 사랑하는 식구가 죽은 거다 ..  (209, 260쪽)


 작은 아름다움이 아닌 큰 아름다움을 바라면서, 아니 아름다움조차 아닌 큰 것만 바라면서 ‘아름다움’이라는 낱말을 뒤에 붙이는 일은 몹시 슬픕니다. 아름다움은 크거나 작다고 가르지 못합니다. 큰 아름다움이 없고 작은 아름다움 또한 없습니다. 아름다움은 그저 아름다움이에요.

 작은 삶이 없고 큰 삶이 없습니다. 작은 사랑 또한 없으며 큰 사랑 따로 없어요. 그런데, 참말 이 나라에서는 어쩔 수 없이 ‘아름다이 살아가고픈 꿈’을 밝히기 힘듭니다. 따로 ‘작고’라는 꾸밈말을 앞에 달아 ‘작고 아름다이 살아가고픈 꿈’을 밝혀야 하는데, 이렇게 밝혀도 ‘작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어깨동무하는 길을 찾기가 만만하지 않아요.

 《꼬실이》를 적바림한 김은미 님이 막둥이를 아끼면서 사랑한 나날 그대로, 저마다 제 고운 옆지기를 아끼면서 사랑하는 나날을 누릴 수 있기를 비손합니다. 나는 내 옆지기와 살붙이를 곱게 아끼면서 사랑하는 길을 내 몸과 마음을 함께 살찌우면서 걷자고 헤아립니다.

 군말 한 마디 붙입니다. 이야기책 《꼬실이》는 애틋하고 아름다운데, 책 짜임새와 엮음새는 영 허술합니다. 출판사 일꾼이 제대로 마음을 기울이지 못해 퍽 서운합니다. 부디 사랑을 읽고 사랑을 나누어 주셔요. (4344.10.15.흙.ㅎㄲㅅㄱ)


― 꼬실이 (김은미 글·사진,해드림 펴냄,2010.12.31./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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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 - 디즈니 만화로 가장한 미 제국주의의 야만
아리엘 도르프만 외 지음, 김성오 옮김 / 새물결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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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을 수 없는데 느끼거나 좋아할 수 없다
 [책읽기 삶읽기 81] 아리엘 도르프만·아르망 마텔라르, 《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새물결,2003)



 책을 읽습니다. 글을 읽습니다. 신문을 읽고 잡지를 읽습니다.

 옆지기 마음밭은 어떠할까 가만히 어림하면서 마음읽기를 해 봅니다. 내 아이들 몸은 어떠한가 곰곰이 되짚으면서 눈빛읽기를 해 봅니다.

 읽으려 하기 앞서 느낄 일이겠지요. 무언가 알려고 하기 앞서 사랑할 일이겠지요.

 마음이 어떠한가를 읽는다면, 이렇게 읽은 마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때에 좋을까요. 마음읽기는 하지만 마음맺기를 하지 않는다든지, 마음읽기는 실컷 하면서 마음나눔을 하지 않는다면 무슨 값이나 보람이 있을까요.

 아이들 눈빛은 읽지만 아이들 눈빛에 어리는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무슨 뜻이 있을는지요. 아이들 눈빛을 알아채거나 느끼면서 아이들하고 사이좋게 어우러지거나 아이들을 스스럼없이 좋아하지 못한다면 무슨 빛줄기가 있을는지요.

 책읽기는 하나도 쉬운 일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책읽기를 한다 할 때에는 내 손으로 쥔 책에서 얻은 앎조각이 흩어진 부스러기로 남지 않게끔 알뜰히 그러모아 내 삶을 새로 다스리면서 남달리 거듭나도록 힘써야 한다고 느낍니다. 책읽기를 하면서 내 삶을 읽습니다. 내 삶을 읽으면서 내 삶을 북돋웁니다.

 옆지기나 아이나 동무 마음을 읽는다면, 마음읽기로 그칠 노릇이 아니라, 옆지기나 아이나 동무 마음을 읽으며 맞아들인 이야기를 내 마음밭에서 찬찬히 아로새기면서 다 함께 아름다이 살아갈 길을 찾아 소매를 겉어붙이며 힘써야 한다고 느낍니다.

 더 즐거이 살아가려고 읽는 책이고 마음입니다. 더 참다이 살아내려고 읽는 책이요 마음입니다. 더 어여삐 얼크러지자며 읽는 책이면서 마음이에요.


.. 진정한 지식을 얻으려면 맹목적인 시각에 사로잡히거나 딱딱하고 과장된 전문용어를 동원해 호된 신고식을 치르도록 하는 것을 더이상 지지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지고하신 영혼의 사제들은 다름아니라 그러한 신고식을 통해 사고와 표현에 대한 배타적인 특권을 합법화하고 보호하려 들기 때문이다. 심지어 널리 팽배해 있는 오류들을 고발할 때조차 연구자들은 혼자만 아는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바로 자신들이 파괴하려고 하는 것과 똑같은 신비화에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 ..  (49쪽)


 읽을 수 있기에 느낍니다. 읽을 수 있기에 좋아합니다. 읽을 수 있기에 고개를 숙이면서 배웁니다. 읽을 수 있어 고개를 숙이면서 배우기에, 오늘 내가 살아가는 하루를 신나게 누리면서 밝은 꿈누리에 젖어듭니다.

 새벽나절 도랑물에 언손 녹이며 오줌기저귀를 빨래하는 동안 생각합니다. 아침나절 다시금 도랑물에 언손 부비며 똥기저귀를 빨래하는 내내 헤아립니다. 시월을 갓 넘긴 멧골자락 도랑물이 이러하다면 십일월이나 십이월은 훨씬 차갑습니다. 나는 오늘 하루만 이렇게 도랑 찬물에 기저귀를 빨며 손이 시리지만, 먼 옛날 사람들은 기저귀 빨래를 어떻게 해야 했을까 떠올립니다. 전쟁이 일어나 여느 사람들 보금자리가 쑥대밭이 되었을 때에도 갓난쟁이들은 똥을 누고 오줌을 눌밖에 없는데, 한국전쟁 같은 때에 기저귀 빨래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그려 봅니다.

 전쟁통에는 기저귀로 쓸 천이나마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전쟁통에는 빨래할 물이나마 얻을 만했는가 궁금합니다. 전쟁통에는 애써 빨래한 기저귀를 어느 만큼 넉넉히 말릴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전쟁이 터져 괴로운 나라가 지구별에 있습니다. 이 괴로운 나라에서는 집과 마을을 잃고 떠돌아야 하는 사람들이 퍽 많습니다. 이들은 난민수용소라는 이름이 붙은 데에 모입니다. 난민수용소를 돕는다고 할 때에는 으레 먹을거리와 옷가지를 갖다 주는데, 난민수용소에서 새로 태어나 자라는 갓난쟁이들은 기저귀를 어떻게 쓰는지 궁금합니다. 난민수용소에서는 한 번 쓰고 버리는 종이기저귀를 구호품으로 줄까요. 난민수용소 갓난쟁이들은 며칠에 한 번씩 몸을 씻을 수 있을까요.


.. 월트 디즈니를 그저 사업가로만 생각했다가는 큰코 다친다. 우리는 모두 영화와 시계, 우산, 음반, 비누, 흔들의자, 넥타이, 전등 등 그의 캐릭터들을 이용한 대규모 상품 판촉에 익숙해져 있다 … 디즈니는 캐릭터들에게서 진짜 과거를 제거하는 동시에 현재 처한 곤경과 관련해 자성할 기회를 주지 않음으로써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 유일한 관점을 빼앗버리는 것이다. 처음부터 줄곧 그가 빠져 있던 세계와 다른 세계는 전혀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 동등한 인물들 사이의 연대는 금지되어 있는 까닭에 이들에게 유일하게 남은 것이라고는 경쟁뿐이다 … 디즈니는 어린이를 해방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속이기 위해서 동물을 이용한다 … 디즈니에 의하면 저개발 국가 국민들이란 어린애 같기 때문에 그에 걸맞게 다루어야 하고, 이러한 규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엉덩이를 까내려 흠씬 두들겨 주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말을 들을 테니까! ..  (53, 71, 80, 89. 107쪽)


 나는 대통령 후보 지지율이 궁금하지 않습니다. 나는 경제성장율이 궁금하지 않습니다. 나는 땅값이라든지 무슨무슨 운동경기나 문화예술이 궁금하지 않습니다. 나는 주식시세표나 방송편성표가 궁금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아이들과 살붙이가 사랑스레 몸을 누여 살아갈 만한 보금자리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돌아보는 일이 반가우며 즐겁습니다. 집식구 웃음꽃과 이야기꽃이 반가우며 즐겁습니다. 추위가 천천히 찾아들면서 풀벌레 울음소리가 잦아드는 시골자락 서늘한 바람을 느끼는 나날이 반가우며 즐겁습니다.

 아마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시월로 접어들어 뚝 끊긴 풀벌레 울음소리 이야기는 다루지 않겠지요. 구월까지 풀벌레가 얼마나 어여삐 노래를 베풀었는가 하는 이야기는 다룰 마음이 없겠지요. 나뭇잎이 하나둘 지면서 멧자락과 들판에 가랑잎이 뒹구는 이야기는 다룰 사람이 없겠지요.

 신문을 펼치든 방송을 켜든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어느 시골자락 어느 시골 할매가 나락을 말릴 때에, 옆에서 함께 일하는 시골 할배하고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더라 하는 이야기가 신문에 실리지 않습니다. 가을이 무르익는 때에 멧새는 어떤 먹이를 좋아하는가 하는 이야기는 방송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저는 신문을 안 읽습니다. 신문을 못 믿습니다. 시골자락 할매 이야기와 멧골 멧새 이야기를 다루지 않거나 다룰 뜻이 없는 신문은 손사래칩니다. 연예인을 꿈꾸는 아이들이 목청 높이 부르는 노래는 나오지만, 풀벌레가 곱게 부르는 노래는 다루지 않는 방송은 보고 싶지 않으며, 집에 텔레비전을 들이지 않아요.


.. 어린이들은 도널드 덕과 스스로를 동일시한다. 도널드의 처지가 아이들 자신의 삶과 연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도널드를 읽거나 접하게 되는 방식 자체가 바로 도널드 덕이 온갖 현안을 해결하며 살아가는 방식을 모방하고 미리 보여주기 때문이다 … 이 세계에서는 나이가 더 많거나 더 부자라거나 혹은 더 아름답다는 단순한 사실이 권위를 부여한다. 그리고 운이 나쁜 캐릭터는 복종을 당연시한다 … 어느 쪽이든 모두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다. 즉 여자가 가진 유일한 힘은 전통적인 요부의 힘으로, 그녀는 교태라는 형태로 그것을 행사한다. 그리고 수동적이고 가정적인 본성을 벗어나는 어떠한 다른 역할도 허용되지 않는다 … 결국 디즈니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바로 겉모습이다 ..  (64, 75, 82, 196쪽)


 신문은 무슨 이야기를 담을 때에 신문이라 할 만할까요. 방송은 어떤 이야기를 다룰 때에 방송이라 할 만한가요. 신문이나 방송은 우리 삶과 사랑과 사람을 어느 만큼 차분히 짚으면서 살뜰히 보여주는가요.

 아리엘 도르프만 님과 아르망 마텔라르 님이 빚은 인문책 《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새물결,2003)를 읽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미국은 ‘도널드 덕’을 앞세워 신문과 방송을 거머쥔다고 합니다. ‘도널드 덕’을 바라보는 사람들 생각과 마음을 어느 한쪽으로 몰아세운다고 합니다. 길들이는 언론이요, 길들여지면서 눈이 머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도널드 덕’ 한 가지만 이야기하는데, ‘도널드 덕’뿐 아니라 ‘미키마우스’이든 ‘뽀로로’이든 ‘케로로’이든 이와 마찬가지예요. 모두들 사람들 눈과 마음과 생각과 몸을 길들입니다. 어느 한쪽으로 몰아세웁니다.


.. 유행의 첨단을 걷는 칠레의 부르주아 계급이 극도로 세련된 모델들에게 미니스커트와 맥시스커트, 핫팬츠를 입히고 번들거리는 부츠를 신겨서는 가난한 농촌 지역의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는 풍경’, 아니면 전원적인 풍경 속의 알라칼루페 인디오 부족 사이에 세워놓고 잡지 사진을 찍듯이, 미국에서 제작된 만화들은 도시 문명에 의해 파괴된 사회 조직 형태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강박관념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디즈니는 자신의 과거와 미래의 정복을 정당화함으로써 끊임없이 자기를 정화하는 정복자이다. 하지만 대도시의 이해를 대변하는 한편, 그러한 만큼 이 도시의 생산력 발전에 내재하는 여러 모순의 산물이기도 한 지배계급의 문화적 상부 구조가 어떻게 저개발 국가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또 그와 같은 인기를 획득하는 것일까? 도대체 디즈니가 왜 그토록 위협적일까? ..  (232쪽)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살아갈 때에는 신문이나 방송은 부질없습니다. 애써 신문을 펼치지 않아도 됩니다. 굳이 텔레비전을 켜지 않아도 됩니다. 따사로이 사랑하며 어깨동무하는 사람들 고운 이야기가 흙땅과 흙집에서 솔솔 피어납니다.

 흙을 밀거나 짓밟으며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덮은 도시에서는 신문이나 방송을 안 살필 수 없습니다. 흙이 없어 먹을거리를 거두지 못합니다. 흙이 없기에 돈을 얻어 돈으로 먹을거리를 장만해야 합니다. 돈에 따라 움직이고 돈에 따라 생각하며 돈에 따라 살아갑니다.

 시골에서도 온통 시멘트와 아스팔트가 깔리면, 시골자락 사람들도 신문을 펼치거나 방송을 켜기 마련입니다. 시멘트는 신문을 부르고, 아스팔트는 텔레비전을 찾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며 텃밭을 일굴 줄 안다면, 따로 신문이나 방송하고 사귀지 않습니다. 텃밭 흙을 사귀고 텃밭 푸성귀를 사랑할 테니까요.

 나는 흙과 바람과 물과 햇볕과 풀과 나무와 새와 벌레와 짐승을 사랑하는 조그마한 목숨붙이인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4344.10.5.물.ㅎㄲㅅㄱ)


― 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 (아리엘 도르프만·아르망 마텔라르 씀,김성오 옮김,새물결 펴냄,2003.6.20./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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