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헌화가 - 번역가 이종인의 책과 인생에 대한 따뜻한 기록
이종인 지음 / 즐거운상상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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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을 잘하는 길이 있다면
 [책읽기 삶읽기 95] 이종인, 《지하철 헌화가》(즐거운상상,2008)

 


 새로운 책이 태어납니다. 먼저 태어난 책이 즐거이 힘겨이 고마이 숨을 잇다가는 어느결에 조용히 숨을 거두면서 새책방 책꽂이에서 슬그머니 사라집니다. 새책방이라는 곳이 새로 나오는 책들을 모조리 건사하려고 크기를 키우는 일이 드뭅니다. 도서관이라는 데가 새로 나오는 책을 알뜰히 건사하겠다며 건물을 늘리는 일이 드뭅니다. 이 나라에서는 새로 나오는 책에 발맞추어 묵은 책들은 하나둘 자리를 내주며 어디론가 사라져야 합니다.

 

 내가 살아온 나날을 가만히 되짚습니다. 나는 우리 네 식구와 함께 살면서도 여러 차례 살림집을 옮겼습니다. 네 식구 살림집을 처음 옮기던 인천 골목동네에서는 더 시골스러운 골목집으로 옮겼고, 아예 시골로 옮긴 이듬해를 지나고 새해를 맞이한 다음에는, 더 깊다 하는 시골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이런 집옮기기를 살피자니, 시골스러운 살림도 시골스러운 살림이지만, 책을 건사하는 자리가 늘 더 넓어지고 커집니다.


.. 장모님은 내가 ‘믿을 만한 직장에 다니는 보통 남자’라는 점 하나만 보고서 딸을 나에게 줄 생각을 하셨다는 것이다 … 아내는 신혼 9개월 동안 도곡동의 영동아파트에서 단둘이 살던 시절을 제외하고는 고생의 연속이었다. 당시 건설회사를 다니던 나는 결혼 9개월 만에 사우디아라비아로 파견되어 3년 동안 헤어져 살아야 했다 … 내가 없는 동안 아내는 매운 시집살이를 했다. 그때 아내가 보낸 편지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생활을 견디게 해 준 큰 힘이었는데 ..  (32∼33쪽)


 앞으로 더 넓고 큰 데로 또 옮겨야 할 일은 없으리라 굳게 믿으며 오늘 네 식구 살아가는 보금자리를 아끼고 싶습니다. 새로 옮길 살림살이가 아니라, 튼튼히 뿌리내리면서 나중에 책자리를 새로 마련해서 늘리는 길을 꿈꾸고 싶습니다. 책에 따라 옮기는 삶이 아니라, 사람이 사랑스레 어우러지는 터에서 책이 나란히 어여삐 꿈날개를 펴도록 마음과 힘을 쏟고 싶어요.


.. 1994년 봄, 세 번째이자 마지막 직장인 한국 브리태니커를 그만두고 집에 돌아와 어머니와 아내에게 이제 번역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 가겠다고 말하자 두 사람은 아주 난감해 했다 … 결국 아내는 내가 전업 번역가 생활을 시작하는 것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아동복 가게를 내어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  (56∼57쪽)


 어머니나 아버지가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리면, 아이는 저절로 곁에서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립니다. 다만, 책만 읽는다면, 그저 책에만 파고든다면, 온통 책에만 마음을 빼앗긴다면, 아이들은 어버이 책읽기 삶을 기쁘게 받아안지 못해요. 삶이 있고 책이 있어야 해요. 삶으로 녹아드는 책읽기여야 해요. 삶을 알뜰히 꾸리면서 책을 즐기는 나날이어야 해요.

 

 맛나게 밥을 짓고 나서 배부른 몸을 쉬면서 책을 읽습니다. 신나게 옷을 빨래하고 널고 개고 옷장에 넣고 나서 기지개를 켜면서 책을 읽습니다. 아이들 먼저 재우고 나서 십 분쯤 눈에 힘을 주면서 책 몇 쪽 펼치며 같이 잠듭니다. 홀로 볼일 보러 도시로 살짝 다녀올 때에 버스길이나 기차길에서 책을 읽습니다.

 

 좋은 삶이기에 좋은 책을 살피며 좋은 이야기를 얻습니다. 좋은 이야기 얻은 좋은 책을 발판 삼아 내 하루를 좋은 나날이 되도록 더 좋은 힘을 냅니다.

 

 지식을 쌓으려고 책을 읽지 못합니다. 책을 읽는들 지식이 쌓이지 않습니다. 자격증을 따거나 시험에 붙거나 무엇무엇을 꾀하며 책을 읽는 사람이 많다지만, 막상 책을 읽어 자격증을 따거나 시험에 붙을 수 없어요. 책은 자격증도 시험문제도 돈도 자기계발도 아니거든요. 책은 오로지 책을 쓴 사람과 책을 읽는 사람들 삶을 빛내는 좋은 길동무이거든요.

 

 길동무로 느끼지 못한다면 책을 읽어 본들 삶이 나아지지 않아요. 길동무로 삼지 않는다면 책을 많이 파거나 다루거나 내거나 만지더라도 책으로 일구는 사랑씨앗이 무엇인지 알아채거나 느끼거나 받아들이지 못해요.

 

 책이 마음밥이 된다면, 내 마음을 따사로이 보듬으면서 내 삶을 더욱 힘차게 일구는 발판이 되기 때문이에요. 몸을 살찌우는 밥을 지나치게 먹거나 너무 덜 먹어서는 몸이 버티지 못하듯, 마음을 살찌우는 밥이라면 한켠으로 치우쳐서 먹으면 안 될 뿐 아니라, 마음밥을 먹으면 이렇게 먹은 대로 삶을 사랑스레 돌봐야지요. 마음을 살찌우는 밥이라면 어떠한 밥(책)을 찾아서 먹어야 할까요. 몸을 살찌우는 밥을 아무것이나 아무렇게나 장만해서 입에 쑤셔넣어도 되지 않겠지요. ‘자기계발’을 한다며 밥을 아무렇게나 먹어도 되나요. ‘자격증’이나 ‘시험문제’에 맞추어 아무 밥이나 함부로 먹어도 되나요.

 

 우리들은 누구나 돈이 아닌 삶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사랑할 수 있어야 해요. 돈이 아닌 삶을 아끼면서 마음을 살찌울 책을 손에 쥐어야 해요.


.. 이 책들을 읽을 때마다 우리 조상이 이 아름다운 글들을 전부 한글로 썼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을 억누르기가 어려웠다. 특히 문집총간에 들어 있는 수많은 명사들의 한문 문집을 보면서 이것들이 처음부터 한글로 씌어졌더라면 아니, 하다못해 번역이라도 되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  (141쪽)


 번역하는 이종인 님이 내놓은 산문책 《지하철 헌화가》(즐거운상상,2008)를 읽습니다. 번역하는 이야기랑, 이종인 님이 살아온 나날을 찬찬히 들려주는 이야기를 싣는 산문책입니다. 이종인 님은 대단한 사람이 아니요, 대단한 책을 옮긴 사람이 아닙니다. 이 산문책 또한 대단하지 않아요.

 

 대단한 글을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대단한 책 또한 없습니다. 저마다 아끼거나 사랑할 좋은 터전에서 좋은 삶을 누리면서 쓰는 글이고 엮는 책입니다. 나라밖에서 나온 이와 같은 ‘좋은 터전에서 좋은 삶을 누리면서 쓴 글’을 한글로 옮기는 일 또한 ‘더 좋은 일’이 아니라, 수수하면서 투박한 삶이에요.


.. 당시 서울 시내 헌책방이라면 어디든 다 가 보겠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우연히 중대 앞을 지나다가 허름한 헌책방 하나를 발견했다. 오래 전이라 서점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으나 아주 착하게 생긴 아주머니 한 분이 가게를 보고 있었다. 몇 권의 책을 고르니 아주머니가 내 눈치를 보면서 가격을 말하곤 너무 비싸게 부르지 않았느냐고 물어 보는 것이었다. 분명 싼값이었는데 나는 더 깎아 달라고 했던 것 같다 ..  (142∼143쪽)


 나는 《지하철 헌화가》를 읽으며 다른 어느 글보다 헌책방 나들이를 즐긴 삶을 찬찬히 읽습니다. 찬찬히 읽다가 몇 군데에서 아차 싶도록 아픕니다. 이종인 님은 헌책방에서 곧잘 에누리를 하는 분이었군요. 헌책방에서 책방 일꾼이 부르는 책값을 함부로 깎지 말자는 이야기를 붙이기도 하지만, 막상 이종인 님은 당신도 모르게 책값 에누리를 하기도 했다고 스스럼없이 털어놓습니다.

 

 누구나 이와 비슷해요. 헌책방에서 에누리 안 하며 기쁘게 책값을 고스란히 치르는 사람이란 아주아주 드물어요. 거의 없다시피 해요. 헌책방은 책을 싸게 사는 곳이 아니라, ‘어느 한 사람 손을 거쳐 어느 한 사람 집에서 빠져나온 책’을 사고파는 곳이에요. ‘어느 한 사람 손을 거쳤으되 어느 한 사람 집에 더는 머물 수 없는 책’이 흘러나와 이 책들을 고이 모시거나 섬기거나 다루면서 사고파는 헌책방이에요.


.. 외국어 실력이 곧 번역 실력은 아니다. 번역을 시작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오해하고 있는데 그런 사람일수록 자신의 번역 실력을 테스트 받는 것이 필요하다 ..  (59쪽)


 외국말을 잘한대서 번역을 잘할 수 없습니다. 거꾸로, 한국말을 잘한대서 국어교사나 국어학자 노릇을 잘한달 수 없어요. 더구나, 외국말 잘하고 한국말 잘하기에 번역이나 통역을 잘할 수 있을까요.

 

 나는 생각합니다. 번역이든 통역이든 하려면 말만 잘해서는 안 돼요. 사람으로서 됨됨이가 착하고 아름다울 수 있어야 해요.

 

 대통령은 아무나 할 수 없어요. 일하는 솜씨가 틀림없이 있어야 하고, 웬만큼 똑똑하기도 해야 할 테지만, 이보다 훨씬 더 대수로운 대목은 대통령 되려 하는 사람이 참말 착하고 아름다운가예요. 착하고 아름답지 않다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고, 공무원이 되어서도 안 되며, 교사가 되어서도 안 돼요.

 

 착하고 아름답지 않다면 어버이 노릇을 해서도 안 되며, 동무 구실조차 할 수 없으며, 장사꾼이 될 수도 없어요. 착하고 아름다울 때에 비로소 출판사 편집자 일을 합니다. 착하고 아름다울 때에 바야흐로 번역쟁이 일을 맡고, 만화쟁이가 되며, 노래쟁이 글쟁이 춤쟁이 사진쟁이 영화쟁이 같은 길을 걸어요. 무엇보다 온누리 지구별에서 더할 나위 없이 착하고 아름다운 넋이기에 흙을 만지며 흙에서 목숨을 거두는 일꾼으로 살아갈 수 있어요. (4345.1.8.해.ㅎㄲㅅㄱ)


― 지하철 헌화가 (이종인 글,즐거운상상 펴냄,2008.1.10./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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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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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아이 아줌마가 쓴 소설 읽기
 [책읽기 삶읽기 93] 김이설, 《환영》(자음과모음,2011)

 


 전라남도 고흥에서 처음 맞이하는 겨울은 따스합니다. 겨울이 이렇게 따스할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고맙습니다. 물이 꽁꽁 언다든지 눈이 펑펑 내려 하루에도 몇 차례씩 눈을 쓰느라 바쁘지 않아 고맙습니다. 올 사월까지 길가 눈을 쓰느라 손이 안 시린 날이 없었어요. 자가용 없이 걸어다니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시골버스 타는 우리한테는 찻길 눈쓸기를 할 까닭이 없지만, 택배 일꾼이 오가거나 웃집 사람들이 자동차 타고 오갈 때를 걱정하니까, 찻길 눈쓸기를 할밖에 없습니다.

 

 하루에 서너 차례 한두 시간 눈을 쓸면 코·귀·손·낯 얼마나 시린지. 그러나 이보다 눈쓸기를 하느라 집일할 겨를이 더 빠듯한 일이 고단합니다. 그나마 올 사월까지는 첫째 아이랑 옆지기 세 식구 살림이었기에 첫째 아이 빨래는 그닥 많지 않았어요. 다만, 이무렵 우리 멧골집 물이 언 나머지, 멧길 타고 올라가는 웃집에서 날마다 물을 길어다 쓰고 빨래랑 설거지도 웃집에서 했어요. 다섯 달 동안.

 

 지나고 보면 아득한 일이요, 지나고 생각하면 꿈 같은 일이며, 지나고 돌아보면 어쩜 그렇게 살아갈 수 있었나 싶습니다. 아마 어떻게든 살아내는 하루요, 힘들며 고단하다지만 어디부터 샘솟는지 모를 새 기운을 끌어내 견디는 나날인지 모릅니다.

 

 올여름까지 지낸 멧골집하고 견주면 따스한 겨울이지만, 고흥 시골마을 겨울도 겨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바람은 드세면서 차갑습니다. 아침에 똥을 눈 둘째 갓난쟁이 기저귀를 빨래하고 밤새 나온 오줌기저귀를 빨래해서 마당가 후박나무 빨래줄에 너는데, 손가락이 꽁꽁 업니다. 빨래줄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기저귀들은 금세 업니다. 아침이니까 이렇게 얼지만, 차츰 따뜻해지는 낮햇살을 받으면 스르르 녹으며 바로 마르겠지요. 어제도 그제도 그끄제도 이러했어요. 이른아침에는 빨래들이 죄다 얼어붙다가 낮하고 가까우면 스르르 녹으며 빨리 말라요. 낮에 빨래 한 차례 더 하면 해가 저 멧등성이에 가까울 무렵 다 마르고, 해가 떨어지기 앞서 빨래 한 차례 더 해서 어른들 두툼한 옷가지 물 안 떨어지게끔 말려서 방으로 들이면 잠자리에 들어 이듬날 일어날 무렵이면 보송보송 마릅니다.


.. 쌓인 눈을 잔뜩 퍼먹으면 이 갈증이 가라앉을까 … 거주하는 사람이 없어 버스 정류장 하나 없는 이곳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이 궁금했다. 이런 풍경 속에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혹은 몇 시간 뒤엉켜 관계를 하는 데 돈을 쓰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 일당 사만 원짜리가 한 시간에 십만 원도 벌 수 있었다 … 좋은 일인가. 생전 처음 보는 사내 앞에서 옷을 벗고 받는 돈이었다 …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뜨듯한 국물을 먹는 사람들은 풍요로워 보였다 … 주인 내외는 나 같은 아줌마는 없었다며 일당백이라며 추켜세웠다. 사람 하나 더 쓰자고, 이대로는 일 못 하겠다고 뻗대지 않게 하려는 수였다 ..  (10, 16, 59, 81, 113, 168쪽)


 두 아이와 살아가는 나날이란, 두 아이와 살아가지 않고서야 모릅니다. 세 아이와 살아가는 나날이라면 세 아이와 살아가지 않고서야 모를 테지요. 네 아이와 살아간다든지 다섯 아이와 살아가는 나날도 그래요. 이처럼 살아내지 않고서야 알 턱이 없어요.

 

 어림은 해 보겠지요. 아이 하나와 살아가면서 두 아이 살림살이를 어림해 보겠지요. 두 아이와 살아가면서 세 아이랑 네 아이 살림살이를 어림해 볼 테지요.

 

 우리 집 첫째는 돌이 지나고부터 낮에 기저귀를 풀며 오줌 누이기를 시켰습니다. 두 달 즈음 이곳저곳 스스로 못 참고 오줌이나 똥을 누며 집일이 잔뜩 늘어났지만, 이렇게 뒷치레를 하면서 아이는 스스로 오줌가리기와 똥가리기를 익혔어요. 아이는 제 어머니 아버지하고 하루 내내 함께 붙어서 살아가고, 제 어버이를 지켜보고, 제 집식구를 바라보면서 제 삶과 버릇과 꿈을 가다듬습니다.

 

 세 살에 아직 낮기저귀를 못 떼고, 너덧 살에 아직 밤기저귀를 못 떼며, 대여섯 살까지 기저귀를 채운다면, 이 기저귀도 종이기저귀라면, 이 아이가 어떤 어버이하고 어떤 삶을 꾸리는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이 아이는 이 아이대로, 이 아이 어버이는 이 아이 어버이대로 얼마나 즐겁거나 신나거나 기쁘거나 좋거나 아름답다 할 만한 삶을 일구는가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우리 집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우리 집 두 아이를 바라보고, 이 두 아이와 같이 먹고 자며 일어나는 옆지기를 바라봅니다. 우리들은 무슨 꿈을 키우면서 무슨 이야기를 꽃피우는 사람일까요. 우리들은 이 작은 보금자리를 어떻게 돌보면서 우리들 마음결을 어찌저찌 보살필 수 있을까요.


.. 자기는 나쁜 사장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앙연히 줘야 할 돈인데 왜 제가 생색을 내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 남은 반찬만 갖다 버릴 것이 아니라, 필요 없는 식구도 갖다 버렸으면 싶었다 … 나는 내 안의 화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몰랐다 … 내가 들어오지 않았는데도 불을 끄고 잤단 말이지 … 엄마는 어디서 살아? 뭐 하고 살아? 자식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기는 해? 이런 걸 물어 보려면 어떡해야 하는지 나는 방법을 몰랐다 … 몇 년 만에 만난 모녀 사이인데, 할 말이 참 없었다. 하고 싶은 말들보다는 하지 말아야 할 말들만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  (26, 46, 97, 104, 143, 170쪽)


 김이설 님 소설 《환영》(자음과모음,2011)을 읽습니다. 두 아이와 옆지기하고 살아가는 김이설 님이 써낸 소설을 읽습니다. 김이설 님은 어떤 삶을 스스로 돌보고 두 아이와 일구며 옆지기랑 사랑하면서 소설을 쓸까요. 김이설 님 소설에는 김이설 님 삶이 어떻게 스며들어 빛날까요.

 

 《환영》을 펼쳐 차근차근 읽는 동안 ‘오늘 두 아이 아버지로 살아가는 내가 중학생 때부터 읽은 소설을 쓴 어른’은 누구였는가 생각합니다. 1970∼80년대에 나온 한국소설은, 1950∼60년대에 나온 한국소설은, 또 1930∼40년대에 나온 한국소설은 으레 ‘어떤 삶을 어디에서 어떻게 일구는 어른’이 썼는가 곱씹습니다.

 

 이 나라에서 아줌마가 소설을 쓴 지는 얼마나 되었을까요. 이 나라에서 아줌마가 아줌마 눈길과 생각과 삶과 마음과 사랑과 믿음과 꿈으로 소설을 써서 내놓은 지는 얼마나 되었으려나요.

 

 1970년대에 소설을 쓰는 아줌마라면 어떤 삶을 일구었을까요. 1950년대에 소설을 쓰는 아줌마라면 어떤 꿈을 꾸었을까요. 1930년대에 소설을 쓰는 아줌마는 있었을까요.


.. 왜 만날 나만 돈을 내놨을까 … 떡이 되도록 취한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뻔했다 … 아버지는 자식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대상은 오로지 엄마였다 … 뭘 봐요. 돈 없다는 사람 처음 봅니까? ..  (106, 108, 163쪽)


 문학·문학성·문학정신이란 무엇인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삶·삶빛·살림살이를 생각하고 싶습니다. 백 사람이면 아흔아홉 사람이 아니라 백 사람 모두 도시에서 살아가려 하는 오늘날, 만 사람이면 겨우 한두 사람 시골에서 살까 말까 한 요즈음, 한국문학과 한국소설에서 담아내며 나눌 이야기라면 어떠한 삶 어떠한 꿈 어떠한 빛깔이 될까를 생각하고 싶습니다.

 

 우리 집 네 살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기 무섭게 신나게 뛰고 달리며 노래하고 춤춥니다. 쉴 사이 없이 종알거리고 떠들며 꽁알꽁알합니다. 이 아이한테 어떤 밥을 먹여야 좋을까 생각합니다. 이 아이랑 밥을 먹고 나서 무슨 놀이를 즐길까 생각합니다. 이 아이를 놀게 하면서 어버이는 무슨 일을 붙잡으면 좋을까 생각합니다. 바깥은 바람이 찬데 집에서든 밖에서든 치마만 입겠다는 이 아이를 어찌 달래야 좋을까 생각합니다.


.. 예쁘고 좋은 걸 보면 아이부터 생각났다 … 하루가 너무 길었다. 아이의 살냄새가 그리웠다 … 희망이 있다는 사실이 희망이었다 …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첫 한 발짝 떼는 일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  (15, 22, 30, 187쪽)


 소설책 《환영》을 덮습니다. 꿈을 꾸는 꿈으로 살아가는 실마리에서 빛을 살그머니 붙잡으며 눈물꽃 피우는 사람 하루살이를 떠올립니다. 왕백숙집 아줌마가 이럭저럭 눈물겹게 모은 돈으로 ‘버스 정류장 하나 없’다 싶은 깊은 시골마을에 작은 보금자리랑 논밭을 마련해 보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꿈꿉니다. ‘하루에 버스 몇 대 겨우 지나가는’ 시골마을에 조그마한 살림집이랑 논밭을 장만해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꿈꿉니다. 더는 물가에 얽히지 않으면서 시원한 샘물을 마시며 꿈을 꾸는 꿈으로 살림을 돌볼 수 있는 앞날이 보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거듭 꿈을 꿉니다. 못난쟁이투성이 살붙이라 하지만 돈을 벌어 돈을 쓰고 돈으로 꾸리는 살림에서 벗어나 사랑을 벌어 사랑을 나누는 살림을 헤아릴 수 있으면, 이리하여 그림자 같은 나날이 아니요, 서로 반가운 이야기꽃 피우는 나날이라면, 더없이 좋을 텐데 하고 꿈꿉니다.

 

 글을 읽으며 “엄마한테 전화를 받다”라든지 “엄마한테 들었다” 같은 말투가 자주 보입니다. 이때에는 ‘-한테’가 아니라 ‘-한테서’ 토씨를 붙여, “엄마한테서 전화를 받다”와 “엄마한테서 들었다”처럼 적어야 올발라요. 제가 읽은 책은 5쇄인데 모두 ‘-한테’로만 나왔기에, 이 소설을 읽을 분들을 생각해서 군말 한 마디 붙입니다. (4344.12.26.달.ㅎㄲㅅㄱ)


― 환영 (김이설 글,자음과모음 펴냄,2011.6.17./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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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패러독스 - 극단적인 남자들, 재능 있는 여자들, 그리고 진정한 성 차이
수전 핀커 지음, 하정희 옮김 / 숲속여우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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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가 할 일, 여자가 사랑할 삶
 [책읽기 삶읽기 87] 수전 핀커, 《성의 패러독스》(숲속여우비,2011)

 


 집식구 옷가지를 빨래하면서 언제나 좋다고 여겼습니다. 빨래를 하면서 온갖 꿈나라를 마음껏 누빌 수 있거든요. 그런데 내 마음 갉아먹는 생각이 하나둘 스며들던 어느 때부터인가 빨래를 하면서 꿈나라 누비기하고 동떨어집니다. 빨래를 복복박박 하면서 꿈나라를 누비지 못한다면, 이 일은 무척 고됩니다. 손가락과 손바닥이 따갑고 물을 만지면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춥습니다.

 

 어린 나날 어머니 도마질 소리가 아주 듣기 좋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어느 노래보다 부드러운 소리요 결이며 무늬라고 여겼습니다. 늘 듣고 으레 듣는 도마질 소리이고, 냄비 보글보글 끓는 소리이며, 밥이 익는 냄새였기에, 이 소리와 냄새와 결이 내 몸으로 스며들면서 ‘집에서 일하며 나누는 즐거움’을 헤아릴 수 있었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이러한 느낌을 아름다이 꽃피우는 생각을 어디로 뻗고 어떻게 이으면서 내 삶을 일구어야 할까 하는 데까지는 생각을 가누지 못했어요.

 

 바늘에 실을 꿰어 튿어진 데를 기우자면 한 시간은 너끈히 들여야 합니다. 올 한 해 동안 바늘을 손에 쥔 적이 있었나 곰곰이 되새깁니다. 글쎄, 없지 않았나. 바느질이든 다른 집일이든 노상 품을 들이기 마련입니다. 품을 들이지 않아도 될 집일은 없습니다. 품을 들이니 힘든 집일이 아닙니다. 기꺼이 품을 들일 만하기에 집일이요, 신나게 품을 들이면서 다 같이 아름다울 수 있기에 집살림이에요. 튿어진 데를 기우는 일을 면내 빨래집에 맡기기만 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저희 옷가지를 손수 바느질하며 기우는 일을 보지도 겪지도 느끼지도 알지도 못합니다.

 

 사랑스럽게 살아가고 싶으니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삶이니 마음을 찬찬히 기울입니다. 마음을 찬찬히 기울이니 날마다 조금씩 힘을 들입니다. 꼭 이것을 하고 반드시 저것을 해야 하는 일이 아닙니다. 이것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저것을 신나게 누리는 일입니다.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면, 나로서는 이것도 저것도 기쁘거나 신나게 맞아들이지 못했구나 싶습니다. 나는 왜 기쁜 실마리를 살피지 못했을까요. 나는 왜 신나는 실타래를 붙잡지 않았을까요.


.. 어렸을 때 학습, 언어, 대인관계 능력과 자제심의 면에서 앞서던 여자아이들이 반드시 최고 지위나 최고의 수입을 보장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었다. 여자들은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 여자들에게 ‘남성적’ 선택을 하도록 권하는 것은 그녀들에게 단순히 돈을 더 많이 벌라고 부추기는 것보다 더 치명적이다 ..  (14, 362쪽)


 내가 하고픈 대로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요. 내가 꿈꾸고픈 대로 꿈꾸는 사람일까요. 내가 살고픈 대로 삶을 짓는 사람일까요. 내가 아끼고픈 대로 아끼는 사람일까요.

 

 하루 스물네 시간에 걸쳐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많지 않으나 아주 적지 않습니다. 날마다 알맞게 누리면 되고, 날마다 즐거이 받아들이면 됩니다. 오늘 몫을 오늘 하루만큼 짊어지면서 예쁘게 건사하면 됩니다. 살붙이 먹을 밥을 어떻게 차려야 좋을까 헤아리고, 밥을 다 먹고 홀가분하게 치워 갈무리하면 되며, 이불을 털고 방바닥을 훔치면 됩니다. 다 마른 옷가지를 개고, 새로 나온 빨래를 하면 됩니다.

 

 언제나처럼 따스한 기운 흩뿌리며 뜨는 햇살을 느낍니다. 언제나처럼 서늘한 밤바람 흐르며 지는 어스름을 느낍니다. 밤이 되기에 달과 별을 올려다봅니다. 한낮이 되기에 가장 따뜻한 볕을 온몸으로 받습니다.

 

 할 일을 생각합니다. 할 만한 일을 생각합니다. 가만히 방바닥에 드러누워 발베개를 한 채 생각해도 좋습니다. 아침에 깨어난 아이를 배에 눕히고 함께 생각에 젖어도 좋습니다. 아이와 함께 이불을 걷어 마당에서 함께 터는 동안 생각에 잠겨도 좋습니다. 아이를 곁에 두고 빨래를 하며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생각을 기울여도 좋습니다.


.. 남성은 공격적인 수단을 이용해서 경쟁자를 제치려 하고, 계급서열에서 자신의 위치를 주장하며, 그 위치를 지키려는 성향이 여자에 비해 더 강하다. 분노, 질투, 공격적인 언어 사용에는 남녀 차이가 없는 반면에, 도둑질과 폭력과 전쟁을 통해 주도권을 잡는 일은 대대로 남자들의 영역이었다 … 어린 남자아이들은 일찌감치 태생적으로 여자아이들보다 충동을 억제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이렇듯 충동을 억제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보다 교실 안에서 더 많이 돌아다니고, 부주의하며, 충동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크게 외치고, 다른 아이들을 끊임없이 앞서려고 다투는 과정에서 상대방을 괴롭히는 것이다 … 경쟁과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표준 독신남성의 접근방식에 맞춰서 설계된 직장과 근무일정은 타고난 지성과 높은 교육수준과 훌륭한 업적을 이루어낸 많은 여자들의 의욕을 꺾는다 ..  (52, 53, 356쪽)


 살아온 날을 되짚으면서 살아갈 날을 톺아봅니다. 오늘까지 보낸 삶을 헤아리면서 앞으로 이룰 삶을 생각합니다. 오늘까지 예쁘게 살았으면 앞으로는 얼마나 어떻게 예쁜 삶이 되도록 꾸릴까를 생각합니다. 오늘까지 그닥 예쁘지 않게 살았으면 이제부터 예쁜 삶이 되도록 어떻게 건사해야 즐거울까를 생각합니다.

 

 내가 내 삶을 좋게 누릴 때에 좋은 손길로 좋은 밥을 짓습니다. 내가 내 일을 좋게 붙잡을 때에 좋은 눈길로 좋은 꿈을 짓습니다. 내가 내 말을 좋게 다스릴 때에 좋은 마음길로 좋은 이야기를 짓습니다.

 

 수전 핀커 님이 지은 책 《성의 패러독스》(숲속여우비,2011)를 읽습니다. 남성은 어떤 사람이고 여성은 어떤 사람인가를 찬찬히 밝히는 이야기책을 읽습니다. 남성이 사랑하는 삶과 여성이 사랑하는 삶은 서로 어떠한가를 곰곰이 돌아보는 이야기책을 읽습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똑같이 사람입니다. 다만, 사람이라는 테두리에서는 같으나, 여성과 남성이라는 테두리에서는 달라요. 여성과 남성 또한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라는 삶자리에서 달라요. 한식구라 하지만, 태어난 자리와 마주하는 이웃에 따라 다른 삶길을 걸어요.


.. 그녀들은 엄청난 업무시간에 진저리를 쳤고, 구성원 변호사가 되거나 또는 샌드러처럼 일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기 위해 기업의 법률고문으로 옮긴 다음에도 여전히 무자비할 정도로 과중한 업무를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서 결국은 일을 그만두었다 … 높은 수준의 일부 직업들이 요구하는 일에 대한 집중은 고용인들에게 마치 진공 상태에서 일하는 것처럼 행동하기를 요구한다. 최정상의 단계에서는 일이 다른 모든 관심사를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 만일 직업의 성공이 제1 목표라면 이것은 아무런 불협화음도 만들어 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목표가 여러 개라면 협상이 필요하다. 만일 여자들이 덜 극단적인 직업이나 사회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한다면, 그녀들은 자신이 가진 우선권을 적용하면서 삶에 대한 통제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녀들의 소득을 줄일지 모르지만 만족감은 높일 수 있다 ..  (219, 250쪽)


 학교에서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앞으로 찾을 일거리를 다르게 가르칩니다. 학교에서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학교에서 다르게 배우고 다르게 생각하도록 이끕니다. 학교에서 남학생한테 밥하기와 집일과 아이돌보기를 알뜰살뜰 가르치지 않습니다. 대학교에서 남·녀학생 모두한테 집일과 집살림을 요모조모 일러 주지 않습니다. 초등학교에서 남·녀 아이들 누구한테나 바느질과 뜨개질과 호미질과 낫질을 제대로 보여주거나 느끼도록 거들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학교에 앞서 집부터 사내랑 가시내를 따로 가릅니다. 사내와 가시내한테 아름다운 삶과 사랑과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기 앞서 계급과 울타리를 높이 쌓고 말아요.

 

 아무래도, 새로 아이들을 낳은 어른들부터 어릴 적 사랑스럽고 따사로우며 너그러운 삶을 누리지 못한 탓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른들부터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삶으로 이끄는 어른이 없이 ‘남자이니까’와 ‘여자이니까’라는 굴레에 젖어들어야 했을 수 있어요. 사랑해야 할 삶과 사랑할 만한 사람을 어여삐 만나지 못한 탓일 수 있어요.


.. 그때 나는 도시 근교에서 중산층으로 사는 데 필요한 생활비를 벌려면 어떤 노동을 해야 하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수 년을 길에서 보낸 덕분에 세 아이를 대학에 보내고, 아내를 대학원에 보냈으며, 자신도 성공적으로 법조계로 전업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직업은 외롭고 육체적으로 지치는 일이었으며, 그 당시의 많은 직장 풍경이 그랬듯이 99퍼센트가 남자들이었다 … 하지만 나는 여자들이 우리 아버지가 수 년 동안 몸담았던 그런 종류의 일은 절대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버지의 수입은 다섯 식구를 부양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옷가방을 나르고 혼자 떠돌아다니면서 가족과 친구를 거의 만나지 못하는 일을 여자들이 하려고 할까? … 더 적은 시간을 일하기로 선택한다거나 더 만족스럽지만 임금은 더 적은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비록 그 때문에 임금 격차가 벌어진다고 해도, 여자들이 성적 편견의 희생자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달리 한번 생각해 보자. 여자들의 직업과 근무시간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사회는 평등한 기회의 귀감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  (8, 11∼12, 354쪽)


 나는 우리 집 아이들이 사랑스럽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과 함께 사랑스러운 하루를 날마다 새롭게 맞아들이고 싶습니다. 나는 우리 집 아이들이 따스한 손길과 눈길과 마음길로 저희 삶을 일굴 수 있기를 꿈꿉니다. 이리하여 나는 아이들과 나란히 좋은 꿈과 생각으로 나날이 기쁘게 맞이하고 싶습니다.

 

 내가 보는 좋은 햇살은 아이들이 보는 좋은 햇살입니다. 내가 마시는 싱그러운 물은 아이들이 마시는 싱그러운 물입니다. 내가 쓰다듬는 보드라운 억새풀은 아이들이 쓰다듬는 보드라운 억새풀입니다. 내가 지내는 따사로운 보금자리는 아이들이 지낼 따사로운 보금자리예요.

 

 어버이로서 집숲을 가꾸면서 집마당을 살뜰히 돌보면, 어버이부터 즐겁고, 이 즐거운 터전에서 아이들이 즐거이 꿈을 꿀 수 있습니다. 어버이로서 맑고 밝게 노래를 부르면, 어버이부터 신나며, 이 맑고 밝은 노래를 듣는 아이들은 예쁘게 노래를 누릴 수 있습니다.

 

 《성의 패러독스》는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가는 힘이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하는 빛줄기를 곰곰이 파헤치는 이야기책입니다. (4344.12.19.달.ㅎㄲㅅㄱ)


― 성의 패러독스 (수전 핀커 씀,하정희 옮김,숲속여우비 펴냄,2011.4.21./1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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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없는 사람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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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서 여든두 해를 살았기에
 [책읽기 삶읽기 90] 커트 보네커트, 《나라 없는 사람》(문학동네,2007)

 


 커트 보네커트라는 분이 쓴 《나라 없는 사람》(문학동네,2007)을 읽었습니다. 서울 경복궁 옆에 있는 ‘사진위주 류가헌갤러리’에서 열리는 사진책잔치(포토북페어)에 사진책 이야기를 들려주러 마실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디긴 길에 읽었습니다.

 

 전라남도 고흥 시골마을에서 서울까지는 참 멉니다. 그런데, 서울 한복판 경복궁 곁 사진전시관에서 시골마을 두 아이 아버지를 불러 줍니다. 서울이나 수도권에 날고 기는 사진쟁이와 사진비평꾼이 꽤 있을 텐데, 애써 머나먼 곳에 있는 저를 불러 줍니다.

 

 내가 사진책잔치 강사로 이야기꽃을 피울 만한가는 나부터 스스로 헤아리지 않습니다. 나는 나한테서 사진책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나는 나한테서 집안일을 꾸리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이야기를 펼칩니다. 잘나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못나서 이야기를 못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저마다 살아가는 결에 따라 이야기를 할 뿐입니다.

 

 곧,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착한 결이 살아숨쉬는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그러니까, 얄궂게 겉치레에 얽매이는 사람이라면 얄궂게 겉치레에 얽매이는 결이 넘치는 이야기를 흩뿌립니다.

 

 하룻밤 서울에서 자고 시골집으로 돌아오느라 고속버스와 고속기차에서 열 시간 남짓 시달렸는데, 시골집으로 돌아와 며칠이 지나도록 몸이 풀리지 않습니다. 내가 내 몸을 한결 따사로이 돌보지 못하니까 이렇게 몸을 추스르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그래, 나부터 내 삶을 더 사랑해야 하고, 나 스스로 내 삶을 알뜰히 아껴야 합니다. 산문책 《나라 없는 사람》은 바로 이러한 얘기, 이른바 커트 보네커트라는 사람이 미국땅에서 여든두 해를 살아오며 스스로 부딪히거나 부대끼거나 복닥인 이야기를 고스란히 들려줘요.


.. 내가 보기에 진화는 엉터리다. 인간은 정말로 한심한 실패작이다. 우리는 은하계 전체에서 유일하게 생명이 살 수 있는 이 친절한 행성을 교통수단이라는 야단법석으로 한 세기 만에 완전히 망가뜨렸다 … 당신의 차에 기름을 조금만 넣으면 시속 백 마일로 달리면서 이웃집 개를 깔아뭉갠 다음, 대기권을 찢어발길 수 있다 … 한때 나는 코카인보다 더 강력한 물질에 중독된 적이 있다. 처음으로 운전면허증을 땄을 때였다. 다들 비켜라, 보네거트가 간다! … 내가 생각하는 진실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중독 사실을 부인하는 중증의 화석연료 중독자다 ..  (19, 49, 50쪽)


 1922년에 태어나 2007년에 숨을 거두었다는 커트 보네커트 님입니다. 《나라 없는 사람》에서는 당신이 태어나 자란 나라가 미국이라 하지만, 이 미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넋없고 얼없으며 사랑없는가를 차츰 깨달았다고 밝힙니다. 커트 보네커트 님으로서는 스물여덟 나이에 이러한 글을 써서 이만 한 책을 내지는 못하겠지요. 서른여덟 나이에도, 마흔여덟 나이에도, 예순여덟이나 일흔여덟 나이에도 《나라 없는 사람》이라는 책을 쓸 수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꼭 여든둘이라는 나이에 이르러 이 책 하나 빚을 수 있었구나 싶어요.

 

 유럽나라끼리 벌인 싸움판에서 포로로 붙들려 드레스덴이라는 데에 있었다 하지만, 베트남전쟁이 일어나기 앞서 숨을 거둔 커트 보네커트 님이라면 《나라 없는 사람》을 쓸 수 없습니다. 베트남전쟁을 겪었을지라도 미국이 이라크로 쳐들어가는 일을 바라볼 수 없었다면 《나라 없는 사람》을 내놓을 수 없습니다.

 

 좋은 일 궂은 일 기쁜 일 슬픈 일 아름다운 일 고단한 일 두루 차근차근 맛보며 여든두 해를 꿋꿋하게 걸었기에 《나라 없는 사람》을 쓸 수 있어요. 아름답게 살아가는 한 사람 발자국을 곰곰이 돌아볼 줄 안다면 《나라 없는 사람》을 내놓을 수 있어요.


.. 아우슈비츠의 참상도 알지만, 대학살이란 아주 짧은 시간에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갑작스러운 사건이다. 1945년 2월 13일 드레스덴에서는 약 십삼만오천 명의 사람이 영국군의 폭격으로 단 하룻밤 사이에 사라졌다 … 소이탄을 퍼부어 도시 하나를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려는 군사적 실험이었다 … 베트남전쟁이 나를 비롯한 많은 작가들에게 자유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베트남전쟁을 통해 우리의 지도력과 동기가 아주 추잡하고 본질적으로 멍청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야 우리는 역사상 최악의 인종인 나치에게 저질렀던 우리 자신의 추악한 행동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 베트남전쟁은 백만장자들을 억만장자로 만들었다. 오늘날의 전쟁은 억만장자들을 조만장자로 만들고 있다 ..  (26, 28, 70쪽)


 글은 누구나 씁니다. 사진은 누구나 찍습니다. 그림은 누구나 그립니다. 손전화로 전화를 걸듯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자가용 운전대를 붙잡듯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셈틀을 켜서 인터넷을 누비듯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손전화를 다루지 않을 때에 글을 씁니다. 자가용을 버릴 때에 사진을 찍습니다. 셈틀하고 등질 때에 그림을 그립니다.

 

 사랑을 하면 돈을 잊습니다. 살림을 꾸리면 정치를 잊습니다. 삶을 일구면 예술을 잊습니다.

 

 사람들은 사랑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자꾸 돈벌이에 얽매입니다. 내 아이들을 사랑하지 못하니까 내 아이들을 자꾸자꾸 학원으로 몰아세우면서 학원삯을 벌려고 아둥바둥합니다.

 

 사람들은 살림을 꾸리지 않기 때문에 자꾸 정치에 눈을 둡니다. 내 살림살이를 사랑하지 못하니까 자꾸자꾸 정치 이야기를 읽고 술을 마시며 덧없는 말다툼을 벌입니다.

 

 사람들은 삶을 일구지 않기 때문에 예술을 좇습니다. 내 삶을 내 손으로 일구며 내 밥·옷·집을 마련하는 사람은 구태여 예술을 살피지 않아요. 내 밥·옷·집을 돈으로 장만하기 때문에 자꾸자꾸 예술이니 문화이니 문학이니 하고 떠벌입니다.


.. 예술은 생계수단이 아니다. 예술은 삶을 보다 견딜 만하게 만드는 아주 인간적인 방법이다. 잘하건 못하건 예술을 한다는 것은 진짜로 영혼을 성장하게 만드는 길이다 …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노예 생활을 하는 동안 전세계에 나눠 준 선물(블루스 음악)은 너무나 소중하여, 오늘날 많은 외국인들이 미국을 그나마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거의 유일한 이유가 되었다 … 그러나 이제는 안다. 우리의 한심한 미국이 인간적이고 이성적인 나라로 변할 가능성이 조금도 없다는 것을. 권력은 우리를 타락시키고, 절대 권력은 우리를 절대적으로 타락시키기 때문이다 ..  (32, 71, 74쪽)


 커트 보네커트 님은 ‘나라 없는 사람’이 맞습니다. 미국은 미국이라는 나라에 깃든 사람들한테는 조금도 ‘나라답지 않은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나한테 한국은 나라답지 않습니다. 곧, 나 또한 ‘나라 없는 사람’입니다. 나로서는 ‘나라답지 않은 나라’에 깃들며 이 나라 사람이라는 이름을 내세우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옆지기하고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요, 나는 두 아이하고 시골살이를 하는 사람이며, 나는 내 삶길을 시골길에서 찾는 사람입니다.


.. 인생에서 끊임없이 빌리고 빌려주는 것, 다시 말해 상호 호혜를 빼면 무엇이 남을까? … 우리 아이들은 과학기술을 물려받았지만 그 부산물들은 전시에나 평화시에나 모든 종류의 생물이 먹고 마시고 숨쉬며 살아갈 우리의 지구를 빠르게 파괴하고 있다 ..  (43, 73쪽)


 미국은 참 바보 멍텅구리입니다. 한국 또한 그지없이 얼간이 똥싸개입니다. 커트 보네커트 님은 여든둘 나이에 남김없이 까발리며 당신 삶길을 밝힙니다. 그러면, 이 나라 한국에서는 누가 이렇게 ‘나라 없는 사람’이요 하고 외칠 만할까요. 오늘날 한국땅에서 글쟁이라 내세우는 이 가운데 누가 스스로 ‘나라 없는 사람’이라고 밝히는가요. 이 나라 한국에서 누가 자가용이 얼마나 쓰잘데기없는 핵폭탄과 같은가 하고 깨닫는가요.

 

 아주 무시무시하고 못된 자가용인 줄 깨달아 아쉬움없이 헤어지는 이는 얼마나 되는가요. 어린이문학을 하던 권정생 할아버지 말고, 자가용 때문에 이라크파병을 멈출 수 없을 뿐 아니라, 사람들이 자가용을 몰기 때문에 끔찍한 전쟁과 입시지옥과 못난 정치가 판을 칠 뿐 아니라, 아파트이니 경제개발이니 4대강사업이니 한미자유무역협정이니 잇따를밖에 없다고 느끼는 사람은 몇이나 되는가요.

 

 자가용을 훌훌 버려야 한미자유무역협정이 사라집니다. 자가용을 기쁘게 떠나 보내야 4대강사업이 없어집니다. 자가용을 홀가분히 잊어야 아파트 투기 따위가 스러집니다.

 

 내 아이한테 무엇을 물려주고 싶은지 생각해야 합니다. 나 스스로 내 삶을 어떻게 사랑하고 싶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커트 보네커트 님은 여든둘이라는 나이에 깊이 깨달아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만, 이 나라 사람들은 여든둘이라는 나이까지 살아도 못 깨달을 듯해 참 슬픕니다. (4344.12.10.흙.ㅎㄲㅅㄱ)


― 나라 없는 사람 (커트 보네커트 글,김한영 옮김,문학동네 펴냄,2007.8.20./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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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12-11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얼간이 똥싸개!^^

`예술은 생계수단이 아니다. 예술은 삶을 보다 견딜 만하게 만드는 아주 인간적인 방법이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다른 의견들도 많을거라 생각해요. 생계수단이 되어야 더 치열하게 매진할 수 있다던가 하는.
저는 이 책을 아직 안 읽었지만 인용해주신 부분들에 대해서는 다 끄덕거리게 되네요.

숲노래 2011-12-11 19:19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생계수단일 때에는 더 치열하게 문학이나 예술에 매진할 테지만,
가난한 삶이더라도 생계수단이나 돈벌이를 잊고
아름다운 길을 찾으려 할 때에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문학이나 예술이 꽃피운다고 느껴요.

죽은 다음에 어마어마하게 팔리면서 사랑받는
적잖은 문학이나 예술이
이러한 좋은 보기가 되는구나 싶어요... 에고... ㅠ.ㅜ
 
역사의 교차로에서
김달수, 진순신, 시바 료타로 지음, 이근우 옮김 / 책과함께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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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읽기’는 어떻게 스며들어야 좋을까
 [책읽기 삶읽기 89] 김달수·진순신·시바 료타로, 《역사의 교차로에서》(책과함께,2004)



 일본이라는 나라에는 시바 료타로 같은 사람이 있어 문학과 문화가 한껏 발돋움할 수 있구나 싶습니다. 거꾸로 보면, 일본이라는 나라는 시바 료타로 같은 사람이 문학과 문화를 한껏 일구도록 뒷받침이 될 만하구나 싶어요.

 일본이라는 나라에서는 김달수와 진순신 같은 사람이 문학과 문화를 마음껏 즐기며 나눌 수 있구나 싶습니다. 한국이나 중국에서도 김달수와 진순신 같은 사람이 문학과 문화를 마음껏 즐기며 나눌 수 있을까요. 글쎄, 모를 노릇이지만, 고개를 갸웃갸웃 젓습니다.

 그런데, 일본이라는 나라는 재일조선인한테 손그림을 억지로 찍도록 내몹니다. 일본 정부는 내놓고 재일조선인 푸대접이나 막대접을 합니다. 아니, 내놓지는 않으나 여느 일본사람한테는 잘 보이지 않는 뒷자리에 앉아 아주 단단한 틀과 굴레로 푸대접이나 막대접을 해요. 곰곰이 돌이키면, 일본 정부는 재일조선인한테만 푸대접이나 막대접을 하지 않습니다. 일본사람 가운데 부락민이라 하는 사람을 따로 갈라 계급과 신분에 따라 푸대접이나 막대접을 하는 흐름이 아직 남았습니다. 이와 함께, 일본에서 재일조선인 손그림 안 찍기 운동을 벌일 때에 자그마치 8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서명운동을 함께했습니다. 이러한 ‘재일조선인 손그림 안 찍기 운동’을 한국에서는 거의 모르쇠로 여기거나 아예 모르기 일쑤입니다.

 그리 대단하지 않은 책을 놓고 불온도서이니 무어니 하고 딱지를 붙이는 한국 정부입니다. 그리 대단할 일 없는 불온도서 목록을 보며 성을 내는 한국사람입니다.

 하나하나 살피자면, 나라에서는 불온도서를 삼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제도권 교육을 합니다. 아이들이 홀가분하게 배우면서 꿈나래를 즐거이 펼치도록 돕지 않아요. 입시지옥입니다. 대학졸업장 없으면 바보로 삼는 수렁입니다. 아이들한테 참고서와 교과서 말고는 쥐어 주지 않도록 내모는 나라에서 불온도서 목록이 없다면 외려 아리송한 셈입니다.

 곧, 이 나라 여느 사람은 정부나 국방부나 이런저런 곳에서 불온도서를 뽑든 말든 아랑곳할 일이 아닙니다. 한국 정부가 자유무역협정을 맺든 말든 마음쓸 까닭이 없습니다. 내 삶을 참다이 아끼고 싶다면, 신문을 놓고 텔레비전을 놓으며 인터넷까지 놓아야 해요. 내 삶을 착하게 사랑하고 싶다면, 제도권 학교를 떠나고 대학졸업장 아닌 낫·호미·쟁기를 쥐어야 해요. 내 삶을 곱게 북돋우고 싶다면, 자가용을 버리고 아파트에서 떠나야 해요. 하늘에서 책을 읽고 햇볕에서 책을 읽으며 흙에서 책을 읽을 줄 알아야 해요.


.. 한국인에게는 자랑할 만한 것으로 한글이 있습니다. 대단히 훌륭한 문자죠 … 농업 제국이 되면, 즉 중국화하면, 한문이라는 문장이 따라옵니다. 한문은 중국 문명 자체였으므로 한문에 능숙해지는 일에, 즉 중국 문명화하는 데 열중하게 되고요. 그래서 정복 왕조이면서도 종국에는 한족화하는 것이죠 … 한국의 성(성씨)이 더욱 복잡한 이유는 천한 성 일곱 개 혹은 다섯 개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좁은 사회에서 서로 차별하고, 그것으로 질서를 지켜온 것이죠 ..  (시바 료타로/22, 51∼52, 74쪽)


 제사나 차례는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성황당이나 장승은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모시는 넋이 대수롭습니다. 섬기는 얼이 대단합니다.

 죽은 사람 앞이든 산 사람 앞이든, 이러한 틀에 따라 이런저런 말씀을 올리면서 이런저런 몸짓을 보여야 섬기거나 모시는 일이 되지 않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말이어야 하고, 사랑에서 샘솟는 몸짓이어야 해요.

 자가용 몰아 어디론가 마실을 다녀야 즐거운 만남이 아닙니다. 물·바람·햇살 좋은 데로 놀러다녀야 무언가 ‘주말·휴일·휴가를 즐겼다’고 할 만하지 않습니다. 날마다 살아가는 곳이 좋은 물·바람·햇살일 수 있어야 해요. 날마다 지내는 터에서 좋은 물·바람·햇살을 누리면서 내 먹을거리를 내 흙땅에서 일굴 수 있어야 해요.


.. 한국은 이 가족주의 탓에 복잡하게 뒤얽히게 되었지요. 문명주의가 될 수 없었던 것은 가족주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것이 아직도 강하게 살아 있다는 데에 놀랐어요. 우선은 친척, 그 다음은 지연입니다. 같은 경상도 출신이라거나 전라도 출신이라는 식이죠. 일본에도 동향 의식이 있긴 하지만, 한국에서는 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만큼 번거롭지요. 한국은 유교가 매우 번성했고, 또 그 때문에 사회가 정체되었다고 해요. 우리는 그것에 반발을 느끼지만, 실제로 조선은 유교에 사로잡혀 있는 면도 있어요. 유교는 정체 철학이기 때문에 시바 선생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유교에서는 호기심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겁니다. 그러나 호기심을 갖지 않으면 진보할 수가 없습니다 … 중국이라는 나라는 다양성이 너무 많아서 이른바 단일한 가치관 따위는 없는 나라입니다 … 조선에서는 유교를 통해서 오직 한 가지의 절대적인 가치관을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 더구나 제자인 주제에 본가인 체하고, 어쨌든 융통성 없이 꽉 막혀 버렸어요 … 한국에서는 일원적인 가치관만 있었기 때문에 약할 수밖에요 … 한국의 경우에는 부임해 온 관료가 착취를 조금만 덜 해도 선정으로 여겼지요 ..  (김달수/64∼65, 82, 91쪽)


 우리 아이들은 제 아버지처럼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거나 책을 건사할는지 모릅니다. 우리 아이들은 시골마을에서 흙을 일구며 살아갈는지 모릅니다. 우리 아이들은 큰도시를 찾아 시골마을을 떠날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은 나무 만지는 일을 할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은 배 타는 일을 할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은 사랑하는 짝을 만나 시골마을에서 아이들 낳아 조용하면서 조촐히 꾸리는 살림을 이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서고 나면, 이런 꿈 저런 길 모두 사라집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고 나면, 아이들한테는 대학바라기 한 가지만 남습니다. 대학바라기 한 가지만 남을 때에 이 아이들로서는 돈을 더 많이 받는 쇠밥그릇 구멍을 찾는 데로 몰릴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이 아이들 저희 삶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길로 걸어가도록 하자면,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부터 어버이 삶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길을 걸어야 해요. 돈벌이 하느라 집 바깥에서 오래도록 많은 나날을 보내야 하는 어버이라면, 아이들 또한 집 바깥에서 떠돌며 돈을 벌고 돈을 쓰는 삶에 젖어들 뿐이에요.

 사랑이 낳는 사랑이거든요. 돈이 낳는 돈이거든요. 꿈이 낳는 꿈입니다. 기계가 낳는 기계예요.

 손을 써서 살아가면 크든 작든 내 손을 써서 일굽니다. 기계를 쓰며 살아가면 크든 작든 기계를 장만해서 전기나 기름 먹이는 쪽으로 흐릅니다.

 아이들하고 손을 맞잡고 거니는 어버이는 아이들하고 노래하며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아이들을 자가용에 태우고 다니는 어버이는 아이들하고 눈 한 번 살가이 마주칠 겨를조차 없습니다.


.. 전쟁이 일어나면 군인들이 급성장하여 권력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에 장군은 한족 이외의 인물이 좋습니다. 그래서 위구르나 티베트, 고구려 출신들을 등용하게 되었죠 … 중국에서는 재산을 거의 똑같이 나누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점점 가난해집니다 … 유교는 역시 근대화의 장애물입니다. 윤리적인 측면뿐이라면 문제가 적겠지만, 질서를 너무 중시한 나머지 운신하기 힘들 정도로 체제를 고정시키는 경향이 있어요. 중국에서도 태평천국의 난은 반유교 투쟁입니다 ..  (진순신/72, 96, 156쪽)


 김달수·진순신·시바 료타로 세 사람이 주고받은 이야기꽃을 갈무리한 《역사의 교차로에서》(책과함께,2004)를 읽었습니다. 나는 이 책을 일찌감치 일본판으로 장만했습니다. 일본말로 읽을 줄은 몰랐으나 헌책방마실을 하다가 이 책 일본판을 장만하며 참 기뻤습니다. 이러다가 2004년에 비로소 한국말로 옮겨질 때에 더 기뻤습니다. 무척 늦었으나, 한국에서도 이만 한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문화가 알려지는구나 생각했어요. 이제라도 한국땅에서 홀가분하면서 넉넉한 삶꽃 삶열매를 바라보는 눈길이 트이는 길잡이가 마련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교차로에서》를 한국말로 옮긴 이근우 교수는 세 사람 이야기꽃이 썩 마땅하지 않다고 옮긴이 말에 밝힙니다. 해묵은 이야기에다가 잘못된 이야기까지 많다고 붙입니다. 보탬말(각주)을 잔뜩 달아 이런저런 역사를 제대로 밝히려 했다는데, 글쎄, 김달수·진순신·시바 료타로 세 사람은 역사 공부를 하자면서 이야기꽃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김달수·진순신·시바 료타로 세 사람 뿌리인 한국과 중국과 일본이 저마다 어떠한 삶바탕에서 삶꽃을 피우는 길을 걸었는가를 돌아보면서, 세 나라 젊은이가 부디 슬기로우면서 아름다운 삶길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왜 이 대목은 짚지 않을까요. 왜 이 대목을 짚으려 하지 않나요.

 김달수·진순신·시바 료타로 세 사람은 ‘유교’라 하는 종교 아닌 종교가 세 나라를 얼마나 옭죄는가를 거듭 이야기합니다. 그러고 보면, 이근우 교수는 유교라 하는 종교 아닌 종교를 종교로 여기는구나 싶어요. 아무래도 이 대목에서 참 마땅하지 않다고 느끼는구나 싶어요. 그러면, 옮긴이부터 해묵고 부질없으며 뒤틀렸다고 여긴 이 책을 한국말로 옮기지 말아야지요. 출판사에서는 다른 사람한테 이 책을 옮기도록 맡겼어야지요.

 “침략(임진왜란이나 일제강점기)에 맞서서 이쪽에서는 저항하고 싸웠다, 그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영웅주의적인 발상이죠. 그래서는 상대를 제대로 볼 수가 없어요. 그것만으로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아요(김달수/190쪽).” 하는 이야기를 찬찬히 읽으며 삭여야 합니다. “전쟁(태평양전쟁)이라는 괴물이 얼마나 멍청한지를 보여주는 작은 예는, 나처럼 자전거도 겨우 타는 덜 떨어진 사람에게 탱크에 대해서 가르친 일이다(시바 료타로/205쪽).” 하는 이야기를 곰곰이 읽으며 가누어야 합니다.

 김달수·진순신·시바 료타로 세 사람은 ‘역사는 이렇다’라든지 ‘역사 참모습은 이렇다’라든지 ‘이 역사는 이렇게 읽어야 맞다’고 내세우지 않습니다. 임금님 삶부터 여느 사람 삶까지 찬찬히 훑으면서 이러한 삶이 오늘 우리한테 어떤 빛이요 꿈이며 사랑인가를 밝히려 애씁니다. 오늘 우리가 아름답게 살아갈 길을 여는 데에 ‘역사읽기’는 어떻게 스며들어야 좋을까 하는 대목을 살피려 힘씁니다.

 좋은 책 하나는 좋은 출판사를 만나야 합니다. 좋은 이야기 하나는 좋은 글쟁이나 번역쟁이를 만나야 합니다. 좋은 눈길로 좋은 삶을 읽는 좋은 책즐김이는 좋은 꿈과 좋은 사랑을 나누고 싶어하는 좋은 땀방울을 좋은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4344.12.1.나무.ㅎㄲㅅㄱ)


― 역사의 교차로에서 (김달수·진순신·시바 료타로 글,이근우 옮김,책과함께 펴냄,2004.7.22./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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