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수학이 필요한 순간 - 질문은 어떻게 세상을 움직이는가
김민형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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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36


《다시 수학이 필요한 순간》

 김민형

 인플루엔셜

 2020.8.12.



계속 정확하게 근본을 찾아가려고 할 때 근본이라는 게 없다는 걸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근본이라는 게 없기 때문에 증명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수학적 논리 체계가 있습니다. (34쪽)


죄송하지만, 저는 산수와 수학을 구분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 특별히 다른 것인지 의문입니다. 교육과정에서 당연히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준이 높아지고 알아야 할 배경지식도 늘어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느 순간 산수가 수학으로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학과 산수에 경계선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122쪽)


도대체 이런 프로그램을 어디에 쓰냐는 질문을 앞서 해주셨는데요, 놀랍게도 정답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입니다. (141쪽)


미세 물질에 관한 이론에서는 물질을 자세히 보면 볼수록 형태가 불분명해진다고 합니다. ‘모양이 없어지는 현상’과 대수적인 실체는 매우 관계가 깊습니다. (391쪽)



  요즈음에는 가게에서 셈장난을 하는 일이 없겠지요. 작대기를 긁으면 값이 척척 나오고, 셈판을 안 쓰더라도 더하기를 착착 하거든요. 지난날에는 가게에서 주판을 놓거나 셈판을 쓰거나 손으로 종이에 더하기를 하면서 셈을 했어요. 이때에 일부러 덧씌우는 곳이 있었지요. 어머니 심부름으로 가게를 다녀올 적마다 무엇을 사고 값이 얼마인가를 머리로 빠르게 셈했어요. 에누리를 조금씩 해주는 가게가 있는데요, 1000원어치마다 50원을 에누리하는 가게라면 더하기뿐 아니라 빼기까지 미리 셈해 놓습니다.


  가게에서 하는 셈에 속아서 바가지를 쓴 일은 없습니다. 가게지기 셈이 틀렸다 싶으면 “저기요, 얼마 아닌가요?” 하고 되물었어요. 미리 다 셈을 한걸요. 때로는 가게지기가 값을 적게 셈한 적이 있는데, ‘와, 그동안 바가지를 씌우던 분이 용케 셈이 틀리네?’ 하고 여기면서 그냥 나와서 집으로 가다가 아무래도 찜찜합니다. “저기요, 아주머니 아까 셈을 틀리게 하신 듯해요. 제가 500원을 더 내야 맞지 않나요?” 가게지기는 다시 셈하더니 “덜 냈다고 너처럼 돈을 다시 가져오는 손님은 처음 봤다. 200원은 네 용돈으로 해라.” 하면서 100원 두 닢을 내어주신 분이 있어요.


  《다시 수학이 필요한 순간》(김민형, 인플루엔셜, 2020)을 읽으며 셈길을 되새깁니다. 참말로 이제는 덧셈뺄셈으로 속여먹는 짓은 자취를 감춘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푼돈을 바라보는 덧셈뺄셈을 넘어서, 크게 속여먹는 짓은 곳곳에 있다고 느껴요.


  우리는 왜 셈을 엉뚱하게 하려 들까요? 우리는 왜 즐겁게 셈을 하면서 함께 아름다운 터전으로 가꾸는 길하고 등지려 할까요? 우리 쪽한테 이바지하면 셈을 속여도 될까요? 저쪽은 덜 가져가도록 장난질을 해야 즐거울까요?


  글쓴님은 《다시 수학이 필요한 순간》이라는 책에서 ‘수학·산수’가 다른 말이 아니라고 여긴다고 밝힙니다. 이러한 생각에서 조금 더 뻗는다면, ‘셈’이라는 낱말도 매한가지예요. 수학자 가운데 스스로 ‘셈꾼·셈지기’ 같은 이름을 쓰는 사람을 아직 못 봤습니다. 수학자 스스로 ‘셈’이라는 낱말에 흐르는 너비나 깊이를 제대로 안다면 ‘수학·산수’가 다른 말이 아닐 뿐 아니라, 우리말 ‘셈’이 ‘세다·헤아리다·생각’하고 맞물리는 줄 제대로 읽겠지요.


  수학이라는 길은 참말로 ‘생각길’이거든요. ‘셈’은 ‘생각’을 나타내는 대단히 오래된 낱말이에요. 머리를 움직이는 길이기에 셈입니다. 머리를 써서 삶을 밝히는 길이라서 셈입니다. 셈속이 있기에 슬기롭습니다. 셈이 밝으니 똑똑합니다. 셈이 환하니 마음을 틔웁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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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사 - 창의적인 수용과 융합의 2천년사
소병국 지음 / 책과함께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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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34


《동남아시아사》

 소병국

 책과함께

 2020.3.20.



동남아시아는 ‘물의 세계’라고 할 정도로 대부분의 지역이 강이나 바다 같은 물의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게다가 지리적으로는 인도양과 태평양이 만나는 위치에 있어 오래전부터 동서 세계를 해로로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왔다. (25쪽)


《나가라꺼르따가마》에 따르면 자야나가라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그는 자신의 안마사인 딴샤의 아내를 탐하는 우를 범했다. 1328년 자야나가라는 이에 격분한 딴샤에게 살해되었다. (199쪽)


(싱가포르에서) 일본은 인민재판을 통해 적대적인 성향이 의심되는 중국인들을 숙청했다. 이 과정에서 반일 활동과 관련 없는 중국인이 희생되었다. (467쪽)


말레이 슐탄의 지위 및 권한, 말레이인의 특별한 지위, 말레이어가 국어라는 사실과 이슬람교가 국교라는 사실에 대해 공공장소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에게는, 치안법에 따라 내란죄를 적용하도록 한 것이다. (729쪽)


정부의 부정부패와 비효율이 마르코스의 이상인 신사회 건설에 최대 걸림돌로 작용했다. 독재정권을 지탱하는 정실자본주의는 세 가지 수단, 즉 공권력·독점권·특혜에 의존했다. (752쪽)



  달팽이가 지나간 곳에는 달팽이 자국이 남습니다. 풀벌레가 차츰 몸을 키우면서 풀노래를 부르는 곳에는 풀벌레 허물이 남습니다. 반짝거리는 날개를 팔랑거리는 나비가 깃드는 곳에는 물이 담긴 고치가 남습니다. 우리가 걸어서 지나간 곳에는 발자국이 남고, 우리가 손에 쥐어 읽은 책에는 손자국이 남습니다.


  자국이나 자취를 살피면 여태 어떠한 삶이 있었나를 읽을 만합니다. 사람뿐 아니라 풀벌레에 숲짐승에 풀꽃나무까지 저마다 살아온 나날을 읽어요. 우리는 오늘날 ‘역사’라는 낱말을 쓰는데, 쉽게 말하자면 ‘자취·자국’이고 ‘발자취·발자국’입니다.


  동남아시아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리는 여러 나라 발자취를 다루는 《동남아시아사》(소병국, 책과함께, 2020)인데, 800쪽에 가까운 발자취를 가만히 읽고 보니 ‘책에 글로 남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엮습니다. 아무래도 그럴밖에 없겠지요? 우리나라 발자취를 다룰 적에도 으레 ‘책에 글로 남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거든요.


  그렇다면 ‘오늘자취(현대사)’는 어떻게 엮으면 될까요? 오늘자취는 아직 책에 글로 안 남았을 텐데, 무엇을 바탕으로 다룰 만할까요? 그리고 책에는 어떤 사람들 어떤 자취를 담을까요?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 발자취를 단출히 엮은 대목은 좋은 《동남아시아사》이지만, 이 책도 임금붙이·벼슬아치·먹물붙이를 바탕으로 싸움자취가 줄줄이 흐릅니다.


  왜 싸움자취를 읽어야 할까요? 왜 임금붙이 자취를 얘기해야 할까요? 나라나 겨레마다 스스로 즐겁게 가꾸거나 지으면서 ‘굳이 책에 글로 안 남겼으나 오래오래 사랑스레 이은 살림’을 역사란 이름으로 다루거나 갈무리하거나 이야기하기는 어려운가요?


  정치사나 전쟁사에 치우친 역사라고 느낍니다. 더구나 정치나 전쟁도 우두머리를 바탕으로 다룰 뿐, 마을사람 눈높이나 자리에서 바라보지 않아요. 우두머리도 임금붙이도 먹물붙이도 아닌, 싸움자취도 땅따먹기도 아닌, 갖은 잘잘못도 아닌, ‘물뭍나라’인 동남아시아 사람들 빛나는 발걸음을 들려주는 이야기책이 태어나기를 손꼽아 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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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나의 고양이를 만났기를
우치다 햣켄 지음, 김재원 옮김 / 봄날의책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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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30


《당신이 나의 고양이를 만났기를》

 우치다 햣켄

 김재원 옮김

 봄날의책

 2020.4.20.



길고양이를 길고양이인 채로 키운다곤 해도 키우는 이상 이름은 있어야겠지. 길고양이니 노라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10쪽)


어제 아침에도 둑을 확인하러 가다가 구두가게에 들렀는데 그 집 줄무늬 고양이가 나흘간 집에 들어오지 않다가 오늘 아침에야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다. 걱정이 많으시죠. 그때 남편 분도 아주머니와 함께 나와서 그렇게 말해 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말해 주는 친절한 마음이 참 고맙다. 하지만 고양이 일로 그런 인사를 받는 게 조금은 이상하기도 하다. (42쪽)


길 잃고 헤매는 집고양이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우리 집으로 온 이상 배곯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94쪽)


노라가 사라진 3월 27일로부터 벌써 반년이 흘렀지만 그사이 한 번도 스시를 먹지 않았다. (147쪽)


숨이 끊어진 쿠루를 한동엔 품에 안아준다. 물론 여전히 따뜻하고 여전히 사랑스러운 얼굴이다. 그러나 앙상하게 말라 평소의 절반 정도로 가볍다. 몹쓸 짓을 했다. 이렇게 야윌 때까지 무엇 하나 해주질 못했다. (221쪽)



  보리똥나무 열매가 빨갛게 익고, 대추꽃이 말간 노란빛으로 맺는 여름으로 깊이 접어드는 날입니다. 멧자락에 안개가 하얗게 퍼지고, 멧새는 밤에도 낮에도 바지런히 노래합니다. 메뚜기가 토실하고, 사마귀하고 거미가 서로 노려보다가 날렵하게 비껴 가는 풀숲입니다. 맨발로 풀밭에 서면 갖은 딱정벌레하고 하늘소가 어깨에 내려앉거나 발치에서 더듬이를 갖다 댑니다. “오늘 너희는 어떤 하루이니?” 이 모두한테 말을 겁니다. 나무한테, 꽃한테, 풀벌레한테, 멧새한테, 또 우리 스스로한테 오늘은 어떻게 다가온 새날일까요.


  지난 열 해 가운데 아홉 해 내내 우리 집 헛간에서 마을고양이가 새끼를 낳아 돌보던데, 올해에는 새끼를 낳으려는 마을고양이가 없습니다. 지난해에 태어나 무럭무럭 자란 마을고양이 하나가 어째 사람손을 타려고 우리 집 마당에서 자리를 차지하면서 다른 마을고양이는 그닥 얼씬을 하지 않습니다.


  사람손을 타겠다며 찾아온 마을고양이는 처음에 배가 홀쪽하고 어설펐지만, 조금씩 기운을 찾더니 이내 쥐에 새를 곧잘 사냥하면서 제법 듬직한 몸꼴로 거듭나더군요. 이제는 마을 한 바퀴를 휘 돌고서 마당으로 돌아올 적에 이야옹이야옹 큰소리로 우리를 부르면서 “나 다녀왔어! 나 다녀왔다구!” 하면서 쓰다듬어 달라고 합니다.


  길고양이를 쓰담쓰담하면서 곁에 두고프던 나날을 적바림한 《당신이 나의 고양이를 만났기를》(우치다 햣켄/김재원 옮김, 봄날의책, 2020)을 읽었습니다. 글쓴님은 처음에 마음이 끌린 길고양이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서 영 입맛을 잃고 하루하루 기운이 없었다고 합니다. 부디 이 길고양이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알림종이를 뿌리고 이곳저곳 찾아다녔다고 해요.


  집고양이 아닌 길고양이라면 어느 날 어느 집에 살며시 깃들어 보려는 몸짓이었다고 하더라도 새삼스레 집살이 아닌 들살이로 나아가기도 하겠지요. 매이지 않기에 들넋이고, 얽히지 않아서 길숨이거든요.


  어쩌면 그 길고양이는 들길로 새롭게 나아갔을는지 모르지만, 어쩌면 자동차에 치여서 이승을 떠났다든지, 다른 사람 손길을 타면서 꽤 멀리멀리 갔을는지 모릅니다.


  사람이 나아가는 삶길을 생각합니다. 아늑히 품는 보금자리도 좋고, 가시밭길이라 하더라도 씩씩히 나아가는 자리도 좋습니다. 낯설거나 힘들지만 스스로 이루고픈 꿈길로 걸어가는 자리도 좋고, 텃밭일 일구며 시골에서 조용히 보내는 자리도 좋아요.


  짧게 만났다가 헤어지고 만 길고양이라는데, 처음부터 이 아이 자리가 있지 않았다지만, 문득 찾아들어 생긴 자리가 텅 비니 새삼스레 집이 조용했고, 이렇게 한 해 두 해 흐르던 어느 날 새로운 길고양이가 찾아들었다고 해요.


  떠나간 아이가 있고, 찾아온 아이가 있습니다. 길바람을 탑니다. 길에서 흐르는 내음을 듬뿍 묻히고서 오늘 여기에 있습니다. 조용조용 보내던 집안에 길고양이 하나는 웃음이며 수다를 새로 베푸는 숨결이 됩니다. 사람들이 지내는 마을이 시끌벅적하거나 북적북적 즐거웁자면, 사람만 있기보다는 길고양이도, 멧새도, 풀벌레도, 벌나비도, 또 여러 숲짐승도 얼크러질 노릇이지 싶습니다. 그나저나 이 책은 “그대가 이 고양이를 만났기를”처럼 이름을 고쳐야 알맞겠다고 느껴요. 집고양이 아닌 길고양이를 “나의 고양이”라 하니 안 어울립니다. ‘나의’는 한말이 아닌 일본 말씨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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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표상의 지도 - 가족, 국가, 민주주의, 여성, 예술 다섯 가지 표상으로 보는 한국영화사
박유희 지음 / 책과함께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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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31


《한국영화 표상의 지도》

 박유희

 책과함께

 2019.10.27.



한국영화사에서는 아버지에게 역사적 책임을 물은 적이 없다. 식민지화와 함께 근대가 도래하며 전근대에 속한 아버지는 무능한 존재로 전락했다. (70쪽)


20세기 한국영화사에서 아버지는 부재할 수는 있어도 부정될 수는 없었다. 식민지의 못난 아비일지라도 딸은 몸을 팔아 그를 봉양해야 했고, 아들은 그를 축출할 수 없었다. (74쪽)


재판을 둘러싼 논리와 다각적인 역사 문제들이 ‘조선인 피해자 대 가해자 일본’이라는 이분법 구도 속에 묻히고 만다. 관부 재판을 도왔던 일본 시민단체의 항의 또한 이 영화가 법정 멜로드라마의 해묵은 틀로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과정에서 결락하고 왜곡할 수밖에 없었던 문제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168∼169쪽)


4·19가 영화에서 재현된 것도 21세기 들어서다. 4·19라는 역사적 사건 자체를 극영화에서 재현한 경우가 20세기에는 없었다. 그러다가 2004년에 개봉한 영화 〈효자동 이발사〉에서 주인공의 인생에 주요한 계기가 되는 사건으로 4·19가 등장한다. (278쪽)


대개 영화를 직업적으로 보고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전문가 집단은 관습적인 영화에 대해 박하게 평가하기 마련이다. 그에 비해 일반 관객은 영화 형식이 관습적이라고 하더라도 실화의 충격이나 그것에 대한 관심도, 혹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감동을 받으면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있다. (438∼439쪽)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른 살이 될 무렵까지는 한국영화가 아니고서는 볼 생각을 안 했지만, 서른 살이 지나고부터는 아예 한국영화를 끊습니다. 서울살이가 아닌 숲살이를 바라는 길이고, 아이를 돌보느라 책을 들출 쪽틈을 내기도 빠듯한데다가, 한국말사전이라는 책을 쓰다 보니 어느덧 한국영화는 따분하거나 틀에 박히거나 우물개구리로구나 싶었습니다. 어쩐지 한국영화는 줄거리나 이야기가 좁아 보여요. 다루는 길도 뻔해 보입니다. 사랑을 그리기보다는 사랑타령을 그리고, 숲을 그린 영화는 찾아보기 어렵고, 별바라기로 생각을 틔우는 영화는 좀처럼 못 만납니다.


  극장에 걸어서 사람을 모으고 돈을 벌려면 어쩔 길 없이 ‘연속극을 찍어야’ 할는지 모르겠고, ‘연속극이 되어야’ 팔릴 뿐 아니라 ‘한류’란 이름으로 이웃나라로도 퍼질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집에 텔레비전을 들이지 않을 뿐더러 연속극이라면 아예 쳐다보지 않는 사람으로서는 한국영화에 눈이 가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마음을 《한국영화 표상의 지도》(박유희, 책과함께, 2019)를 읽으면서도 새삼스레 되새깁니다. 500쪽 남짓으로 도톰한 이 책은 한국영화를 ‘가족·국가·민주주의·여성·예술’ 다섯 갈래로 나누어서 다룹니다. 그동안 한국에서 나온 영화는 크게 이 다섯 가지로 묶으면 거의 다 들어간다고 여길 만하기도 하겠구나 싶습니다.


  제가 영화를 찍는다고 한다면 이 책에서 다룬 다섯 갈래가 아닌 ‘숲·사람·사랑·살림·소리’라는 다섯 갈래에 들도록 찍고 싶습니다. ‘숲·사람·사랑·살림·소리’을 영화 한 자락에 모두어 낼 수도 있어요. 이를테면 〈말괄량이 삐삐〉에는 이 다섯 가지가 모두 나옵니다. 어린이부터 누릴 만한 삐삐 이야기에서 삐삐는 숲이라는 푸른빛도, 사람다이 사는 길도, 참다운 사랑이란 무엇인지도, 손수 짓는 살림도, 또 우리 곁에 흐드러지는 숱한 소리도 고루 보여줍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도 이 다섯 가지가 모두 흘러요. 만화영화 〈우주소년 아톰〉이라든지 〈이웃집 토토로〉도 이 다섯 가지가 함께 있겠지요. 일본영화 〈스윙걸즈〉나 〈워터보이즈〉도 이 다섯 가지를 잘 보여준다고 느낍니다. 한국영화라면 〈집으로〉나 〈천하장사 마돈나〉가 이러한 결을 어느 만큼 다룬다고 느껴요.


  곰곰이 보면 《한국영화 표상의 지도》는 영화평론보다 조금 더 어려운 글입니다. 영화평론도 ‘직업 평론가’들이 ‘영화를 삶자리에서 수수하게 즐기는 사람하고 동떨어진 채’ 온갖 잣대를 들이민다고 느끼는데요, ‘한국영화가 무엇을 그리는지’를 말할 적에 구태여 논문을 써야 할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논문보다는 이야기로, 학문보다는 삶으로, 이론이나 지식보다는 사랑으로 바라보면서 풀어낼 적에 한국영화가 달라질 새길을 보여줄 만하지 않을까요.


  제가 영화를 찍는다고 하면, ‘숲·사람·사랑·살림·소리’를 바탕으로 ‘어린이·길·바다·별·새’라는 다섯 가지를 보태고 싶습니다. 이 열 가지를 아우르는 영화라면 기꺼이 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런 열 가지를 고이 품는 한국영화가 나오지 않으면, 저로서는 굳이 한국영화를 볼 마음이 터럭만큼도 없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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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이 노는 정원 - 딱 일 년만 그곳에 살기로 했다
미야시타 나츠 지음, 권남희 옮김 / 책세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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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27


《신들이 노는 정원》

 미야시타 나츠

 권남희 옮김

 책세상

 2018.3.20.



“이 일대는 봐요, 머위 꽃줄기, 두릅 새싹, 고비, 산나물을 산더미처럼 캘 수 있고요. 왕머루나 자두도 잔뜩 나요. 우리 딸은 배가 고프면 자기가 산나물을 뜯어와서 튀김을 해먹어요.” (41쪽)


공기가 맛있다. 제일 처음 공기를 ‘맛있다’고 표현한 사람의 마음을 알 것같다. 공기에는 정말로 맛이 있다. (48쪽)


이곳 중학교에는 중간고사도, 기말고사도 없다. 중1은 세 명밖에 없다. 게다가 중2와 중3은 한 명씩이다. 등수를 매겨도 의미가 없고, 애초에 전원이 충분히 이해했다는 걸 알면 시험을 칠 필요가 없다. (210쪽)



  팥배나무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알려면 마당 한켠에 팥배나무를 심어서 돌보면 됩니다. 또는 숲정이에 팥배나무가 섞이도록 하고, 또는 숲으로 팥배나무를 만나러 마실하면 되어요. 책이나 사진만으로는 팥배나무를 알 길이 없어요. 가만히 쓰다듬고, 뺨을 대어 숨결을 느끼고, 부둥켜안으면서 이야기를 걸 적에 비로소 팥배나무가 마음을 열어요.


  오월은 팥배나무에 말간 꽃이 눈부십니다. 이 오월에 우리 삶자락은 어떤 모습일까요? 벌써부터 더운 날이라 에어컨을 틀려고 집안을 꾹꾹 닫아거나요, 싱그러이 오월바람이 집안 구석구석으로 스며도록 활짝 틔우는가요. 빛나는 햇살을 누리려고 마당이며 뒤꼍이며 고샅에 서서 해바라기를 하나요, 햇살은 쳐다볼 겨를이 없이 막힌 집안에 가만히 있는가요.


  아이들하고 큰고장을 떠나 두멧시골에서 누린 한해살이를 다룬 《신들이 노는 정원》(미야시타 나츠/권남희 옮김, 책세상, 2018)을 읽었습니다. 글쓴이는 두려우면서도 설레면서 큰고장을 씩씩하게 떠났다고 해요. 아이들은 거리끼지 않고 두멧시골 한해살이를 맞아들였다고 합니다. 더 많은 또래가 웅성거리는 큰고장이 아닌, 몇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조그마한 배움터에 눈밭이며 들숲이 너른 두멧시골을 가슴으로 폭 맞아들였다고 합니다.


  조그마한 배움터에는 따로 시험이 없을 뿐더러, 줄세우기가 없었답니다. 아이들은 시험이나 줄세우기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즐거운 나날을 누렸다고 해요. 틀리면 알려주고, 몰라도 그러려니 하면서, 하나하나 온몸으로 부대끼며 새록새록 배우는 길이었다고 합니다.


  나라 사이에 줄세우기가 있어야 할는지 궁금합니다. 사람 사이에 왜 줄세우기를 해야 할는지 아리송합니다. 잘하거나 못하거나 대수롭지 않을 텐데요. 이렇게 하거나 저렇게 하거나 모두 새롭게 부대끼는 길일 텐데요. ‘더 빨리, 더 많이, 더 크게’는 사람다움하고 멀어도 한참 멉니다. 아니, 아예 아무런 사람다움이 아니겠지요. ‘즐겁게, 사랑스레, 아름다이’가 되어야 비로소 하늘님이 드리우는 터전이 되고, 우리 누구나 저마다 하늘빛이 되는 길이지 싶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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