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어귀

 


마늘쫑 뽑고
부추잎 따며
조용히
눈 감으며
멧골에 피고 지는
예쁜 꽃을 바라본다.

 

하늘 파랗구나.
구름 하얗구나.

 

할미꽃은 씨앗 맺고
민들레는 씨앗 뿌려
여름으로 접어든다.

 

버들잎 노래한다.
바닷물 출렁인다.
고을마다 포근포근 바람
마을마다 따뜻따뜻 햇살

 

싸목싸목
흘러
기지개 한 번.

 


4346.5.1.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자전거쪽지 2013.6.13.
 : 찔레꽃 진 자리에 밤꽃

 


- 우체국에 가려고 자전거를 달린다. 샛자전거와 수레를 매단 자전거를 마당으로 내려놓을 때에, 누구보다 작은아이가 먼저 알아본다. 작은아이는 수레에 타고 자전거마실을 하면 무척 좋아한다. 작은아이를 바라보며 말한다. “보라야, 수레에 타라고 할 때에 타는 줄 알지? 아직 챙길 짐 있으니 기다리렴.” “응.” 한참 말을 따라하며 배우는 작은아이는 참말 짧게 말한다.

 

- 우체국으로 가기 앞서 우리 도서관에 들러 짐을 내려놓는다. 오늘은 우체국만 다녀올 생각이라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에 들르지는 않는다. 큰아이와 작은아이는 큰길에서 아버지를 기다려 준다.

- 우리 마을 할아버지 한 분이 저 앞에서 마주 걸어오는 모습 본다. 꾸벅 인사를 하며 지나친다.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가 문득 “저 사람 혼자 여행하네.” 하고 말한다. 얘야, ‘저 사람’이 아니고 ‘마을 할배’란다. ‘혼자 여행하’시지는 않고, ‘걸어서 천천히 마실 다니신’ 셈이란다.

 

- 동호덕마을 지나 면소재지 접어들 무렵, 상수도 공사하는 데를 본다. 상수도 공사는 아직 안 끝났네. 참 질기게 오래도록 하네. 벌써 몇 달째인가. 얼추 스무 달쯤 된 듯한데, 이 작은 마을 상수도 공사를 아직도 안 끝내고 뭘 할까. 우리가 지나가려는 길을 엉망으로 파헤쳐 놓았기에 휘 돌아가는 길로 접어든다. 공사한다며 파헤쳐 놓은 자리 앞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마을 할매가 아이들 보며 알은 체를 한다. 이 더운 날씨에 할매도 참 고단하시겠다.

 

- 우체국에서 책을 부치느라 상자에 담아 싸는 동안, 두 아이는 우체국 앞 계단을 오르고 내리면서 논다. 아이들은 어디이든 놀이터로 삼는다. 아이들은 뛰고 달리면서 논다. 아이들한테는 놀잇감 따로 손에 쥐어 주지 않아도 잘 논다. 아이들은 빈터만 있으면 어디이든 놀이터로 삼는다. 생각해 보면, 나도 우리 아이들만 한 나이였을 어릴 적에 언제나 어디에서 즐겁게 뛰놀았다. 놀이공원에 가야 놀지 않는다. 어떤 놀이터 시설이나 건물이 있어야 하지 않다. 마음을 열고 까르르 웃으면서 뛰고 달리면 모두 놀이가 된다.

 

- 면내 가게에 들러 막걸리 두 병 산다. 큰아이가 “아버지, 나 아이스크림 살래.” 하고 말한다. 먹고 싶니? 음, 오늘은 사 주마. 너 하나 고르고 동생 하나 고르자. 큰아이도 수레에 태운다. 작은아이 큰아이 모두 수레에 앉는다. 큰아이는 샛자전거 붙인 뒤 언제나 샛자전거에만 탔는데, 오늘 모처럼 수레에 동생하고 함께 앉는다. 둘은 수레에 앉아 얼음과자를 먹는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작은아이는 얼음과자 다 먹고는 수레에 머리를 기대고 잠든다. 졸렸구나. 잘 자렴.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등허리 펴고 눕게 해 줄게. 신나게 발판을 구른다. 면소재지 언저리 멧자락에서 꼼꼼한 냄새가 풍기기에 무언가 하고 살피니, 아하, 밤꽃이로구나. 밤꽃이네. 찔레꽃이 지면서 유월 여름날 밤꽃이 활짝 피었구나. 얘들아, 알겠니? 밤꽃이란다. 사름벼리 너는 여섯 살이지만, 우리가 시골에서 산 때는 네 동생이 태어난 해부터이니까, 네가 세 살 적부터 시골에서 살며 밤꽃내음 맡았는데 알아볼 수 있겠니?

 

- 모내기 마친 논마다 앙증맞은 자그마한 벼포기 무럭무럭 자란다. 좋은 유월 한낮, 좋은 바람 마시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hnine 2013-06-13 20:37   좋아요 0 | URL
이글, 참 좋군요. 눈 앞에서 그림이 그려져요.

숲노래 2013-06-14 05:1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걷는 사람들과 자전거 타는 사람들뿐 아니라
자동차 타는 사람들도
날마다 좋은 그림 그리면서
예쁜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커피 한 잔과 책이랑

 


  커다란 헌책방이든 작은 헌책방이든, 헌책방 나들이를 할 적이면 으레 커피 또는 차 한 잔 대접을 받습니다. 커다란 새책방으로 나들이를 할 적에는 손에 마실거리를 쥘 수 없습니다. 책에 쏟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요. 조그마한 새책방으로 나들이를 할 적에도 손에 마실거리를 섣불리 쥐지 못합니다. 다만, 오래된 단골로 동네 새책방 나들이를 하면, 걸상에 앉아 다리쉼을 하면서 책을 읽을 때에 커피 또는 차 한 잔 대접을 받을 수 있겠지요.


  지난 1992년부터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새책방과 헌책방은 어떻게 다를까?’ 하고 생각해 볼 때에, 또 ‘도서관과 헌책방은 어떤 대목이 다른가?’ 하고 살필 적에, 꼭 한 가지가 달랐습니다. 커피이든 차이든 마실 수 있느냐 없느냐로 ‘새책방과 헌책방’이 갈리고, ‘도서관과 헌책방’이 갈려요.


  새책방이 갖춘 책이나 헌책방이 갖춘 책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도서관이 건사한 책하고 헌책방이 건사한 책도 그닥 다르지 않아요. 사뭇 다르다 싶은 책이 있지만, 서로 똑같은 책을 많이 갖추어요.


  책을 읽고 싶은 사람은, 살림집이나 일터하고 가까운 곳으로 가면 됩니다. 집하고 도서관이 가까우면 도서관 나들이 즐기면 됩니다. 일터하고 헌책방이 가까우면 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삼십 분이나 한 시간 즈음 헌책방에 들르면 됩니다. 집하고도 조금 멀고 일터하고도 꽤 멀다면, 가끔 말미를 내어 즐거이 먼 나들이 누리면 돼요.


  책을 읽는 삶이란 이야기를 읽는 삶입니다. 이야기를 읽을 때에는 이웃과 동무를 헤아립니다. 이웃과 동무를 헤아리면서 내가 살아가는 보금자리를 되짚습니다. 4346.6.1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appletreeje 2013-06-13 11:36   좋아요 0 | URL
안네의 일기, 위에 놓여 있는 두 잔의 종이컵이
유난히 보기 좋습니다...^^

숲노래 2013-06-13 11:42   좋아요 0 | URL
종이잔에 커피를 주신 모습을 사진으로 찍을라니 얼른 치우시려고 해서
사진이 살짝 흔들렸어요 ^^;
 

ㄱ. 사진 하나 말 하나
 017. 책손이 살피는 책 - 헌책방 대양서점 2013.5.6.

 


  책손이 책을 살핍니다. 하나둘 살핀 책 가운데 집까지 가져가서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싶은 책은 골라서 한쪽에 쌓습니다.


  헌책방 일꾼이 책을 살핍니다. 하나하나 살핀 책 가운데 헌책방 책시렁에 꽂아 책손들이 새롭게 만나도록 할 만하다 싶은 책을 장만해서 한켠에 쌓습니다.


  책손이 살핀 책은 책손이 읽을 책입니다. 헌책방 일꾼이 살핀 책은 책손이 읽을 책입니다. 책손 눈길과 헌책방 일꾼 눈길이 하나될 때에 헌책 한 권 새롭게 태어납니다.


  책은 껍데기가 낡을 수 있습니다. 껍데기가 낡은 책은 껍데기가 낡을 뿐입니다. 책은 줄거리가 닳지 않습니다. 껍데기가 낡거나 닳더라도 줄거리는 닳지도 않고 낡지도 않습니다. 책에 깃든 줄거리는 책이 처음 태어날 무렵 가장 환하며 고운 빛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빛은 언제까지나 빛날 수 있고, 이 빛은 어느 때부터인가 꺾일 수 있습니다.


  오래오래 빛나거나 널리 빛난대서 따사로운 빛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밤하늘 뭇별 몰아내고 도시 한복판을 차지한 전깃불빛이 따사롭지는 않으니까요. 개똥벌레 불빛을 밀어내고 자가용이 번쩍번쩍 비추는 등불빛이 너그럽지는 않으니까요. 아궁이 불빛을 쫓아낸 자리에 깃든 손전화 불빛은 얼마나 사랑스러울까요. 아이들 맑은 눈빛을 내동댕이친 자리에 스며든 학력차별과 계급차별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고운 손길 받아 태어난 책들이 새책방과 도서관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떠돌다가 헌책방으로 들어옵니다. 좋은 손길 받아 읽힌 책들이 다른 좋은 손길 기다리면서 헌책방에 놓입니다. 헌책방마실을 하는 책손은 마음을 살찌우는 책을 바랍니다. 헌책방으로 책마실 떠나는 책손은 생각을 북돋우는 책을 꿈꿉니다. 책손 한 사람이 고르는 책에는 헌책방지기 마음과 손길과 눈빛과 사랑이 고스란히 스며듭니다. 4346.6.1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사진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appletreeje 2013-06-13 11:33   좋아요 0 | URL
문득 헌책방,이란 소금창고나 별들의 저장소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숲노래 2013-06-13 11:42   좋아요 0 | URL
소금창고도 되고 별저장소도 되겠군요.
참 예쁜 책터입니다..
 
서울 세노야 문학과지성 시인선 95
곽재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0년 11월
평점 :
절판


시와 사랑
[시를 말하는 시 24] 곽재구, 《서울 세노야》

 


- 책이름 : 서울 세노야
- 글 : 곽재구
-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1990.11.20.)
- 책값 : 4000원

 


  서로 사랑을 나누려는 마음이 몽글몽글 샘솟으면서 고운 말이 터져나옵니다. 고운 말 한 마디 터져나오면서 새로운 고운 말이 마주 터져나옵니다. 곧, 이야기가 됩니다. 서로 사랑을 나누려는 마음이 모여 이야기가 되면서 시나브로 노래가 흐릅니다. 노래는 이윽고 싯말 한 가지로 거듭납니다.


.. 대전차 장애물 징검다리처럼 코스모스 꽃길 위에 놓였습니다 ..  (화진포)


  꽃을 바라보는 사람은 꽃을 이야기하고 노래하며 사랑합니다. 구름을 바라보는 사람은 구름을 이야기하고 노래하며 사랑합니다. 해를 바라보는 사람은, 흙을 바라보는 사람은, 개구리를 바라보는 사람은, 제비를 바라보는 사람은, 숲을 바라보는 사람은, 나무를 바라보는 사람은, 저마다 이녁이 좋아하는 한 가지를 이야기하고 노래하면서 사랑합니다.


  꽃 둘레에서 꽃을 노래하면서 글 한 자락 쓰는 사람들은 꽃글을 써요. 꽃내음 물씬 나는 꽃노래 흐릅니다. 자동차에 둘러싸여 자동차가 이러쿵저러쿵하는 말을 하는 사람은 그예 자동차 이야기를 글로 쓰면서, 자동차 소리와 냄새와 빛깔을 둘레에 퍼뜨립니다.


  굳이 어떤 정치꾼을 손가락질해야 하지 않아요. 아름다운 사람을 환하게 웃으며 섬기면 돼요. 그러면 저절로 무엇을 바라보고 생각하며 이야기할 때에 우리 삶이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깨달아요. 애써 어떤 나쁜 사람 나무라야 하지 않아요. 아름다운 숲에 깃들어 아름다운 살림 조용히 일구면 돼요. 아름다운 길을 서로 이야기하노라면, 저마다 스스로 찾아나설 즐겁고 좋은 삶을 알아차려요.


.. 마을 이름 고와서 나그네 발걸음 붙드는데 / 외지인이면 무조건 땅 사러 온 줄만 알아 ..  (15쪽)


  삶은 사랑으로 이룹니다. 삶은 혁명으로도 개혁으로도 변혁으로도 이루지 않습니다. 책은 사랑으로 씁니다. 책은 혁명으로도 개혁으로도 변혁으로도 쓰지 못합니다.


  아이들을 어떻게 돌볼 수 있을까요.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을 교육혁명 이루어 무언가 가르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을 낡은 옛 틀에 사로잡힌 채 가르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을 돌보거나 가르치자면 오직 사랑 한 가지를 마음에 품어야 해요. 짝꿍을 사랑하거나 옆지기를 사랑할 적에도 똑같아요. 그저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 살아가려는 몸가짐일 때에 비로소 사랑을 나눕니다.


  돈을 많이 번대서 사랑을 잘 하지 않아요. 돈을 많이 벌어야 아이들을 잘 가르치거나 보살피지 않아요. 짝꿍이나 옆지기는 값비싼 바깥밥 사먹거나 값비싼 목걸이나 팔찌나 반지를 꿸 때에 즐겁거나 사랑스럽다 느끼지 않아요. 포근하며 따사롭고 넉넉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비로소 즐겁거나 사랑스럽습니다. 아이들은 값비싼 장난감 있어야 즐겁게 놀지 않아요. 아이들은 포근하며 따사롭고 넉넉한 기운 감도는 보금자리에서 어버이와 까르르 웃고 뒹굴 때에 즐겁게 놉니다.


  살아가는 마음은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시를 쓰는 마음은 사랑을 쓰는 마음입니다. 시를 읽는 마음은 사랑을 읽는 마음입니다. 모든 삶은 사랑으로 이루어집니다.


.. 육만 엥이란다 / 후쿠오카에서 비행기 타고 전세버스 타고 / 부산 거쳐 순천 거쳐 섬진강 물 맑은 유곡나루 / 아이스박스 들고 허리 차는 고무장화 신고 / 은어잡이 나온 일본 관광객들 / 삼박사일 풀코스에 육만 엥이란다 / 초가지붕 위로 피어오르는 아침 햇살 / 신선하게 퍼지는 박꽃 넝쿨 바라보며 / 니빠나 모노 데스네 니빠나 모노 데스네 / 가스불에 은어 소금구이 살살 혀 굴리면서 ..  (유곡나루)


  곽재구 님 시집 《서울 세노야》(문학과지성사,1990)를 읽습니다. 정태춘 님이 가락을 엮은 시 〈유곡나루〉를 새삼스레 천천히 되읽습니다. 여러 차례 되읽고, 노래로도 읊습니다. 곽재구 님은 누군가를 손가락질하려고 이러한 시를 썼을까요. 정태춘 님은 무언가를 나무라려고 이 시에 가락을 입혔을까요.


  1980년대에 일본 관광객이 ‘단돈 육만 엔’으로 섬진강 물놀이를 옆에 색시 끼고 즐겼다고 한다면, 2000년대 한국 관광객은 아시아 여러 나라로 ‘단돈 얼마’ 들고 색시놀이 누리려고 떠납니다. 일본 관광객은 섬진강 유곡나루에서 놀아났다면, 한국 관광객은 ‘아시아 여러 나라 섬진강 유곡나루 같은 곳’에서 마구잡이로 놀아납니다.


  노닥거리는 짓은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만 보여주지 않습니다. 노닥거리는 짓은 한국에서도 보여줍니다. 술집에서 밥집에서 시골마을에서, 참 많은 사람들이 노닥거립니다. 밤이 지나간 서울 한복판은 온통 쓰레기밭입니다. 밤새 노닥거린 사람들이 뱉고 버리고 흘리고 쏟은 쓰레기로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도시사람은 주말을 맞이해 물과 바람 좋다는 시골로 자가용 몰고 싱싱 나가서 온갖 쓰레기를 시골마을에 뿌리고는 도시로 붕붕 돌아갑니다.


.. 6월이면 해남 땅에 노오란 창포꽃 핀다고 말했더니 / 스물아홉 그 아낙네 귀밑볼이 붉어졌습니다 ..  (만보에서)


  사랑이 있을 때에 시를 씁니다. 사랑을 품는 삶일 때에 시가 샘솟습니다. 사랑을 주고받는 넋일 때에 시를 나눕니다.


  사랑이 없을 때에도 억지로 시를 쥐어짜낼는지 모르나, 이러한 시는 껍데기로는 ‘시’라고 이름을 붙이더라도, 사랑이 아니기에 시가 되지 못합니다. 억지로 쥐어짜낸대서 사랑이 되지 않아요. 억지로 이름을 갖다 붙인대서 사랑일 수 없어요. 입으로 백 번 천 번 외친다고 해서 사랑이라 하지 않아요.


  조용히 샘솟을 때에 사랑입니다. 시나브로 번질 때에 사랑입니다.


  시끌벅적한 마음으로는 시를 쓰지 못합니다. 시끌벅적한 마음일 때에는 시가 아닌 외침이겠지요. 시가 아닌 울부짖음이나 울음이나 피울음이겠지요. 시가 아닌 아픔이나 눈물이나 설움이겠지요. 시가 아닌 쓰라림이거나 생채기이거나 응어리이겠지요.


  사람들 누구나 시를 쓸 수 있기를 빌어요. 도시사람도 시골사람도 시를 쓸 수 있기를 빌어요. 옛날에는 누구나 시를 썼어요. 일노래가 바로 시였고, 시가 바로 일노래였어요. 남이 가르쳐서 부른 일노래가 아닌, 스스로 지어서 부른 일노래였어요. 삶을 사랑하면서 일노래 한 가락 지어서 불렀어요. 사랑하는 삶을 누리면서 일노래 두 가락 지어서 나누었어요.


..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이 세상 모든 / 탱크와 이념과 철조망을 거둔다면 / 그것조차 또 이념이 된다 ..  (광주에서 시 한 편 쓰기)


  새벽 지난 아침나절에 멧새가 노래합니다. 배고파서 지저귄달 수 있지만, 멧새 새벽노래와 아침노래와 낮노래와 저녁노래와 밤노래를 가만히 들어 보면, 이 노래는 그예 노래요, 삶이자, 사랑이로구나 싶어요. 아이들이 아침에 깨어나 저녁에 잠들 때까지 웃고 떠들며 뒹구는 소리를 하나하나 들어 보아도, 모두 노래이면서, 삶이고, 사랑이네 싶어요. 그래서 아이들 말마디는 언제나 시가 됩니다. 아이들 짤막짤막 말마디는 언제나 노래이면서 시이고 사랑입니다. 4346.6.1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