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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은 유쾌하다 - 사진이 있는 이야기
신현림 지음 / 샘터사 / 2000년 6월
평점 :
절판


.. 사진을 미리 안 찍어 놓고, 책을 도서관에 갖다 두었습니다. 내일 도서관에 가서 사진을 찍은 뒤 붙여야겠어요 ㅠ.ㅜ ..

 

..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59

 


가슴으로 사랑을 부르는 사진
― 빵은 유쾌하다
 신현림 글·사진
 샘터 펴냄,2000.6.21./7000원

 


  나이 제법 든 분들은 어릴 적에 들로 숲으로 멧자락으로 들딸기나 멧딸기 따먹으러 다니던 일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런데, 그 들딸기나 멧딸기는 지난날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있어요. 따먹는 사람이 아주 많이 줄었지만, 들딸기와 멧딸기는 예나 이제나 늘 그곳에서 씩씩하게 씨를 퍼뜨리고 해마다 넓게 자라려 합니다.


  오월 한복판으로 접어든 뒤 이틀에 한 차례쯤 아이들과 들딸기 따먹으러 다니며 생각합니다. 들딸기이든 들풀이든 따먹는 사람과 뜯어먹는 사람이 있을 적에 더 깊고 좋은 맛을 사람들한테 나누어 주어요. 따먹는 사람이 있을 때랑 없을 때에는, 들딸기 자라는 모습이 사뭇 다릅니다. 들풀도 사람이 즐겨 뜯어먹을 적에는 더 푸르고 싱싱하게 새로 돋으면서 가을까지 다시 돋고 또 돋습니다.


  사람들 많이 북적거리는 도시에는 단골집이라는 가게가 있어요. 가게 일꾼이 돈이 많지 않아 가게를 이모저모 더 예쁘게 꾸미지 못한다지만, 가게 일꾼 손맛과 손멋으로 사람들 끌어당기는 단골집 있습니다. 이곳은 허름한 가게 모습이라 하더라도, 꾸준히 드나드는 단골들이 다리품과 손품으로 살가운 이야기와 기운이 감돌도록 북돋웁니다.


  곧, 들딸기도 들풀도, 단골집도, 그리고 사람들도, 얼마나 살갑고 사랑스레 마주하고 바라보며 함께하려느냐에 따라 늘 새롭게 거듭나요. 사랑받는 사람은 꾸준히 사랑스러운 빛 번져요. 사랑받는 숲은 한결같이 사랑스러운 숨결 베풀어요. 사랑받는 가게는 언제나 사랑스러운 모습 빛나지요.


.. 지금 나는 쉬면서 시를 읽으며 내 주변에 익숙한 것들을 다시 바라보고 싶다. 해와 바람이 오고 가는 것을 느끼며, 내가 제대로 잘 살고 있는지 인생의 옷을 찬찬히 살피고 싶다 … 토마토를 먹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말을 듣고부터 토마토를 좋아하기로 했다. 마음 먹으면 마음대로 되어 갔다. 정말 머리가 좋아졌다. 머리칼도 윤이 났다. 사랑은 계산 같은 건 할 수 없는 것. 아무 조건 없이 사랑했다 … 나무는 우리에게 생명과 희망을 주는데 우리가 나무에게 주는 건 무엇일까? 개발, 개발, 여기저기 산이나 뭉개놓고 산불이나 질러놓기나 하지 ..  (5, 21, 55쪽)


  열흘 남짓 아이들과 들딸기 따러 다닙니다. 들딸기를 딸 적마다 사진을 몇 장씩 찍습니다. 목에는 사진기를 걸고, 한손에는 낫을 쥐며, 다른 한손에는 빈 통을 듭니다. 딸기를 딸 적에는 낫을 겨드랑이에 낍니다. 딸기풀을 다른 풀이 수북히 덮으면, 다른 풀을 낫으로 벱니다. 낫으로 석석 다른 풀 베노라면, 웃자란 다른 풀 밑에 앙증맞게 자라는 딸기풀 만납니다. 다른 풀한테는 미안하지만, 나로서는 아이들과 딸기알 실컷 누리고 싶습니다. 씀바귀도 쑥도 질경이도 주름잎도 엉걸퀴도 모두 벱니다. 얘들아, 너희는 다른 데에서도 자라면 되지? 이곳은 딸기풀 자라는 데로 삼자꾸나. 보들보들 잘 자란 푸른 쇠뜨기풀도 낫으로 삭삭 긁습니다. 너희도 뜯어먹으면 되게 맛있는데, 오월에는 아무래도 딸기알이 제맛이란다. 딸기알 무르익도록 너희 쇠뜨기풀도 거름이 되어야겠다.


  마음속으로 종알종알 주워섬깁니다. 딸기알 따면서 손등과 손가락과 손가락과 팔뚝과 허벅지와 종아리 모두 긁힙니다. 자그마한 딸기풀 자그마한 가시가 콕콕 박힙니다. 등과 이마에서는 땀이 줄줄 흐릅니다. 딸기는 찔레나무 곁에서 참 잘 자랍니다. 아니, 딸기풀과 찔레나무는 참 서로 잘 어울리려는지, 찔레나무 덩굴 언저리에 어김없이 딸기풀 자라고, 딸기풀 자라는 둘레에 꼭 딸기풀 있습니다.


  한 번은 딸기가시에 찔리고, 한 번은 찔레가시에 찔립니다. 손등에서 피가 흐릅니다. 아이들 들딸기 따먹이자고 이렇게 피까지 보네, 하고 생각하는데 등판으로 봄햇살 후끈후끈 내리쬡니다. 온몸 새까맣게 타면서 들딸기를 땁니다. 누가 곁에 있어 이 모습 사진으로 찍으면 재미있겠네 싶습니다. 아이들이 여덟아홉 살쯤 되면, 또 열 살 남짓 되면, 그때부터 아이들은 스스로 낫과 통 들고 들딸기 따러 다니겠지요. 그 나이 될 때까지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땀범벅 되고 가시에 혼쭐나며 햇볕에 까맣게 타면서 들딸기 딸밖에 없습니다.


.. 메밀꽃 들판에서 사진을 찍은 후 2년간 나는 메밀부침을 해 먹었다. 부침을 먹으며 메밀꽃 여자의 마음을 먹는 거라 여겼다. 그 마음을 먹어선지 정말 그때는 착했다. 내 마음에서 강원도 바람소리가 흐르고, 끝없이 일렁이는 초원을 구르는 해가 빛났다. 메밀꽃 여자가 그립다. 친구하고 싶다 … 내가 애착하는 언어들은 많은 부분 고향이라는 낡고 아름다운 악기에서 흘러나온다. 현실이 비정하고 암담할수록, 내 안의 격정과 슬픔이 잔혹하게 끓어오를수록 고향 산천의 작고 아늑한 풍광이 내뿜는 숨결을 보약처럼 달여마신다 ..  (28, 33쪽)


  어머니나 아버지가 들딸기 따는 동안 아이들은 둘레 풀밭에서 엉켜 놉니다. 아직 여섯 살 세 살 아이들로서는 낫질을 하거나 풀밭에서 가시에 찔리면서 뒹구는 일을 익숙하게 하기 어렵습니다. 이 아이들한테는 풀놀이가 있고, 서로 술래잡기 하면서 즐기는 놀이가 있습니다. 말갛고 달큼한 들딸기 수북히 따기를 기다리면서, 아이들은 배고픔을 즐겁게 견딥니다. 한동안 기다린 끝에 들딸기만으로 배를 채우면서 웃습니다. 커다란 통 다 비우면 또 한 통 더 땁니다. 다시 한 통 따서 채우는 동안 아이들은 저희끼리 잘 어울리면서 놉니다. 아이들은 천천히 나이를 먹고, 아이들은 찬찬히 몸을 다스립니다. 다리와 손에 힘이 붙고, 온몸은 햇볕에 알맞게 그을립니다. 아이들 몸과 마음은 숱한 이야기를 건사합니다. 어버이가 들딸기 따는 동안 기다리면서 ‘모든 밥(먹을거리)은 맛나게 먹을 때까지 품과 겨를을 들여야 하는’ 줄 느끼겠지요. 철에 따라 밥이 달라지고, 그때그때 그 자리에서 얻은 밥이야말로 상큼하며 싱그러운 줄 느끼겠지요. 어버이 기다리면서 서로 얼크러져 노는 동안, 온몸에 새로운 이야기 깃들겠지요.


  마음속으로 이야기 깃들 때에 비로소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 이야기 담을 때에 비로소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마음속으로 이야기 건사할 때에 비로소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살아오는 나날에 맞게 이야기를 담지 못하는 사람은, 빼어난 장비가 있더라도 글도 그림도 사진도 빚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글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내 삶’을 누린 ‘이야기’를 보여주거든요.


  들려줄 이야기가 있을 때에 사진을 찍습니다. 보여줄 이야기가 있기에 사진기를 손에 쥡니다. 함께할 이야기가 있는 만큼 사진을 즐깁니다.


.. 아마 이 사진은 어머니가 찍었을 것이다. 꽤 잘 찍은 사진이다. 이 바다는 내가 처음 본 바다였고, 만져 보고 냄새 맡은 최초의 바다다 … 운주사의 아름다움은 애써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에 있다 … 뜨거운 애정이 없이는 찍을 수 없는 사진. 예술은 사랑처럼 국경을 초월한다 … 신동엽의 시는 가슴으로 사람을 부른다. 민족과 대지에 대한 뜨끈뜨끈한 사랑이 흐른다. 김소월 이후로 모국어와 대지의 향기를 이처럼 아름답게 피워내는 시인도 드물다. 이렇게 좋은 시를 읽으면 비로소 내 인생이 내 것이란 느낌이다. 좋은 시는 자연의 군더더기 없음, 사심 없음, 자연스러움을 닮아 있다 ..  (37, 42∼43, 45쪽)


  가슴으로 사랑을 부르는 사진입니다. 가슴으로 사랑을 짓는 사진입니다. 사랑을 불러 삶을 일구는 사진입니다. 사랑 짓는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사진입니다.


  사진학교 오래 다니거나 사진강좌 많이 들었대서 사진을 못 찍는 까닭을 사람들이 잘 깨달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가슴속에 이야기 있어야 사진을 찍거든요. 사진학교와 사진강좌에서는 우리한테 이야기를 만들어 주지 못해요. 사진학교와 사진강좌에서는 사진기 다루는 법이나 ‘사진작품 엮어 사진이야기 이루는 법’을 알려줄 뿐입니다. 다른 훌륭한 사진작가 작품을 보여주거나 여러 사진작가들이 어떠한 마음으로 사진을 일구었는가 하는 넋을 밝힐 뿐이에요.


  사진은 늘 우리 스스로 찍으니, 우리 스스로 찍을 사진은 어느 누구도 가르치지 못합니다. 사진을 배우자면 내 삶을 스스로 배워야 합니다. 사진을 깨달아 즐기자면, 내 삶을 먼저 깨달아 즐겨야 합니다.


.. 미술가이자 사진가인 존 발데사리의 얘길 하지 않아도 최고의 작품에 깨어 있는 시간을 바쳐야 한다 … 돈 아끼라고 나무라지 마세요. 원고료 타서 식구들을 위해 따뜻한 옷을 사는 것이 참 즐거워요 … 12년째 쓰고 있어서 많이 닳고, 줄어 버렸다. 이 정도 되었으면 버릴 만도 한데 버리지 못하는 이유. 내가 직접 짰기 때문이다 …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옷들이 다 어디 갔을까. 내가 초등학교 1·2학년 때 어머니는 언니와 내 옷을 만들어 주셨다. 눈으로 보는 것과 귀로 듣는 즐거움, 이게 재봉틀이 베푸는 은총이다 ..  (52, 88, 116, 174쪽)


  시를 쓰는 신현림 님이 사진을 배우면서, 시와 함께 사진을 즐깁니다. 이러는 동안 시나브로 글과 사진이 어우러지는 《빵은 유쾌하다》(샘터,2000) 같은 책을 내놓습니다. 《빵은 유쾌하다》는 산문책도 사진책도 아닙니다. 이야기책입니다. 시와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떻게 시와 사진을 누리면서 삶을 사랑하는가 하는 대목을 조곤조곤 밝히는 이야기책입니다.


  이야기책이니, 글도 보여주고 사진도 보여주어요. 이야기책인 터라, 글을 어떻게 누리고 사진을 어떻게 빛내는가 하는 삶을 보여주지요. 이야기책인 만큼, 글을 쓰며 사랑하고, 사진을 찍으며 꿈꾸는 하루를 보여줍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사람들 가슴을 촉촉히 적시는 아름다운 글책(문학책, 이를테면 시집이나 소설책이나 산문책)에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흐릅니다. 사람들 마음을 따사롭게 보듬는 아름다운 사진책에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감돕니다.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어서 글을 읽고 사진을 읽습니다.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어서 글을 쓰고 사진을 찍습니다.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나누고 싶어서 사진잔치를 열고, 사진잔치에 찾아갑니다.


.. 허름한 농가마다 바쁘게 일하는 농부들. 이들이 대질르 말없이 일구는구나. 들판이란 아프고 아름다운 생명의 옷 한 벌을 짓는다 생각하니 이보다 더 고마울 일도 없을 것 같다. 흙과 더불어 살아야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으리라. 나는 흙이 있는 자리로 돌아가 묻고 싶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는가. 남은 시간, 살아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 책을 자주 읽어 책 냄새가 나는 연예인이 그립다 … 언젠가 매춘 인구 1백만 시대라는 뉴스를 들었다. 부끄럽고 서글프기 짝이 없다.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을까? 사람들이 꿈이 없다는 것이다 ..  (65∼66, 130, 152쪽)


  글과 사진을 함께 누리는 시인은 즐겁습니다. 글로 빚는 빛을 사진으로 함께 빚으니까요. 사진과 글을 나란히 누리는 사진가는 즐겁습니다. 사진으로 빚는 빛을 글로 나란히 빚으니까요.


  누군가는 글도 사진도 아닌 부엌칼이랑 도마로 삶을 빚습니다. 누군가는 글도 사진도 아닌 호미와 낫으로 삶을 빚습니다. 누군가는 글도 사진도 아닌 바늘과 실로 삶을 빚습니다.


  우리는 무엇으로도 삶을 빚습니다. 풀포기 하나에서 삶을 빚고, 물줄기 하나에서 삶을 빚습니다. 노랫가락 하나에서 삶을 빚으며, 춤사위 하나에서 삶을 빚습니다. 까르르 웃으면서 삶을 빚습니다. 슬피 울면서 삶을 빚습니다. 삶은 언제나 사랑을 부르고, 사랑을 부르는 삶은 시나브로 글과 사진을 부릅니다.


.. 아무튼 사진을 배우려는 노력만큼이나 사진기 한 대를 구입하려는 노력도 눈물겹다. 자급자족의 가난한 삶을 꾸려 가자면 밥도 굶고, 유행하는 옷가지도 건너뛰고, 온갖 액세서리도 뛰어넘어야 한다. 물과 전기를 쥐어짜듯이 아껴써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애써 구입한 사진기를 잃어버릴 때 문제는 심각하다 … 자신이 아끼는 물건은 돈으로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다. 그 물건에 쏟은 애정과 사연이 담겨, 무엇보다 자신의 일부가 되듯 체온과 정이 흐른다 … 나의 심장과도 같은 카메라 ..  (119, 121, 180쪽)


  신현림 님은 “빵은 즐겁다” 하고 말합니다. 신현림 님한테는 빵이 즐겁다면 다른 누군가한테는 부침개가 즐겁습니다. 다른 누군가한테는 쑥떡이 즐겁습니다. 다른 누군가한테는 게찜이 즐겁습니다.


  사람마다 즐거움이 다릅니다. 그러나, 저마다 즐거움이 다르더라도 꼭 하나는 같습니다. 어느 것으로 즐겁다고 느끼든 ‘즐거움’이라는 대목이 같아요.


  즐거움이 있어서 글을 써요. 즐거움이 있어서 시골에서 흙을 만져요. 즐거움이 있으니 무거운 베낭 짊어지고 멧자락을 오르내려요. 즐거움이 있으니 자전거로 먼길 씩씩하게 달려요.


  아이들이 즐겁게 먹으리라 생각하며 밥을 차립니다. 아이들이 즐겁게 입고 뛰놀리라 생각하며 빨래를 하고 옷을 깁습니다. 아이들이 즐겁게 노래하고 춤추리라 생각하며 마당 있는 집을 마련합니다.


  스스로 즐겁게 누리는 삶이고, 스스로 즐겁게 찍는 사진입니다. 스스로 즐겁게 생각하는 삶이며, 스스로 즐겁게 읽는 사진이에요.


.. 윤동주는 동시도 참 잘 썼다. 그의 얼굴은 자신의 시와 너무나 똑같다. 시골스럽게 인간미 넘치는 모습, 속세와 3미터쯤 거리를 둔 듯한 윤동주의 모습이 떠오른다 … 좋은 글을 아이들에게 노트에 베끼게 하고 외우게 한 후, 나는 생각했다. 책 이외에 마음을 지켜 주는 게 또 없을까에 대해서. 그것은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좋은 볼거리를 보여주고, 자연과 가까이하는 일이다 ..  (182, 187쪽)


  아이들한테 일찍부터 영어를 가르치려 한대서 아이들이 영어를 잘 배우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영어를 배워서 써야 하는 까닭을 느끼지 않는다면, 영어를 제아무리 일찍 배운들 덧없습니다. 곧, 아이들한테 일찍부터 글을 가르치거나 사진을 가르친대서, 아이들이 뛰어난 시인이나 소설가나 사진가 되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는 즐겁게 놀던 어린 나날 있어야 시인도 소설가도 사진가도 됩니다. 아이들한테는 푸른 숨결 마시는 숲마실과 숲터 있어야 시나 소설로 쓸 이야기나 사진으로 찍을 이야기를 스스로 찾습니다.


  어른한테도 이와 같아요. 어른이라 한대서 학교나 강좌를 찾아 듣도록 한대서 글이나 사진을 잘 배울 수 있지 않아요. 어른한테도 아이처럼 스스로 삶을 느낄 만한 터전이 있어야 해요. 어른한테도 즐겁게 놀거나 일하는 삶이 있어야 해요. 전문지식 있기에 잘 찍는 사진이 아니고, 교양강좌를 듣거나 인문책 배웠기에 잘 읽는 사진이 아닙니다. 모든 사진은 삶을 바탕으로 찍고, 삶을 발판 삼아 읽습니다. 모든 글은 삶을 바탕으로 쓰고, 삶을 발판 삼아 읽습니다. 삶이 있는 사람이 사진을 찍고 글을 쓸 뿐 아니라,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립니다. 삶이 없는 사람은 기계놀림과 붓질은 할 테지만, 가슴으로 노래하지 못하고 마음으로 이야기를 꽃피우지 못해요.


  시인 윤동주 님도, 시인 신동엽 님도, 글솜씨로 시를 쓰지 않았습니다. 시인 윤동주 님도, 시인 신동엽 님도, 오직 가슴으로 시를 썼습니다. 가슴으로 사무치는 사랑을 이야기 한 타래로 담아서 시를 썼어요. 사진을 찍는 사람은 윤동주 님과 신동엽 님한테서 ‘가슴으로 담는 삶과 사랑’을 배워, ‘가슴으로 나누는 이야기’를 펼치는 사진길 걸어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46.5.2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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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5-26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여러 문장을 적어, 어느 사람한테 메일로 보낸 추억이 떠오르는 밤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책은 제게 없습니다.
함께살기님의 글을 읽으며 다시 책장을 펼쳐보고 싶었지만
잘 간수하지 못한 쓰라림을, 새삼 절감하고 있습니다. ㅠ.ㅠ

숲노래 2013-05-26 23:39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는 우연하게 이 책을 샀는데,
천천히 읽고 나서 느낌글을 쓰는 오늘 살피니,
절판되었더군요 @.@

언제 이렇게 절판되었담... 하고 생각하다가,
그럴 수도 있겠다고 느껴요.

이 책에 붙은 다른 분들 서평을 살피니,
신현림 님 글이나 사진을
마음 깊이 느낀 분은 뜻밖에 무척 적은 듯했어요.

appletreeje 님처럼 살가이 아로새기며 좋아해 주는 분 있어
언젠가 다시 살아날 수도 있겠지요.
 


 얼결에 물든 미국말
 (676) 컨트리(country)

 

지금은 그럴듯하게 재즈 카페, 락 카페 등으로 이름지어졌지만 그때는 투박하고 컨트리한 이름 ‘다방’이었다
《신현림-빵은 유쾌하다》(샘터,2000) 76쪽

 

  ‘지금(只今)’ 같은 한자말은 굳이 손질하지 않아도 될 만하지만, ‘이제’라는 한국말이 있습니다. “락 카페 등(等)으로 이름지어졌지만”은 “락 카페처럼 이름 붙었지만”이나 “락 카페 같은 이름이었지만”이나 “락 카페라 말하지만”으로 손봅니다.


  영어 ‘컨트리(country)’는 국어사전에 안 실립니다. 한국말 아닌 영어이니까요. 영어사전에서 ‘country’를 찾아봅니다. “(1) 국가, 나라 (2) 지역, 고장 (3) 국민, 국가 (4) 시골, 전원”와 같이 네 가지 말뜻 나옵니다. 보기글에 나오는 ‘컨트리한’이라면 아무래도 넷째 뜻일 테고, ‘시골스럽다’를 살짝 에둘러 적바림한 말마디라고 느낍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재즈 카페’이니 ‘락 카페’이니 영어로 가게이름 쓰는 흐름하고 맞물려 ‘컨트리’ 같은 영어를 썼구나 싶어요.

 

 투박하고 컨트리한 이름
→ 투박하고 시골스러운 이름
→ 투박하고 수수한 이름
→ 투박하고 살가운 이름
→ 투박한 이름
 …

 

  누군가는 ‘시골스러움’을 ‘수수함’이나 ‘살가움’으로 느낍니다. 누군가는 ‘시골스러움’을 ‘유행에 처짐’이나 ‘멋없음’으로 느낍니다. 받아들이려는 사람 마음가짐에 따라 다르게 쓴다 할 수 있으니, 다 다른 사람들 다 다른 느낌을 잘 살려서 쓰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니면, 그냥 “투박한 이름 다방이었다”처럼 적어도 돼요. 시골사람은 흙과 같은 살갗과 마음 되어, 그야말로 투박하게 삶을 일구거든요. 시골사람도, 시골마을도, 시골말도, 또 시골에 깃든 모든 숨결도 투박하며 수수합니다. 4346.5.26.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제는 그럴듯하게 재즈 카페, 락 카페 같은 이름이지만, 그때는 투박하고 시골스러운 이름 ‘다방’이었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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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풀 딸기 어린이

 


  팔뚝에는 토끼풀로 팔찌를 차고, 손에는 들딸기 쥐어 찬찬히 들여다보다가는 앙 하고 냠냠 먹는, 고흥 동백마을 시골 어린이. 4346.5.2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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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집 (도서관일기 2013.5.18.)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전남 고흥으로 도서관 옮기면서 종이상자를 무척 많이 마련해서 책을 담아 날랐다. 튼튼한 종이상자 몇 가지를 키 큰 책꽂이 위에다 올려놓곤 했는데, 이 가운데 한 곳에서 ‘새가 살던 집’인 둥지를 본다. 책꽂이 위에 종이상자 올려두면 그닥 보기 좋지 않겠다 싶어 치우다가 둥지를 보았다. 새는 언제 들어와서 이렇게 집을 지었을까. 텅 빈 둥지가 되었으니, 어미새는 새끼새 낳아 돌보다가 모두 나갔구나 싶다. 곰팡이내음 빼려고 창문 열어 두었을 때에 이곳에 들어와서 둥지 틀었을까. 슬그머니 창문 열어 두면, 다른 새들이 이 둥지로 찾아와서 알을 까고 새끼를 돌보려나. 이 둥지에서 태어난 새들은 어미새로 자란 다음 다시 이 둥지를 돌아보러 찾아오려나.


  책꽂이 자리를 얼추 옮겼기에, 이것저것 볼거리 될 만한 전단지와 묵은 신문과 포스터 들을 책꽂이 등판에 붙여 본다. 작은아이가 ‘바퀴 달린 작은 책’을 갖고 놀다가 아무렇게나 두었는데, 아무렇게나 둔 모습이 꽤 예쁘장하다고 느껴, 나도 이대로 두기로 한다. 소식지나 신문 꽂고 쉽게 들출 수 있는 전시대를 하나 얻었다. 종이컵을 책꽂이 벽에 붙여 본다. 볼펜을 슥 얹어 본다. 꽤 재미있네. 방명록 쓸 책상맡에 이렇게 필통 삼아 쓸 만하겠다고 느낀다. 부산 옛 모습 담긴 엽서를 종이컵 필통 위에 붙인다. 이제, 옆지기가 예전에 종이접기로 빚은 사마귀를 잘 보이는 자리에 얹을 수 있다. 종이사마귀 다리 풀리지 말라고 묶은 끈은 빛깔이 안 튀는 다른 끈으로 바꾸어야겠다. 도서관에 걸상 많이 늘어나서 좋다. 걸상 더 많이 들여놓자.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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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5-26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이컵을 책꽂이 벽에 붙여 연필 하나 꽂아 놓으니 그것도 참 보기 좋고 즐겁네요. ^^
종이컵 필통 위에 붙여 놓은 엽서들도요. ^^
저도 책장이나 책꽂이 옆에 책과 어울리는 예쁜 것들 함께 놓고 보는 것 좋아해요.
뭔가, 사물들이 이야기들을 건네는 그런 풍성함이 좋다고나 할런지요.~^^

숲노래 2013-05-26 11:25   좋아요 0 | URL
처음에는 책꽂이에 못 박기 싫었지만,
이제는 못 박아도
잘 꾸미면 되는구나 하고 느껴요 @.@
그렇더라구요!
즐겨야지요 ~
 


 책을 읽는 맛 (도서관일기 2013.5.13.)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책꽂이 자리를 조금 바꾼다. 책 가득 꽂힌 책꽂이를 옮기자면 품과 겨를이 많이 들지만, 힘들여 자리를 바꾸니, 빛이 한결 잘 들어온다. 처음에는 책을 바지런히 꽂는 데에만 마음을 썼다면, 이제는 빛을 골고루 받으면서 책꽂이 찬찬히 살피기 좋도록 자리를 바꾸는 데에 마음을 쓴다.


  한창 책꽂이 자리를 바꾸는데, 아이들이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논다. 재미있니? 재미있으니 이렇게 놀겠지? 아이들 눈높이에서 헤아린다면, 도서관은 퍽 재미난 놀이터로구나 싶다. 어른한테는 그저 책이 꽂힌 데라 하지만, 아이한테는 ‘또 다른 숲’과 같다. 여기에 살짝 몸을 숨기고, 이리저리 골마루 쏘다니면서 ‘숨은 길(미로)’을 즐긴다. 숨바꼭질 하기에 꽤 좋다. 술래잡기 하기에도 퍽 좋다. 공공도서관은 어디에서나 아이들 떠들지 못하도록 하지만, 조용히 책을 즐기는 자리와 함께, 아이들이 좀 개구지게 떠들거나 노래하거나 춤추더라도 괜찮은 책터도 나란히 있으면 좋으리라 생각한다. 또는, 도서관 둘레에 너른 숲과 마당과 뜰이 있어, 아이들이 숲과 마당과 뜰에서 땀 옴팡 쏟으며 뛰놀도록 한 다음, 한숨 돌리고 쉬면서 조용히 책을 보도록 하면 좋으리라.


  도서관 둘레에 너른 숲과 마당과 뜰이 있으면, 아이한테뿐 아니라 어른한테도 좋다. 어른들은 푸른 숨결 마시면서 몸을 다스린다. 몸을 차분히 다스리며 맑은 넋 된 다음 책을 손에 쥐면 아주 깊고 넓으며 빠르게 이야기를 받아들인다. 책을 숲속 걸상에 앉아 읽으면 더 좋겠지. 책을 마당이나 뜰 잔디밭에 드러누워 읽으면 더욱 좋겠지.


  꼭 어느 건물 어느 책상맡에서만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니다. 숲속에서, 샘가에서, 냇가에서, 나무그늘에서, 잔디밭이나 풀밭에서, 바람과 햇살을 고루 느끼면서 읽어도 아름다운 책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책은 이렇게 숲을 느끼고 햇살을 마시는 데에서 읽어야 참다이 헤아리며 받아들일 수 있지 않으랴 싶다.


  지하철이나 시내버스에서 읽는 책하고 숲에서 읽는 책은 느낌이 다르다. 시끌벅적한 찻길에서 동무 기다리며 읽는 책하고 들새와 멧새 노래하는 숲에서 읽는 책은 맛이 다르다. 자동차 배기가스 맡으며 도시에서 읽는 책하고 개구리와 풀벌레 노래하는 숲에서 숲바람 들이켜며 읽는 책은 멋이 다르다.


  사람들이 책 읽는 맛과 멋과 숨을 새삼스레 느낀다면 좋으리라. 사람들이 책을 읽어 삶을 가꾸는 맛과 멋과 숨을 새롭게 깨닫는다면 좋으리라.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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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5-26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들보라의 뽀로로 고무신도, 도서관에 예쁘게 있네요.~
정말 아이들에게 즐거운 도서관이지요~? 장기놀이도 하고.~
어제 돌아오는 빼곡한 지하철 안에서도 짬짬이 카톡을 하는 일행을 보고
참 끊임없이 실시간으로 결국은, 남의 삶만 들여다보는 일에 푹 빠졌구나..하는 아쉬움이.
자신을 조용히 들여다 보고 살피는 시간을 점점 잃어버리고 사는구나, 싶었어요..
책을 숲속 책상 걸상에 앉아 읽으면 진짜 근사하고 더 신날 것 같아요. *^^*

숲노래 2013-05-26 11:26   좋아요 0 | URL
그런데, 도시에서는 어쩔 수 없는걸요.
지하철에서 무얼 하겠어요.
시끄러운 '쇠바퀴 찢어지는 소리'를 견디며
책을 읽으라 하는 말은...
어쩌면 '고문'일는지 몰라요.

나중에 이런 이야기도 한 번 써 봐야겠네요.
저는 책읽기를 좋아하니 지하철에서도 책을 읽으려 하지만,
여느 사람들은 귀가 아프고 머리가 아프니,
힘든 머리를 잊으려고 그렇게 스마트폰에 매달리지 않느냐 싶어요...

appletreeje 2013-05-26 11:46   좋아요 0 | URL
정말 그렇군요..
저는 바쁜 시간대나 주말엔, 지하철을 타는 일이 적어서 그 생각을 못 했어요.
다만 어제,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도
그 새를 못 참고 자꾸 전화기를 들여다 보고 가는 일행의 모습에서
작은 안타까움이 생겼던 듯 합니다. ^^

숲노래 2013-05-26 14:23   좋아요 0 | URL
그런 버릇도 여느 때에 길들여졌기 때문에
살짝살짝 느긋하게 쉬면서
둘레를 바라보는 말미를
거의 잊어버린 모습이라고 느껴요.

전화기 안 터지는 숲속이나 두멧시골로 오면
아예 안 터지니까 잊을 만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 느긋해지기란 참 어렵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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